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

[스크랩] 제9구 一微塵中含十方

수선님 2018. 11. 1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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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티끌 속에 시방을 머금고

 

화엄(華嚴)에서 나투는 부처님의 세계는

티끌 먼지 하나에서부터

온 우주 전체에 이르기까지

대소장단(大小長短)의 어느 것에나 차별 없는

법계(法界)이면서 대소장단으로 나툽니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불성(佛性)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법계(緣起法界)

 

방 안에 있는 먼지 하나,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사실 관심조차 없습니다. 관심이 있다면 귀찮은 청소의 대상일 때뿐일 것입니다. 대체 우리의 관심은 언제나 어디에 있을까요. 더 중요하자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먼지 하나에 있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먼지는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래서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티끌 하나에 대한 이야기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고 나서 티끌 하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라는 사람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고 그 사이에 어떻게 살다 갔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분명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는 다른 개별자로서 홍길동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에게도 무상(無常), 무아(無我)는 그 삶의 본 바탕입니다. 그리고 그 무상, 무아는 시공(時空)으로 제한되지 않는 언제 어디서나 참으로 있는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다.

 

때문에 개별자로서는 태어나고 죽는다고 하지만 본래면목은 시공에 편재해 있는 모습으로 언제나 있습니다. 홍길동의 무상, 무아나 우주 전체의 무상, 무아는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홍길동이라는 개별자의 제한된 시공에서도 그 자체로서 드러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홍길동의 현상은 나고 줒는 모습 속에 있으나 이는 인연화합의 잠시 모습일 뿐이며 부상, 무아의 삶은 그 자체로 우주의 총체상(總切相)다는 사실입니다. 곧 개별자 홍길동은 우주의 부분이 아닌 우주 그 자체입니다.

 

만일 홍길동이 우주 자체가 아니라면 우주에서의 혼길동은 잔지 부분일 것이며 이때에는 부분과 전체, 부분과 부분은 단절을 뜻하게 되어 단멸상(斷滅相)이 되거나, 부분 없는 전체도 가능하게 되어 전체의 상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고 현수 법장스님께서는 <화엄경일승교의분제장>에서 서까래와 집의 관계를 들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아울러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비추어 봐도, 홍길동이 있음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존재할 수 있고, 홍길동이 없음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제 오늘도 쉬지 않고 많은 존재들이 태어나고 죽어가고 잇습니다. 또한 그것과 상관 없없이 우리 자신을 보면 늘 있는 대로 있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각은 늘 동일한 모습을 대상으로 해야만 인식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깊은 수행으로 시공의 제한된 동일영역을 설정해 놓고 사물, 사건을 파악하고 있는 의식을 넘어설 때, 우리는 홍길동 한 사람의 태어남에서 새로운 우주의 태어남을 볼 수 있으며 홍길동 한 사람의 죽음으로서도 한 우주의 죽음을 졸 수 있습니다. 나아가 태어남은 죽음과 같이하고 죽음은 태어남과 같이하는 생멸동시(生滅同時)의 변화들이 무한히 겹쳐진 우주, 곧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를 보게 될 것입니다.

 

홍길동이라는 사람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티끌 하나도 무상, 무아이며 진여공성(眞如空性)으로 시공을 넘어 언제 어디서나 제 모습을 나툽니다. 때문에 인연화합(因緣和合)의 장에서 하나라고 보면 티끌 하나라고 할지라도 그 참된 성품은 우주의 모든 존재를 감싸고도 남습니다.

 

이것과 저것이 있기 때문에 티끌 하나의 생멸이 한 우주의 생멸과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티끌은 티끌이며 홍길동은 홍길동으로 개별자로서의 특수한 모습을 잃지 않으니, 그 모습 그대로가 진여공성인 무상, 무아의 나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바람 한 점 이는 것도 우주의 모든 움직임이며, 흩난리는 나뭇가지의 율동도 그대로 온 주주를 관통하는 법계신(法界身)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법음(法音)입니다. 이와 같은 무상, 무아의 초월. 그리고 현상의 동일성과 차별성이 그대로 드러난 세계를 시작도 끝도 없는[無始無終] 연기의 법계라고 합니다. 현상 그대로가 불성(佛性)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화엄에서 나투는 부처님의 세계는 티끌 먼지 하나에서부터 온 우주 전체에 이르기까지 대소장단(大小長短)의 어느 것에서나 차별 없는 법계(法界)이면서 대소장단으로 나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시공의 제한을 넘어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데서 불성(佛性)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正和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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