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히말라야 부근 한 오두막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선정(禪定)에 들어서 이런 생각을 잠시 했다.
‘내가 왕이 되어 남을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도 없고, 남의 것을 빼앗거나 빼앗김을 당하는 일도 없으며, 남을 슬프게 할 일도 없고, 스스로 슬플 일도 없도록 한결같이 법대로 행하고 법이 아닌 것은 행하지 않는 통치를 하면 어떨까.’
부처님이 이런 생각을 하자 악마가 나타나 속삭였다.
“부처님이시여, 그렇게 하소서. 부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정치의 길에 나서기만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다시 생각했다.
‘아니다. 비록 저 히말라야만한 황금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그것을 변화시켜 배로 늘린다 하자. 그래도 사람의 욕심을 다 채우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금과 돌을 하나로 보아야 한다.’
악마는 더 이상의 유혹이 어렵다고 판단해 물러가고 말았다.
잡아함 39권 1098경 《작왕경(作王經)》
정치의 궁극적 이상은 인간의 행복에 있다. 이 점은 종교의 궁극적 목표가 인간의 행복에 있는 점과 일치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을 위해 정치가 추구하는 방법과, 종교가 추구하는 방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는 제도나 형식을 통해 인간의 평등한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그리고 질보다는 양적(量的) 가치에 우선을 둔다.
반면, 종교는 내면적 자기정화를 통해 인간을 해탈과 안온의 길로 이끌고자 한다. 그리고 양보다는 질적(質的) 가치에 더 높은 비중을 둔다. 그러므로 종교인이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부처님의 판단이다. 이런 생각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이 경이다.
이 경에서 악마가 유혹하는 장면은 부처님 내면의 심리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경을 찬찬히 읽어 보면 부처님은 잠시 당신이 직접 정치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부처님이 정치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그것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잘 알려진 대로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 비록 조그만 부족국가였지만 ‘카필라바스투’라고 하는 소왕국의 왕자였다. 출가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의 길을 걸어갔을 사람이다. 더욱이 부처님의 고향 카필라바스투는 나라의 힘이 약해 마가다의 젊은 왕 아자타삿투에 의해 부족이 전멸되는 비운을 겪고 있었다.
노년의 부처님에게 카필라바스투의 패망과 석가족의 멸망은 무척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 경은 부처님이 이때의 일로 잠시 동안 정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 다만 이 경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도 인간의 현세적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내 인간의 내면적 욕망을 다스리지 않는 한 투쟁과 우승열패가 해결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정치의 길보다 종교의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인간의 내면을 다스리는 일은 정치가 아니라 종교라는 판단이었던 것이다. 그 대신 부처님은 중생의 현실적 행복을 완성시켜 가는 방법으로 인민을 계몽하고 정치가를 훈육하는 간접적인 개입을 통해서였다. 직접적인 정치행위는 끝까지 사양했다.
부처님의 이 같은 태도는 종교인이 현실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많은 암시를 준다. 그것은 직접 정치가 아니라 바른 정치를 위한 종교적 가르침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현실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려 한다면 종교자의 길을 버리고 차라리 정치의 길로 나서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인간의 행복추구라는 점에서 정치와 종교는 목적이 같다. 하지만 종교는 보다 본질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완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정치와는 가는 길이 질적으로 다르다. 종교가 정치보다 우위에 서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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