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을 읽는 것은 자기를 읽는 것이다.
나의 불교 입문은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의 염송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대승장엄보왕경(大乘莊嚴寶王經)>을 읽게 된 것은 이 경전이 육자진언을 설하는 유일한 경전이기 때문이었고, 그 시기는 70년대초라 생각된다. 그 때 나는 불교신앙에 대한 교학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내가 신앙실천하고 있던 ‘육자진언(六字眞言),’ 넓게는 ‘진언’에 대한 교학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육자진언을 설하고 있는 유일한 경전인 <대승장엄보왕경>을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에 의하여 진언에 대한 연구와 실천은 나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어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관자재보살이 이러한 위신력을 갖추고 제도와 구제의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육자진언을 만나게 된 경위와 육자진언이 가지고 있는 무량한 공덕상을 상세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부처님이 제개장보살을 위해 육자진언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자, 제개장보살은 스스로 육자진언을 평범하게 살고 있는 한 법사의 인도로 관세음보살이 음성으로 시현하는 육자진언을 듣고 부처님의 처소로 돌아온다. 그 때에 칠십칠구지 여래가 준제진언을 설하고 관자재보살의 몸의 터럭 구멍에서 상서로운 기적이 나투어진다. <대승장엄보왕경>은 경전의 내용을 희곡처럼 구성하여, 이야기 사이 사이에 불법의 가르침을 교묘하게 담고 있어 읽을 때마다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준다. 경전을 읽어가는 흥미를 일으키면서 깊이있는 교리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읽는 사람이 갖고 있는 경지만큼 받을 수 있도록 짜여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관자재보살은 본성이 ‘무자성(無自性)하여 여래도 보지 못하다’는 내용과 육자진언은 ‘반야바라밀다모(母)가 널리 설한 것이다’는 구절은 백미에 해당한다. 사실 관자재보살은 우리들 본성의 상징이요, 이상상이며, 관자재보살이 구제의 활동을 편 저 많은 고난상은 우리들이 극복해야 하는 현실적 사회상이라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지혜의 상징태로서 ‘육자진언’을 가슴에 새기고 살면, 자신의 본성을 지키고 발휘하여 어떠한 고난과 환란도 극복할 수 있고, 결국 깨침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평범한 법사의 등장은 불법의 무차별 평등주의와 대중성을 강조한, 이 경전이 성립할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일러주고 있다. 그것은 곧 <대승장엄보왕경>이 고원한 불교사상을 대중사회에 전달하기 위하여 짜여진 서민의 경전이요, 우리들 인간의 자기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임을 말해주고 있다. 김무생/위덕대 교학처장
그것은 경전을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다는 의미도 되지만, 경전의 의미는 읽는 사람의 경지에 따라서 달리 느껴진다는 뜻도 되겠다. 그 때문인지 같은 경전이라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대승장엄보왕경>은 10세기 초반에 성립이 완성되어 10세기 말경에 중국에 전래 번역되었다. 이 경전은 범어를 중심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지역에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는 경전문헌 중의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그것은 <대승장엄보왕경>이 관음신앙의 마지막 발전 형태, 밀교의 관음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대승장엄보왕경>의 주제는 관자재보살과 육자진언이다. 내가 처음 이 경전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한편의 희곡을 읽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이 경전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개장보살(除蓋障菩薩)의 대화에서 시작한다. 부처님은 전생에 과거칠불로부터 들은 관자재보살의 중생 구제의 모습을 리얼하게 설하고 있다. 즉 관자재보살이 뛰어난 위신력으로써 갖가지 몸으로 화현하여 지옥을 비롯한 육도의 중생을 구제하고, 천궁의 천자, 나찰녀, 심지어 갖가지 충류(蟲類) 등을 화도하고, 나아가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 나찰녀의 재난을 받고 있는 오백상주(五百商主) 등을 구제하는 장면이 경전의 전반을 체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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