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받고 공부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마음을 길들인다는 것은 마음에 익숙해지는 과정입니다.
불교의 맥락에서 보면, 익숙해짐 또는 명상수행은 마음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잘못된 속성을 버리고 긍정적인 속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명상수행으로 마음을 훈련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부정적인 속성을 버리고 긍정적인 속성을 일으켜 강화할 수 있습니다. 명상수행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분석적인 수행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삼매(三昧) 즉, 일점집중(一點集中)입니다.
수행을 할 때는 먼저 수행의 대상을 지속적으로 분석해야하고 그 과정 속에서 수행의 대상과 점점 익숙해져야 합니다. 수행자에게 명상수행의 대상이 확실히 다가오기 시작하면, 더 이상 분석을 하지 않고도 수행의 대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분석과 집중의 조화는 수행의 대상인 마음을 길들이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마음을 길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들 모두 각자가 본래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바라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특성은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본능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고통을 넘어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교육의 과정을 열심히 마친 사람은 비교적 성공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육을 통하여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교육은 마음을 잘 길들여 예리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은 몸과 말을 제어합니다. 그러므로 몸과 말을 위한 어떠한 훈련도 마음과 함께 해야 합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 물리적인 몸과 말을 수행하는 데는 먼저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동기가 있을 때 마음은 그러한 수행의 이익을 따라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수행하는 목적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음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웁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버리고 바로 잡아야 할 많은 허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마음을 전환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모으고 잘못된 것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과 방편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교육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과 해야 할 것을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요소들도 함께 제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고 행복하게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보면, 교육은 생생한 자기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 얼마나 존경받을 수 있는가는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은 그 중심이기 때문에 마음을 길들이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삶 속에서 행복과 슬픔은 마음의 지성(知性)이나 힘에 의존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도 역시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가 미래에 존재할 우리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마음의 성향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신적인 잠재력을 잘 못 사용하면 실수를 계속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힘든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의 잠재력을 능숙하게 잘 길들이면, 긍정적이고 행복한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가 다른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마음을 잘 제어하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을 길들이고 성숙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음 수행의 중요성을 잘 알고, 마음이 무엇인지 탐구해야 합니다.
마음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두뇌를 가리킬 것입니다. 부분적으로는 옳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특별히 인간의 마음을 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인간의 몸 어느 특정한 부위에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몸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의식을 인간의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또 동물의 몸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의식을 동물의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 혹은 의식은 실제 거칠고 미세하며 다양한 마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친 유형의 마음들은 눈과 같은 감각기관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분명히 두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외적인 바탕이나 요소들은 하나의 의식이 생기게 하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근본원인은 순간적인 의식 이전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는 명료한 의식의 상태입니다.
아리야데바(Āryadeva, 聖天)의 『사백송(四百頌)』에서는 의식의 근본원인은 변화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명료한 의식의 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논리적인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의식이 아무 때나 생겨난다는 것은 분명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행동을 하고 나면 그 사건은 우리의 의식에 그대로 남습니다. 그 결과 10년이 지나도 우리는 그 경험을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잠재성을 일깨운다.’라고 말합니다. 이 잠재성은 의식의 흐름을 통하여 옮겨갑니다. 필요한 조건이 모이면 이것이 활성화되고 잠재된 인상(印象)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생의 잠재적인 인상도 깨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두뇌와 마음의 관계만으로는 잠재력의 미세한 면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잠재성에 대한 주의 깊은 이해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뿐만 아니라 우주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은 또한 인간의 사고(思考), 관습적 믿음, 마음이 투영하는 다른 대상들에 대한 의심도 풀어 줄 수 있습니다.
불교는, 이러한 잠재성을 가진 마음의 완전한 성품을 모두 드러낸 상태인, 일체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의 잠재력을 모두 일깨운 마지막 결과인 일체지를 얻으려면 완전하고 바른 원인들을 심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적절한 훈련의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원인(因)과 조건(緣)들 중에서도 바르고 완전한 것들에 의존해야 합니다.
잘못된 원인에 열중하면 아주 긴 시간이 흘러도 바라던 결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뿔(角)에서 우유를 짜는 것과 같습니다. 원인(因)을 모두 다 갖추지 않으면 결과는 생기지 않습니다. 씨앗(種字) 등에 무언가 하나라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싹 등의 결과는 생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를 바란다면 바르고 완전한 원인과 조건들에 의존해야 합니다.
바르고 완전한 조건들을 모은 다음, 바른 순서를 따라 그 원인들을 적용하여 마음을 넓히면 일체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려면 단순히 필요한 재료를 모아놓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 내려면, 기름이나 양념 같은 재료들을 어떻게 적절히 배합하고 요리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일체지(一切智)의 결과를 얻기 위한 원인(因)과 조건(緣)들은 무엇입니까?’라고 한다면, 대답하건대, 저 같은 [사람은] 맹인(盲人)과 같아서 그것들을 가르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존(世尊)께서 실제 부처를 이루신(現證菩提) 후에 제자들에게 설하신 바와 같이 제가 세존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비밀주(秘密主)의 일체지(一切智)의 지혜라는 것은 자비(慈悲)를 근본으로 하여 생긴 것이고, 보리심(菩提心)이라는 원인(因)에서 생긴 것이며, 방편(方便)으로 구경원만(究竟圓滿)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체지를 성취하기를 원한다면 자비와 보리심 그리고 방편,
이 세 가지 모두를 공부해야 합니다.
여기서 까말라실라께서는 일체지를 이루는 방편과 바른 원인을 심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일체지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누구라도 먼저 자비심에 바탕을 둔 보리심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수행은 또 특별히 지(止, Śamatha)와 관(觀, Vipaśyanā)을 함께 수행하고, 육바라밀(六婆羅蜜)을 뒷받침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방편으로 알려진 이 수행들은 서로 따로 떨어뜨려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소승이나 대승할 것 없이 모든 부처님의 법을 수행하려면, 그 근본인 자비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마타는 일점 집중, 위빠사나는 분석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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