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불이공 공불이색 (3)
여기에서 색이란 우리의 사량으로 분별할 수 있는 현상계를 의미하는데, 이것을 화엄의 사법계(四法界)에서는 사법계(事法界)라고 하며, 공이라는 것은 그 현상계를 유지하고 있는 바탕으로서의 이치의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이법계(理法界)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색불이공 공불이색’이라는 것은, 색이 공과 다르지 않으며,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는 논리를 통해, 이(理)와 사(事)가 서로 걸림이 없다는 화엄의 ‘이사무애법계’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이법계와 사법계가 나뉘어 보이지만, 즉, 공과 색이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이법계와 사법계가, 그리고, 공과 색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시간적인 개념에서 본 무상의 이치를 바탕에 깔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색불이공’만 이야기하면 될텐데, 다시 한번 ‘공불이색’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반야심경에서는, 색, 다시 말해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실에 대하여, 공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여 현상계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색이 공과 다르지 않다는 부정만으로는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고, 한 쪽으로 치우칠 우려가 있기에 다시 한번 현실을 긍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반야라는 지혜의 안목을 통해 현실을 파악하자니 우리 범부 중생의 사량으로 어려운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어쨌든, 색이 공이라고 부정을 하고, 그 부정인 공이 다시 색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긍정을 함으로써, 부정과 긍정 모두의 극단을 떠난 절대 긍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다음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강한 긍정의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목탁소리 -법상스님-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