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종파((宗派)
종파불교(宗派佛敎)는 어떤 특수한 인물이 어떤 이념을 가지고 불교의 전통을 수립할 때
그 인물을 중심으로 종도(宗徒)들이 추종해서 새로운 규범을 조성하며 그 전통을 계승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종파(宗派)에서도 종주(宗主: 처음 종을 만든 사람)가 의지했던 경전을 연구하고, 그에 맞는 이념을 세워
그에 알맞은 생활양식(生活樣式)을 수립하고 있으나 부파불교(部派佛敎)에서보다 종주(宗主)의 영향력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종파는 중국(中國)에서 특히 많이 발달했는데, 그 대표적인 중국 불교의 13종파(宗派)는 다음과 같다.
(1) 계율종(戒律宗)
율종(律宗)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설법 중에서 제자가 부정한 행위를 했을 때마다 낱낱이 그 근기(根機)에
맞추어 율(律)을 말하여 바로 잡은 것을 모은 율장(律藏)을 종지(宗旨)로 하여 부처님의 계율을 실천함을
주안으로 삼는 종파(宗派)이다.
율장은 부처님 입적 후 제1결집 때 우바리(優波離) 존자가 80회에 나누어 외어내어 팔십송율(八十誦律)을
결집하고, 그 뒤에 가섭(迦葉)을 비롯한 5사(師)가 차례로 전승하여 담무덕부(曇無德部)를 위시한 5부로 나뉘어졌는데,
이 중 담무덕부율이 가장 융성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百濟)의 겸익(謙益)스님이 율을 연구하고 번역하였으나 개종(開宗)한 일은 없고
신라의 자장율사(慈裝律師)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雲際寺)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승니(僧尼)의 기강을 숙정(肅正)하고 통도사(通道寺)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세워 보름마다 계를 설하여
율종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2) 구사종(俱舍宗)
세친(世親)이 지은 구사론(俱舍論)을 근본 경전으로 하여 세운 종파이다.
부처님 사후 900년경 세친이 비바사론(毘婆沙論)을 연구하면서 그 장점만을 취하여 비바사론을 비평하여
새로운 활동의 중심이 되었으며 소승불교에 딸린 설일체유부종(說一切有部宗)의 한 종파이다.
구사종은 일체제법을 5위(五位) 75법(七十五法)으로 나누고 아(我)는 공(空)이나 법은 유(有)라고 하여
이 법체(法體)는 삼세에 걸쳐 실유(實有)라고한다.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 : 색(色), 심(心)의 모든 법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실재한다)
또한 75법을 대별하여 유위(有爲), 무위(無爲)로 구별하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관하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하여
열반에 들어감을 종지로 하며 우리나라에는 신라 때에 전래되었다
(3) 법상종(法相宗)
유식종(唯識宗), 응리원실종(應理圓實宗), 보위승교종(寶爲乘敎宗), 유식중도종(唯識中道宗),
중도종(中道宗)이라고도 하며 인도의 무착, 천친이 세우고 해심밀경(解深密經), 성유식론(成唯識論),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종파로 우주 만유의 본체보다 현상을 세밀히 분류 설명하였으므로
법상종(法相宗)이라 하고 온갖 만유는 오직 식이 변하여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며 만유는 아뢰야식(阿賴耶識)으로
연기(緣起)한 것이라 하여 유식종(唯識宗)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금산사(金山寺)에서 계법(戒法 : 부처님이 제정한 율법)과
점찰법(占察法 : 지장보살이 나무 쪽을 던져 길흉, 선악을 점치는 법과 참회하는 법)을 겸하여 닦아 실행하고
법상종의 종지를 영심(永深), 보종(寶宗), 신방(信芳) 등에 전하여 법주사(法住寺), 동화사(桐華寺) 등에서 크게 떨쳤다.
(4) 삼론종(三論宗)
성종(性宗), 공종(空宗), 파상종(破相宗)이라고도 하며 용수(龍樹)가 지은 중론(中論 : 中觀論), 십이문론(十二門論)과
제바(提婆 : 가나제바迦那提婆=편목천片目天)가 지은 백론(百論)의 3부를 주요 경전으로 하여
삼론(三論 : 중론, 십이문론, 백론)에 의지하여 무상개공(無相皆空)을 베푸는 것을 종지(宗旨)로 하는
인도 대승불교의 중관계(中觀系), 유가계(瑜伽系) 중의 중관계에서 시작되어 중국에서 크게 번성한 종파로
선종(禪宗)이 들어오면서 점점 쇠퇴(衰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 원효대사(元曉大師)가 3논의 종요(宗要)를 짓고 백제의 혜현(慧顯)이 3론을
강설하였으며 고구려의 혜관(慧灌)이 이 종(宗)을 일본에 전했다고 한다.
