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스크랩] 一相無相分 第九

수선님 2019. 1. 13. 12:49

 

9

"須菩提  於意云何  須?洹  能作是念  我得須?洹  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須?洹  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是名須?洹"

"須菩提  於意云何  斯?含  能作是念  我得斯?含  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斯?含  名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含"

"須菩提  於意云何  阿那含  能作是念  我得阿那含  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  名爲不來  而實無來  是故  名阿那含"

"須菩提  於意云何  阿羅漢  能作是念  我得阿羅漢道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實無有法 名阿羅漢  世尊 若阿羅漢  作是念我

 得阿羅漢道  卽爲著我人衆生壽者

世尊  佛說我得 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  欲阿羅漢 我不作是念

我是離 欲阿羅漢

世尊 我若作是念 我得阿羅漢道 世尊 則不說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提 實無所行 而名須菩提  是樂阿蘭那行"

 

 

一相無相分 第九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須陀洹이 能作是念호대 我得須陀洹果不아

須菩提가 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須陀洹은 名爲入流로대 而無所入이니 不入色聲香味觸法일새

是名須陀洹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斯陀含이 能作是念호대 我得斯陀含果不아

須菩提가 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斯陀含은 名一往來로대 而實無往來일새 是名斯陀含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阿那含이 能作是念호대 我得阿那含果不아

須菩提가 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阿那含은 名爲不來로대 而實無(不)來일새 是故로 名阿那含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阿羅漢이 能作是念호대 我得阿羅漢道不아

須菩提가 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實無有法名阿羅漢이니 世尊하 若阿羅漢이 作是念호대 我得阿羅漢道라하면 卽爲著我人衆生壽者니이다 世尊하

佛說我得無諍三昧하야 人中에 最爲第一이라 是第一離欲阿羅漢이라하시니

我不作是念호대 我是離欲阿羅漢이라하노이다 世尊하

我若作是念호대 我得阿羅漢道라하면 世尊이 卽不說須菩提가 是樂阿蘭那行者어니와 以須菩提가 實無所行일새 而名須菩提가 是樂阿蘭那行이라하시나이다

 

 

금강경 강의 (9)/해안 스님


※ 경문.

 

"須菩提  於意云何  須?洹  能作是念  我得須?洹  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須?洹  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是名須?洹"



須菩提 야 於意云何 오 須陀洹 이 能作是念 하되
수보리 야 어의운하 오 수다원 이 능작시념

我得 須陀洹 果不 아 須菩提言 하되 不也 니이다.
아득 수다원 과부 아 수보리언 하되 불야

世尊 이시여 何以故 오 須陀洹 은 名爲入流 로되
세존 이시여 하이고 오 수다원 은 명위입류

而無所入 하여 不入色聲香味觸法 일새 是名須陀洹이니다.
이무소입 하여 불입색성향미촉법 일새 시명수다원.

 

? 비탈질-탈 부수: ?   총획수: 7 

須陀洹( 수타원)須陀洹科 : 성문 사과()의 첫째 지위().

사제를 깨달아 욕계()의 탐()ㆍ진()ㆍ치 ()의 세 가지 독함을 버리고 성자()의 무리

에 들어가는 성문()의 지위()

四果塔 ①수타원()ㆍ사타함()ㆍ아나함()ㆍ아라한()의 성문()의

치아()와 머리카락을 넣고 쌓은 탑 ②다섯 층으로 된 탑

洹 세차게흐를 원.㉠세차게 흐르다 물 이름.

비탈질 타/부처 타 .㉠비탈지다 무너지다 험하다 사타(沙)의 준말 벼랑

산등성이     

 

수다원(須陀洹) :
수로타파나(Srotapana)의 음역. 수다원이란 열여섯 가지 마음을 가지고 88종의 견도혹(見道惑)이라는 번뇌를 끊고 처음으로 성인의 지위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문으로 입류(入流)라고도 한다.
16가지의 마음이라는 것은,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의 고(苦) · 집(集) · 멸(滅) · 도(道) 등 사제를 닦아나가기 위한 마음의 자세인데,

욕계에서 한 사제를 닦고, 색계와 무색계를 합하여 한 사제를 닦아 여덟이 되고,

사제의 각각의 제(諦)에 는 인(忍)과 지(智)가 부가되어 있으므로, 모두 16가지가 되는 것이다.
인(忍)이란 확인하고 추진한다는 뜻이며, 지(智)란 완전히 성취한다는 뜻이다.☞인()
욕계에서는 모든 제에다 법(法)자를 붙이고, 색계 · 무색계는 총괄하여서 상계(上界)라 하고,

이 상계에서는 류(類)자를 붙이는데, 여기서 류(類)는 "유례한다" 또는 "준한다"는 뜻으로서

요컨대 상계는 욕계에서 유례하여 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16心을 끊어야 할 88종의 견도혹(見道惑)이란,
도(道) 즉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막는 번뇌를 말한다.

이것의 주요 성분은 [ 탐(貪;탐욕) · 진(瞋;성냄) · 치(痴;어리석음) · 만(慢;교만) · 의(疑;망서림) 등

다섯가지 ]의 무서운 번뇌(오둔사)
[ 신견(身見;'나'가 있다는 생각) · 변견(邊見;한쪽에 치우친 생각) · 사견(邪見;인과를 무시하는 생각) · 견견(見見;위의 세가지 생각들을 옳은 것이라고 믿는 잘못된 생각) · 계금취견(戒禁取見;잘못된 수행방법을 옳은 방법으로 아는 생각) 등 다섯가지 ]의 가벼운 번뇌(오리사)이다.

: 불교 사전

 



※ 주석.

수보리야 네뜻에 어떠하냐,

수다원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수다원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 말씀 하되, 아니옵니다. 세존 이시여.

왜 그러한고 하면, 수다원은 성류(聖流)에 든다는 이름 이오나,
들어간바 없아오니, 빛이나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부딪침이나,
법에 들어가지 아니 함이, 이 이름이 수다원 입니다.



※ 해설.

이 대문 부터서는 마음을 닦어 나가는 공부중에 얻은 결과의
차서를 하나 하나씩 문답하신 것이니,


처음에 수다원과(須다洹果)를 말하고,

다음에 삼과(三果)를 차례로 말씀 하게된다.


수다원(須다洹)은 성인의 류(流)에 들어 간다는 이름이니,
샘이 있는 상법(相法)에서,
샘이 없는 실다운 법에 들어 갔다는 뜻이된다.


이 과(果)를 증하여 얻은 사람이 내가 수다원과를 얻었다는
생각을 갖겠느냐는 부처님의 물으심에 대하여

 

수보리는 아닙니다.세존 이시여.

수다원은 성류에 들었으나,내가 상이 없이 들었다는 상이 없이 들었을세,
육진경계(六塵境界)에 물들지 않음이,
수다원 이라고 대답 하였다.

 

 

六塵 심성(心性)을 더럽히는 육식(六識)의 대상계(對象界).

곧 육식에서 생기는 '빛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여섯 가지 욕정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이것에 더럽혀지지 않는 일을 육근 청정이라 함

外塵 마음 밖에 있는, 육근()의 대상()이 되는 사물().

곧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ㆍ육진()

正因緣 육근()을 인()으로 하고, 육진()을 연()으로 하여 일체() 제법()을

생성()하는 이치(). 사인연()에 상대()되는 일컬음     

 

(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 :

 우리들의 '눈(眼)·귀(耳)·코(鼻)·혀(舌)·몸(體)·뜻(意)'을 6근(六根)이라 하는데,

'색(모양) · 성(소리) · 향(냄새) · 미(맛) · 촉(느낌) · 법(계법')의 (육경에 의한)6요소는 육근을

통하여 몸속으로 들어가 우리들의 본성인 청정하고 깨끗한 마음을 더럽히고 진성(眞性)을 덮어

흐리게 하는 6개의 요소라 하여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육진(六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색(色;R pa) : 일정한 모양과 색채가 있는 시각적, 직감적인 일체의 물질 을 말한다.

'부주색'(不住色)이란 이런 색에 구애받지 않는, 즉 머무름이 없는 것이란 뜻이다.
2. 성(聲) : 귀로 듣는 청각적인 대상, 즉 소리를 말한다.
3. 향(香;Ganda) : 건타(乾陀)라고 음역하기도 하는데, 코로 맡아서 후각적으 로 느껴 분별하는 냄새를

말한다. 냄새는 호향(好香), 등향(等香), 오향 (惡香), 부등향(不等香) 등 4종으로 나눈다.
4. 미(味) : 혀로 느끼는 미각적인 미욕(味慾)을 말한다. 즉 맛있는 음식을 많 이 먹고 싶어하는 욕심이다. 또 맛이라는 것은 심식(心識)을 물들게 하여 번뇌를 일으키기도 한다.
5. 촉(觸;Spra tavya) : 촉각의 대상, 감촉되는 것을 말한다. 즉 닿아서 느껴 아는 것이다.

굳은 것(堅), 축축한 것(濕), 더운 것(煖), 흔들거리는 것 (動), 매끄러운 것(滑), 껄끄러운 것(澁),

무거운 것(重), 가벼운 것(輕), 차가운 것(冷), 배고픈 것(肌), 목마른 것(渴)의 11종으로 나눈다.
6. 법(法;Darhma) : 달마(達磨)라 음역하기도 한다. 궤범(軌範)을 주로 하여 규칙을 법이라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법 · 정법 · 교법'이라 하고,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계법(戒法)이라 하고, 그 규정에 따라서 수행하는 의식을 수법(修法)이라 한다.
쉽게 말해 규칙을 법이라 하는데, 여기에서는 곱다, 밉다, 옳다, 그르다 하는 따위의 마음의 대상이 되는

 정신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 경문.

