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3. 무주당 청화 스님의 천태교관 이해

수선님 2019. 7. 28. 12:32

제3주제


무주당 청화 스님의 천태교관 이해

최동순(동국대 불교학술원)


Ⅰ. 머리말
Ⅱ. 천태종 교판과 원통불법
Ⅲ. 본시성불론과 천태 육즉론의 의미
Ⅳ. 청화 염불선과 지례의 염불사상
Ⅴ. 맺음말

 


Ⅰ. 머리말

불설 방식을 두고 두 가지로서 일음(一音)설법과 수기(隨機)설법(대기설법)을 상정할 수 있다. 전자는 한 번의 설법이지만 중생들은 각각의 이해도가 다르다. 중생 근기가 각각 다름을 말한다.
『법화경』에서는 이를 3초2목에 비유하기도 한다. 후자는 중생 근기에 따라 설법 내용이 각각 달라진다. 이를 응병여약에 비유하며 그 처방들이 다양해짐을 의미한다. 청화 스님의 불교관은 일음과 대기를 통섭하는 ‘圓通’으로서 모든 근기의 중생들에게 불타의 자비가 미쳐야함을 전제한다. 이것이 원통불법의 본질이다.

대중불교는 청화 스님의 지향이다. 상하근기의 대중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수행이 ‘염불+선’이다. 염불 등 이행도와 선법의 난행도가 원만하게 합쳐진 형태이다. 그 교의적 실천적 근거 마련을 위해 청화 스님은 순선(純禪)시대 선사들이 지향했던 안심(安心)을 채택했다. 여기에 덧붙여 천태종 교의와 실천론 역시 비중있게 수용하였다.
청화 스님은 원통불법의 기반 구축을 위해 염불과 선은 물론 타 종파의 교리를 참고하였다. 특히 천태학 특징인 유심정토론과 본시성불론, 그리고 일심삼관의 관심법 수용이 뚜렷하다. 본 논에서는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원통불법과의 관련성을 논구한다.

Ⅱ. 천태종 교판과 원통불법

청화 스님의 불교적 입장은 원통불법(圓通佛法)과 선오후수(先悟後修)로 대표된다. 원통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지에도 적용된다. 그 종지는 간화선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염불과 주문기도 모두를 수용하고 있으므로 원통의 의미에 부합된다. 또한 대한불교조계종 종헌에 ‘직지인심 견성성불’이 성문되어 있으나, 간화선의 취지인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제외하고 있다. 따라서 교의의 지향점을 잘 알고 난 후 실수(實修)에 임하는 선오후수 역시 종헌의 취지와 일치한다.

원통불법과 이에 따른 수행 지침인 선오후수는 또한 천태종 교학 및 관심(觀心)과 관련 있다. 천태종의 교리적 입장은 종종방편을 지향하는 『법화경』사상이다. 이 경은 上求와 下化를 동시에 아우르며, 특히 천태 대사는 본 경을 가리켜 圓滿이며 또한 圓融으로 판시한다. 이와 달리 청화 스님의 원통불법의 수행론을 『관무량수경』(이하 『관경』)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이 경에는 아난과 함께 위제희 왕비가 대고중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기서 미타의정(依正)을 관하는 염불 방법을 알리고 있다. 염불은 상하 근기의 대중에게 다가가는 행법이며, 청화 스님의 원통불법이 그 지향점이다.

敎判이란 불설 이해에 대한 종파적 입장을 말한다. 다양한 경전들이 수입되면서 이를 분석하되 개인 혹은 종파의 입장에서 해석하거나 판단한다. 보통 화엄종과 선종이 상근기의 입장에서 불설을 분석했다면, 천태종은 중하근기를 위한 불교적 해석을 견지한다. 그러나 청화 스님의 입장은 다르다. 스님은 염불과 선을 중심으로 상하근기 모두를 제도할 수 있는 원통불법을 채택하였다. 그 원통의 의미와 근거는 혜원, 천태, 선도 등 스승들의 행적과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천태종과 청화 스님의 교판론을 살펴본다.

천태종 교판은 5시8교이다. 이는 누구나 불법과 인연을 맺고 결국 성불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한 것이다. 석존 45년 교설에 대한 시간적 분석이 5시(五時)이며, 근기적 분석은 화법4교(化法四敎), 그리고 화의4교(化儀四敎)는 형식적 분석이다. 이는 경설에 대한 천태 대사의 중층적 분석으로서 중생 근기의 다양성에 맞춘 것이다. 청화 스님은 그의 법문에서 천태종 교판론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물론 다른 종파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먼저 화엄종·선종과 천태종의 교판론 비교를 역사적 근거에서 살펴보되 이를 네 가지로 논구한다.

