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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탄허 / 이 한잔 물이 동해물이 될 것이오(1)
呑虛 스님 生前 인터뷰(1)
金呑虛 스님의 대예언
<1983년 2월 마당>
허공을 삼킨 쇠붙이 김 탄허(金 呑虛)스님. 그는 분명 용광로일 터이다. '우주가 내 뱃속에 있으니 내 아들 아닌 사람이 없다'고 농담하는 사람. 그에 대한 여러 갈래의 평가에도 한 가지 일치하는 점이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봉의 학승(學僧). 불교뿐 아니라 유고, 도교 등 동양 사상 전반 특히 '화엄경'과 '주역'의 으뜸 권위자. 아울러 예언가. '듣기에 따라서는 예지의 거창함이 지나쳐 허황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뿌리치기 어렵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지식까지 동원하는 그의 예지에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동아일보' 김 중배 논설위원의 글에서. '탄허 스님 법어집'발문에서 인용)는 평을 듣기도 하는 김 탄허. 그는 70년 전 전북 김제에서 났다. 아버지는 최 면암 선생의 학문적 전통속에 있었던 김 홍규. 탄허 스님의 속명은 택성.
엄격한 유학 가문의 영향 속에서 스무 살 때까지 집에서 유학을 공부, 그 뒤 3년 동안은 도교에 심취했다가 스물두 살에 오대산 월정사로 입산, 출가했다. 당시 그는 아내와 아들 하나를 거느린 몸이었다.
고승 월정사의 방 한암 스님과 동양 사상을 문답하는 편지를 보내고 받기 3년만에 결심한 탈속의 길이었다. 탄허 스님은 10년의 작업으로 '화엄경' 80권과 '논'40권을 한국에선 처음으로 원고지 6만2천5백 장의 분량으로 번역, 출간한 것으로 이름 나 있다.
그는 '화엄경'뿐 아니라 '초발심자 경문''능엄경'등 중요한 불전은 거의 모두 번역했고 지금은 '장자'를 번역중이다. '화엄경'은 일본에서도 번역된 바 있으나 '논'은 탄허 스님의 번역 작업이 중국 이외에 나라에선 처음이다. '화엄경' 번역 원고는 탈고 2년 반이 지나도록 후원자가 없어 묵혀 있었던 적도 있었다.
강원도 총무원 원장, 오대산 수도원 원장, 동국대학교 선원장, 화엄학 연구소장, 동국대학교 이사 등의 이력이 보이는 것처럼 그는 주로 '가르치는' 입장의 승려 생활을 해 왔다. 지금은 월정사 조실로 있는 그를 지난 소한날(1월6일) 찾아갔을 때 탄허 스님은 특강 법회를 주재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15일부터 두 달 예정으로 시작된 이 법회는 4년만에 두 번째로 갖는 탄허 스님의 강론회였다.
제자들이 '원고 쓰기 바쁘다'는 스님을 한 달 동안 졸라서 마련한 강론회. 70여명의 승려와 신도들이 뜨끈뜨끈한 큰 온돌방에서 낭랑한 스님의 강론을 듣고 있었다.
예불이 끝난 저년 6시30분께, 방산굴로 불리는 그의 거처에서 나는 스님과 마주했다. 월정사의 여승들과 간부 스님들 칠, 팔 명이 그의 양쪽에 배석하고 있었다. 탄허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오똑하게 앉아 있었다. 상체가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며 퍽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글자 그대로 부도옹(不倒翁)의 인상이었다.
팽팽하게, 통통하게 살이 찐 탄허 스님의 가장 중심적 인상은 그의 머리 상이었다. 대칭형의 타원형인데, 앞, 옆, 뒤에서 보아도 럭비공처럼 거의 같은 모습의 비례감을 주는 그런 머리였다. 그날 그를 처음 본 사람들('마당' 기자와 비디오 촬영기사 팀)은 뒤에 한결같이 스님의 잘 생긴 두상을 잊지 않고 거론했다.
- 스님께서는 예언을 자주 하시고 또 그 예언들이 적중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스님께선 내년이 정말 중요한 해다, 보통 해가 아니라고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전망이 '주역'의 풀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좀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주역'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보통 사람들은 알아먹지 못해요. 다만 내년 갑자년은 60년마다 돌아오는 그런 갑자년이 아니다, 60년 주기의 첫해라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몇 백년만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좋은 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올해 계해년은 이 좋은 갑자년을 맞이하는 인시(寅時)와 같은 해인 것입니다. 옛 성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루의 계책은 인시에 있다, 인시면 새벽 세 시쯤입니다. 일년의 계책은 봄에 있다. 평생의 계책은 부지런함에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올해는 바로 밝아오는 새벽을 기다리는, 그리고 이제 동 터 오는 세 시대를 기다리는 그런 인시에 처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기분으로 올해를 살아야지요.
- 스님께서는 6.25 사변, 울진 공비 침투, 월남 패망, 그리고 몇 년 전의 사태까지 예견하셨다는 소문이 퍼져있고 그래서 이번에 하신 말씀, 내년부터는 국운이 트이기 시작한다는 말씀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6.25 전에 한암 스님을 상원사에서 20년 동안 모시고 있었습니다. 6.25 전해, 그러니까 기축년에 이사가자는 운동을 했지요, 한암 선생한테. 그런데 못 가시겠다고 그러신단 말에요.
그래서 이튿날에 가서, 스님 이사 안 가시렵니까, 못 가겠다, 이러신단 말입니다. 스님께서 농담삼아 메라구 하시는가 하니, 야, 옛날 말에도 있지 않나, 일지 일지 글이나 읽지, 이지 이지…, 삼지 삼지 신이나 삼지, 사지 사지 사는 데 사지, 이러신단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떠나겠습니다 했지요. 아이들 여섯 명이 나를 따랐는데 당시 스님의 시자인, 그 지금 주지 하는 사람보고 스님이 너도 떠나려느냐 했어요.
늙은 스님 홀로 남겨 두고 떠나겠다고 할 수 있나요. 시자가 남겠다고 했더니 스님도 남으셨죠. 그래서 이사 가는 운동은 실패했어. 우리는 통도사로 내려왔는데 6.25 사변이 터진 다음해에 스님을 문병하러 제가 다시 여기로 왔다가 죽을 고생을 했지요.
(필자 주 : 한국 근대 불교계의 이름난 고승인 방 한암 스님은 1951년에 가벼운 병을 얻었다. 발병 7일이 되는 아침에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시고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이 음력 2월 14일이지 하고 말한 뒤 오전에 가사와 장삼을 찾아서 입고 단정히 앉아서 태연한 자세를 갖추고 죽었다고 전한다.
세 시간 뒤 만공 스님의 제자이며 당시 육군 소령이었던 분이 스님의 열반한 시체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 흑백 사진은 탄허 스님의 방벽에 걸려 있었다. 방한 스님은 비스듬히 앉은뱅이 걸상에서 뒤로 상체를 기댄 채 낮잠 자는 자세로 있고 앞의 책상 위에는 불전이 여러 권 포개어져 있는 사진이다).
- 그 때 무슨 예감을 가지셨습니까?
뭐, 내가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면 개미떼가 자기들끼리 싸움질을 해서 수백 마리씩 죽어 있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법당에서도 그렇고, 이 중대 뜰에서도 그렇고, 그런 게 보이는 것 아닙니까? 하늘은 하늘의 상을 보이고, 땅은 땅의 상을 보이고, 사람은 사람의 상을 보이고… 꼭 사람의 상만 보는 것이 관상이 아니거든요. 짐승들도 지진을 예지한다는데 하물며 그런 큰 난리의 조짐은 다 보이게 되는 겁니다.
