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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성제(四聖諦). 8정도
4성제: 苦 . 集 . 滅 . 道
사성제란 네 개의 성스러운 진리를 말하며 대체로 12연기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것으로 원시불교의 대강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을 ‘최승법설’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석존 최초의 설법(곧 초전법륜)에서 설한 것이다.
도를 배우고 사성제를 알면, 지혜의 등불을 얻고, 무지의 어둠은 사라진다.
부처님은 다만 이 사성제를 보임으로써 사람들을 이끄셨다. 가르침을 바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 사성제에 의해서 덧없는 이 세상에서 진실한 깨달음을 열고 이 세상 사람의 안내인이 되고 의지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사성제가 밝혀지면 모든 번뇌의 근원인 무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다만 이 사성제를 보임으로써 사람들을 이끄셨다. 가르침을 바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 사성제에 의해서 덧없는 이 세상에서 진실한 깨달음을 열고 이 세상 사람의 안내인이 되고 의지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사성제가 밝혀지면 모든 번뇌의 근원인 무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인간의 세계는 괴로움으로 가득 차있다. 낳는 것도 괴로움이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도 괴로움이다. 미워하는 것과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또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진실로 집착을 떠나지 않은 인생은 모두 괴로움이다.
그것은 ‘미혹의 이 세상은 다 苦이다’고하는 고(苦)제이다.
이 인생의 괴로움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붙어 있는 번뇌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번뇌의 근원을 추구하면 나면서 갖추고 있는 격한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와 같은 욕망은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을 근본으로 하고 있으며 듣고 보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욕망이다. 또 바꾸어서 죽음까지도 바라게 된다. 그것을 ‘고의 인은 구하고 탐하여도 그치지 않는 집착이다’라고 하는 집(集)제라 한다.
이 번뇌의 근본을 남김없이 멸하여 모든 집착을 여의면 인간의 괴로움이 없어진다. 그것을 괴로움을 멸하는 진리 멸(滅)제라 한다.
이 괴로움을 멸하는 경지에 들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의 바른 도(八正道)를 닦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여덟 가지의 욕망을 멸하기 위한 바른 도의 진리를 도(道)제라고 한다.
苦聖諦當知
苦集聖諦當斷
苦滅聖諦當證
苦滅道跡聖諦當修
괴로움의 진리 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발생의 진리 는 마땅히 끊어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 는 마땅히 증득하여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 는 마땅히 닦아야 한다.
사성제(四聖諦)
제(諦)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진실, 사실, 진리 등을 가리키는데 쓰이며, 동시에 엄숙 한 단어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라는 말이다. 즉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네 가지를 설하여 이것을 신성한 종교적 진리로 삼고 있는 데에서 사성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치 의사가 병을 치료함에 있어 병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원인을 알아 낸 다음, 건강한 상태의 정상적인 표준을 알아서 거기에 맞는 치료 방법을 강구하듯이, '고→ 집→멸'을 알고 멸에 이르는 바른길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1) 고성제(苦聖諦)
우리 인생의 현실은 고(苦)라는 것으로 경전은 8가지 괴로움(八苦)을 들고 있다.
'어떤 것이 고성제인가?'
생(生)하고, 늙고, 병들어, 죽고, 미운 것과 만나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취온(五取蘊, 나라고 取着된 몸과 마음)은 괴로움이다.
불교에서 '괴롭다'라고 말할 때, 그것이 인생에서의 행복을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 다. 부처님은 일반적으로 물질적 정신적인 여러 형태의 행복을 인정하였다. 그러한 행복을 인정하고 찬양한 후, 그것들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쉽다'라고 하였다. 즉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롭다는 속성을 가진 의미에서 괴로움인 것이다.
(2) 집성제(集聖諦)
괴로움의 집(苦集)이라는 성제는 위에서 말한 괴로움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되는가의 이유를 밝혀주고 있다. 집(集)아리는 술어는 원래 '결합하여 일어난다'는 뜻으로 한자의 뜻대로 '모은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집기(集起)라고 하면 뜻이 더 잘 통할 것이다.