 

 

須菩提  於意云何  斯?含  能作是念  我得斯?含  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斯?含  名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含



須菩提 야 於意云何 오 斯陀含 이 能作是念 하되
수보리 야 어의운하 오 사다남 이 능작시념

我得 斯陀含 果不 아 須菩提言 하되 不也 이어다
아득 사다함 과부 아 수보리언 하되 불야

世尊 이시어 何以故 오 斯陀含 은 名一往來 로되
세존 이시어 하이고 오 사다함 은 명일왕래

而實無往來 일새 是名斯陀含 이니이다.
이실무왕래 일새 시명사다함.

 

 

사다함(斯多含) :
사크리다가민(Sak d gamin)의 음역. 사크리다가민은 한문으로 일왕래(一往來)로 번역되는

것으로서 '한번 다녀간다'는 뜻이다.

사다함은 성문(聲聞)의 네 지위 중 둘째 과위인데, 이 지위에 오르면 이 인간세상에 한번만 더

왔다 감으로써 열반에 이르러 생사(生死)를 면하게 된다.

수다원은 16가지의 마음으로 삼계에 두루있는 88가지의 견도혹(見道惑)을 끊었지만,
사다함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삼계에 널리 퍼져있는
수도혹(修道惑)을 끊는다.


수도혹(修道惑)이란 도를 닦는 과정에서 감정이나 의식의 미세한 작동이 일어나 도를 닦지 못 하게 하는

 번뇌이다. 앞서 말한 견도혹이 후천적인 악습(惡習)이라고 한다면,

수도혹은 선천적인 악습(惡習)이다.

수도혹은 욕계의 탐(貪) · 진(瞋) · 치(痴) · 만(慢)과 색계, 무색계 각각의 탐(貪) · 치(痴) · 만(慢),

즉 총 10가지로 주성분을 이루고 있는데,

너무나 세밀하여 그대로는 끊기가 어려우므로 욕계에 속해 있는 네가지 번뇌(四惑)를 일률적으로 아홉등분하여 차츰 차츰 끊으니,이를 욕계의 구품수혹(九品修惑) 또는 사혹(思惑)이라 한다.
사다함은 이 구품 중 '육품'까지를 6生에 걸쳐 끊는다.


구품수혹이란,
상상품(上上品) · 상중품(上中品) · 상하품(上下品), 중상품(中上品) · 중중품(中中品) · 중하품(中下品), 하상품(下上品) · 하중품(下中品) · 하하품(下下品)을 말하는데,
먼저 상상품을 끊기 위해서는 二生, 즉 두차례 태어나야 하고,

다시 상중품, 상하품, 중상품을 끊기 위해서는 각각 一生씩이 요구되며,

중중품 · 중하품을 끊기 위해서는 이 둘을 합쳐서 一生이 요구되고,

나머지 하상품 · 하중품 · 하하품을 끊기 위해서도 역시 또 한 生이 요구된다.

 

사다함은 6生에 걸쳐 6품까지를 끊은 성문이므로 나머지 3품을 끊기 위해 한 生만 걸치면 된다.
따라서 이로 인해 사다함을 일왕래(一往來), 즉 '한번 다녀간다'고 하는 것이다.


 



※ 주석.

수보리야 네뜻에 어떠하냐, 사다함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사다함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 여쭈되,아닙니다, 세존 이시여.

어찌한 연고이냐. 사다함은 한번갔다 온다는 뜻이나, 실은 가고옴이 없을새,

사다함이라 이름 합니다.



※ 해설.

사다함은 성문(聖聞)의 제 이과(二果) 인데,한번갔다 온다는 뜻이다,
앞생각이 망년을 일으키면, 뒷 생각이 곳 참여 하여 그치며,

앞 생각이 착 하였다가, 뒷생각이 곧깨달어, 여이므로,
한번가고 온다 하나,실은 이러한 생각을 없이할새,
사다함이라 이름 한다고 대답 하였다.

 



※ 경문.

 

須菩提  於意云何  阿那含  能作是念  我得阿那含  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  名爲不來  而實無來  是故  名阿那含



須菩提 야 於意云何 오 阿那含 이 能作是念 하되
수보리 야 어이운하 오 아나함 이 능작시념

我得 阿那含 果不 아 須菩提言 하되 不也 이니다.
아득 아나함 과부 아 수보리언 하되 불야

世尊 이시여 何以故 오 阿那含 은 名爲不來 일새
세존 이시여 하이고 오 아나함 은 명위불래

而實無不來 일새 是故 로 名阿那含 이니이다.
이실무불래 일새 시고 로 명아나함.

 

 

 

阿那含: 阿那含果 : 성문 사과의 셋째. 욕계의 아홉 가지 번뇌()를 모두 끊고, 죽은 뒤에 천상()에 가서, 다시 인간()에 돌아오지 아니하는 지위(

  

아나함(阿那含) :
아나가민(An g min)의 음역. 아나함은 성문의 세번째 지위로서 불래(不來)라 한역한다.

즉 인간세상에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욕계의 9품수혹 중 6품을 끊고 사다함이 된 성문이 나머지 3품을 끊기 위해 다시 태어나 一生동안

 다 끊어 아나함이 되고서는, 색계의 제4선천(第四禪天)의 일부인 오나함천(五那含天=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견견천, 색구경천)에 가서 태어나게 된다.


 

※ 주석.

수보리야 네뜻에 어떠하냐.
아나함이 능히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내가 아나함 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 말씀 하되, 아닙니다,

세존 이시여 어찌한 연고이냐. 아나함은 오지 않는다는 말이오나,
실로 오지 아니함이 없을새, 이런고로 아나함 이라 합니다.


※ 해설.

이것은 성문(聲聞)의 세째 과(果) 이니,
안 마음과 바깥 경계가 고요하고 깨끗하여,
번뇌인 욕계(欲界)에 오지 아니 한다는 뜻 이로되,
실로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없을세,
이런고로 이름이 아나함이라 합니다.

 



※ 경문.

 

須菩提  於意云何  阿羅漢  能作是念  我得  阿羅漢道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實無有法 名阿羅漢  世尊 若阿羅漢  作是念

得阿羅漢道  卽爲著我人衆生壽者



須菩提 야 於意云何 오 阿羅漢 이 能作是念 하되
수보리 야 어의운하 오 아라한 이 능작시념

我得 阿羅漢道不 아 須菩提言 하되 不也 니이다
아득 아라한도부 아 수보리언 하되 불야

世尊 이시여 何以故 오 實無有法 하여 名阿羅漢 이니요
세존 이시여 하이고 오 실무유법 하여 명아라한

世尊 이시여 若阿羅漢 이 作是念 하되 我得阿羅漢道 라 하면
세존 이시어 약아라한 이 작시념 하되 아득아라한도

卽爲着我人衆生壽者 일새니라.
즉위착아인중생수자.

 

 

阿羅漢 : 소승불교()의 수행자() 가운데 최고()의 경지().

온갖 번뇌()를 끊고, 사제의 이치()를 밝히어 얻어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공덕을 갖춘 성자. 열 가지 부처의 칭호() 가운데 하나.

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배울 만한 법도가 없게 된 자리의 부처 

阿羅漢果 : 성문사과의 가장 윗자리. 삼계의 견혹, 사혹을 모두 끊고 수행()이 완성()되어

존경()과 공양()을 받을 수 있는 성인()의 지위()  

 

아라한(阿羅漢) :
아르한(Arhan)의 음역. 아라한은 성문의 마지막 지위로서 수행이 최고의 극치에 이른 성인이다. 아라한은 '무적(無賊) · 불생(不生) · 응공(應供)'이라 번역하는데,
무적이라 함은 번뇌의 도적이 깨끗이 없어졌다는 뜻이고,
불생이라 함은 다시는 인간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며,
응공이라 함은 인간세계와 하늘계에서 어떠한 공양이라도 받아도 타당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아라한이 끊어야 할 번뇌는 색계와 무색계의 수도혹으로서 탐(貪) · 치(痴) · 만(慢) 등

세 가지가 주구성성분이 된다.
이미 아나함의 과위를 얻은 이가 오나함천에 태어나 살피니, 아직 상계의 수도혹이 남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냥 끊기는 너무 미세하여 색계의 것을 넷으로, 무색계의 것도 넷으로 하여

총 여덟가지로 나누고,

이들 여덟가지 몫을 다시 각각 아홉등분으로 나누어 모두 72품으로 하는데,
이 중에서 71품까지를 끊으면 아라한향(雅羅漢向)이라 하고 72품을 다 끊어야 아라한이라 하는 것이다.

 

아라한(阿羅漢) :
범어(梵語) Arhan 줄여서 나한(羅漢)이라고도 한다.

응공(應供), 살적(殺賊), 불생(不生), 무생(無生), 응진(應眞), 진인(眞人)이라 번역한다.

일반적인 해석으로는 성문도(聲聞道)의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를 말하나,

넓은 뜻에서는 대승 · 소승을 통해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를 가리킨다.

