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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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님 2017. 12. 24. 12:18

                                                      법 구 경

 

〈법구경〉은 〈논어〉나〈채근담〉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처세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말씀이다.

〈법구경〉은 법구존자(法句尊者)가 엮은 것으로, 오나라의 유기난(維祇難)등이 번역한 것이다. 법구존자는 파사사대논사(婆娑四大論師)의 한 사람으로 , 부처님이 돌아가신지 300년 뒤에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대덕법구(大德法句)라고 말하여지는 인물이다. 〈법구경〉에는 남전(南傳)과 북전(北傳)의 두 종류가 있으며, 남전은 파리어로 번역된 법구경으로 26품 422송(頌)으로 되어 있으며, 북전은 범어(梵語)를 번역한 것으로 39품 752송(頌)으로 되어 있다.

이 법구경을 번역한 유기난은 천축(인도)의 승이다. 그의 전기에 의하면, 그는 삼장(三藏)에 밝고 , 특히 아함경(阿含經)에 밝아, 뒤에 서역(西域)으로부터 중국에 와서, 위(魏)나라 황무 3년에 입률염(笠律炎)과 이 법구경을 번역했던 것이다.

이 법구경은 제일 무상품으로부터 제 39품 길상품에 이르는 것을 모두 번역한 것으로, 간단하기는 하지만 불교의 전체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실제로 인간생활의 여러 분야에 걸쳐 다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의 미망과 깨달음과, 죄악과 미덕, 드디어 깨달음의 열반을 이해할 수 있으며, 자유방임주의 시대에 사는 현대에, 마음과 몸을 조이는 생각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특히 음욕을 굳게 경계하는 일등은 고마운 교훈이다.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여 깨끗한 생활을 보이고, 올바른 인생의 종국의 깨달음이 열반이란 것을 보여 주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교의 높은 큰 이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第一 무상품(無常品)

 

무상품이란 깨어나면 욕심 혼란하여, 영화와 목숨은 보전하기 어렵고, 오직 도만이 참된 것이다.

無常品者는 悟欲昏亂하여 榮命難保하고 唯道是眞이니라.

 

잠에서 깨어나면 마땅히 기뻐하며 생각하라. 내가 설명하는 바를 듣고 부처님의 말씀을 갖추어 기억하라.

睡眠解悟하면 宜歡喜思라라. 廳我所說하고 撰記佛言하라.

 

행하는 것은 일정불변한 것이 없으니 흥하고 쇠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대저 생겨난 것은 문득 죽으니, 이멸함을 즐거움으로 삼아야 한다.

所行非常하니 謂興衰法이요 夫生輒死하니 此滅爲樂이니라.

 

비유컨대 질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찰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되, 모두가 반드시 파괴되는 것과 같다. 사람의 목숨도 또한 그러하다.

譬如陶家의 璇埴作器하되 一切要壞니라. 人命亦然이니라.

 

개울물이 빨리 가고서 돌아오지 않음과 같으니, 사람의 목숨도 이와 같아서 간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如河駛流하여 往而不返하니 人命如是하여 逝者不還이니라.

 

비유컨대 사람이 몽둥이를 잡고서 목축을 행하여 소를 잡아먹는 것과 같아서, 늙음과 죽음은 오히려 그와 같으니, 역시 목숨을 길러 가지고 사라져 간다.

譬人操杖하고 行牧食牛하여 老死猶然하니 亦養命去니라.

 

천명이나 백 명에 한 사람도 아니고, 모든 집안의 남녀들이 재산을 저축하고 모으지만, 쇠망하고 잃지 않는 사람이 없다.

千百非一이라 族姓男女가 貯聚財産이나 無不衰喪이니라.

 

살아 있는 사람은 밤낮으로 자기 목숨을 치고 깍으니, 수명의 꺼지고 다함이 마치 낙숫물과 같다.

生者日夜로 命自攻削하니 壽之消盡이 如영영壽 니라.

 

유상한 사람은 모두목숨이 다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도 역시 다 떨어지니,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常者皆盡하여 高者亦墮하니 合會有離하고 生者有死니라.

 

중생은 서로 이겨서 써 그 목숨을 잃으니, 행함에 따라서 떨어지는 곳이 있으니, 스스로 그 재앙과 복을 받는다.

衆生相剋하여 以喪其命하니 隨行所墮하여 自受殃福이니라.

 

늙으면 고통을 당하고, 죽으면 뜻도 사라진다. 집을 즐기고 다섯 가지 욕심에 얽매여, 세상을 탐내어 끊지 않는다.

老見若痛하고 死則意去하니 樂家縛獄하여 貪世不斷이니라.

 

잠깐사이 늙음이 이르면 얼굴빛이 변하여 늙은이가 된다. 젊은 시절에는 뜻과 같이 되었지만, 늙으면 짓밟힘을 당한다.

咄嗟老至하면 色變作耄니라. 少時如意나 老見蹈藉니라.

 

비록 백 살을 장수한다 할지라도 역시 죽으면 과거가 된다. 늙은이가 되어 사람들의 싫어하는 바가 되고, 병이 여러 가지로 이르게 된다.

雖壽百世라도 亦死過去니라. 爲老所厭하고 病條至際니라.

 

이 하루가 이미 지나면 목숨도 따라서 줄어들게 된다. 적은 물속에 물고기와 같이 이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是日已過하년 命則隨滅이니 如小水魚하여 기有何樂이리오.

 

늙으면 얼굴빛이 쇠퇴하고, 병들면 스스로 무너진다. 형체가 무너져 썩어버리니, 목숨이 끝나는 것도 자연이 아니겠는가!

老則色衰하고 所病自壞아여 形敗腐朽하니 命終自然이니라.

 

이 몸을 어디에 쓸고? 항상 악취가 새어 나오는 곳이다. 병들어 피곤한바 되어, 늙고 죽음의 근심이 있을 뿐이다.

是身何用고 恒漏臭處니라. 爲病所困하니 有老死患이니라.

 

욕심을 즐기어 스스로 방자하면, 불법 아님이 이 더할 뿐이다. 변화함을 보고 듣기 못하니, 수명이 덧없을 분이다.

嗜欲自恣하면 非法是增이니라. 不見聞變하니 壽命無常이니라.

 

아들이 있음을 믿지 말고, 또한 아버지와 형이 있음을 믿지 말라. 죽임이 임박하게 되면, 가까움도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

非有子恃하고 亦非父兄이니 爲死所迫이면 無親可怙니라.

 

밤낮으로 게으름을 피우고, 늙어도 음란한 짓을 기치지 못하고 재산이 있어도 베풀지 않고 부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다. 이 네 가지 폐단이 있으면, 스스로 속임을 침범하는 것이 된다.

晝夜慢惰하고 老不止淫하고 有財不施하고 不受佛言하니 有此四弊면 爲自侵欺나라.

 

허공도 아니고 바닷 속도 아니고, 산속에 들어가고 바위 사이에 숨는 것도 아니다. 땅의 방위에는 이를 벗어나 죽음을 받지 않을 곳이 있지 않다.

非空非海中하고 非入山石間이니 無有地方所에 脫之不受死니라.

 

이것을 힘쓰는 것은 곧 내가 지은 것이니, 마땅히 지어서 이것을 이루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소란함을 행하여, 늙고 죽는 근심을 밟는다.

是務是吾作하니 當作令致是니라. 人爲此조擾하여 履踐老死憂니라.

 

이것을 알면 능히 스스로 마음을 밝게 하여, 이와 같은 삶이 다함을 보라. 비구는 악마의 병정을 싫어하여, 생사에 따라 건넘을 얻는다.

知此能自淨하여 如是見生盡하라. 比丘厭魔兵하여 從生死得度니라.

 

 

第二 교학품(敎學品)

 

교학품이란 행하는 바로써 인도하여 나의 어리석고 어두움을 풀고, 불도의 밝음 보는 것을 얻게 하디 위한 것이다.

敎學品者는 導以所行하여 釋己愚闇하고 得見道明이니라.

 

놀랍다, 무엇 때문에 잠자는고? 벌과 소라와 조개와 좀까지도 깨끗지 못함으로써 숨어 엎드리니, 사람 또 미혹하여 몸을 위하여 도모하는 도다.

咄哉何爲寐오. 螉螺蜂蠹類도 隱蔽以不淨하니 迷惑計爲身이로다.

 

어찌 찍히고 상처를 입음이 있으랴? 마음은 병의 아픔이 더하는 것과 같다. 무리의 재액과 어려움을 만남과 같되, 도리어 써 잠을 이룬다.

焉有被斫創이리오. 心如嬰疾痛이라. 遘于衆厄難하되 而反爲用眠이니라.

 

생각하여 방탕과 안일한 생활을 하지 말고, 자비를 위하여 자비의 자취를 배우면, 이를 좇아 근심이 있지 않을 것이니, 항상 마음에 새겨 자신의 뜻을 없애라.

思而不放逸하고 爲仁學仁迹이면 從是無有憂하니 常念自滅의하라.

 

정견을 배워서 힘써 더하면, 이것이 세상의 밝음이 된다. 여기에서 생기는 바 복은 천 배는 더하고, 마침내 악의 길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正見學務增이면 是爲世間明이라. 所生福千培하고 終不墮惡道니라.

 

작은 길을 배워서 써 간사한 견해를 믿지 말라. 방탕한 생활을 익혀서 욕심의 뜻을 더하게 하지 말라.

莫學小道하여 以信邪見하라. 莫習放蕩하여 令增欲意하라.

 

불법을 잘 닦고 행하여, 배우고 외워 침범하지 말라. 도를 행하면 근심이 없고, 평생 동안 항상 안락하다.

善修法行하여 學誦莫犯하라. 行道無憂하고 世世常安이니라.

 

총명하게 배우고 몸을 단정히 하여 항상 삼가서 생각하고 말하면, 이는 불사에 이르러, 악행을 소멸하고 편안함을 얻는다.

慜學攝身하여 常愼思言하면 是到不死하고 行滅得安이니라.

 

힘쓰지 않는다면 배우지 말아야 하고, 이 힘쓰면 마땅히 행하라. 이미 외워야 할 것임을 안다면, 곧 고민 없앰을 얻는다.

非務勿學하고 是務宜行하라. 己知可念이면 則漏得滅이니라.

 

법을 보고 몸에 이롭게 하면, 그 좋은 방법에 이르고, 이 됨을 알고 행실을 건전하게 하면, 이것을 현명하다고 말한다.

見法利身하면 夫到善方하고 知利健行이면 是謂賢明이니라.

 

일어나 옳음을 깨닫는 사람은 멸함을 배워 써 굳어지고, 멸함에 붙어서 스스로 방자하면, 손해되어 일어나지 않는다.

起覺義者는 學滅以固하고 著滅自恣하면 損而不興이니라.

 

이것에 향함에 굳셈으로써 하여, 이것을 배워 중도를 얻고, 이것에 따라 의를 깨달아서,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是向以强하여 是學得中하고 從是解義하여 宜憶念行하라.

 

배워서 우선 어머니를 끊고, 임금의 두 신하를 거느리고서 모든 영종(營從)을 폐지시키는 것은, 이것은 상도(上道)의 사람이다.

學先斷母하고 率君二臣하여 廢諸營終은 是上道人이니라.

 

배움에 친구들이 없어 좋은 친구를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홀로 선함을 지켜, 어리석음과 더블어 함께하지 말라.

學無朋類하여 不得善友면 寧獨守善하여 不與愚偕나라.

 

계율을 즐기고 수행을 배움에 있어서, 어찌 친구를 이용하는 일을 하라! 홀로서도 선하여 근심이 없으면, 빈 들판의 코끼리와 같다.

樂戒學行에 奚用伴焉리오. 獨善無憂면 如空野象이니라.

 

계율과 많이 듣는 것은 다 같이 좋은 일이니, 이 두 가지는 어느 것이 더 현명한가? 바야흐로 계율을 듣는 것이라고 일컬으니, 마땅히 밝히어 배우고 행하라.

戒聞俱善하니 二者孰賢고. 方戒稱聞하니 宜諦學行하라.

 

배움에 앞서 계율을 지켜서, 열고 닫음을 반드시 굳게 하라. 베풀고서 받지 말고, 힘써 행하고서 눕지 말라.

學先護戒하여 開閉必固하라. 施而無受하고 仂行末臥하라.

 

만일 사람이 백 살을 수한다 해도, 간악함을 배워 악함에 뜻을 둔다면, 옳게 하루를 사는 것만도 못하니, 정진하여 정법을 받으라.

若人壽百世라도 邪學志不善이면 不如生一日하니 精進受正法하라.

 

만일 사람이 백 살을 수할지라도, 불을 받들어 다른 술법을 닦는다면 잠깐 사이라도 계율을 섬기는 사람의 복을 일컬음만 못하다.

若人壽百世라도 奉火須異術하면 不如須臾頃에 事戒者福稱이니라.

 

능히 행하여 이것을 옳다고 풀지라도, 능하지 못하면 빈 말을 하지 말라. 허위를 구며서 성실한 믿음이 없는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이 물리치고 버리는 것이다.

能行說之可라도 不能勿空語하라. 虛僞無誠信은 智者所屛棄니라.

 

배워서 마땅히 먼저 깨달음을 구하고, 보고 살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라. 밝힘을 받거든 응당 그를 가르쳐야 한다. 지혜로우면 다시는 미혹되지 않는다.

學當先求解하고 觀察別是非니라. 受諦應誨彼하라. 慧然不復惑이니라.

 

머리를 풀어 헤치고 사악한 도를 배우고, 거친 옷을 입고 안으로 탐내어 흐려 있으면, 어두워서 진리를 알지 못하여, 귀머거리가 5음을 들음과 같다.

被髮學邪道하고 草衣內貪濁이면 曚曚不識眞하여 如聾廳五音이니라.

 

배움은 능히 세 가지 악함을 버려야 함은, 약으로써 여러 가지 독을 소멸하는 것과 같고, 건장한 사나이는 생사를 지나는 것이, 마치 뱀이 옛 껍질을 벗는 것과 같다.

學能捨三惡은 以藥消衆毒하고 健夫度生死는 如蛇脫故皮니라.

 

배우고서 많이 들어 계율을 지녀 잃지 아니하면, 두 세상에 칭찬함을 보아, 원하는 바를 얻는다.

學而多聞하여 持戒不失이면 兩世見譽하여 所願者得이니라.

 

배우되 적게 듣고, 계율을 지녀 완전하지 못하면, 두 세상에서 고통을 받고, 그 근본의 소원을 잃는다.

學而寡聞하여 持戒不完이면 兩世受痛하고 喪其本願이니라.

 

대저 배움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항상 많이 듣는 것에 친근하여, 편안하게 밝히어 의를 깨달으면, 비록 곤란하더라도 사악하지 않다.

夫學有二하니 常親多聞하여 安諦解義하면 雖困不邪니라.

 

피가 벼를 해치듯이, 많은 욕심은 배움을 방해한다. 많은 악함을 김매어 제거하면, 수확을 이룸이 반드시 많아진다.

稊稗害禾하고 多欲妨學이니라. 耘除衆惡하면 成收必多니라.

 

생각하고서 뒤에 말하며, 말은 강한 어조로 하지 않는다. 법을 말하고 의를 말하되. 말하여 어긋남이 없다.

慮而後言하며 辭不强染이니라. 法說義說하되 言而莫違니라.

 

잘 배워서 침범함이 없고, 법을 두려워하여 밝게 삼가라. 적은 것을 보는 지혜 있는 사람은 경계하여 뒤에 근심이 없다.

善學無犯하고 畏法曉忌니라. 見微知者는 誡無後患이니라.

 

멀리 죄와 복을 버리고, 힘써 부처님의 계율을 행함을 이루어, 몸이 맞도록 스스로 다스리니, 이것을 잘 배운다고 이름 붙인다.

遠捨罪福하고 務成梵行하여 終身自攝하니 是名善學이니라.

 

제3 다문품(多聞品)

 

다문품(多聞品)이란 또한 듣고 배움을 권하고 들음을 쌓아 거룩함을 이루어, 스스로 올바른 깨달음 이루는 것이다.

多聞品者는 亦勸聞學하고 積聞成聖하여 自致正覺이니라.

 

많이 들어서 능히 굳게 지니고, 법을 받들어 담장을 삼으라. 정진하면 넘어서 부수기 어려우니, 이에 따라 계율과 지혜가 이루어진다.

多聞能持固하고 奉法爲垣墻하라 精進難踰毁하니 從是戒慧成이니다.

 

많이 들으면 뜻을 밝게 해 주어, 이미 밝아지면 지혜가 더한다. 지혜는 곧 넓으면 의를 깨닫고, 의를 보면 행함이 법에 편한 하다.

多聞令志明하여 己明知慧增아니라. 智則博解義하고 見義行法安이니라.

 

많이 들으면 능히 근심을 제거하여, 능히 정함으로써 기쁨을 삼는다. 단 이슬과 같은 법을 설하여, 스스로 열반을 얻는 일을 이룬다.

多聞能除憂하여 能以定爲歡이니라. 善說甘露法하여 自致得泥洹이니라.

 

들으면 법과 계율을 알기 때문에, 의심을 깨닫고 또한 올바름을 본다.

들음에 따라 법이 아닌 것을 버리면, 행하여 죽음이 없는 곳에 이르게 된다.

聞爲知法律하고 解疑亦見正이니라. 從聞捨非法이면 行到不死處니라.

 

능한 스승이 되어서는 도를 나타내고, 의심을 깨달아 배움을 밝게 해야 한다. 또 청정함을 근본으로 일으켜서, 능히 법장(교법)을 받들어 가지라.

能爲師現道하고 解疑令學明하라. 亦興淸淨本하여 能奉持法藏하라.

 

능히 단정히 하면 의를 깨닫게 되고, 깨달으면 곧 의를 범하지 않으며, 법을 받아 법에 의지하는 사람은, 이에 따라 빨리 편안함을 얻는다.

能攝爲解義하고 解則義不穿하며 受法猗法者는 從是疾得安이니라.

 

만일 다소라도 듣는 것이 있어, 스스로를 크게 여겨 써 사람들에게 교만하면, 이것은 소경이 촛불을 잡는 것과 같아서, 그를 비치더라도 스스로 밝지 못하다.

若多小有聞하여 自大以憍人이면 是如盲執燭하여 炤彼不自明이니라.

 

대저 벼슬과 재물을 구하여, 존귀하기가 하늘의 복에 오를지라도, 지혜를 분별하여 세상에 포악하면, 이는 듣는 것이 첫째가 된다.

夫求爵位財하여 尊貴升天福이라도 辯慧世間卓이면 斯聞爲第一이니라.

 

제왕이 빙례(聘禮)하는 것도 듣는 것이니, 하늘 위의 하늘도 또한 그러하다. 듣는 것을 첫째로 간직하면, 가장 부함의 함께 하는 힘이 강하다.

帝王聘禮聞하니 天上天亦然이니라. 聞爲第一藏하면 最富旅力强이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듣기 위하여 굴복하고, 도를 좋아하는 사람도 또한 즐긴다. 왕인 사람은 마음을 다하여 섬기고, 비록 제석과 범천이라 할지라도 또한 그러하다.

智者爲聞屈하고 好道者亦樂이니라. 王者盡心事하니 雖釋梵亦然이니라.

 

선인도 항상 많이들은 사람을 공경하니, 하물며 귀하고 큰 부자인 사람에게 있어 서랴! 이 로써 지혜를 귀하게 여기니, 예절로 대우함이 이보다 지나는 것이 없다.

仙人常敬聞하니 況貴巨富人이랴! 是以慧爲貴하니 可禮無過是니라.

 

날로 섬김은 밝음을 위한 까닭이고, 아버지를 섬기는 것은 은혜를 위한 까닭이며, 임금을 섬기는 것은 힘을 얻으려는 때문이고, 많이 듣는 까닭으로 도를 지키는 사람을 섬긴다.

事日爲明故하고 事父爲恩故하며 事君以力故하고 聞故事道人이니라.

 

사람들은 목숨을 위하여 의원을 섬기고, 이기기를 바라 부호와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며, 법은 지혜 있는 곳에 있고, 복을 행하면 대대로 밝아진다.

人爲命事醫하고 欲勝依豪强하며 法在智慧處하고 福行世世明이니라.

 

친구를 살피는 것은 꾀함을 위함에 있고, 친구와 헤어지는 것은 위급한 때에 있다. 아내를 보는 것은 방의 즐거움에 있고, 지혜를 알고자 함은 설법에 있다.

察友在爲謨하고 別伴在急時니라. 觀妻在房樂하고 欲知智在說이니라.

 

듣는 것은 지금 세상의 이익을 위함이고, 아내와 아들과 형제와 친구는 역시 후세의 복을 이루는 것이니, 들음을 쌓아 거룩한 지혜를 이루어라.

聞爲今世利하고 妻子昆弟友는 亦致後世福이니 積聞成聖智하라.

 

이 능히 근심과 성냄을 흐트리고, 또한 길하지 못한 쇠퇴함을 제거하라. 안온한 길함 얻기를 바라거든, 마땅히 많이들은 사람을 섬기라.

是能散憂恚하여 亦除不詳衰하라. 欲得安檼吉하면 當事多聞者하라.

