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

[스크랩] 제10구 一切塵中亦如是

수선님 2018. 11. 1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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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티끌마다 또한 그러하네

 

무명(無明)의 한 생각이 온 법계(法界)를 무명화(無明化)하며

진여(眞如)의 빈 생각도 온 법게의 울림입니다.

무상의 흐름을 분명히 아는, 마음이 깨어 있는 순간이

법신(法身)의 나툼입니다.

이때에는 티끌 하나하나도

총체적 우주의 빛인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불의 나툼입니다. 

 

티끌 하나가 우주의 몸

 

앞서 이야기한 시작도 없 끝도 없는 세계가 본래면목(本來面目)의 빛인 비로자나불의 세계이며 우리들의 현존(現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얼굴과 중생의 얼굴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얼굴인 진여법계연기(眞如法界緣起)에서 중생은 무명업장(無明業障)에 의해서 시비분별(是非分別)을 일삼으며 왜곡된 삶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 관계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한 마음[一心]에 두 가지의 면목(面目)을 세워 이여기 하고 있으니, 비로자나 부처님의 본래면목인 진여문(眞如門)과 본래면목인 비로자나 부처님을 떠난 것은 아니지만 무명업장에 의해서 갖가지 시비분별로 차별상을 나투는 생멸문(生滅門)이 그것입니다. 이 두 얼굴의 근간인 진여공성과 무명업장도 여기서 이야기하는 모든 티끌의 이야기와 다름 없습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세계는 언제 어느 때를 점유한 시공의 현존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이면서 동시에 언제 어느 때를 넘어선 무시무공(無始無空)의 현존을 말합니다. 무명의 현존과 진여의 현존은 공성(空性)에서 완전히 같은 것으로, 삶의 모든 곳, 곧 몸과 마음이 활동하는 모든 곳에서 항상 같이 합니다.

 

때문에 한 생각이 일어남이 진여이기도 하고 무명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은 무상, 무아의 법계신(法界身)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무명의 이어짐은 수행에 의해서 진여의 빛을 회복할 때 사라지는 데서 다를 뿐입니다. 무명의 한 생각이 온 법계를 무명화(無明化)하며 진여의 빈 생각도 온 법계의 울림입니다.

 

이것을 <원각경(圓覺經)>에서는 "한 몸이 청정하면 온 몸이 청정하고 온 몸이 청정하면 한 몸이 청정하고, 한 몸이 물들었으면 온 몸이 물들었으며, 온 몸이 물들었으면 한 몸이 물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짐이 단순히 자기 한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파문이 아니라 법계의 모두에게 미치는 파문이며 이것이 매 순간 새롭게 법계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한 생각, 한 몸짓이 그대로 세계의 창조아며 이것에 의해서 세계가 하나 되어 있습니다.

 

무명업장의 무시(無始)도 저 먼 옛날의 어떤 시점에서의 무명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바로 지금에서 무상의 흐름을 놓치는 것일 뿐입니다. 무상의 흐름에 분명할 때가 진여의 공성이 빛으로 나투어 비로자나불의 화엄세계인 법계연기가 펼려지고 있는 것을 여실히 아는 때입니다. 깨어 있는 마음이 작용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법계신의 나툼입니다.

 

이때에는 티끌 하나하나도 총체적 우주의 빛인 비로자나불의 나툼이 됩니다. 티끌 하나가 온 우주의 원인이며 온 우주가 티끌 하나를 만들기 위한 원인으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원인으로 볼 때나 결과로 볼 때나 티끌 하나하나는 우주 전체의 몸으로 있습니다. 티끌 하나하나가 자신의 전체를 드러내서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의 모든 존재도 자신의 전체를 드러내서 티끌 하나를 창조하고 있는 동시 인과(因果)의 진여공성이 참된 법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인과관게에서 볼 때 일(一)과 다(多)의 관계는 전적으로 상호 포섭인 상입(相入)과 상호 동일성인 상즉(相卽)의 세게에서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 있으며 하나가 그대로 전체가 됩니다. 또한 개체 하나하나는 자신의 빛을 온 우주법계로 발산하여 법계 전체를 자신의 몸으로 하고 있으니 한 개체의 몸이 그대로 법계신(法界身)이 됩니다.

 

이와 같은 뜻에서 보면 하나하나마다 전체의 모든 생명의 빛이 겹쳐 있으니 하나가 일체가 되며 다른 하나하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아가 하나가 설 때 그것을 중심으로 일체가 제 모습대로 설 수 있으니 하나는 단지 자신의 하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중심이 돼서 일체가 제 모습을 갖게 하는 하나가 됩니다.

 

주인으로서의 하나가 될 때 객으로서의 모든 것이 성립되는 관계에서 하나와 전체는 상즉과 상입의 화엄연기(華嚴緣起)를 이루고 잇습니다. 이것은 상호관계를 이루고 있는 낱낱의 본래면목이 공성이기 때문입니다.

 

正和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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