- 지난 '68년에 여기서 원고를 옮기실 때도 개미떼가 죽은 것 같은 그런 조짐을 보셨습니까?
그 때 난 말이요. 여기서 화엄경을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울진에서 공비 침투가 있기 한 달 전에 여기 있던 책과 원고를 삼척 영은사로 옮겼습니다. 그러니까 야단법석이 났지요. 그러나, 애비 일은 애비가 해야 되고 자식 일은 자식이 하지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짐을 옮기는 거지 몸을 옮기는 건 아니라고 (제자들을) 타일렀습니다. 그 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원고고 뭐고 큰 일이 날 뻔했지요.
- 불에 타버렸을 꺼란 말씀입니까?
그게 아니고 월정사 일대로 잔류 공비들이 도망쳐 와서 그들을 토벌하느라 이 근방은 쑥대밭이 되었지요. 강릉에서 한 달 있다가 소탕 작전이 끝난 여기로 되돌아왔는데 내가 기거하던 이 별당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더군요. 그래 이곳 유지들은 내가 이사를 간다고 법석을 떨더니 또 난리가 났다고 그럽디다만, 내가 뭐 알아서 그런 게 아니고 우연히 들어맞은 거지요. 미국이 월남에 참전했을 때도 나는, 지금은 미국에 가 있는 행원스님한테 미국이 실패하고 말 걸 하고 이야기했지요.
- 그런 말씀하실 때면 1965년쯤이 되겠는데 미군이 유리할 때 아닙니까?
말도 못하죠. 시작할 때야 미국이 하루 아침에 쓸어버릴 것 같았는데… 행원 스님은 친미하는 분인데 펄펄 뛰면서 그까짓 것이 뭐냐고, 원자탄 반 방이면 다 없앤다고 그러더만. 그래서, 나 세력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아니여, 어디까지나 추리인데 누가 맞는지 두고 보자고 했지요. 그러다가 10년쯤 뒤에 일본에 가서 행원 스님을 만났는데, 그 때는 월남 정부군이 후퇴한다고 야단할 땐데, 그 스님이 날 보고 아, 스님은 그때 미국이 저렇게 될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한 번 더 말씀해 달라고 하더군요. 나는 웃으면서 야당 있는 데선 말 안해, 여당이 있어야 말하지 했습니다만.
나는 세력으로 이야기 한 게 아니고 역학 원리에 다라 보았는데 월남은 이방(이方), 곧 남쪽인데 이는 불(火)로 풉니다. 미국은 태방(兌方)인데 금(金)이지요. 금이 불 속에 들어갔으니 녹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역학 원리에 화극금(火克金)이란 말이 있지요. 물곤 금덩어리가 워낙 크니까 다 녹는 건 아니지만 손해는 손해지요.
<필자 주 : 탄허 스님은 이밖에도 역학의 원리에 따라 지난 '75년에 한반도 주변 정세를 이렇게 푼 적이 있었다. 한국은 간방(艮方)이며 사람에 비유하면 소남(小男)이다. 미국은 소녀(小女)인데 소남과 소녀가 사이가 좋은 건 당연하다. 중국은 진방(震方)인데 장남으로 비유되며 소련은 감방(坎方)이고 중남(中男)이다. 월남은 중녀(中女)다. 중국과 미국은 장남과 소녀 사이로 음양 원리 따라 얼마 동안 그 관계가 지속될 것이나 오래 유지하지는 못한다. 장남과 중남, 즉 중공과 소련은 같은 양(陽)이기 때문에 조화될 수 없고 대립하기 마련이다. 반면 중남과 중녀 사이인 소련과 월남은 음양이 조화되어 친숙하기 마련이다.>
- 스님께서는 곧 다가올, 내년 갑자년으로부터 시작되는 좋은 시대에서는 종교, 특히 불교가 한국 사회의 중심이며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고 나아가서 한국이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적이 여러 번 있었지요?
그건 나 개인의 생각이 아니고…이태조가 국사로 모신 사람이 무학대사였습니다. 이 분이 태조를 위하여 도읍 터도 잡아 주고 했는데 종묘의 문에다가 메라고 썼느냐 하면 창엽문(蒼葉門0이라, 푸른 잎이란 뜻인데 기실은 무학대사가 여기 비결(秘訣)을 붙인 거지요. 푸른 창(蒼)은 이십팔 군(君)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초두 밑에 이십팔 군, 이파리 엽(葉)자는 이십팔 세(世)입니다. 이십팔 대, 이십팔 군왕. 당신, 이 태조가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이십팔 대 이십팔 군왕밖에는 더 못해 먹는다, 이런 듯이지요. 이런 비결을 붙인 양반이 다른 것도 안 맞을 리가 없지 않아요. 그이가 메라고 말했느냐 하면 왕씨는 나를 종 대접하고, 정씨는 나를 애비 대접할 것이다. 나란 여기서 불교를 말하는 건데 한양이 끝나고 정씨 도읍 터에서는 불교가 고려 때보다도 훨씬 대접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어요?
애비가 스승보다도 훨씬 가까우니까. 그렇습니다. 지리적으로 봐도 한양에는 불암이 동대문 바깥 삼십 리로 쫓겨 나갔습니다. 부처 바우가. 그렇지 않습니까? 불암리, 불암산, 불암사… 그렇다면 '정 감록'과 같은 얘기가 되는데요…
- 그게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허허. 수천 년, 수만 년 전부터, 이 땅이 생길 때부터죠. 그와는 반대로 계룡산에선 부처 바우, 불암리가 토곡안에 있습니다. 본시 이름은 불암리인데 부남리, 부남리라고 합니다만. 또 유성이 삼십 리 바깥으로 쫓겨 나왔잖아요. 유교의 성(儒城)이… 또 공암(孔岩), 공자 바우도 삼십 리 바깥으로 쫓겨나 있거든요, 핫핫하…. 그러니 누가 그렇게 만들었겠어요. 자연의 원리지요. 그리고 학술적으로도 말이지요.
근래에, 일백 년 이래에 가장 뛰어난 이인(異人)이라면 김 일부 선생과 강 증산 선생 두 분을 꼽고 싶은데 김 일부 선생이 '정역'(正易)에서 메라고 썼는고 하니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유불선이 하나로 통합된다고 했어요. 그 뒤에 증산 선생은 그가 저술한 경에서 '천지의 허무한 기운을 받아서 선도로 포태하고, 천지의 적멸한 기운을 받아서 불도로 양생하고, 천지의 이적 기운을 받아서 유교로 목욕하고 띠를 두르고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유불선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세계적인 운명의 변화가 오는 것도 김 일부의 '정역'을 통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겁니다. 물론 그 책의 역학 원리는 복희·문왕·주공·공자 네 성인이 부연한 열네 권의 책에서 흘러 나왔지만 '정역'은 우리나라 사람이 저술한 거지요.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정역'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는 마지막에 인류를 불로써 심판하리라 했습니다. 그 심판의 날짜는 예수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다만 주님만 아시느니라, 그렇게 됐습니다. 그 때는 아이 밴 자가 위험하다. 왜? 놀라서 낙태하니까, 아이 가진 자가 위험하다, 왜? 아이들 내붙이다가 대가리가 깨지니까, 일단 문 밖에 나간 이상에는 옷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지 말아라.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지진으로 집이 흔들리니까, 집이 무너지니까 여자들은 문 밖에 나갔다가 내 유똥 치마, 비로도 치마 하면서 들어가지 말하는 거예요.