 

찍힌 상처는 근심보다 지날 것이 없고, 맞힌 화살은 거정보다 지날 것이 없어, 이것은 장한 사람도 능히 빼지 못하니, 오직 많이들은 사람을 따라야 제거할 수 있다.

析創無過憂하고 射箭無過患하여 是壯莫能拔하니 唯從多聞除니라.

 

소경은 이에 따라 눈을 얻고, 어두운 밤에 이에 따라 촛불을 얻으니, 또한 세상 사람들을 인도하여, 눈과 같이 눈 없는 사람들을 이끌어 줌과 같다.

盲從是得眼하고 闇者從得燭하니 亦導世間人하여 如目將無目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음을 버릴 수 있고, 거만함과 호걸스러움과 부자와 즐거움을 떠나, 배움에 힘쓰고 들음을 섬기는 사람은, 이를 덕을 모아 쌓는다고 이름 붙인다.

是故可捨痴하고 離慢豪富樂하여 務學事聞者는 是名積聚德이니라.

 

 

제4장 독신품(篤信品)

 

독신품이란 것은 도를 세우는 뿌리와 열매이다. 인함에 있어서 올바로 본다면, 행실을 돌아보지 않는다.

篤信品者는 入道之根果니라. 於因正見이면 行不回顧니라.

 

믿음과 부끄러움과 계율과 마음의 재산은, 이것은 법아사(法雅士)의 칭찬이다. 이 도를 밝히는 것을 지혜의 말이라 하며, 이와 같이 하면 하늘 세상에 올라간다.

信摲戒意財는 是法雅士譽니라. 斯道明智說하며 如是昇天世니라.

 

어리석음은 천행을 닦지 못하고, 또한 보시를 칭찬하지 않는다. 믿음을 베풀어 선함을 돕는 사람은, 이에 따라 저 편안함에 이른다.

愚不修天行하고 亦不譽布施니라. 信施助善者는 從是到彼安이니라.

 

믿는 사람은 참으로 사람의 어른이고, 법을 외우면 사는 곳이 편안하며, 가까운 사람은 마음에 위를 얻고, 지혜로운 수명은 수명 중에서도 현명하다.

信者眞人長하고 念法所住安하며 近者意得上하고 智壽壽中賢이니라.

 

믿음은 능히 도를 얻고, 법은 멸도를 이룬다. 들음을 따르면 지혜를 얻어, 이르는 곳마다 밝음이 있다.

信能得道하고 法致滅道니라. 從聞得智하여 所度有明이니라.

 

믿음은 능히 연못을 건너고, 잡음은 선사가 되며, 정진은 괴로움을 제거하고, 지혜는 피안에 이르게 한다.

信能度淵하고 攝爲船師하며 精進除苦하고 慧到彼岸이니라.

 

선비에게 믿음과 행함이 있으면, 성자를 위하여 칭찬하는 바가 된다.

무위를 즐기는 사람은 모든 속박을 풀 수 있다.

士有信行이면 爲聖所譽니라. 樂無爲者는 一切縛解니라.

 

믿음과 계율과 더불어 지혜를 마음으로 능히 행하면, 건장한 사나이는 성냄을 건넘을, 이에 따라 연못에서 벗어난다.

信之與戒와 慧意能行이면 健夫度恚하여 從是脫淵이니라.

 

믿음은 계율을 진실 되게 하여, 또한 지혜를 받는다. 살피고 살펴서 능히 행하면, 곳곳에서 기름을 볼 수 있다.

信使戒誠하여 亦受智慧니라. 在在能行하면 處處見養이니라.

 

바야흐로 세상의 이익과 비교하면, 지혜와 믿음은 밝은 것이 된다. 이것이 재산의 으뜸가는 보배이니, 집의 재산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比方世利하면 慧信爲明이니라. 是材上寶니 家産非常이니라.

 

여러 가지 참다움을 보기를 바라거든, 바라건대 청강하여 능히 인색한 때를 버리라. 이것을 믿음이라 한다.

欲見諸眞하면 樂聽講法하여 能捨樫咎하라. 此之爲信이니라.

 

믿음은 능히 개울을 건너, 그 복을 뺏기 어렵다. 능히 금하여 도둑질을 그치라. 뜰에 사문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信能度河하여 其福難奪이니라. 能禁止盜하라. 野沙門樂이니라.

 

믿음이 없으면 익히지 못하고, 올바른 말 찢기를 좋아하니, 그것은 서툰 사람이 물을 취함에, 샘을 파서 진흙을 올리는 것과 같다.

無信不習하고 夜剝正信이니 如拙取水에 掘穿揚泥니라.

 

현명한 사람은 지혜를 익히고, 맑은 흐름을 좋아하고 우러르니, 잘 물을 취하여, 생각하여 혼란시키지 않게 함과 같다.

賢夫習智하고 樂仰淸流하니 如善取水하여 思令不擾니라.

 

믿음은 다른 사람들을 물들이지 않고, 오직 현명함을 사람들에게 준다. 곧 배우기를 좋아해야 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곧 멀어 진다.

信不染他하고 唯賢與人이니라. 可好則學하고 非好則遠이니라.

 

믿음을 나의 수레로 삼으라. 이것에 탈 줄을 알지 못하면, 큰 코끼리를 길들이는 것과 같다. 스스로를 길들이는 것이 가장 낫다.

信爲我輿하라. 莫知斯載면 如大象調니라. 自調最勝이니라.

 

믿음은 재물이고 계율도 재물이고, 부끄러움도 또한 재물이고, 들음도 재물이고 베풀음도 재물이고, 지혜와 일곱 가지 재물이라 한다.

信財戒財하고 摲愧亦財요 聞財施財하고 慧爲七財니라.

 

믿음에 따라 계율을 지키고, 항상 깨끗하게 법을 보라. 지혜로와서 이익 됨을 행하고, 받들어 공경하여 잊지 말라.

從信守戒하고 常淨觀法하라. 慧而利行하고 奉敬不忘하라.

 

태어나면서 이 재물이 있으니, 남녀를 불문하고 마침내 써 가난하지 않으니, 현명한 사람은 참됨을 알라.

生有此財하나 不問男女하고 終以不貧이니 賢者識眞하라.

 

 

第五 계신품(誡愼品)

 

계신품이라 선한 도를 주고받아, 사악하고 그름을 금학 억제하여, 뒤에 후회하는 바가 없게 하려는 것이다.

誡愼品者는 授與善道하고 禁制邪非하여 後無所悔야니라.

 

사람으로서 항상 맑고, 계율을 받들어 끝까지 이르러, 선행을 깨끗하게 닦으면, 이와 같이 하여 계율을 이룬다.

人而常淸하고 奉律至終하여 淨修善行이면 如是戒成이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계율을 지켜어, 복을 삼보에 이루고, 이름이 들리고 이익을 얻어, 뒤에 하늘에 올라가는 즐거움이 있다.

慧人護戒하여 福致三寶하고 名聞得利하여 後上天樂이니라.

 

항상 법이 있는 곳을 보아, 계율을 지켜 밝음을 삼으면, 참다운 견해를 이루어, 무리들 중에서 길하고 상서롭다.

常見法處하여 護戒爲明이면 得成眞見하여 輩中吉祥이니라.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편안하여, 몸으로 하여금 번뇌를 없게 하고 밤에 누웠어도 고요하고 맑으며, 깨어나면 곧 항상 기쁘다.

持戒者安하여 令身無惱하고 夜臥恬淡하며 寤則常歡이니라.

 

계율을 닦고 보시를 하면, 복을 지어 복이 된다. 이에 따라 피안에 가서, 항상 안락한 곳에 이른다.

修戒布施하면 作福爲福이니라. 從是適彼하여 常致安處니라.

 

어떤 끝이나 선함으로 하고, 어떤 선함에도 편안히 그치며, 어떤 것이나 사람의 보배로 삼고, 어떤 도둑이라도 취하지 말라.

何終爲善하고 何善安止하며 何爲人寶하고 何盜不取니라.

 

계율의 끝은 늙어서 편안한 것이고, 계율은 선함에 편안히 그치라. 지혜를 사람의 보배로 삼고, 복된 도둑은 취하지 않는다.

戒終老安하고 戒善安止니라. 慧爲人寶하고 福盜不取니라.

 

비구는 계율을 세워, 모든 근원을 지키고 거두고, 먹는 것을 스스로 절제할 줄 알아, 깨달은 마음에 응하게 하라.

比丘立戒하여 守攝諸根하고 食知自節하여 悟意令應하라

 

계율로써 마음을 내리고, 마음을 지키어 정함을 바르게 하여, 안으로 바르게 봄을 배우면, 올바른 지혜를 잊는 일이 없다.

以戒降心하고 守意正定하여 內學正觀이면 無忘正智니라.

 

명철하게 계율을 지키고, 안으로 올바른 지혜를 생각 한다면, 도를 행하여 응함과 같이, 스스로 깨끗하게 고뇌를 제거한다.

明哲守戒하고 內思正智하면 行道如應하여 自淸除苦니라

 

모든 때를 깨끗이 제거하고, 참음을 다하여 생겨나지 말게 하라. 몸에 맞도록 법을 구하여, 잠시도 성스러움을 떠나지 말라.

蠲除諸咎하고 盡慢勿生하라 終身求法하여 勿暫離聖하라.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깨달음은, 이것을 마땅히 잘 생각하라.

모두가 이미 번뇌를 떠나면, 재앙도 없고 소유욕을 제거한다.

戒定慧解는 是當善惟하라. 都已離咎하면 無禍除有니라

 

집착을 풀면 곧 제도함이니, 나머지는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 모든 악마의 세계를 넘는 것이, 마치 날씨의 청명함과 같다.

著解則度하니 餘不復生이니라. 超諸魔界가 如日淸明이니라.

 

미치고 미혹함과 스스로 방자함은 이미 항상 밖을 피하며,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운 행실은, 가득 참을 구하여 떠나지 말라.

狂惑自恣는 已常外避하며 戒定慧行은 求滿末離하라.

 

계율을 지녀 맑고 깨끗하게 하여, 마음에 스스로 방자하지 않으면 올바른 지혜를 이미 깨달아, 사악한 곳을 보지 않는다.

持戒淸淨하여 心不自恣하면 正智已解하여 不覩邪部니라.

 

이리하여 길한 곳에 가서, 무상의 도를 행하고, 또한 도가 아닌 것을 버리고, 모든 악마의 세계에서 떠나라.

是往吉處하여 爲無上道하고 亦捨非道하고 離諸魔界하라.

 

 

제6 유념품(惟念品)

 

유념품이란 적은 것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안으로 생각을 살펴 편안하면 마음의 근본을 깨닫는다.

惟念品者는 守微之始에 內思安般하면 必解道紀니라.

 

숨을 내쉬고 숨을 들이마시는 생각을, 갖추어 가득 채워 밝게 생각하라. 처음부터 끝까지 날카로움에 통하면, 편안하기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다.

出息入息念을 具滿諦思惟하라 從初竟通利면 安如佛所說이니라.

 

이것이 곧 세상을 비췸이 구름이 풀리고 달이 나타남과 같다. 일어나 그처 배움을 생각하여, 앉았거나 누웠거나 폐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是則炤世間이 如雲解月現이니라. 起止學思惟하여 坐臥不廢忘이니라.

 

비구는 이 생각이 세워지면, 앞으로도 이롭고 뒤로도 곧 나아져, 처음에 얻으면 끝에도 반드시 나아져서, 가더라도 생사를 보지 않는다.

比丘立是念하면 前利後則勝하여 始得終必勝하여 逝不覩生死니라.

 

만일 몸이 사는 곳을 보려면, 6경(육경 오전 6시경)을 써 최고로 삼는다. 비구는 항상 한 마음으로 하면, 문득 스스로 열반을 안다.

若見身所住하면 六更以爲最니라. 比丘常一念하면 便自知泥洹이니라.

 

이미 이 여러 가지 생각이 있으면, 자기 몸에 항상 행함을 세워, 만일 그 이와 같지 않으면, 마침내 마음 행함을 얻지 못한다.

已有是諸念하면 自身常建行이니 若其不如是면 終不得意行이니라.

해설 : 부처님이 말씀하신 설법을 듣고, 이 모든 생각이 마음에 일어난다면, 부처님을 외우고 생각하여, 자기 몸에 항상 행함을 세우도록 마음에 결심하라. 마침내 마음 행할 것을 세우지 못한다면, 모든 부처님의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 근본 행함에 따르는 사람은, 이와 같이 하여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일 능히 마음의 생각을 깨닫는다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즐거움을 알아 깨달을 것이다.

是隨本行者는 如是度愛勞하니 若能悟意念하면 知解一念樂이니라.

 

때에 응하여 한 결 같이 법을 행한다면, 이것은 늙고 죽음의 고뇌에서 벗어난다. 비구가 깨달아서 마음을 행함은, 마땅히 이 생각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應時等行法하면 是度老死惱니라. 比丘悟意行은 當令應是念이니라.

 

여러 가지 생각으로 생사의 생각을 버린다면, 그것을 위하여 능히 괴로움이 생긴다. 항상 마땅히 미묘함을 듣고, 스스로 그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諸念生死棄하면 爲能作苦際니라. 常當廳微妙하여 自覺悟其意니라.

 

능히 깨달은 사람은 현명하다고 하여, 시종 고뇌를 당하는 일이 없다. 그 마음을 깨달아 능히 응하여, 밤낮으로 배우고 행함에 힘쓴다면, 마땅히 단 이슬이 필요함을 깨달아, 모든 번민을 끊어 없애고, 열반으로 가는 길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能覺者爲賢하여 終始無所會니라. 以覺意能應하여 日夜務學行이면 當解甘露要하여 令諸漏得盡이니라.

 

대저 사람이 선한 이익을 얻으려 한다면, 스스로 와서 부처님께 귀의하라. 이런 까닭으로 마땅히 밤낮으로, 항상 불법의 모든 것을 외워야 한다.

夫人得善利하면 乃來自歸佛하라. 是故當晝夜로 常念佛法衆이니라.

 

이미 스스로 마음을 깨달아 알면, 이것을 부처님의 w자라 한다. 항상 마땅히 밤낮으로, 불법승(삼보)을 생각하라.

已知自覺意하면 是爲佛弟子니라. 常當晝夜念하여 佛與法及僧하라.

 

몸은 항상하지 않음을 생각하고, 계율과 보시와 덕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공과 무상을 깨달아야 한다. 즉 만물은 다 없어진다는 공을 생각하고, 만물은 다 평등하다는 무상을 보아 차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탐욕의 생각을 끊고 해탈의 문인 모든 원력 없음에 들어가는 것을 깨닫는다면, 열반의 경지에 나아갈 수 있다.

念身念非常하고 念戒布施德하여 空不願無相을 晝夜當念是하라.

 

第七 자인품(慈仁品)

 

자인품이란 이 위대한 사람과 성인 밝는 바의 덕은 넓어서 한량이 없음을 말한다.

慈仁品者는 是謂大人과 聖人所履德은 普無量이니라.

 

인함을 행하여 죽이지 않고, 항상 능히 몸을 다스리면 이것이 불사에 처하여, 가는 곳마다 근심이 없다.

爲仁不殺하고 常能攝身하면 是處不死하여 所適無患이니라.

 

죽이지 않아 인을 행하고, 말을 삼가서 마음을 지킨다면, 이것이 불사에 처하여 가는 곳마다 근심이 없다.

不殺爲仁하고 愼言守心이면 是處不死하여 所適無患이니라.

 

저 혼란함을 이미 가즈런히 하고, 사랑하고 어짐으로써 지키어, 성냄을 보아도 능히 참는다면, 이것을 깨끗이 한 행실이라고 한다.

彼亂已整하고 守以慈仁하여 見怒能忍이면 是爲梵行이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편안하고 느리게 하고, 입으로 추한 말을 하지 않으며, 저곳에 성내지 않음을, 이것을 깨끗한 행실이라고 말한다.

至誠安徐하고 口無麤言하며 不瞋彼所를 是爲梵行이니라.

 

드리어 손길 잡아 하는 일이 없고, 중생을 해치지 않으며, 어지러이 번뇌하는 바가 없으면, 이것은 마땅히 깨끗한 행실이다.

垂拱無爲하고 不害衆生하며 無所嬈惱하면 是應梵行이니라.

 

항상 자비와 불쌍히 여김으로써, 깨끗하기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고, 만족함을 알고 그칠 줄을 안다면, 이것은 생사를 제도하는 것이다.

常以慈哀하고 淨如佛敎하며 知足知止면 是度生死니라.

 

욕심이 적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이익에 미혹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질어 침범하지 않는 것을 세상이 칭찬하는 바이다.

小欲好學하고 不惑於利하며 仁而不犯을 世上所稱이니라.

 

인자하여 수함은 침범당하는 일이 없고, 빨리 변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사람들이 간하여 소란하게 할지라도, 지혜는 잠잠함으로써 편안하다.

仁壽無犯하고 不興變快하며 人爲諍擾라도 慧以嘿安이니라.

 

널리 현명한 친구들을 소중이 여기고, 모든 중생들에게 항상 자비를 베풀며, 항상 인자한 마음을 행하여, 가는 곳의 사람들은 편안하다.

普憂賢友하고 哀加衆生하며 常行慈心하여 所適者安이니라.

 

어진 선비로서 사악하지 않고, 편안하게 그쳐서 근심이 없으면, 위의 하늘이 이를 지켜 주니, 지혜 있는 사람은 인자함을 즐긴다.

仁儒不邪하고 安止無憂면 上天衛之하니 智者樂慈니라.

 

밤낮으로 자비를 생각하고, 마음에 억지로 따르게 함이 없으며, 중생을 해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행실에는 원수가 없다.

晝夜念慈하고 心無剋我하며 不害衆生이면 是行無仇니라.

 

마음이 자비롭지 못하면 곧 죽이고, 계율을 어기면 말이 망령되며, 잘못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주지 않는다면, 따르는 중생을 보지 못한다.

不慈則殺하고 爲戒言妄하며 過不與他면 不觀衆生이니라.

 

술은 뜻을 잃게 만들고, 방탕하고 안일한 행동을 하여, 뒤에는 악도에 떨어지게 하니, 성실함이 없고 진실함이 없다.

酒致失志하고 爲放逸行하여 後墮惡道니 無誠不眞이니라.

 

인을 밟고 자비를 행하고, 널리 사랑하여 중생을 제도하면, 11의 칭찬이 있고, 복이 항상 몸을 따른다.

履仁行慈하고 博愛濟衆하면 有十一譽하고, 福常隨身이니라.

 

누워 있어도 편안하고 깨어나도 편안하고, 악한 꿈을 보지 않으며, 하늘이 보호해주고 사람들이 사랑해주며, 해독이 되지 않고 무기도 침범하지 않는다.

臥安覺安하고 不見惡夢하며 天護人愛하고 不毒不兵이니라.

 

물과 불에도 잃지 않고, 있는 곳에서 이익을 얻고, 죽어서 범천에 올라가니, 이것을 11가지 이익이라고 한다.

水火不喪하고 在所得利하며 死昇梵天하니 是爲十一이니라.

 

만일 자비로운 마음을 생각하여, 무한량으로 그만두지 않는다면, 생사는 점점 엷어져서, 이익을 얻고 세상을 제도한다.

若念慈心하여 無量不廢하면 生死漸薄하여 得利度世니라.

 

어진 마음은 뜻을 혼란하게 함이 없어, 자비는 가장 행해야 하거니와 중생을 상하게 할까 걱정 한다면, 이 복이 한량이 없다.

仁無亂志하고 慈最可行이니 愍傷衆生이면 此福無量이니라.

 

가령 수명이 다하여, 힘써 천하의 사람들을 섬기고, 코끼리와 말로써 하늘에 제사지낼지라도, 한 가지 자비를 행함만 못하다.

假令盡壽命하여 懃事天下人하고 象馬以祠天이라도 不如行一慈니라.

 

 

第 八 언어품(言語品)

 

언어품이라 입을 경계하는 방법이니, 말을 시작함에나 담론함에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다.

言語品者는 所以戒口니 發說談論에 當用道理니라.

 

악한 말로 꾸짓고, 교만하고 업신여겨 사람을 멸시하여, 이와 같은 행동을 일으키면, 미워함과 원망이 점점 생긴다.

惡言罵詈하고 교능멸인하여 흥기시행이면 질원자생이니라.

 

겸손한 말에는 말이 순하니, 사람을 존경하여, 맺음을 버리고 악함을 참으면, 미움과 원망은 스스로 없어진다.

逝言順辭니 尊敬於人하여 棄結忍惡이면 疾怨自滅이니라.

 

대저 선비가 태어남에, 도끼가 입안에 있는 것과 같아서, 몸을 베는 까닭은, 그 악한 말을 하는데 있다.

夫士之生에 斧在口中하여 所以斬身은 由其惡言이니라.

 

적은 이익을 위하여 다투는 것은, 재산 잃음을 가리는 것과 같아서, 그를 다툼을 이루어, 마음으로 하여금 악으로 향하게 한다.

諍爲小利는 如掩失財하여 從彼致諍하여 令意向惡이니라.

 

악함을 칭찬하고 악함에 칭찬받는 바는, 이는 둘 다 함께 악함이 된다. 입으로써 다투기를 좋아하면, 이 뒤에 다 편한 함이 없다.

譽惡惡所譽는 是二爲惡이니라. 好以口僧鬪하면 是後皆無安이니라.

