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열반경의 열반사덕 상락아정을 제대로 이해하자. 이걸 잘못 이해하면 패가망신한다. 常樂我淨

수선님 2019. 9. 22. 12:58

 

열반경(대반열반경)에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이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는 용어를 잘못 이해해서

중생들이 더더욱 자아에 집착하게 만드는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곳이 한국에 수두룩하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잘못 가르치고, 잘못 이해해서,

기존 중생들과 똑같이....즉 기존의 사고방식과 똑같이 영원한 "나"라는게 있는 줄 안다.

 

 

이것처럼 멍청하고 어리석은 꼴이 어디에 있을까?

 

 

이건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럴려면 뭐하러 불교를 믿고, 뭐하러 수행을 하는가? 기존과 똑같은 걸....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나"로 여긴다면,

여전히 집착은 강화되고 여전히 해탈할 수가 없게 된다.

 

 

"나"라는 것이 모든 집착의 뿌리이며, 고통의 근원이다.

 

 

중생들은 기필코 이 나/자아/에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절대 못버린다. 깨닫기 전에는......

 

 

그래서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오해하는 문제가 허다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이 나라는 생각...나가 있다는 이 생각.....이 고정관념이 진짜 고통을 일으키는 주범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라는 건 본래 없다.

 

 

동국역경원에서 제공하는 [대반열반경]의 내용을 인용하여, 각 부분을 설명한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이 내가 없다는 생각을 잘 닦는도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내가 없다는 생각을 닦을 뿐 아니라 그 밖에 다른 생각도 닦으니, 괴롭다는 생각, 무상하는 생각 등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사람이 술 취하면 마음이 현란하여 산이나 강물이나 성곽·궁전·해·달·별 따위를 볼 적에 그것들이 모두 빙빙 돌 듯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괴로운 생각·무상한 생각·내가 없다는 생각 등을 닦지 않는 이런 사람은 거룩한 이[聖者]라 할 수 없나니, 항상 방일하여 생사에 헤매는 탓입니다. 세존이시여,그러하므로 저희들은 이런 생각들을 잘 닦나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을지어다. 너희가 말한 술 취한 사람의 비유는 글만 알고 이치를 모르는 것이다. 이치는 어떠한가. 그 취한 사람이 해와 달 따위를 볼 적에 돌지 않는 것을 도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니, 중생도 그러하여 모든 번뇌와 무명에 가리워져서 뒤바뀐 마음을 낼 적에,

 

 

나에게 대하여 내가 없다 생각하고,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생각하고, 깨끗한 것을 부정하다 생각하고, 즐거운 것을 괴롭다 생각하는 것이니, 번뇌에 가리웠으므로 그러한 생각을 내거니와,마치 술 취한 사람이 돌지 않는 것을 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라.

 

 

나[我]란 것은 곧 <부처>란 뜻이고,

항상하다[常]는 것은 <법신>이란 뜻이고,

즐겁다[樂]는 것은 <열반>이란 뜻이고,

깨끗하다[淨]는 것은 <법>이란 뜻이니라.

 

 

너희 비구들은 어찌하여 나란 생각이 있으면 교만하고 잘난 체하여 생사에 해맨다고 하느냐.

 

 

위에서의 말씀처럼, 상락아정(常樂我淨)은 크게 속제의 상락아정(常樂我淨)과 진제의 상락아정(常樂我淨), 두 종류가 있다.

중생들의 착각/전도몽상인 사전도의 상락아정(常樂我淨)과 열반사덕으로써의 상락아정(常樂我淨), 이 두 종류이다.

이걸 제대로 구분해서 이해해야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진제의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위에서의 부처님 말씀처럼

상=법신, 락=열반, 아=부처, 정=법.....이 의미다. 아(我)의 의미는 참나/진아 이런게 아니다.

 

 

부처, 법신, 열반, 법....이 네가지는 다 같은 뜻이다.

부처가 곧 법신이며, 법신이 곧 열반이며, 열반이 곧 최고의 다르마(法)이다.

 

 

진제는 곧 空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것이 곧 부처님이며, 법신이며, 열반이며, 청정한 법이라는 뜻이다.

열반은 변화가 없기에 항상하며, 그러므로 즐거움이고, 그것이 곧 부처/불성이며, 텅비어 청정하기에 깨끗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열반사덕인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뜻이다.

