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라자가하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서 설법을 했다.
“마가다국에 두 사람의 소치는 목자가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어리석고 한 사람은 지혜로웠다. 두 사람은 많은 소떼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우기(雨期)를 맞아 먹이가 풍부하고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갠지스 강을 건너고자 했다.
그런데 어리석은 목자는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을 잘 관찰하지도 않고, 물살이 빠르고 약한 곳, 깊고 낮은 곳을 살피지 않고, 한꺼번에 소떼를 몰아 강을 건너게 했다. 그의 소떼는 강물 한가운데 이르자 거센 물살에 휩쓸려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는 강물의 상태를 잘 살피지 않고 무모하게 도하를 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목자는 소떼를 강물에 밀어 넣기 전에 여러 가지 상태를 잘 관찰했다. 우선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을 잘 살펴 강폭이 좁으면서도 물살이 완만하고 깊지 않은 곳을 도하지점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소떼 가운데 비교적 힘이 세고 길이 잘 들여진 놈을 먼저 강물에 넣어 저쪽 언덕에 이르게 했다. 이어 암소를 건너게 한 뒤 다시 중간 소와 송아지들을 건너게 했다. 송아지들은 어미소를 보며 용기를 얻어 무사히 강을 건넜다.”
부처님은 숨을 한번 고르고 다시 말씀을 이어 나갔다.
“비구들이여, 종교인들도 이와 같다. 잘못된 믿음을 가진 종교인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잘 관찰하지도 않고 건너는 장소나 방법도 잘 모른다. 그들을 믿고 강을 건너려 하다가는 오히려 불행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바른 지혜를 가진 종교인은 이쪽 저쪽을 잘 살펴 건널 곳과 물살의 깊이를 헤아리고 적절한 도하방법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을 안전하게 행복의 언덕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종교인인가. 탐진치 삼독을 끊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잡아함 47권 1248경 《목우자경(牧牛者經)》
대중을 가르치고 이끄는 사람의 책무는 매우 크다. 그가 어떻게 말하고 이끄느냐가 대중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사람의 지도자가 판단을 잘못하면,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대중의 지도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해야 한다.
지도자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자질을 검증해야 하느냐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의 능력이란 일을 경험해 보기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의욕 같아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이 경에서 부처님이 예시한 조건에 우선 대입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첫째는 그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과 지혜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강물의 흐름을 전문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리 잘하고자 해도 그 분야의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하다. 둘째는 성실한가 하는 것이다. 능력이 부족하면 성실하기라도 해야 잘못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부적절하다. 셋째는 판단력과 용기다. 강물의 깊이와 물살의 세기를 판단했으면 주저없이 결행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다음은 책임감이다. 결과에 대해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은 무책임한 지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