경전의 내용중에 '다 배운 이(學無學)'는 아라한을 지칭한다.[좀더 보기]
응공(應供: 공양에 응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
살적(殺賊: 번뇌의 도적을 아주 죽여 없앴다는 뜻),
불생(不生: 영원한 열반의 깨달음에 들어 다시는 미(迷)의 세계에 나지 않는다는 뜻)
의 세가지를 아라한 삼의(三義)라 한다.
♧_보통 사찰 경내에 '웅진전(십육성)'과 '나한전(오백성)'이라는 '전각'이 함께 한다.



※ 주석.

수보리야 네뜻에 어떠하냐.
아라한이 능히 이러한 생각을 가지되,
내가 아라한 도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 말씀 하되 아닙니다,

세존 이시여. 어찌한 연고이냐 하면,
실로법이 있음이 없어야 이름이 아라한 입니다.
세존 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이런 생각을하되,
내가 아라한 도를 얻었다 하면,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걸리기 때문 입니다.

 



※ 해설.



아라한은 성문 사과(四果)중, 가장높은 자리인 넷째과 이다.


망상을 제할것도 없고,참 을 구할것도 없이,
한법도 있지 아니함으로 배울것이 없다는 이름이니,
이과를 증득(證得)한 자가 내가 아라한을 얻었다 하면,

얻었다는 생각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착해진 것이라는 뜻이다.

 

聲聞 ①명성() ②부처의 설법()을 듣고 사제의 이치()를 깨달아서 아라한()이 된

불제자()를 일컬음 

 

 

四果

소승() 불교()의 성문()들이 탐()ㆍ진()ㆍ치()의 삼독()을 끊고,

샘 없는 성도()에 들어가서 부처가 되는 네 단계()의 증과().

곧, 욕계()의 탐ㆍ진ㆍ치를 끊어 버린 수타원과(),

수타원과보다는 나아갔으나 욕계의 혹()이 약간 남아 있어 천상()과 욕계를 한번 왕래()하여

야 한다는 사타함과(),

욕계의 혼을 끊어 버려 다시 욕계에 탄생()하지 아니한다는 아나함과(),

삼계의 욕망()을 완전()히 끊어 버린 아라한과()의 총칭()   

 



※ 경문.

 

 

世尊  佛說我得  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  欲阿羅漢

我不作是念  我是離   欲阿羅漢



世尊 이시여 佛說我得 無諍三昧人中 에 最爲第一 이라
세존 이시여 불설아득 무삼매인중 에 최위제일

是第一離 欲阿羅漢 이라하시오나 世尊 이시여
시제일이 욕아라한 이라하시오나 세존

我不作是念 하되 我是離 欲阿羅漢 이니이다.
아부작시념 하되 아시이 욕아라한*

 

諍 간할 쟁.㉠간하다 송사하다 다투다 

三昧 :불교(佛敎)에서 마음을 한가지 일에 집중(集中)시키는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境地)나

사물(事物)에 열중(熱中)함을 이르는 말

羅漢  아라한()의 준말. 부처의 제자()들

 

무쟁삼매(無諍三昧) :
무쟁은 원어 아라나(Ara a)의 의역으로 "다툼이 없다"는 뜻이다.

'다툼이 없다'는 것은 마음속에 갈등이 없다는, 즉 미혹이 없다는 것이다.

 
삼매(三昧)는 원어 사마디(Sam dhi)의 의역으로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또 마음을 바르게 하여 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일사불란한 정신통일의 경지를 말한다. 무쟁삼매는 몰입무아(沒入無我)상태로, 한마디로 마음속에 티끌만한 갈등이 없는 상태이다.



※ 주석.

세존 이시여,
부처님께서, 내가 고요한 삼매를 얻은사람 가운데 가장 제일 인지라
이것이 제일 욕심을 떠난 아라한 이라 말씀 하셨아오나
세존 이시여 내가 이러한 생각을 가져 내가 이 욕심을 여윈
아라한 이라고 하지 않읍니다.

※ 해설.

참으로 조용한 사람은 내가 고요한것을 좋아 한다고 말하지 않고,
욕심이 참으로 없는 사람은 내가 욕심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 경문.

 

 

世尊  我若作是念  我得阿羅漢道  世尊  則不說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提  實無所行  而名須菩提  是樂阿蘭那行

世尊 이시어 我若作是念 하되 我得阿羅漢道 라 하오면
세존 이시어 아약작시념 하되 아득아라한도

世尊 이 卽不說須菩提 - 是樂阿蘭那行者 라 하시련만
세존 이 즉불설수보리 _ 시락아란나행자

以須菩提 - 實無所行 일새 而名須菩提 - 是樂阿蘭那行 이니다.
이수보리 - 실무소행 일새 이명수보리 - 시요아란나행

 

 

아란나(阿蘭那) :
원어 아란야(Ara y )의 음역. 아란야(阿蘭若) 또는 아련야(阿練若) 등으로도 음역한다.

 적정처(寂靜處), 무쟁처(無錚處), 원리처(遠離處)라고 의역한다.
즉 소음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서 수행하기에 적당한 숲, 들, 모래밭 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마을에서 소의 울음소리가 겨우 들릴정도로 떨어진 곳으로 정한다.

인가와 너무 먼 곳은 탁발(托鉢)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일체의 욕망과 번뇌를 끊어버리고 무쟁삼매의 수행을 하는 것이

아란나행(阿蘭那行)인 것이다.

 

寂靜 ①쓸쓸하고 고요함 ②몸과 마음이 아주 고요함. 번뇌(煩惱)를 떠나 고(苦)를 멸(滅)한 해탈(解脫), 열반(涅槃)의 경지(境地)

無錚. 錚 쇳소리 쟁. ㉠쇳소리

阿蘭若(아란야) :촌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수행()하기에 알맞은 한적()한 곳이라는 뜻으로 절을 이르는 말 . 

 

 




※ 주석.



세존 이시여,
내가만약, 아라한 도를 얻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세존께서 곧 수보리에게 아란나(阿蘭那)(다툼이없는)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 아니하셨을 것이나,

실은 수보리가 행한바 없을세,
수보리 더러 아란나 행을 즐기는 자라고 이름한 것입니다.********



※ 해설.

아란나는 다툼이 없다는 뜻과 고요하다는 이름이다.
이 대문 까지는 소승 사과(小乘四果) 에 대한 불(佛)과
수보리의 문답이 끝난 것이니, 얻어도 얻음이 없는것이,
참으로 얻음이 됨을 밝히신 것이다.

 

 

 

 

 

【언해본】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須陀洹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고) 하느냐, 아니하느냐???
須菩提가 사뢰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해선가 (하면) 須陀洹을 이름이??流에 들음??이로되 들어간 곳 없으니, 色?聲?香?味?觸?法에 들(어가)지 아니함이, 이 이름이 ??須陀洹??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斯陀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 하느냐, 아니하느냐???
須菩提가 사뢰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해선가 (하면) 斯陀含을(斯陀含은) 이름이 ??한번 가며 옴??이로되, (眞)實로 ??가며 옴??이 없으므로 이 이름이 斯陀含인 것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阿那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 하느냐, 아니하느냐???
須菩提가 사뢰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해선가 (하면) 阿那含을 (阿那含은) 이름이 ??오지 아니함??이로되, (眞)實로 ??오지 아니함??(이) 없으므로 이렇기 때문에 이름이 ??阿那含??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는) 어떠하냐? 阿羅漢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느냐, 아니하느냐(못하겠느냐)???
須菩提가 사뢰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해선가 (하면) (眞)實로 法 있음과 없음이. 이름이 ??阿羅漢??이니,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고) 하면 곧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에 (執)着한 것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께서 나를 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第一이라 하시니,
이(는) ‘第一(의) 욕(심을) 여윈 阿羅漢??이(란 뜻이)니 世尊이시여, 내가(제가)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이(렇게) 慾(心을) 여윈 阿羅漢??이라 (生覺하지) 아니합니다.??
“世尊이시여, 내가(제가) 만약 이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하면 世尊께서 곧 ??須菩提가 이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이다.??(라고) 이르지 아니하실 것이거늘, 須菩提가 實로 行한 것(이) 없으므로 須菩提를 이름하시되 ??(須菩提가) 이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범어본】

須菩提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처음으로 聖者의 흐름을 탄(預流) 자가, 그와 같은 預流果(須陀洹)를 얻었다고 하는 그런 生覺을 일으키겠는가, 어떤가?
須菩提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와 같은 일은 없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須陀洹은 入流(入流)라고 말하지만,

어디에도 흐름에 들어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形態를 얻은 것도 아니고, 성·향·미·촉과 마음의

對相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聖者의 흐름을 탄 자, 즉 須陀洹이라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만일 처음으로 聖者의 흐름을 탄 자가, 나는 그와 같은 豫流果를 얻었다 라는 生覺을 일으킨다면, 그에게는 我相(自我에 대한 執着), 衆生相(살아 있는 것에 대한 執着), 壽者相(個體에 대한 執着), 人相(個人에 대한 執着)이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須菩提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聖者의 흐름을 탄 자는, 다음에는 하늘(天)이나 사람(人)의 世界에 다시 한번 태어나 깨닫는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一往來의 자가, 그 果를 얻었다고 하는 그런 生覺을 일으키겠는가, 어떻겠는가?
須菩提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와 같은 일은 없습니다. 스승이시여, 왜냐하면 斯陀含은 一往來라고 말하지만,

實際는 그와 같은 往來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斯陀含이라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스승은 물었다.
須菩提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이제는 다시 태어나 오지 않는 자가, 그와 같은 경지를 얻었다고 하는

그런 生覺을 일으키겠는가, 어떻겠는가?
須菩提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와 같은 일은 없습니다. 스승이시여, 왜냐하면 阿那含은 不來(不還)라고 말하지만,

實際는 不來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不來라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스승은 물었다.
須菩提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마지막으로 世間의 尊敬 供養을 받을 만한 자가, 나는 그러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生覺을 일으키겠는가, 어떻겠는가?
須菩提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스승이시여, 왜냐하면 實際는 法으로써 그와 같은 阿羅漢이라고 말해지

는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스승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나는 阿羅漢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生覺

을 일으킨다면, 그에게는 저 自我에 대한 執着이 있게 되고, 살아 있는 것, 個體, 個人 등에 대한 執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如來·應供·正等覺者는 저에 대하여 無諍住者 가운데서 第一인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慾望을 떠난 阿羅漢입니다. 그러나 스승이시여,

저는 慾望을 떠난 阿羅漢이라는 그런 生覺을 일으켰다면, 如來는 저에 관해서 無爭住者 가운데 第一人者

이며, 善男子 須菩提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므로 無爭에 머무르는 자이다라고 는 受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사문과란 예류과(預流果)·일래과(一來果)·불환과(不還果)·아라한과(阿羅漢果)라고 하는

네 단계의 수도계위를 말한다.

