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279. 8승처(勝處)
[문] 이 세 가지 배사와 여덟 가지 승처와 열 가지 일체처는 곧 실관(實觀)인가, 아니면, 득해의 관[得解觀]인가? 만일 실관이라면, 몸에는 피부와 살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백골로 된 사람만을 본다는 것인가? 또 서른여섯 가지 물건[三十六物]14)이 합해서 몸을 이루거늘 무엇 때문에 분별해서 산관(散觀)하는가? 4대(大)는 각각 스스로의 모양이 있거늘 무엇 때문에 세 가지 대는 없애고 지대(地大)15) 하나만을 관하는가? 네 가지 색깔이 모두 청색은 아니거늘 무엇 때문에 모두 청색의 관만을 짓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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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36물(物)이란, 몸 안에 있는 서른여섯 가지 부정한 요소들을 말한다. 곧 머리칼․털․손톱․이빨․눈곱․눈물․침․가래․소변․대변․때․땀과 간․쓸개․창자․위․비․신장․심장․폐․생장(生藏)․적담(赤痰)․백담(白痰)과 피(皮)․부(膚)․피․살․근육․핏줄․뼈․골수․지방․고(膏)․뇌․막 등이다. |
15) 범어로는 pṛthivīmahabhūta. 물질의 굳은 성질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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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실관도 있고 득해관도 있다. 몸의 모양은 실로 청정하지 않은 것이므로 이것은 실관이 된다. 바깥 법에서는 청정한 갖가지 색상(色相)이 있으니, 이것은 실로 정관(淨觀)이 되지만,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않은 것은 바로 실관이다. |
그러므로 이러한 약간의 청정한 것으로써 “일체가 모두 청정하다”고 널리 관하고, 이 한 웅큼의 물을 취하여 “일체는 모두 물이다”고 두루 관하며, 이 약간의 푸른 모양을 취하여 “일체가 모두 푸르다”고 두루 관하니, 이러한 것들은 바로 득해관으로 실관이 아니다. |
네 가지 무색의 배사16)는 4무색정(無色定) 중의 관찰과 같으니, 배사를 얻고자 해서 먼저 무색정으로 들어간다. 무색정은 바로 배사의 첫 문이니, 색이라는 대상17)을 등져버리면 한량없는 허공처(虛空處)18)이다. |
[문] 무색정도 역시 그러하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
[답] 범부는 이 무색정을 얻으면 바로 색이 없다[無色]고 여기지만, 성인은 깊이 마음으로 무색정을 얻으면 한결같아 다른 생각을 내지 않으니, 이것을 배사라 한다. 나머지 식처(識處)19)․무소유처(無所有處)20)․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21)도 역시 그와 같으며, 느낌[受]과 생각[想]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을 등져 없애면 이것을 멸수상배사(滅受想背捨)22)라 한다. |
[문] 무상정(無想定)23)은 무엇 때문에 배사라 부르지 않는가? |
[답] 삿된 소견[邪見]을 지닌 이는 모든 법의 허물을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곧장 선정[定] 가운데 들어가서 이것을 열반(涅槃)이라 여기나, 선정에서 일어날 때는 도리어 후회하는 마음을 내면서 삿된 소견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까닭에 배사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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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범어로는 ārūpyavimokṣa. 곧 무색정을 대상으로 해서 얻는 해탈이다. |
17) 범어로는 rūpyālambana. 곧 색이라는 대상을 말한다. |
18) 범어로는 ākāśānantyāyatana. 공무변처(空無邊處)라고도 한다. |
19) 범어로는 vijñānānantyāyatana. |
20) 범어로는 ākiñcanyāyatana. |
21) 범어로는 naivasaṁjñānāsaṁjñāyatana. |
22) 범어로는 saṁjñāveditanirodhavimokṣa. 느낌과 생각이 멸해 얻게 되는 해탈의 상태이다. |