 

도가 없으면 악도에 떨어져서, 스스로 지옥의 괴로움을 더한다. 어리석음을 멀리하고 참는 마음을 닦아, 4제(四諦)를 생각하면 곧 침범함이 없다.

無道墮惡道하여 自增地獄苦니라. 遠愚修忍意하여 念諦則無犯이니라.

 

선함을 따르면 해탈을 얻고, 악함을 행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선함을 깨달은 사람을 현명하다고 하니, 이것을 악한 번뇌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從善得解脫하고 爲惡不得解니라 善解者爲賢하니 是爲脫惡惱니라.

 

스스로 손해되는 마음을 지님을 깨달아, 말하는 가운데 조금하지 않고. 의로운 이야기와 법에 맞는 이야기는, 이 말이 부드럽고 연하여 달다.

解自抱損意하여 不躁言得中이니라. 義說如法說은 是言柔軟甘이니라.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근심이 없도록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게 굴거나 멸시하지 않으므로, 이런 사람을 능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是以言者는 必使己無患하며 亦不剋衆人하니 是爲能善言이니라.

 

말에 악한 마음이 들어 있지 않다면,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고, 사람들은 다 그의 말이 옳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의 옳음을 밖으로 나타내도록 하고, 악한 마음이 깃들어 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言使投意可하여 亦令得歡喜하고 不使至惡意하면 出言衆悉可니라.

 

지극히 성실하여 단 이슬과 같은 말은, 법과 같아서 잘못이 없고, 분명히 의와 같고 법과 같으면, 이것을 도를 세움에 가깝다고 한다.

至誠甘露說은 如法而無過하고 諦如義如法하면 是爲近道立이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경과 법에 관한 것을 말하는 사람은, 길하고 반드시 해탈하여 피안에 이르기 때문에 , 말 중에서 최고라고 말한 것이다. 어떤 일이나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 제일이다.

說如佛言者는 是吉得滅度하고 爲能作浩際하니 是謂言中止이니라.

 

신앙이 없는 사람은 배에 키가 없고, 말에 굴레가 없고, 집에 대들보나 기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第九 쌍요품(雙要品)

 

쌍요품이란 쌍쌍이 서로 밝히는 것이다. 선함과 악함에는 대가 있으니, 의를 드는 것도 간단하지는 않다.

雙要品者는 兩兩相明이니라. 善惡有對하니 擧義不單이니라.

 

마음은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은 존귀하며 마음을 부린다. 마음속에 악함을 생각하여, 곧 행동한다면, 죄의 괴로움이 스스로 따르는 것이, 수레가 바퀴를 따름과 같다.

心爲法本하니 心尊心使니라. 中心念惡하여 卽言卽行이면 罪苦自追가 車撤干撤이니라.

 

마음은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은 존귀하며 마음을 부린다. 마음속에 선함을 생각하여, 곧 말하고 곧 행동한다면, 복과 즐거움이 스스로 따르는 것이,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같다.

心爲法本하니 心尊心使니라. 中心念善하여 卽言卽行이면 福樂自追가 如影隨形이니라.

 

혼란한 마음에 따라 행동하고, 어리석음에 잡혀 어둠으로 들어가서, 스스로를 크다 하고 법이 없으면, 어찌 선한 말을 깨달을 수 있으랴!

隨亂意行하고 拘愚入冥하여 自大無法이면 何解善言이리오.

 

올바른 마음을 따라 행동하고, 맑고 밝음을 열고 깨달아서, 질투하지 않는다면, 민첩하게 선한 말에 도달한다.

隨正意行하고 開解淸明하여 不爲妬嫉하면 敏達善言이니라.

 

원망하는 사람에게 성낸다면, 일찍이 원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성내지 않고서 스스로 제거하면, 이것이 도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慍於怨者하면 未嘗無怨이니라. 不慍自除하면 是道可宗이니라.

 

그를 꾸짖기를 좋아하지 말고, 힘써 스스로 몸을 반성아 하라. 만일 이것을 안다면, 길이 멸하여 근심이 없으리라.

不好責彼하고 務自省身하라. 如有知此면 永滅無患이니라.

 

행동함에 몸의 깨끗함을 보고서, 모든 근원을 거두지 않고, 음식을 줄여 먹지 않고, 게을러서 겁 많고 약함에 떨어지면, 사악함 때문에 억제 되는 것이, 바람이 풀을 쓰러지게 함과 같다.

行見身淨하여 不攝諸根하고 飮食不節하고 慢墮怯弱이면 爲邪所制가 如風靡草니라.

 

몸의 깨끗하지 못함을 보고서, 능히 모든 근원을 거두고, 먹음에 절도를 알고, 항상 정진하기를 즐긴다면, 사악함 때문에 움직이지 않음이 큰 산에 바람이 부는 것과 같다.

觀身不淨하여 能攝諸根하고 食知節度하고 常樂精進하면 不爲邪動이 如風大山이니라.

 

독 있는 태도를 토해내지 아니하되, 욕심으로 달리게 하여, 능히 스스로를 고르게 하지 못한다면, 법이(가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不吐毒態하되 慾心馳騁하면 不應法衣니라.

 

능히 독 있는 태도는 토해내되, 마음으로 계율을 지키어 안정하여, 마음을 내리고 몸을 닦으면, 이것은 법의가 어울린다.

能吐毒態하되 戒意安定하여 降心己調면 此應法衣니라.

 

참됨으로써 거짓이라 하고, 거짓됨으로써 참됨이라 한다면, 이것은 사악한 계교가 되어, 참다운 이익을 얻지 못한다.

以眞爲僞하고 以僞爲眞이면 是爲邪計니 不得眞理니라.

 

참됨을 알아 참됨이라 하고, 거짓을 보고 거짓임을 알면, 이것은 올바른 계교가 되니, 반드시 참다운 이익을 얻을 것이다.

知眞爲眞하고 見僞知僞면 是爲正計니 必得眞理니라.

 

지붕을 덮음에 빽빽하지 못하면, 하늘에서 비가 오면 곧 샌다. 마음으로 이를 행하지 않으면, 음탕한 마음이 구멍이 된다.

盖屋不密하면 天雨則漏니라. 意不惟行하면 淫泆爲穿이니라.

 

지붕을 덮음에 잘 빽빽하게 하면, 비가와도 새지 않는다. 마음을 거두어 이를 행하면, 음탕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蓋屋善密하면 雨則不漏니라. 攝意惟行하면 淫泆不生이니라.

 

천한 사나이가 사람을 물들게 하는 것은, 썩은 물건에 가까이 감과 같다. 점점 미혹하여 그른 것을 익혀, 깨닫지 못하고서 악함을 이룬다.

鄙夫染人은 如近臭物이니라. 漸迷習非하여 不覺成惡이니라.

 

현명한 사나이가 사람을 물들이는 것은, 향기 나는 것에 가까이 감과 같다. 지혜에 나아가고 선함을 익혀, 행하여 깨끗한 덕행을 이룬다.

賢夫染人은 如近香熏이니라. 進智習善하여 行成潔芳이니라.

 

근심을 만들어 뒤에 근심하고, 악함을 행하여 두 가지를 근심하니 그도 근심하고 이것을 두려워하여, 죄를 보면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造憂後憂하고 行惡兩憂하니 彼憂惟懼하며 見罪心據니라.

 

기쁨을 만들어 뒤에 기뻐하고, 선함을 행하여 두 가지를 기뻐하니 그도 기뻐하고 이것을 기뻐하여, 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하다.

造喜後喜하고 行善兩喜하니 彼喜惟歡하며 見福心安이니라.

 

지금도 후회하고 뒤에도 후회하고, 악을 행하여 두 가지를 후회하니, 그 스스로 재앙을 만들어, 죄를 받고 뜨겁게 번뇌한다.

今悔後悔하고 爲惡兩悔하니 厥爲自殃하여 受罪熱惱니라.

 

지금도 기뻐하고 뒤에도 기뻐하고, 선을 행하여 두 가지를 기뻐하니, 그 스스로 복을 행하면, 복을 받고 기뻐한다.

今歡後歡하고 爲善兩厥하니 厥爲自祐하면 受福悅豫니라.

 

교묘한 말을 많이 구하여, 방탕하고 계율이 없고, 음란함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품어, 지관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여들음이 소떼와 같을지라도,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

巧言多求하여 放蕩無戒하고 懷淫怒癡하여 不惟止觀하면 聚如群牛라도 非佛弟子니라.

 

때로 말하여 적게 구할지라도, 도를 행함이 법과 같고, 음란함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여, 올바른 깨달음을 깨달아 마음을 풀고, 이득을 마주 보아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부처님의 제자이다.

時言小求라도 行道如法하고 除淫怒癡하여 覺正意解하고 見對不起하면 是佛弟子니라.

 

第十 방일품(放逸品)

 

방일품이란 계율을 인용하여 정을 경계하고, 사악함을 막고 잃음을 살피어, 도로써 현명함을 권한 것이다.

放逸品者는 引律戒情하고 防邪撿失하여 以道勸賢이니라.

 

계율을 단 이슬의 도로 삼고, 방일을 죽음의 지름길로 삼는다. 탐내지 않으면 곧 죽지 않고, 도를 잃으면 스스로를 잃게 된다.

戒爲甘露道하고 放逸爲死徑이니라. 不貪則不死하고 失道爲自喪이니라.

 

지혜로 도의 뛰어남을 지키면 마침내 방일하지 않으며, 탐내지 않으면 기쁨을 이루어, 이에 따라 도의 즐거움을 얻는다.

智慧守道勝하면 終不爲放逸하며 不貪致歡喜하여 從是得道樂이니라.

 

항상 마땅히 도를 생각하여, 스스로 힘써 올바른 행동을 지키라. 건강한 사람은 세상을 제도함을 얻어, 길하고 상서로움이 더 이상 되는 것이 없다.

常當惟念道하여 自强守正行하라 健者得度世하여 吉祥無有上이니라.

 

올바로 생각하여 항상 일으켜서, 행함이 깨끗하면 악함을 없애는 것이 쉬우니, 스스로 자제하여 법으로써 기쁨으로 삼고, 침범하지 않으면 좋은 이름이 더한다.

正念常興起하여 行淨惡易滅이니 自制以法壽하고 不犯善名增이니라.

 

행동을 하여 방일하지 않고, 단속하여 써 스스로 마음과 몸을 닦으며, 그의 지혜가 능히 세상의 밝은 등불이 되어 밝힌다면, 결코 고통과 번뇌로 더러워진 속세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發行不放逸하고 約以自調心하여 慧能作定明하면 不返冥淵中이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에 깨닫기가 어려워, 탐내고 혼란하여 쟁송을 좋아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항상 부겁고 신중하여, 이것을 지켜 보배로 존귀하게 여긴다.

愚人意難解하여 貪亂好諍訟이니라. 上智常重愼하여 護斯爲寶尊이니라.

 

탐내지 말고 다투기를 좋아하지 마라. 또한 욕심과 즐거움을 즐겨하지 말라. 마음에 생각하기를 방일하지 않는다면, 가히 써 크게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

莫貪莫好諍하라 亦莫嗜欲樂하라. 思心不放逸이면 可以獲大安이니라.

 

방일함을 만일 스스로 금하여, 능히 물리침을 현명하다고 한다. 이미 지혜의 누각에 오르면, 위험을 버리고 곧 편안하게 되니, 밝은 지혜로 어리석음 보기를, 멀리 있는 산과 땅을 내려다보는 것 같이 하라.

放逸如自禁하여 能却之爲賢이니라. 己昇智慧閣하면 去危爲卽安하니 明智觀於愚를 譬如山與地하라.

 

혼란함에 있으면서도 몸을 바르게 하면, 그 홀로 깨달았다고 한다. 이 힘은 사자를 지나니, 악함을 버리고 큰 지혜가 된다.

居亂而身正하면 彼爲獨覺悟니라. 是力過獅子하니 棄惡爲大智니라.

 

잠자는 것은 무겁기가 산과 같고, 어리석어어두움에 해치는 바가 되며, 편안히 누워서 괴로움을 헤아리지 못하니, 이로써 항상 수태하게 된다.

睡眠重若山하고 癡冥爲所弊하며 安臥不計苦하니 是以常受胎니라.

 

때로 스스로 방자함을 행하지 않고, 능히 억제하면 고뇌가 다함을 얻게 된다. 스스로 방자하면 악마가 찾아오는 것이, 사자가 사슴을 잡음과 같다.

不爲時自恣하고 能制漏得盡이니라. 自恣魔得便이 如獅子搏鹿이니라.

 

능히 스스로 방자하지 않은 사람은, 이를 계율을 지키는 비구라 한다.

저 올바른 깨끗함을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지킨다.

能不自恣者는 是爲戒比丘니라. 彼思正淨者는 常當自護心이니라.

 

비구는 삼감을 즐기고, 방일은 근심이 많으며, 다툼이 작은 것을 변하여 크게 이루어, 악함을 쌓아 불길로 들어간다.

比丘謹愼樂하고 放逸多憂건하여 變諍小致大하여 積惡入火焰이니라.

 

계율을 지키면 복이 선함을 이루고, 그러나 계율을 범하여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능히 삼계(삼천대천세계)의 번뇌를 끊으니, 이것이 곧 열반에 가깝다.

守戒福致善하고 犯戒有懼心이면 能斷三界漏하니 此乃近泥洹이니라.

 

만일 먼저는 방일했을지라도, 뒤에 능히 스스로 금하면, 이것이 이 세상의 등불이 되어 밝게 비출 것이니, 마음을 결심하고 그 등불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若前放逸이라도 後能自禁하면 是炤世間하니 念定其宜하라.

 

과실로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추후로 선으로써 덮으면, 이것이 이 세상을 밝히니, 잘 그 마땅함을 생각하라.

過失爲惡이라도 追覆以善이면 是炤世間하니 念善其宜하라.

 

어리고 젊어서 집을 버리고, 열심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으면, 이것이 이 세상을 밝히니, 달에서 구름이 사라짐과 같다.

少壯捨家하고 成修佛敎하면 是炤世間하니 如月雲消이라.

 

사람들 앞에서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뒤에 그치고 침범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니, 달에서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人前爲惡이라도 後止不犯하면 是炤世間하니 如月雲消니라.

 

살아서 베풀지 못한 번뇌를, 죽을 때까지 근심하지 않는다면, 더욱 근심이 많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참다운 도를 얻지 못하니, 차라리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生不施惱를 死而不慼이면 是見道悍하니 應中勿憂하라.

 

흐리고 검은 법을 끊고, 오직 맑고 깨끗함을 배워, 연못을 건너 돌아가지 말고, 의지함을 버리고 행함을 거치고서, 다시는 즐거움에 물들지 않으면, 욕심을 끊어 근심이 없다

斷濁黑法하고 學惟淸白하여 度淵不反하고 棄猗行止하여 不復染樂하면 欲斷無憂니라.

 

第十一 심의품(心意品)

 

심의품이란, 마음과정신이 비록 비어서행체가 없다 할지라도, 지어내면 다함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心意品者는 設意井神이 雖空無形이라도 造作無竭이니라.

 

마음으로 하여금 개로 만든다면, 지키기도 어렵고 금하기도 어렵다.

지혜로 그 근본을 바로잡으면, 그 밝음이 곧 커진다.

意使作狗하면 難護難禁이니라. 慧正基本이면 其明乃大니라.

 

가볍게 조금하면 지니기 어려우니, 오직 욕심만이 이에 따른다. 마음을 억제함을 선하다 하니, 스스로 다스리면 곧 편안하다.

輕躁難持하니 唯欲是從이니라. 制意爲善하니 自調則寧이니라.

 

마음은 미묘하여 보기 어려우니, 욕심에 따라서 가다. 지혜는 항상 스스로 보호하니, 능히 지키면 곧 편안하다.

意微難見이니 隨欲而行이니라. 慧常自護하니 能守則安이니라.

 

홀로 행하여 멀리 갈지라도, 덮고 감추어서 형체가 없다. 마음을 덜어 도에 가까이하면, 악마의 얽어맴도 곧 풀린다.

獨行遠逝라도 覆藏無形이니라. 損意近道하면 魔繫乃解니라.

 

마음이 살고 쉴 곳이 없으면, 또한 법을 알지 못하고, 세상일에 미혹되어, 올바른 지혜가 없다.

心無佳息하면 亦不知法하고 迷於世事하여 無有正智니라.

 

생각은 적당히 그치지 않으면, 끊기지 않아 가가 없다. 복이 능히 악을 그치게 함을, 깨달은 사람은 현명하다고 한다. 부처님은 마음의 법을, 비록 미묘하나 참됨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念無適止하면 不絶無邊이니라. 福能遏惡을 覺者爲賢이니라. 佛說心法을 雖微非眞이니라.

 

마땅히 편안한 마음을 깨달아야 하거니와, 마음 놓음을 따르지 말라. 법을 보면 가장 편안하여,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지혜는 작은 마음을 지켜, 고뇌의 인연을 끊는다.

當覺逸意하여 莫隨放心하라. 見法最安하여 所願得成이니라. 慧護微意하여 斷苦因緣이니라.

 

몸 있는 것이 오래지 않아, 다 마땅히 땅으로 돌아간다. 형체가 무너지고 정신이 사라지면, 붙어서 머물기를 탐내랴!

有身不久하여 皆當歸土하니 形壞神去하면 寄住何貪이리오.

 

마음에 미리 만들어 내는 곳은, 가고 오는 것이 끝이 없다. 생각에 사악하고 방탕함이 많으면, 스스로를 위하여 악을 부른다.

心豫造處는 往來無斷이니라. 念多邪僻하면 自爲招惡이니라.

 

이것은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니, 부모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올바름으로 나아가도록 힘쓰라. 복이 되어 도는 일이 없다.

是意自造하니 非父母爲니라. 可勉向正하라. 爲福勿回니라.

 

여섯을 감추는 거북과 같이, 마음 막기를 성과 같이 하라. 지혜가 악마와 더불어 싸워서, 이기면 곧 근심이 없다.

藏六如龜하여 防意如城하라. 慧與魔戰하여 勝則無患이니라.

 

第十二 화향품(華香品)

 

황향품이란 배움을 마땅히 행하여, 꽃으로 인하여 열매를 보듯이, 거짓으로 하여금 참됨으로 돌아오게 함을 밝힌 것이다.

 

누가 능히 땅을 가려, 경계함을 버리고 하늘을 취할까! 누가 법구(法句)를 풀어서, 좋은 꽃을 고르는 것 같이 할 수 있을까!

 

배우는 사람은 땅을 가리되 경계함을 버리고 하늘을 취하며, 잘 법구(法句)를 풀어서, 능히 덕의 꽃을 땀과 같이 한다.

 

세상을 질그릇의 비유로 아니, 허깨비의 법이 홀연히 있고, 악마의 꽃이 피어남을 끊으면, 생사를 보지 않는다.

 

몸을 보면 물거품과 같아서, 허깨비의 법이 자연이다. 악마의 꽃이 피어남을 끊으면, 생사를 보지 않는다.

 

몸이 병들면 시드는 것은, 꽃이 시들어 떨어짐 같고, 죽는 목숨이 이르는 것은, 물이 여울에서 빠름과 같다.

 

탐욕은 싫증내는 일이 없고, 꺼지고 흩어지는 사람은 사악하게 이르는 재산을 생각하여, 스스로 침범하여 속이는 일을 한다.

 

벌들이 꽃에 모여들어, 빛깔과 향기를 어지럽히지 않고, 단지 맛만을 취하고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인으로 모여드는 것도 그러하다.

 

그가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을 힘쓰지 말고, 항상 스스로 몸을 반성하여, 올바르고 바르지 않은 것을 알라.

 

옳은 마음의 꽃이, 빛깔은 좋더라도 향기가 없는 것과 같이, 공교로운 말도 이와 같으니, 행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다.

 

옳은 마음의 꽃이, 빛깔이 아름답고 또 향기가 있는 것과 같이, 공교로운 말에 행함이 있으면, 반드시 그 복을 얻는다.

 

많이 보배로운 꽃을 만들어, 묶으면 걸음을 움직임에 비단이 되고, 널리 덕을 쌓은 사람은 , 생기는 바가 좋게 구른다.

 

기이한 풀과 꽃다운 꽃은, 바람에 거스리지 않고 향기롭고, 도를 가까이하여 열어 나가는 덕 있는 사람은 향기에 다가온다.

 

전단은 향기가 많고, 푸른 연꽃은 향기로운 꽃이나, 비록 이것이 참이라고 말할지라도, 계율의 향기만은 못하다.

 

꽃의 향기는 적어서, 참됨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계율을 지니는 향기는 하늘에 이르러도 지나치게 낫다.

 

계율을 갖추어 성취시켜, 행동에 방일함이 없고, 마음을 정하여 건너가 벗어나면, 길이 악마의도에서 떠난다.

 

밭에 도랑을 만들어, 큰 길에 가까울지라도, 가운데 연꽃이 생겨나, 향기가 깨끗하여 마음에 아름다움과 같이, 생사에도 그러함이 있다. 보통사나이가 거처하는 가에, 지혜로운 사람은 나옴 즐기니,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第十三 우암품(愚闇品)

 

우암품이란 장차 어두움을 열므로써, 그러므로 그 태도를 베풀어 , 엿보아 밝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잠자지 않으면 밤이 길고, 피곤하고 게으르면 도가 길며, 어리석으면 생사가 기니, 올바른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마음은 항상 어두워, 가는 것이 흐르는 개울과 같다. 혼자 있으면 행함이 강하고, 홀로여서 짝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수에 집착하여, 근심과 슬픔이 오래고 길다. 어리석은 사람과 더불어 있으면 괴로워, 나에게 있어서 오히려 원망한다.