(5) 선종(禪宗)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중국에 전한 종지로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하며
교외별전(敎外別傳 : 교밖에 따로 전하는 것으로 선종에서 말이나 문자를 쓰지 않고 따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을
종의 강격(綱格)으로 하고 좌선(坐禪)으로써 내관자성(內觀自省)하여 자기의 심성을 철견(徹見)하고
자증삼매(自證三昧)의 묘한 경지를 체달(體達)하는 것을 종요(宗要 : 종지의 요점)로 하는 종파이다.
한편 선종이란 말은 부처님의 설교를 소의(所依)로 삼는 종파를 교종(敎宗)이라고 함에 대해 좌선을 닦는 종지라는 뜻이며
당나라 말기부터 선종과 교종의 세력이 대립하게 되어 교 밖에 선이 있다는 지나친 소견(所見)을 내고
교외별전의 참 뜻을 잃게 되어 도리어 선종이 배척되게 되었으나 원(元), 명(明)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선종만이 번성하였다.
달마(達磨)가 중국에 와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한 이래 5조 홍인(弘忍), 6조 혜능(慧能)과 신수(神秀)로 이어진
선종은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 도의선사(道義禪師)를 비롯한 큰스님들이 달마선법을 받아 가지고 와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을 세워 한창 번성하였다.
그러나 고려 때에는 차츰 쇠퇴하여 명종 때 불일보조(佛日普照) 국사가 나서 조계산에 수선사(修禪寺)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하여 선종을 일으켰으나 그 뒤부터 승행(僧行)이 타락(墮落)되면서
다시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말기에 태고 보우(太古普愚) 국사와 나옹혜근(懶翁惠勤) 선사의 두 파로 갈리어 내려오다
지금은 태고(太古)의 법계(法系)만 전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6) 섭론종(攝論宗)
무착보살이 지은 섭대승론(攝大乘論)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학문적(學問的) 종파로
인도(印度)의 진제삼장(眞諦三藏)이 섭대승론(攝大乘論)을 번역하면서 크게 번성(繁盛)하였으나
당(唐)나라 때 천축(天竺)에 갔던 현장(玄)이 돌아와서 법상종(法相宗)을 열자
이에 병합(倂合)되어 독립된 종파의 이름을 잃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수(隋)나라에 가서 전해 왔다고 한다.
(7) 성실종(成實宗)
4세기 경 하리발마가 지은 성실론(成實論)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종파로 구마라습이 번역한 이후 융성(隆盛)했으나
수(隋)나라, 당(唐)나라 때에 와서 쇠퇴(衰退)하였으며 모든 거짓을 버리고 무(無)의 진지(眞智)로부터
열반(涅槃)에 이름을 종지(宗旨)로 삼는다.
교의(敎義)는 아공(我空) 밖에 법공(法空)을 말하였으므로 그 실천문에서는 2공관(空觀)을 철저히 하고
3종심(種心)을 멸하는 동시에 3계(界)를 여읜다고 하며 향상수행(向上修行)의 과정을 27위(位)로 나눈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高句麗) 혜관(慧灌)스님이 수나라에 가서 가상사 길장으로부터 삼론종(三論宗)과 성실종(成實宗)의
깊은 뜻을 배워와 일본에도 전하고 신라의 원광(圓光)스님은 진(陳)나라에 가서 이 종을 배워왔으며
원효(元曉)스님도 성실론소(成實論疎) 10권을 지었다.
(8) 열반종(涅槃宗)
모든 중생(衆生)은 모두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어 이를 증득(證得)하여 나타낸 것이 열반(涅槃)이라고 하는
열반의 적극적인 해석(解釋)을 종지(宗旨)로 삼고 열반경(涅槃經)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종파(宗派)로
천태종(天台宗)이 생긴 뒤에는 법화경(法華經)과 열반경(涅槃經)은 뜻이 같은 교(敎)라는 말에 압도(壓倒)되어
천태종에 병합되고 서서히 쇠퇴(衰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태종무열완(太宗武烈王) 때 보덕화상(普德和尙)이 개종(開宗)하였으며
그 뒤에 원효(元曉), 의상(義湘), 경흥(憬興), 의숙(義寂), 대현(大賢)스님 등이 열반경의 소초(疎)를 지어
경(經)의 뜻을 밝혔다.