심판 시기를 암시하는 거란 말입니다. 또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에 지구 멸망이 온다고 말했는데, 십육 년 남았지요. 십육 년 아무것도 아니에요.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니까요.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게 그 사람이 말한 것이 구십구 퍼센트는 맞았다, 이겁니다. 그러니 무시할 수 없잖아요?
그러나 성경이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체계적인 것이 없습니다. 어째서 인류가 멸망하느냐, 어떻게 멸망하느냐, 멸망한 뒤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데 대해서 합리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김 일부 선생의 '정역'은 이런 문제를 밝혀 주고 있으며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증거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역학의 원리에서는, 그런데, 멸망이 아니라고 봅니다. 결실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결과로 치는 겁니다. 심판이 아니다, 성숙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결실이나 그 심판의 시기에 현존 인류의 육 할이나 팔 할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멸망도 되고 심판이라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역학에선 그 뒤에 전개될 세계를 보니까 그렇게 심판이다, 멸망이다 하지 않는 거지요. 지금 지구를 보면 육지는 사분의 일, 물은 사분의 삼이나 됩니다. 그러나 그때, 지금의 변화가 온 뒤에는 물이 사분의 일, 육지가 사분의 삼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육지가 늘고 인류는 육 할이나 팔 할이 줄어드니까 전쟁이 있겠습니까? 십리를 가도 사람이 하나 살까말까 할 것인데…
역학의 원리로서는 이 때 물이 불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상극할 이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를 못할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어째서 그런 변화가 오느냐?
'주역'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복희 팔괘는 천도(天道)를 밝힌 것이고 문왕 팔괘는 주로 인도(人道), 즉 우리 사람들이 사는 것을 밝힌 것이고 정역 팔괘는 지도(地道)를 밝힌 거요.
그러면 땅의 변화가 어째서 그렇게 오느냐, 백이십 년 전에 지구의 밑구멍으로 불이 들어갔습니다. 그게 정역 팔괘에 딱 그려져 있는 거여.
여러 사람이 보면 모르지만 역학에 밝은 사람이 보면 다 드러나 있단 말이여. 추호도 속일 수 없는 거지. 그러면 김 일부 선생 자기 생각대로 그렇게 그린 거냐? 그렇다면 그게 가치가 없는 거지. 이 정역 팔괘는 그 양반이 계룡산에서 공부를 하는데 한 사오 년 동안 그 그림, 정역 팔괘의 그 그림이 공중에서 떠도는 거야. 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지. 김 일부 선생은 그 그림을 그려 놓고 이십 년 동안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주역'기사에 성현의 말씀이 '신이란 건 만물을 묘하게 해서 말한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김 일부 선생은 이것이 바로 정역 팔괘를 가리킨 것, 곧 그 출처임을 알았습니다.
이 대목의 전 삼단은 복희 팔괘, 전 이단은 문왕 팔괘를 밝힌 것인데 이 대목은 그 박식 군자도 주(註)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앞으로 나타날 정역 팔괘를 가리킨 것인데 주자는 증거가 없어 주를 못 낸 거지요. 여기에 힌트를 얻어 김 일부 선생은 '정역'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역'팔괘에 불이 지구의 밑구멍으로 들어갔다는 이치, 이천 칠지(二天·七地)의 이치가 쓰여 있어요. 여기서 이(二)는 음(陰), 칠은 양(陽)을 뜻하는데 즉 음화가 북극으로 들어갔다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북극 얼음이 녹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 지구가 천지 개벽 이래로 이십 삼도 칠 분쯤 기울어져 있는데 이 지구에 변화가 오는 거야. 지구가 똑바로 서. 이 지구가 아직 숫처녀야. 아직 월경이 오지 않은 처녀야. 아까 말한 성숙기란 것이 뭐냐 하면 월경이 온다 이겁니다, 예. 불이 지구 밑구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지구는 여성이니까 바로 사춘기가 온다는 거야. 그러면 여자가 사춘기에 접어들 때 큰 변화가 오는 것 같이 변화가 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낙관적이란 것은 이 변화 속에서 다른 나라들은 물에 잠기고 반쪽이 나고 하지만 우리나라만은 강토가 늘어납니다. 서해가 육지가 되면서 만주가 우리한테 옵니다.
일본은 어떻게 되느냐? 일본은 손방(巽方)인데 손은 '주역'에서 입지(入池)로 풉니다. 북극 얼음물이 녹을 때 잠기고 말 겁니다. 일본에 가서 총독할 준비나 해요.
- 그렇다면 통일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아, 그러믄요. 통일은 소소한 문제지요. 만주가 우리 땅이 된다니까요.
- 스님께서는 더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길 나이 육십 세 이하인 사람은 만주가 우리 땅이 되는 걸 보고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요.
보고도 남지요. 그 불란서 예언가 말에도 세계 심판 날이 십육 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더구나 변화가 온 뒤에는 사람의 수명이 는다는 말입니다. 극한, 극서도 없어지고 사는 것도 좋아집니다.
- 저는 '주역'이나 동양 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만 스님의 말씀을 듣자하니 '주역'의 원리는 이 우주, 자연과 인간을 같이 보는 것 같군요. 우주, 자연을 지배하는 원리가 인간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렇게 느꼈습니다만…
'주역'이란 것은 원체 폭이 넓어요. 불교를 내어놓고는 역학이 동양 철학의 근본입니다. 워낙 넓어요.
'주역'은 도를 밝힌 겁니다. 도(道)란 무엇이냐, 도란 것은 태극을 뜻하는데 태극은 우주가 생기기 전의 면목을 말합니다. 태극의 원리는 죽은 몸뚱아리가 아니기에 이 우주 만유를 자아내고 마는 겁니다.
태극은 동정(動·靜)의 원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한 번 동하고 정한 것이 천지가 된 것입니다. 천지는 또 동정의 원리에 따라 사상을 자아낸 것입니다.
사상(四象)은 공간적으로는 동서남북이요, 시간적으로는 춘하추동입니다. 사상은 동정·음양의 원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팔괘가 되는 것입니다. 팔괘가 다시 팔·팔 육십사, 육십사괘가 된 것입니다.
역학은 뭐냐, 성인이 가르친 역학은 뭐냐? 그것은 소급시키는 겁니다. 근본 자리고, 우주 만유가 육십사괘에서 일어났다, 육십사괘는 팔괘, 팔괘는 사상, 사상은 음양, 음양은 태극, 태극은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태극은 일어난 데 없어요. 일어난 자리가 없는 그 자리는 천당과 지옥도 없습니다. 그것을 해탈이라 그러는 거여, 그 자리로 소급시키면, 성인은 그 자리에 사는 겁니다. 그것이 역학입니다. 아무쪼록 중생들로 하여금 근본 자리로 소급을 하여 도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주역'의 대의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도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은 성인이 되는 네 길을 밝혔습니다.
말로써 하는 자는 사를 숭상한다. 이건 사회 학문으로 말한다면 문과 계통이지요.
동(動)하는 걸로 쓰는 자는 변을 숭상한다, 이거는 물리에 비유됩니다.
그릇을 만드는 자는 그 상을 숭상한다, 이것은 화학입니다.
복서로써 하는 자는 그 점을 숭상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말한다면 술수·점성학입니다.
이 사 과에 포괄 안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네 단과 대학이 종합한 종합대학, 그것이 바로 '주역'의 세계입니다. 이 사회의 학문이 거기에 다 들어 있어요, 메라도. 원칙은 도를 밝히는 것인데 갑자기 그렇게 안 되니까 네 단과 대학으로 분류하여 세계 인류를 가르치자고 한 거지요.