첫째, 중당(中唐)시기 同學이었던 화엄종 청량 징관(738~839)과 천태종 형계 담연(711~782)의 교판논쟁이다. 이는 담연의 저술인 『지관의례』에 소개된 교판 논쟁이다. 담연은 화엄종(선종)을 가리켜 ‘頓頓’이라 교판하였고, 천태종 교관은 ‘圓頓’이라 판시하였다. 『화엄경』과 『법화경』 사상의 비
교라는 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노정된 것이다. 두 교판을 두고 볼 때 청화 스님의 원통불법은 방편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법화경』 정신과 잇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선종 및 천태종에 대한 종밀의 판단이다. 종밀은 『도서』에서 선종을 소개하면서 최상승선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천태종은 비록 妙하기는 하나 漸을 겸하는 圓頓으로 판시하였다.

셋째, 북송의 지례는 화엄종(선종) 교판을 가리켜 별교, 즉 ‘별리수연(別理隨緣)’이라 폄하하여 판단하였다. 본래무일물 등의 頓頓이나 頓悟를 가리켜 圓敎가 이닌 別敎의 교리로 핍칭한 것이다. 이는 비록 천태종 내부의 산가파산·외파의 논쟁이지만 화엄 교리와 선종의 실천에 대한 천태종의 입장인 셈이다. 『화엄경』 설법이 이루어질 때 이승(二乘)인 성문들은 여롱약아(如聾若.), 즉 ‘마치 귀머거리와 벙어리와 같았다’고 하였다. 이는 화엄의 교리적 수준이 높기 때문에 성문은 물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넷째, 청화 스님의 교판론이다. 원통불법의 실천론은 염불선이며 그 방법적 지침은 선오후수이다. 그리고 그 근거는 순선시대에 발전했던 정통선이며 그 목표는 안심(安心)의 성취이다. 그 안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야지혜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그 염불선을 가리켜 최상승의 실상염불선이라 한 것이다. 청화 스님은 바로 이러한 불교(교판)야말로 상하근기를 모두 아우르는 圓通으로 본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혜능 이후에 발전한 조사선 즉 선기(禪機)시대의 선종에 대한 소개나 설명이 많지 않다.

또한 스님이 출가사찰인 백양사 고불총림이나 대흥사 동국선원 등 화두참선 수행에 동참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한다. 주로 토굴이나 암자 등에서 염불선 수행에 매진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오히려 천태종의 원돈과 원만의 형태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이상과 같이 선종과 천태종의 교판론 비교에서 청화 스님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스님은 불교 모든 행법을 회통하는 것으로서 만법(萬法) 혹은 만선(萬善)이 귀일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화두참구나 주문기도나 혹은 불보살을 칭명하는 행법 모두를 배제하지 않는 정신이다. 그래서 청화
스님의 불교 교판은 圓通이다. 이를 圓融과 圓滿, 그리고 通涉과 會通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원통불법의 요체』는 청화 스님이 지향하는 불교관을 알 수 있으며, 『정통선의 향훈』은 그 교판론 실천을 위한 저술이다. 여기에 또한 『마음의 고향』 제1권의 서두 및 『안심법문』의 서두에도 그의 불교적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는 소의경전 채택이나 그 교리와 수행을 위한 가르침, 그리고 그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청화 스님은 ‘원통불법’의 사상이 자신의 독창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원통을 지향한 종파나 인물들이 다양했다는 것이다. 지눌 또한 그랬다는 것이다. 지눌이 간화선을 지향했지만 염불문을 수용하거나 3문, 즉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 간화경절문의 분류 또한 원통교판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스님의 이러한 시각이라면,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지 역시 간화선과 함께 염불문과 呪文의 행법을 수용하므로 원통의 입장인 것이다. 이에 따라 천태종의 원돈교판 역시 원통과 같은 지향점이라고 할 것이다.

청화 스님의 불교는 안심에 이르기위한 선법으로서 염불선을 적극 권한다. 그러나 두 가지의 염불선에 대해서는 적극 차별화를 시도한다. 스님은 순선시대 정통선인 실상염불선과 주굉의 『선관책진』에 나타난 염불선을 구분한다. 또한 여러 가지 염불문과 선문이 많지만 스님은 염불선 닦기를 추천한다. 그것은 출가수행자뿐만 아니라 대중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이행도 때문인 것이다.

원통불법으로서 염불선의 목표는 안심 성취에 따른 정토구현에 있다. 누구나 근기에 따라 행할 수 있는 주문기도, 예경참회, 칭명염불 등 다양한 행법이 있지만 결국 부처를 이루어야 하는 지름길은 실상염불선임을 제시한다. 이야말로 최상승선임을 강조한다. 염불선은 천태종처럼 차제에 따른 수행 방식과 달리 한다. 위차와 상관없이 누구나 염불선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칭명염불(稱名念佛) …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는 염불
관상염불(觀像念佛) … 부처님의 원만한 덕상을 관찰하면서 하는 염불
관상염불(觀想念佛) …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상념(想念)하면서 하는 염불
실상염불(實相念佛) … 실상(實相) 곧, 진리를 관조(觀照)하는 염불

스님은 위과 같이 사종염불을 인정하지만 결국 견불(見佛)을 통해 자신이 부처임을 확증하는 것은 실상문을 닦아야 함을 말한다. 따라서 염불문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법들을 실상염불로 통섭하게 된다. 간화선 역시 마찬가지이다.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간화선 역시 원통불법의 입장에서 회통한다. 청화 스님은 법문 중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자주 언급한다.

