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집성제는,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가르침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실에 대한 여실한 통찰을 통해, 현실을 괴롭다고 파악했으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해 보아야 한다는 당연한 순서입니다.
앞에서, 괴로움이란 연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항상하지 않고, 고정되지 않은 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서로 모이고
쌓여 일어나기에, 한 번 생겨난 것은 반드시 멸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그처럼 연기하는 것은 괴로움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노병사의 괴로움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고요히 일체의 경계를 여실히 보시고는, 그 원인이 생(生)에 있음을 아셨습니다. 태어났기에 노병사(老病死)의 괴로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니,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의 생사 윤회하는 테두리인 유(有)로
말미암는 것임을 아셨고, 그 원인은 다시 어떤 대상에 집착하는 취(取)에 있음을 아셨고, 또 그 원인은 애(愛), 그리고 그 원인은 수(受) ……. 이렇게 하나 하나 그 원인을 고찰해 올라가다 보니, 결국에는 무명(無明)이 생로병사의 근본 원인임을 여실히 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이연기이며, 십이연기의 유전문(流轉門)이라고 합니다.
집(集)이라는 말은 ‘집기(集起)’ 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는 ‘모여서 일어난다’ 는 뜻으로, ‘연기’라는 말과 매우 가까운 개념입니다. 그러기에, 십이연기설로써 괴로움의 원인을 하나 하나 고찰해 본 것입니다.
십이연기설에서는, 무명으로 인해서 노병사의 괴로움이 생함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병사라는 근본 괴로움의 원인을 하나씩 고찰해 들어가 보니 결국 근본 원인은 무명이라고 깨달은 바를 ‘십이연기의 유전문’이라고 부르며 이런 유전문을 관하는 것을 일어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관한다고 하여 순관(順觀)이라고 합니다. 출처: 목탁소리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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