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데바닷타를 따르는 코카알야가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는 데바닷타의 꼬임에 빠져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비난하며 다녔다. 부처님이 이를 알고 그를 나무랐다.
“코카알야야, 너는 왜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비난하는가. 그들은 훌륭한 아라한이다. 계속 그들을 비난하면 긴 밤 동안 이익되는 일이 없을 뿐더러 나중에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나쁜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며 계속 헐뜯으려 했다. 부처님이 두 번 세 번 타일렀으나 말을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 뒤 그는 온몸에 부스럼이 생겨 고름을 흘리는 큰 고통을 받다가 끝내는 목숨을 거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부처님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입 안에 도끼가 함께 생긴다. 그것을 잘 간수하지 않으면 도리어 제 몸을 찍나니 그것은 세치 혀를 잘못 놀리기 때문이다. 칭찬해야 할 것을 도리어 비난하면 그 죄는 바로 입에서 생기는 것이니 결국 죽어서 나쁜 곳에 떨어지게 된다. 장기와 바둑으로 재물을 잃는 것은 오히려 허물이 적다. 그러나 부처님과 아라한을 잃게 되는 것이야말로 큰 허물이다.”
잡아함 49권 1278경 《구가리경(瞿迦梨經)》
이 경의 문면을 살펴보면 데바닷타의 배신은 부처님이 사리풋타나 목갈라나의 인품을 더 높게 평가한 것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즉 데바닷타는 자신이 부처님의 후계자가 못 될 것을 염려해 교단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단갈등의 이면사가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항상 세치 혀를 조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말이란 모양도 없고 흔적도 남지 않지만 한번 입 밖으로 나오면 도저히 주어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이란 입 밖으로 내보내기 전에 반드시 돌아올 결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반대로 말 한마디에 목숨을 잃고 신세를 망치는 일도 허다하다.
화가 난다고 남을 비방하거나 질투하면 그 죄는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올 뿐이다. 입 안에서 생긴 도끼가 자기의 발등을 찍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입 안의 도끼로 자신을 망치려 하고 있다. 더욱이 그로 인해 훌륭한 도반을 잃거나 끝내는 자신까지도 더러운 흙탕물에 빠지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일요일 저녁 어떤 부부가 사소한 다툼 끝에 부부싸움을 했다. 남편은 아내를 욕하고 꾸짖었다. 아내는 남편의 잘못을 들추면서 지지 않았다. 화가 난 남편이 드디어 폭탄선언을 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아무래도 그만두는 게 좋겠다.”
“그래 좋다. 그만두자. 그런데 어떻게 그만두는 게 좋은가?”
“너는 너대로 가고 나는 나대로 가자.”
두 사람은 똑같이 집을 나왔다. 남편은 술집으로 갔고 아내는 영화관으로 갔다. 얼마 뒤 두 사람은 나란히 집으로 돌아왔다.
“안 돌아올 듯 나가더니 왜 들어왔나?”
“내일 출근하려고 왔다. 그런데 당신은 왜 들어왔나?”
“출근 준비해 주려고 왔다.”
금방이라도 이혼할 것 같은 두 사람은 서로를 용서했다. 코미디 같은 부부싸움이었다.
이들 부부의 말싸움을 유심히 살펴볼 부분이 있다. ‘그만두자’고는 했어도 ‘이혼하자’는 말은 서로 안 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만두자는 말은 결혼생활을 그만두자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싸움을 그만두자는 뜻도 된다. 실제로는 헤어지자고 말하고 싶어도 ‘이혼’이라는 결정적인 말은 아껴야 나중에 화해의 여지가 남는다. 말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발등이 찍히지 않으려면 입 속에 있는 도끼를 잘 간수해야 한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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