그 가운데 “화두참구뿐만 아니라 관법이나 염불이나 주문(呪文)이나 다 한결같이 참선”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본래면목이 곧 아미타불’이라고 하였다. 스님은 견성 역시 견불의 자기확신으로 간주하며 곧 정토 구현으로 본 것이다. 이 때가 근본 체성을 여의지 않는 중도실상의 경계임을 말한다. 마음이 청정하면 현실
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리하여 염불도 참선이며, 참선도 염불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선종의 목표인 見性이지만 그 性이야말로 부처이며 곧 자신의 본래면목이라는 점에서 견불과 동일한 시각인 것이다. 간화선 수행법은 주로 상근기의 출가수행자 혹은 전문수행자들을 위한 행법이다. 이는 선실이나 禪床 등이 잘 갖추어졌을 때 효과적이다. 이와 달리 염불선은 중하근기의 대중도 참여할 수 있는 행법이며 그 목표로서 見佛이다. 청화 스님은 염불과 선, 이 둘을 나누지 않고 염불선이라 칭하여 누구나 염불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리하여 견불과 견성을 동일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염불삼매라든가 기타 주문을 외우거나, 화두를 참구하나, 또는 칭명이거나 경을 외우나 딱 삼매에 들면 그 경계는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산란심만 제거되면 다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듯 원통론의 입장에서 염불행이든 화두참선이든 모두 염불선으로 회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좀더 나아가 청화 스님의 원통불법은 만법의 다양성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표명한다. 원통불법은 만법이 진여법성임을 아는 반야지혜를 구현해야 한다는 점을 중심에 둔다. 그러기에 중생 근기에 따라 펼쳐진 다양성들을 하나로 회통시키는 논리가 구현된다. 비록 『화엄경』, 『법화경』이나 정토경전 등이 있지만 모두가 반야지혜에 귀일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이 화두선이든 묵조선이든 염불선이든 모두가 같으며, 염불에 있어 아미타불을 염하든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을 염하더라도 같은 이치임을 설파한다.


Ⅲ. 본시성불론과 천태 육즉론의 의미

천태종은 유정물뿐만 아니라 무정물에 이르기까지 불성을 인정한다. 즉 장벽와력(牆壁瓦礫), 즉 돌 하나 혹은 기왓장 한조각일지라도 불성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를 당 형계 담연이 자신의 저술에서 활발하게 언급하였다. 또한 그 사상을 이은 송 사명지례는 全是라는 단어를 제시하여 의보·정보는 물론 心 모두에 불성이 편재함을 주장하였다. 이를 『관무량수경소묘종초』(이하 『묘종초』), 『십불이문지요초』 등에서 적용하였다. 따라서 미물들 즉 준동함령(蠢動含靈)의 존재들에 대하여 당연히 불성 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화엄종, 선종은 유정물에 대해 불성 내재를 인정하지만 무정물에 대해서는 법성만을 인정하는 것이 다르다.

유무정에 불성이 내재하더라도 그것이 佛身으로서 활동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 『법화경』과 『관무량수경』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법화경』「방편품」에서는 여래 출현, 즉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열어, 보여, 깨우쳐, 들게한다는 부분에서 불신관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관경』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여래법신이 일체중생의 마음에 든다’라고 하여 법신과 보신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이에 대하여 천태대사의 『관경소』와 지례의 『묘종초』에서는 본래 내재했던 법신이 보불로 나투는 과정을 염불수행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이는 체편(體遍) 즉 불체편만으로서 시방세계에는 법계신이 충만함을 전제한다.

여기서 지례의 『묘종초』는 중생의 淨心으로 인해 법신이 자재하게 되어 염불자의 心想에 나타는데, 그것이 곧 보신불로서 화신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 보불(아미타불)을 관조하지만
결국 그 부처야말로 수행자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염불이며 그것을 일컬어 견불이라고 한 것이다.

청화 스님 비문에도 ‘一切衆生과 萬有의 體性은 本是眞佛인데…’라고 하여 본시성불을 초두에 위치시키고 있다. 그리고 “염불은 우리가 본래로 부처인데 그 부처가 부처를 생각한다는 말입니다.”에서 본래불사상을 강조하였다. 또한 사바세계의 유정무정 즉 두두물물에 불성이 내재한다고 보며, “모든 중생의 마음 가운데 원래 들어 계시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천태종의 불성론 및 본시성불론과 동일하다.

