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90. 석가부처님께서 다른 부처님께 공양을 행하시다.

수선님 2018. 12. 23. 13:01

[經] 그때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천 잎새의 금빛 연꽃을 받아서는 동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의 부처님께 흩뜨리셨다.

 

[論] [문] 부처님을 이길 이가 없거늘 지금 어찌하여 동쪽을 향해 여러 부처님께 꽃을 흩뜨려 공양하는가?

 

부처님께서도 처음 도를 얻으시고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사람에게 높일 대상이 없으면 사업을 이를 수 없나니, 지금 시방의 천지 사이에 누구를 높이 섬겨야 할까. 내가 스승으로 삼아 섬기리라” 하셨다.

 

이때 범천왕 등의 하늘의 무리가 부처님께 아뢰기를 “부처님은 위가 없으시고, 부처님을 지나실 분이 없으십니다” 했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천안으로써 3세와 시방의 천지를 관찰하였으나 아무도 부처님을 능가할 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스스로 생각하셨다.

 

“나는 마하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스스로 부처가 되었으니, 그것이 내가 높일 바이며, 나의 스승이다.

 나는 이 법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높이어 섬기리라.”

 

비유하건대 마치 호견(好堅)이라는 나무와도 같다.

이 나무는 땅속에서 백 년 동안 가지와 잎을 갖추고 있다가 어느 날 돋아나니 높이가 백 길이나 되었다.

 

이 나무는 돋아난 뒤에 더 큰 나무를 구하여 자기의 몸을 가리려 했다.

 

이때 숲 속에 있던 신이 호견나무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그대보다 큰 나무가 없다. 나무들은 모두 그대의 그늘 가운데 들리라.”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보살의 지위에 있다가 태어나서는 하루 동안 보리수 밑의 금강좌에 앉아서 여실하게 온갖 법의 모습을 아시고는 불도를 이루셨다.

 

이때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누구를 높이 섬기어 스승으로 삼아야 하며, 받들어 섬기어 공경하고 공양해야 하는가’ 하시니, 범천왕 등의 하늘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부처님은 위가 없으시고 부처님을 지날 이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어찌하여 다시 동쪽의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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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부처님이 비록 위가 없으시고 3세와 시방의 천지 가운데 부처님을 지날 이가 없으나 공양을 행하셨다.

 

공양에는 상․중․하의 등급이 있다.

 

자기보다 낮은 이에게 공양하는 것을 하등의 공양이라 하고,

자기보다 훌륭한 이에게 공양하는 것을 상등의 공양이라 하고,

자기와 동등한 이에게 공양하는 것을 중등의 공양이라 한다.

 

부처님들께 공양하는 것은 중등의 공양이 된다.

 

마치 대애도(大愛道)19) 비구니의 경우와 같으니,

그녀는 5백 명의 아라한 비구니들과 함께 하룻동안에 일시에 열반에 들었다.

 

이때 세 가지 도를 얻은 우바새(優婆塞)들은 5백 개의 상여[床]를 들었으며,

사천왕은 부처님의 유모인 대애도의 상여를 들었다.

 

부처님은 앞에서 향로를 들고 향을 사루어 공양하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도 내가 유모의 시신[身]에 공양하는 일을 돕거라.”

 

이때 아라한 비구들이 제각기 신통력으로 마리산(摩梨山)20) 위로 가서는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 장작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부처님을 도와 불을 지폈으니, 이것이 하등의 공양이다.

 

이런 까닭에 비록 과보를 구하지는 않으면서도 동등한 공양을 행하셨다.

 

또한 부처님만이 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으니,

다른 이는 부처님의 위덕을 알지 못한다.

 

이런 게송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야
  지혜로운 사람을 공경하니
  지혜롭게 토론하면
  지혜로운 이가 기뻐한다.
  
  지혜로운 사람만이
  
  
  
19) 부처님의 양모(養母)로서, 구담니(舊曇尼)라고도 한다.
20) 범어로는 Malaya. 인도의 남쪽 지방에 있는 전단향의 주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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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로움을 아나니
  마치 뱀이 뱀의 발을
  아는 것 같아라.
  
이런 까닭에 일체지이신 부처님들은 능히 일체지를 공양하신다.

 

또한 이 시방의 부처님은 세세(世世)에 석가모니부처님을 권하고 도왔다.

 

7주(住)21)의 보살은 모든 법이 공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고 관하며,

이렇게 관하고는 일체의 세계에 대해 마음이 애착되지 않으며, 6바라밀을 버리고 열반에 들고자 했다.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꿈에서 뗏목을 만들어 큰 강을 건너는데,

손발이 피로해져 싫어하는 생각을 내다가 강 복판에 이르러 꿈을 깨었다.

 

꿈을 깨고는 생각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강이어야 건널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는 애쓰던 생각을 모두 놓아버렸다.

