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1-(5)
인과의 도리를 인간의 행위에 관련시켜 설명하면
업보(業報)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듯 인간의 의지적 작용[인]에 의해
그 결과[과]가 분명히 나타나므로,
이를, 인과의 법칙, 인과응보(因果應報),
혹은 인과율(因果律)이라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인과율은 주체적 인간[육근(六根)]과
객체적 대상[육경(六境)] 사이에서의 법칙이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성립하는 관계임은 물론입니다.
일체 정신이 있고 없는 물질계와 정신계를 아우르는 법칙이란 말입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일체 만물이라도
인연따라 이루어 지고 인연따라 멸하는 것입니다.
인연생 인연멸이기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닌 ,
고정된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공생(空生)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야심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는
일체제법의 실상을 공(空)이라 하는 연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인연의 법칙을 환하게 깨달으신 것입니다.
인연에 대해 확연하게 깨달았다는 말은
이 세상이 생긴 인과 연, 내가 태어나게 된 인과 연,
일체제법이 만들어지게 된 인과 연에 대해 확연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어디에서 왔는지, 또 죽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태초에 나온 자리가 어디인지 조차 확연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나온 자리를 안다는 것은 가야할 곳이 어딘지를 안다는 것이며
확연히 깨달았다는 말은 이미 그 본래자리로
돌아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궁금한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일체의 의혹이 다 풀릴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인연을 알고, 일체 모든 것에 확연하며, 본래 자리로 귀의 하였으니
괴로움이 모두 소멸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모르니 괴롭지 알면 괴롭지 않습니다.
일체 제법이 모두 공이며 인연생이므로
환영과 같고, 신기루와 같음을 알진데 어찌 환영에 얽매여
괴로워 할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말이지요.
그것이 연기를 통해 깨달으신 부처님의 마음 살림인 것입니다.
세상이 만들어 진 근원이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 양자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연기론, 인과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