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 277. 부정관의 두가지 : 부정함의 관찰, 청정함의 관찰

수선님 2019. 3. 3. 12:05

문] 만일 안으로 색상이 없다면 누가 밖을 관하는가?

 

[답]이것은 득해의 길[得解道]이지 실제의 길[實道]은 아니다.

 

수행자는 미래에는 죽어 불에 타거나 벌레에게 파 먹히며 흙 속에 묻혀 모두 닳아 없어지는 것을 생각하는데,

만약에 현재에도 역시 이 몸을 분별해 작은 티끌에 이르기까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관찰한다.

 

이것을 일컬어 안으로는 색상이 없고 밖으로 색을 관한다고 하는 것이다.

 

 

[문] 두 가지의 승처(勝處)6)에서는 안팎의 색을 보고, 여섯 가지의 승처에서는 다만 밖의 색만 볼 뿐이며, 한 가지 배사(背捨)에서는 안팎의 색을 보고, 두 가지 배사에서는 다만 밖의 색만 볼 뿐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안으로는 색상을 무너뜨리면서 밖의 색은 무너뜨릴 수 없는가?

 

[답] 수행자는 눈으로 이 몸에 죽음의 모습[死相]이 있음을 보고,

미래에 죽는 모습을 취하여 그로써 지금의 몸을 관찰한다.

 

곧 바깥의 4대(大)7)는 소멸되는 모양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없다고 관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밖의 색이 무너진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4) 범어로는 각각 saṃyojana, anuśaya. 결(saṃyojana)은 ‘얽어 맴’을, 사(anuśaya)는 내면에 깃든 악한 성향을 가리킨다. 결과 사는 모두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5) 범어로는 satkāya-dṛṣṭi. 유신견을 말한다. 5온이 화합해 이루어진 몸에 대해 나 혹은 내 것이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집착, 또는 몸이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로, 이 sat를 경량부에서는 무상하고 무너지는 것으로 보며, 설일체유부에서는 실제의 존재[實有]로 본다.
6) 범어로는 abhibhāyatanāni. ‘뛰어난 지(知)와 견(見)을 일으키는 곳’이란 뜻이다.
7) 범어로는 caturmahābhūta. 4대란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로, 견고함을 본질로 하는 지대(地大, pṛthivi-dhātu)․습기를 모으는 수대(水大, ab-dhātu)․열을 본질로 하며 성숙작용을 지니는 화대(火大, tejo-dhātu)․생장작용을 하는 풍대(風大, vāyu-dhātu)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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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색계(色界)8)를 여의는 이때에도 역시 밖의 색을 보지 않는다.

 

 

 

맑은 배사를 몸소 증득한다[淨背捨身作證] 함은 부정한 것에 대해 청정하다고 관찰[淨觀]한다는 것이니,

8승처(勝處)9)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앞의 여덟 가지 일체처(一切處)에서는 청정한 지(地)․수(水)․화(火)․풍(風) 및 청(靑)․황(黃)․적(赤)․백(白)을 관하는데, 청색을 관찰하기를 마치 푸른 연꽃과 같이, 마치 금정산(金精山)과 같이, 마치 우마가꽃[憂魔伽華]10)과 같이, 마치 참으로 푸른 바라내옷[婆羅捺衣]11)과 같이 하며, 황색․적색․백색을 관찰하면서 각각의 색을 따름도 역시 이와 같다. 이것을 통틀어 맑은 배사[淨背捨]라 한다.

 

 

[문] 만일 통틀어 그것이 맑은 배사라면 일체처(一切處)는 설명하지 않아야 하리라.

 

[답] 배사는 처음 행하는 것이고, 승처는 중간에 행하는 것이며, 일체처는 오랫동안 행할 때의 것이다.

 

부정관(不淨觀)12)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정함의 관찰[不淨]이고, 둘째는 청정함의 관찰[淨]이다.

 

부정함의 관찰 가운데에는 두 가지 배사와 네 가지 승처가 있으며,

청정함의 관찰 가운데는 하나의 배사와 네 가지 승처와 여덟 가지 일체처가 있다.

 

 

 

대지도론 277. 부정관의 두가지 : 부정함의 관찰, 청정함의 관찰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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