 

보살도 이과 같아서 7주(住)에 이르러 무생법인22)을 얻으면 심행(心行)이 모두 그쳐서 열반에 들고자 한다.

 

 

그때에 시방의 부처님들이 모두 광명을 놓아 보살의 몸을 비추고, 오른손으로 그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런 마음을 내지 말아라.

그대는 마땅히 그대의 본원을 기억해 중생을 제도하고자 원해야 하리라.

 

그대는 비록 공한 줄을 알지만, 중생들은 공을 모른다.

그대는 모든 공덕을 모아서 중생들을 교화하여 함께 열반에 들어야 하느니라.

 

그대는 아직도 금빛 나는 몸과 32상23)과 80가지 상호[隨形好]24)와 한량없는 광명과

32가지 작용[業]을 얻지 못했느니라.

 

그대는 지금 겨우 무생의 법문 하나만을 얻었으니, 너무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라.”

 

 

이때에 보살은 부처님들의 가르침을 듣고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 6바라밀을 행하며,

그로써 중생들을 제도했다.

  
  
  
21) 보살 12위, 혹은 10위 가운데 불퇴위(不退位)의 경지.
22) 범어로는 anutpattika dharma-kṣānti. 일체법의 생함이 없는 이치를 인정하고 안주함. 곧 일체법이 불생불멸임을 확신하는 것.
23) 범어로는 dvatriṃśa-lakṣaṇa.
24) 범어로는 aśityanuvyañj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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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처음 불도를 얻을 때에 이러한 도움을 받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얻으실 때에 스스로 생각하셨다.

“이 법은 매우 깊은데 중생들은 어리석고, 복도 얇으며,

나도 5탁악세[五惡世]25)에 태어났으니, 어찌하여야 좋을까.”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셨다.

“나는 한 법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다시 나눈 것을 3승(乘)으로 만들어 그로써 중생들을 교화하리라.”

 

이때에 시방의 부처님들이 모두 광명을 놓아 찬탄했다.

“우리들도 역시 5탁악세에 태어났으니, 한 법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그 각각에 맞게 중생을 제도하리라.”

 

이때 부처님께서 시방 부처님들의 말씀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나무불(南無佛)26)을 외쳤다.

 

이와 같이 시방의 부처님이 곳곳에서 권하고 도우셔서 큰 이익을 지어 주셨으므로

은혜의 소중함을 알기 위하여 꽃으로써 시방의 부처님들께 공양하셨다.

 

이 꽃은 최상의 복덕이어서 이 공덕을 지날 것이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꽃은 보적부처님의 공덕의 힘에서 생긴 것으로 물에서 생긴 것이 아니며,

10주(住) 지위의 법신 보살인 보명보살이 이 꽃을 보내와서 석가모니부처님께 바쳤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시방의 부처님이 으뜸가는 복전임을 아시는 까닭에 공양하셨다.

그 복덕은 몇 배나 많으니, 왜냐하면 부처님 스스로 부처님께 공양하셨기 때문이다.

 

 

불법에는 네 가지 보시가 있으니,

 

첫째는 베푸는 이가 청정하고 받는 이가 부정함이요,

둘째는 베푸는 이가 부정하고 받는 이가 청정함이요,

셋째는 베푸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청정함이요,

넷째는 베푸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부정함이다.

  
  
  
25) 5탁악세에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
26) 범어로는 Namo buddhā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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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쪽의 여러 부처님들께 보시함은 둘이 모두 청정하니, 이 복이 가장 크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몸소 시방의 부처님께 공양하셨다.

 

[문] 일체의 성인은 과보를 받지 않고 뒤에 다시 태어나지도 않거늘

어찌하여 말하기를 “이 보시의 복덕이 가장 크다” 하는가?

 

[답] 이 복은 비록 사람으로서 받는 자가 없으나 그 모습이 원래 크다.

어떤 사람이 받기만 한다면 그 갚음은 한량이 없을 것이다.

 

성인들은 만들어진 법[有爲法]은 모두 무상하고 공함을 아는 까닭에 버리고 열반에 들어가니,

이 복 역시 버린다.

 

비유하건대 달구어진 쇳덩이는 비록 눈으로 보기에는 좋으나 손으로 건드리지 못하나니,

사람의 손을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종기를 앓으면 약을 발라야 하지만 종기가 없으면 약을 쓸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주림․목마름․추위․더위에 시달림이란 마치 종기가 난 것 같으니,

옷과 음식과 따뜻함으로써 쾌적하게 하기를 마치 종기에 약을 바르듯 해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약을 탐내어 종기를 제거할 생각을 않거니와 만일 종기가 없다면 약은 필요가 없다.

 

부처님들은 몸으로써 종기를 삼나니, 몸이라는 종기를 버렸기 때문에 과보인 약을 받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비록 큰 복이 있으나 갚음은 받지 않는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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