 

아들이 있고 재산이 있어도, 어리석은 사람은 오직 급하게 군다. 나는 또 내가 아니니, 아들과 재산을 근심하리오.

 

더위는 마땅히 여기에 머물고, 추워도 마땅히 여기에 머문다. 어리석은 사람은 많이 힘써 생각하되, 변함이 옴을 알지 못한다.

 

어리석고 어두운 사람은 어리석음이 다하면, 스스로 나는 지혜롭다고 말한다. 어리석어서 지혜를 이김을, 이것을 지극히 어리석다고 말한다.

 

완고하고 어두우면서 지혜에 가까이하려 하는 것은, 호리병박의 맛을 헤아림과 같아서, 비록 오래도록 익숙하게 익힌다. 할지라도, 오히려 법을 알지 못한다.

 

열어서 통달한 사람이 지혜를 가까이 하려하는 것은, 혀로 맛을 맛보는 것과 같아서, 비록 잠깐 동안 익힐지라도 , 곧 도의 요체를 깨닫는다.

 

어리석은 사람이 행동을 베풀음은 몸을 위하여 근심을 부르니, 유괘한 마음으로 악을 지어서, 스스로 무거운 재앙을 이룬다.

 

행실이 착하지 못함을 행하면, 물러나서 후회함을 보아,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이루니, 갚음을 묵은 습관에 말미암는다.

 

행실이 덕과 선함을 행하면, 나아가서 기쁨을 보아, 응하여 옴에 복을 받으니, 기쁨과 웃음을 기꺼이 익혔기 때문이다.

 

허물과 죄가 익숙하지 않았으면, 어리석은 사람은 편안함과 맑음으로써 하고, 그 익숙한 곳에 이르면, 스스로 큰 죄를 받는다.

 

어리석은 사람이 소망하는 곳을, 괴로움으로 간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재앙의 땅에 떨어짐에 임하여서야, 곧 악함인 줄을 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악함을 짓되, 능히 스스로 깨닫지를 못하며, 재앙을 좇아 스스로를 불살라서 죄가 심하게 불탐을 이룬다.

 

어리석은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여, 다달이 점점 더 심해져도, 16분에 있어서 하나도 법을 생각지 아니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을 함에 있어서, 끝까지 이익 됨이 없고, 스스로 칼과 몽둥이를 불러들여, 갚음에 낙인이 있다.

 

곳을 보고 그 어리석음을 알지라도, 베풀지 않고서 널리 구한다면, 떨어지는 곳은 도의 지혜가 없어, 가고 가도 악행만이 있다.

 

도를 멀리하고 욕심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먹는 것을 위주로 하고 배움은 이름만이 있다. 집에서 삶에 탐냄을 의지하기 때문에, 많이 취하여 다른 성에게 제공한다.

 

배울지라도 두 가지 욕망에 떨어지지 말라. 집에 있으면서 중이 되지 말라. 탐내는 집은 성스러운 가르침과는 어긋나서, 뒤에 스스로 없고 떨어지게 된다. 이 행실은 어리석음과 더불어 한 가지 여서, 단지 욕망과 거만함을 더하게 할 뿐이다.

 

이익을 구하는 소원도 다르고, 도의 마음을 구함도 또한 다르다. 이로써 앎이 있는 사람은 나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사랑을 버리고 세상의 습관도 버려서, 마침내 생사에 떨어지지 않는다.

 

第十四 명철품(明哲品)

 

명철품이란 지혜 있는 수행하는 사람의 복을 닦고 도(道)로 나아가, 법을 밝은 거울로 삼음을 든 것이다.

 

깊이 선악을 보고, 마음에 두렵고 꺼림을 알아, 두려워하여 침범하지 않으며, 마침내 길하여 근심이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 복이 있으니, 생각하고 생각하여 이어서 행하면, 잘 그 소원을 이루어, 복과 녹이 더욱 나아진다.

 

믿음은 잘 복을 만들고, 선행을 쌓으면 싫증나지 않는다. 남이 모르게 베푸는 덕행을 믿고 알면, 오래되면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항상 의(義)가 없음을 피하고, 어리석은 사람과 친하지 말라. 현명한 친구를 따르고, 좋은 선비에게 눌러 붙을 것을 생각하라.

 

법을 기뻐하면 누워 있어도 편안하고, 마음이 기뻐지고 뜻이 맑아진다. 성인은 법을 설명하시어, 지혜로움을 항상 즐기어 행하셨다.

 

인자한 사람과 지혜 있는 사람은, 목욕재계하고 도를 받들어, 별들 속의 달과 같이, 세상을 비추어 밝게 한다.

 

활을 만드는 공장이는 뿔을 다스리고, 물가에 있는 사람은 배를 다스리며, 목수는 나무를 다스리고, 지혜 있는 사람은 몸을 다스린다.

 

비유하면 두터운 돌이비람에도 옮길 수없는 것과 같이, 지혜 있는 사람은 마음을 무겁게 하여, 헐뜯거나 칭찬함에 기울어지지 않는다.

 

비유하면 깊은 연못이 맑고 고요하고 청명한 것과, 지혜 있는 사람은 도를 들으면, 마음이 깨끗하고 기뻐진다.

 

위대한 사람은 욕심 없음을 몸으로 삼아, 있는 곳을 비추어 밝게 한다. 비록 혹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난다 할지라도, 높이 그 지혜를 나타내지 않는다.

크게 현명한 사람은 세상 일이 없고, 아들과 재산과 나라를 원하지 않는다. 항상 계율과 지혜와 도를 지키어, 사악한 부와 귀를 탐내지 않는다.

 

지혜 있는 사람은 동요를, 비유하면 모래 가운데 나무와 같음을 안다. 친구들에게 대하여 뜻이 강하지 아니하면, 색깔에 따라서 그 바탕을 물들인다.

 

세상이 다 연못에 빠져, 능히 언덕으로 건너가는 사람은 드물다. 만일 혹시 사람이 있어, 건너가기를 바라며 반드시 달린다.

 

진실로 도를 탐내는 사람은, 올바른 가르침을 보고 받는다. 이 피안에 가까이 가서, 죽음을 벗어남을 최상이라 한다.

 

오음(빛깔, 소리. 향기. 맛. 감촉의 욕망)의 법을 끊고, 고요히 지혜를 길러, 세속의 인간생활을 버리고 깨끗한 사람이 되어 출가하여 한가한 곳에서 홀로 고요한 경지를 즐기고, 세속의 쾌락을 버리고 번뇌의 근심이 없는 생활로 들어갈 수 있다.

 

배워서 올바른 지혜를 얻어 세상의 욕망을 벗어나고, 항상 올바른 도를 생각하여 모든 집착을 벗어난 생활을 마음으로 즐기며, 세속의 탐욕의 포로가 되지 말고, 마음이 안정되고 근심이 없으면 어떤 속세에서 살지라도, 속세를 벗어나 피안에 이를 수 있다.

 

第十五 나한품(羅漢品)

 

나한품이란 참다운 사람의 성품과, 욕심을 벗어나고 집착함이 없어, 마음이 변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버리고 나서, 아무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깨달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마음을 잡히거나 고뇌가 없다.

 

마음이 깨끗하여 생각을 얻어, 탐내고 즐길 것이 없으면, 이미 어리석음의 연못을 건넘이 기러기가 연못을 버림과 같다.

 

배를 헤아려서 먹고, 감추어 쌓을 곳이 없어, 마음이 비고 생각이 없으면, 여러 사람들이 행하는 땅을 건너리라.

 

공중의 새가 멀리가도 방해함이 없는 것과 같이, 세상의 습관이 다하면, 다시 식탐(食貪)를 내지 않는다.

 

마음을 비워서 근심이 없으면, 이미 벗어날 곳에 이른다. 비유하면 나는 새가 잠시 내렸다가 문득 가는 것과 같다.

 

뿌리를 억제하여 그침에 따르는 것은, 말을 길들여 타는 것과 같다. 교만한 습관을 버리면, 하늘을 위하여 공경하는 바가 된다.

 

성내지 않음이 땅과 같고, 움직이지 않음이 산과 같아서, 참다운 사람이 때가 없으면, 생사의 세상을 끊는다.

 

마음이 이미 휴식하고, 말과 행동 또한 올바라서, 올바른 해탈에 따르면, 고요하여 멸(滅)로 돌아간다.

욕심을 버리고 집착함이 없고, 삼계의 장애가 빠지며, 바라는 마음을 이미 끊으면, 이것은 상등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을에 있으나 혹은 들에 있으나, 평지에 있으나 높은 언덕에 있으나 참다움을 응하여 지나는 곳에, 복을 받지 않음이 없다.

 

그가 비우고 한가함을 즐기는 것은, 많은 사람들은 능히 하지 못한다. 유쾌하도다, 바라는 것이 없고, 욕심을 구하는바가 없도다!

 

참다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마음을 비우고 한가함을 즐기거니와,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세속 사람들이 즐기는 쾌락을 끊어버렸기 때문에, 그가 즐기는 인생은 안심하고 즐길 수 있으며, 유쾌한 즐거움인 것이다.

 

 

第十六 술천품(術千品)

 

술천품이란 배우는 사람이 불경이 많아서 그 뜻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할 때에는, 줄여서 밝힘만 못함을 보이고 있다.

 

비록 천 마디 말을 외울지라도, 구절의 뜻이 올바르지 못하면, 한 가지 요점을 듣고 마음을 멸함만 못하다.

비록 천 마디 말을 외울지라도, 의가 아니라면 어찌 유익 하리오, 한 가지 의라도 듣고 행하여 제도함만 같지 못하다.

 

비록 불경을 많이 외울지라도, 깨닫지 못하면 어찌 유익하리오. 한 법귀를 깨달아도, 행하면 도를 얻을 수 있다.

 

천의 천을 적으로 삼아, 한 사나이가 이길지라도, 스스로를 이겨 싸움 중의 윗사람이 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스스로를 이기는 것은 가장 현명하다 하니, 그러므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지키고 몸을 다스려, 스스로를 덜어 끝까지 이르면, 높은 하늘과 신과 악마와 범천과 제석이라 말한다 할지라도, 다 능히 스스로를 이긴 사람을 이기지는 못한다.

 

달에 천 번을 제사지내어, 종신토록 그치지 않을지라도, 잠시 동안 한 마음으로 법을 생각함만 같지 못하다. 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도의 복은 그가 평생 동안 제사 지냄보다 낫다.

 

미록 끝내 백 살까지, 불에게 제사를 받들어 섬길지라도, 잠깐 동안 삼존을 공양함만 같지 못하다. 한 번의 공양하는 복은 그의 백년보다 낫다.

 

신에게 제사지내어 여러 가지제물을 바치거니와, 뒤에 그 보답이 4분의 1도 바라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도를 깨달은 사람에게 예배하는 것이 훨씬 낫다.

 

능히 잘 예절을 행하여, 항상 장노를 공경하는 사람은, 네 가지 복이 자연히 늘어나고, 빛과 힘과 장수하여 편안해진다.

 

만일 사람이 백 살을 수할지라도, 올바름을 멀리하고 계율을 가지지 않는다면, 하루를 살지라도 계율을 지키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선(禪)함만 못하다.

 

만일 사람이 백 살을 수할지라도, 사악하고 거짓되고 지혜가 없으면, 하루를 살더라도 한 마음으로 올바른 지혜를 배움만 못하다.

 

만일 사람이 백 살을 수할지라도, 게을러서 정진하지 아니하면, 하루를 살더라도 힘써 정신을 행함만 못하다.

 

만일 사람이 백 살을 수한다 할지라도, 성공과 실패의 일을 알지 못한다면, 하루를 살더라도 미묘함을 보고 꺼리는 바를 아는 것만 같지 못하다.

 

만일 사람이 백 살을 수한다 할지라도, 단 이슬의 도를 보지 못하면, 하루를 살더라도 단 이슬의 맛을 먹고 행함만 못하다.

 

만일 사람이 백 살을 수할지라도, 큰 도의 뜻을 알지 못하면, 하루를 살더라도 불법의 요체를 미루어 배움만 못하다.

 

 

第十七 악행품(惡行品)

 

악행품이란 악한 사람에게 감화되어 간절하면, 움직이면 죄의 갚음이 있으니, 행하지 않으면 근심이 없다.

착함을 보고도 따르지 않으면, 도리어 악한 마음에 따르게 된다. 복을 구하면서 올바르지 아니하면, 도리어 사악하고 음란함을 즐기게 된다.

 

대저 사람이 악을 행하면,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어리석음으로써 유쾌한 마음이라면, 뒤에 독이 쌓이게 된다.

 

흉한 사람이 사나움을 행하여, 점점 자주 가라앉거니와, 유쾌한 욕심을 행하는 사람은, 죄의 갚음이 자연이다.

 

길한 사람은 덕을 행하여, 서로 따르면서 쌓음을 더하니, 단 마음으로 덕을 행하면, 복이 응하는 것이 자연이다.

 

요괴가 복을 보는 것은, 그 악함이 아직 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악함이 익음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죄의 재앙을 받는다.

 

올바른 상서에도 재앙을 보는 것은, 그 선함이 아직 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선함이 익음에 이르러서는 , 반드시 그 복을 받는다.

 

사람을 치면 침을 얻고, 원망을 행하면 원망을 얻으며, 사람을 꾸짖으면 꾸짖음을 얻고, 성냄을 베풀면 성냄을 얻는다. 세상 사람들이 듣지 못하여 올바른 법을 알지 태어나는 수가 많으니 어찌 마땅히 악을 행하랴!

 

작은 악을 가볍게 생각하여, 써 재앙이 없다고 하지 말라. 물방울이 비록 작더라도, 점점 큰 그릇에 차니, 대저 죄가 충만 하는 것은, 작음을 따라 쌓여 이루어진다.

 

아무리 작은 선이라도 가볍게 생각하여, 복이 오지 않는다고 행각하여 버려서는 안 된다. 마치 물방울이 비록 작을지라도, 이윽고는 큰 그릇을 가득 채움과 같이, 이 세상의 복도 작은 선을 쌓아 나가면, 큰 선과 복이 가득 차게 된다.

 

대저 선비가 행동을 함에 있어서, 좋아함과 싫어함과, 각각 스스로 몸을 위한다면, 마침내 패망하지 않는다.

 

좋게 취하는 선비는, 스스로 써 옳음을 행한다. 그를 빠뜨리고 취하는 사람은, 사람도 역시 빠지게 한다.

 

악함은 곧 때가 아니니, 마치 우유를 짜는 것과 같다. 죄가 그늘에 있어서 엿보는 것이, 마치 재로 불을 덮는 것과 같다.

 

희롱하는 웃음은 악함이 되니, 몸으로 행함을 지음으로써, 부르짖어 울지라도 갚음을 받아, 행함을 따라 죄가 이른다.

 

악함을 짓고서 덮지 않으면, 병사에게 잘리는 것과 같다. 이끌어 가서 곧 알지라도, 이미 악행에 떨어져, 뒤에 괴로움의 갚음을 받는 것이 전에 익힌 바와 같다.

 

독이부스럼을 문질러서, 배가 물을 거슬려 들어옴과 같이, 악한 행실이 흘러서 넘치면, 상처를 이기지 못한다.

 

악함을 가하여 사람을 속일지라도, 맑고 깨끗하면 오히려 더러워지지 않는다. 어리석은 재앙이 도리어 스스로 미쳐, 티끌이 바람에 거슬려 모임과 같다.

 

잘못하여 그름과 악을 범할지라도, 능히 뒤따라 후회하면 선이 된다. 이것은 밝음이 세상을 비추어, 마치 해에 구름이 없는 것과 같다.

 

대저 선비가 행하는 까닭은 , 그런 뒤에 몸을 스스로 본다. 선을 행하면 선을 얻고, 악을 행하면 악을 얻는다.

 

앎이 있으면 포태에 떨어지고, 악하면 지옥에 들어가며, 선을 행하면 하늘에 올라가고, 무위를 하면 열반을 얻는다.

 

하늘도 아니고 바다 속도 아니고, 산의 바위 사이에 숨는 것도 아니다. 능히 이곳에서, 묵은 악의 재앙을 면하지 못한다.

 

중생들은 고뇌가 있어, 늙고 죽음 면함을 얻지 못하니, 오직 어질고 지혜가 있는 사람만이, 사람들의 그름과 악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第十八 도장품(刀杖品)

 

도장품(刀杖品)이란 자비와 인자함을 가르치고 익히면, 칼이나 몽둥이를 행하여, 중생을 해치는 일이 없다.

 

모두가 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몽둥이의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다. 자기를 용서하여 가히 비유로 삼아, 죽이지 말고 몽둥이를 행하지 말라.

 

모든 생물에 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현세에서는 해를 만나는 일이 없고, 죽은 뒤에도 길이 편안할 것이다. 결코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거칠게 말하지 말라. 그러면 자기 몸으로 돌아올 것을 두려워하라. 언제까지나 마음을 고치지 않고 행동한다면, 악은 가버리고 재앙이 찾아와서, 자기 몸이 칼과 몽둥이의 해를 받게 된다. 항상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도록 힘써야 한다.

 

사람들과 애기할 때, 말을 할 때 언제나 선의를 가지고 말하라. 마치 종이나 경쇠를 두드리면 고운 소리가 남과 같이, 말이 상냥하고 선량하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마음이 편안하여, 깨달음의 피안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량한 사람을 못살게 굴고, 죄도 없는 사람을 참소하여 헐뜯는 다면, 그 죄가 10배가 되어, 빨리 보복을 받게 된다.

 

살아서 혹독한 고통을 받고, 형체가 무너지고 꺾이어, 자연히 고뇌의 병이 되어, 뜻을 잃어 어두워진다.

 

사람에게 속이어 허물되는바 되고, 혹은 현관의 액이 있고, 재산을 다 소모하고, 친척들과 이별한다.

 

가옥의 재산은 화재로 다 타고, 죽어서 지옥으로 들어간다. 이 열 가지 갚음은 누구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재난을 받게 되거니와, 자기가 지은 죄의 보답인 것이다.

맨몸으로 머리를 깎고, 길게 베옷을 입고, 목욕하고서 돌에 걸터앉았을지라도, 마음이 욕정을 누르지 못하는 사람은 깨끗해질 수 가 없다.

 

마음이 선량하여 사람을 치거나 죽이거나 불태우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보다 훌륭해지기를 구하지도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원망을 받지 않게 된다.

 

사람들의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능히 자신을 반성하고 부끄러움을 안다면 , 잘 훈련된 좋은 말에 채찍질을 해도 성내지 않는 것처럼, 능히 가르치는 말을 잘 듣는다.

 

좋은 말에 채찍질을 하여, 능히 천리의 먼 길을 감과 같이, 사람이 믿음이 믿음과 계율을 지키고, 선정으로 마음을 단령하고, 지혜를 닦고 정진에 힘쓴다면, 받음과 도와 지혜가 이루어져, 사람들의 고뇌를 없애어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스스로 근엄 자중하여 마음을 닦고 법을 닦아,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과 접촉하면, 다른 사람의 원망을 받지 않고, 훌륭한 도인이 된다. 이것이 중이나 비구들이 갈길 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여 힘을 다하면, 평생 동안 사람들로부터 해를 당하는 일이 없다. 또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면, 누가 능히 그 사람을 원망하겠는가!

 

第十九 노모품(老耗品)

노모품이란 사람에게 권하여 목숨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면 늙어서 후회해도 무슨 이익이 있을지를 가르친 것이다.

 

이 세상은 항상 업화(業火)에 불타고 있는데,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웃을 것인가! 어둠에 덮여 있는 세상에, 어찌 광명을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인가!

 

자기의 몸의 형체를 보고, 약한 형상을 본보기로 하고 , 거기에 의지하여 편안함으로 삼는다. 생각이 많고 잡념이 많은 사람은 방에 걸리기 쉽고, 이 가짜인 신체를 안고, 진짜 자기로 생각 하지만, 이것은 참다운 도가 아니다.

 

사람은 늙으면 안색이 쇠퇴하고, 병들면 살갗의 광택이 없어진다. 살갗은 늘어나고 살은 오그라들어,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늙으면 이렇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몸이 죽어 정신이 �어져버리면 버린 수레를 모는 것과 같아서 백골이 되어 살은 떨어지고 뼈는 흩어지니,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인생의 무상함을 새삼스럽게 느낄 것이다. 몸을 어찌 믿을 수 있으랴!

 

몸은 성과 같은 것이어서, 뼈가 결합되고 살과 피로 덮여 있다, 그 가운데 생명이 있다. 태어나서 늙고 죽음에 이르기 까지, 거기에는 성냄과 교만이 깃들어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가 태어나고 죽음이 무상할 뿐이다.