수백 년 앞의 미래를 안다는 것은 점성학의 소속입니다. 점성학이란 것이 내일 모레 비온다, 바람 분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문학, 지리학, 의학, 상학, 사주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추리를 하는 거지요. '주역'의 역리는 아는 것이 근본이 아니요. 아는 것이 끊어진 그 자리가 근본이여.
金呑虛 스님 生前 인터뷰(2)
"저는 도덕을 실천케 하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월간 마당 1981년 2월호)
-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국가의 운명과 天體의 움직임을 연관시켰기 때문에 별의 관측을 제도적으로 체계적으로 해왔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천체 관측 기록은 최고 수준이라고 하며 '카시오페아 에이'라는 超新星의 대폭발은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기록으로 남겨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관측술이 불행하게도 계승되지 못한 것 같은데…
"동양 철학에서 전하는 천문지가 팔십한권이나 됩니다. 서양의 천문학 역사야 짧지 않습니까. 5천 년 전에 그려 놓은 개천도를 보면 지금 서양 것과 똑같습니다. 그들이 배워 간 게 아닐까요? 어떻게 배워갔든지. 주천(周天)이 삼백육십오 도 사분도지 일입니다.
이 주천 도수가. 하늘(天)은 일행 일도, 하루에 일도씩을 갑니다. 그러면 일년이 다 차면 한 바퀴를 도는 겁니다. 해는 하늘을 따라 일행 일도를 가되 '불급천 사분도지 일'이라 하여 사분도지 일(日)을 못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년에 한 번 양력에 윤일을 넣어야 하는 겁니다.
양력은 서양 사람이 만든 게 아니여. 무식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또 달은 하늘을 따라서 하루에 일도씩 가되 '불급천 십삼도 십구분도의 칠'이라, 하늘의 십삼도 십구분도의 칠을 못 간다고 썼어요. 이 십삼도 십구분도의 칠을 삼년 동안 모아 놓으면 윤달이 되는 거예요. 별 숫자도 똑 같습니다.서양 천문학의 단점은 무엇이냐, 기껏 해야 내일 모레 바람 불고 비온다, 나도 아이들한테 한 달 먼저 언제 어느 날에 바람 불고 비온다고 예보를 해요. 동양 천문학은 서양 천문학과는 달리 길게 봐요. 수십 년의 미래를 예측하는 거지요."
- 비단 날씨뿐 아니라 인간사나 나라의 흥망도 말입니까?
"그러믄요. 토정 선생 같은 이는 임진왜란을 이십 년 전에 말했잖아요. 조 중봉 선생 집 잔치에 가서, 현인 군자들이 수십 명 모인 자리에서 혜성이 나타나는 걸 보고서는 이십 년 후에 피가 흘러서 국민들이 다 죽는다고 풀이를 했습니다. 이게 율곡 선생 일지에 있습니다."
- 물증이 있는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율곡이 거기서 힌트를 얻은 겁니다. 십만 양병설의 힌트를 말입니다. 易學의 원리로 아는 데는 율곡도 토정을 못 당합니다."
- 토정 선생이 썼다는 설도 있는 "정감록"엔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삼국이 통합한 지 천여 년 후에 땅이 다시 쪼개어져 발해에서 중국 군대가 일어나 청해에 이르면 임금과 신하가 세 번 천도를 하고 바다에서 세 장수가 일어나고 소백산 밑에서 천성(天星)이 한 바퀴 돌면 도둑을 소탕하지만 세 장수 또한 몸을 보전치 못하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육·이오 사변을 예언한 것이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발해에서 일어난 군대를 중공군, 소백산 밑을 돌고 간 천성을 왜관의 대폭격, 세 번 천도를 대전―대구―부산의 정부 이전, 바다에서 일어난 군대를 미군, 몸을 보전치 못한 장수를 맥아더 장군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정감록"의 예언까지도 믿으십니까?
"정감록"같은 것은 다 믿어선 안됩니다.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지요. "정감록"의 필자는 국가나 민족의 앞날을 근심하여 경고하고 예언한 게 아닙니다. 자기 자손들의 보전을 위해서, 亂이 일어나면 이런 저런 데로 피하라, 이런 식이지요. 그렇다고 그 자손들이 그 비결을 이용하지도 못합니다. 지혜 있는 자가 그걸 이용하겠지요. 또 "정감록"에는 더러 허름한 것을 비결이라고 갖다 붙여서 와전된 게 많거든요. 그러니까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최근 한국에서 급팽창하고 있는 종교 인구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웃이나 대중보다는 개인의 복을 구하기 위하여, 아주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교회나 사찰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리석은 사람들 이끄는 데는 그런 식으로 이끄는 수도 있을 수 있지요. 갑자기 敎理가 어떻고 진리가 어떻고 해보았자 못 알아먹을 것이니 福을 빌도록 하는, 말하자면 기복신앙으로 그들을 유도해 놓으면 차차 아, 진리가 이런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되겠지요. 일단 개인 구원의 기복 신앙으로 양적인 팽창을 이룩해 놓고 질적인 승화를 도모하는 것도 한 방편이란 말씀인데 문제는 기복신앙 뒤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 주느냐가 중요하겠지요?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좀 주체성이 없어요. 식민지 통치를 받은 탓이 아닌가 합니다만. 주체성이 없다가 보니 무엇에 휩쓸리기 쉽지요."
- 속된 말로 바람을 타기 쉽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요. 일본에 가보세요. 동경에 천삼백만 인구가 사는데 기독교 교회를 구경하기란 매우 어렵지요. 그들이 미개해서 그런 겁니까?"
- 스님께선 최근 한 달 동안 미국을 여행하셨는데 무엇을 보셨습니까?
"내가 사, 오년 전에는 동남 아시아를 둘러보았는데 이번에 미국을 보고 그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웠어요. 첫째는 미국에는 수십 종의 인종이 있으니 한꺼번에 인류 전체를 본 것이 큰 수확이었어요. 세계 일주 안 해도 다 보았어, 허허. 구경거리로서는 하와이의 진주만을 보고서 가장 놀랐습니다. 그들이 산 교육을 시키더군요.
일본군의 폭격을 받고 침몰한 함정을 해군 묘지로 삼아 보존시키면서 '왜 우리는 이런 패배를 당해야 하는가'를 교육시키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일본 관광객들은 얼씬도 안 하더군요. 또 그들이 질서 속에서 자유를 지켜 나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신도들 모임에 가 보니 그들이 차를 몰고 오는데 한 차도 크락션을 울리지 않아요. 차들이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고 할 줄 알았는데 아주 조용하게 주차하고 출발하고 하는 것을 보고 정연한 질서 속의 자유를 발견하였습니다.
개인주의란 것도 전체 속의 개인주의라고 느꼈습니다. 국민의 위신이나 국가의 위신은 머리를 싸매고 지키려는 자세를 보았던 것입니다. 면세점에서 내가 십이만 원짜리 만년필을 샀는데 이걸 그 자리에서 주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기 직전에 물표와 바꿔 주는 거예요.
비행기를 타고나서도 물건이 오지 않아 상좌를 시켜서 물표를 가지고 바깥으로 나가 보라고 했는데 그 사이 미국인이 물건을 가지고 나에게 왔어요. 나는 물표를 가진 사람이 나가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하는 사이 비행기 출발이 몇 분 늦어졌어요. 그러니 삼백오십 명이나 되는 승객들의 눈이 살기 등등해지더군요. 그런 걸 보고 그들의 개인주의는 전체 속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관상을 다 보았습니다, 하하하"
- 그들의 관상이 어떠했습니까?
