坐禪三昧經 좌선삼매경

[스크랩] 좌선삼매경 51. 보살도(菩薩道)의 부정관(不淨觀) - 여실지견, 제법실상

수선님 2018. 11. 25. 12:02

좌선삼매경 51. 보살도(菩薩道)의 부정관(不淨觀) - 여실지견, 제법실상

 

 



復次, 我當學求諸法實相不有常不無常, 非淨非不淨. 我當云何著此不淨. 觀不淨智從因緣生. 如我法者當求實相, 云何厭患身中不淨而取涅槃. 當如大象度流水窮盡源底, 得實法相滅入涅槃. 豈可如獼猴諸兎畏怖, 流趣自度身. 我今當學如菩薩法. 行不淨觀 除却欲, 廣化衆生令離欲患, 不爲不淨觀所厭沒. 復次旣觀不淨則厭生死. 當觀淨門 繫心三處, 鼻端ㆍ 眉間額上. 當於是中開一寸皮淨除血肉, 繫心白骨不令外念, 外念諸緣攝之令還, 著三緣中恒與心鬪. 如二人相撲. 行者若勝心, 則不如制之令住. 是名一心. 若以厭患起大悲心愍念衆生, 爲此空骨遠離涅槃入三惡道, 我當懃力作諸功德敎化, 衆生令解身相空. 骨以皮覆實聚不淨. 爲衆生故徐當分別此諸法相. 有少淨想心生愛著, 不淨想多心生厭患. 有出法相故生實法. 諸法實相中無淨無不淨, 亦無閉亦無出, 觀諸法等, 不可壞不可動. 是名諸法實相〈出過羅漢法也〉

또한 내 마땅히 일체 존재의 참다운 모습(諸法實相)137)은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으며,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다는 것을 배워서 찾으리라.

 

나는 왜 이 더러운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더러움을 관하는 지혜는 인연 따라 생긴다. 나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참다운 모습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몸속의 더러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취득하는가? 마땅히 커다란 코끼리가 급히 흐르는 물을 건너기 위해 시내의 밑바닥을 모두 깊이 살피듯이 참다운 존재의 표상이 소멸하는 것을 증득해서 열반에 들어간다.

 

어찌 원숭이나 여러 토끼처럼 빨리 흐르는 것을 두려워하여 서둘러 스스로 몸을 제도할 것인가?

내 이제 마땅히 배우되 보살법과 같이 하리라.


부정관(不淨觀)을 실행하여 음욕을 제거하고, 널리 중생들을 교화하되 욕망과 근심을 여의게 하며, 부정관으로 싫어하는 것에 빠지지 않으리라. 또한 이미 더러운 것을 관하였으면 곧 생사를 싫어하리니 마땅히 정문(淨門)을 관하되 마음을 세 곳 즉 콧날ㆍ 미간ㆍ 이마 위에 묶어야 하며, 마땅히 이 속에서 한 마디의 가죽을 열어서 피와 살을 청정하게 제거한다.

 

마음을 백골(白骨)에 묶어서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하며, 바깥으로 여러 반연을 생각하면 그것을 추슬러 되돌아오게 하며, 세 가지 반연 속에 집착해서 항상 마음과 더불어 싸운다. 마치 두 사람이 서로 씨름하는 것과 같다.

 

수행자가 만일 마음을 이기자면, 곧 그것을 제압하여 머물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없으니, 이것을 한마음이라고 한다. 만일 싫어하는 것으로 크게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가엾게 여기면, 이 빈 뼈다귀 때문에 열반을 멀리 여의고 삼악도에 들어가는 것이다.

내 마땅히 부지런히 힘쓰고 여러 가지 공덕을 지어 중생을 교화하여 신상(身相)의 공함을 이해하게 하리라.

 

뼈는 가죽으로 덮여 있으나 사실은 더러운 것으로 모여 있다.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천천히 이 모든 존재의 모습을 분별하는 것이다. 약간의 청정하다는 관념이 있으면 애착을 일으키고, 더럽다는 관념이 많으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존재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참다운 존재를 낳는다. 모든 존재의 참다운 모습 속에는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으며, 또한 닫는 것도 없고 나오는 것도 없어서 모든 존재를 관하여 파괴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아니한다.

 

이것을 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모습(諸法實相)이라고 한다.〔나한법(羅漢法)에서 나온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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