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맛과 마음수행
첫맛의 알아차림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과거나 미래 지향적인 생각은 고정된 이미지입니다. ‘첫’이라는 의미는 바로 고정화되고 조작된 이미지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이 한 대상에 집중되었을 때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과거에 맛보았던 차맛을 가지고 현재의 맛과 비교하여 차맛을 본다면 그 차맛은 첫맛이 아니라 두 번째 맛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첫맛의 첫은 감정과 생각이 개입되지 않는 순수함을 말합니다. 따라서 차맛 변화의 흐름속에서 과거의 맛과 비교하지 않고 맛본다면 그 맛은 늘 첫맛입니다.
우리는 불안정하며 혼돈된 의식과 의식이 상대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덧없는 대상과 환상으로 인해 흐트러지고 교란된 마음에서 벗어나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고요한 마음이란 어느 특정한 시기나 제한된 대상만을 향해 방향지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방향과 시점을 통합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마음상태입니다.
첫맛이라는 ‘한 점에 집중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특정한 대상을 향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오목렌즈를 통과할 때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진 태양의 빛처럼, 혹은 산길을 홀로 걸으며 온 사위의 고요함을 느끼듯이, 여러 생각의 타래를 적정(寂靜)으로 통합하고 무화(無化)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렌즈의 초점이 분산된 빛들로 하여금 하나의 단일한 점에서 태양의 완전한 모습을 재창조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초점은 비록 공간을 점유하지 않지만 그 초점을 통과하는 각 빛들이 지닌 고요함의 무한성을 나타냅니다.
첫 맛을 느끼고 맛의 변화를 알게 될 때 마음은 하나로 집중되어 들뜨지 않고 차분해집니다. 우리의 의식을 한 점에 집중하는 것은 렌즈의 초점과도 유사합니다. 한 점에 집중할 때의 의식은 다른 대상을 배제시킬 뿐만 아니라 대상을 따라가지 않아 의식 자체에 머물러 일념(一念)의 앎으로 통합됩니다.
집중으로 통합된 일념(一念)의 앎은 마치 거울에 비친 상(相)을 통해 거울의 존재를 알아차리듯, 보이는 대상(객체)을 통해 바라보는 주체자를 인식하며 일념(一念)의 인식주체인 의식 자체에도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관찰자는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거나 몰두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앎만이 있을 뿐,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의지력, 지적(知的) 활동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대상에 이끌리고 집착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의 대상에 관심을 집중시키거나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상물의 다양성과 감각적 인상들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하나의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내부의 모든 방해물들을 제거하는 데 일단 성공하면, 그 다음엔 관심을 집중시켰던 하나의 대상물조차 버릴 수 있게 됩니다.
말하자면 차수행자가 차맛(대상)과 하나가 되는 순간, 대상으로서의 차맛(대상물)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차맛의 형태와 대상에 의해, 또는 목표와 의도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 상태인 직관적인 수용성과 주객 자타의 상호소통이 이루어져, 어떤 것에도 묶임이 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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