 

사람은 늙으면 몸까지 변형되어, 허리는 꼬부라지고 볼은 축 쳐진다. 마치 헌 수레와 같아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법을 닦고 통를 행한 사람은 능히 고뇌를 제거하기 때문에, 마땅히 선을 닦고 수양한 사람을 표본으로 삼아 힘써 배우고 수향해야 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참다운 도를 듣지 못한 사람은, 늙어서 수소와 같이 살이 뒤룩뒤룩 찔 뿐, 복과 지혜도 없이 죽어간다.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아무 하는 일 없이 인생을 무료하게 지내면, 미혹되기 때문에 생사의 괴로움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에 의지하고 몸을 탐내면, 인생의 고뇌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사람이 지혜로써 인생을 바라보면, 괴로움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그러므로 몸을 버리면 괴로움이 없어지고, 그 원인이 되는 마음을 끊고 탐욕을 부리지 않아, 고뇌와 근심의 근본은 번뇌이기 때문에, 그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젊은 동안에 수행도 하지 않고, 재산도 모으지 못한다면 , 덕도 쌓지 못하여, 마치 백로가 빈 땅을 지킴과 같이, 늙어서 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지 않고, 또 재산도 쌓지 못하여, 늙어서 쇠잔하고 기운까지다 없어진 뒤에, 젊은 시절을 생각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늙어지면 가을 나무 잎 같이 더러워지고, 벌레가 먹어 모양이 변하고 힘이 다하여, 보기 싫은 모양이 된다. 일찍 법을 마음에 닦으면, 번뇌도 없고 생사의 근심도 벗어나,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다.

 

사람의 수명은 밤낮으로 다하고자 하여 잠시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때에 부지런히 힘써 법을 닦고 욕심을 억제하여, 번뇌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 세상의 만물은 누가 보아도 항상 있지를 못한다. 번뇌의 어두움 속에 떨어져 미혹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참다운 학문을 하여 올바른 도를 배우고 마음에 등불을 켜서 항상 밝게 비추고, 스스로 수련하여 지혜를 갈고 탐구하라, 마음의 때를 버리고 번뇌의 오욕에 물들지 말고, 마음의 촛불을 켜서 유혹을 이기고, 깨끗한 경지에 이르도록 노력하라. 그리고 해탈의 길을 굳게 잡도록 하라.

 

제이십 애신품(愛身品)

 

애신품은이란, 배움을 권하는 까닭은, 마침내 자기에게 이익 됨이 있어, 죄를 멸하고 복을 일으킨다.

 

스스로의 몸을 사랑하는 사람은, 삼가서 지킬 바를 지키고, 원하고 바라서 깨닫고자한다면, 올바름을 배워서 쉬지 않아야 한다.

 

몸을 제일로 삼고, 항상 스스로 힘써 배우라, 곧 사람을 이롭게 하여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지혜롭다.

 

배움은 먼저스스로를 바르게 하고. 그런 뒤에 사람을 바르게 하라. 마음을 닦고 지혜로 들어가, 반드시 옮기어 최상으로 삼는다.

 

몸을 능히 이롭게 하지 못단다면, 어찌 능히 사람을 이롭게 하리오.

마을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면, 어떤 소원인들 이르지 못하랴!

 

본래 내가 만드는 바를, 뒤에 내가스스로 받게 된다. 악을 행하고 스스로 다시 하는 것은, 금강석으로 구슬을 자름과 같다.

 

사람이 계율을 가지지 않는다면, 점점 덩굴이 뻗어 등나무와 같다. 정을 다하고 욕심을 다하여, 악행이 날로 더한다.

 

악행은 몸을 위태롭게 하지만, 어리석음을 써 쉽다고 한다. 선함은 가장 몸을 편안하게 하지만, 어리석음은 써 어려움이 된다.

 

참다운 사람의 가르침과 같이, 도로써 몸의 법으로 하라.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미워하여, 보고서 악이라고 한다. 악을 행하면 악을 얻는 것과 같다.

 

악함은 스스로 죄를 받고, 선함은 스스로 복을 받는다. 또한 각 각 모름지기 익으면, 그 스스로를 대신하지 않는다. 선을 익히면 선을 얻는 것이, 또한 단 것을 심음과 같다.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사람들을 이롭게 하면, 우익하여 허비하지 않는다. 몸을 이롭게 하기를 알고자하면, 계율을 듣는 것이 제일이 된다.

 

만일 스스로 근심이 있어,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면, 공경하고 즐기어 법을 듣고, 마땅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워야 한다.

 

무릇 씀은 반드시 미리 생각하여, 써 힘쓰는 바를 덜게하지 말라. 이와 같이 마음을 날로 닦으면, 일에 힘씀을 때를 잃지 않는다.

 

대저 일을 다스리는 선비는, 능히 이르러 마침내 이득을 이룬다. 참으로 몸을 보고 행동에 응하여, 이와 같이하여 바라는 바를 얻는다.

 

第二十一 세속품(世俗品)

 

세속품이란 세상은 허깨비와 꿈임을 설명한 것이다. 마땅히 들뜬 영화를 버리고, 힘써 도의 씀을 닦으라.

 

수레가 길을 감과 같아서, 편편하고 큰 길을 버리고, 사악한 지금 길을 따르면 실패하여 굴대가 꺾이는 근심이 생긴다. 법을 떠남도 이와 같으니, 법이 아님이 더함을 따라서, 어리석음을 지키어 죽음에 이르니, 또한 꺾일 근심이 있다.

 

올바른 길을 순하게 가서, 사악한 업에 따르지 않는다면, 가거나 누웠거나 편안하고, 후세에도 근심이 없다.

 

만물을 물거품과 같과, 마음은 들의 말과 같으며, 세상을 사는 것은 허깨비와 같으니, 어찌 이것을 즐기리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물위에 떠 있는 거품과 같고, 마음은 들판을 달리는 말과 같아 자유분방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허깨비와 같다. 우리들이 받는 물질도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고, 우리의 몸조차 죽어 없어진다. 모든 유혹을 극복하고, 지혜와 의지력과 인내력으로써, 용감히 진실한 법에 살라.

 

한 번 베풀면 믿음과 같고, 즐거운 사람과 같으니, 마음의 괴뇌를 따라, 써 무리에게 밥을 먹일지라도, 이와 같은 것들을 밤낮으로 해도,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

 

세상의 풍속은 눈이 없으면, 도의 참다움을 보지 못한다. 만일 조금이라도 밝음을 본다면, 마땅히 선함 마음을 기르라.

 

기러기가 무리를 이끌고, 그물을 피하여 높이 날음과 같으니, 밝은 사람은 세상을 인도하여, 사악한 무리들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한다.

 

세상은 죽음이 있고, 삼계는 편안함이 없다. 모든 하늘이 비록 즐겁다고 하지만, 복이 다하면 또한 잃는다.

 

모든 세상을 보면, 태어나서 끝나지 않음이 없다. 생사를 떠나기를 바라거든, 마땅히 도의 참다움을 행하라.

 

어리석음이 온 천하를 덮어, 탐냄을 보이지 않게하고, 사악한 의심은 도를 물리쳐서, 괴로운 어리석음이 이를 따른다.

 

한 번 법을 벗어나 지나서, 망녕된 말을 이르는 사람은 , 후세를 면치 못하고, 악함을 고치지 아니치 못한다.

 

비록 진귀한 보배를 많이 쌓아, 높고 높아 하늘에 이르러, 이와 같이 하여 세상에 가득찬다 할지라도, 도의 자취를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착하지 못함의 형상은 착함과 같고, 사랑은 사랑이 없는 것 같음과 같으며, 괴로움으로써 즐거운 형상을 하는 것은, 미친 사나이가 이루는 바라고 한다.

 

第二十二品 술불품(述佛品)

 

술불품이란 부처님의 신령한 덕은 이익으로 제도하지 않음이 없어, 밝혀서 세상의 법칙이 됨을 말한다.

 

이미 이겨서 악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세상을 이기고, 밝은 지혜는 커서 지경이 없어서, 어두움을 열어 도로 들어가게 한다.

 

그물을 끊어 걸어 방해함이 없고, 사랑이 다하여 쌓을 곳이 없다. 부처님의 마음은 깊어서 다함이 없어, 밟지 아니한 자취를 밟게 하신다.

 

용감하고 굳세게 한 마음을 세워, 출가하여 밤낮으로 멸하라. 뿌리를 끊어 욕심의 뜻을 없애고, 올바름을 배워 생각이 맑고 밝아진다.

 

참다움을 보고 깨끗이 하여 더러움이 없고, 이미 오도의 연못을 건너서, 부처님이 나오셔서 세상을 비추는 것은, 모든 근심과 괴로움을 제거하시기 위해서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얻기는 어렵고, 수를 생기게 함도 또한 얻기 어려우며, 세상에 부처님이 게시기가 어렵고, 부처님의 법을 듣는 것도 얻기 어렵다.

 

나는 이미 돌아가 쉼이 없고, 또한 홀로여서 짝이 없으며, 한 가지 수행을 쌓아 부처님을 얻으니, 자연히 성도에 통한다.

 

배를 부리는 사람은 능히 물을 건너 정진함을 다리로 삼는다. 사람은 써 여러 가지 성에 얽매이지만 건너는 사람을 굳센 사나이라 한다.

 

파괴적인 악을 건네주는 것은 부처님이 하시고, 땅에 머무르는 것은 범지라 한다. 흉년을 제거하는 것은 법을 배움이 되고, 씨앗을 끊어 제자로 삼는다.

 

보고 행함에는 참는 것이 제일이고, 부처님은 열반을 제일이라고 말씀하시며, 죄를 버리고 사문이 되면, 그에게 어지럽게 해함이 없다.

 

어지럽히지 않고 또한 고뇌하지 않고. 계율과 같은 모든 것을 가져서 적게 먹고 몸의 탐냄을 버리고, 그윽하고 은밀한 곳에서 수행함이 있으며, 마음을 밝게 하여 써 지혜가 있으면, 이능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 수 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존귀하시다. 번뇌를 끊고 음란함이 없고, 모든 풀이 중에서 으뜸이다. 한 무리의 따르는 마음이 있으면, 유쾌하도다. 복의 갚음이 있고,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 으뜸가는 고요함에 민감하면,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혹시 많이 스스로, 산과 내와 나무의신으로 돌아가서, 사당을 세우고 형상을 도모하고, 제사를 지내 복을 구한다.

 

스스로 돌아가 이와 같이 하면, 길하지도 않고 최상도 아니니, 능히 그가 와서 내가 많은 괴로움을 제도하지 못한다.

 

만일 스스로 불법과 극락세계에 있는 모든 보살과, 도덕의 사제(四諦)로 돌아감이 있다면, 반드시 올바른 지혜를 볼 것이다.

 

생사는 극진한 괴로움이다. 사제에 따라 제도를 얻어, 세상을 제도하는 팔정도(정견 ; 올바른 사제의 이치를 보는 일이고, 정사유 ; 올바로 사제의 도리를 생각하는 일, 정어 ; 올바른 말을 하는 일, 정업 ; 올바르게 생활하는 일, 정명 ; 몸. 입. 마음의 삼업을 깨끗이 하여 올바르게 생활하는 일, 정정진 ; 도에 힘서 노력하는 일, 정념 ; 올바른 도를 생각하여 사악한 생각이 없는 일, 정정 ; 미혹이 없는 깨끗한 깨달음을 얻는 일이다) 는, 이것이 모든 괴로움을 제거한다.

 

스스로 삼존에 돌아가니, 가장 길하고 가장 으뜸이다. 오직 홀로 이것만이 있어, 모든 괴로움을 제도한다.

 

선비가 만일 가운데로 올바라서, 도에 뜻을 두고 아끼지 않는다면, 이롭도다, 이 사람은 스스로 부처님에게로 귀의하는 사람이다.

 

밝은 사람은 만나기 어려우니, 또한 견줌이 있지 않다. 그가 태어나는 바의 곳은, 일가들도 경사를 받는다.

 

모든 부처님이 일어나심은 유쾌하고, 불경과 도를 말씀하심도 유쾌하며, 무리가 모여 화합함도 유쾌하고, 화합하면 항상 편안하다.

 

第二十三 안녕품(安寧品)

 

안녕품이란 편안하고 위태함을 차례에 따라 차이져서, 악을 버리고 선에 나아가면, 유쾌하여서 떨어지지 않는다.

 

나의 삶이 이미 편안하니, 원망해도 성내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 원망이 있어도, 나는 원망 없음을 행하리라.

 

나의 삶이 이미 편안하니, 병을 병으로 여기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 병이 있어도, 나는 병 없음을 행하리라.

 

나의 삶이 이미 편안하니, 근심을 근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 근심이 있어도, 나는 근심 없음을 행하리라.

 

나의 삶이 이미 편안하니, 맑고 깨끗하여 하는 것이 없다. 즐거움으로써 먹는 것을 삼으니, 빛과 소리가 하늘과 같다.

 

나의 삶이 이미 편안하니, 마음이 맑아서 일이 없다. 두루 불태우는 섶의 나라의 불도, 어지 능히 나를 불사르랴!

 

이기면 원망이 생기고, 지면 스스로가 천해진다. 승부의 마음을 버려서, 다툼이 없으면 스스로 편안하다.

 

뜨거움은 음란함을 지나는 것이 없고, 독은 성냄을 지나는 것이 없으며, 괴로움은 몸을 지나는 것이 없고, 즐거움은 멸함을 지나는 것이 없다.

 

즐거움을 없애어 작게 즐기고, 작게 판별하고 작은 지혜를 지녀, 큰 것을 보아서 구하는 사람은, 곧 큰 편안함을 얻는다.

 

나는 세존이 되었다. 길이 근심 없음을 깨달아, 바르게 삼유(욕계. 색계. 무색계)를 제도하고, 홀로 모든 악마를 항복시켰다.

 

성인을 보면 유쾌하고, 의지하여 가까이 함을 얻음은 유쾌하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떠남을 얻어, 선을 행함은 홀로 유쾌하다.

 

올바른 도를 지키는 것은 유쾌하고, 공교롭게 법을 풀이하는 것은 유쾌하며, 세상과 더불어 다툼이 없고, 계율을 갖추면 항상 유쾌하다.

 

현명함에 의지하여 사는 것은 유쾌하여, 가까운 사람들을 만남과 같다. 어질고 지혜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많이 들어서 높고 멀다.

 

수명은 드물고 적은데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버린다. 배워서 마땅히 필요함을 취하여, 늙음에 이르러서 평안하게 하라.

 

모든 단 이슬을 얻기를 바라거든, 욕심을 버리고 밝음을 멸하고 유쾌하라. 생사의 괴로움을 제도하기를 바라거든, 마땅히 단 이슬의 맛을 먹으라.

 

第二十四 호희품(好喜品)

 

호희품이란 사람의 많은 기쁨을 금하여, 능히 탐욕하지 않으면, 곧 근신과 걱정이 없다.

 

도에 어긋나며 곧 스스로를 다르고, 도에 따르면 곧 스스로에 어긋난다. 의를 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취함을, 이것을 사랑과 욕심에 따른다고 한다.

 

마땅히 사랑하는 곳에 나아가지 말라. 또한 사랑하지 않음이 있지 말라, 사랑하는 것을 보지 않음도 근심하고 , 사랑하지 않음을 보는 것도 또한 근심한다.

 

이로써 사랑을 만들지 말라. 사랑은 증오가 말미암는 곳이다. 이미 결박을 제거한 사람은, 사랑도 없고 미워하는 바도 없다.

 

사랑의 기쁨은 근심을 낳고, 사랑의 기쁨은 두려움을 낳는다, 사랑을 기뻐하는 바가 없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좋아 함과 즐거움은 근심을 낳고, 좋아함과 즐거움은 두려움을 낳는다. 좋아하고 즐거운 바가없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탐욕은 근심을 낳고, 탐욕은 두려움을 낳는다. 깨달아 탐욕을 없애면, 근심과 두려움은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

 

법을 탐내고 계율을 이루고, 지극한 정성으로 부끄러움을 알며, 몸으로

행하여 도에 가까워지면, 아무런 근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어지게 된다.

 

욕심은 태도를 내지 않고, 올바름을 생각하여 곧 말하며, 마음에 사를 탐냄이 없으면, 반드시 흐름을 끊고 건너간다.

 

비유하면 사람이 오래가서, 멀리로부터 길함에 돌아와, 친하고 후함에 널리 편안하면, 돌아옴에 기뻐하게 된다.

 

좋아하여 복을 행하는 사람은, 여기로부터 저리로 이르러, 스스로 복을 받음이, 부모님께서 오셔서 기뻐함과 같다.

 

일어나서 거룩한 불교에 따라, 착하지 못함을 금하여 억제 한다. 도에 가까우면 사랑을 보고, 도를 떠나면 친함이 없다.

 

가까움과 더불어 가깝지 않은 것은, 사는 곳이 다르다. 도에 가까우면 하늘로 올라가고, 가깝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第二十五品 분노품(忿怒品)

 

분노품이라 성냄의 해됨을 보고, 관대하고 광대하고 인자하고 부드러운, 하늘이 돕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분노하면 법을 보지 못하고, 분노하면 도리를 알지 못한다. 능히 분노를 제거하는 사람은, 복과 기쁨이 항상 몸에 따라다닌다.

 

탐내고 음탕하면 법을 보지 못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마음도 또한 그러하다. 음탕함을 제거하고 어리석음을 버리는 사람은 그 복이 가장 높다.

 

성냄을 능히 자제하여 마치 달리는 수레를 멈춤과 같이 하면, 이것을 잘 제어함이 되어, 어둠을 버리고 밝음으로 들어가게 된다.

 

욕됨을 참으면 성냄을 이기고, 선함은 악함을 이기게 된다. 이긴 사람은 능히 베풀고, 지극한 정성은 속임을 이긴다.

 

속이지 말고 성내지 말고, 마음으로 많이 구하지 말라. 이와 같은 세 가지 일은 죽으면 곧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항상 스스로의 몸을 잘 다스려, 자비로운 마음을 죽게 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하늘 위에서 살고, 거기에 이르러도 근심이 없다.

 

마음을 항상 깊이 깨달아 밤낮으로 불교의 학문에 부지런히 힘쓰면, 새어 나가는 것이 다하고 마음에 깨달아, 가히 이원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이 서로 비방하고 헐뜯는 일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렀다. 이미 말 많은 것을 비난하고, 또 말이 적고 참음을 비난하고, 또한 치우치지 아니 함을 비난하니, 세사에 비난하지 않음이 없다.

 

욕심내는 마음은 거룩하지 못하여, 중도를 통제하지 못한다. 한번 헐뜯고 한 번 칭찬함은 단지 이익과 명예를 위하여 할 뿐이다.

 

밝은 지혜는 칭찬하는 바가 되어, 오직 이 현명하다고 일컫는다. 지혜 있는 사람은 계율을 지키어 헐뜯을 곳이 없다.

 

나한과 같이 깨끗하면 헐뜯을 데가 없으며, 모든 사람들도 감탄하고, 하늘도 칭찬하는 바가 된다.

 

항상 몸을 삼가 지키어 써 성내는 것을 지키고, 몸의 악행을 제거하여 나아가 덕행을 닦으라.

 

항상 말을 삼가고 지키어 써 성냄을 지키고, 입으로 악한 말 하는 것을 제거하고 불경을 외우고 익히라.

 

항상 마음을 삼가 지키어 써 성내지 않도록 하라. 또 마음에서 악한 생각을 제거하고 생각에 잠기어 도를 외우라.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 그 마음을 지키고 붙잡으라. 성냄을 버리고 도를 행하라. 욕됨을 참는 것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성냄을 버리고 거만함을 떠나고, 모든 사랑과 탐냄을 피하라. 명예와 여색에 집착하지 아니 하면, 마음이 편안하여 괴로움이 없어진다.

 

일어나서 노여움을 풀고, 음란한 생각이 일어 나거든 스스로 금하라. 분명하지 못한 근본을 버리면, 이것이 다 편안함을 얻는 길이다.

 

성냄을 끊으면 누웠어도 편안하니, 성냄을 멸하고 음란함을 근심하라. 성냄은 해독(害毒)의 근본이 되니, 마음을 부드럽게 지니면 부처님의 뜻이 된다.

 

말이 선량하면 칭찬을 얻고 성냄을 끊어버리면근심될 것이 없다. 뜻이 같으면 서로 가깝고, 거짓을 하면 악을 저지르게 된다. 뒤에 헤어져도 나머지 성냄이 있으면, 불은 스스로 번뇌를 불사르게 된다.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면, 계율이 없어 성냄이 있다. 성냄 때문에 끌려가는 바가 되어 , 싫지 않더라도 업신 여김이 있게 된다. 힘이 있으면 병사에 가깝고, 힘이 없으면 부드러움에 가깝다.

 

대저 참음을 최상으로 삼거니와, 마땅히 항상 약한 자에게 참으라. 일반 사람들은 다 참는 것을 가볍게 알지만, 지혜의 힘이 있는 사람은 참는다.

 

대저 참는 것을 최상으로 삼거니와, 마땅히 항상 약한 사람에게 참으라. 나 자신과 그와 대외(大畏)와 세 가지가 있으니, 만일 그를 위하여 일함인 줄 안다면, 마땅히 자기 가운데 멸해야 한다.

 

함께 두 가지 의를 행함을 내가 그에게 가르침을 행할지라도, 만일 그것이 그를 위하고 나를 위하여 하는 것인 줄을 안다면, 마땅히 자기 안에서 성냄을 없애는 것이 좋다.