"팔십 퍼센트가 공처가들이더군, 하하하. 농담 삼아 들어 두십시오. 상학에서는 봉면·봉구(縫面·縫口)이면 공처가라고 하는데 구레나룻으로 얼굴을 봉한 사람, 수염으로 입을 봉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딸을 시집 보낼 때는 봉면·봉구의 사위를 고르십시오. 눈과 눈썹 사이를 전택궁(田宅宮)이라고 하는데 가정의 운세를 좌우한다 해서 가정궁이라고도 하는데 그들의 전택궁은 희박하단 말입니다.
우리는 눈과 눈썹 사이가 훤칠한데 그들은 딱 달라붙어 있더란 말입니다. 그 이유를 알았는데 그건 核가족 제도 때문이다, 그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주체성은 지독하게 강한 사람들이에요. 콧대가 선 것이 그걸 증명하지요. 눈이 깊은 걸 보면 사고력이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기보다 모두 잘 생긴 것 같은데 여자들은 미인이 적어. 일할도 안돼. 그쪽에서 보는 기준으로는 미인이 있겠지만 동양의 눈으로는 미인이 적어요. 동양에서는 얼굴이 귀족형으로 빠져야 미인이거든. 그들은 보니까 전부 노력형이야. 타고난 미인이 없어. 가지고 놀고 싶은 귀족형이 없더란 말이야.
우리 도착하기 전에 여자들이 데모를 했어. 우리도 남자들처럼 전봇대 위에 올라가서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 그러니 그 여자들은 노력형이지 귀족형이 아녀."
- 스님께서는 대체로 미국의 좋은 점을 많이 보고 오신 것 같군요. 그런 좋은 점의 정신적 기반은 역시 기독교 사상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기독교가 낡았어. 원체 오랫동안 國敎로 숭상하다 보니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거고 새것을 찾는 정신이 부족해. 뉴욕에 가보니 신학 대학이 네 개나 폐쇄되었어. 목사 되려는 사람이 줄어들어. 동양 사상을 포교하려면 그곳에 가서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지. 그곳에서 강연도 했어요. 강연을 영어로 통역해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미국인들이 내 강연을 듣고 메라고 하더냐고 물었더니 아주 좋아하더라는 겁니다.
첫째 강단에 올라가서 풍기는 인상이 좋고 둘째 우리가 강연을 하면 매가리없이 하지 않거든, 그냥 장작패는 소리를 치는데 그게 좋다는 거야. 동양 사상의 씨는 그곳에 가서 뿌려야 하겠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 스님께서는 성경 구절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하신 산상 수훈 중의 한 구절―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라―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고 마음을 비우라는 말씀도 여러 번 들려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비어 있다는 것, 이 공(空)에 대해서 좀 말씀을 해주시죠.
"(빈 찻잔을 들어올리며) 빈 병이라고 할 때 병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다. 병 속에 아무 것도 없다는 거죠.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망상을 없애라는 뜻이죠."
- 스님께서는 내년부터 國運이 트인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시기를 맞을 마음의 채비는 어떠해야 됩니까?
"새벽이 밝기 전에 짧은 순간이지만 컴컴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각오도 있어야 할 겁니다."
- 고난에 대한 각오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 스님께서 번역하신 "화엄경"에 대해서 좀…
"道敎의 최고봉은 "노장", 유교의 최고봉은 "주역", 불교의 최고봉이 "화엄경"이지요. "화엄경"은 요, 바다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안 본 사람에게는 바다라고 해도 몰라요. 그래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일렁일렁하는 저 물결이 바다다, 물결을 치게 하는 저 바람이 바다다, 그 위를 저어 가는 것, 그게 바다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것들은 그러나 바다의 일단만 보여 주는 거지요. 바다에는 바람도 있고 물결도 있고 저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그처럼 우주 만유와 나와 마음과, 이 전체가 총진리화 되어버린 것, 그것이 화엄경의 도리야."
- "노장"은 화엄 사상과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진리를 가르치는 면에선 같지만 그것을 체계화한 면에선 "화엄경"에 뒤떨어지지요. 그러나 양쪽에서 가르치는 진리는 같다고 봐요. 도교에서는 최고의 진리를 물아양망(物我兩忘)의 경지라고 합니다. 우주 만물과 나를 함께 잊어버린 상태, 불교에서는 이를 아공 법공(我空 法空)이라 하잖아요?
물아 양망이 된 이 최극치의 경지를 물화(物化)라 그래요. 우주 만물이 화해버렸다는 거예요. 홧지경으로 갔다는 겁니다. 우주 만물이 하나의 진리로 화해버렸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느냐,
" 장자"에 망양이 그림자에게 묻는 말입니다. 망양은 그림자 바깥의 희미한 그림자입니다.
"아까는 자네가 다니다가 지금은 그치고 아까는 자네가 앉았다가 지금은 일어나니 왜 지조가 없이 그렇게 방정맞은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자동이 아니고 사람따라 그림자가 움직이니까. 여기에 그림자가 답합니다.
"내가 기다림이 있어서 그러느냐?"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까? 그림자가 자동으로 그러는 것 아니란 말입니다.
"나의 기다릴 바가 또 기다림이 있어서 그러느냐?"
그림자의 기다릴 바, 즉 몸뚱이도 자동이 아니니까 또 기다리는 것이 있는데 그건 마음입니다.
"나의 기다리는 것이 뱀 껍질과 같고 매미 날개와 같은 것이냐?"
뱀 껍질과 매미 날개는 몸뚱이와 꼭 붙어 있지 않습니까.
"어찌 그런 걸 알고 그렇지 않은 걸 알리요."
그렇고 그렇지 않은 걸 다 잊었다는 말입니다.
표현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망양은 그림자, 그림자는 몸뚱이, 몸뚱이는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데, 그렇고 그렇지 않은 걸 다 잊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물아 양망의 경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도 미심하니까 장자가 또 부연하기를, '어제 밤에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스스로 뜻이 맞아 그렇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꿈에서는 나비지 장주란 생각은 없더라는 얘기입니다.
'꿈에서 깨어보니 나비는 없고 장주만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장주 꿈에 나비가 된 것이냐, 나비 꿈에 장주가 된 것이냐, 다 잊어버렸다.' 이게 물화의 경지인데 이런 최극치의 진리를 표현한 데는 儒佛仙이 대동합니다."
- 스님께서는 한국의 장래를 이끌어 나갈 힘이 종교라고 말씀하시며 그런 종교를 우주 종교라고 표현하셨는데 우주 종교란 곧 불교를 말합니까?
"저는 도덕을 실천케 하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이념은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길을 가라고 하는 뜻에서는 대동하지요. 김 일부 선생, 강 증산 선생도 유불선의 통합을 말하면서도 큰집을 불교로 주고 있어요, 내용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래요. 유불선을 한 덩어리로 하여 위정자가 그 장점만 취한다고 하면 훨씬 나아지죠.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유교가 제일이고 치신지학(治身之學)으로는 도교가 제일이며 치심지학(治心之學)으로는 불교가 제일입니다. 이런 장기를 취해서 민중을 다스리면 좋을 겁니다."
- 우리나라 인구 사천만 가운데 천만이나 된다는 기독교의 장기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기독교의 장기는 조직력이죠. 예수는 조직의 왕이지요."
- 목사라든가 타종교 사람들과도 자주 대화를 가지십니까?
"몇 년 전에 "중앙일보" 주최로 열 한 시간 좌담을 한 적이 있지요. 기독교의 윤 성범 씨, 유교의 이 을호씨, 경남 대학 총장 윤 태림 씨가 사회를 보고…"
- 좌담을 한 소감은 어떠했습니까? 할 만한 것입니까?
