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행법(간화선)

[스크랩] [간화선] 화두 참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가?

수선님 2019. 1. 27. 11:55
화두를 드는 것을 ‘화두를 참구한다’, ‘화두로 공부한다’, ‘화두를 지어간다’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이러한 여러 표현의 공통점은 화두에 간절한 의심을 일으킨다는 데 있다. 고려시대 선지식인 백운 경한 선사는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는다” 고 했다. 화두에 의심을 크게 일으키면 크게 깨치고 적게 일으키면 적게 깨치며 의심이 없으면 깨치지 못한다.

크게 의심한다는 것은 의심이 투철하게 되어 은산철벽처럼 꽉 막혀, 와도 오는 것을 모르고 가도 가는 줄을 모르며 오직 의심으로만 꽉 뭉쳐진 상태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의정을 일으켜 화두를 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무자無字’ 화두와 ‘이뭣고?’ 화두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무자?’ 화두는 ‘무’자 앞에 전제全提를 붙여 들든지, 그렇지 않으면 좀 막연하지만 ‘무’ 그대로 든다. 전제란 화두에 대한 전체 내용을 말한다.

무자 화두를 예로 들어 보자.

어떤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은 “없다(無)”고 대답했다.
부처님께서는 “온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 스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앞에서 든 인용구가 무자 화두에 대한 전제 즉 전체 내용이다. 반면에 단제單提는 ‘무’ 또는 ‘왜 무라고 하였는가?’하고 새기는 것이다. 참선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전제와 단제를 섞어 사용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전제가 거추장스럽다. 익어지면 단제 속에 전제가 다 들어가게 되므로 저절로 단제가 되어버린다. 그 참구 요령은 이렇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무無라”
“어째서(왜) 무라 했을까?”
“어째서(왜) 무라…?”
“어째서…?”


‘이 뭣고(是甚?)?’ 화두 같으면 이렇다.

‘밥 먹고 옷 입고 말하고 보고 듣는 이놈,
언제 어디서나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이 놈이 무엇인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한 물건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가?’
‘부모미생전 나의 본래 면목이 무엇인고?’
‘이 송장을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 뭣고?’ 화두는 앞에 든 여러 가지 중 하나만 택해 의심을 지어가면 된다. 하나 더 부연하자면 전제를 통해 화두를 들 때는 한 전제만 들어야 한다. 물론 그 전제 사이에 우열의 차이는 없다. 하나만 택해 간절히 들면 된다. 단제만 들면서 ‘이 뭣고?’할 때는 ‘이’를 약간 길게 하면서 마음속으로 ‘이-’하는 이 놈이 ‘뭣꼬?’하며 의심을 일으키든지, 아니면 조금 막연하지만 ‘이- 뭣 - 고?’ 하면서 의심을 길고 간절하게 가져가는 것도 요령이다. 곧 전제는 간단히 해서 그것이 망상의 근원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의심을 강조하는 것은 의심이 몰록 터져 나와야 망념이 달라붙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단 화두를 들지 않더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의심에 사로잡힐 때는 순간적으로 우리의 사고 작용이 멈추는 것을 누구나 다 경험한다. 다만 생각을 일으켜 이것저것 굴리는 것이 우리의 오랜 습관이 되다 보니 그 무념無念의 경험이 오래가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여 화두를 들며 역력하게 깨어 있게 되면 망념이 정지되는 순간이 거듭거듭 자주 오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장벽처럼 굳건해져 어떤 경우라도 ‘이 뭣고?’ 하는 화두가 끊기지 않아 오고 간다는 분별이 단절되는 힘을 얻게 되면 이것을 일컬어 의심덩어리 곧 의단疑團이라 한다. 이 의심덩어리가 홀로 밝게 드러나게 되면 그만 둘래야 그만 둘 수 없는 한 덩어리 공부가 되어 이것을 타파하면 확철대오하게 되는 것이다.

의심이 잘 나지 않을 때는 거듭 거듭 전제를 들추며 “이 송장을 움직이는 이놈이 무엇일까?” 하며 끊임없이 화두를 지어갈 수밖에는 달리 묘책이 없다. 끊임없이 밀밀하게 간절히 들어가야 한다.

화두 참구 방법에 대하여 서산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참구하는 공안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며, 고양이가 쥐들 잡듯 하며, 굶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확철대오할 때가 올 것이다.”

凡本參公案上 切心工夫如鷄抱卵 如猫捕鼠 如飢思食 如渴思水 如兒憶母 必有透徹之期 - 『禪家龜鑑』


이렇게 화두를 참구하려면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막에서 갈증을 느껴 물 생각만 하듯, 외동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홀어머니가 자나 깨나 자식 생각하듯이 화두 하나만을 참구하는 절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절실한 마음은 자신의 온 생명을 걸 때 생긴다. 이렇게 간절하게 화두를 들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진정한 의정이 일어나 화두가 역력히 현전하는 것이다. 이럴 때 마음은 이내 고요해지고 번뇌 망상 또한 저절로 사라진다.

화두 참구법에 대하여 태고 보우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몸과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느끼지도 못하고 마음의 눈으로 화두를 한 곳에 거두어들이고 단지 이와 같이 또렷또렷하면서도 분명히 드러나 있고(惺惺歷歷), 분명히 드러나 있으면서도 또렷또렷하게(歷歷惺惺) 세밀하고 빈틈없이 참구하라. 비유하자면 갓난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배가 고플 때 밥을 생각하고 목마를 때 물을 생각하는 것과 같이 하여 그만 두려고 해도 그만 두지 못하며 생각나고 또 깊이 생각날 것이니 어찌 이것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마음이겠는가.

不覺身心有之與無 心眼話頭 攝在一處 但伊?惺惺歷歷 歷歷惺惺 密密參詳.
譬如?兒憶母相似 如飢思食 如渴思水 休而不休 思復深思 豈是做作底心也. - 『太古語錄』 『示衆』


그러나 자연스럽게 화두가 현전하는 시기에도 조금만 방심하면 또 다시 망념에 휩싸이니 이 공부야말로 철두철미한 자기와의 투쟁이다. 이 싸움에서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밀도 있게(密密) 공부를 몰아붙이느냐가 수행의 관건이다.

참으로 목숨 바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야 한다는 데에 이 공부의 어려움이 있다.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철저히 믿고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과거 모든 선지식도 다 나와 같은 상태에서 출발했으니 나도 열심히만 하면 틀림없이 확철대오하여 견성성불할 수 있다는 철저한 믿음으로 정진해 나가야 한다.


출처 : 通達無我法者
글쓴이 : CD굽던노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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