 

 

중생들이 알고 있는 그런 일반적인 개념의 "나"가 아니고,

진제의 상락아정(常樂我淨)은 공 그 자체...즉 열반을 의미한다. 그것이 곧 공이다.

 

 

그러므로 공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상락아정(常樂我淨)에 대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중생들이 이 열반사덕을 철저하게 착각하여 "진아"니, "참나"니...이런 헛소리들을 해댄다.

 

 

너희들이 말하기를 우리도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다는 생각들을 닦는다 하지만, 그 세 가지 닦는 법을 말하리라. 괴로운 것에 즐겁다는 생각을 내고 즐거운 것에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 뒤바뀐 법이요, 무상한 것에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고 항상한 것에 무상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뀐 법이요, 내가 없는 것에 나라는 생각을 내고 나에게 내가 없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뀐 법이요, 부정한 것에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고 깨끗한 것에 부정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뀐 법이니,

이렇게 네 가지 뒤바뀐 법이 있으므로 사람이 법을 옳게 닦을 줄 모르느니라.

 

 

위에서의 말씀처럼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열반사덕의 뜻을 먼저 알게 아니라, 사전도(네가지 전도몽상)을 먼저 알아야한다.

중생들은 모든게 변하는데도 변하지 않고 항상하다고 여긴다.

또한 중생들은 열반은 전혀 변화가 없는데도 열반은 무상하게 변한다고 잘못 알고 있다. 이런 말씀이다.

즉, 중생들은 속제와 진제를 전혀 알지 못하고 꺼꾸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진제가 곧 열반이다.

 

 

너희 모든 비구들이 괴로운 법 속에서 즐겁다는 생각을 내고 무상한 속에서 항상한 생각을 내고 내가 없는 속에서 나라는 생각을 내고 부정한 속에서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세간에도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고, 출세간에도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거니와 세간법은 글자만 있고 뜻이 없는 것이요, 출세간법은 글자도 있고 뜻도 있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세간법에는 네 가지 뒤바뀜[사전도]이 있으므로 뜻을 알지 못한다 함이니라.

 

 

세간에서는 중생들이 착각하여, 나도 있고, 항상하고, 깨끗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겨우 그냥 의미없는 소리란 의미다.

출세간법은 곧 해탈을 의미하는데, 해탈은 부동의 상태이므로 항상하며 청정하다. 그것도 곧 불성을 의미한다.

뭔가 어떤 실체가 있어서 청정하고 항상한게 아니고, 텅 비어 있기에 청정하고 항상하다는 의미다. 변할 것 자체가 없으니까...

 

 

무슨 까닭이냐.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뀜이 있는 탓이니, 세 가지가 뒤바뀐 연고로 세간 사람들은 즐거운 데서 괴로움을 보고 항상한 데서 무상을 보고, 나에 대하여 내가 없음을 보고, 깨끗한 데서 부정함을 보는 것이므로 뒤바뀌었다 이름하고, 뒤바뀐 연고로 세간 사람은 글자만 알고 이치를 알지 못한다 함이니라.

 

 

중생들은 열반을 괴로움으로 여긴다는 말씀이다. 왜냐면 중생들은 해탈을 자아의 소멸로 여기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자아를 깊이 사랑해서 그게 소멸한다면 그것은 곧 불행이라고 여긴다. 이게 전도몽상이다.

본래 공하여 자아는 없다. 그러므로 소멸될 자아는 없다. 나가 있다는 이 착각, 즉 전도몽상만 사라질 뿐이다.

 

 

무엇을 이치라 하느냐. 내가 없는 것은 생사요 나라는 것은 여래며, 무상이라는 것은 성문·연각이요, 항상한 것은 여래의 법신(法身)이며, 괴로운 것은 모든 외도들이요 즐거운 것은 열반이며, 부정한 것은 함이 있는 법이요 깨끗한 것은 부처님과 보살이 가지는 바른 법이니라. 이것은 뒤바뀌지 아니한 것이니, 뒤바뀌지 아니하였으므로 글자도 알고 이치도 안다 함이니라. 만일 네 가지 뒤바뀜을 멀리 여의려거든 마땅히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위의 부처님 말씀에서 또 상락아정(常樂我淨)뜻이 결론내어진다.

열반경에서의 열반사덕인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중생들이 알고 있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고, 진제를 의미한다.

그래서 속제와 진제를 모르면, 거의 죄다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된다. 왜냐면 부처님 말씀을 전혀 이해 못하기 때문이다.