열반종(涅槃宗) 8대 가람(伽藍)
금동사(金洞寺), 진구사(珍丘寺), 대승사(大乘寺), 대원사(大原寺), 유마사(維摩寺), 중대사(中臺寺),
개원사(開原寺), 연국사(燕國寺)
(9) 정토종(淨土宗)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을 소의(所依)로 하고 법연(法然)을 종조(宗祖)로 한 종파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대원업력(大願業力)에 의해 성취된 정토(淨土)를 이상(理想)으로 삼고
아미타불의 광대(廣大)한 비원(悲願)에 몸을 맡기고 염불(念佛)에 의하여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왕생(往生)함을
목적으로 하는 정토문(淨土門)을 종지(宗旨)로 하며 일본에서 번성(繁盛)하였다.
정토문(淨土門)은 불교 중의 타력문(他力門)으로 사람이 이승에 있는 동안은 여러 가지의 기반(羈絆 : 굴레) 때문에
성불(成佛)을 이루지 못하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발원(發願)을 하면 아미타불의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음을 주장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성불하고 다시 이 세상에 돌아와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성업(聖業)에
종사(從事)할 것을 가르친 법문(法門)이다.
(10) 지론종(地論宗)
세친보살(世親菩薩)이 지은 십지경론(十地經論)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종파로 수행 방법으로는 십지론(十地論)에
말한 바를 따라 망(妄)을 없애고 진(眞)을 나타내는 것을 주로 삼으며 한 때 크게 성행하였으나
화엄경(華嚴經)의 일부분을 해석한 십지경론에 근거한 지론종은 법장(法藏)이 화엄종(華嚴宗)을 열게됨에 따라
점차 쇠퇴하여 화엄종에 병합(倂合)되었다.
십지론(十地論)의 종지(宗旨)는 8식(識)을 세우는 것은 법상종(法相宗)과 같으나
8식(識)을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진여(眞如)라 하고 나머지 7식(識)은 진여(眞如)가 연(緣)를 따라서
진여 자체가 일곱 망식(妄識)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11) 진언종(眞言宗)
당(唐)나라 때 선무외(善無畏) 삼장(三藏)이 밀종론(密宗論)을 번역함으로써 시작된 종파로
금강지삼장(金剛智三藏)과 불공삼장(佛供三藏)이 선양(宣揚)하여 오래 동안 전해 내려 왔으며
밀종(密宗), 진언다라니종(眞言多羅尼宗), 진언밀교(眞言密敎)라고도 한다.
이 종파는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 소실지경(蘇悉地經) 등에 의거하여 태장(胎藏)과 금강(金剛)의
두 부(部)를 세워 다라니(陀羅尼)의 가지(加持)의 힘으로 즉신성불(卽身成佛) 시킴을 종지(宗旨)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혜통(惠通)스님이 당나라에 가서 선무외삼장으로부터 인결(印訣)을 얻어 가지고
문무왕 4년(664년)에 돌아온 것이 진언종(眞言宗)의 시초(始初)이며 명랑(明朗)스님도 당나라에 가서
신인(神印)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신인종(神印宗)을 세웠다.
한편 신인종파(神印宗派)의 광학(廣學), 대연(大緣)스님이 고려(高麗) 초기 개성(開城)에 현성사(賢聖寺)를 지어
밀교의 근본 도장을 삼았으나 조선조(朝鮮朝) 초기(初期)에 사라졌다.
신인(神印)
범어(梵語) 문두루(文豆婁)의 번역이다.
(12) 천태종(天台宗)
중국 수(隋)나라 때 절강성 천태산(天台山)에서 천태(天台) 지의선사(智禪師)가 법화경(法華經)과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창종(創宗)한 종파로 지의(智)스님은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여 불교를 조직적으로 통일하고
적극적으로 제법실상론(諸法實相論)을 주창(主唱)하며 불교철학의 심오(深奧)한 체계를 세워
삼대부(三大部 : 묘법연화경문구, 묘법연화경현의, 마하지관)를 지어서 한 종파를 이룩하였다.
