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제법실상(諸法實相)

수선님 2019. 8. 11. 11:41

제법실상(諸法實相)’은 불교의 근본진리를 가리키는 용어의 하나로, 대승불교를 일관하는 근본사상이다. ‘제법(諸法)’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현상까지도,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전부 최고의 경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제법 하나하나가 다 있을 자리에 있고, 거기서 제 나름의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것은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아는 것이다. 제법이란 모든 사물을 말한다. 이 경우의 법(法)이라는 것은 교(敎)의 뜻이 아니라 사물이라는 뜻으로서 세상의 모든 사물의 참된 성질, 참된 상(相)을 아는 것이 제법실상이다. 이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일체법(一切法)이 곧 제법이란 말인데, 그 제법이 불법이란 것이다. 일체 불법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일체의 모든 사물, 심지어 먼지까지도 전부 나름의 가치와 진리를 내포한다고 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 생태계(ecosystem)이론을 앞세워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간주하는 가이아(Gaia)이론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그 어느 하나도 필요 없는 존재가 없는, 모두가 제 나름의 기능을 발휘하면서 상호의존 하고 있어서 이 지구가 존속되고 있다고 한다. 즉, 불교의 제법실상과 잘 어울리는 언설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제법실상은, 이 세상에 부처 아닌 자가 없고 불성이 아닌 사물과 현상이 없다는 말이다.


‘실상(實相)’이라는 말은 모든 존재의 ‘참 모습’ 또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 혹은 ‘진실한 본성’을 가리킨다. <법화경>은 제법실상의 도리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경전이다. 그런데 ‘제법실상(諸法實相)’이 <법화경>의 독자적인 사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법화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만들어 낸 이는 구마라습(鳩摩羅什, 쿠마라지바/Kumārajīva, 344~413)이다. 그가 <반야경>, <법화경>, <중론>등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여러 종류의 다른 원어를 자유롭게 '제법실상' 또는 ‘실상(實相)’이라고 뭉뚱그려 번역함으로써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제법실상을 나타내는 산스크리트어는 대개 다섯 종류를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 다섯 가지 원어의 공통점은 모두 연기(緣起)와 동의어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원시불교의 연기(緣起)와 대승불교의 제법실상이 실은 같은 사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연기한 것이 제법실상이란 것이다. 즉, 제법은 모두 연기한 것이란 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법화경>의 제법실상은 <법화경> 특유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이란 우주 사이의 모든 존재와 사물은, 있는 그대로 진실한 것, 가치 있는 것,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인데, 연기의 실상을 제법실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법 그 자체가 그대로 연기이며 실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실세계가 그대로 실상계(實相界)임을 천명하는 것으로서, 만물이 그대로 절대이며 실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가 커다란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가이아이론이 바로 제법실상의 현대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제법실상이란 뜻은 우주만상의 본질과 참다운 본질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법화경> ‘방편품’에서 말하기를, "모든 법이 이와 같은 상(相)이며, 이와 같은 성(性)이며, 이와 같은 체(體)이며,…"라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나 삼라만상인 물질을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물질들의 각 개체들은 그들만의 고유성(固有性)과 모양과 질과 맛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사물을 봄에 있어서 상(相), 성(性), 체(體)로 구분해서 보는데, 모든 사물에는 눈에 보이는 상(相)이 있고, 그 상은 어디서 생기느냐 하면 그것의 성질(性)이 나타낸다. 그리하여 그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 분명히 여기에 있다[체(體)]. 이것이 상(相), 성(性), 체(體)이다.

다른 예를 들면,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相]은 그 사람의 자비의 마음에서 일어난다. 그 자비의 마음이 성(性)이요, 그 자비의 마음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사람 자체가 체(體)이다. 모든 것은 상, 성, 체의 세 가지를 떼어놓지 못한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하다. 어떤 물건이 있다고 하자[체(體)]. 그 물건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고[성(性)], 그 성질이 겉에 드러난다[상(相)]. 상이 있으면 반드시 성이 있고, 성이 있으면 반드시 체가 있다. 또 뒤집어 말하면, 체가 있어서 어떤 물건이 있으면, 그것은 반드시 어떤 성질을 갖추고 있고, 그 성질이라는 것은 반드시 겉으로 드러난다.