"아 그런 거야 할 만하지요. 그런데 '스님께서 남의 영역을 너무 침범했습니다'고 하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 때는 하도 답답하니까 참견을 좀 하긴 했지요. 불교는 이런데 유교는 이럴 겁니다, 아마 기독교도 이럴 겁니다, 그런 식으로. 그건 침범이 아니라 타종교의 영역을 개척해 준거라고 웃었습니다만."
- 스님께서는 현대 한국 불교의 문제점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십니까?
"(찻잔을 들어 보이면서)그것은 이 한 잔 물로 산불을 어떻게 끌 것이냐고 묻는 것과 똑 같습니다. 수극화(水克火), 물이 불을 이기는 건 원리입니다만 그러나 한 잔의 물을 들고 있는 것이 김 탄허의 현재 힘이요. 이런 때에는 거꾸로 火克水가 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앞으로 잘 되면 이 한 잔의 물이 동해 바다 물같이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산불을 어떻게 끄겠느냐고 하면 대답을 하겠는데 지금은 못하겠어."
- 이 한 잔 물을 동해 물같이 만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때가 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爲政者와 손이 맞아야 합니다."
- 그런 점에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과는 상반되는군요.
"분리라니 말이 됩니까? 위정자가 무엇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립니까? 이거 보세요. 공자의 말씀인데 '정치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가지런히 하면 백성이 (죄를)면하기는 면하지만 양심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법으로써 가지런히 하면 백성이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데 종교와 분리해서 백성을 어떻게 다스린단 말입니까? 행정부·사법부 입법부로만 백성을 다스릴 수 있어요? 빈 껍데기지. 말도 안되는 소리지."
- 좋은 시기에 좋은 위정자가 나왔을 때…
"(말을 막으며) 그 무슨 소린고. 지금도 좋은 위정자인데 그 말에는 어폐가 있잖어, 핫하하. 내가 말하는 시기는 나라가 통일되는 것을 말해요."
- 제가 올해 서른 아홉인데 저희 세대에 통일이 오겠습니까?
"아이고 그 무슨 말씀. 나, 나이 일흔 하나인데 생전에 통일을 보리라 믿고 있는데, 핫하하. 지금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보면 통일의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에는 또한 예외가 있는 법입니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이 누가 불이 나리라고 생각하겠습니까?"
- 스님께서는 저녁 여덟시에 주무시고 새벽 한 시쯤 일어나신다고 들었는데요.
"우주가 잘 때는 사람도 자야 되고 우주가 깰 때에는 인간도 깨어야지요. 저는 깨는 때가 곧 일어나는 때입니다. 늦어도 새벽 세 시엔 일어나죠."
- 건강의 비결은?
"건강이란 건 신경 안 쓰는데 있는 거요. 그래서 멍청이요. 화신 상회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아이들이 두루루 차 태워서 갖다 놓으면 어딘지 몰라. 조계사에서 걸어가면 알게 되지만. 딱 신경을 쓰는 데가 있긴 있지…"
- 어제처럼 그 번잡한 서울에 가셨다가 이 호젓한 山寺에 돌아오시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 건 아무 이상이 없어요. 피로도 하나도 없고."
- 여긴 공기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 거 없어. 차 타고 다니느라 재미만 있을 뿐이지. 김 탄허는 자동차 타고 다니는 게 운동하는 거여."
- 스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유교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유교쪽 이야기를 더 많이 알아듣지. 불교쪽 이야기는 너무 출세간적이요. 도교 사상은 팔 할이 출세간적이고 이할이 세간적이고 유교는 팔 할이 세간적입니다. 그러니까 조금 알아 듣게 하자면 세간적으로 이야기 해야지."
-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유교와 같이 팔 할은 세간적이요."
- 유교는 뚜렷한 內世觀이 없다 해서 종교로 안 보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것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요. 그들은 종교는 신과 인간의 교섭이다 하는데 동양에는 안 맞는 이야기여. 종교라는 것은 끝까지 自覺하는 거여, 스스로 깨닫는 거여. 自覺하면 무엇이 오느냐, 모든 고통이 나가버려. 우주가 생기기 전의 자리, 거기에 앉아 있으니까 우주를 내 마음대로 하는 거여. 이것이 종교의 이념이여. 불교에는 천당, 지옥설, 극락 뭐 이런 게 기독교보다도 백 배나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유치해, 아무 가치도 두지 않는 거여. 어린애들 가르치는 거지.
최고의 이념은 자각, 그래서 자기가 이고 득락(離苦 得樂)하는 거야. 자기만 그러는 게 아니라 중생도 그렇게 만드는 거야.
종교의 종(宗)자는 마루 종자여. 갓은 어디에 씁니까? 아무리 낡아도 꼭대기에 씁니다. 그렇잖아요. 제일 꼭대기 진리를 보인(示) 것이 종교여. 꼭대기 진리가 뭐냐. 우주가 생기기 전의 면목, 즉 태극이요 불교에서 말하면 원상(圓相)이여. 기독교에서 말하면 하나님이고. 우주가 생기기 전의 진면목이 가장 높은 진리 아닙니까? 우주가 거기서 비롯되었으니까. 진리의 원천이지. 그걸로 보여 준 것이 종(宗)자의 뜻이지.
교(敎)는 뭐냐? 선효(先孝) 후문(後文)이라, 효도를 먼저 하고 글은 나중에 하는 거여.
효도 孝 변에 글월 文 했잖어요? 효도는 백행의 근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 한다는 건 거짓말이여. 효도를 먼저 하고, 즉 행동을, 실천을 먼저 하고 문학은 뒤에 한다는 겁니다. 즉, 종교란 聖人이 최고의 진리를 중생에게 보여서 효도를 먼저하고 문학을 뒤에 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어. 글자 그대로."
- 아는 것보다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그 말씀입니까?
"그러믄요. 예수님 말씀도, 성경을 뒤집어 놓고 보면 그걸 가리킨 것이데, 기독교 연구하는 이들이 겉핥기로 한단 말이여, 그러니 한심하지. 마태복음에 볼 것 같으면 너희들은 아무쪼록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이 뭡니까? 좁은 문이 바로 그 자립니다. 또 제자들 보고 '너희들이 돌이켜서 동자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동자가 되느냐. 도통 군자 아니면 동자가 못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동자 되는 공부를 안하는 겁니다. 이 친구들이. 믿기만 한다고 천국에 날 수는 없단 말입니다."
- 스님께서는 전에도 동자 이야기를 하시며 어린이는 하루 내내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어른은 한 시간만 울어도 쉰다. 그 차이는 아이는 무심(無心)하기 때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무심이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도덕경"에 있는 이야기인데, 무심이란 단어는 아까 그 빈 병이란 이야기와 같다니까요. 무심의 경지를 타파한 사람은 종일 지껄여도 지껄인 게 없습니다. 종일 생각해도 생각한 게 없고, 그렇게 되는 거요. 성인의 경지는 그렇지요. 그러니 聖人의 俗은 극락이지. 성경의 좁은 문이라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자리를 말하는 겁니다."
- 성경에서는 그것을 고난으로 해석하지 않습니까?
"고난이요? 하하하. 그러니 순전히 겉핥기란 말입니다. 삼위 일체도 참 잘된 말입니다. 聖父·聖子·聖神.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 한 분만 삼위 일체가 될 수 있다, 이겁니다.