천태종(天台宗)이 법화경(法華經)을 근본 경전으로 하고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의 조화를 종의(宗義)로 하여 주창하는 것은
실상론(實相論)의 극치(極致)이며 천태법화종(天台法華宗), 천태법화원종(天台法華圓宗), 태종(太宗), 태가(太家)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의 현광(玄光), 법융(法融), 고구려의 파약(波若), 고려의 체관(諦觀)스님 등이 천태종을 연구하였고
고려(高麗)의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스님이 송나라에 가서 천태종(天台宗)을 배우고 돌아와서
개성(開城)에 국청사(國淸寺)를 세우고 천태교(天台敎)를 강설(講說)함으로써 천태종이 성립되었으며
남숭산(경북 구미 금오산), 북숭산(황해도 해주 수양산) 등이 그 소속 도량(道場)이었다고 한다.
(13) 화엄종(華嚴宗)
화엄경(華嚴經)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종파로 중국의 불교 전성시대(全盛時代)에 삼론종(三論宗), 천태종(天台宗),
율종(律宗), 정토종(淨土宗) 등 여러 종파에 대립하여 통합적인 불교로서 성립되었으며
이 종(宗)의 교의(敎義)를 조직하고 대성(大成)한 현수대사(賢首大師 : 法藏)의 이름을 따서 현수종(賢首宗)이라고도 한다.
화엄종(華嚴宗)은 인도에서는 용수(龍樹)와 세친(世親), 중국에서는 현수(賢首)를 각각 시조(始祖)로 하여 내려왔으며
중국에서는 선(禪)과 가까워지다가 점차로 쇠퇴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 독창(獨創)한 원효(元曉)스님을 초조(初祖)로 하는 해동종(海東宗 : 芬皇宗)과 당나라에 가서
지엄(智儼)의 종통(宗統)을 전해 온 의상(義湘)스님을 초조로 하는 부석종(浮石宗)이 있었으나 후세에까지 오래 전해진 것은
부석종(浮石宗)이며 뒤에 교종(敎宗)이 되었다.
단식(斷食)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제 9권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정사(精舍) 한 가운데에는 관자재보살상(觀自在菩薩像)이 있는데 몸체는 작지만 위엄이 있으며
손에는 연화(蓮華)를 들고 머리에는 불상(佛像)을 이고 있다.
항상 여러 사람이 단식(斷食) 서원하면서 보살을 친견(親見)하고자 하는데 7일, 14일 혹은 한 달 동안 하며
감응(感應)이 있는 사람은 관자재보살이 나타나 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위의 인용문(引用文)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에서 단식(斷食)이란 어떤 기원의 성취를 위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정진(精進)하는 것을 말한다.
단식을 수반하는 정진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불보살(佛菩薩)께 정성을 드리는 기도수행(祈禱修行)에서
자주 보이고 있는데 이렇게 단식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단식기도(斷食祈禱)라고 한다.
그러나 이 단식은 불교의 독특한 수행법(修行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알려져 있는 것처럼 부처님은 성도(成道)하기 전 6년의 고행 기간 중에도 당시 인도의 수행법에 따라서
몇 개월을 먹지 않는 단식수행(斷食修行)을 하기도 했으나 그러한 고행(苦行)이
깨달음을 얻는 진정한 길이 아님을 알고는 중도행(中道行)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후기불교(後期佛敎)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밀교(密敎)에서는 단식을 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실지갈라경(蘇悉地羅經) 하권(下卷)에 이렇게 설하고 있다.
“널리 기원(祈願)을 청하는 법칙을 행한다.
2월 8일, 14일, 15일이나 혹은 일식(日蝕)이나 월식(月蝕) 때에 하루 종일 먹지 않고 3일이나 혹은 7일을 지내면서...... (중략)
존상(尊像)을 생각하여 염하면 꿈속에서 자부주(自部主)나 진언주(眞言主) 혹은 명왕(明王)을 본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 상(相)은 성취(成就)의 상인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밀교에서는 비법(秘法)을 닦기 위해서는 몸을 청정히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단식(斷食)을 수행하는 것이다.
제이제이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jj-maumdaro/763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불교의 역사 (0) | 2019.08.11 |
---|---|
불교 교리의 전개 (0) | 2019.06.02 |
인도 민중을 위한 위대한 발자취 - 암베드카르 박사 (0) | 2019.05.19 |
[스크랩] 티벳불교 (0) | 2019.03.03 |
스리랑카 불교 (0) | 2019.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