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수행자가 부정한 것을 청정하다고 여긴다면 뒤바뀐 것이라 하거늘 맑은 배사[淨背捨]라는 관이 어떻게 뒤바뀌지 않은 것이겠는가? |
8) 범어로는 rūpa-dhātu. 욕계에서의 본능적 욕망을 여의고, 오직 순수한 물질로만 이루어진 생존계를 가리킨다. |
9) 범어로는 aṭṭha abhibhāyatanāni. 8해탈(解脫)을 닦은 뒤 숙달된 관상법(觀想法)으로 자유롭게 정ㆍ부정의 경지를 관찰 하는 것을 말한다. |
10) 범어로는 Umākāpuṣpa. |
11) 바라나시산 비단으로 짠 옷을 말한다. |
12) 범어로는 aśubhāvanā. 5정심관(停心觀) 가운데 하나. 번뇌와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 육체의 부정한 특징을 관찰하는 관법. 예를 들어 버려진 시신이 차례로 썩어가서 이윽고 백골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기까지를 관찰한다. 그 관찰의 단계를 아홉으로 나눈 것이 9상(相)이며, 열로 나눈 것이 10상(相)이다. |
[809 / 2071] 쪽 |
[답] 여색(女色)의 부정함을 망령되게 보아 청정하다 한다면 이것을 뒤바뀐 생각이라 한다. 하지만 맑은 배사라는 관은 일체가 실로 청색(靑色)이라고 관찰하며, 광대하기 때문에 뒤바뀐 것이 아니다.
또 마음을 조복하기 위하여 정관을 오래 익히면 부정관은 마음으로 싫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정관을 익히는 것은 뒤바뀐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안에서는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
또 수행하는 이는 먼저 부정함을 관찰하되, 몸의 안팎에 있는 부정함을 따라 마음을 관찰 가운데 매어 두는데, 이때 싫증을 내면서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진다.
곧 자기 자신도 놀라 깨치면서 “나에게는 눈이 없다. 이 몸도 이와 같거늘 어찌 집착을 일으키겠는가”라며 마음을 가다듬고 진실로 관하여 다시는 착오가 없게 된다.
마음이 이미 조복되어 유연해지고 몸의 거죽과 살과 피와 골수의 부정함을 제거하여 물리치고자 하니, 오직 흰 뼈만이 남아 있게 되어 마음을 뼈로 된 사람[骨人]에게 매어 둔다. |
만일 마음이 바깥으로 내닫고 흩어지면 그것을 거두어 돌아오게 한다.
깊이 마음을 거두는 까닭에 뼈에서 백골의 유광(流光)을 보게 되는데, 마치 흰 마노[珂]나 조개[貝]와 같이 능히 안팎의 모든 물건을 비추게 된다.
이것이 맑은 배사[淨背捨]의 첫 문이 된다.
그런 뒤에 뼈로 된 사람이 흩어져 소멸하는 것을 관하는데, 다만 뼈의 광명만을 보고 바깥의 정결한 색상(色相)을 취한다. |
또 금강․진주․금․은 등의 보물이나 혹은 청정한 땅 혹은 맑은 물이 마치 연기나 장작도 없는 정결한 불과도 같으며, 혹은 맑은 바람에 먼지가 없게 되면 모든 청색은 마치 금정산(金精山)과 같고, 모든 황색은 첨복화(瞻蔔花)와 같고, 모든 적색은 붉은 연꽃과 같고, 모든 백색은 마치 흰 구름 등과 같아진다. |
이러한 모양을 취하여 마음을 정관(淨觀)13)에 매어서 이 모든 색을 따르면 저마다 청정한 광휘가 있게 된다. |
이때 수행하는 이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 온몸에 두루 채우니, 이것을 맑은 배사라 한다. |
13) 범어로는 śubhabhāvanā. 부정관(不淨觀, aśubhāvanā)의 상대되는 개념이다. |
[810 / 2071] 쪽 |
청정함을 연(緣)하는 까닭에 맑은 배사라 하며, 두루 온몸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까닭에 몸으로 증득한다[身證]고 한다. 이런 마음의 즐거움을 얻고 5욕을 등져 버리면 다시는 기뻐하거나 즐거워함이 없나니 이것을 배사라 한다. |
그러나 아직 번뇌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에 혹은 결사(結使)의 마음이 생겨나고 따라서 청정한 색(色)에 집착하기도 하는데, 다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런 집착을 끊기도 한다. |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정관(淨觀)은 마음의 생각[心想]에서 생겨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환술사[幻主]가 환술로 만들어낸 물건을 관찰해 그것이 자기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는 마음에 집착을 내지 않은 채 능히 반연되는 대상을 따르지 않는 것과 같다. |
이때에 배사(背捨)는 변하여 승처(勝處)라 부르게 되는데, 비록 정관에 있어서는 뛰어나다 하더라도 아직 광대하지는 못하다.
이때 수행하는 이는 도리어 청정한 모양[淨相]을 취하여 배사의 힘 및 승처의 힘을 이용하는 까닭에 이 청정한 지(地)의 모양을 취하고 점차로 시방의 허공에 두루 차게 한다. 수(水)․화(火)․풍(風) 역시 그러하다.
청색 모양[靑相]을 취하여 점차로 광대하게 하면서 역시 시방의 허공에 두루 차게 한다. 황색․적색․백색도 역시 그와 같다.
이때 승처는 다시 변해 일체처가 된다. 이 세 가지 일은 하나의 의미이니, 옮겨가고 변하여 세 가지의 이름이 있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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