왜 다른 사람은 삼위 일체가 될 수 없습니까? 누구든지 되어야지. 고 점이 다르단 말입니다. 동양 사상에서는 누구나 삼위 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될 수 있다와 예수밖에 누구도 될 수 없다, 이 차이가 큽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기독교는 의타(依他), 타인에 의지하는 거지. 주체성이 없습니다. 유교에는 의타가 없습니다. 의자(依自)지. 불교에선 의자가 의타를 겸하는데 의타는 애들한테 가르치는 거여."
- 젊은 사람들한테 해주실 말씀을 좀…
"지금까지 한 것 말고 또 무슨 말을 더해. 춤을 추어야지. 세계가 좋게 변화할 것인데. 당신 이 말 듣는 것도 삼대 적선 덕이야."
- 시중에서는 스님께서 십 이륙 사태도 예언했다고 소문이 나 있던데…
"십 이륙이 뭡니까? (옆에서 한 불도가 설명을 해주니) 그런 걸 여기서 어떻게 이야기해요. 그 해 정월인가, 서울 어느 호텔에서 동남아 여행 귀국 기념 강연을 내가 했는데 그 해가 기미년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 기미년이 옵니다, 기미가'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누가 날 보고 '아, 그 때 스님 말씀하신 기미가 그 김(金)입니까'하고 묻더군, 하하하."
(이때 회견 모습을 비디오 촬영하고 있던 기사가 고민이 있다면서 말을 꺼냈다. 딸을 얻은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름을 못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탄허 스님은 기사의 성을 물었다. 구(具)씨라고 답하니 스님은 한 30초쯤 생각하다가 성희(性喜)라고 즉석 작명을 해주었다. '즐거워하는 성품을 갖춘 사람'이란 뜻이겠다. 그 기사는 스님께 넙죽히 큰절을 올렸다).
- 스님 제 관상도 좀 보아주십시오.
"핫하하, 기기화류가 천리마 이름인데 기기화류 보고 쥐 잡으라는 말과 똑 같아. 기기화류는 천리를 달리지만은 쥐 잡는 데는 병든 고양이를 못 당합니다. 그런 쥐는 종로 다리 밑에 있는 사람이 잘 잡지."
-아이구 죄송합니다. 졸지에 제가 쥐가 돼버렸습니다. 대한 민국 관상을 주로 보시는 스님께 실례가 되었습니다. 벌써 스님이 주무실 시간을 삼십 분이나 넘겨 밤 여덟 시 사십 분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일단 물러가겠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김탄허/이 한잔 물이 동해물이 될 것이오(3)
'법통이 안 되면 혈통이라도…'
다음날 새벽 4시 나는 다시 탄허 스님의 방산굴로 올라갔다. 말이 새벽이지 칠흑 같은 밤이었다. 스님은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윗몸을 흔들흔들, 눈은 천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지금 뭘 하고 계십니까?' 내가 책상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마음을 비우고 있어요. 망상을 내쫓고 있는 거여.'
스님은 좌선을 방해하는 방문객을 맞았으나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난밤의 그 분위기, 인터뷰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사이의 연대감 비슷한 그런 것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요즘 중고등 학생들은 이런답니다. 공자가 3천 년 전에 태어나서 공자지, 지금 났으면 별볼일 없는 사람이지―아, 이런다는 거여. 그놈들 가르친 선생부터 불러 피가 나도록 볼기를 쳐야 해.
이 사회가 무식한데 학생들이 뭘 알겠어? 안다는 것이 도대체 메야? 석가도 말했지만 아는 것이 끊어진 그 자리가 도(道)자리여. 모르는 게 곧 아는 거야. 안다는 건 반대로 모른다는 것이 있다는 말 아닙니까? 성경에서 전지 전능이란 말이 나오는데 모르기 때문에 전지 전능할 수 있는 거에요. 아는 것이 끊어진 그 자리가 전지 전능한 자립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그 자리를 아는 사람이 바로 성현들이야. 범인들은 배워야, 깨우쳐야 그 자리를 알고.'
'스님은 몇 년 전에 위장병을 앓으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나는 화제를 스님의 신변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내가 돌비늘(雲母)을 장복했어요. 그 때문인지 동남아 여행하고 돌아온 뒤 배가 아파 서울의 큰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나에게 말하는 거야. 암 같은데 아무래도 수술을 해야겠다는 겁니다. 나는 안 된다고 그랬楮? 아이들(필자 주 : 제자들을 가리킴)이 나를 데리고 다른 병원으로 가 다시 진찰을 받게 했는데 같은 진단 결과가 나왔어요. 아이들은 대책 회의를 열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나는 몸에 칼 못 댄다고 고집하고 그냥 지냈어. 그러다가 이젠 다 나은 모양이야, 괜찮아요.'
남의 일같이 말한다.
'원고를 그렇게 쓰시고도 피로하지 않으세요?'
'피로하긴, 난 그런 데 신경 안 쓴다니까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종일 써 제키지. 누가 오면 그 사람하고 이야기하면서 한 손으로 글을 쓴 적도 있어. 그래도 문맥은 잘 되는데 실례가 될까 보아 요사이는 안 하지. 전에는 여대생 신도가 와서 교정도 보아주기도 했는데 요사이는 혼자 하지.'
그러면서 원고를 보여 준다. 만년필로 내려 쓴 필체는 또박또박한 정자로 되어 있다.
'선생님의 전 부인은 생존해 계십니까?'
'몇 년 전에 떠났어요. 아내라기보다는 은인이지, 은인.'
'은인이라니요?'
'아니, 여자 같아야 아내지. 남자보다 더 강해. 여자 맛이 안 나. 내가 그 집에서 공부했습니다. 한학을. 그래서 은인이라는 겁니다. 아니, 그냥 친구야, 친구.'
'손자까지 보셨지요?'
'세 명이나 보았어. 내 아들은 농사군이여. 손자 녀석들이 공부를 못 해. 돼지 새끼를 낳았는지, 원(웃음). 아이는 팔십 퍼센트는 어머니를 닮아요. 씨도 잘 뿌려야 하지만 밭이 더 중요해요, 밭이.'
스님은 한참 동안 자신의 가계(家系) 자랑을 했다. 아버지나 형제가 모두 자기보다 인물이 출중했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관상가는 어릴 때의 탄허 스님을 보고 비록 인물은 아버지보다 못 났을지 모르나 글은 아버지를 능가할 거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거푸집'만 보고 인간을 평가하는데 그 상학(相學)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스님은 신식 교육을 받지 않으셨죠?'
'학교 문턱에도 안 갔어. 사서삼경과 주역 등 한문학을 했습니다. 수백 독 했어요. 줄줄 외웠습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책을 통째로 외워 댈 수 있어요. 한문 성경도 읽었어요.'
'성경은 얼마나 읽었습니까?'
'성경은 단편적으로 공부했죠.'
탄허 스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불교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면 수재는 30년이 걸리고 둔재는 3백 년이 걸릴 것이다. 도교는 20년, 유교는 10년이면 족하다. 기독교는 나 같은 둔재도 3년이면 터득할 수 있다. 재주군이라면 석 달이면 신구약을 다 욀 수 있다.'
탄허 스님은 이야기 곳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곤 했다. 그 자랑의 표현 방법이 솔직했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자랑처럼 순진하게 느껴졌다.
'선생님의 붓글씨는 선필이란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몇 년 전 어느 보살이 나에게 와서 자꾸만 병풍에 글을 써 달라고 조릅디다. 나는 그런 글을 쓰기 싫어해. 그래서 안 써 주려고 여덟 폭 병풍을 만들어 오면 써 주겠다고 했어요. 아, 그런데 그 억척같은 보살이 백지 병풍을 만들어 가져 왔잖어. 쓸 수밖에. 병풍에 걸터앉아 써 내려갔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시간을 재어 보더니 8분 걸렸다고 그러더구먼.'