이는 괴로움은 연기(緣起)한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가리킨 것이다. 경에서는 집성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그것(集)은 재생(再生)의 원인이 되는 갈애로서 격렬한 탐욕에 묶여 있으며, 여기저기 새로운 기쁨을 찾아 나선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욕애(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 유애(존재 그 자체와 형성에 대한 갈망), 무유애(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등이다'
인간에게 온갖 괴로움과 윤회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탐욕 욕망 갈애 열망 등이다. 그러나 연기법에서 보았듯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절대적인 원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고의 근본 원인으로 가주되고 있는 탐욕도 다른 것, 즉 느낌(受)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이 느낌은 접촉(觸)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어 이러한 과정이 반복적으로 순환되면서, 결국 연기적 의미의 '집 (集, 緣起)'이 되는 것이다.
(3) 멸성제(滅聖諦)
괴로움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집제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개념이다.
고의 원인이 애탐 등의 집기라면 무명의 멸진을 통해 우리는 그 괴로움 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가 있을 것이다.
괴로움의 멸이라는 성제는 우리에게 이 명백한 사실을 깨우쳐주고, 동시에 괴로움이 사라진 그러한 종교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지를 원적, 혹은 열반이라고 하여,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생사를 초월하여 불생불명의 진리를 체득한 경지를 말한 것이다.
(4) 도성제 (道聖諦)
도제는 열반에 이르는 방법 곧 실천하는 수단을 말한다.
그 방법은 여덟 가지의 수행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가 곧 팔정도의 수행방법이다. 괴로움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도성제는 위에서 제시된 멸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즉 고의 멸진에 이르는 구체적인 실천항목인 것이다. 종교의 생명은 말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데 있다는 말이 있다. 걸어간다는 것은 곧 실천수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성제의 구체적인 실천 항목으로서는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길'이라 불리우는 팔정도가 있다.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여덟 가지 실천사항을 가리킨다.
사성제는 이처럼 고 집 멸 도 네 가지 진리이다.
이 진리는 고제 집제를 유전(流轉)하는 인과로 나타내고 멸제 도제는 깨달음을 위한 인과로 나타낸다. 곧 고 집은 세간의 인과 속에서 흘러가는 것이고, 멸 도는 세간의 인과를 초월하여 깨달음을 얻는 행위이다.
8정도(八正道)
팔정도는 팔정도지(八正道支) 또는 팔정도분(八正道分)이라고도 합니다. 불교를 실천 수행하는 중요한 종목을 여덟가지로 나눈 것인데 팔정도는 이 수행 방법이 중정(中正) 중도(中道)의 정도로서 완전한 수행 방법임 으로 성인의 도로 나타내어 성도(聖道)라기도 합니다.
(1) 정견 (正見)
정견은 [바로봄]을 뜻하며 곧 올바른 견해입니다.
이 정견은 유무(有無)의 편견을 벗어난 정중(正中)의 견해입니다. 곧 사(사)와 정(正)을 분별하는 견해이고 바른 견해로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도 하며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2) 정사유(正思惟)
정사유는 올바른 생각을 뜻하며 자신의 입장을 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르게 사유한다. 바르게 마음먹는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3) 정어 (正語)
올바른 말, 곧 온갖 망어(妄語) 사어(사語)등을 하지 않는 말이 정어입니다.
올바른 생각에 의해 하는 말이고 항상 바른 생각과 바른 말을 하여 구업을 짖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합니다. 이는 '진실되고 올바른 언어생활'을 말합니다.
즉 거짓말, 꾸며대는 말, 서로 이간시키는 말, 남을 성나게 하는 말 등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입니다.
(4) 정업 (正業)
올바른 행위, 살생이나 도둑질 따위의 악한 행위를 하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인 것입니다.
(5) 정명 (正命)
'올바른 생활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바른 견해에 입각한 전체적인 생활에 있어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를 구하는 것으로 남과 나를 다같이 이롭게 하는 바른 직업을 갖는 것도 그 뜻의 하나입니다.
(6) 정정진 (正精進)
올바른 노력, 한 마음으로 노력해 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곧 노력으로 인하여 아직 발생하지 아니한 악을 나지 못하게 하며, 나지 아니한 선을 발생하게 하는 일이며, 옳은 일에는 물러섬이 없고 밀고 나가는 정열과 용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는 바로 불자의 구도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7) 정념(正念)
올바른 정신과 생각, 사념을 버리고 항상 향상을 위하여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하며 바른 생각을 말합니다.
