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키사고타미 비구니는 기원정사 인근의 비구니 처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탁발을 마치고 돌아와 한 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나타나 그녀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너는 왜 아들을 잃고 눈물을 흘리면서 시름하고 있는가? 혼자 나무 밑에 앉아 있지 말고 세속으로 나가 남자를 구해 보는 것이 어떤가?”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악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식의 모습을 잊고 나면 번민하거나 근심하지 않게 되리라. 모든 근심과 괴로움을 다 버리면 어둠은 사라지고 참된 진리를 얻게 되어 마침내 편안하고 고요하게 되리라.”
악마는 이 말을 듣고 더 이상의 유혹을 포기하고 사라졌다.
잡아함 45권 1200경 《구담미경(瞿曇彌經)》
이 경전의 주인공인 키사고타미는 매우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원래 출가하기 전에 한 아이의 어머니였다. 과부인 그녀는 외아들에 의지해 살았는데 그 아들이 그만 병이 들어 죽었다.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빠졌다. 그녀는 차마 아들의 시체를 화장하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샜다.
그 무렵 부처님은 사밧티에 머물고 계셨는데 키사고타미의 딱한 사연을 듣고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묘지로 찾아갔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어찌 몇 마디의 말로 달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처님은 그녀가 스스로 슬픔을 삭일 수 있도록 이런 제안을 했다.
“불쌍한 여인이여, 그렇게 슬퍼한다고 해도 한번 죽은 자식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래도 죽은 자식을 살리고 싶다니 내가 도와주겠다. 이렇게 한번 해보자. 마을로 돌아가 한 번도 상여가 나가지 않은 집에서 향불을 구해 오너라. 그러면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키사고타미는 어쩌면 자식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향불을 구하러 마을로 나갔다. 사람들은 그녀의 딱한 사연을 듣고 향불을 주려고 했지만 ‘상여가 나가지 않은 집’이라는 조건에 맞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성안을 돌아다녔으나 결국 향불을 구할 수 없었다. 키사고타미는 그제서야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며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키사고타미는 스스로 슬픔을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향불은 집집마다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여가 나가지 않은 집은 한 집도 없었습니다. 태어난 모든 것은 반드시 죽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니까 저의 슬픔도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잡비유경》 하권의 23번째 에피소드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여기서 부처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무상한 현실을 빨리 인정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냉정한 일이다. 그러나 최상의 해결책은 역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뿐이다.
천지가 열린 뒤로 한번도 죽지 않은 사람은 없다. 죽음과 불행이 나에게만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이요 집착이다. 그 집착이 오래가면 갈수록 고통의 강도는 더해진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고 평온을 얻고자 한다면 생사의 이치를 바로 인식하고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키사고타미는 이후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앞에서 인용한 경전은 출가한 그녀가 가끔은 아들 생각을 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악마의 존재는 내적 갈등을 상징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번뇌가 다 사라졌으므로 옛날처럼 비탄에 잠기는 일은 없었다. 다만 한 아이를 가졌다가 잃어버린 어머니의 애틋한 모정이 고요한 마음의 거울에 비쳐지고 있을 뿐이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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