선심(禪心)
발을 걷어 올리니 가을빛이 차고
창문을 여니 새벽기운이 맑다.
捲箔秋光冷 開窓曙氣淸
권박추광랭 개창서기청
- 금강경오가해
우리나라는 고려에 와서 중국의 임제종의 선법을 전승하여 온 뒤로 선종이 성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교(敎)든 선(禪)이든 거의 멸절의 위기에까지 이르렀으나, 다행히 마지막에 경허(鏡虛)라는 걸출한 선승이 있어서 다시 선불교를 일으켜 세웠다. 또 근년에 와서 다시 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선원도 전국에 많이 세워졌다. 매 철마다 선원에 입방하여 좌선생활을 하는 이들이 스님들만 2,000여 명이 넘을 정도이다.
불교도 2,600여 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각 방면으로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그 중에서 선불교는 이 시대에까지 발전하여온 모든 불교 중에서 가장 첨단 불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선을 하는 선심(禪心)에는 다른 불교에서 엿볼 수 없는 대단한 정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개된 게송은 그 선심의 일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 양지바른 곳에 아담하고 간결한 선실이 하나 있다. 계절 따라 풍광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일년 내내 속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속된 일도 일체 일어나지 않는다. 여름에 쳐 두었던 발을 걷어 올리니 어느새 가을빛이 차게 느껴져서 가을이 온 것을 알뿐이다.
한밤 내내 선정에 들었다가 문득 창문을 여니 이른 새벽이다. 산사의 새벽기운이 너무 맑아 가슴을 파고든다. 참으로 간결하고 소박한 삶이다. 탈속 그 자체다. 시중에 살아도 이런 마음가짐과 생활모습이라면 그대로가 선생활이다. 깊은 산 속 선원에서 살더라도, 선심이 없으면 그것은 선이 아니고 선생활이 아니다.
선은 무엇을 목적하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선심으로 사는 삶일 뿐이다. 선을 하는 사람들은 이 시와 같은 소박하고 간결하고 탈속한 삶이 좋아서 그렇게 산다. 그러므로 참 선객들은 개울물에 노니는 물고기들이 물 속에 비친 달빛을 읽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선심(禪心)으로 살기 때문이다. 선불교를 최첨단 불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②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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