 

착한 지혜는 어리석음의 거친 말과 악한 말보다 낫다. 항상 이기기를 바라거든, 말함에 있어서 마땅히 침묵 하라.

 

대저 악을 행하는 사람은 성내면 성냄의 보복이 있다. 성내어도 성냄의 보복이 없다면, 그와 싸워서 지는 것보다 낫다.

 

 

진구품(塵垢品) 第二十六

 

진구품이란 것은 맑고 흐림을 분별하는 일이다. 배우면 마땅히 청렴결백하여 오욕을 행하는 일이 없다.

 

살아서 선행을 하지 않는 다면, 죽어서 악도에 떨어진다. 가는 것이 빨라 시간이 없고, 다다름에 소요되는 금품이 없을 것이다.

 

마땅히 지혜를 구하여 써 마음 정하기를 불태우라. 때를 버리고 더러워지지 말아야 가히 괴로운 형체에서 떠날 수 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써 점차적으로 안정되고 서서히 차차 나아가, 마음의 때를 씻어 제거하는 것이 , 마치 공장이가 쇠를 단련하는 것과 같다.

 

악함이 마음에서 생기면, 도리어 스스로 형체를 부순다. 마치 무쇠에 때가 생기면, 도리어 그 몸을 먹는 것과 같다.

 

부처님의 말씀을 외우지 않으면 말의 때가 되고, 부지런히 청소하지 않으면 집안의 때가 되며, 엄격하지 않으면 여색의 때가 되고, 방탕하고 안일하면 일의 때가 된다.

 

인색하면 은혜를 베풀음의 때가 되고, 선하지 못함을 행하면 때가 된다. 지금 세상에나 또는 후세에나 악한 행실은 항상 때가 된다.

 

때 중에서도 가장 큰 때는 어리석음보다 심한 것은 없다. 배우는 이들이여, 마땅히 악을 버리라. 비구들이여, 때를 없게 하라.

 

구치하게 살아 부끄러움을 모르니, 마치 새의 긴 부리와 같다. 굳센 얼굴을 하고 욕됨을 참는 것을, 이름 하여 더러운 생활이라 말한다.

 

마음이 청렴하고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비록 괴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옳음은 청백함을 취한다. 욕됨을 피하고 망녕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이름 하여 깨끗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살생을 좋아하고, 말에 진실성이 없으며, 주지 않아도 취하고, 남의 부인 침범하기를 좋아하며, 마을을 늦추어 계율을 범하고, 술에 미혹되거니와, 이런 사람은 이승에 있으면서 스스로 몸의 근본을 판다.

 

사람이 만일 이것을 깨달았으면, 마땅히 악함을 생각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은 법이 아닌데 가까이하여, 영구히 스스로를 불태워 없앤다.

 

만일 믿음의 보시를 베풀어 명예를 드날리기를 바라, 사람들의 허식을 모으면, 이는 깨끗한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욕심을 끊고, 마음의 근원을 잘라내라. 밤낮으로 한 가지 도를 지키면, 반드시 마음의 안정으로 들어갈 것이다.

 

때에 붙는 것은 티끌이 되고, 티끌에 물들음에 따르는 것을 번뇌한다고 한다. 물들지 않고 악행을 하지 않으면, 깨끗하여 어리석음에서 떠나게 된다.

 

그가 스스로 침범하는 것을 보고, 항상 안으로 스스로 번뇌를 행하여 스스로 속임이 있는가를 반성하면, 번뇌는 다하고 때는 없어진다.

 

불길은 음탕함보다 더 뜨러운 것이 없고, 빠르기로는 성냄보다 더 빠른 것이 없으며, 그물은 어리석음보다 더 빽빽한 것이 없고, 사랑의 흐름은 개울보다도 빠르다.

허공에 새의 자죽이 없고, 중들에게 외부의 뜻이 없다. 모든 사람들은 다 악함을 즐기는데, 오직 부처님만이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다.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죽이 없고, 중들에게 외부의 뜻이 없다. 세상 만물은 다 항상 됨이 없지만, 부처님만이 내 소유가 없다.

 

第二十七 봉지품(奉持品)

 

봉지품(奉持品)이란 도(道)의를 해설한 것으로, 법은 덕행을 귀중하게 여기고, 탐냄과 사치를 쓰지 않는다.

 

불경의 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익을 다투지 아니하고, 이익이 있거나 이익이 없거나 욕심내지 않고 미혹되지 않는다. 항상 배우기 좋아함을 근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써 행하며, 보배로운 지혜를 안아 품거니와, 이것을 도를 행한다고 말한다고 말한다.

 

소위 지혜 있는 사람이란 반드시 말을 잘하지 못하고, 두려워함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선함을 지킴을 지혜롭다고 한다.

 

법을 받들어 가지는 사람은 많은 말로써 하지 않고, 비록 본디 적게 들어도 몸은 법에 의하여 행하며, 도를 지켜 싫어하지 않는 것을 법을 받든다고 말한다.

 

소위 늙은 사람이란 반드시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다. 형체가 물러지고 머리가 백발이 되는 것은 어리석음일 뿐인 것이다.

 

법을 자세히 알아 지니고, 순조롭고 자비롭고 어질며, 밝고 멀고 깨끗한 것을 말하여, 이를 장노(長老)라고 한다.

 

소위 단정하고 엄격하다는 것은 여자가 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끼고 미워하며 거짓 꾸미면, 말과 행실에 어긋남이 있다.

 

능히 악함을 버리고, 악의 근원인 사리사욕을 이미 끊고 지혜롭고 서 도 성내지 않는 것을 일러, 이것을 단정하고 엄격하다고 말한다.

소위 사문(沙門-스님)이란 반드시 머리를 깍는 것이 아니다. 망녕된 말과 탐내어 취하여 욕심이 있으면,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능히 악함을 그치고, 넓은 성에 있거나 큰 길에 나가거나, 마음을 그치고 뜻을 멸하는 것을 일러, 이것을 사문(沙門 스님)이라고 한다.

 

소위 비구란 때대로 먹을 것을 비는 것이 아니다. 간사하게 행동하여 남의 부인에게 음란한 짓을 하면, 이름만이 비구(比丘)라고 일컬어질 뿐이다.

 

죄와 복을 버리고 깨끗하게 불도를 닦아, 지혜로써 능히 악함을 쳐부수는 것을 일러 이를 비구라 한다.

 

소위 마음이 인자하고 지혜가 밝다는 것은, 입으로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씀이 깨끗하지 못하면, 밖으로 순종할 뿐인 것이다.

 

마음으로 함이 없고, 안으로 맑고 허함을 행하여, 서로 다섯 가지욕심을 끊어버리는 것을 일러, 이것을 마음이 어질고 지혜가 밝다고 한다.

 

소위 도가 있다는 것은 한 가지 물건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다. 널리 천하를 구제하여 해됨이 없는 것을 도라 한다.

 

계율이 많은 것을 말하지 않음은 재가 진실로 많은 것을 행하기 때문이니, 뜻의 정함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가리고 손해됨을 따른다. 마음에 깨달아 안정을 구하려거든 보통 사람에게 배우지 말라. 결말이 아직 다하지 않았는데, 능히 해탈(解脫)을 얻지 못한다.

 

 

第二十八 도행품(道行品)

 

도행품(道行品)이란 불도의 대요(大要 : 불교의 요지)와 도탈(度脫 : 어떻게 중생들을 제도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여, 이것을 지극히 묘한 것으로 삼는다.

 

팔정[八正 : (1)정견(바른 견해와 불교의 바른 세계관 인생관으로서의 인연과 사제에 관한 지혜). (2)정사유(행위와 언어에 의한 행위를 하기 전에 바른 의사 도는 결의를 가리킨다. 출가자라면 출가자다운 유화와 자비와 충정의 마음으로 사념사유 하는 일이다). (3)정어(정어란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언어적 행위이다). (4)정업(정업이란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신체적 행위이다). (5)정명(바른 생활이다. 이것은 바른 직업에 의해 바르게 행활 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6)정정진(정정진이란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며, 그것은 종교적 윤리적. 정치적. 육체 건강상의 모든 면에서 이상으로서의 선을 낳고 증대시키되, 이에 어긋나는 악을 줄이고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7)정념(정념이란 바른 의식을 가지고 이상과 목적을 언제나 잊지 않는 일이다. 사소한 부주의가 얼마나 중대한 참사를 일으키는가를 일반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불교적인 정념이란 무상. 고. 무아 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잊지 않는 일이다). (8)정정(정정이란 정신통일을 말하며 사선정을 가리킨다. 사선정과 같은 깊은 선정은 일반인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바른 지혜를 얻거나 지혜를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해필요하다. 경경지수와 같은 흐림이 없는 마음과 무념 무상과 같은 마음의 상태는 정정이 진전된 것이다. 여기서 정견은 나머지 일곱이 달성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리고 팔정도는 여덟 가지 항목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성도(聖道)를 이루는 각 부분이며 여덟 가지는 일체로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별개의 것이 아니다.] 팔정은 최상의 도(道)요, 4제(四諦)는 불교 유포의 자취가 된다. 음란하지 않음은 행실의 높은 것이고, 연등을 베풀면 반드시 눈이 뜨여짐을 얻는다.

 

이 도는 다시 두려워할 것이 없으니, 깨끗함을 보면 세상을 도탈(度脫)시킬 수 있다. 이것은 능히 마병(魔兵)을 무너뜨려, 힘써 행하면 간사함과 괴로움이 없어진다.

 

나는 이미 올바른 도를 열어, 크게 다른 광명이 나타나도록 행하고 있다. 이미 들었거든 마땅히 스스로 행하라. 행하면 곧 간사한 결박이 풀릴 것이다.

 

살고 죽는 것은 비상하게 헛된 것이니, 잘 보고서 지혜를 행하라. 모든 괴로움에서 떠나기를 바라거든, 다만 마땅히 힘써 도를 행하라.

 

일어날 때는 마땅히 곧 일어나서, 어리석음의 연못을 덮지 말라. 함께 떨어지고 함께 보고 모이는 것도, 헤아려 그만두면 도에 나아가지 못한다.

 

생각에 따르면 생각이 곧 올바르게 되고, 생각에 따르지 않으면 곧 간사해진다. 지혜로 와서 간사함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 올바름을 생각하면 도는 곧 이루어진다.

 

말을 삼가고 마음의 뜻을 지키고, 몸으로 악한 행실을 하지 않아, 이와 같은 세 가지 행실을 다스리면, 부처님은 이 도를 얻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무를 끊어 근본을 치는 일이 없다면, 뿌리가 있어 오히려 다시 살아남과 같다. 뿌리를 제거하면 곧 나무가 없고, 비구는 진창을 얻게 된다.

 

능히 나무를 자르지 못한다면, 친척들을 서로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탐내는 마음이 스스로를 묶어, 송아지가 젖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능히 마음의 근본을 끊고, 삶과 죽음에 힘쓰지 말라. 이것을 도에 가깝다고 하며, 빨리 해탈을 얻을 수 있다.

 

음란함을 탐내면 늙음에 이르게 하고, 성냄은 병에 이르게 하고, 어리석음은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와, 이세 가지를 제거해야 도를 얻을 수 있다.

 

앞을 풀고 뒤를 풀고, 가운데를 벗어나 피안에 건너가면, 모든 생각이 없어져, 다시는 늙고 죽음이 없다.

 

사람은 처자를 기르는 동안에는 병 같은 것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목숨의 죽음이 갑자기 이르러야, 마치 홍수의 빠름과 같다.

 

아버지도 아들도 구원하지 못하니, 나머지 친척에게 무엇을 바랄 것인가. 목숨이 끝나고 친척을 의지한다는 것은 마치 소경이 등불을 지키는 것과 같다.

 

지혜는 이와 같은 뜻을 풀어, 불경의 계율을 닦고, 힘써 행하여 세상 사람들을 제도하고, 모든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다.

 

모든 욕심의 연못을 멀리 떠나는 일은, 마치 바람이 구름을 물리침과 같다. 이미 모든 생각들을 없애버리면, 이것을 지혜를 보았다고 한다.

 

지혜를 세상의 으뜸으로 삼고, 즐거움을 걱정하여 하는 일이 없으면,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 받는 것을 알아, 생사의 다함을 얻게 된다.

 

모든 행실은 헛된 것인 줄 안다면, 이것을 지혜를 보았다고 한다. 세상의 괴로움을 고달파하고 싫어하는 것은, 이 부처님의 도에 따르면 제거된다.

여러 가지 행실이 괴로움인 줄을 안다면, 이것을 지혜를 보았다고 한다. 세상의 고뇌를 고달파하고 싫어한다면, 이 부처님의 도에 따르면 제거된다.

 

내 그대에게 법을 말하노니, 사랑의 화살에 쏘는 바가 되면, 마땅히써 스스로 힘써, 석가여래의 말을 받으라.

나는 모두를 써 멸하여, 생사를 왕래하는 일을 끝내기로 하였다. 한 가지 정 때문에 써 해탈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바른 도안(道眼) 때문이다.

 

달리는 흐름이 바다로 흘러 들어, 소용돌이 물이 출렁거려 빨리 가득참과 같이,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그대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나아가 단 이슬을 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앞서 아직 법륜을 듣지 못하였으면, 변전하여 중생이 불쌍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불사를 받드는 사람은 이를 예우하여 삼유(三有 : 욕계. 색계. 무색계)를 제도해야 한다.

 

세 가지 생각 중에서도 선함을 생각하라. 세 가지가 역시 어려우면 악함이 다 생각에 따라서 행동이 있으니, 이것을 멸하는 것을 올바른 끊음(正斷)이라 한다.

 

삼유를 정하고 생각에 선함을 굴리면, 의지함을 버린 행동은 한량이 없다. 세 가지 (탐욕. 성냄. 어리석음)를 얻어 세 가지 굴을 제거하라. 맺음을 풀고 생각에 응하여 따르라.

 

계율로써 악함을 금함을 알고, 지혜를 생각하여 생각을 즐겁게 하라. 이미 세상의 성공과 실패를 알면, 마음을 그치고 모두를 풀어버리라.

 

第二十九 광연품(廣衍品)

광연품이란 무릇 선함과 악함은 작은 것이 쌍이면 크게 이루어, 증거는 장구(章句)에 응함을 말한다.

 

안락함을 베풀면 비록 작을지라도, 그 보답은 점점 커지고, 지혜는 작은 베풀음에 따라 밝은 복을 받게 된다.

 

수고로움을 남에게 베풀어 요행을 바라고자 한다면, 재앙과 허물이 몸으로 돌아와, 스스로 넓은 원한을 만나게 된다.

 

이미 많은 일을 하여 그른 일을 또 만들어, 기생과 음악에 방탕하고 안일한 사람은, 악한 습관이 날로 더한다.

 

정진을 오직 행하여 옳음을 익히고 그름을 버려, 몸을 닦아 스스로 깨닫는 것, 이것을 올바른 습관이라 한다.

 

이미 스스로 지혜를 깨닫고, 또 학문을 많이 하면, 점점 선함에 나아가고 널리 덕행이 번지는 것이, 마치 기름을 물에 던지는 것과 같다.

 

스스로 지혜로운 마음이 없고, 학문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엉기고 줄어들음이 좁고 작아, 마치 우유로 만든 식품을 물에 던지는 것과 같다.

 

도에 가까우면 이름이 나타나 높은 산의 눈과 같고, 도에서 멀면 어둡고 어리석어 밤에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는 항상 깨어 스스로 깨닫고, 밤낮으로 부처님을 외우고, 법을 생각하고 대중을 생각 한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는 마땅히 깨어 스스로 깨닫고, 날이 저물면 선(禪)을 생각하고, 즐겁게 한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사람은 마땅히 외움을 마음에 두어, 식사할 때마다 스스로 적게 함을 안다면, 곧 이것이 아픔과 욕심을 엷게 하여, 소비를 절제하여 수명을 길게 보전할 수 있다.

 

학문은 어렵고 죄악을 버리기도 어려우며, 집에서 사는 것도 또한 어렵다. 함께 살면서 이익을 같게 하기도 어렵고, 가난한 생활에서는 있음에 지나는 것이 없다.

비구들이 나가 구걸하기도 어려우니 어찌 스스로 힘쓰지 않겠는가? 정진하면 얻는 것이 자연이니, 뒤에 사람들에게 바랄 것이 없다.

 

믿음이 있으면 계율이 이루어지고, 계율에 따르면 많은 보배를 이룰 수 있으며, 또한 계율에 따르면 어울리는 무리를 얻어, 있는 곳에서 공양을 받는다.

 

한 자리에 앉거나 한 곳에 눕거나, 한 가지 행동에도 방자함이 없고, 하나를 지키어 써 몸을 바르게 하면, 마음은 즐겁고 나무들 사이에서 살 수 있다.

 

第三十 지옥품(地獄品)

 

지옥품이란 지옥에 대한 일을 말하여, 악행을 지으면 악함을 받아, 죄는 이끌어 두지 않는다.

 

망녕된 말은 지옥에 가까우니, 이것을 만들고서 만들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두 가지 죄를 뒤에 함께 받거니와, 이것을 행하고서 스스로 끌고 간다.

 

법의를 그 몸에 입고서, 악행을 하여 스스로 금하지 않는다. 구차하게 악행에 빠지는 자는 마침내는 지옥에 떨어진다.

 

계율을 지키지 않고서 공양을 받는다면. 그 이치가 어찌 스스로를 손해되게 하지 않으랴! 죽어서 불태운 쇠의 방울을 먹음과 같아서, 뜨거운 불탄 숯보다도 더욱 심하다.

 

방탕하고 안일하면 네 가지 있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침범하기 좋아하고, 험난한 데 누워 있으며, 복과 이익도 없으니, 헐뜯음은 셋이고 음탕함은 넷이다.

 

복과 이익이 없다고 하여 죄악에 떨어지면, 악함이 두렵고, 즐거움 적음이 두렵고, 나라의 법이 무거운 벌을 가하며, 몸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

 

비유하면 마치 띠풀을 뽑는 것과 같아, 잡는 것을 느슨하게 하면 손을 상한다. 계율을 배워 금하고 절제하지 않는다면, 지옥의 장부가 곧 스스로를 해친다.

 

사람의 행동이 게으르게 되어, 능히 여러 사람의 수고로움을 제거하지 못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함에 잘못하고 결점이 있으면, 마침내 큰 복을 받지 못한다.

 

항상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여, 스스로를 가지고 반드시 굳세게행해라, 여러 가지 외도에서 멀리 떠나서, 티끌과 때가 됨을 배우지 말라.

 

마땅히 하지 말아야할 것을 행하면, 그런 뒤에 답답한 독을 이루게 된다. 선함을 행하면 항상 길하고 순조로와, 가는 곳마다 후회함이 없다.

 

그 여러 가지 악행에 있어서는, 하려고 마음먹거나 만일 이미 하였으면, 그 괴로움은 풀릴 수가 없다. 죄는 가까워서 피하기가 어렵다.

 

망녕되이 깨달아 실패를 구하여, 행동이 이미 올바르지 못하다면, 선량한 사람을 원망하고 속이여, 굽힘으로써 선비를 다스리니, 죄가 이 사람을 묶고, 스스로 지옥에 던지게 된다.

 

변방의 성을 지키는데 안과 밖의 감옥을 굳게 함과 같이, 스스로 자기 마음을 지키어, 법이 아니면 살지 말아야 한다. 행동이 옳지 못하면 근심이 이르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을 도리어 부끄러워한다면, 살아서는 간사한 소견이 되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도리어 두려워한다면, 간사한 소견을 믿고 나아가,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

 

피해야 할 것은 피하지 않고, 나아가야 할 것에 나아가지 않는다면, 간사한 생각을 탐내고 익히어,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

 

가까이해하 할 일은 곧 가까이하고, 멀리해야할 일은 곧 멀리한다면, 항상 올바른 생각을 지키어, 죽어서는 선도에 떨어진다.

 

第三十一 상유품(象喩品)

 

상유품이란 사람들에게 몸을 올바르게 하여, 선함을 행하면 선함을 얻고, 복이 갚음을 유쾌하게 받음을 가르친 것이다.

 

나는 코끼리가 싸울 때 화살에 맞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음과 같이, 항상 정성어린 믿음으로써 계율이 없는 사람들을 제도하여야 한다.

 

비유하면 올바르게 길들인 코끼리는 왕이 타기에 알 맞는 것처럼, 헐뜯음을 참아 존귀한 사람이 되어, 곧 진실한 신임을 받는다.

 

비록 항상 길들인 코끼리라 할지라도, 저 새로 달리고, 또한 최선의 코끼리 같은 것은, 스스로 길들이는 것만 못하다.

 

저 사람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는 각 수가 없으니. 오직 스스로를 길들이는 사람은 능히 알맞은 방법에 이른다.

 

재물을 지킨다고 이름붙이는 코끼리 같은 것도, 사납게 해쳐 금하여 부리기 어렵다. 잡아매면 주는 밥도 먹지 아니하여, 오히려 사납게 달아나는 코끼리와 같다.

 

악행에 빠져있는 사람은 항상 탐냄으로써 스스로를 얽어매어, 그 코끼리가 싫어할 줄 모르는 것 같아, 그러므로 자주 포태로 들어간다.

 

본래의 마음으로 착한 행동을 하며, 그리고 항상 편안한 바를 행하라. 다 버리고서 얽힘을 항복한다면, 갈구리로 코끼리를 억제하여 길들임과 같다.