 예류과는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자로서 수다원(須陀洹)이라고도 한다.

 일래과는 인간세계로 한번만 되돌아가는 자로서 사다함(斯陀含)이라고도 한다.

 불환과는 다시는 욕계(欲界)로 되돌아가지 않는자로 아나함(阿那含)이라고도 한다.

 아라한과는 삼계(욕계·색계·무색계)의 모든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어 다시는 삼계에 생사윤회하지 않는 자이다.

 

無諍住者 ???

 

 


【몽고본】

수부티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많은 豫流者가 나는 豫流果를 얻었다고 生覺하는 念이 있겠는가?
수부티가 말했다.
世尊이시여,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世尊이시여, 그는 어떠한 것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預流者라 불리는 것입니다. 色에도 들지 않고, 聲에도, 香에도, 味에도, 觸에도, 法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늘 들어간 者, 預流者라 불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世尊이시여, 만약 預流者가

나는 豫流果를 얻었노라고 生覺하는 念이 있으면 그는 實로 그의 我相을 이룰 것입니다.

有情想·壽命想·人相을 이룰 것입니다.
世尊께서 말했다.
수부티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어떤 一來가 나는 一來果를 얻었노라 라고 生覺하는 念이 있겠는가?
수부티가 말했다.
世尊이시여,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어떠한 그 一來에 들 한 法도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一來者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世尊께서 말했다.
수부티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不還者가 나는 不還果를 얻었노라 라고 生覺하는 念이 있겠는가?
수부티가 말했다.
世尊이시여,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어떠한 그 不還에도 들 한 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不還者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世尊께서 말했다.
수부티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阿羅漢이, 나는 阿羅漢이 되었노라 라고 生覺하는 念이 있겠는가?
수부티가 말했다.
世尊이시여,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어떠한 阿羅漢이라 불릴 그 한 法도 없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나는 阿羅漢이다라고 그렇게 生覺한다면, 그는 實로 그 我執을 이룰 것입니다. 有情想·壽命想·人相을 이룰 것입니다.
世尊이시여, 如來살적정진각자는 저를 煩惱 없이 住하는 最勝者라고 말씀하셨습니다.
世尊이시여, 저는 貪欲을 斷絶한 阿羅漢이지만 世尊이시여, 저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阿羅漢을 이루었다고 生覺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世尊이시여, 만약 제가 殺賊 阿羅漢을 이루었다고 그렇게 生覺하면 如來는 저를 “善男子 수부티는 모든 煩惱 없이 머무는 最勝者이니라”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어떠한 것에도 머무르지 않은 까닭으로 煩惱 없이 머무른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티베트본】

“쑤부띠여, 이것은 어떻게 生覺하느냐? 흐름에 든 이가 나는 흐름에 든 이란 果報를 얻었다고

生覺하느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世尊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世尊이시여, 그는 어떠한 것에도 들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래서 흐름에 든 이라고 합니다. 形相에도 들지 않고, 소리에도 아니고 향기에도 아니고, 감촉에도 아니고, 뜻의 대상에도 들지 않는데 그래서 흐름에 든 이라고 불리웁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世尊이시여,

만약 흐름에 든 이가 흐름에 든 이의 果報를 얻었다고 生覺하면, 이것은 그의 自我에의 執着인 것이며,

뭇 삶에의 執着인 것이며, 영혼에의 執着인 것이며, 個人에의 執着인 것입니다.”
世尊께서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어떻게 生覺하느냐? 다시 한번 오는 이가 이처럼 나는 다시 한번 오는 이의 果報를 얻었다고

 生覺하느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世尊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다시 한번 오는 이의 성품에 든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오는 이라고 합니다.

世尊이시여, 만약 다시 한번 오는 이가 이처럼 ‘나는 다시 한번 오는 이의 果報를 얻었다’고 生覺하면,

그것은 그의 자아에의 執着인 것이며, 뭇 삶에의 執着인 것이며 영혼에의 執着인 것이며,

개인에의 執着인 것입니다.
世尊께서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이것은 어떻게 生覺하느냐? 돌아오지 않는 이가 이처럼 ‘나는 돌아오지 않는 이의 果報를

얻었다’고 生覺하느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世尊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돌아오지 않는 이의 성품에 든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이라고 합니다.
世尊께서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어떻게 生覺하느냐? 거룩한 이는 이처럼 ‘나는 거룩한 이의 果報를 얻었다’라고 生覺하느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世尊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거룩한 이로 불리울 만한 어떠한 법도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世尊이시여,

만약 거룩한 이가 이처럼 ‘나는 거룩한 이의 果報를 얻었다’고 生覺하면, 그것은 그의 자아에의 執着인

것이며, 뭇 삶에의 執着인 것이며, 영혼에의 執着인 것이며 개인에의 執着인 것이다.

世尊이시여, 저를 두고 이렇게 오신 이, 거룩한 이, 올바로 완전히 깨달은 이께서 번뇌 없이 사는 자들

가운데 최상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世尊이시여,

저는 탐욕을 끊은 자로 거룩한 이이지만, 世尊이시여, 저는 이처럼 ‘나는 거룩한 이다’라고 生覺하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만약 이처럼 제가 ‘나는 거룩한 이의 果報를 얻었다’라고 生覺했다면 如來께서

제게 ‘훌륭한 아들, 쑤부띠는 煩惱 없이 사는 자 가운데 最勝者이며, 어떠한 것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번뇌 없이 머문다. 煩惱 없이 머문다’라고 授記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용성】

須菩提야 저 뜻에 어떻다 하느냐. 須陀洹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 하느냐

마느냐?
須菩提 말하되
없습니다. 世尊님이시여 어찌한 緣故인가 하면 須陀洹은 이름이 流에 들어간다 하되 들어가는 바 없으니

 빛과 소리와 香氣와 맛과 부딪치는 것과 法에 들어가지 아니 할 새 이 이름이 須陀洹이니이다.
須菩提야 저 뜻에 어떻다 하느냐?

 斯陀含이 能히 이 生覺을 하되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 하느냐 마느냐?
須菩提 말하되
없습니다.世尊님이시여. 어찌한 緣故인가 하면 斯陀含이 이름이 한번 往來한다 하되 往來함이 없을 새

이 이름이 斯陀含이니이다.
須菩提야 저 뜻에 어떻다 하느냐. 阿那含이 能히 이 生覺을 하되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 하느냐 마느냐?
須菩提 말하되
없습니다. 世尊님이시여. 어찌한 緣故인가 하면 阿那含이 이름이 오지 아니한다 하되 實로 오지 아니함

이 없을 새 이런 故로 이름이 阿那含이니이다.
須菩提야 저 뜻에 어떻다 하느냐? 阿羅漢이 能히 이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느냐

마느냐?
須菩提 말하되
없습니다 世尊님이시여. 어찌한 緣故인가 하면 實로 法이 있음이 없음을 이름이 阿羅漢이니이다

世尊님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이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면 곧 我·人·衆生·壽者에

着함이니이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다툼이 없는 三昧를 얻어 사람 가운데 가장 第一이 됨이라 하시니 이는 第一 욕을 여읜

阿羅漢이니이다.
世尊님이시여 내가 이 生覺을 하되 내가 이 慾心을 여읜 阿羅漢이라고 아니하나이다. 世尊님이시여

내가 만일 이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면 世尊님께서 곧 須菩提가 이 阿蘭那行을 기꺼워

하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련마는 이 須菩提 實로 行하는 바 없을 새 須菩提를 이름하시되 이

阿蘭那行을 즐긴다 하시나이다.