스님 역시 유무정의 불성 내재와 법계신의 활동을 수용한다. “부처님이 성불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산하대지, 산천초목, 일체중생이 동시에 성불했다는 그 의의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듯이 ‘시방여래 제법계신’ 내용과 ‘본시성불론’을 그대로 드러낸다. “부처란 것은 사람만이 바로 부처란 말이 아닙니다. 어떠한 것 당체(當體), 책상(冊床)이면 책상 모두가 다 그대로 부처입니다. 다만 중생이 못 볼 뿐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가 결국 되는 것’이라고 하여 사람만이 중생이 아니라, 유정 무정 모두가 다 중생이며, 두두물물이 모두 법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스님은 “『관경』에서 시방여래는 법계신이라, 모든 부처님은 우주를 몸으로 한단 말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서, 비록 물질은 분할할 수 있지만 생명 자체는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처님 역시 누구나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가지고 있다고 설한다. 시방이 법계신이므로 그 (본체)자리를 떠나지 않는 염불로 자신이 부처임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천태종에서는 성불의 자기 확증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육즉(六卽)으로 설명한다. 육즉은 본래 수행자의 수행단계의 점검이다. 천태종 지례는 그것을 길강(微蟲)이라는 미충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 때 육즉론을 적극 활용하였다. 청화 스님 역시 천태종의 육즉론을 수용하고 있다. 육(止觀論)즉은 본래부터 부처였음을 확정하고 이를 자각해 가는 과정이다. 천태 대사 지관론에 있는 (六卽)육즉에 대해 청화 스님의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송 지례는 이 육즉을 활용하여 수행계위 지정은 물론 장구벌레 역시 성불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확신시키고 있다. 그것은 아래의 도표와 같다.

 

육즉론은 수행자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위치가 알 수 있도록 하여 공부의 대상이나 방법 등을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 누구나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내용은 당말 연수 또한 언급하고 있는데, 송 지례는 더 나아가 지옥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벌레인 길강(..)에도 적용시키고 있다. 이 때 누구나 불성이 본래부터 내재해 있지만, 그러나 천연의 석가란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자연의 미륵도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는 비록 불성이 내재하더라도 반드시 修道가 이루어져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천태 대사가 지은『마하지관(摩訶止觀)』에는 육즉이 원론적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청화 스님은 이들 내용을 간략히 줄여서 소개하고 있다. 또 스님은 불교 수행의 위차들을 모아 제시하면서『마하지관』의 육즉(六卽) 계위에 근거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육즉불의 여섯 단계의 수행계위 판위(判位)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어 『마음의 고향』 제1권에서는 상세한 설명을 붙이고 있으며『실상염불선』(2013)에서도 육즉론을 소개하고 있다.

 

육즉에 대한 청화 스님의 주요 시각은 ‘본래부처’에 집중된다. 깨달음이란 행자 스스로 본래불임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은 중생의 잣대로 본 것일뿐, 본래부터 부처의 공덕신이며, 또한 삼명육통을 갖추고 있음을 분명히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當體, 當處 및 全是에 대한 언급이다. 천태종 전적에는 이러한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당체’라는 말은 『마하지관』에 많이 등장한다. 지례 저술 『십불이문지요초』에는 當體全是가 나타나며, 『묘종초』는 當處全是로 기술하기도 하는데 이를 ‘全是’로 표현하며, 지례는 ‘佛身全是’, ‘全是性德’로도 요약한다. 이는 體遍, 즉 佛體本遍으로서 시공에 법신불이 충만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청화 스님 역시 이 용어를 활용하고 있다. 스님은 “당체전시, 당체가 바로 불성이란 말입니다. 개라면 개의 당체, 소라면 소의 당체, 불성이 없다면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존재할 수 없다. 유정무정 모두 불성 아닌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입각하여 미물인 준동함령의 불성내재를 전제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를 해석하였다. 이러한 설명 역시 천태교의에 의해 해석 방식(無漏智性本自具足)이다. 특히 “본래시불, 즉 무루지성본자구족임을 인식한다면, 똥막대기 화두를 드나, 관세음보살을 부르나 선 아님이 없다”라고 하여 화두선 역시 본래시불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이와 같이 청화 스님의 본시성불론은 천태종과 관련 있음을 보았다. 지의나 지례 등 천태사들이 저술한 자료들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경』에서 시방여래는 법계신이라, 모든 부처님은 우주를 몸으로 하단 말입니다.”의 문구와 같이 법계신으로서 의정이나 색심에 체성이 내재한다는 것이 일치한다. 이에 불성이란 그대로 온전한 것임을 설한다.


Ⅳ. 청화 염불선과 지례의 염불사상

1. 천태종 心과 청화 스님의 유관성

청화 스님의 염불선 사상과 실천은 천태종 사상과 그 행법 일부를 참고하고 있다. 먼저 心에 대한 불교적 탐구로서 먼저 천태종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논에서는 천태종의 염불사상과 청화 스님의 염불선이 교차하는 『관무량수불경』(이하 『관경』)과 관련하여 논지를 전개한다.

천태대사 강설에는 心에 대한 정의나 활용이 다양하다. 그는 『관경』을 해석하여 『관경소』를 지었고, 여기에서 心에 대한 정의 및 관법을 제시하였다. 천태대사는 『관경』 ‘시심작불 시심시불’을 중심으로 유심정토 구현을 설명했다. 이 부분은 당말 연명연수 또한 『종경록』에서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삼계유심’과 ‘일체유심조’를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천태대사의 『관경소』의 내용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心觀爲宗과 一心三觀의 관계까지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송 지례는 約心觀佛로 정의했고, 이에 영향 받은 고려 요세는 實非心外라고 하였다.