또한 '바르게 기억하는 것'으로 생각할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를 항상 명심하고 기억하여 다른 잡념이 일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사유와 함께 내면적인 마음의 기초를 확고하게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 마음속에 정견 (正見)이 가득차고 항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8) 정정 (正定)
'바르게 집중(集中)'한다는 말로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인데 '삼매(三昧)'라는 음역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행법이기도 합니다. 이는 정념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서, 정념의 성취로 몸과 마음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지극히 잘 조화되고 통일된 마음에 온갖 번뇌와 어지러운 대상이 모두 쉬게 되면서 마치 가을 하늘에 지혜의 달이 뚜렷이 빛나는 경지를 뜻합니다.
8정도 |
3학 | ||
1. 올바른 견해(Right View: Sammā diṭṭhi: 正見) |
지혜(慧) | ||
2. 올바른 의도(Right Intention: Sammā saṅkappa: 正思惟) | |||
3. 올바른 말(Right Speech: Sammā vācā: 正語) |
지계(戒) | ||
4, 올바른 행동(Right Action: Sammā kammanta: 正業) | |||
5. 올바른 생계(Right Livelihood: Sammā ājiva: 正命) | |||
6. 올바른 정진(Right Effort: Sammā vāyāma: 正精進) | 선정(定) | ||
7. 올바른 주의력(Right Mindfulness: Sammā sati: 正念 ) | |||
8. 올바른 집중력(Right Concentration: Sammā samādhi: 正定) |
12연기(緣起)
초기경전에는 '연기법'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연기의 형식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완성된 모습을 갖춘 연기가 12연기이다. 이것을 때로는 12인연(因緣)이라 부르기도 한다.12연기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이다.
12연기로써 때로는 생멸 변화하는 세계와 인생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 교리의 근본 목적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인 '고(苦)'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또 어떻게 해서 사라지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12연기를 관찰하는 방법에는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있다.
순관이란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행이 있고, 행(行)을 조건으로 해서 식(識)이 있고, 식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名色)이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가 있다."라고 관찰하는 것이다.
마지막 항목인 '노사(老死)'는 다른 말로 '고(苦)'라고 할 수 있다.
즉 순관은 고의 발생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보는 연기를 역시 유전연기(流轉緣起)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존재가 무명과 욕망 등으로 말미암아 윤회의 세계에서 생사를 되풀이[流轉] 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연기(緣起)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역관이란 고가 소멸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식이 소멸하고, 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명색이 소멸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노사의 소멸까지를 설명한다.이렇게 보는 연기를 역시 환멸연기(還滅緣起)라고도 한다. 그것은 존재가 무명과 욕망을 없앰으로서 생사유전(生死流轉)의 세계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돌아가는[還滅] 과정을 설명하는 연기이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에서는 많은 곳에서 12연기를 말하고 있지만 그 설명은 한결 같지 않다. 자세하지도 않고 일관되어 있지도 않다. 특히 각 항목[支]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하는 곳은 없다. 따라서 여러 경전의 설명을 참고해서 12연기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1). 무명(無明: avidya)
무명이란 글자 그대로 '명(明:智慧)이 없다'는 말이다. 올바른 법[正法], 즉 진리에 대한 무지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연기의 이치에 대한 무지이고,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무지이다.
고(苦)는 진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기므로, 무명은 모든 고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이다.
2).행(行: samskara)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행이 있다. 행이란 행위, 즉 업(業:karman)을 가리킨다.
행에는 몸으로 짓는 신행(身行=身業)과 언어로 짓는 구행(口行=口業)과 마음으로 짓는 의행(意行=意業)등 3행이 있다. 행(行=業)은 진리에 대한 무지, 즉 무명 때문에 짓게 되고, 그것을 지은 존재의 내부에 반드시 잠재적인 힘[潛在力]의 형태로 남게된다.
3).식(識: vijnana)
행(行)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
식은 인식작용으로서,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등 6식이 있다. 식이란 표면적인 의식뿐 아니라 잠재의식도 포함한다. 꽃을 볼 경우 꽃이라는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전에 꽃을 본 경험이 잠재의식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꽃을 보았다'는 '과거의 경험'은 과거의 행(위)이다.
