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라자가하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마하목갈라나는 락카나 비구와 함께 키자쿠타 산에서 수행중이었다. 어느 날 목갈라나는 락카나와 함께 라자가하(王舍城)로 탁발을 나갔다. 어느 곳에 이르러 목갈라나는 이상한 것이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온몸에는 가죽이 없고 모양은 살덩이같이 생긴 몸이 큰 중생’이었다.
목갈라나는 신통이 뛰어난 제자였으므로 이 가엾은 중생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채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궁금하게 여긴 락카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목갈라나는 그가 믿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았다. 탁발을 마친 목갈라나는 마침 죽림정사에 머물고 계신 부처님을 찾아뵙고 이 같은 사실을 아뢴 뒤 짐짓 그 사연을 여쭈었다. 부처님은 이렇게 답변했다.
“그 중생은 과거 세상에 이 라자가하에서 살았는데 태내에 수태된 생명을 떨어뜨렸다. 이 죄로 말미암아 그는 지옥에 떨어져 이미 백천 세 동안 한없는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그 고통을 계속해서 받고 있는 것이다.”
잡아함 19권 512경 《타태경(墮胎經)》
경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경은 타태 즉 낙태를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 경에서 목갈라나가 보았다는 가엾은 중생은 낙태를 한 사람의 업신(業身)의 모습이다. 이렇게 낙태를 하면 그 죄과로 낙태자는 다음 생에서 자신도 낙태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 부처님의 경고다. 어떤 경우에도 낙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낙태문제를 둘러싸고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강간 등에 의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거나 기형아를 임신한 사실이 확인됐을 때 이를 출산하는 것은 산모나 태아에게 고통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또 폭발적인 인구증가에 의한 식량문제, 이에 따른 삶의 질의 문제 등을 고려하면 낙태를 죄악으로 매도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일견 타당한 측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기형아를 낳아 평생을 고통받고 살아가는 사람이나,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해서 낳은 아이 때문에 한 여성의 운명이 불행의 늪으로 빠져든다면 이는 누구도 바라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이기심에 의한 것이며 태아 자신의 선택은 아니다. 태아의 입장에서 보면 원하지 않는 임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무절제나 부도덕에서 생긴 것이다. 더욱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환경문제로 인해 기형아 임신이 늘고 있는데 이 역시 인간이 스스로 만든 조건이다. 사람들은 이런 조건을 제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고한 생명만 해치려고 한다. 만약 입장을 바꿔 어른들 자신이 태중에서 낙태되었다면 어떤 느낌일 것인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낙태를 단행한 어른들의 이기심대로라면 무척이나 억울했을 것이다.
낙태가 늘어나면서 요즘은 이상한 풍속마저 생겨나고 있다. 이른바 수자공양(水子供養)이라는 것이다. 수자란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물과 같았던 존재인 태아를 의미한다. 수자공양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생명을 천도하는 의식으로 일본에서 시작된 새로운 불교의식이다. 이 의식이 낙태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굳이 반대할 것까지는 없다. 다만 이로 인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여성들이 낙태를 한 뒤 수자공양을 하고 낙태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다면 낙태는 더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자공양의 본래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다. 낙태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수자공양이라면 그 자체는 오히려 부도덕한 것이다.
아무리 절박한 이유라 하더라도 생명의 가치를 넘어서는 가치는 없다. 생명의 값은 결코 공리적인 계산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이것이 낙태에 관한 불교의 입장이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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