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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가 법, 곧 일곱 가지 깨달음의 길에 대하여 법을 관찰하여 머문다. 그리하여 비구들이여, 비구가 어떻게 하여 법, 곧 일곱 가지 깨달음의 길에 대하여 법을 관찰하여 머무는가?
이에 비구들이여, 비구가 혹은 안으로 한결같은 생각으로 깨달음으로 가고 있으면, '나는 안으로 한결같은 생각으로 깨달음으로 가고 있다.'고 알고, 안으로 한결같은 생각으로 깨달음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깨달음으로 가는 생각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대로를 알아차리고, 또한 이미 생겨난 깨달음으로 가는 생각이 더욱 더해 가는 그대로를 알아차린다.
혹은 안으로 지혜로써 모든 법을 살펴서 선악을 가리면 '나는 안으로 지혜로써 모든 법을 살펴서 선악을 가리고 있다.'고 알고, 안으로 지혜로써 모든 법을 살펴서 선악을 가리고 않으면 '나는 안으로 지혜로써 모든 법을 살펴서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고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지혜로써 법을 살피는 생각이 더욱 더해 가는 그대로를 알아차린다.
혹은 안으로 용맹한 마음으로 정신하고 있으면 '나는 안으로 용맹한 마음으로 정진하고 있다.'고 알고, 안으로 용맹한 마음으로 정진하지 않으면 '나는 안으로 용맹한 마음으로 정진하고 있지 않다.'고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용맹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생각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대로를 알아차리고, 또한 이미 생겨난 용맹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생각이 더욱 더해 가는 그대로를 알아차린다.
혹은 마음에 좋은 법을 얻어서 깨달음으로 가고 있으면 '나는 안으로 마음에 좋은 법을 얻어서 깨달음으로 가고 있다.'고 알고, 안으로 마음에 좋은 법을 얻어서 깨달음으로 가지 않으면 '나는 안으로 마음에 좋은 법을 얻어 깨달음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마음의 좋은 법을 얻어 깨달음으로 가는 생각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대로를 알아차리고, 또한 이미 생겨난 마음에 좋은 법을 얻어 깨달음으로 가는 생각이 더욱 더해 가는 그대로를 알아차린다.
혹은 안으로 그릇된 견해나 번뇌를 끊고 올바르게 깨달음으로 가고 있으면 '나는 안으로 그릇된 견해나 번뇌를 끊고 올바르게 깨달음으로 가고 있다.'고 알고, 안으로 그릇된 견해나 번뇌를 끊고 올바르게 깨달음으로 가지 않으면 '나는 안으로 그릇된 견해나 번뇌를 끊고 올바르게 깨달음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그릇된 견해나 번뇌를 끊고 올바르게 깨달음으로 가는 생각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대로를 알아차리고, 또한 이미 생겨난 그릇된 견해나 번뇌를 끊고 깨달음으로 가는 생각이 더욱 더해 가는 그대로를 알아차린다.
혹은 안으로 삼매에 들어서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나는 안으로 삼매에 들어서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알고, 안으로 삼매에 들어서 망상을 일으키고 있으면 '나는 안으로 삼매에 들어서 망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삼매에 들어서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생각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대로를 알아차리고, 또한 이미 생겨나 삼매에 들어서 망상을 일으키고 있는 생각이 더욱 더해 가는 그대로를 알아차린다.
혹은 그릇된 것을 버리고 올바른 길로 가고 있으면 '나는 안으로 그릇됨을 버리고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알아차리고, 안으로 그릇됨을 버리고 올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나는 안으로 그릇됨을 버리고 올바른 길로 가고 있지 않다.'고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대로를 알아차리고, 또한 이미 생겨난 것이 더욱 더해 가는 그대로를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혹은 안으로 법에 대하여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밖으로 법에 대하여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안팎으로 법에 대하여 법을 관찰하여 머문다.
혹은 법에 대하여 생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법에 대하여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법에 대하여 생하고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문다.
또한 지식으로 안 것과 잊지 않고 기억되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법이 있다.'고 생각하면 의지함이 없이 머물고,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 곧 일곱 가지 깨달음의 길게 대하여 법을 관찰하여 머문다.
해설 한역(漢譯)으로 칠각지(七覺支), 혹은 칠각분(七覺分)이라고 하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길을 조목조목 살펴보기로 하자.
한결같이 생각으로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을 염각지sati sambo-jjbanga라고 한다. 불도를 닦음에 있어서 삼학(三學)이라 불리는 계(戒)·정(定)·혜(慧)를 한결같이 생각하여 자신의 마음가짐을 잘 관찰하여 살피는 것이다.
마음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니, 일어난 마음이 한결같은 삼학의 길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마음을 관찰하여 한결같이 머물러야 한다. 그러면 마음을 일으키기도 하고, 더욱 증진시킬 수도 있다.
