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대표적인 기능중에 하나가, 바로 느끼는 기능이다.
우리는 느낀다.
수많은 것들을 느낀다.
차가운 것, 뜨거운 것, 부드러운 것, 좋은 것, 싫은 것 등등....
몸과 마음으로 수많은 것들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또한 우리는 느낌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그래서 타인을 판단할 때 주로 첫 느낌이 크게 좌우한다.
느낌으로써,
사물과 타인을 판단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을 만나면 아주 산뜻한 반면,
또 어떤 사람을 만나면 아주 칙칙하고 시꺼멓고 어두운 느낌을 받는다.
대개 겉모습이야 속일수 있지만,
그 풍겨나는 에너지로 인한 느낌은 속일 수가 없다.
이렇듯 마음은 수많은 것을 느끼는 기능이 있다.
나, 또는 영혼이 느낀다라고 착각하는 부류가 있다.
"나"라는 것의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영속성/변화없음/영원함이다.
변한다면 그것은 곧 "나"가 될 수 없다.
느낀다라는 것은 곧 변화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나"가 있다면,
영원해야 하므로 느낄 수가 없다.
또한 영혼도 역시 "나"와 똑같은 개념이다.
이럴 적 내 영혼과 지금의 내 영혼을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릴적 영혼과 지금의 영혼을 다르다고 여기는 중생은 없다.
그렇다면 그건 영혼이 두개거나 여러개라는 것인데, 그렇게 주장하는 중생은 없다.
중생들은 단 하나의 영혼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말하는 그 "영혼"이라는 것은 "나"라는 개념과 똑같은 의미이다.
나=아트만=영혼
다 같은 개념이다.
느낌.....
"나" 또는 "영혼"이 느끼는 게 아니고,
"마음"이 느끼는 것이다.
마음은 끝없이 흐르면서 변화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걸 인식하고, 생각하고, 느낀다.
근데 중생들은 이렇듯 마음이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을 모르고,
영원한 "나" 또는 "영혼"이 있어서 그게 느끼고 인식하고 생각하는 줄 착각하고 있다.
내 영혼이 괴로워....
이것도 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이다.
영원한 영혼, 변하지 않는 영혼이라면 어찌 괴로움을 느낄 수 있으리요?
변한다면 그건 영원하지 않은 것이고, 그렇다면 그건 단일한 하나의 영혼도 아닌데...
영혼이 몇개란 얘긴데, 이게 말이 되나????
중생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정신적인 믿음들은 모조리 다 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영혼이 있어서 그게 괴로운게 아니고,
내 마음 속에 괴로운 느낌이 발생한 것이다....라고 해야 옳다.
마음 속에 괴로운 느낌이 계속 있는 한, 마음도 역시 괴로울 수 밖에 없다.
어찌됐건,
마음은 느끼는 기능이 있다.
느낌의 범위는 굉장히 광범위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크게 세가지 느낌으로 분류하셨다.
1. 즐거운 느낌
2. 괴로운 느낌
3.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덤덤한 느낌
부처님께서는 왜 이렇게 세 종류의 느낌으로 분류하셨을까?
이걸 곰곰히 생각해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주로 인간의 행복과 불행에 촛점을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음 속에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게 있는데,
그것이 바로 번뇌이다.
그 번뇌가 어디에서 생겼는가를 핵심적으로 파헤쳐보이신 분이 부처님이시다.
그래서 느낌도 역시 번뇌를 일으키는 세 종류로 나뉘어서 설명하셨구나..라는 걸 알 수 있다.
1. 즐거운 느낌은 <탐욕>이라는 번뇌를 일으킨다.
2. 괴로운 느낌은 <분노>라는 번뇌를 일으키게 한다.
3.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덤덤한 느낌은 <무명>이라는 번뇌를 일으킨다.
느낌을 관찰할 때는
먼저 광범위한 느낌 전체를 다 느끼고 관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 세가지 느낌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하여튼 뭔가 좋고, 끌리는 그런 상황이 되면 즐거운 느낌이 피어오른다.
음란 사진이나 음란 동영상을 보면 확실히 알게 된다.
괴로운 느낌을 받으면 저항하고 피하고 싶어진다.
모르거나 저항하기 힘들면 두려움이 생기고,
알거나 자기보다 못하거나 또는 만만하면 분노가 생긴다.
두려움이나 분노는 둘다 싫어서 그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느낌 때문에.
좋은 느낌은 탐심을 일으키고,
싫은 느낌은 진심을 일으키고,
무덤덤한 느낌은 치심을 일으킨다.
왜 무덤덤한 느낌이 치심을 일으키는가?
치심이란 뭘까? 먼저 이걸 먼저 알아야 한다.
치심이란 곧 무명을 뜻한다.
치심이란 곧 어리석은 마음이란 걸 의미하므로...
그래서 십이연기법에서 무명 대신 치[痴]라고 쓴 곳도 있다.
치-->행-->식....이런 순으로..
치심, 즉 무명이란,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여기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 무덤덤한 느낌을 "나"로 여긴다.
그래서 치심, 즉 무명이라는 번뇌를 일으키게 한다.
느낌으로 고요하고 평온한 그 느낌을 느꼈을 때,
그 평온하고 고요한 느낌을 "나"라고 여기는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은 왜 화가 날까?
바로 그 평온하고 고요한 나라는 "느낌" 그걸 나라고 여겼는데,
그것이 방해받아 평화가 깨졌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막연하게 "나"라는 것이 내면에 있는데,
마치 있는 듯이 느껴지고,
또 그게 고요하게 아무런 작용을 안하고 적막하게 있는 듯이 느낀다.
그래서 마치 그게 영원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무명이다.
그것은 "나"가 아니고,
그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무덤덤한 느낌일 뿐이다.
어찌됐건,
우리와 같은 중생들은 이 세가지 느낌에 지배를 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느낌이 뭔지, 무슨 기능을 하는지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래야 느낌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고,
느낌에 지배를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14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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