 

 


【운허】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須陀洹이 生覺하기를 ??내가 須陀洹의 果를 얻었노라??하겠느냐???
須菩提가 여짜오되
“그렇지 않나이다. 世尊이시여. 須陀洹은 聖人축에 들었다 하지만은 實로는 들어간 일이 없사오니,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임과 法塵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이름을 須陀洹이라 하나이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斯陀含이 生覺하기를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노라??하겠느냐???
須菩提가 여짜오되,
“그렇지 않나이다. 世尊이시여, 斯陀含은 한번 다녀온다 하지마는 實로는 다녀옴이 없사 올 새 이름을

斯陀含이라 하나이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那含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노라.??하겠느냐???
“그렇지 않나이다. 世尊이시여, 阿那含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하지마는 實로는 다시 오지 아니함이 없사

올 새 이름을 阿那含이라 하나이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羅漢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의 도를 얻었노라.??하겠느냐???
須菩提가 여짜오되,
“그렇지 않나이다. 世尊이시여, 그 까닭을 말하오면 實로는 아무 法도 없는 것을 阿羅漢이라 하나이다.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의 도를 얻었노라.??한다면 이것은 내라,

사람이라, 衆生이라, 오래 산다는 固執에 執着되는 것이옵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일러서 다툼 없는 三昧를 얻은 사람 중에 第一이라 하시온 즉,

이것이 첫째가는 慾心 없는 阿羅漢이오나 世尊이시여! 저는 慾心 없는 阿羅漢이라고 生覺하지 않나이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일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노라.??한다면

世尊께서 제가 阿蘭那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시지 않사오련마는 須菩提가 實로 行하는 일이

없사올 새 須菩提가 阿蘭那行을 좋아하는 이라고 이름하셨나이다.??

 

 


【신소천】

“須菩提야 네 뜻이 어떠하냐? 須陀洹이 能히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 하는 生覺을 가지겠느냐???
須菩提가 말씀드리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어찌한 緣故입니까? 須陀洹은 流에 든다 이름하나 들어 간 바가 없으니 빛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부디 침과, 法에 들지 아니함에 이 이름을 須陀洹이라 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斯陀含이 能히 이러한 生覺을 짓되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 하겠느냐??
須菩提 말씀 여쭙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어찌한 緣故입니까. 斯陀含은 한번 往來한다 이름할지나 實은 往來함이

없을 새 이 이름이 斯陀含이라 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이 어떠하냐. 阿那含이 能히 이러한 生覺을 짓되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하겠는가.??
須菩提가 말씀드리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 그러하옵니까?

阿那含은 「오지 아니한다」이름할지나 實은 오지 아니함이 없을 새, 이것이 阿那含이라 이름하는

緣故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阿羅漢이 이러한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 도를 얻었다’ 하겠느냐.??
須菩提가 말씀드리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 그러합니까요? 實로 法이 있음이 없음을 阿羅漢이라 이름하나이다.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내가 阿羅漢 도를 얻었다’ 이렇게 生覺을 할 것 같으면 곧 我?人?衆生?壽者에

 착하는 것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나를 ‘다툼이 없는 三昧를 얻음이 사람 가운데에 第一이라’ 말씀하셨으니,

이는 욕을 여읜 第一의 阿羅漢이오나, 世尊이시여 저는 욕을 여읜 阿羅漢이라는 生覺을 갖지 않음입니

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일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生覺 할지면 世尊께서 곧 ‘須菩提로 阿蘭那行을 즐기

는 자??라고 말씀 아니 하셨을 것입니다.

須菩提가 實로 行한 바가 없을 새 ??須菩提로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 이름하신 것입니다.??

 

 


【권상로】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뇨 須陀洹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고 하느냐
須菩提 말씀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쩐 緣故냐 하면 須陀洹은 이름이 入流이지마는 實로는 들어온 바가 없으니

色·聲·香·味·觸·法에 들어오지 않음이 이름이 須陀洹이니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뇨 斯陀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고 하느냐
須菩提 말씀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쩐 緣故냐 하면 斯陀含은 一往來라고 이름하지마는 實로는 往來가 없을 새

이를 斯陀含이라 이름하나이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뇨 阿那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고 하느냐

須菩提 말씀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쩐 緣故냐 하면 阿那含은 이름이 不來이지마는 實로는 아니옴도 없을 새

이런故로 이름이 阿那含이니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뇨 阿羅漢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고 하느냐
須菩提 말씀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쩐 緣故냐 하면 實로 法이 있지 아니함을 이름하여 阿羅漢이니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이렇게 生覺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고 하면 곧 아·인·衆生·수자에 着함이 되나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이 이 말씀하시되 내가 無諍三昧를 얻은 것은 사람들 중에 第一이라고 하시니

이 第一 되는 離欲阿羅漢이지마는 世尊이시여 나는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이 離欲 阿羅漢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내가 만일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고 하면 世尊께서 곧

須菩提는 이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마는 須菩提가 實로 行하는바가 없으므로써

須菩提는 이 阿蘭那行을 즐긴다고 이름하심이니다

 

 


【명봉】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須陀洹이 能히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고 하는가?
須菩提가 말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쩜인고 須陀洹이 이름이 ‘流??에 들어감이라 하되 들어가는 바 없어

色?聲?香?味?觸?法塵에 들어가지 아니하여서 이 이름이 須陀洹이니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斯陀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고 하는가?
須菩提가 말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쩜인고 斯陀含이 이름이 한번 갔다 옴이라 하되 實로 가고 옴이 없어야사

이 이름이 斯陀含이니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阿那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고 하는가?
須菩提가 말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쩜인고 阿那含이 이름이 오지 않음이라 하되 實로 오지 않음이 없어야 사,

이 이름이 阿那含이니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阿羅漢이 能히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고 하는가?
須菩提가 말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쩜인고 實로 法 阿羅漢이라 이름 할 것이 없습니다.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고 하면 곧 我·人·衆生·壽者相에 着함이 됩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나를 無諍三昧 얻은 사람 가운데 가장 第一이라고 하시나니

이 第一 욕을 여읜 阿羅漢이오나, 내가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이 욕을 여읜 阿羅漢이라 하노이다.

世尊이시여! 내가 만약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면 世尊께서 곧 須菩提가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 說하지 않으시련마는 須菩提 實로 行하는 바 없을 새 須菩提를 이름하여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 하시나이다.

 

 


【기산】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須陀洹이 能히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노라고 生覺하느냐 않느냐?
須菩提가 여쭈되,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須陀洹을 이름하여 入流라 하지만 實로는 든 바가 없는 것이니,

色·聲·香·味·觸·法에 들지 아니한 것이 須陀洹이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斯陀含이 能히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노라고 生覺하느냐 않느냐.
須菩提가 여쭈되,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斯陀含을 이름하여 일往來라 하지만 實로는 가고 옴이 없는 것이

斯陀含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阿那含이 能히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노라고 生覺하느냐, 않느냐.
須菩提가 여쭈되,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 하면 阿那含을 이름하여 不來라 하지만 實로 오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

阿那含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阿羅漢이 能히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노라고 生覺하느냐, 않느냐.
須菩提가 여쭈되,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實로 阿羅漢이라고 이름지을 法이 없는 것이니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노라고 生覺하면 곧 我·人·衆生·壽者에 執着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더러 無諍三昧를 얻은 것은 여러 羅漢 가운데 가장 第一이라 하시어

第一 이욕 阿羅漢이라고 말씀하시나 世尊이시여, 저는 내가 이 離欲阿羅漢이라고 生覺하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일 나는 阿羅漢 도를 얻었다고 生覺한다면 世尊께서 곧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須菩提가 實로 行한 바가 없기 때문에 須菩提는 이

阿蘭那行을 즐긴다고 이름하신 것입니다.

 

 


【해안】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須陀洹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 하겠느냐.’
須菩提가 말씀하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 그러한고 하면, 須陀洹은 성류에 든다는 이름이오나,

들어간바 없아오니, 빛이나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부딪침이나 法에 들어가지 아니함이 이 이름이

須陀洹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斯陀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 하겠느냐’
須菩提가 여쭈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한 緣故이냐. 斯陀含은 한번 갔다 온다는 뜻이나, 實로 가고 옴이 없을 새,

斯陀含이라 이름합니다.
須菩提야, 네 뜻이 어떠하냐. 阿那含이 能히 이러한 生覺을 하되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 하겠는가’
須菩提가 말씀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한 緣故이냐 阿那含은 오지 않는다는 말이오나, 實로 오지 아니함이 없음일 새, 이런故로 이름을

阿那含이라 합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阿羅漢이 能히 이러한 生覺을 가지되, ‘내가 阿羅漢 도를 얻었다 하겠느냐’
須菩提(須菩提)가 말씀하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한 緣故이냐 하면 實로 法이 있음이 없어야 이름이 阿羅漢입니다.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 도를 얻었다 하면,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내가 고요한 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 가장 第一인지라 이것이 第一 慾心을

떠난 阿羅漢이라 말씀 하셨아오나 世尊이시여 내가 이 慾心을 女人 阿羅漢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내가 만약, 阿羅漢道를 얻었다는 生覺을 가졌으면, 世尊께서 곧 須菩提에게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 아니하셨을 것이나 實은 須菩提가 行한 바가 없을 새, 須菩提더러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고 이름한 것입니다.