철학이나 과학은 이 체(體)와 성(性)을 논구한다. 우주의 본체는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의 본체는 무엇인가, 그 우주 만유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 등 등 철학, 과학을 비롯한 소위 학문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체와 성을 논구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어떤 성질이 있는가를 구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기가 있다고 하자. 공기라는 것은 어떠한 것이냐, 공기라는 것은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연구한다. 그리하여 그 어떠한 ‘물건’이라는 것이 체(體)요, ‘성질’이 어떻다는 것이 성(性)이다.


그러므로 철학이나 과학에 있어서는 체와 성을 논하지마는 종교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상(相)이다. 상이란 우리들 마음에 비치는 것, 우리들의 마음에 어떻게 비치는가 하는 것이다.


종교는 본체만 논해서는 안 된다. 우주의 본체는 무엇이라고 해서는 그것은 종교가 아니다. 우주의 본체는 신(神)이라든가 하늘(天)이라든가 도리(道理)라든가 해도 그것만으로는 종교가 안 된다. 그 물건이 우리들의 마음에 어떻게 비치는가, 즉 우리의 마음에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마음에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 이것이 종교로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우리 인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철학이나 과학으로 어느 정도 이치를 따져 보는 것으로도 무방하겠지마는 종교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종교에서는 상(相)을 중요시한다. 상이란 자기의 마음에 비치는 상태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그것이 상(相)이다. - 명순화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10여시(十如是)라 해서,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에 갖추어져 있는, - 즉 제법실상의 열 가지 성질을 말한다. ‘여시(如是)’란 이와 같다는 말인데, 우주의 모든 형상이 열 가지 범주 안에 있다는 뜻이다. 이 열 가지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해서 십여시라고 한다. 우주의 모든 현상을 10가지 측면에서 관찰한 것이다. 일체의 현상은 모두 10여시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 10여시가 천태대사 지의(智?, 538~597)가 창립한 중국 천태종의 세계관이자 현상론이다.


십여시(十如是)란 인연과보(因緣果報)의 이법(理法)을 열 가지로 늘여서 설명한 것이다. 이 인과(因果)의 이법(理法)이 곧 제법의 실상으로서 자연계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인간사회의 모든 것이 이 이법 아래 놓여 있으며 범할 수 없는 철칙인 것이다. 속어에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라는 말처럼 '악한 행위는 괴로운 결과를 낳고, 착한 행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십여시는 원인과 결과라는 제법실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과경(因果經)>에서 말하기를, "과거의 인(因)을 알려고 한다면 현재 받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으며, "미래를 알고 싶다면 현재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면 안다,"라고 했다.

이 인과의 이법을 자상하게 설한 것이 십여시(十如是)로서 “영원히 변하지 않고 갖추고 있는 10가지 조건”을 말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부처님이건, 악인이건, 사람이건, 축생이건, 물질이건, 무엇이든 열 가지 이와 같은 십여시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① 여시상(如是相) - 존재 하는 모든 것의 외견상의 모습,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모습,

우주 만법의 나타나는 현상 그대로를 말한다. 산천초목 삼라만상이 각기 그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시상인 것이다.

② 여시성(如是性) - 모든 것의 나름의 성질, 내적인 성질, 특성을 말한다. 모양 속에 있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성질을 말하는 것으로 성질이 없이는 상이 나타날 수 없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물질과 둘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화가 나면 모습이 일그러지고 즐거우면 웃는 모습으로 상이 변하는 것이다.


