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단이란 재물을 버리는 일이라 하거늘 어찌하여 말하기를 “버릴 바 없는 법을 구족한다” 말하는가? |
[답] 단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을 벗어난 것이요, 또 하나는 세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
지금은 세간을 벗어난 보시의 특징 없음[無相]을 말하고 있다. 특징이 없으므로 버릴 바가 없다. 그러므로 ‘버릴 바 없는 법을 구족한다’고 한다. |
또한 재물은 얻을 수 없으므로 ‘버릴 바가 없다’고 한다. 이 물건이란 미래와 과거는 공하고, 현재의 분별에는 일정한 법이 없다. 그러므로 ‘버릴 바가 없다’고 한다. |
또한 행자가 재물을 희사하면서 마음속으로 ‘이 보시로 인하여 공덕이 많으리라’고 생각함으로써 교만함과 애결(愛結) 등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버릴 바가 없다 하나니, 버릴 바가 없으므로 교만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으므로 애결 등이 생기지 않는다. |
또한 보시하는 자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 사람이요, 또한 하나는 세간을 벗어난 사람이다.
세간 사람은 재물은 버리나 보시는 버리지 못한다. 세간을 벗어난 사람은 능히 재물을 버리고 능히 보시를 버린다. |
10) 자ㆍ비ㆍ희ㆍ사의 4무량심을 말한다. |
11) 범어로는 Aśoka. |
[473 / 805] 쪽 |
왜냐하면, 재물도 보시하는 마음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버릴 바 없는 법을 구족한다’고 한다. |
또한 보시바라밀에 대해 말하기를 “재물과 베푸는 자와 받는 자, 이 세 가지는 얻을 수 없다” 했다. |
[문] 세 가지 일이 화합함으로써 보시라 말한다. 그런데 이제 말하기를 ‘세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어찌 보시바라밀을 갖추고 원만히 한다 하겠는가? 이제 재물도 있고, 보시하는 이도 있고, 받는 이도 있거늘 어떻게 세 가지를 얻을 수 없는가? |
마치 보시한 방석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왜냐하면 방석이란 이름이 있으면 방석이란 법도 있기 때문이다. |
만일 방석이란 법이 없으면 방석이란 이름도 없겠지만 이름이 있으므로 실제로 방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또한 방석에는 길고 짧음, 거칠고 고움, 희고 검고 누렇고 붉음 등이 있으며, 인과 연, 지음과 깨짐, 결과와 과보가 있어서 그 특성[法]을 좇아 마음이 생겨난다. 곧 열 자는 길고 다섯 자는 짧으며, 올이 크면 거칠고 올이 가늘면 고우며, 물들임에 따라 빛깔이 있게 되는 것이다. |
또한 올이 있음은 인(因)이요 짜는 기계가 있음은 연(緣)이 되나니, 이런 인연이 화합하기에 방석이 된다. 사람이 공을 들이면 지음이 있고, 사람이 훼손하면 깨뜨림이 있으며, 추위와 더위를 막거나 몸을 가리면 과보라 한다. |
사람들은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몹시 근심함이 있으니, 그러한 것으로써 보시한다면 복을 받고 도(道)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훔치거나 혹은 겁탈해서 그것을 저자거리에서 깐다고 해도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
이러한 갖가지 인연이 있는 까닭에 이 방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방석의 법이라 하거늘 어찌 보시할 물건을 얻을 수 없다 하는가? |
[답] 그대가 말하기를 “이름이 있으므로 그 일이 있다” 했는데, 이는 옳지 못하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이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사실[有實]과 사실이 아님[有不實]이다. |
사실이 아닌 이름이란, 마치 어떤 풀의 이름이 주리(朱利)[진나라 말로는 도적(賊)이다.]이지만, 풀 자체는 훔치거나 겁탈하지 않아 실제로는 도적이 아니거늘 도적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
[474 / 805] 쪽 |
또한 토끼의 뿔이나 거북의 털처럼 다만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없는 것과도 같다.
방석은 토끼의 풀이나 거북의 털같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인연이 모이기 때문에 있고, 인연이 흩어지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
숲이라든가 군대도 모두 이름은 있으나 실제에는 없다. |
비유하건대 나무 사람이 비록 사람이란 이름은 있으나 사람의 특성[法]을 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방석 역시 이름은 있으나 방석의 실체는 구할 수 없다. |
방석이란 사람의 마음을 내게 하는 인연이 되나니,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근심한다. 이것이 생각의 인연이다. |
마음이 생기는 데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실제로부터 생기는 것과 실제가 아닌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
꿈속에서 본 것과 같고, 물속에 비친 달과 같고, 밤에 말뚝을 보고 사람이라 여기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것들은 일컬어 ‘실제가 아닌 것에서 능히 마음을 낸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이란 일정치 않으니, 마음으로 생겨나 존재하기에 곧 있는 것이라 해서는 안 된다. |
만일 마음으로 생겨나는 인연 때문에 존재하고, 다시 실제의 존재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면, 이는 마치 눈으로 물속의 달을 보고는 생각을 일으켜 ‘이것은 달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에 마음을 좇아 이 달이 생겨났다면 진짜 달은 없어야 한다. |
또한 있음[有]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상대해서 있음[相待有]이요, 둘째는 거짓 이름으로 있음[假名有]이요, 셋째는 법답게 있음[法有]이다. |
상대해서 있다고 함은 마치 길고 짧음이나 너와 나[彼此]같이 실제로는 길고 짧음이 없고 너와 나가 없건만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이름이 있게 된다.
길다 함은 짧은 것에 인하여 존재하고, 짧다 함은 또한 긴 것으로 인하여 존재한다. 너라는 것은 나를 인하고, 나라는 것 역시 너를 인하는 것이다. |
만일 어떤 물건의 동쪽에 있으면 그로써 이쪽은 서쪽이 되지만, 서쪽에 있다면 동쪽이 된다. 한 물건은 다름이 없는데 동쪽․서쪽의 차별이 생기는 것이다. |
[475 / 805] 쪽 |
이들은 모두가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없다. 이러한 것들을 ‘상대해서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실재하는 법은 없으니, 빛․냄새․맛․닿임 등과는 같지 않다. |
거짓 이름으로 있다고 함은 마치 소락[酪]이 빛․냄새․맛․닿임 등 네 가지 일이 있어 인연이 합하는 까닭에 거짓으로 소락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다. |
비록 있다고 하나 인연의 법으로 있는 것과는 같지 않고, 없다고 하나 토끼의 뿔이나 거북의 털이 없는 것과도 같지 않다.
다만 인연이 합하는 까닭에 거짓으로 ‘있다’ 할 뿐이다. 소락이나 방석의 경우도 그러하다. |
또한 극미(極微)12)의 빛․냄새․맛․닿임이 있으므로 털의 요소[毛分]가 있고, 털의 요소의 인연으로 털이 있고, 털의 인연으로 털솜[毳]이 있고, 털솜의 인연으로 털실이 있고, 털실의 인연으로 비단이 있고, 비단의 인연으로 옷이 있다. |
만일 극미의 빛․냄새․맛․닿임의 인연이 없으면 또한 털의 요소도 없고, 털의 요소가 없는 까닭에 털솜도 없고, 털솜이 없는 까닭에 털실도 없고, 털실이 없는 까닭에 비단도 없고, 비단이 없는 까닭에 옷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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