따라서 과거의 행(行)이 없다면 현재의 인식작용이 일어 날 수 없다. 그래서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고하는 것이다.
4).명색(名色: namarupa)
식(識)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이 있다.
명(名:nama)이란 정신적인 것을, 그리고 색(色:rupa)이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모두 인식의 대상이다.
식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명색[對象=境]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라고 하지 않고, "식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항인 6입(六入)과 함께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5). 6입(六入, 또는 六處: sadayatana)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6입(入)이 있다.
6입이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마음(意)등의 6 가지의 감각기관, 즉 6근(根)이다. 이것은 인식 기관이다.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6입이 있다."라는 것을 좀 더 풀이해서 말하면 "인식의 대상[境]인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인식의 기관[根]인 육입이 있다."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여기에서 식, 명색, 6입 등 3항목[三支]은, 시간적으로 선후의 관계로 보지 말고 동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식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인 명색과 그것을 인식 할 수 있는 기관인 6입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식이 행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식을 행 다음에 놓은 것이다.
6).촉(觸: sparsa)
6입을 조건으로 해서 촉이 있다.
촉이란 지각(知覺)을 일으키는 일종의 '심적(心的)인 힘'이다. 촉에도 눈, 귀, 코, 혀,몸,마음등 6개의 감각기관에 의한 6촉(六觸)이 있다.
촉은 6입에 의해서 생긴다고 되어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6입만에 의해서가 아니고 식(識), 명색[境], 6입[根]등 3요소가 함께 함으로서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수성유경(手聲喩經)에서는 "(根.境.識등) 3요소가 모여서 촉을 만든다"[三事和合成觸]라고 하는 것이다.
7).수(受: vedana)
촉을 조건으로 해서 수(受)가 있다.
수란 즐거운 감정[樂受],괴로운 감정[苦受],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감정[不苦不樂受]과 그 감수(感受)작용을 말한다. 감각기관[根]과, 그 대상[境], 그리고 인식작용[識]등 3 요소가 만날 때 거기에서 지각(知覺)을 일으키는 '심적인 힘'[觸]이 생기게 되고, 그 다음 수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는 촉을 조건으로 해서 있다."고 하는 것이다.
8).애(愛: trisna)
수를 조건으로 해서 애가 있다.
애란 갈애(渴愛)로서 욕망을 말한다. 좋아하는 것을 만나거나 싫어하는 것을 만나게 되면 그것에 애착심이나 증오심을 일으키게 된다. 증오심 역시 애(愛)의 일종이다. 고.낙등의 감수작용(感受作用)이 심하면 심할 수록 거기에서 일어나는 애착심과 증오심도 커진다. 그래서 "수를 조건으로 해서 애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9).취(取: upadana)
애를 조건으로 해서 취가 있다.
취는 취착(取着)의 의미로서 올바르지 못한 집착이다. 맹목적인 애증(愛憎)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애착을 가리킨다. 어떤 대상에 대해 욕망이 생기면 뒤따라 그것에 집착심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애를 조건으로 해서 취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10).유(有 : bhava)
취를 조건으로 해서 유가 있다.
유(有)란 존재를 말한다. 초기 경전에서는 취를 조건으로 해서 어떻게 존재가 있게 되는 가를 설명해 놓은 곳을 찾기는 어렵다.
업설(業說)에 의하면, 집착[取]때문에 업(業)이 만들어지고, 업은 생(生)을 있게 하는 조건이 된다. 따라서 '유'를 '업'이라고 본다면, "취를 조건으로해서 유가 있다"라는 말은 "집착을 조건으로 해서 업이 있다."라는 것이 된다. 두 번째 항목인 '행'을 무명으로 인해 생기는 소극적인 업이라고 한다면, 유는 '애'와 '취'를 조건으로 해서 생기는 적극적인 업이라고 할 수 있다.
11).생(生: jati)
유를 조건으로 해서 생이 있다.
유(有), 즉 업(業)은 생을 있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유에 의해서 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12).노사(老死: jara-marana)와 우비고수뇌(憂悲苦愁惱)
생을 조건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등 여러가지 고가 있다.
생이 있게 되면 필연적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고, 즉 근심(憂),비애(悲), 고통(苦), 번뇌(愁), 번민(惱)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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