③ 여시체(如是體) - 생겨난 것들의 나름의 주체(본체), 근본바탕을 말한다. 모든 만물은 모두 체(體)가 있다. 물은 액체, 불은 기체, 광물은 고체로 돼 있는데, 다 체가 있기 때문에 여시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란 그것이 체가 되고 사람의 체 안에 모양과 성품이 포함돼 있는 것이므로 모든 사물들은 상(相), 성(性), 체(體)가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④ 여시력(如是力) - 어떤 사물이 존재해 있으면, 상, 성, 체, 속에 어떤 힘이 있다. 힘은 내면적인 것으로써 사물마다 많고, 적고의 차이는 있지만 힘이 전혀 없는 것은 없다. 물은 밑으로 흐르는 것이 힘이요. 기둥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것이 힘이다.


⑤ 여시작(如是作) - 내면적인 힘이 겉으로 나타나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힘을 지닌 모든 존재는 반드시 그 작용을 가지게 된다. 불은 물건을 불사르게 하며 뜨겁게 하는 작용을 하며, 물은 물건은 적시고 윤택 나게 하는 작용을 하며, 생물은 성장발육하고, 또 노사(老死)하는 작용을 지니고 있는데 이런 기능을 말한다.


⑥ 여시인(如是因) - 모든 일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 즉 장차 어떤 결과를 낳을 직접적인 원인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반드시 그 원인요소가 있어서 이룩된다.

물은 H₂O, 불은 가스와 산소가 화합해 된 것이며, 모든 만물은 원소와 요인(要因)으로 구성돼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세상에 모든 물건은 홀로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주위의 상대가 있으므로 해서 존재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데는 인(因이라고 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말한다.


⑦ 여시연(如是緣) - 인(因)을 돕는 간접적인 원인이나 조건, 제2의 원인, 즉 인의 환경과 사정을 말하는 것이다.

여시과(如是果) - 인과 연에 의해 생긴 결과, 모든 행에 나타나는 직, 간접적인 결과. 만상은

인(因)과 연(緣)이 화합함으로써 가져온 결과이다.

여시보(如是報) - 결과의 뒤에 남은 작용, 즉 갚음을 말한다. 결과가 사실이 돼 외부로 표출된 것, 인ㆍ연ㆍ과에 의해 나타나는 영향. 어떤 결과로 나타난 사물은 반드시 그 보(報)가 있음을 뜻한다. 예컨대 호박씨가 흙이라는 직접적인 원인을 만나 싹이 트는 것은 과라 하겠고, 햇빛과 거름 등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열매를 맺는 것을 보라고 하겠다. 보가 되는 열매가 좋을 때는 자신과 남에게 도움을 주고, 후에는 제일 원인(직접적인 원인)인 씨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⑩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 - 제①의 상(相)에서 제⑨의 보(報)까지가 서로 관계해 일관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경등(究竟等)이란 처음 시작인 상(相)이 나쁜데 결과가 선으로 나올 수가 없고, 반대로 마지막 보가 악인데 처음 상이 선으로 나올 수가 없다는 뜻이다. 즉, 악인악과, 선인선과라는 사물의 평등성을 말하는 것이다. 평등하게 작용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인과 연에 의해서 과보가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는, 이것이 생명과 삼라만상의 참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표현하셨다. 인(因)인 ‘귤의 씨’가 연(緣)인 남방 따뜻한 곳에 심으면 귤이 되고, 북방 추운 곳에 심으면 탱자가 되는 이치이니 인과 연은 서로 잘 만나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법화사상을 철학적으로 압축한 것이 바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즉, 모든 존재는 그 나름대로의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 거대한 지구, 자연, 인간계와 종교계의 진리와 질서를 구성하고 있음을 한 마디로 나타낸 말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불필요한 그 어떠한 존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제법실상’은 <법화경>의 중심적인 교설이자, 천태교학의 핵심사상이다.