천태대사는 心에 대한 근거로서 『화엄경』의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에 두고 있다. 본래부터 心法이나 佛法이나 衆生法 사이에는 차별 없이 동일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비록 현재의 3법이 차별 있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 3법 가운데 불법은 너무 높고, 중생법은 너무 넓어 대경(對境)으로 삼기 어렵다. 그래서 결국 심법을 채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3과간경(三科揀境)이며, 그 심법 가운데서도 心意識에 있어 五陰을 대경으로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시경체(剋示境體)라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심법을 대경으로 하더라도 행법에 대한 이해인 개해행립(開解行立)이 전제 되어야 하며, 그 대상을 정하여 관조를 행하는 정경용관(定境用觀)을 강조한다.

이에 心에 대한 천태종과 선종의 교판을 비교 분석한다. 천태종은 심관위종이라 하였으며, 선종은 心宗 혹은 虛寂宗임을 강조하였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 내용을 비교할 때 두 종파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천태종은 범부를 대상으로 하는 心으로서 妄心觀이다. 그러나 선종은 불보살 혹은 조사들의 무번뇌 상태를 대상으로 참구하는 眞心觀이다. 그러나 두 종파는 유심의 정토구생이 목표이므로 그 결과는 일치한다. 청화 스님의 불교적 목표 역시 ‘자성미타 유심정토’의 구현이다.

청화 스님은 천태종 교판에 의한 心의 정의나 일심삼관의 행법, 그리고 4종삼매의 실천론을 참고하거나 수용한 것이다. 스님의 염불선 가르침에서 정토구생의 근거는 『관경』 「상관」 제8에서 구한다. 법문집인 『마음의 고향』은 「상관」의 주요 부분을 발췌한다.

“모든 불여래께서는 바로 법계신이므로 일체 중생의 마음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상상할 때 그 마음이 곧 32상과 80종호이니라. 그래서 마음이 부처가 되므로(是心作佛),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是心是佛).”

여기서 스님은 ‘是’ 즉 ‘是心’을 중요하게 이는 ‘全是’와 같은 의미다. 여기서 ‘이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하여 心淨土가 지향점임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원통불법의 요체』에서는 ‘극락세계는 서방에만 있는가’라고 소제목을 달고 동방 서방에 집착하지 말 것을 말한다. 또한 ‘이 마음이 부처다 마음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라는 것을 강조하며 ‘본래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닌 자리’임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2. 『관경』의 작시와 일심삼관

북송 초기 사명 지례가 저술한 『묘종초』는 송 천태종의 염불사상 및 그 실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고려 요세(1163~1245) 역시 『묘종초』 중시하였으며, 백련결사의 기반으로 삼았다. 이는 천태대사 저술 『관경소』를 해석한 것으로서 유심정토 구현을 논리적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관경소』 「불보살상관」 제8 해석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心作·心是의 원리를 활용하여 一心三觀의 행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제시하였다.


『관무량수경』
유송 강양야사
번역
『관무량수경소』
수 천태 지의
작시에 대한 해입상응의 유심론적 해석
『관무량수경소묘종초』
송 사명 지례
감응도교 해입상응 해석 및 작시에 대한 일심삼관의 종파적 해석


천태종은 유심정토를 지향한다. 이는 심·불·중생 3법의 무차별을 주장하며 이를 근거로 觀心체계를 조직한 것이다. 그러나 송 천태종 내부의 산가파는 선도 및 도작의 사상인 임종후 왕생인 사상(事相)염불을 수용했다. 이에 대하여 산가파 지례는 『관경융심회』, 『묘종초』를 지어 이관(理觀)염불의 유심정토를 주장하였다. 청화 스님의 실상(實相)염불은 천태종의 이관염불과 직결된다.

청화 스님 역시 ‘아미타불이나 부처님이 저 밖 어디에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을 방편염불이라 비판한다. 또한 『관경』의 「상관」을 중시하며, 그의 법문 중에는 ‘법계신이 중생의 심상에 든다’는 내용을 여러 번 인용한다. 스님 역시 심정토 구현의 입장이며, 그 염불선 사상은 천태종 사종삼매 및 『묘종초』와도 관련있다.

지례가 저술한 『묘종초』에서 추구하는 염불론의 핵심은 염불행자의 정심(淨心)에 모아진다. 이 때 중생의 정심 염불과 법계의 불신이 감응하는 구조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 논리 과정을 통해 염불수행에 따라 일심삼관의 관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염불을 통해 淨心이 되면 법계신이 자재하게 된다. 그 자재한 법계신은 중생의 心想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관경』 제8 「상관」의 내용에 대한 천태 및 지례의 해석이다. 隋 천태대사는 용수고조 이후 제4조이며 천태대사이며 北宋 지례는 제17조이다. 지례 해석을 기준으로 도식하면 다음과 같은 해석의 결과를 얻게 된다.