 

 

위에서의 말씀처럼 열반사덕인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참나"니 "진아"니 이 따위를 말씀하신게 아니다.

 

 

열반=상락아정(常樂我淨)

열반사적인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열반을 의미한다. 이걸 명심하라. 그래서 열반사덕이다.

 

 

이 뜻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열반이 무엇인가?

공 그 자체가 열반이다.

 

 

그러므로 삼해탈문인 공/무상/무원(무작)이 곧 해탈문인 것이다.

 

 

공은 실체가 없이 텅 비어 있기에, 변할 수 있는 꺼리 자체가 없다.

그러므로 열반은 변화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실은 항상하다, 또는 변한다라고 따질래야 따질 수가 없다.

 

 

그런데 왜 열반은 항상하다고 표현하셨는가?

이것은 진제, 즉 열반을 속제의 방식으로써 표현하셨기 때문이다.

 

 

속제의 방식으로 열반을 따져보면, 전혀 변화가 없기에 항상하다고 표현하신 것 뿐이다.

그래서 진제속제를 구분해서 아는게 그렇게 중요하다.

 

 

또한 락[樂]도 역시 마찬가지다.

열반은 전혀 변화가 없기에 항상하므로 그것이 곧 즐거움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즐거움이란 중생들이 원하는 그런 즐거움이 아니다.

적멸/고요함의 즐거움이다.

즉 성인들만이 즐기는 즐거움을 뜻한다.

 

 

중생들은 이 적멸을 두려워하고, 기피한다. 중생들은 시끌벅적한 걸 즐거움으로 안다.

 

 

아[我]에 대해서 전혀 깨달음이 없는 자들이 그저 이 열반경을 보고 잘못 이해해서

이걸 "참나"니, "진아"니 이런 착각을 해대고 있고,

또 이런 잘못된 걸 널리 퍼트려서 중생들이 더더욱 길을 잃고 헤메게 만드는 죄를 짓고 있다.

 

 

위 열반경에 아[我]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듯이, 아[我]는 부처, 즉 불성을 의미한다.

부처라는 용어를 썼지만, 그것은 인격적인 존재를 의미하는게 아니고 부처의 성품, 즉 불성을 의미한다.

 

 

空이 곧 불성이다.

空에는 "나"라고 불릴만한 대상 또는 실체가 없다. 뭔가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空이 아니다.

 

 

깨달은 척하거나,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자들의 공통된 착각이 뭐냐면,

바로 이 空에 뭔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걸 "참나"로 여기는데,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이런게 바로 증상만이다.

 

 

정(淨)이란 청정하다는 뜻이다.

왜 청정한가?

 

 

텅비어서 허공과 같기에 청정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맑은 하늘이 청정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공하기에 청정한 것이다.

뭔가 있어서 그게 청정한게 아니다. 텅비어 있기에 청정한 것이다.

 

 

열반사덕인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걸 잘못 이해하고, 잘못 설명하는 곳이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는다.

 

 

열반사덕의 의미가 뭔가?

상락아정(常樂我淨)이 곧 열반의 네가지 특징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열반을 의미한다.

열반이란 곧 空이다.

 

 

공에는 그 어떤 실체가 없이 텅비어 있기에 변화가 없고,

변화가 없기에 무상하지 않아 항상하며

변하지 않기에 그것이 곧 즐거움이며,

그 부동의 상태가 바로 불성(我)이며,

텅비어 있기에 청정한 것이다.

 

 

열반사덕인 상락아정(常樂我淨)에서 아(我)는 "참나", "진아"를 뜻하는게 아니고,

텅빈 공...즉 불성을 의미한다. 위에서 부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은가.

 

 

공/열반/불성/진여에는 참나건 거짓된 나건 그런 것 따위는 없다.

그저 텅비어 고요할 뿐이다.

 

 

그러나 중생들의 자아/에고는 기필코 그 뭔가를 찾아서 그걸 "나"라고 여기려고 한다.

그게 무명의 특징이다.

 

 

"나"건 "참나"건 "진아"건 이런게 모두 없다면 뭐가 있는가?

 

 

그저 마음이 있을 뿐이다. 텅빈 마음과 흐르는 마음...

텅빈 진여심이건, 흐르는 생멸심이건간에 그 속에는 "나"라는게 없다.

 

 

그래서 마음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마음.....心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16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