그래서 <법화경>에, "온갖 세상은 진리의 자리에 있으므로 이 세상은 그대로 상주불멸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우주를 보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 법계가 움직이고 있다. 4계절이 그렇고, 밤낮이 그런가 하면,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삼라만상이 또한 그렇다. 만약 이 우주가 원융무애 하지 않다면 어떻게 생물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 우주의 모든 모습이 그대로 상주불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화엄경>의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제법이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으며 존재한다는 사실, 광대무변한 우주에는 무한대의 차원이 전개돼 있지만 상호간 서로 방해하지도 않고, 방해 받지도 않는다는 가르침, 그것이 제법실상이고, 곧 사사무애법계의 실상을 나타낸 말이다. 우주만상이 모두 법성(法性)으로부터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 나타난 모두가 서로 융통해서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간주하는 가이아(Gaia)이론이 성립되기도 하는 것이다. 2천여 년 전에 성립한 불교 교의가 현대과학의 한 축을 형성할 줄이야, 실로 감탄스러울 뿐이다.

제법실상은 원융상즉(圓融相卽)한 연기관계(緣起關係)에 있으므로 현상계는 서로 교류해, 한 개와 여러 개가 한없이 관계하고 있다는 세계관이다. 혼자 외로이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때문에 부처는 저 지저분한 저자거리에도 포진해 있고, 냄새나는 노숙자에게도 있고, 스트레스 쌓이는 사무실에도 있고, 어느 곳이나 다 있다. 이런 도리는 법(진리)의 위치에 머물면서 세간의 온갖 형상에도 항상 머무른다는 것이다. 곧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라, 곧 이 세상은 그대로 상주불멸 하는 것이고, 출세간법이나 세간법이 모두 실상이란 뜻이니 출세간법과 세간법이 불이(不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거는 대승불교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근본사상이라는 의미에서 소승불교의 삼특상(三特相)에 대해 <법화경>에서는 일법인(一法印)이라고 한다. 즉, 소승불교의 「무상ㆍ고ㆍ무아」의 삼특상에 대해 제법실상의 일법인, 곧 일실상인(一實相印)만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일실상인은 <법화경>에서 설하는 단 하나의 특징이란 말인데, 이는 곧 부처님의 일법인(一法印)이라 할 수 있는 “제법무아론”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제법실상의 원리를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로다”라고 했다. 산이 산답게 존재하는 진리는 산에 있다. 물도 마찬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의 만상(萬象)은 그 자체가 진리이고 불법이고 항상 정법이 깃들여 있다. 사람으로 치면 만인불성이다. 모두가 최고의 경지인 부처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세간법 즉 출세간법이고, 모든 현상계가 실상(實相)이므로 이치가 하나(理一)인 것이다. 이러함을 바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을 바로 봐야 한다는 말은 결국 중생이 실상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실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까닭은, 중생은 모든 사물과 대상에 항상 장애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중생은 사물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기분, 자기 편견에 의하거나, 혹은 주변의 사정과 정황에 따라 사물을 잘못 보거나 왜곡되게 보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아상(我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법화경>을 “제법실상(諸法實相) 개성불도(皆成佛道)”라 함은 <법화경>을 수행하여 제법실상을 깨달으면 모두 불도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제법(諸法)이라 함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말하며,

실상(實相)이란 본래 성품의 진실한 모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상이란 모든 것의 본래 근본성품이니, 곧 법신불(法身佛)의 자리다.


<법화경>은 제법실상의 도리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경전이기에 제법실상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곧 <법화경>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다른 둘 셋은 없다.

<법화경> 사구게에 이 뜻을 함장하고 있으니,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 모든 법은 본래부터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 항상 스스로 적멸의 형상이니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 - 불자가 수행해 이러한 도리를 알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 - 오는 세상에 성불하리라.


모든 법은 본래부터 누가 짓지 아니해도 항상 스스로 적멸의 모양이라 함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드러내는 말이다. 세상 있다는 모든 것이 항상 스스로 법신불(法身佛)의 모습임을 관하여 닦아 행하면 반드시 성불한다는 말이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