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 278. 정관(淨觀)은 마음의 생각[心想]에서 생겨나니,

수선님 2019. 3. 3. 12:05

[문] 수행자가 부정한 것을 청정하다고 여긴다면 뒤바뀐 것이라 하거늘 맑은 배사[淨背捨]라는 관이 어떻게 뒤바뀌지 않은 것이겠는가?
  
  
8) 범어로는 rūpa-dhātu. 욕계에서의 본능적 욕망을 여의고, 오직 순수한 물질로만 이루어진 생존계를 가리킨다.
9) 범어로는 aṭṭha abhibhāyatanāni. 8해탈(解脫)을 닦은 뒤 숙달된 관상법(觀想法)으로 자유롭게 정ㆍ부정의 경지를 관찰 하는 것을 말한다.
10) 범어로는 Umākāpuṣpa.
11) 바라나시산 비단으로 짠 옷을 말한다.
12) 범어로는 aśubhāvanā. 5정심관(停心觀) 가운데 하나. 번뇌와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 육체의 부정한 특징을 관찰하는 관법. 예를 들어 버려진 시신이 차례로 썩어가서 이윽고 백골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기까지를 관찰한다. 그 관찰의 단계를 아홉으로 나눈 것이 9상(相)이며, 열로 나눈 것이 10상(相)이다.
[809 / 2071] 쪽

[답] 여색(女色)의 부정함을 망령되게 보아 청정하다 한다면 이것을 뒤바뀐 생각이라 한다.

하지만 맑은 배사라는 관은 일체가 실로 청색(靑色)이라고 관찰하며, 광대하기 때문에 뒤바뀐 것이 아니다.

 

또 마음을 조복하기 위하여 정관을 오래 익히면 부정관은 마음으로 싫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정관을 익히는 것은 뒤바뀐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안에서는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이는 먼저 부정함을 관찰하되, 몸의 안팎에 있는 부정함을 따라 마음을 관찰 가운데 매어 두는데,

이때 싫증을 내면서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진다.

 

곧 자기 자신도 놀라 깨치면서 “나에게는 눈이 없다. 이 몸도 이와 같거늘 어찌 집착을 일으키겠는가”라며 마음을 가다듬고 진실로 관하여 다시는 착오가 없게 된다.

 

마음이 이미 조복되어 유연해지고 몸의 거죽과 살과 피와 골수의 부정함을 제거하여 물리치고자 하니,

오직 흰 뼈만이 남아 있게 되어 마음을 뼈로 된 사람[骨人]에게 매어 둔다.

 

만일 마음이 바깥으로 내닫고 흩어지면 그것을 거두어 돌아오게 한다.

 

깊이 마음을 거두는 까닭에 뼈에서 백골의 유광(流光)을 보게 되는데,

마치 흰 마노[珂]나 조개[貝]와 같이 능히 안팎의 모든 물건을 비추게 된다.

 

이것이 맑은 배사[淨背捨]의 첫 문이 된다.

 

그런 뒤에 뼈로 된 사람이 흩어져 소멸하는 것을 관하는데,

다만 뼈의 광명만을 보고 바깥의 정결한 색상(色相)을 취한다.

 

또 금강․진주․금․은 등의 보물이나 혹은 청정한 땅 혹은 맑은 물이 마치 연기나 장작도 없는 정결한 불과도 같으며, 혹은 맑은 바람에 먼지가 없게 되면 모든 청색은 마치 금정산(金精山)과 같고, 모든 황색은 첨복화(瞻蔔花)와 같고, 모든 적색은 붉은 연꽃과 같고, 모든 백색은 마치 흰 구름 등과 같아진다.

 

이러한 모양을 취하여 마음을 정관(淨觀)13)에 매어서 이 모든 색을 따르면 저마다 청정한 광휘가 있게 된다.

이때 수행하는 이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 온몸에 두루 채우니, 이것을 맑은 배사라 한다.
  
  
13) 범어로는 śubhabhāvanā. 부정관(不淨觀, aśubhāvanā)의 상대되는 개념이다.
[810 / 2071] 쪽
청정함을 연(緣)하는 까닭에 맑은 배사라 하며, 두루 온몸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까닭에 몸으로 증득한다[身證]고 한다. 이런 마음의 즐거움을 얻고 5욕을 등져 버리면 다시는 기뻐하거나 즐거워함이 없나니 이것을 배사라 한다.

 

그러나 아직 번뇌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에 혹은 결사(結使)의 마음이 생겨나고 따라서 청정한 색(色)에 집착하기도 하는데, 다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런 집착을 끊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정관(淨觀)은 마음의 생각[心想]에서 생겨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환술사[幻主]가 환술로 만들어낸 물건을 관찰해 그것이 자기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는 마음에 집착을 내지 않은 채 능히 반연되는 대상을 따르지 않는 것과 같다.

 

이때에 배사(背捨)는 변하여 승처(勝處)라 부르게 되는데,

비록 정관에 있어서는 뛰어나다 하더라도 아직 광대하지는 못하다.

 

이때 수행하는 이는 도리어 청정한 모양[淨相]을 취하여 배사의 힘 및 승처의 힘을 이용하는 까닭에 이 청정한 지(地)의 모양을 취하고 점차로 시방의 허공에 두루 차게 한다. 수(水)․화(火)․풍(風) 역시 그러하다.

 

청색 모양[靑相]을 취하여 점차로 광대하게 하면서 역시 시방의 허공에 두루 차게 한다.

황색․적색․백색도 역시 그와 같다.

 

이때 승처는 다시 변해 일체처가 된다.

이 세 가지 일은 하나의 의미이니, 옮겨가고 변하여 세 가지의 이름이 있게 되는 것이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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