 

 


【청담】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須陀洹이 生覺하기를 ‘나는 須陀洹果를 證得했노라’하겠느냐??
須菩提가 여쭈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 하오면 須陀洹이라 함은 聖人의 흐름에 들어갔다는 말이지만 實은

들어간 것이 아니오니, 물체 소리 향내 맛 촉감 法에 들어간 것이 아니 온데 이름을 須陀洹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斯陀含이 生覺하기를 ??나는 斯陀含果를 證得했노라??하겠느냐??
須菩提가 여쭈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어. 왜냐 하오면 斯陀含이라 함은 ??한번 갔다 온다??는 말이지만 實은 가고

옴이 없는 것을 斯陀含이라 이름한 때문이옵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阿那含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那含果를 證得했노라??하겠느냐.??
須菩提가 여쭈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 하오면 阿那含은 오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實은 오지 않는 것도

없사오니 그래서 이름을 阿那含이라 하였기 때문이옵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阿羅漢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道를 證得했노라??하겠느냐.??
須菩提가 여쭈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 하오면 實로 어떠한 法도 없는 것을 阿羅漢이라 이름하는 때문이옵니다.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道를 證得했노라?? 하오면 곧 나라는 生覺,

남이라는 生覺, 衆生이란 生覺, 오래 산다는 生覺이 남아 있는 것이옵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제가 ‘다툼 없는 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 가장 第一이라.??말씀하였사오니

이것이 첫째 가는 慾心 없는 阿羅漢이오나,
世尊이시여, 저는 ‘내가 慾心을 여읜 阿羅漢이라는 生覺??을 하지 않사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일 阿羅漢道를 얻었다고 生覺하오면 世尊께서는 곧 須菩提에게 阿蘭那行을 좋아하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 온데 實은 須菩提가 行함이 없기 때문에 須菩提는‘阿蘭那行을

좋아한다??고 이름하셨사옵니다.??

 

 


【탄허】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須陀洹이 能히 이 生覺을 짓되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고 하느냐 마느냐?
須菩提 말씀하시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 쓴 緣故뇨. 須陀洹이 이름이 入流가 되되 입한 바가 없나니,

色·聲·香·味·觸·法에 입하지 않을 새 이 須陀洹이라 명하나이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斯陀含이 能히 이 生覺을 짓되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 하느냐 않느냐?
須菩提가 말씀하시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 쓴 緣故뇨. 斯陀含이 一往來라 이름하되,

實로 往來함이 없을 새 이 斯陀含이라 이름하나이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阿那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 하느냐 않느냐?
須菩提가 말씀하시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 쓴 緣故뇨. 阿那含은 이름이 불래가 되되 實로

오지 않음도 없을 새 이런 故로 阿那含이라 명하나이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阿羅漢이 能히 이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느냐 않느냐?
須菩提가 말씀하시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찌 쓴 緣故뇨. 實로 法 阿羅漢이라 이름 할 것이 없나니,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이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면 곧 我·人·衆生·壽者에 着함이

되나이다. 世尊이시여! 불이 說하시되 내가 無諍三昧를 얻어서 인중에 가장 第一이 되는지라

이 第一 욕을 여읜 阿羅漢이라 하시나 내가 이 生覺을 짓되 내가 이 욕을 여읜 阿羅漢이라 않노이다.

世尊이시여! 내가 만일 이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면 世尊이 곧 須菩提가 阿蘭那行을

좋아하는 자라 說하지 않으시려니와 須菩提가 實로 行한 바가 없음을 쓸 새 須菩提가 이 阿蘭那行을

좋아한다 이름하시나이다.

 

 


【광덕】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須陀洹이 能히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하는 生覺을 가지겠느냐?”
須菩提가 말씀드렸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오면 須陀洹은 이름을 聖流에 든다 하오나 實로는 들어간 바가 없사와

形相이나 성·향·미·촉·法에 들어가지 아니하오니 이를 須陀洹이라 이름하옵니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斯陀含이 能히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 하는 生覺을 가지겠느냐?”
須菩提가 말씀드렸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 하오면 斯陀含은 이름이 一往來이오나 實로는 오고 가는 바가 없사오니 이를 斯陀含이라 이름하옵니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那含이 能히 生覺하기를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하겠느냐?”
須菩提가 말씀드렸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 하오면 阿那含은 이름을 오지 않는다 하오나 實은 오지 아니함이

없사오니 이 까닭에 阿那含이라 이름하옵니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羅漢이 能히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하겠느냐?”
須菩提가 말씀드렸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 하오면 實로 法이 없음이 이름이 阿羅漢이옵니다.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生覺하기를‘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하오면 곧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着함이

되옵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이라 말씀하셨으니 이는

慾心을 여읜 第一의 阿羅漢이라 하심이옵니다. 그러하오나 저는 慾心을 여읜 阿羅漢이라는 生覺을

하지 않사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약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고 生覺한다면 世尊께서는 곧 須菩提에게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려면 須菩提가 實로 行하는 바가 없사오므로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고 이름하셨습니다.

 


【월운】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須陀洹이 生覺하기를 ??내가 須陀洹의 과위를 얻었다??하겠느냐???
須菩提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須陀洹은 入流라 하지만 實로는 들어간 일이 없으니,

 色?聲?香?味?觸?法에 들지 않으므로 이름을 須陀洹이라 합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이 어떠하냐? 斯陀含이 生覺하기를 ??내가 斯陀含의 果位를 얻었노라??하겠느냐???
須菩提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斯陀含은 一往來라 하지만 實로는 往來함이 없으므로

이름을 斯陀含이라 합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阿那含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那含의 果位를 얻었노라.??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阿那含은 不來라 하지만 實로는 다시 오지 아니함이 없으므로 이름을 阿那含이라 합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阿羅漢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의 道를 얻었노라.??하겠느냐???
須菩提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實로 아무 것도 阿羅漢이라 할 法이 없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의 道를 얻었노라.??한다면 이는 곧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執着되는 것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일러서 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중에 第一이라 하셨는데 이는 慾心을

여읜 阿羅漢이기 때문입니다 마는 저는 제가 慾心을 여읜 阿羅漢이라고 生覺지는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일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의 道를 얻었노라.??한다면 世尊께서는 저를 阿蘭那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만, 須菩提가 實로 그러지 않았으므로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무비】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須陀洹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 하는가.??
須菩提가 말씀드리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須陀洹을 入流라 하지만 들어간 바가 없으니

色?聲?香?味?觸?法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이를 이름하여 須陀洹이라 하옵니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斯陀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하는가??
須菩提가 말씀드리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斯陀含은 一往來로되 往來함이 없으므로 斯陀含이라

합니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那含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하는가.??
須菩提가 말씀드리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阿那含은 이름이 오지 않는다 하오나 實로는 오지 않음이 없으므로 이름이 阿那含이라 합니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羅漢이 能히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果를 얻었다.??하는가.??
須菩提가 말씀드리되,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實로 阿羅漢이라 할 法이 없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면 곧 我相?人相?衆生相?

壽者相에 執着함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무쟁 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에서 第一이라 하시니, 이는 慾心을 떠난

第一의 阿羅漢이라고 하심이나 저는 慾心을 떠난 阿羅漢이라고 生覺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약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하면 世尊께서는 곧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려니와 須菩提가 實로 行하는 바가 없으므로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고 이름하셨습니다.??

 

 


【석진오】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須陀洹이 能히 生覺하기를, ‘나는 須陀洹의 성果를 얻었다.’고

하겠는가?
須菩提가 말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須陀洹은 이름하여 入流라고 하지만, 들어가는 바가 없으며

色·聲·香·味·觸·法에 들어가지 않음을 이름하여 須陀洹이라고 합니다.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斯陀含이 能히 生覺하기를, ‘내가 斯陀含의 성果를 얻었다’는

生覺을 하겠는가?
須菩提가 말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斯陀含을 一往來라 이름하지만 사實은 往來가 없으므로 이것을

斯陀含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阿那含이 能히 生覺하기를, ‘내가 阿那含의 성果를 얻었다’라는

生覺을 하겠는가?
須菩提가 말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阿那含을 不來라고 부르지만 사實은 불래가 없으므로 阿那含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阿羅漢은 能히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의 도를 얻었다’는 生覺을 하겠는가?
須菩提가 말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사실 法으로서의 阿羅漢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으로서 내가 阿羅漢 도를 얻었다고 이렇게 生覺하면, 곧 我·人·壽者에 執着하는

 것입니다.
世尊이시여, 당신께서는 저를 “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에서 第一이다. 第一 貪欲이 없는 阿羅漢이다”라고 하셨지만 저는 “나는 貪欲이 없는 阿羅漢이다”라는 生覺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만일 제가 “내가 阿羅漢 도를 얻었다”라고 이러한 生覺을 일으킨다면, 世尊께서는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이다.
須菩提는 사실 行하는 바가 없이 行함으로써 須菩提는 이 阿蘭那行을 즐긴다라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홍정식】

須菩提야 네 生覺에는 어떠하냐, 수타원에 든 사람이 나는 수타원果를 얻었다라고 生覺하겠느냐?
須菩提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째서냐 하오면 수타원은 성류에 들어갔다는 이름이긴 하나 실지로는 들어간

바가 없는 것입니다.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부디지침과 法에 들어가 있지 않는 것을 곧 이름하여

수타원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斯陀含에 이른 사람이 스스로 나는 斯陀含果를 얻었다 라고 生覺하겠느냐?
須菩提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째서냐 하오면 斯陀含은 한 번 갔다가 온다고 뜻이긴 하지만 실지로는 가고 옴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斯陀含이라고 불리옵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에는 어떠하냐 阿那含이 나는 阿那含果를 얻었다 라고 生覺할 것 같으냐?
須菩提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째서냐 하오면, 阿那含은 오지 않는다는 말이긴 하지만 실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阿那含이라 불리옵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아란한이 스스로 내가 阿羅漢의 도를 얻었다 라고 生覺하겠느냐?
須菩提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어째서냐 하오면 실지로는 阿羅漢이라 불려질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내가 阿羅漢의 도를 얻었다고 하는 生覺을 갖게 되면 이는 곧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執着되는 것이 되옵니다.
世尊이시여, 如來께서 저를 고요한 다툼이 없는 것 三昧를 믿은 사람 가운데 첫째가는 사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世尊이시여 제게는 내가 慾心을 떠난 阿羅漢이다 하는 生覺은 없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일 阿羅漢의 도를 얻었다는 生覺을 가졌으면, 如來께서는 須菩提가 阿蘭那行을

