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대지도론 281. 9차제정(次第定)

수선님 2019. 7. 28. 12:57

대지도론 281. 9차제정(次第定)

 

 

 

 

[문] 무엇 때문에 무소유처(無所有處)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는 일체처라 하지 않는가.?

[답] 이 득해(得解)의 마음은 안온하고 즐거우며 광대하고 한량없고 끝이 없는 허공처(虛空處)이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한 바이니, 일체처 안에는 모두가 식(識)이 있어서 온갖 법을 신속히 반연하기 때문에 온갖 법 중에는 모두가 식이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두 곳에서는 일체처가 성립되지만 무소유처 안에는 광대할 만한 물건도 없고 또한 쾌락을 얻을 수도 없으며, 부처님께서도 역시 이 무소유처를 끝이 없고 한량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비유상비무상처는 마음이 둔(鈍)한지라 모양을 취하여 광대하게 하기도 어렵다.

또 허공처는 색계(色界)에서 가깝고 또한 색을 반연할 수도 있으며,

식처(識處)는 능연(能緣)26)으로 색을 반연한다.

또 식처가 일어나서 제4선(禪)에 뛰어들 수도 있고 제4선이 일어나서 식처에 뛰어들 수도 있지만

무소유처와 비유상비무상처는 무색(無色)의 인연과는 멀기 때문에 일체처가 아니다.

이 세 가지 법은 모두가 행(行)하여 승처를 얻는다.

26) 범어로는 ālambanābhibhavana. 객관을 인식하는 주관, 곧 주체를 말한다.

 

 

일체처 이것은 유루(有漏)요 처음의 세 가지 배사와 일곱 번째․여덟 번째의 배사는 바로 유루이지만,

그 나머지는 혹 유루이기도 하고 혹 무루(無漏)이기도 하다.

처음의 두 가지 배사와 처음의 네 가지 승처는 초선(初禪)과 3선(禪) 중에 속하고 맑은 배사[淨背捨]와 나중의 네 가지 승처와 여덟 가지의 일체처는 제4선 중에 속한다.

두 가지의 일체처를 곧 공처(空處)라고 하며 공처는 식처를 포섭하고 식처는 앞의 세 가지 배사와 여덟 가지의 승처와 여덟 가지의 일체처를 포섭한다.

모두가 욕계(欲界)를 반연하지만 나중의 네 가지 배사는 무색계(無色界) 및 무루법(無漏法)의 모든 묘한 공덕을 반연하며 근본(根本) 중에 있으면서 착하다.

무색(無色)의 근본은 아래 지위[地下]를 반연하지 않는다.

멸수상정(滅受想定)은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이 아니므로 반연함이 없으며,

비유상비무상처의 배사는 다만 무색의 4음(陰)과 무루의 법만을 반연한다.

9차제정(次第定)이라 함은, 초선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나 차례로 제2선에 들면서 다른 마음으로 들어갈 수는 없게 하는데 착하기도 하고 때가 끼여 있기도 하다.27) 이와 같이 하여 멸수상정(滅受想定)28)까지 이르게 된다.

[문] 그 밖의 것도 역시 차제(次第)가 있거늘 무엇 때문에 9차제정만을 말하는 것인가?

[답] 다른 공덕에서는 모두가 다른 마음이 사이에서 생기기 때문에 차제가 아니다.

이 안에서는 깊은 마음과 지(智)와 행(行)이 날카로운 이는 스스로 그 마음을 시험하면서

1선(禪)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나 다음에는 2선으로 들되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27) 곧 제2선의 상태란 5개(蓋)를 여의어 불선법을 떠난 까닭에 착하다고 하며, 아직 거칠고 세밀한 마음작용[尋司]이 남아 있는 까닭에 때가 끼여 있다고 하는 것이다.
28) 범어로는 saṁjñāveditanirodhasamāpatti. 곧 느낌과 생각이 모두 지멸한 상태를 말한다.
[817 / 2071] 쪽
이런 공덕에서 마음이 유연해지고 법애(法愛)를 잘 끊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이어간다.

이 차제정에서 두 가지는 바로 유루이며 일곱 가지는 혹 유루이기도 하고 혹 무루의 선[無漏禪]이기도 하며, 중간이거나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면 견고하지가 않다. 또 이것은 성인이 얻을 것이다.

또 이 큰 공덕은 변두리 지위[邊地]에 있지 않나니, 그러므로 차제가 없다.

8배사와 8승처와 10일체처와 9차제정을 성문(聲聞)의 법 가운데서 간략하게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