23) 범어로는 asaṁjñisamāpat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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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과 생각이 사라지면 산란한 마음을 싫어하기 때문에 정에 들어가 휴식하는 것이 마치 열반의 법을 닮았고, 몸 가운데 드러나고 몸으로 얻기 때문에 몸으로써 증득한다[身證]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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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승처(勝處)라 함은, 안으로 색상이 있고 밖으로 색이 적음을 관[內有色相外觀色少]하면서 혹은 아름답거나[好] 혹은 추하거나[醜] 간에 이 색을 두드러지게 알고[勝知] 두드러지게 관[勝觀]하니, 이것을 첫 번째 승처라 한다. |
안으로 색상이 있고 밖으로 색이 많음을 관[內有色相外觀色多]하면서 혹은 아름답거나 혹은 추하거나 간에 이 색을 두드러지게 알고 두드러지게 관하니, 이것을 두 번째 승처라 한다. |
세 번째와 네 번째도 역시 그와 같다. 다만 안으로 색상이 없고 밖으로 색을 관[內有色相外觀色]하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또한 안으로 색상이 없고 밖으로 모든 색인 청․황․적․백을 관하니, 이것이 여덟 가지의 승처이다. |
안으로 색상이 있고 밖으로 색을 관한다 함은 안 몸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바깥 대상이 적음을 보는 것을 말한다. 대상이 적은 까닭에 적다[少]고 하나니, 관하는 도[觀道]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적은 인연을 관한다. 곧 많은 대상을 관하게 되면 거두기 어려울까 두렵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마치 사슴을 놀게 할 때에 아직 길들이지 못했으면 멀리 내놓는 것은 옳지 않는 것과 같다. |
아름답거나 혹은 추하다 함은 처음 배우는 이가 마음을 대상 가운데 매어 두거나 혹은 미간, 혹은 이마, 혹은 코끝에다 두고서 안몸[內身]의 청정하지 않은 모양과 안몸 가운데 있는 청정하지 않은 모양으로 바깥의 모든 색의 착한 업보(業報)를 관하기 때문에 아름답다[好] 하고, 착하지 않은 업보이기 때문에 추하다[醜]고 한다. |
또 수행하는 이가 스승으로부터 받은 바 그대로 바깥 대상의 갖가지 부정함을 관하면 이것을 추한 색이라 하며, 수행하는 이가 때로는 억념하기를 잊어버리는 까닭에 청정한 모양[淨相]을 내면서 청정한 색을 관하면 이것을 아름다운 색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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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행하는 이가 자기 몸 속에 마음을 한 곳에다 매어 두고 욕계(欲界)의 색을 관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능히 음욕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능히 성을 내는 것이다. 능히 음욕을 낸다 함은 바로 청정한 색으로, 일컬어 아름답다[好]고 한다. 능히 성을 낸다 함은 바로 청정하지 않은 색으로, 일컬어 추하다고 한다. |
대상에 대해 자재롭고 두드러지게 알고, 두드러지게 보는 것이다. |
수행하는 이가 음욕을 낼 수 있는 단정한 색(色)에 대해 음욕을 내지 않고, 성을 낼 수 있는 나쁜 색에 대해서 성을 내지 않으면서 다만 색을 관찰하기를 “4대(大)가 인연화합하여 생긴 것이며, 마치 물거품과 같아 견고하지 않다”고 본다. 이것을 일컬어 혹은 아름답다고 하고 혹은 추하다고 한다. |
승처(勝處)라 함은 수행하는 이가 이 청정하지 않은 문 가운데 머무르면서 음욕과 성냄 등의 모든 결사가 온다 해도 아직 그것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을 승처라 하는 것이다. 이는 청정하지 않은 가운데서 청정하다고 여기는 뒤바뀐 생각 등의 모든 번뇌의 적을 이기기[勝] 때문이다.
https://blog.naver.com/jati108/70171857162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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