즐기는 사람이다 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기추】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느냐. 須陀洹이 能히 生覺을 짓되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다 하겠느냐???
須菩提가 말씀 여쭈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무슨 까닭으로써 이겠습니까. 須陀洹은 聖流에 든다는 이름이로되 드는 바가

없음일 새 빛깔?소리?냄새?맛?닿질림?요량에 들지 아니함임을 須陀洹이라 이름할 뿐입니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느냐. 斯陀含이 能히 生覺을 짓되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다 하겠느냐???
須菩提가 말씀 여쭈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무슨 까닭으로써 이겠습니까. 斯陀含은 한번 往來한다는 이름이로되 實은

往來함이 없음일 새 斯陀含이라 이름 할 뿐입니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느냐. 아니함이 能히 生覺을 짓되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다 하겠느냐???
須菩提가 말씀 여쭈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무슨 까닭으로써 이겠습니까. 阿那含은 오지 않는다는 이름이로되 實로

오지 않음이 없음일 새 이런 까닭으로 阿那含이라 이름할 뿐입니다.??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느냐, 阿羅漢이 能히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하겠느냐?」
須菩提가 말씀 여쭈되”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무슨 까닭으로써 이겠습니까. 實로 法 있음이 없음을 阿羅漢이라 이름할 뿐이오니,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生覺을 짓되 제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오면 곧 我?人?衆生?壽者에

붙임이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다툼없는 三昧를 얻어서 사람 가운데 가장 第一이기에

이를 第一 하고자 함을 여읜 阿羅漢이라 말씀하시나 저는 이러한 生覺을 짓지 아니하므로 저를 하고자

함을 여읜 阿羅漢이라 합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약 生覺을 짓되 제가 阿羅漢道를 얻었다면 世尊께서는 곧 須菩提로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 말씀을 아니하시련마는 須菩提가 實로 行한 바가 없음일.새
須菩提로 阿蘭那行을 즐긴다 이름하심이니다”

 

 


【이기영】

“須菩提여, 네 生覺이 어떠하냐?
須陀洹이 ‘能히 내가 須陀洹의 열매를 얻었다’라고 生覺하겠느냐?”
須菩提가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須陀洹은 入流란 이름이지만, 들어가는 바가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느낌과 法에 들어가지 아니함을 이름하여 須陀洹이라 할 뿐입니다.”
“須菩提여, 네 生覺이 어떠하냐?
斯陀含이 ‘能히 내가 斯陀含의 果報를 얻었다’라는 生覺을 가지겠느냐?”
須菩提가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斯陀含은 一往來란 뜻이지만, 實은 가고 옴이 없는 까닭에

이름하여 斯陀含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須菩提여, 네 生覺이 어떠하냐?
阿那含이 ‘能히 내가 阿那含의 果報를 얻었다’라는 生覺을 가지겠느냐?”
須菩提가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阿那含은 不來, 오지 않음의 뜻이지만, 實은 ‘오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阿那含이라고 하는 것이옵니다.”
“須菩提여, 네 生覺이 어떠하냐?
아란한이 ‘能히 내가 阿羅漢의 도를 얻었다’라고 生覺하겠느냐?”
須菩提가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實로 ‘法이 없음’을 불러 阿羅漢이라 하옵니다.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내가 阿羅漢의 도를 얻었다’ 이와 같이 生覺한다면,

그는 곧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執着하는 것이옵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에서 第一이다. 이는 第一 가는 離欲阿羅漢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慾心을 떠난 阿羅漢이라는 生覺까지도 내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약 阿羅漢의 도를 얻었다는 生覺을 가졌으면 世尊께서 ‘곧 須菩提가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須菩提가 實은 行한 바가 없는데,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이름한 까닭입니다.“

 

 


송찬우】

“須菩提야, 너의 意圖론 어떠하냐. 須陀洹이 須陀洹果를 成就하고 나서 나는 實在하는 須陀洹果를

얻었다라고 生覺하겠느냐?”
須菩提는 말하였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須陀洹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갔다는 意味에서 入流라는 名稱으로

부르긴 하오나 實際로 생사를 거슬러 올라간 따로의 자취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色·聲·香·味·觸·法의 六塵 境界에 執着心으로 들어가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須陀洹이라는

임시 名稱으로 부르옵니다.”
“須菩提야, 너의 意圖론 어떠하냐, 斯陀含이 斯陀含果를 成就하고 나서 나는 斯陀含果를 얻었다라고

여기겠느냐?”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斯陀含은 欲界의 한 품 사혹을 끊기 爲해 欲界로 한 번 찾아와서 그것을 끊고는

 이로부터 永遠히 欲界로부터 떠난다는 意味인 일往來라고 부르긴 하오나 實際로 내왕하면서 따로

安住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斯陀含이라는 임시 名稱으로 부르옵니다.”
“須菩提야, 너의 意圖론 어떠하냐,
阿那含이 阿那含果를 成就하고 나서 나는 阿那含果를 얻었다라고 여기겠느냐?”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阿那含은 欲界로 찾아와서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意味에서 不來라는 名稱으로 부르긴 하오나 安住할 만한 오지 않은 實在의 處所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阿那含이라 부르옵니다.”
“須菩提야, 너의 意圖론 어떠하냐.
阿羅漢이 阿羅漢道를 成就하고 나서 나는 阿羅漢道를 얻었다라고 여기겠느냐?”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그들 모든 法들은 一切 모두가 實際로는 자성이 없는 理致임을 보고

그들 法에 있어서 한 마음도 執着 分別心을 내지 않음을 阿羅漢이라는 임시 名稱으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阿羅漢이 나는 實在하는 따로의 阿羅漢道를 얻었다라고 生覺한다면 그는 즉시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執着하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는 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첫 번째이다.

이는 욕구를 떠난 第一가는 阿羅漢이다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世尊이시여! 저는 욕구를 떠난 實在의 阿羅漢이라는 生覺을 하지 않았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일 實在하는 阿羅漢 도를 얻었다라고 生覺했었다면 世尊께서 須菩提는 고요하고

안정된 修行인 阿蘭那行을 좋아하는 자라고 칭찬의 말씀을 해 주시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須菩提 저는 實際로는 고요하고 안정된 阿蘭那行을 行한다는 分別 執着心이 없아온 데서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좋아한다는 임시적 名稱으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阿羅漢道 저와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이제열】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須陀洹이 生覺하기를 ‘내가 須陀洹果를 얻었노라’ 하겠느냐?”
須菩提가 사뢰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須陀洹은 聖人의 경지에 들었음을 이름한 말이오나 實은 들어간

바가 없어서 模樣이나 소리, 냄새, 맛, 감촉, 觀念에 빠지지 않았기에 이름하여 須陀洹이라 하였을

따름입니다.”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斯陀含이 生覺하기를 ‘내가 斯陀含果를 얻었노라’ 하겠느냐?”
須菩提가 사뢰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斯陀含은 한 번 갔다 옴을 이름한 말이오나 實은 가고 온다는

生覺이 없기에 이름하여 斯陀含이라 하였을 따름입니다.”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那含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那含果를 얻었노라’ 하겠느냐?”
須菩提가 사뢰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阿那含은 오지 않음을 이름한 말이오나 實은 오지 않는다는

生覺이 없기에 이름하여 阿那含이라 하였을 따름입니다.”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羅漢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노라’ 하겠느냐?”
須菩提가 사뢰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實로 眞理라고 할 바 없음을 이름하여 阿羅漢이라 하였사옵니다.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노라’ 하면 이는 곧 ‘나라는 生覺’, ‘남이라는 生覺’, ‘

衆生이라는 生覺’, ‘오래 산다는 生覺’에 執着함이 되기 때문이옵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저를 ‘다툼이 없는 三昧를 얻은 가운데서 으뜸이라시며 慾心을 여읜

첫째 가는 阿羅漢이니라’ 하시오나,
世尊이시여, 저는 제가 慾心을 여읜 阿羅漢이라고 生覺하지 않사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약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고 生覺한다면 世尊께서는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아니 하셨을 것이지만 須菩提에게는 實로 阿蘭那行을 한다는 生覺이 없기 때문에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즐긴다’고 이름하셨사옵니다.

 

 


【문제현】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須陀洹이 須陀洹果를 얻었다는 生覺이 있겠느냐?”
須菩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聖人의 무리에 들었다 하여 須陀洹이라 이름하나, 實로 들어간 바

없어서, 색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촉감과 法에도 들어감 없는 것이 須陀洹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斯陀含이 斯陀含果를 얻었다는 生覺이 있겠느냐?”
須菩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한 번 갔다 왔다고 하여 斯陀含이라 이름하나, 實로 가고 옴이 없는

것이 斯陀含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那含이 阿那含果를 얻었다는 生覺이 있겠느냐?”
須菩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阿那含이라 이름하나, 實로 돌아오지 않음도

없는 것이 阿那含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羅漢이 阿羅漢道를 얻었다는 生覺이 있겠느냐?”
須菩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實로 法이라 할 것이 없어야 阿羅漢이라 하니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阿羅漢道를 얻었다는 生覺을 내면 곧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執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다툼이 없는 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 가장 第一이라 하시니,

이는 慾心을 여읜 阿羅漢 가운데 第一이라는 말씀이시나 世尊이시여, 저는 慾心을 여읜 阿羅漢이라는

生覺도 없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약 阿羅漢道를 얻었다는 生覺이 있다면 世尊께서 저에게 아란나 행을 좋아하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겠지만, 實로 行하는 바 없으므로 저에게 아란나 행을 좋아한다

말씀하셨습니다.”