강양야사
번역
제불법계신
정심
(淨心)
중생의 심상에 든다
천태대사
해석
보불과 법성신의 자재
관불삼매에 의한
해입상응
사명지례
해석
시각(보불)과 본각(법신불)의 합일(감응도교 해석)
관해에 의해
본각이 시각에 듦
(해입상응 해석)


위 도식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고찰한다.
첫째, 수 천태대사는 『관경』 문구인 ‘여래법신(如來法身)’과 ‘입중생심(入衆生心)’으로 구분하였다. 중생이 청정심으로 염불할 때 비로소 법신이 자재하게 된다. 즉 시방에 편재한 법계신이 행자의 관불삼매에 의해 해입상응된다고 하였다.

둘째, 송 지례는 천태대사 『관경소』의 구분을 『묘종초』에서 감응도교(感應道交)석과 해입상응(解入相應)석으로 다시 분류하여 설명한다. 보불을 시각(始覺)에, 법성신을 본각(本覺)에 배치시켰다. 중생의 청정심이 그 시(始)·본(本)을 합일시키는데, 이를 감응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관해에 의해

全是의 법신이 중생심에 해입된다고 하였다. 이 때 본각이 시각에 드는 것이며 곧 해입상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한다.

셋째, 지례는 감응과 상응의 논리를 작·시의 행으로 이어져 묘관이 이루어진다는 논리를 전개시킨다. 『관경』의 ‘시심작불 시심시불’을 줄여 ‘心作’·‘心是’이라 하며 또한 ‘작·시’로도 표현한다. 중생의 정심염불에 의해 법신이 묘색신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他佛이 아니라 바로 염불자 자신임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본래 중생의 심중에 여래가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이를 가리켜 心外無佛이라 한다. 이 때가 卽作으로서 全性의 수행이 이루어지며, 卽是로서 全修를 이룬다는 것으로서 성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묘종초』에서 지례는 위의 세 가지를 통해 一心三觀이라 하였다. 그는 『마하지관』 「부사의경」 문구를 활용하여 그 논리전개 방식을 『관경』의 作·是에 적용시켰다. 觀心에 의한 若破를 空觀으로, 若立을 假觀으로 상정하는데 이것이 心作이다. 여기에 不破不立은 중도관으로서 心是이다. 즉 心
作·心是가 全是로서 作을 이룰 때 비로소 妙觀인 것이다.

청화 스님 역시 천태 대사의 가르침인 일심삼관을 이해하고 이를 중시했다. 주로 『원통불법의 요체』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격력삼제(隔歷三諦)에 대한 설명과 함께 원융삼제의 실천, 즉 일심삼관을 설명한다. 특히 격력은 별교(別敎)의 가르침이며 원교가 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일심삼관으로서 삼제의 공·가·중을 각각 관하는 것이 아니라 空인 동시에 假와 中이 되는 원융이 부처님의 본래적 가르침이라 하였다. 이는 천태대사의 가르침인 『마하지관』의 강설을 수용한 것(卽空)으로서 청화 스님이 수용한 것이다.

이는 즉공(卽假)·즉가(卽中)·즉중이며 걸림 없는 원융삼제를 표현한다. 그리고 이를 일심삼관 혹은 부사의삼관이라 한다. 청화 스님 역시 이 즉공과 당체(析空)를 중시한다. 이는 천태의 석공(卽空)에 이은 즉공의 가르침을 수용한 형태이다. ‘당체즉공’으(시)로서, 『반야심경』의 ‘색즉공’을 해석하였다. 천태종의 일심삼관은 청화 스님의 실상염불과 같은 표현인 것이다.


3. 4종삼매와 염불선

천태대사는 『마하지관』을 강설하면서 불교의 행법을 네 가지 종류로 분류하였다. 이른바 사종삼매이며 常坐, 常行, 半行半坐, 非行非坐이다. 이 가운데 상좌삼매와 상행삼매는 천태종뿐만 아니라 타 종파에서도 수행법의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다. 상좌삼매는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가 그 연원이며, 상행삼매는 『반주삼매경』의 반주삼매에 그 연원을 두었다고 천태대사는 밝히고 있다.

청화 스님은 또 일심삼관의 원융관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사종삼매의 행을 닦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천태 대사가 불교의 복잡한 수행법들을 정리했다고 하였다. 즉 사종삼매는 수행자로서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상좌삼매와 상행삼매를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청화 스님의 염불+선을 상행+상좌의 삼매에 등치시킬 수 있다. 천태 대사가 이관염불을 주창했다면, 청화 스님은 실상염불을 주창한 것이다. 두 삼매는 같은 의미이다. 이에 따라 청화 스님이 천태사상과 그 관법을 수용하거나 참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만큼 염불선의 천태적 해석을 상행삼매 및 상좌삼매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① 상행삼매로서 염불행의 수용이다. 청화 스님은 “상행삼매를 다른 이름으로 반주삼매라고도 합니다. 반주삼매라는 말은 또 불립(佛立)삼매라, 부처가 앞에 서서 나타나 보인다는 말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걸음걸이 소리소리 생각생각에 오직 아미타불을 염한다.” 하여 불호를 부르는 것이며, 이는 마치 화두처럼 마음을 다잡아서 산란스런 마음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스님은 불상이나 불탑을 돌면서 부처님을 부르거나 念하는 것을 ‘佛立’이라 한 것이다.


