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95. 부처의 법신(空)을 관하라. 이것이 최고의 공양이다.

수선님 2018. 12. 30. 12:52

[문] 만약에 그렇다면 어찌하여 처음에 사리불에게 조금만 말씀하시고 나중에 수보리에게는 많이 말씀하시는가? 만일 지혜가 제일이기 때문이라면 응당 그에게 많이 말씀하셨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다시 수보리에게도 말씀하셨는가?

 

[답] 사리불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요,

수보리는 제자들 가운데서 무쟁삼매(無諍三昧)9)를 얻은 것으로 으뜸이다.

 

무쟁삼매의 특징은 항상 중생을 관찰하여 마음에 번뇌를 내지 않게 하고 가엾이 여기는 행을 많이 하는 것이요, 보살들은 큰 서원을 세워 중생을 제도한다.

 

곧 가엾이 여기는 모습이 같으므로 수보리에게 명하여 말하라 하신 것이다.

 

 

또한 이 수보리는 공삼매(空三昧)를 행하기 좋아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10)에서 여름안거를 보내 법랍[歲]을 하나 더하신 뒤 염부제에 내려오셨는데,

이때 수보리가 석굴 속에 있으면서 생각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오셨으니, 내가 부처님께 가야 하는가, 가지 말아야 하는가?”

 

또한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지혜의 눈으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관찰하면 그것이 부처님을 뵙는 가운데서 으뜸이다’ 하셨다.”

 

이때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에 염부제 안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하늘 무리가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은 또한 하늘 무리를 보았다.

 

좌중(座中)에 부처님과 전륜성왕과 하늘 무리로 이루어진 대중이 있었는데,

그 모임은 매우 장엄스러워서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9) 범어로는 araṇā-vihāriṇāṃagryaḥ. 공도리에 안주해서 다른 이와 쟁론에 빠지지 않는 마음상태(삼매)이다.
10) 범어로는 Trāyastriṃśa. 삼십삼천이라고도 한다. 욕망으로 이루어진 세계인 6욕천 가운데 두 번째 천으로 수메루산 위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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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수보리가 생각했다.

 

“지금 이 대중이 아무리 뛰어나게 수승하나 형세가 오래 머물 수 없으니,

닳아 없어지는 법으로서 모두가 무상(無常)으로 돌아가리라.”

 

이러한 무상관의 초문(初門)에 의하여 수보리는 모든 법은 공하여 있지 않는 것임을 모두 알았고,

이러한 관찰을 행하자 곧 도를 증득했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먼저 부처님을 뵙고 예배․공양하고자 했는데, 화색(華色)11)이라는 비구니가 여자라는 불편함[惡]을 버리기 위해 곧 전륜성왕과 7보로 장엄한 천 명의 태자로 변화하니, 사람들이 보자 모두 일어나 자리를 피해 떠나버렸다.

 

변화한 왕이 부처님께 가서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 비구니로서는 최초로 부처님께 예배를 했다.

부처님께서 비구니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처음 예배한 것이 아니라 수보리가 최초에 예배하였느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는 모든 법이 공함을 관찰하였으니, 이는 부처의 법신을 본 것이며 참 공양을 얻은 것이다. 이는 공양 가운데 으뜸이니, 산 육신에다 예경한다고 해서 공양이 되는 것이 아니니라.”

 

이런 까닭에 “수보리는 항상 공삼매를 관하여 반야바라밀다의 공한 모습과 상응한다”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반야바라밀다를 말하게 하셨다.

 

또한 중생들은 아라한은 모든 누(漏)가 이미 멸하고 다했음을 믿고 공경하는 까닭에 그에게 명해 말하게 하셨으니, 대중이 맑은 믿음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보살들은 누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만일 그들로써 알리고자[證] 한다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사리불과 수보리로 하여금 함께 반야바라밀을 설하게 하셨다.

 

[문] 어째서 사리불이라 하는가?

부모가 지어 주신 이름인가, 아니면 수행의 공덕에 의해서 지어진 이름인가?

  
  
  
11) 범어로는 Utpalavarṇ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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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이는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이다. 염부제에서 제일 안락한 곳에 마가타국(摩伽陀國)이 있고 그 안에 왕사(王舍)라고 하는 큰 성이 있으니, 왕의 이름은 빈바사라(頻婆娑羅)12)이다.

 

마타라(摩陀羅)13)라는 바라문출신의 논사가 있었는데,

왕은 그 사람이 토론에 능하다 하여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읍을 주었다.

 

마타라는 줄곧 가정에 머물렀는데, 아내가 딸을 하나 낳았다.

눈이 사리새[舍利]를 닮았으므로 그 딸을 사리14)라 불렀다.

 

다음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무릎 뼈가 굵고 크므로

구치라(拘郗羅)15)[진나라 말로는 큰 무릎(大膝)이다.]라 했다.

 

이 마타라 바라문은 줄곧 집에 있으면서 아들딸을 기르며,

배우던 경서는 모두 폐지하여 잊고 다시 새로운 것을 익히지 않았다.

 

이때 남천축에 한 바라문 출신의 큰 논사가 있었으니, 이름이 제사(提舍)16)였다.

 

그는 열여덟 가지 큰 경[十八大經]을 모두 통달했는데

왕사성에 들어갈 때엔 머리에는 불을 이고 구리[銅]로 배를 감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내가 배운 경서가 매우 많아서 배가 찢어질까 걱정이다. 그러므로 감싼다”라고 대답했다. “머리에는 어찌하여 불을 이고 가는가?”라고 물으면, “매우 어둡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해가 떠서 밝은데 어찌하여 어둡다 하는가?”

 

그가 대답했다.