 

 


【김용옥】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뇨? 須陀洹이 ‘나는 須陀洹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生覺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提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世尊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須陀洹을 이름하여 ‘들어간 자’라 하지만, 그는 들어감이 없습니다. 그는 형체에도, 소리에도, 내음새에

도, 맛에도, 만져지는 것에도, 마음의 對相에도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만 須陀洹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뇨? 斯陀含이 ‘나는 斯陀含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生覺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提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世尊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斯陀含을 이름하여 ‘한번 왔다갔다할 자’라 하지만,

그는 實際로 왔다갔다함이 없기 때문에 바로 斯陀含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뇨? 阿那含이 ‘나는 阿那含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生覺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提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世尊이시여! 어?서이오니이까? 阿那含을 이름하여 ‘이제 다시 아니올 자’라 하지만,

實際로 온다 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만 아니함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뇨? 阿羅漢이 ‘나는 阿羅漢의 도를 얻었노라’하는 生覺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提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世尊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實際로 阿羅漢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法이 도무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만약 阿羅漢이 ‘나는 阿羅漢의 도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生覺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곧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執着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無諍三昧의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 됨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니,

이는 慾心을 떠난 第一의 阿羅漢이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慾心을 떠난 阿羅漢이다라는 이 같은 生覺을 짓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阿羅漢의 도를 얻었다’라는 生覺을 했다면,

世尊께서는 須菩提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須菩提는 實際로 行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須菩提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조현춘】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 須陀洹이 ‘나는 須陀洹의 경지를 이루었다 ’ 는 生覺을 하겠느냐?”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須陀洹이라는 말은 世上 흐름을 뛰어넘었다는 意味이나 뛰어넘었다는

生覺에 걸리지 않고, 形相·소리·냄새·맛·촉감·分別을 뛰어넘었다 生覺에 걸리지 않아야

참된 須陀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 斯陀含이 ‘나는 斯陀含果의 경지를 이루었다’ 는 生覺을 하겠느냐?”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斯陀含이라는 말은 한 번 갔다 오면 성불한다는 意味이나,

한 번 갔다 오면 성불한다는 生覺에 걸리지 않아야 참된 斯陀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阿那含이 ‘나는 阿那含의 경지를 이루었다 ’는 生覺을 하겠느냐 ?”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阿那含이라는 말은 다시는 오지 않고 바로 성불한다는 意味이나,

다시는 오지 않고 바로 성불한다는 生覺에 걸리지 않아야 참된 阿那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 阿羅漢이 ‘나는 阿羅漢의 경지를 이루었다’ 는 生覺을 하겠느냐?”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한 生覺에 걸리지 않아야 참된 阿羅漢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나는 阿羅漢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生覺을 하는 阿羅漢은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걸려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보고 ‘매우 평화롭고 흐뭇하게 사는 경지를 이루었다’ 고 하시므로,

저는‘ 貪欲에서 벗어난 阿羅漢’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自身이‘ 나는 貪欲에서 벗어나 阿羅漢의 경지를 이루었다’ 는 生覺을 하지는 않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나는 阿羅漢의 경지를 이루었다 ’는 生覺을 한다면,

부처님께서 저를 보고 ‘須菩提는 阿蘭那行을 하고 있다 ’ 는 말씀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가 그러한 生覺을 하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須菩提가 참으로 阿蘭那行을 하고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백성욱】

須菩提야! 뜻의 일은 어떠한고? 須陀洹이 능히 이런 生覺을 짓는다면 내가 須陀洹이 돼서 비로소 이런

소리를 했느냐?
須菩提가 말하되,
아닙니다. 世尊님. 왜 그런고 하니, 須陀洹이란 것은 이름이 인제 工夫 始作한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形相이든지 소리든지 냄새든지 맛이든지 또 부드러운 것이든지 이것은 이 오관을 통한다

그 말입니다.
須菩提야! 뜻의 일은 어떠한고? 내가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斯陀含이 능히 이런 生覺을 作하겠느냐?
須菩提가 말하되,
아닙니다. 世尊님. 왜 그런고 하니, 사다함이란 것은 몸뚱이를 한 번 받는다는 말입니다.
須菩提야! 뜻의 일은 어떠한고? 아나함이 능히 이런 生覺을 짓는다면 내가 아나함과를 얻었느냐

말았느냐?
須菩提가 말하되,
아닙니다. 世尊님. 왜 그런고 하니, 아나함이란 이름이 오지 않는다 함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고로

이름이 아나함입니다.
須菩提야! 뜻의 일은 어떠한고? 아라한이 능히 이런 生覺을 짓는다면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느냐

말았느냐?
須菩提가 말하되,
아닙니다. 世尊님. 아라한이란 것은 실로 무슨 生覺도 관념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라한입니다.

世尊하 만약 아라한이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그러면 아마 얻은 내가 있고 얻지

못한 남이 있고 또 아지 못한 衆生이 있고 또 경험이 있다는 壽者가 있을 것입니다.

世尊님이시여 부처님이 설하시되 내가 남하고 다툼이 없는 三昧를 얻어서 사람 가운데 가장 제일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이것이 욕심이 없는 離欲阿羅漢일 것입니다.
世尊님이시여 내가 만약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면 아마 부처님은 날 보고

그 阿蘭那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시지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須菩提는 실로 그런 짓을 도무지 안 했기 때문에 須菩提가 이 阿蘭那行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김운학】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須陀洹이 능히 生覺을 지어 나는 須陀洹果를 얻었다 할 수 있겠느냐?
須菩提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須陀洹은 그 이름이 유에 든 것이나 실은 들어간 바 없기 때문이며,

색·성·향·미·촉·법에 들어가지 아니한 것을 이 須陀洹이라 이름합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은 어떠하냐? 斯陀含이 능히 生覺을 지어 나는 사다함과를 얻었다 할 수 있겠느냐?
須菩提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斯陀含은 그 이름이 往來지만 실은 왕래가 없기 때문에 이 이름이

斯陀含입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이 어떠하냐? 阿那含이 능히 生覺을 지어 나는 阿那含果를 얻었다. 할 수 있겠느냐?
須菩提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阿那含은 그 이름이 不來지만 실은 옴이 없기 때문에 이 이름을

阿那含이라 합니다.
須菩提야, 네 生覺이 어떠하냐? 阿羅漢이 능히 生覺을 지어 나는 阿羅漢道를 얻었다 할 수 있겠느냐?
須菩提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이 生覺을 짓기를 나는 阿羅漢 道를 얻었다 하면 이는 곧

我·人·衆生·壽者相에 執着하는 것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다툼이 없는 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 으뜸이다.

이는 慾心을 떠난 第一의 阿羅漢이다. 말해도 저는 내가 이 욕심을 떠난 阿羅漢이다 라는 그런 生覺을

하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내가 만일 生覺하기를 내가 阿羅漢道를 얻었다 하면 世尊께서는

곧 須菩提는 이 阿蘭那의 行을 즐기는 자다 須菩提는 실로 행하는 바가 없어 須菩提는 이 阿蘭那行을

즐긴다고 이름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진탁】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須陀洹을 證得한 사람이 自己는 須陀洹이란 境地를 얻었다고

生覺하겠느냐?"
須菩提가 답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須陀洹이란 편안한 흐름에 들어갔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어디에도

들어간 바 없고 模樣, 소리, 향기, 맛, 감촉, 의식의 對相 여섯 가지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須陀洹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斯陀含을 얻은 사람이 自身이 斯陀含이란 果報를 얻었다고

生覺하겠는가?"
須菩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斯陀含이란 한번 오고 간다는 意味이기는 하지만 實은 오고 감이 없기

때문에 이를 斯陀含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阿那含이 스스로 阿那含 이란 境界를 얻었다고 生覺하겠느냐?"
須菩提가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阿那含이란 오는 것이 없다는 뜻이기는 해도 實은 오지 않음도

없기 때문에 이를 阿那含이라 이름합니다."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보느냐?
阿羅漢의 경지를 證得한 人物이 自己가 阿羅漢이란 果報를 얻었다고 生覺하겠느냐?"
須菩提가 말했다.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阿羅漢이라 일컬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어떤 阿羅漢이라 할지다로

自身이 阿羅漢의 도를 證得 했다고 分別하면 곧 自己, 사람, 衆生, 存在에 대한 執着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須菩提는 조금도 다툼이 없는 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 으뜸이다. 慾心을 떠난 第一 뛰어난 阿羅漢이다.'
世尊이시여! 하지만 저는 自身이 慾心을 떠난 阿羅漢이라 生覺하지 않습니다. 世尊이시여!

만일 제가 阿羅漢의 境界를 얻었다고 分別한다 면 世尊께서는 제가 다툼 없는 三昧를 얻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實로 아무 것도 證得 한 바 없기에 다툼 없는 三昧를 즐긴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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