② 이어 반주삼매에 대해서 또한 설명이 이어진다. ‘一切佛現前三昧라 번역한다. 또는 ‘견불정(見佛定)’이라고도 한다. 이 삼매를 닦으면 모든 부처님이 눈앞에 현전하기 때문이다’의 문구를 인용하고 있다. 이 때 ‘일념미타불’이 이어져야함을 강조한다. 특히 스님은 구마라집과 여산 혜원의 서간문을 소개하면서 반주삼매를 소개하였다. “항시 아미타불 등 제불을 念하여 心을 一處에 住하면 곧 불을 見하고…”가 있으며 염불 가운데 『반주삼매경』이 가장 오랜 문헌임을 말한다. 또한 스님은 『능엄경』에 나타난 견불 역시 중시하고 있다. “항상 잊지 않고 부처를 생각하면 금생과 내생에 반드시 결정코 부처를 볼 수 있느니라.”에서 경문을 활용하고 있다. 이 인용에는 ‘중생의 마음은 본래로 부처이기 때문에’라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부처님 명호 가운데 총 대명사가 ‘아미타불’ 이름이며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잠자코 명상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자꾸 외우다보면 망상이 줄어들고, 염불자 자신이 본래 부처이므로, 결국 부처와 하나가 된다고 하였다.

④ 좌선위주의 상좌삼매는 천태종이 가리키는 원교 수행 즉 일심삼관의 묘관이며 실상관이다. 사명지례는 이를 이관염불이라 하였다. 이 또한 청화 스님이 강조한 선에 해당되며 실상염불과도 같은 의미이다. 다음의 문장인 “실상(實相)을 간단히 표현한 것이 어떤 것인고 하면은, 천태지의(天台智. 538~597) 선사의 식으로 표현한다면 ‘공(空), 가(假), 중(中), 삼제(三諦)’라 합니다.

불교철학 가운데서 제일 체계가 잘 선 것이 천태지의 선사의 천태학입니다. 말이 너무나도 전문적으로 들어갑니다만, 거기에 보면 우리가 수행하는 법 가운데서 가장 높은 법이 『마하지관』인데, 그 법은 어떤 것인고 하면은, 부처님의 실상, 우리마음 실상을 바로 관찰하는 법으로 공(空), 가(假), 중(中), 삼제(三諦)입니다.”에서 청화 스님은 천태대사의 삼제에서 그 실상을 찾고 있다.“그러나 그런 자리도 역시 부처님의 심심미묘한 지혜로써 밝혀놓은 의언진여(依言眞如)라, 말씀에 의지한 진여라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나 도인들은 중생이 불쌍하니까 비록 말씀을 가지고서 말로는 다 표현 못하지마는, 그래도 부처님의 심심미묘한 지혜로서 가장 간명하게 진여의 실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실상관(實相觀)입니다.”

실상관이란 ‘내 마음과 부처 둘 아니라, 내 마음 자성 그대로 부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스님은 강조하였다. 그것을 설명하여 “참다운 염불은 아미타불이 내 본래면목이고 우주가 아미타불 아닌 것이 하나도 없이 모두가 다 부처님뿐이다.”라고 하였다. 이 때 자성이 곧 미타이며 그때 정토가 구현된다는 점이다.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염불이며, 선임을 강조한다. 즉 실상염불이란 본래면목의 자리, 우리 생명의 당체, 생명의 본질자리인 진여불성의 자리이며 그것을 놓치지 않고 정진해야한다는 것이다.


Ⅴ. 맺음말

청화 스님의 염불사상이 천태학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고찰하였다. 불설에 대한 스님의 염불선은 조사선(간화선) 사상과 차이가 있다. 오히려 염불을 선택한 천태사상과 관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화두참선 대한 스님의 수행 기록이 없으며, 대부분의 법문이 염불선 해법에 모아진다. 따라서 화두참선을 전문수행자의 몫으로 여겼으며, 이는 대중불교운동으로서 적합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점이다. 이에 스님은 천태사상의 참조했으며, 수행을 위한 다양한 방편들을 수용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천태종의 지향점인 교상판석과 본불사상, 그리고 일심삼관의 염불은 청화 스님의 염불선과 연계된다. 이를 세 가지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첫째, 교판상 연관으로서 누구나 행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시8교의 교판은 대중들이 불교에 다가설 수 있도록 차체와 다양성을 제시하는데, 원통불법 역시 다양한 행상을 수용한 취지와 같다.

