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마가다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제자들과 강가에 나갔던 부처님은 강 가운데로 큰 나무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비유를 들어 가르쳤다.
“만일 저 나무가 바다에 이르고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이쪽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아야 하며, 중간에 가라앉거나 언덕위로 오르지도 않으며, 사람이나 또는 사람 아닌 것에 붙잡히지 말아야 하며, 물길을 거스르지도 썩지도 않아야 무사히 바다에 이른다.
수행자들이 수행을 하여 열반의 바다에 이르는 것도 이와 같다. 이쪽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아야 하며, 중간에 가라앉거나 언덕위로 오르지도 않아야 하며, 사람이나 또는 사람 아닌 것에 붙잡히지 말아야 하며, 물길을 거스르지도 썩지도 않아야 열반의 바다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열반이란 바른 소견(正見), 바른 다스림(正治), 바른 말(正語), 바른 업(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방편(正方便) 바른 사념(正念) 바른 선정(正定)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난다라는 소치는 목동이 이 말을 듣고 자기도 출가하여 열반의 바다에 이르고 싶다고 했다. 부처님은 출가하고 싶다면 주인에게 소를 돌려주고 오라고 했다. 그는 소를 돌려주고 와서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수행자가 되었다. 이를 지켜본 어느 수행자가 부처님이 비유로 말씀한 ‘이쪽 저쪽 언덕’과 ‘여덟가지 장애’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이쪽 언덕이란 이 몸이요, 저쪽 언덕이란 이 몸이 없어진 것을 말한다. 중간에 가라앉음이란 욕망과 애착이요, 언덕위에 오른다는 것은 욕심을 말한다. 사람에게 붙잡힘이란 그 공덕으로 국왕이나 대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사람 아닌 것에 붙잡힘이란 그 공덕으로 천상락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길을 거슬러 되돌아온다는 것은 의심을 말하는 것이며, 썩는 다는 것은 여덟 가지 바른 수행(八正道) 닦지 않고 그 반대의 삿된 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난다비구처럼 갓 출가했음에도 스스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여덟 가지 장애를 물리치고 수행을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게 되리라.”
<증일아함> 38권 마혈천자품(馬血天子品) 제3경
불교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무고안온(無苦安穩)한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열반은 불교도가 추구하는 최고의 행복이다. 그러나 이 최고의 행복, 최후의 행복에 도달하려면 보다 진지한 노력과 수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겉으로만 수행자 흉내를 내거나, 말로만 수행을 한다고 해서는 결코 열반에 이를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진지하게 팔정도를 닦아나가는 사람이 드물다. 머리만 깎고 승복만 걸치고 있으면 다 된 것처럼 생각하는 출가자나, 이 절 저 절 왔다 갔다 하면서 남의 흉이나 보고 잘난 척하는 재가불자가 너무 많다. 모두가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는 소홀하면서 입으로만 수행을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열반의 길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수행은 절반은 놀고 절반은 쉬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물질을 보면 욕심을 못 버리고, 화나는 일을 만나면 참지 못하고, 지혜로운 충고를 받고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심지어는 ''내가 지옥에 가더라도 너는 용서못한다''는 극단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부처님은 이경에서 그런 사람들을 조용하게 타이르고 있다. 그렇게 하다가는 욕망과 애착에 붙들려 윤회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시 나는 지금 열반으로 향하는 거룩한 물결(預流)을 역류시키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각자의 발밑을 살펴볼 일이다.
홍사성/불교평론 편집위원
'경전 되새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도끼보다 무서운 입을 조심하라 (0) | 2018.11.25 |
---|---|
[스크랩] 지옥의 길 열반의 길 (0) | 2018.11.25 |
[스크랩] 불자의 몸가짐 마음가짐 (0) | 2018.11.18 |
[스크랩] 지옥이 두렵지 않은가 (0) | 2018.11.18 |
[스크랩] 불법을 만난 행운의 크기 (0) | 2018.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