 

도를 즐기고 방탕하여 안일한 생활을 하지 않고, 능히 항상 스스로의 마음을 보호하면, 이것을 몸의 괴로움을 빼내버린다고 하니, 마치 코끼리가 구덩이에서 나옴과 같다.

 

만일 능히 현명한 사람의 짝함을 얻어, 함께 행하여 착하고 굳셈을 행하여, 능히 여러 가지 소문을 굴복시키면, 드디어 뜻을 잃지 않는다.

 

능히 현명한 사람을 짝함을 얻지 못하여, 함께 실천하여 악함을 굳세게 행한다면, 왕이 넓은 읍리를 끊고 떠남과 같이, 차라리 홀로 악함을 행하지 못한다.

 

차라리 홀로 행하여 선행을 하여, 어리석은 사람과 더불어 벗하지 말라. 혼자서 악함을 행하지 않으면, 코끼리가 놀라 스스로를 보호함과 같다.

 

태어나서 이득이 있으면 편안하고, 친구는 부드럽고 화합하면 편안하다 하며, 목숨이 다함에 복을 행하면 편안하고, 여러 가지 악함을 범하지 않으면 편안하다.

 

사람의 집에 어머니가 계시면 즐겁고, 아버지까지 계시면 이 또한 즐겁다. 세상에 중들이 있다는 것은 즐겁고, 천하에 도가 있으면 즐겁다.

 

계율을 가졌으면 마침내 늙어도 편안하고, 올바름을 믿어 올바른 것은 좋고, 지혜는 가장 몸을 편안하게 하고, 악함을 범하지 않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말을 부드럽게 길들 임과 같이하여,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믿음과 계율과 정진과 정법이 반드시 갖추어지면, 밝은 행실이 이루어져 서게되고, 참고 화합하여 마음이 정하여진다.

 

이 모든 괴로움을 끊으면, 마음이 가는 곳에 따르게 된다. 이것에 따라 선정에 가면, 마치 말을 길들여 타는 것과 같이, 성냄을 끊고 번뇌를 없애면, 이것이 하늘의 즐거움을 받는다.

 

스스로 방자하지 않으면, 이에 따라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사나운 말을 좋은 말에 비교하여, 악함을 버림을 현명하다고 한다.

 

제삼십이 애욕품(愛欲品)

 

애욕품이란 천하게 음란함과 은혜와 사랑으로 하여, 세상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재앙과 해를 많이 일으킨다.

 

마음을 음란한 행동에 놓아버리면, 음욕의 사랑은 가지들을 늘려, 분포를 일으켜 치열하게 성해져서, 지나치게 날뛰어 과일을 탐내는 원숭이와 같다.

 

사랑을 참는 것을 괴롭다고 함으로써, 탐내고 욕심내어 세상에 집착 한다면, 근심과 걱정이 밤낮으로 자라나서, 뻗어남이 덩굴풀이 생겨남과 같다.

 

사람은 은혜와 사랑 때문에 미혹되어, 정욕을 버리지를 못한다. 이와 같이 근심과 사랑이 많으면, 졸졸 흐르는 물이 연못을 가득 채운다.

대저 근신하고 슬퍼하여, 이 세상의 괴로움이 하나가 아닌 까닭은, 단지 사랑이 있는 인연 때문이니, 사랑을 떠나면 곧 근심은 없어진다.

 

이미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근심을 버리라. 사랑이 없다면 어찌 세상이 있겠는가? 근심하지 않고, 물들어 구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편안함을 얻으랴.

 

근심이 있음으로써 죽을 때에는, 그 때문에 친척이 많음을 이룬다. 근심을 건너는 긴 길에, 괴로움을 사랑하면 항상 위험에 떨어진다.

 

도를 행하는 수행자는 욕심과 더불어 만나지 못하여, 먼저 사랑의 근본을 베어내어, 뿌리를 심는 바가 없고, 갈대를 베어냄과 같이 하여 마음에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 없다.

 

나무의 뿌리가 깊고 튼튼하면, 비록 끊어낼지라도 오히려 다시 살아 남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다 제거하지 못하면, 문득 마땅히 도리어 괴로움을 받는다.

 

원숭이가 나무를 떠 난다 할지라도, 벗어남을 얻어 다시 나무로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감옥을 나오면 다시 감옥으로 들어간다.

 

탐내는 마음은 항상 흐름이 되니, 익힘과 교만과 아울러 생각은 음욕에 의하여, 스스로 엎어져서 보는 바가 없다.

 

모든 마음은 흘러서 넘쳐, 사랑의 결합은 갈등과 같다. 오직 지혜만이 이를 분별하여 보아, 능히 마음의 근원을 끊을 수 있다.

 

대저 사랑의 윤택함에 따르면, 생각은 우거져 덩굴이 되니, 애욕은 깊어서 밑이 없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이것을 써서 더한다.

 

생겨난 가지는 끊임이 없어, 단지 써 탐욕을 먹으면, 원망을 길러 무덤을 더할 뿐이니,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이에 급급하다.

 

비록 감옥에 쇠고랑과 자물통이 있다. 할지라도, 지혜있는 사람은 견고하도고 말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이 아내와 자식을 보고, 물들어 집착하는 사랑은 몹시 견고하다.

 

지혜는 사랑을 말하여 감옥이라 하니 깊고 견고하여 나옴을 얻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마땅히 끊어서 버리라. 애욕을 보지 않으면 능히 편안하다.

 

여색을 보고 마음에 미혹하여, 생각하기를 무상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하거니와, 어리석은 사람은 써 아름답고 선하다고 하니, 어찌 그 참다움의 아님을 알 수 있으랴!

 

음란한 즐거움으로써 스스로를 싸는 것은, 비유하면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것과 같다. 지혜 있는 사람은 능히 이를 끊어버려, 돌아보지 않고 서 모든 괴로움을 제거한다.

 

마음으로 방탕과 안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음란함을 보고 써 깨끗하다 하니, 은혜와 사랑의 마음이 성하게 더하여, 이에 따라 감옥을 만든다.

 

마음을 깨달아 음란함을 없애는 사람은 항상 탐욕이 깨끗하지 못함을 생각하여, 이에 따라 사악한 감옥에서 나와, 능히 늙고 죽음의 근심을 끊는다.

 

욕망의 그물로써 스스로를 가리고, 사랑의 뚜껑으로써 스스로를 덮으면, 스스로 방자하여 감옥에 묶이는 것이, 마치물고기가 통발의 주둥이로 들어감과 같다.

 

늙고 죽음을 위하여 엿보는 바는, 송아지가 어미의 젖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애욕을 떠나 사랑의 자취를 없애어, 그물에서 나오면 해치는 바가 없다.

 

도를 다하여 감옥의 묶임을 제거하여, 모든 이것저것을 풀어, 이미 변행을 제도함을 얻으니, 이를 큰 지혜가 있는 선비라고 한다.

 

법에서 멀어져가는 사람에게 친하지 말고, 또한 사랑에 물드는 일을 하지 말라. 삼세를 끊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시 변행에 떨어진다.

 

만일 모든 법을 깨달아, 능히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사랑하는 마음을 풀면, 이것을 성의에 통한다고 한다.

 

모든 보시 중에서도 불경의 보시가 뛰어나고, 모든 맛 중에서도 도의 맛이 뛰어나고, 모든 줄거움 중에서도 법의즐거움이니, 사랑이 다하면 모든 고뇌를 이긴다.

 

어리석은 사람은 탐욕으로써 스스로를 묶어, 피안에 건너는 것을 구하지 않아, 애욕을 탐내기 때문에, 사람들을 해치고 또 스스로를 해친다.

애욕의 마음을 밭으로 삼고, 음란함과 원망과 어리석음을 씨앗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세상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보시를 하면, 복을 얻음이 한량이 없다.

 

친구들이 적고 재물이 많으면, 상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 즐기는 탐욕의 해침은 목숨을 해롭게 하니, 그러므로 지혜는 욕심을 탐내지 않는다.

 

마음에 옳으면 곧 욕심이 되니, 어찌 반드시 홀로 다섯 가지 욕심뿐이랴! 어기어서 다섯 가지 욕심을 끊도록 하라, 이것을 곧 용감한 선비라 한다.

욕심이 없으면 두려움이 있을 것이 없으니, 편안하고 맑아 근심과 걱정이 없다. 욕심을 제거하여 맺음을 푸는 것을, 이것을 길이 연못에서 나왔다고 한다.

 

내가 너의 근본을 알기를 바란다면, 마음으로써 잘 생각하면 생긴다.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곧 너는 있지 않다.

 

나무를 베어 쉬지 말라, 나무는 모든 악함을 생기게 하니, 나무를 끊고 뿌리를 다 캐내면, 비구는 멸도 한다.

 

대저 나무를 베지 않고, 다소의 나머지 친함이 있으면, 마음이 이것에 묶여, 마치 송아지가 어미를 구함과 같다.

 

第三十三 이양품(利養品)

 

이양품이란 나를 격려하여 탐냄을 막고, 덕을 보고 양을 생각하여, 더러움을 생겨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파초는 열매로써 죽고, 대나무와 갈대의 열매도 또한 그러하다. 버새(숫말과 암나귀 사이에서 난 짐승) 새끼를 배면 앉아서 죽고, 선비는 탐냄으로써 스스로를 잃는다.

 

이와 같이 탐내는 것은 이로움이 없으니, 마땅히 어리석음을 따라 생겨난다는 것을 알라. 어리석음은 이것 때문에 현명함을 해쳐서, 머리를 땅으로 나눈다.

 

하늘이 일곱 가지 보배를 비로 뿌리더라도, 탐욕은 오히려 싫증내는 일이 없으니,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을, 현명하다고 한다.

 

비록 하늘이 준 욕심이 있다 할지라도, 지혜는 욕심을 버려 탐내는 일이 없다. 즐겨 은혜와 사랑을 떠나는 것을,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한다.

 

도를 멀리하고 사악함을 따라, 탐욕을 기르는 비구는, 오직 아끼는 마음이 있어, 써 저 성에 이바지한다.

 

이것을 기름에 의지하지 말라. 집을 위하여 죄악을 버리는 것은, 이 지극한 마음이 아니니, 쓰고 씀에 무엇이 유익하랴. 어리석음은 어리석은 계획을 하여, 탐욕을 거만하게 써서 더한다.

 

이상 하도다, 이익을 잃으면, 해탈과는 같지 않으니, 분명히 이것을 아는 사람은 비구요 부처님의 제자이다. 이익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한가하게 살아도 마음을 물리친다.

 

스스로 얻되 믿지 말고, 다른 소망을 쫓지 말라. 저 이익 기름을 바라는 비구는 올바른 선정에 이르지 못한다.

 

대저 목숨이 편안하기를 바라거든, 마음을 쉬게 하고 스스로 반성하여, 계수와 의복과 음식을 알지 말라.

 

대저 목숨이 편안하기를 바라거든, 마음을 쉬게 하고 스스로 반성하여, 취하여 얻음에 족한 줄을 알고, 지키어 한 결 같이 법을 행하라.

 

대저 목숨이 편안하기를 바라거든, 마음을 쉬게 하고 스스로 반성하여, 쥐가 굴속에 숨는 것과 같이, 잠기어 숨어서 가르침을 익히라.

 

이익을 줄이고 귀를 줄여서, 계율을 받들어 생각하면, 지혜가 칭찬 하는 바 되니, 맑고 길함은 게을리 하지 말라.

 

만일 세 가지 밝음이 있으면, 해탈하여 번뇌함이 없다. 지혜가 적고 아는 것이 드문 것은 생각하는 바가 없다.

 

그 먹고 마심에 있어서, 사람에 따라 이익을 얻고, 더구나 악한 법이 있다면, 공양함에 따라 질투를 기르게 된다.

 

많이 원망과 이익을 맺더라도, 억지로 법의(가사)를 입고, 단지 음식만을 바란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지 못한다.

 

마땅히 이것이 죄과임을 알라. 기름은 큰 두려움이 되니, 적게 취하면 근심이 없어, 비구는 마음을 푼다.

 

먹는 것이 아니면 목숨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누가 능히 먹는 것을 헤아리지 않으랴! 대저 먹는 것 세우는 것을 우선으로 하니, 이것을 안다면 마땅히 미워하지 말라.

 

미워하면 먼저 자기를 상처내고, 그런 뒤에 다른 사람들을 상처 낸다. 사람을 치면 침을 얻어, 이것을 제거함을 얻지 못한다.

 

차라리 불탄 돌을 먹고, 단 구리를 삼키고 마실지라도, 계율이 없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믿음과 베풀음 먹지 말라.

 

第三十四品 사문품(沙門品)

 

사문품이란 법의 올바름으로써 가르치며, 제자는 행함을 받아, 도를 얻고 깨끗함을 깨닫는 것이다.

 

눈과 귀와 코와 입을 단정히 하고, 몸과 마음을 항상 올바르게 지켜야 한다. 비구가 이와 같이 행하면, 가히 써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손과 발을 망녕되이 침범하지 말고, 말을 절제하여 행하는 바를 따르게 하며, 항상 안으로 선정하는 뜻을 즐기고, 하나를 지켜 고요하게 행하라.

 

배움에는 마땅히 입을 지키라. 너그러운 말이 편안하고 느리면, 법과 의 때문에 정하여지니, 말은 반드시 부드럽고 연해야 한다.

 

법을 즐기고 법을 바라고, 생각하여 법에 편한 하라. 비구는 법에 의지하면, 올바라서 소모되지 않는다.

 

배움에 이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행함을 사랑하지 말라. 비구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 마음 정함을 얻지 못한다.

 

비구는 적게 취하여, 써 쌓음이 없음을 얻으면, 하늘과 사람들의 칭찬하는 바가 되고, 깨끗함이 생기어 더러움이 없다.

 

비구는 자비를 행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공경하여, 깊이 지관에 들어가, 행함을 멸하면 곧 편안해진다.

 

모든 이름과 형체는, 있는 것이 아니니 미혹되지 말라. 가까이 하지 않으면 근심되지 않는 것을 , 곧 비구라 한다.

 

비구는 배를 퍼내어, 가운데를 비게 하면 곧 가벼워진다. 음란함과 성냄과 여리석음 제거하면, 이것이 열반이 된다.

 

다섯을 버리고 다섯을 끊고, 오근을 생각하여, 능히 다섯을 분별한다면, 곧 강과 연못을 건너게 된다.

 

선을 하여 방일함이 없고, 욕심의 혼란을 행하지 말라. 양동(洋銅)을 삼켜, 스스로 고뇌의 형체를 그슬리지 않게 하라.

 

선이 없으면 지혜롭지 못하고, 지혜가 없으면 선이 아니다. 도는 선과 지혜를 따라, 열반에 이름을 얻게 한다.

 

마땅히 배워서 공에 들어가서, 고요히 거처하여 마음을 그치고, 홀로 가린 곳을 즐거워하여, 한 마음으로 법을 보아야 한다.

 

항상 오음을 억제하고, 마음을 엎드린 물과 같이 하여, 맑고 깨끗하고 온화하고 기쁘면, 단 이슬의 맛이 된다.

 

소유를 받지 않음을 지혜로운 비구라 한다. 뿌리들을 다스려 만족함을 알고, 계율을 다 지녀, 살아서는 마땅히 깨끗함을 행하고, 선한 스승과 벗을 구해야 한다. 지혜 있는 사람과 이룬 사람은 괴로움을 건너서 기쁨을 이룬다.

 

춘나무의 꽃이 익으면 스스로 떨어짐을 아는 것과 같이, 음란함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풀면, 생사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몸을 그치고 말을 그치고, 마음에 깊은 침묵을 지켜, 비구의 세상을 버림을, 이것을 고요함을 받는다고 한다.

 

마땅히 스스로 몸을 경계하여, 안으로 마음과 다투어야 한다. 몸을 지키고 도를 생각하면, 비구는 오직 편안하다.

 

나는 스스로 나를 위하여, 내가 있지 않음을 헤아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나를 덜음을, 헤아려 곧 현명하다고 한다.

 

기쁨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다면, 가히 써 기쁨을 많이 하라. 적막함에 이르러, 행함이 없어져서 길이 편안하다.

 

혹시 적게 행함이 있을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르면, 이것이 세상을 비추어, 해가 흐림이 없는 것과 같다.

 

교만함을 버려 나머지 교만함이 없음은, 연꽃이 물에서 생겨나 깨끗함과 같다. 배움은 능히 모든 고뇌를 버리니, 이것을 안다면 전보다 나아진다.

 

사랑을 때내어 연모하는 정이 없다면, 받지 않음이 연꽃과 같다. 비구는 강의 흐름을 건너면, 욕심을 이김이 전보다 밝아진다.

 

흐름을 끊어 스스로 믿고, 마음을 가게 하여 욕심을 물리치라. 인(仁)함에서 욕심을 떼내지 않는다면, 한 마음으로 오히려 달린다.

 

이것을 하고 이것을 하여, 반드시 굳세게 스스로를 억제하라. 집을 버리고서도 게을러지면, 마음은 오히려 다시 물든다.

 

게으름 행하여 느슨해지는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혀 제거하지 않으니, 깨끗한 범행이 아니라면, 어찌 큰 보배를 이루랴!

 

사문이 어디에 가면, 마음과 같이 금하지 못한다. 걸을 걸음마다 들러붙어, 다만 생각에 따라 달려간다.

 

가사를 어깨에 입었어도, 악을 행하면 손해가 아닌가! 악하고 악함을 행하는 사람은, 이 악도에 떨어진다.

 

다스리지 아니하면 경계하기 어려움이, 바람이 나무를 마르게 함과 같다. 스스로 행하는 것은 몸을 위함이니, 어찌 정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고, 교만하고 방탕하면 계율이 없다. 탐냄을 버리고 도를 생각하며, 곧 마음이 쉼을 따른다.

 

마음을 쉬게하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고, 방탕하고 안일하면 믿음이 없다. 능히 모든 괴로움을 없애는 것을, 훌륭한 사문이라고 한다.

 

 

第 三十五梵志品

 

범지품이란 말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여, 도리를 배워서 더러움이 없으면, 가히 도사(道士)라고 일컬을 수 있다.

 

흐름을 끊고서 건너가니, 욕심 없는 것이 범천과 같다. 행함이 이미 다함을 아는 것을, 이것을 일러 범지(梵志)라 한다.

 

두 가지 법이 없음으로써, 맑고 깨끗하게 연못을 건너, 모든 욕심의 맺음을 푸는 것을 ,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그에게 감에 그가 없고, 그들은 이미 공이 되어, 탐욕과 음란함을 버리고 떠나니,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생각하므로 때가 없어지고, 행하는 바가 새지 않는다. 위에서 구함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한다.

 

해는 낮에 비추고, 달은 밤에 비추며, 갑옷 입은 병사는 군대를 비추고, 선은 도인을 비춘다. 부처님은 천하에 나시어, 모든 어두움을 비추신다.

 

머리 깍음을 중이라 하지 않고, 길함을 일컬어 범지라 한다. 능히 모든 악을 버림을 일러, 이것을 곧 도인이라고 한다.

 

악을 내보냄을 범지라 하고, 올바름에 들어감을 사문이라 한다. 나의 모든 더러운 행실을 버리는 것을, 이것을 곧 집을 버린다고 한다.

 

만일 사랑에 의하여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고, 이미 버리고 이미 올바르면, 이것이 모든 괴로움을 없애 준다.

 

몸과 입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잘못이 없고, 능히 세 가지 행실을 버리면, 이것을 범지라고 한다.

 

만일 마음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을 밝게 깨달아, 마음을 보는 것으로 스스로 돌아가면, 물이 됨보다 더 깨끗하다.

 

섶처럼 머리를 땋는 것이, 이름 하여 범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성을 행하고 법을 행하여 맑고 깨끗하면, 곧 현명해진다.

 

머리를 장식할지라도 지혜가 없으면, 풀로 만든 옷을 어찌 베풀랴! 안으로 집착함이 떠나지 않는다면, 밖으로 버린들 어찌 유익하랴!

 

옷은 해지고 나쁜 것을 입었을지라도, 몸으로 법을 이어받아 행하고, 한가히 거처하며 생각하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부처님은 그에게, 자기를 찬양하고 스스로 칭찬하도록 가르치시지 않았는데도, 도와 같이 망녕 되지 않음을, 곧 범지라고 한다.

 

모든 욕심낼 것을 끊고, 그 뜻을 음탕하게 하지 않으며, 욕심의 수를 버리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생사의 개울을 끊고, 능히 참고 일어나 건저서, 스스로 깨달아 구덩이에서 나음을, 이것을 범지라 말한다.