둘째, 천태사상의 본시성불론과의 연관성이다. 스님은 ‘當體全是’를 중시한다. 당체는 유무정 두두물물의 본체를 가리킨다. 그들에 대해 ‘是’, 즉 ‘是佛’임을 긍정한다. 이는 또한 의보와 정보에 두루 법신이 내재한다는 것이다. 그 법신이 보신의 아미타불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는 천태종, 특히 사명 지례의 사상과 연관된다. 따라서 임종 이후 다른 세상에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염불 중에 見佛한다는 유심정토의 사상을 채택한 것이다. 이것이 본래불을 인정하는 천태종 육즉론이며 청화 스님 역시 이를 중시한 것이다.

셋째, 천태종의 이관염불과 청화 스님의 실상염불의 동일성이다. 천태종은 방편을 버리고 실상을 구현하는 개권현실(開權顯實)을 추구한다. 그것이 격력삼제에서 원융삼제로의 이동이다. 스님 역시 기도나 칭명염불 혹은 관상염불을 넘어 실상염불로 유도한다. 그 근거는 『관경』의 ‘心作’과 ‘心是’이며, 이를 중시한 천태종과 청화 스님의 관점 또한 동일하다.

결국 청화 스님의 지향인 원통불법과 그 실천인 실상염불은 천태종과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천태종 일심삼관과 청화 스님의 안심이 결국 見佛로 모아진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또한 누구나 참여 가능한 이행도인 염불의 채택과 대중불교 구현의 지향점도 동일하다.


【토론】

「무주당 청화스님의 천태교관 이해」를 읽고

이병욱(고려대, 중앙승가대 강사)


최동순 선생님의 발표문은 청화 스님의 사상과 천태종의 사상의 관련성을 다룬 것이다. 이 발표문을 통해서 청화 스님의 사상이 천태종의 사상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러한 점에서 이 발표문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표문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질문을 하는 것으로 논평자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2장 천태교판과 원통불법: 발표자(최동순)는 청화 스님이 천태의 교판론, 곧 5시(五時)와 화법사교(化法四敎)와 화의사교(化儀四敎)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나아가 발표자가 공부한 내용을 더 추가하고 있다. 그것은 형계담연(荊溪湛然, 711~782)의 교판론, 화엄종 종밀의 천태종에 관한 견해, 산가파 사명지례(四明知禮, 960~1028)의 교판론이다. 그리고 나서 청화 스님의 교판론, 곧 원통불법(圓通佛法)의 실천론은 염불선이고, 그 방법적 지침은 선오후수(先悟後修)에 있다는 것을 발표자는 밝히고 있다. 2장에서 말하는 핵심적 내용은 청화 스님의 ‘원통불법’에 있다.

3장 본시성불론과 천태 육즉론의 의미: 3장의 핵심적 내용은 청화 스님이 천태의 육즉(六卽)을
수용하고 있는데, 그 주요내용은 돈오를 지향하지만 행자 스스로 본래불임을 확신하라는 것이다. 또한 발표자는 당체(當體), 당처(當處), 전시(全是)라는 용어에 주목한다. 이 용어는 천태종에서
많이 나오는 것임을 밝히고, 이 용어를 청화 스님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청화 스님은 “당체전시(當體全是), 당체가 바로 불성이란 말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4장 청화염불선과 지례의 염불사상의 관계: 1절 ‘천태종 심(心)과 청화 스님의 유관성’에서는
천태대사가 『관무량수경』의 시심작불(是心作佛) 시심시불(是心是佛)을 중시했는데, 청화 스님도 『마음의 고향』1권에서 『관무량수경』의 시심작불(是心作佛) 시심시불(是心是佛)을 인용하고 있고, 나아가 청화스님은 시심(是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지적한다.

2절 ‘『관무량수경』의 작시(作是)와 일심삼관(一心三觀)’에서는 사명지례가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일심삼관’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청화 스님도 천태대사의 ‘일심삼관’을 이해하고 중시했음을 지적한다. 청화 스님은 ‘일심삼관’이 공(空)인 동시에 가(假)와 중(中)이 되는 것인데, 이러한 원융(圓融)이 부처의 본래적 가르침이라고 한다.

3절 ‘4종삼매와 염불선’에서는 천태대사가 4종삼매를 제시하였는데, 청화 스님도 4종삼매를 수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발표문에서는 4종삼매 가운데 상행삼매(常行三昧)와 상좌삼매(常坐三昧)를 거론하고 있다. ‘상좌삼매’는 좌선을 위주로 하는 것인데 이는 청화 스님이 강조한 선(禪)에 해당하는 것이고, 청화 스님이 주장하는 실상염불(實相念佛)과 같은 의미라고 주장한다.

1. 이 발표문은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천태종의 중요개념들이 충분히 소개되어 있지 않아서 내용파악을 하기 힘든 면이 있다. 천태종의 중요 개념들은 좀더 자세히 소개해 주었으면 한다.

2. 이미 발표문에서 자세한 내용에 대해 서술하였고 결론에서 정리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천태종의 사상이 청화 스님의 사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다시 정리해 주었으면 한다.

3. 청화 스님의 사상의 독자성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발표자의 견해를 구한다. 발표문의 내용처럼 청화 스님의 사상이 천태종의 사상과 연관성이 있다면, 청화 스님의 사상이 갖는 독자성은 어떻게 이해할지 의문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