옳고 그른 법을 가려서 선을 택하는 것은 깨달음으로 가는 조건이 된다. 이를 택법각지(擇法覺支)dbamma vicayasambojjbanga라고 한다. 깨달음을 얻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법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므로, 선배나 스승의 말을 듣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가장 확실하고 올바르다고 생각되면 더욱 굳게 하여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올바른 길도 변하기 마련이다. 길이 있으면 없어질 수도 있고, 또한 없다가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정해져 있는 절대적인 법은 없다 항상 상황에 따라서 지혜로 가장 좋은 길을 택하면 된다. 과거의 법을 고수하지도 말고 현재의 법에 집착하지도 말아야 한다. 지혜의 등불로 수처(數處)에 작주(作主)하는 일이 중요하다. 때에 따라서 응하고 장소에 따라서 가장 좋은 방편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자신이 택한 길이 어떠하며,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없어지는가를 관찰하여 그것과 하나가 됨으로써 그것에 끌리지 않아야 한다.
용맹스러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을 정진각지(精進覺支)viriya sambojjbanga라고 한다. 굳은 신념과 무서운 의지력으로 부지런히 애쓰는 것 또한 깨달음의 조건이다. 붓다도 오직 정진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었다. 꾸준한 이내와 부지런한 노력도 마음가짐에 달렸으니, 정진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관찰하여 게을러지지 않도록 애써야한다. 또한 쓸데없는 행위에 물들지 않고, 선법을 얻어서 기쁨으로 정진해야 한다. 여기서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야 한다. 죽음이 우리를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깨닫지 않고 죽으면 윤회의 고통을 면할 수가 없다. 깨달음으로 가겠다는 원(願)을 세우고 선법을 얻어 즐겁게 나아가면 게으러지지 않는다.
기쁨은 희각지(喜覺支)piti sambojjbanga라고 한다. 마음에 좋은 법을 얻어서 깨달음으로 가면 기쁨이 있다. 기쁨을 느끼면 수행에 진전이 있게 된다. 이때에는 얻는 법에 따라서 확신이 생기고,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자신이 생기게 된다. 이때의 기쁨은 상대적이고 세속적인 기쁨이 아니라 삼매에서 얻어진 기쁨이기 때문에 절대적이다. 법열(法悅)이란 이런 것이다. 기쁨이 생기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라지면 다시 일어나게 해야 한다. 기쁨이 크면 클수록, 오래가면 오래갈수록 그만큼 깨달음에 가까워진다.
기쁨에 차 깨달음의 길을 가면서 기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머물면 그 기쁨을 버릴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점점 성취되어 간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될 터이니, 이것이 바로 희각지의 법을 보는 길이다.
다섯 번째는 제각지(除覺支)이며, 식각분(息覺分)passadbi sambojjbanga이라고도 한다. 그릇됨과 번뇌를 제거하고 선법을 얻으면 걱정이 사라지고 몸이 쾌적해져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런 경험을 하면 이에 마음을 두어 그것을 관찰하면서 계속 지속시키려고 하게 된다. 마음과 몸이 평안하게 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삼매의 세계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스스로 잘 점검하면서 사라지면 생기게 하고 생기면 사라지지 않게 하여 법을 살려야 한다.
여섯 번째는 정각지(正覺支)samadbi sambojjbanga이다. 모든 일에 마음을 집중하여 그것과 하나가 되면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어진다. 외부의 자극도 받지 않고, 안으로는 망상도 일어나지 않게 되니, 이때 고요하고 순일한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삼매, 곧 정(定)이다. 이와 같은 삼매의 깊은 체험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깨달음이 솟아나는 샘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인은 반드시 이러한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번뇌와 망상이 끊어지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지혜와 자비로움으로 나타나며, 과거의 망상이 깨달음으로 바뀐다. 꽃의 굴은 벌에게는 꿀이 되지만 어리석은 다른 벌레에게는 꿀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깨달음은 다시 관찰하는 힘을 얻어야 한다. 이 힘은 삼매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런 관찰을 위빠싸나vipasyana라고한다. 위빠싸나 상태에서는 정신이 고요하며 항상 또렷하게 깨어 있다.
마지막으로 사각지(捨覺支), 또는 평등각지(平等覺支)upekkba sambojjbanga가 있다. 이것은 외부의 대상에 집착하던 마음과 과거의 그릇됨을 추억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위와 같은 깨달음의 길에 장애가 되는 것들은 모두 과감히 버려야 한다. 오직 깨달음의 길로만 정진하기 위해서는 위의 일곱 가지를 면밀히 살펴서 법에 따라 정법을 보고, 정법과 하나가 되는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법을 보고 법에 머무는 수행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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