 

꾸짖음을 당하고 침을 당할지라도, 말없이 받아 성내지 않아, 욕됨을 참는 힘이 있음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만일 침범하고 속음을 당할지라도, 다만 계율 지키기를 생각하여, 몸을 단정히 하고 스스로를 다스림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마음에서 악한 법 버리기를 , 뱀이 허물을 벗는 것같이 하여, 욕심의 더러움을 행하지 않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삶의 괴로움이 됨을 깨닫고, 이에 따라 마음을 멸하여, 능히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을 ,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미묘한 지혜를 깨닫고, 도와 도 아닌 것을 분별하여 으뜸가는 의(義)를 몸으로 행하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집을 버리는 것과, 집이 없는 두려움을 버려, 구하여 욕심을 적게하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사는 것을 내버리고, 해롭게 하려는 마음이, 번거롭게 고뇌하는 바가 없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다툼을 피하여 다투지 아니하면, 침범해도 성내지 아니한다. 악이 옴을 잘 기다리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음란함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교만한 모든 악함을 버리기를, 뱀이 허물을 벗는 것 같이 하면,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세상일을 끊어버리고, 입으로 거친 말을 하지 않으며, 팔성도를 살피어 밝히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세상의 악한 법이 되는 바를, 짧고 크고 세밀히 닦아, 취함이 없고 버림이 없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지금 세상에서 행실이 깨끗이, 뒤의 세상에서 더러움이 없어, 익힘이 없고 버림이 없는 것을, 이것을 범지하고 말한다.

 

몸을 버려서 의지할 곳이 없고, 다른 수행을 외우지 아니하여, 단 이슬의 멸함을 행하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죄와 복에 있어서, 두 가지 행함을 길이 제거하여, 근심이 없고 티끌도 없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마음이 기쁘고 때가 없어서, 달이 성하게 가득 참과 같아서, 비방하고 헐뜯음을 이미 제거하니,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어리석음이 가고 오고하여, 구덩이에 떨어져서 괴로움 받는 것을 보고, 단순히 언덕으로 건너갈 것을 바라, 다른 말을 좋아하지 않고, 오직 멸하여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이미 은혜와 사랑을 끊고, 집을 떠나 욕심이 없으며, 사랑이 있음을 이미 다함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사람이 모인 곳을 떠나, 하늘이 모인 곳에 떨어지지 않고, 모든 모임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즐거움과 즐거움 없는 곳을 떠나 속박에서 벗어나고, 하늘의 우두머리인 곳을 넘어, 모든 질 곳에서 벗어남을 얻은 사람을, 범지를 지녔다고 말한다.

 

사는 것이 이미 끝나고, 죽어서 향할 곳이 없다. 깨달음과 편안함에 의지함이 없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이미 오도(五道)를 건너서, 떨어질 곳을 알지 못하며, 습관이 다하여 나머지가 없음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앞으로 뒤로, 이에 가운데 있는 일이 없고, 잡음이 없고 버림이 없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가장 굳세고 가장 용기가 있어, 능히 스스로 깨달아 건너가서, 마음을 깨달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스스로 숙명의 근본과 다시 올 것을 알아, 삶이 다함을 기다림을 얻고, 지혜는 도의 현묘함과 통하여, 밝음이 능히 침묵과 같음을, 이것을 범지라고 말한다.

 

 

第三十六 이원품(泥洹品)

 

이원품(泥洹品)이란 도의 크게 돌아감을 서술하고, 편안함과 근심함을 고요히 멸하여, 생사의 두려움을 건너게 하는 것이다.

 

참음을 가장 스스로를 지키는 것으로 삼고, 니원을 부처님은 최상으로 칭찬하신다. 집을 버리고 계율을 침범하지 않으면, 마음을 쉬게 하고 해되는 바가 없다.

 

병이 없으면 가장 이롭고, 만족함을 알면 가장 부유하며, 후함을 가장 좋은 친구로 삼으며, 니원은 가장 유쾌하다.

 

굶주리면 큰 병이 되고, 행함이 가장 괴로움이 된다. 이미 이것을 밝히어 알면, 니원은 가장 즐거워한다.

 

조금은 선도로 가라. 악도로 나아감이 많다. 만일 이것을 밝히어 알면, 니원은 가장 편안하다.

 

원인에 따라 착함이 생기고, 원인에 따라 악에 떨어진다. 원인으로 말미암아 니원이 있으니, 인연하는 바도 또한 그러하다.

 

사슴들은 들에 의지하고, 새는 허공에 의지한다. 법은 그 갚음으로 돌아가도 참다운 사람은 멸함으로 돌아간다.

 

시작이 없으면 아니함과 같아서, 시작하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을 얻음이 없는 것이라 하니, 또한 생각함이 없는 것이다.

 

마음은 보기 어려워도 익히면 볼 수 있고, 욕심을 깨닫는 사람은 곧 함께 본다. 즐거워하는 바 없는 것을 괴로움을 만나는 것으로 삼고, 애욕이 있음을 고통이 더하는 것으로 삼는다.

 

밝으면 말고 깨끗하지 못함을 능히 제어하고, 가까이 갈 곳이 없으면 고통을 만난다고 한다. 보면 봄이 있고 들으면 들음이 있고, 생각하면 생각이 있고 알면 앎이 있다. 보아도 집착함이 없고 또한 앎이 없어서, 모두를 버림을 얻음을 만났다고 한다. 몸과 생각을 제거하면 고통 행함이 없어지고, 앎이 이미 다하면 괴로움이 끝났다고 한다.

 

의지 하면 움직이고 비면 깨끗하니, 움직이면 가깝지 않고 즐거움이 있지도 않다. 즐거움에 가까움이 없으면 고요함을 얻었다고 하니, 고요함이 이미 고요하면 가고 옴은 끝난다.

 

오고 감을 끊으면 생사가 없고, 생사를 끊으면 이것 저것이 없으며, 이것 저것을 끊으면 두 가지를 멸하게 되고, 멸하여 나머지가 없음을 괴로움을 제거했다고 한다.

 

비구는 세상에 살음이 있어, 유가 있으면 행함을 지음이 있고, 유가 없으면 삶이 있음이 없고, 지음이 없으면 행하는 바도 없다. 대저 오직 생각이 없으면, 스스로 이룸을 얻는다고 한다.

 

태어남이 없으면 다시 있음이 없어, 지음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살아서 행하여 지음이 있으면, 이것을 요체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만일 이미 태어나지 않아, 유가 없어 행함을 짓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곧 살아서 요체를 얻음이 있다. 삶에 따라 유가 이미 일어나면, 행함을 지어 생사를 이루니, 이 때문에 열어서 법과를 행한다.

 

먹음을 따라 인연이 있고, 먹음을 따라 근심과 즐거움을 이룬다. 그리하여 이필요함을 멸하면, 다시는 행한 자취를 생각함이 없으니, 모든 괴로운 법이 이미 다하고, 행함을 멸하여 맑아져서 편안하다.

 

비구는 내가 이미 알면, ekl는 모든 땅에 들어감이 없고, 유가 허공에 들어감이없으며, 모든 필요함에 들어감이 없고, 생각이 생각지 않음에 들어감이 없으며, 모든 필요함에 들어감이 없고, 생각이 생각지 않음에 들어감이 없으며, 지금 세상과 뒤의 세상이 없고, 또 해와 달을 생각함이 없으며, 감이 없고 걸리는 바도 없다.

 

나는 이미 가고 돌아옴이 없으니,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죽지도 않고 다시 태어나지도 않으니, 이것이 다 함을 니원이라 한다.

 

이와 같이 형상이 있되 형상이 없어, 괴로움과 즐거움을 써 깨달음을 행하면, 보는 바도 다시 두렵지 않고, 말이 없어도 말에 의심이 없다.

 

유의 화살 쏨을 끊고, 어리석음을 만나도 의지할 곳이 없다. 이것을 첫째가는 유쾌함으로 삼으니, 이 도는 공하여 그 위가 없다.

 

욕됨을 받아도 마음은 땅과 같고, 참음 행하기를 문지방과 같이 하며, 깨끗하기 물의 때가 없음과 같으면, 삶이 다함에 그가 받는 것이 없다.

 

이득의 이김도 믿음에는 부족하니, 비록 이길지라도 오히려 다시 괴롭다. 마땅히 스스로 법의 이김을 구하여, 이미 이기면 생겨나는 바가 없다.

 

옛것이 다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지 말고, 아이 배는 것을 싫어하여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라. 씨앗이 그슬리면 다시 생겨나지 아니하니, 마음 다함이 불이 꺼짐과 같다.

 

아이 배는 것은 더러움 바다라고 하니, 어찌 음란한 행동을 즐겨 행하리오. 비록 위에 선한 곳이 있다 할지라도, 다 니원과 같지는 못하다.

 

다 알아서 모두를 끊어, 다시는 세상에 집착하지 말라. 모두를 버리면 멸도와 같으니, 여러 가지 도 중에서 이것이 뛰어나다.

부처님은 써 법을 밝히여 나타내셨다. 지혜와 용기로 능히 받들어 가지면, 행실이 깨끗하고 허물과 더러움이 없어, 스스로 세상 건넘을 알아 편안하다.

 

도에 힘쓰면 먼저 욕심에서 멀어지고, 빨리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에 복종하면, 악을 멸하고 악 만남을 멀리하여, 그 쉬움이 새가 하늘을 가는 것과 같다.

 

만일 이미 법구(法句)를 풀어,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본받아 행하면, 이것이 생사의 언덕을 건너게 하여, 괴로움이 다하여서 근심이 없다.

 

도와 법은 친하고 성김이 없고, 올바름은 나머지와 강함을 묻지 않는다. 요는 알고 생각함을 없앰에 있어, 맺음을 풀어 맑고 깨끗하게 된다.

 

상등의 지혜는 썩은 몸으로 꿇어앉는 것이 진실이 아니며, 괴로움이 많아서 즐거움이 적고, 아홉 구멍에 하나도 깨끗함이 없음을 싫어한다. 지혜는 위태함으로써 편안함을 바꾸고 , 의지함을 버리고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난다. 형체는 썩어 녹음이 물거품이 되고 지혜는 탐내지 않음을 버림을 본다.

 

몸을 보면 괴로움의 그릇이 되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 고통스럽다. 때를 버리고 맑고 깨끗함을 행하여, 가히 써 크게 편안함을 얻으라.

 

지혜에 의하여 써 사악함을 물리치고, 받지 않으며 번뇌가 다함을 얻으며, 깨끗함을 행하여 세상 제도함을 이루면, 하늘과 사람이 예로 아니함이 없다.

 

第三十七品 생사품(生死品)

 

생사품(生死品)이란 모든 사람의 혼령은 죽은 신에게 있어, 행함을 따라 바뀌어 태어남을 말하고 있다.

 

목숨은 과실이 익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아, 항상 떨어짐 만날 것을 두려워하여, 이미 태어나면 다 괴로움이 있으니, 누가 능히 죽지 않음을 이루랴!

 

처음을 따라 은혜와 사랑을 즐기고, 음란함에 의지하여 물거품의 그림자로 들어가며, 형체를 받으니 목숨은 번개와 같고, 밤낮으로 흘러서 그치기 어렵다.

 

이 몸은 죽은 물건이 되나, 정신은 형체의 법이 없다. 가령 죽더라도 다시 태어나, 죄와 복은 패망하지 않는다.

 

끝남과 시작은 한 세대가 아니라, 어리석은 사랑에 따라 오래고 길다. 스스로 이 고락을 받아, 몸이 죽더라도 영혼은 잃지 않는다.

 

몸은 사대(四大:지.수.화.풍)가 물질이 되고, 앎의 사음(四陰:계율.선정.해탈.지혜)을 명상(名相)이라 한다. 그 정은 열여덟 가지이고, 인연(십이연기;무명.행.식.명식.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이 일어나는 바는 열둘이다.

 

영혼이 멈추는 곳은 대개 아홉 가지 곳으로, 생사가 끊어져 멸하지 않는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은 듣지 않기 때문에 어두움에 가려서 천안이 없다.

 

스스로 세 가지 때로써 바르고, 눈이 없으면 마음이 망녕되이 본다. 죽음을 산 때와 같다고 말하고, 혹은 죽어서 끊어 멸한다고 말한다.

 

앎의 신은 삼계와 선과 악의 다섯 곳을 만든다. 음으로 가서 잠잠히 이르니, 가는 곳이 울림을 응함과 같다.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와 있어, 모두는 숙행에 인한다. 씨앗은 본래의 형상에 따름과 같아서, 자연의 갚음은 마음과 같다.

 

영혼은 몸으로써 이름이 되니, 불이 형자(形字)를 따르고, 초에 붙으면 촛불이 되며, 숯이 초분(草糞)의 섶에 따름과 같다.

 

마음에 법이 일어나면 곧 일어나고, 법이 멸하면 곧 멸한다. 흥함과 쇠함은 비와 우박과 같아서, 전전하여 스스로 알지 못한다.

앎의 신은 다섯 가지을 달려서, 한 곳에 고치지 않음이 없다. 몸을 버리고 다시 몸을 받을지라도 바퀴가 굴러서 땅에 닿음과 같다.

 

사람의 한 몸이 살아서, 그 옛 방의 속을 버림과 같다. 영혼은 형체로써 집을 삼되, 형체가 무너져도 영혼은 망하지 않는다.

 

정신은 형체와 몸에 살아서, 마치 참새를 그릇 안에 감추면, 그릇은 깨어지고 참새는 날아감과 같아서, 몸은 무너져도 영혼은 가서 산다.

 

성격이 어리석으면 깨끗함을 항상 생각하여, 몸은 즐겁더라도 생각은 의심하는 생각이 있다. 싫어하고 바라는 것이 상등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니, 부처님은 이것을 분명치 않다고 말씀하셨다.

 

한 가지 근본에 두 가지로 펼쳐 구르고, 세 가지 때에 다섯 가지로 점점 넓어진다. 모든 바다에 열세 가지 일이 있으니, 연뭇을 다하여 넘어 건넘을 기뻐한다.

 

세 가지 일을 끊어버릴 때, 몸에 고칠 것이 없음을 알고, 목숨의 기운이 따뜻함을 알면, 몸을 버리고서 굴러서 간다.

 

그 죽음을 당하여 땅에 누워서, 오히려 풀과 같이 아는 바가 없다. 그 상황을 봄에 이와 같으니, 다만 허깨비여서 어리석게 탐낸다.

 

 

第三十八品 도리품(道利品)

 

도리품(道利品)이란 임금과 아버지와 스승의 행함이, 선도를 열어 보여서, 거느리기를 올바름으로써 한다.

 

사람은 그 웃어른인 임금과 아버지와 스승과 도사를 받들음을 알아, 믿음과 계율과 보시와 들음과 지혜가 있으면, 마침내 길하여 생기는 바가 편안하다.

 

숙명으로 복과 경사가 있으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을 존경함이 되고, 도로써 천하를 편안하게 하며, 법을 받들어 따르지 않음이 없다.

 

왕은 백성의 어른이 되니, 항상 자애로써 아랫사람들을 사랑하고, 몸을 거느리되 법과 계율로써 하며, 보여줌에 써 허물을 쉬도록 해야 한다.

 

편안함에 처하되 위태함을 잊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밝으면 복이 굴러 후해진다. 복과 덕의 돌이켜 갚음은, 높고 낮음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대저 세상의 장수가 되면, 올바름을 닦고 의지하여 구부리지 않고, 마음을 다스려 모든 악에 이기니, 이와 같이 하여 법왕이 된다.

 

올바른을 보고 능히 은혜를 베풀고, 인애(仁愛)로 잘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 이미 이롭게 하되 평균으로써 하여, 이와 같이 하면 대중은 붙어 친하게 된다.

 

소를 격려하여 물을 건너게 함과 같이, 인도함을 올바르게 하면 따름도 또한 올바르다. 법을 받들어 마음을 사악하지 않게 하여, 이와 같이하면 대중이 널리 편안하다.

 

망녕되이 신의 형상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고통과 근심를 부르기 때문이다. 악한 마음은 스스로를 죽이게 되어 마침내 쪽에 이르지 못한다.

 

계율의 덕은 믿을 수가 있으니, 복의 갚음이 항상 몸을 따른다. 법을 보면 사람의 어른으로 삼으라. 마침내 삼악도에서 멀어진다.

 

계율을 삼가서 괴로움과 두려움을 제거하면, 복과 덕은 삼계에서도 높다. 귀신과 용의 사악한 독의 해는, 계율을 가진 사람을 침범하지 못한다.

 

의리가 없고 성실하게 믿지 않아, 속이고 망녕되어 싸움과 다툼을 좋아하면, 마땅히 이에서 멀리 떠나, 어리석음에 가까워 죄를 일으킴이 많음을 알라.

 

인자하고 현명한 말은 성실한 믿음이 있어, 많이 들으면 계율 행함이 갖추어진다. 마땅히 이에 친하고 붙으면, 지혜에 가까워 성실한 선이 많음을 알라.

 

잘하는 말도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뜻이 혼란되어 선행이 없고, 비록 몸을 잠기고 숨어 처할지라도, 이것을 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한다.

 

아름답게 말하여 올바르면 위가 되고, 법을 말함은 둘째가 되며, 사랑하는 말은 저 셋째가 되고, 성실하게 말하여 속이지 않음이 넷째가 된다.

 

문득 날카로운 칼날을 얻었을지라도, 스스로 써 그 몸을 이김이 없다. 어리석음은 배워도 망녕된 말을 좋아하고, 가서 끌어도 다행히 어르러짐을 받는다.

탐내어 음란함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이 세 가지는 착한 근본이 아니다. 몸은 이로써 스스로를 해치고, 갚음은 어리석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긴다.

 

복이 있으면 천인이 되고, 법이 아니면 악형을 받는다. 성인은 밝아서 홀로 보아, 항상 잘 부처님의 명령을 받든다.

 

계율의 덕은 후세의 업이니, 써 복이 몸을 따르도록 지으라. 천인은 칭찬을 선으로 삼아, 마음이 올바르면 편안하지 않음이 없다.

 

악을 행하여 그칠 생각을 아니하고, 날로 묶이되 스스로 후회하지 않으면, 목숨 가는 것이 내의 흐름과 같으니, 이것을 두려워하거든 마땅히 계율을 지키라.

 

이제 나의 상체의 머리에, 백발이 나기 때문에 도둑을 맞는다. 이미 천사의 부름이 있으니, 때로 올바르게 하고 마땅히 수행하라.

 

 

第三十九 길상품(吉祥品)

 

길상품(吉祥品)이란 자기의 재주를 닦아, 악을 버리고 선에 나아가면 마침내 큰 복이 두터워진다.

 

부처님은 높으시어 모든 하늘을 지나시고, 여래는 항상 의를 나타내신다. 범지와 도사가 있어, 와서 무엇이 길하고 상서로운 것이냐고 묻는다.

 

여기에서 부처님은 슬퍼하시고 상하시어, 위하여 참다운 필요가 있음을 말씀하셨다. 이미 올바른 법을 믿고 즐거워하면, 이것이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하셨다.

 

만약에 천인에 따라, 희망함과 요행을 구하지 아니하고, 또한 사당신에게 빌지 아니하면, 이것을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현명한 사람을 벗으로 삼고 선을 가리어 살고, 항상 먼저 복과 덕을 행하며, 몸을 삼가서 참다운 올바름에 따르면, 이것을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악을 버리고 선을 따라 나아가고, 술을 피하여 스스로 절제할 줄 알며, 여색에 음한하지 않으면, 이것을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많이 들어서 계율과 같이 행하고, 법과 계율을 정진하여 배우며, 닦음을 끝내어 다투는 바가 없으면, 이것을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거처함에 부모에게 효도로 섬기고, 집안을 다스려 처자를 기르며, 헛된 행실을 하지 않으면, 이것을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거만하지 않아 스스로를 크게 여기지 않고, 만족함을 알아 되풀이하여 생각하며, 때때로 써 불경을 외우고 익히면, 이것이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듣는 바를 항상 참음으로써 하고, 즐겨서 사문 보기를 바라며, 매양 강함에 문득 들어 받아들이면, 이것이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재계를 가져 범행을 닦고, 항상 현인과 성인 보기를 바라며, 밝은 지혜를 지닌 사람에게 의지하여 붙으면, 이것을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도아 덕이 있음을 믿음으로써, 마음을 올바르게 하고 향하여 의심이 없으며, 삼악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 이것이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같은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고 모든 도를 얻은 사람들을 받들며, 또한 모든 천인들을 공경하며, 이것이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고 한다.

 

항상 탐욕과 어리석음과 성내는 마음을 떠나고자 하고, 능히 성실한 도를 보고 익히면, 이것이 가장 길하고 상서로움이 된다.

 

만일 써 그르게 힘씀을 버리고, 능히 부지런히 도의 씀을 닦으며, 항상 옳은 일을 섬기며, 이것이 가장 길하고 성서로움이 된다.

 

모든 천하를 위하고, 큰 자비로운 마음을 세우며, 인자함을 닦고 중생을 편안하게 하면, 이것이 가장 길하고 성서로움이 된다.

 

길하고 상서로운 복을 구하기를 바라면, 마땅히 부처님을 믿고 공경하라. 길하고 상서로운 복을 구하기를 바라거든, 마땅히 법구의 옳음을 들으라. 길하고 상서로운 복을 구하기를 바라거든, 마땅히 많은 중생에게 공양하라. 계율을 갖추고 맑고 깨끗한 사람은, 이것이 가장 길하고 상서로운 일이 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에 살더라도, 항상 길하고 상서로운 행실을 익히어, 스스로 지혜 봄을 이루거니와, 이것이 가장 길하고 상서로운 일이 된다.

 

범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속에 크게 기뻐하여, 곧 앞서가 부처님 발에 절하고, 불법의 무리에 귀명한다.

 

법구경 끝

 

 

 

 

 

 

 

 

 

 

 

 

 

 

출처 : 불종사
글쓴이 : 현진스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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