“어두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덮인 것이다. 지금은 비록 해의 광명이 있으나 어리석음 때문에 오히려 어둡다.”

 

사람들이 말했다.

“그대가 아직 바라문인 마타라(摩陀羅)를 만나지 못했구나. 그대가 그를 본다면 배는 쭈그러지고 총명함[明]도 어두워지리라.”
  
  
  
12) 범어로는 Bimbisāra.
13) 범어로는 Māṭhala. 사리불의 조부(祖父)이다.
14) 범어로는 Śārī.
15) 범어로는 Mahākauṣṭhila.
16) 범어로는 Tiṣya. 사리불의 아버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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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라문은 즉시 북 있는 곳으로 가서 논의를 청하는 북을 쳤다.

 

왕이 북소리를 듣고는 “누구의 짓이냐”고 물으니, 신하들이 대답했다.

“남천축에 한 바라운이 있어 이름이 제사인데 큰 논사입니다. 토론할 대상을 구하기 위해 토론을 알리는 북을 쳤습니다.”

 

왕이 매우 기뻐하면서 곧 대중을 모아놓고 말했다.

“능히 힐난[難]할 자가 있다면 그와 토론해 보거라.”

 

마타라는 이 말을 듣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내가 오랜 동안 공부를 쉬었고 또한 새 업을 짓지도 않았으니, 내가 이제 그와 겨룰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가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오고 있었는데, 도중에서 때마침 두 송아지가 싸우려는 것을 보자 문득 혼자 생각하기를 ‘이편의 소는 나요, 저편의 소는 그라고 생각하고 이것으로 점을 쳐서 누가 이길지 알아보리라’ 했다.

 

그런데 이쪽의 소가 지고 말았다. 그는 문득 큰 걱정을 하면서 생각했다.

“점괘가 이렇다면 내가 질 모양이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아낙이 병에 물을 담아 가지고 그의 앞까지 와서는 땅에다 던져 깨뜨렸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또한 매우 불길하고 심히 불쾌하도다.”

 

매우 불쾌한 마음으로 대중들이 모인 곳에 들어가서 그 논사를 보니, 얼굴 모양과 기상에 이길 징조가 갖추어지고, 자기는 질 것이 분명했다. 어쩔 수 없이 그와 더불어 토론하는데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곧 지고 말았다.

 

왕이 몹시 기뻐하면서 말했다.

“크게 지혜롭고 밝은 사람이 멀리서 우리나라에 오셨으니, 다시 한 고을을 봉해 주어 포상하고자 하노라.”

 

이에 신하들이 논의해 말했다.

“하나의 총명한 사람만 오면 한 고을을 봉하시면서 공신에게는 상을 주지 않으시고 빈 말씀으로 칭찬만 하신다면 국가를 다스리고 안정시키는 도가 아닌 줄로 여기나이다. 이제 마타라가 토론해서 졌으니 응당 그에게 봉했던 읍을 빼앗아서 이긴 자에게 주어야 합니다. 다시 또한 이기는 이가 생기면 다시 빼앗아서 그에게 주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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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그들의 말을 따라 당장에 빼앗아서 뒷사람에게 주었다.

 

이때 마타라가 제사에게 말했다.

“그대는 총명한 사람이니, 내 딸을 그대에게 시집보내겠노라. 사내아이가 태어나 대를 잇게 될 테니 이제 나는 멀리 다른 나라로 가서 본래의 뜻을 구하리라.”

 

제사는 그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다.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고 꿈을 꾸니, 어떤 사람이 몸에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금강방망이를 들고 산들을 두드려 부순 뒤에 큰 산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꿈을 깬 뒤에 그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이러이러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자 제사가 말했다.

“그대가 아들을 낳으면 모든 논사들을 모두 굴복시키되 오직 한 사람만은 굴복시키지 못하고 그의 제자가 될 것이오.”

 

사리부인은 잉태한 뒤로 그 뱃속의 아기 때문에 엄마까지도 매우 총명해져 토론에 매우 능숙해졌다.

그의 동생인 구치라가 누이와 토론하면 항상 지기만 할 뿐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는 잉태한 아기가 반드시 크게 지혜로울 것임을 알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거늘 하물며 태어난 뒤에야 어떠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는 곧 집을 버리고 떠나 학문을 닦았다.

 

남천축까지 가서 손톱도 깎지 않은 채 열여덟 가지 경서를 읽어 모두를 환하게 통달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장조(長爪) 범지라 불렀다.

 

그의 누이가 아기를 낳은 지 7일 뒤에 횐 요에 싸서 그의 아버지에게 보이니, 아버지가 생각했다.

‘나를 제사라 부르니, 내 이름을 따라 우바제사(憂波提舍)17)[우바란 진나라 말로는 따른다는 뜻이며, 제사는 별의 이름이다.]라 하리라.”

 

곧 이 우바제사는 부모 때문에 지어진 이름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사리부인에게서 태어났다 하여

모두가 사리불(舍利弗)[불(弗)은 진나라 말로는 아들이다.]이라 불렀다.

  
  
  
17) 범어로는 Upatiṣ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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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사리불의 세세에 걸친 본원은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지혜제일의 제자가 되어 사리불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본원의 인연에 의한 이름으로, 이러한 까닭에 사리불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문] 만약에 그렇다면 어째서 우바제사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사리불이라고만 하는가?

 

[답] 당시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를 귀히 여겼다.

곧 그녀는 뭇 여인들 가운데 총명하기가 으뜸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사리불이라 불렀다.

 

 

 

 

 

대지도론(大智度論) 95. 부처의 법신(空)을 관하라. 이것이 최고의 공양이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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