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실상
사람이 사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온갖 사연을 만들어
낸다. 부처님의 자내증적 깨달음의 내용을 연기설설이라 하고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생활
방식을 설한 것이 사제설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의 자내증적 깨달음의 내용을 위해 연기설에 관하여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연기설은 일반적 연기설과 가치적 연기설로 나누고 일반적 연기설이란 모든 존재의 시간과
공간적 상의 상관성에 입각하여 상호의존관계를 밝히고 있는 진리이다.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이것이 공간적 관점에서 상의 상관성을 밝힌 진리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짐으로 저것이 사라진다.
이것이 시간적 관점에서 상의 상관성을 밝힌 진리이다.
이상의 내용을 우리의 생존의 파장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내가 있으므로 나에게 반연되는 모든 존재의 대상이 있다.
내가 없으므로 나에게 반연되는 모든 존재의 대상이 없다.
내가 발생함으로 나에게 반연된 모든 존재들이 발생한다.
내가 사라짐으로 나에게 반연된 모든 존재들이 사라진다.
이것이 모든 존재에 대한 부처님의 근원적 가르침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파장을 들어 가치연기를 설하셨다.
존재에게 무명이 발생하므로 인하여 모든 행위가 발생한다.
존재에게 모든 행위가 발생함으로 인하여 식(識)이 발생한다.
존재에게 식(識)이 발생하므로 인하여 명색이 방생한다.
존재에게 정식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육입이 발생한다.
존재에게 육입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접촉작용이 발생한다.
존재에게 접촉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감수작용이 발생한다.
존재에게 감수작용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애착이 발생한다.
존재에게 애착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취착이 발생한다.
존재에게 취착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모든 존재가 발생한다.
존재에게 모든 존재가 발생함으로 인하여 태어남이 발생한다.
존재에게 생이 일어남으로 인하여 노사(老死)가 발생한다.
이상이 존재의 상의상관성에 입각하여 설명한 가치연기설이다.
여기서 무명(無明)은 무지(無知)라고도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연기와 사제를 모른다고 이해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행(行)란 인간의 신(身), 구(口), 의(意) 삼업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작용을 말한다.
명색(名色)이란 명는 정신을 의하고 색은 물질을 의미한다.
육입(六入)이란 모든 존재의 감각기관과 인식기관을 말한다.
촉(觸)이란 육근과 육경이 서로 접촉하여 육식이 발생한 것이다.
수(受)란 육근과 육경이 접촉하여 발생한 고(苦), 락(樂), 사(捨) 등의 삼수작용을 말한다.
애(愛)란 갈애 즉 욕애, 유애, 무유애 등이다.
취(取)란 욕취(욕망의 집착), 견취(자기 견해에 대한 집착), 계금취(불교 이외의 설에 집착
하는 것),아어취(유신견의 동의어로 나는 존재한다는 집착) 등으로 취사선택의 의미가
있다.
유(有)란 존재일반으로 욕유(欲有), 색유(色有), 무색유 등이다.
생(生)이란 유정(有情)으로 모든 생명체를 가리킨다.
노사(老死)란 윤회(輪廻)의 다른 이름으로 모든 고통을 말한다.
즉, 근심, 걱정, 슬픔, 고뇌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이상의 내용은 부처님께서 유전연기 즉,
존재가 발생하여 이루어지는 과정을 관조하는 것,
환멸연기 즉, 존재의 근원을 밝히어 가는 과정을 관조하는 것에 의해서 자내증 하여
고통의 근원을 밝힌 내용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그대로 따라 관해 가면서 내면적으로 성숙시켜 가면 인생과 모든 존재
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버리지 말아야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두가
버려야할 내용이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없지 않느냐하는 의문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다. 나라는 존재는 본래가 없는 텅 빈 존재이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본래가 무상(無常)하여 무아(無我)이다.
단, 연기적 상의상관의 관계성에서 나타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관계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리공존의 보살도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불자로 가는 길이요,
모든 고통을 소멸하는 길이며,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고통도 행복도 본래는 없는 것이다.
그냥 그렇다고 느낄 뿐이다.
이상의 내용을 모르는 불자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 끝나 버리면
불교는 하나의 상식에 불과하다.
이를 자기의 인생에 결부시켜 관조해 보고
경험화시켜 확증적으로 하는 것은 자기의 몫이다.
불교를 전하는 전법자는 여기까지이다.
그 이상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누가 가난하다고 하더냐, 누가 부자라고 하더냐.
누가 유식하다고 하더냐, 누가 무식하다고 하더냐.
누가 불행하다고 하더냐, 누가 행복하다고 하더냐.
누가 슬프다고 하더냐, 누가 기쁘다고 하더냐.
누가 존재한다고 하더냐, 누가 존재하지 않다고 하더냐.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요, 절대적인 것은 없다네!
만약 그대가 홀연이 일어난 생각의 파면에 빠져들어
매몰되어 버린다면 그만 생사의 윤회가 시작 된다오.
모두가 그대 자신의 분별망상이니 분별망상이 사라지면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무분별의 지혜가 생명을 얻는다네!
이상의 내용을 교리적으로 발전시켜 팔만사천의 대장경을
말씀한 것이 해인사 대장경에 있을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말한 것이 사제법이고 수행의 내용들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
삼십칠조도품과 더불어 사무량심에 입각한 육바라밀, 사섭법,
중도실상, 아뢰야연기, 진여연기, 법계연기, 육대연기 등등이다.
바라옵나니 벗님네여! 존재의 실상을 깨달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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