'단숨에 썼는데도 한 자도 틀리지 않았습니까?'
'아니, 한 자라도 틀리면 병풍을 못쓰게 되는 건데…'
탄허 스님을 20년 동안 모셨다는 월정사 부주지 김 삼보 스님에 따르면 탄허 스님은 치약을 사용하지 않고 늘 소금으로, 그리고 손가락으로 양치질을 한다고 한다. 식사는 소식주의이며 일반적인 사찰 풍습과는 달리 차를 좋아하지 않고 우유 같은 것을 즐겨한단다.
'차는 중국인의 체질에 맞아. 커피가 단백질 많이 섭취하는 서양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과 같이. 차는 기름기를 씻어 내거든. 우리야 단백질이나 기름기를 많이 먹지 않으니 몸을 갉아 내는 식품은 적당치 않습니다. 갉아 내는 것보다 보충하는 쪽의 음식이 좋아. 보신하려면 더운 걸 먹어야해.'
'더운 음식이 어떤 겁니까?'
'꼭 뜨거워야 더운 게 아녀. 오곡이 가장 더운 거야. 그러니 밥이 제일이지. 밥 잘 먹는 게 최고여. 덥기로는 산삼이 으뜸이지. 그걸 먹고 나면 마누라 하나 더 얻어야 돼. 그런데 산삼을 먹고 나서는 한 달 동안은 금욕을 해야 합니다. 북받치는 양기를 참기가 힘들겠지만 못 참았다간 몽땅 여자한테 가버려.'
'더운 게 몸에 꼭 좋다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 이 사람. 팔 다리 잘려나간 사람보고 누가 송장이라 불러? 몸이 싸늘해져야 송장이지, 사지가 성해도. 대장경에서 불이 명의 뿌리라 했습니다. 남자도 양기 없으면 그게 시체지. 그래서 아내는 도망 갈 게고…'.
그런데 탄허 스님은 요즘 밥맛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누룽지를 끓여 먹는다'고 했다. 같은 솥 밥을 계속 먹으니 맛이 없고 가끔 외식을 하면 식욕이 돌아오는데 '그게 바로 늙어 가는 증거다'고 말하며 웃었다. '누구든지 죽을 때는 굶어 죽는 거야.'
이 탄허 스님의 말을 받아 얼마 전에 들어 와 배석하고 있던 한 여승이 '서서히 자연사하는 거지요'라고 했다.
'지역 감정의 해소 방안에 대해서…'
'그건 위정자에게 달렸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내일부터도 가능합니다. 지역 감정의 원소가 어디인가. 국초에 태조가 '대전통편'에다가 서북 사람 쓰지 말라고 한 것, 그것이 발단이란 말이요. 오죽했으면 이북 사람들이 5백 년 원수는 삼남 놈이라고 했겠어. 그 김 구 선생도 늘 '성계란 놈'했단 말여. 위정자가 다른 도 사람 쓰면 자기 도 사람들도 그 위정자를 좋아하지, 미워하겠오?' 탄허 스님은 그런 건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공산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 허, 그런 질문은 어폐가 있는데…허, 허.' 그러나 탄허 스님은 거침이 말문을 열고 쏟아 붓기 시작했다.
'영국 사람들이 다윈의 진화론으로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약육강식이 그네들의 철학이었단 말입니다. 그러다가 평등을 외치는 마르크스가 나타났으니 우승 열패의 사상이 살아 남겠어요? 그러나 공산주의는 평등을 구실로 인권을 희생시키는 모순을 저질렀어. 이게 그들의 단점이야. 자본주의 체제도 빈부 격차라는 모순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면 양쪽의 모순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그 열쇠는 동양 사상에 있는 거지요.
동양 사상은 원래 학문적으로는 종합학이요, 서양 사상은 분류학이여. 전체를 넓고 깊게 보고 아우르는데는 무가 메라도 동양사상이야. 그 안에 정치가 들어 있는 거여. 정치란 건 잘 하면 얼마나 재미있는 건데?
어떤 지도자가 나타나면 민중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까? 우선 그 지도자가 우리를 이롭게 할 것인가. 다음에는 그가 우리를 편하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그가 우리를 올바로 제도해 줄 것인가. 이런 기대가 있는 거예요. 그 해답은 전부 동양 사상 안에 들어 있다니까요?'
탄허 스님은 2년 전 '80년대의 변화와 종교'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우주 만물이 도덕에서 시작하고 도덕에서 종결 짓는다는 것이 동양 사상이다. 도의 사회는 종교가 중심이 되는 사회다. 도덕의 실천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니까. (중략)
'80년대에는 반드시 그런 왕도 정치가 세워질 것이다. 가령 어항 속에 담아 둔 고기에 물이 떨어질 때만 되면 한 바가지씩 부어 줌으로써 고기들이 계속 감사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정치를 끝맺음하고 넓은 강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 모를 세상이 이 '80년대에 펼쳐질 것이다. (중략)
왕도정치에 철학과 역사 의식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는 종교는 어차피 낡은 껍데기를 벗어 던져야 할 것이다. 현재의 종교는 쓸어 없애야 할 것이다. 신앙인끼리 괄목 상대하고 네 종교, 내 종파가 옳다고 하며 원수시하는 천박한 종교의 벽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그 장벽이 무너지면 초종교가 될 것이다.
김 일부 선생과 강 증산 선생도 유불선이 합쳐져 그렇게 된다고 했는데 그 예언의 현대가 '80년대에 열려지기 시작할 것이다. (중략)
새싹이 나기 위해서는 그 자체가 썩어야 한다.'
탄허 스님과의 대화는 두 시간 계속되었다. 앞날 밤과 합쳐 네 시간의 대화였다. 약간의 짓궂은 질문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질문에 그는 거침없이 대답해 주었다. 육중하게 보이는 자태에서 말은 물처럼 쉽게, 그리고 가볍게 나왔다. 나와 함께 있던 비디오 촬영 기사가 스님에게 심우도(소를 찾는 열 폭 병풍인데 진리를 찾아 헤매는 인간의 역정을 비유한 그림)를 가리키는 포즈를 잡아 달라고 했더니 한 10분 동안 찬찬히 병풍 그림을 설명해 주기까지 했다.
부주지 김 삼보 스님은 지난 밤 방산굴에서 우리의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스님이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며칠 전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와서 인터뷰를 할 때는 뭣이 잘 안되어 우리가 민망했어요. 방송 기자가 스님 얼굴이 너무 굳습니다. 하며 좀 자연스런 표정을 요구하니까 원래 그런데 어쩌란 말이요 하면서 퉁명스레 말씀하시곤 했어요'하던 말이 생각났다. 새벽 6시쯤 여승이 아침 공양을 들고 들어 왔다. 나는 자리를 뜨기 전 물었다.
'스님의 학문을 이어 받을 후계자가 없어서 어떻게 하시렵니까?'
'다 인연따라 가는 거지요. 법통이 없으면 혈통이라도 남겨야지…'
김 탄허 스님은 혈통을 남기는 데는 일단 성공한 상태다. 방산굴을 나서니 새벽의 기운이라고는 환한 승방에서 울려 퍼지는 염불 소리뿐이었다. 그 불빛과 소리쪽으로 암흑을 헤치며 걸어 내려오는 나의 머리에 남는 한 마디 말은 '산불을 물 한 잔으로 끌 수 있습니까, 아직은 그게 탄허의 힘이요'였다.
탄허 스님의 법통까지도 이어진다면 그 한 잔 물이 동해물로 변할 수 있을까?
/ 조갑제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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