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어찌하여 나를 얻을 수 없는가? |
[답] 앞에서 ‘어느 때 내가 들었다’를 풀이하면서 이미 설명했거니와 이제 다시 설명하리라. |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6식(識)을 설명하셨다. |
[478 / 805] 쪽 |
“눈의 의식과 눈의 의식에 서로 응하는 법은 함께 색을 반연하고, 집이나 성곽 등 갖가지 이름을 반연하지 않나니, 귀․코․혀․몸의 의식도 이와 같다. 뜻의 의식과 뜻의 의식에 서로 응하는 법으로는 눈과 색과 눈의 의식을 알며, 나아가서는 뜻과 법과 뜻의 의식까지를 안다.” |
이 의식이 반연하는 법은 모두가 공하여 나가 없나니, 그것은 생멸하기 때문이며,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무위의 법에서는 나가 있다고 계교할 수 없나니,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
여기에 구태여 나라 할 법이 있다면 응당 제7식(識)이 있어서 나를 식별해야 할 터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
그러므로 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
[문] 어떻게 나가 없음을 알겠는가? 모든 사람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서 나라는 계교를 내고, 다른 이의 몸에서 나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
만일 자기 몸에 나가 없는데 헛되이 보고는 나라 여기는 것이라면 남의 몸에서의 나 없음에 대하여서도 헛되이 보아 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또한 만일 안으로 나가 없어서 색과 의식이 생각생각 사이에 생멸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 빛이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것을 분별해 알겠는가. |
또한 만일 나가 없다면 지금 살아있는 사람의 의식이 차츰차츰 생멸하다가 목숨이 다할 때엔 역시 다하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행위의 죄와 복은 누가 따르고 누가 받으며, 누가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으며, 누가 해탈을 얻겠는가. |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하므로 나가 있음을 알겠다. |
[답] 여기에는 양쪽 모두에 모순이 있다.
만일 남의 몸에 대하여 나라는 계교를 낸다면 마땅히 “어찌하여 자기의 몸에 대하여는 나라는 계교를 내지 않는가”라고 말해야 한다. |
또한 5중(衆)의 인연으로 생겼기 때문에 공하여 나가 없거니와 무명의 인연으로 스무 가지 신견(身見)이 생기는데 이 나라는 견해는 원래 5음(陰)에 대해서 상속되어 생겨나는 것이다. |
이렇게 5음의 인연에서 생겼기 때문에 이 5음을 나라고 계교한다. 남의 몸에 있지 않으니 그것은 습관 때문이다. |
[479 / 805] 쪽 |
또한 신(神)14)이 있다면 너와 나가 있다 하겠지만 그대는 아직 신이 있고 없음을 명료히 하지 못하면서 나를 묻는다. 이것은 마치 토끼의 뿔을 묻는데 말의 뿔 같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말의 뿔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그로써 토끼의 뿔을 증명할 수 있겠지만 말의 뿔조차 아직 명료히 하지 못하면서 토끼의 뿔을 증명하려 하는 것이다. |
또한 자기의 몸에 대하여 나라는 소견을 내는 까닭에 신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대가 말하기를 “신이 두루하다”고 한다면 남의 몸도 내몸이라고 계교해야 할 것이다. |
그러므로 “자기의 몸에 대하여는 나라고 계교하는 생각이 나거니와 남의 몸에서는 생기지 않으므로 신이 있는 줄 알겠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또한 어떤 사람은 남의 물건에 대하여 나의 것이란 생각을 내는데, 마치 어떤 외도가 좌선을 하면서 일체를 땅으로 보는 관법에 들어갔을 때 땅이 나요, 내가 땅이 되는 것과 같다.
물․불․바람에 대해서도 그러하니, 전도된 까닭에 남의 몸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
또한 어떤 때는 남의 몸에 대하여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남의 심부름으로 멀리 가서 빈방에 혼자 머무는데 밤중에 귀신이 송장 하나를 메고 와서 그의 앞에 던졌다.
이내 뒤를 이어 다른 귀신 하나가 따라와서 앞의 귀신을 꾸짖되 “이 시체는 나의 것인데 어찌하여 네가 메고 왔느냐” 하니, 앞의 귀신은 대꾸하기를 “이것은 나의 것이므로 내가 가져 왔다” 했다. |
그러니 나중의 귀신이 말하기를 “이 시체는 실로 내가 메고 왔다” 하여, 마침내 두 귀신은 제각기 시체의 팔 하나씩을 잡고 다투다가 먼저 귀신이 이렇게 제의했다. |
“여기 인간이 하나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자.” |
그러자 즉시 나중의 귀신이 물었다. |
“이 시체는 누가 메고 왔는가?” |
그 사람은 생각했다. |
14) 범어로는 ātman. |
[480 / 805] 쪽 |
‘이 두 귀신은 힘이 센데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죽음을 당할 것이요, 거짓으로 말해도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음을 면하지 못할 텐데 거짓말을 해서 무엇하랴.’ |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
“앞의 귀신이 메고 왔다.” |
이 말에 나중의 귀신은 화가 나서 그 사람의 팔을 뽑아 땅에 던져버리니, 먼저 귀신은 시체의 팔 하나를 뽑아다가 그에게 붙여 주었다. |
이와 같이, 두 팔․두 다리․머리․허리 등 온몸이 모두 바뀌어버렸다. 여기에서 두 귀신은 함께 바뀌어버린 사람의 몸을 다 먹고는 입을 닦으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
이때 그 사람은 생각했다. |
“나는 부모가 낳아 주신 몸을 눈앞에서 몽땅 두 귀신에게 먹히고, 나의 이 몸은 남의 몸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몸이 있는 것인가, 몸이 없는 것인가? 몸이 있다고 하자니 이것은 모두 남의 몸이고, 없다고 하자니 지금 이렇게 몸이 있지 않는가?” |
이렇게 걱정하기를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이튿날 아침에 길을 떠나 가다가 목적한 국토에 이르니, 그곳 불탑에 승려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몸이 있는가, 없는가’만을 물었다. |
비구들이 “그대는 누구인가?”고 물으니, 그는 “나 역시 스스로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소”라고 대답하고는 승려들에게 지난 일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
그러자 비구들은 “이 사람은 나 없음의 도리를 잘 알아서 제도하기 쉬울 것이오”라고 서로 얘기한 뒤 그에게 말했다. |
“그대의 몸은 본래부터 항상 나가 없었다.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다만 4대가 화합하기 때문에 ‘내 몸’이라는 계교를 내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대 본래의 몸은 지금의 것과 다름이 없다.” |
비구들이 그를 제도해 주니, 그는 도를 닦아 번뇌를 끊고 곧 아라한을 이루었다. |
[481 / 805] 쪽 |
이 몸을 존재[有]로 삼는 때는 남의 몸에 대하여서도 나라고 계교하지만, 너와 나가 있다 하여 나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
또한 이 나의 실다운 성품은 결정코 얻을 수 없다.
항상한 모습․항상치 않은 모습․자재한 모습․자재치 않은 모습․짓는 모습․짓지 않는 모습․빛의 모습․빛 아닌 모습 등 이러한 갖가지 모습은 모두 얻을 수 없다. |
만일 형상이 있다면 법(法)이 있고 형상이 없으면 법도 없다. 나는 이제 형상이 없으니 곧 나가 없음을 아는 것이다. |
만일 나가 항상한 것이라면 살생의 죄가 없어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몸은 죽일 수 있고 항상치 않기 때문이며, 나는 죽일 수 없고 곧 항상하기 때문이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111. ★ 나라고 여기는 것은 색수상행식 오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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