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스님

Ⅱ. 원효의 화쟁사상

수선님 2019. 9. 22. 11:47

Ⅱ. 원효의 화쟁사상

 

 

사람들은 자주 다투고, 세상은 조용한 날이 적다. 흔히 나는 옳은데 당신을 그르다는 입씨름이 오가고, 격해지면 주먹이 나르고, 주먹이 대포로 바뀌면 전쟁이다. 누군들 평화와 화해를 원치 않으랴만, 자기 고집을 꺾기는 참으로 어렵다. 백가의 서로 다른 논쟁의 화해, 이것은 사람들의 희망이며 과제다.

 

 

원효가 살았던 7세기는 갈등과 전쟁의 시대였다. 한반도는 전쟁의 와중에 휩싸여 있었고, 사람들은 신분의 굴레로 해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고구려에서는 불교와 도교 사이에 마찰이 있었고 7세기 후반 신라 불교계 안에서도 대립과 논쟁이 없지 않았다. 그 무렵은 화엄과 법상 간의 논쟁이 있었고, 법상학자들 안에서도 서명학파와 자은학파 간의 토론이 있었다. 空有의 논쟁도 불교계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과제였다.

 

 

원효는 요동에서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간첩으로 오해받아 도당유학의 꿈이 무산되는 경험을 겪었고, 당나라 군영에서 보낸 군사 암호문서를 해독해서 위기에 처한 신라군을 구하기도 했으며, 불교와 도교와의 갈등으로 인해 남족으로 망명해 온 고구려의 고승 普德을 찾아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국가에서 개최하는 백고좌회에 추천을 받고도 그를 백안시하는 사람들의 참소로 끝내 참석하지 못한 적도 있으며, 강론을 위해 준비했던 소중한 원고를 도적 맞기도 했고, 송사로 인해 몸을 여러 곳에 나타내야 할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원효는 그 모든 분열과 갈등을 포용하는 화해의 길을 택했고, 화쟁의 사상과 방법을 제시했다. {십문화쟁론}은 그의 화쟁사상을 펼쳐 보인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 유명하다. 그는 "백가의 이쟁을 화합하여 지극히 공평한 불의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훗날 화쟁국사에 추봉되는 명예를 누렸다. 서당화상비문에서도 {십문화쟁론}을 강조해서 서술했다.

 

 

그 중에서도 {십문화쟁론}은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에는 원음에 의지하였으나, ……(마멸)…… 비처럼 흩뿌리고, 부질없는 공론이 구름처럼 분분하였다. 혹자는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설은 그럴듯하나 타인의 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면서, 큰 강물과도 같이 많은 지류를 이루었다.……(마멸)…… 산을 버리고 골짜기로 돌아간 것과 같고, 有를 싫어하고 空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 비유컨데, 청색과 쪽풀은 본체가 같고 얼음과 물은 근원이 같은데, 거울은 모든 형상을 받아들이고, 물이 수천 갈래로 나누어 지는 것과 같다.……(마멸)…… 융통하여 서술하고 그 이름을 {십문화쟁론}이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이를 칭찬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모두 좋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훌륭한 논술이라고 찬양했다는 {십문화쟁론}, 이 명저도 세월의 허망한 바람에 흩어지고 지금은 겨우 3판 만이 해인사에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화쟁의 논리와 방법이다. 이 점에 착안한 연구는 박종홍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그는 화쟁의 논리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개합과 종요, 립파와 여탈, 동리와 유무, 리변이비중, 일미와 절언 등에 관해 논의했다. 원효의 진리 탐구방법은 개합의 논리로써 일관한다. 원효의 논리는 개합으로서 종요를 밝히는 화쟁의 논리다. 일미 평등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되살려져 허용된다는 입파, 여탈, 허, 부허가 자유자재한 원효의 화쟁 논리다.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요, 이변을 멀리 떠날 뿐만 아니라, 중도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화쟁의 논리다. 화쟁 논리의 진의는 절언지법絶言之法에 있다. 이상은 박종홍이 밝히고 있는 원효의 화쟁 논리다.

 

 

금 효 또한 원효의 화쟁 논리에 대해 언급했다. 그에 의하면 원효 철학의 의의는 단적으로 상반된 두 세계를 묘합하는데 있음이 틀림없고, 이런 사유의 논리를 스스로 융이이불일[融二而不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원효의 화쟁정신이란 두 가지를 융합하나 하나로 획일화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좌등번수는 원효의 화쟁 논리가 무이이불일[無二而不宇一]이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했다. 원효의 논리는 양자택일이나 변증법적인 통일의 논리와는 다르다. 원효는 [융이이부일], 리변이비중[離邊而非中], 묘계환중[妙契環中] 등의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원효는 유무, 입파, 개합, 리사, 일다, 동리 등 상반된 두 개념을 대립이나 모순으로 파악하기보다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의 논리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양면긍정이나 양변부정까지를 포함하는 사구四句의 논리로 화쟁을 시도한다. 동이同異에 관한 원효의 설명을 예로 들어보자.

 

 

不能同者 卽同而異也

不能異者 卽異而同也

同者 辨同於異

異者 明異於同

明異於同者 非分同爲異也

辨同於異者 非銷異爲同也

良由 同非銷異故 不可說是同

異非分同故 不可說是異

但以 不可說異故 可得說是同

不可說同故 可得說是異耳

 

 

원효에 의하면, 동同과 이異도 상망相望하고 상조相照하는 관계일 뿐 평행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견쟁론異見諍論이 일어날 때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원효는 이 경우 비동비이이설非同非異而說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若諸異見諍論興時

若同有見而說則異空見

若同空執而說則異有執

所同所異彌興其諍

又復兩同彼二則自內相諍

若異彼二則與二相諍

是故非同非異而說

非同者 如言而取 皆不許故

非異者 得意而言 無不許故

由非異故 不違彼情

由非同故 不違道理

於情於理 相望不違

 

 

살다보면 인정과 도리의 문제로 고민할 때가 많다. 우리는 자주 합리적이라는 말로 재단하려 하지만, 인정없는 세상은 분명 삭막하다. 어떻게 상대방의 정에도 도리에도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까. 원효는 [무리지지리無理之至理 불연지대연不然之大然], [묘계환중妙契環中]이라고 말한다. 앞에 인용한 원효의 비동비이이설은 시기방편識機方便과 관련하여 말한 것이다. 원효는 어떻게 양면부정과 양면긍정의 논리를 적용하는지 그 예를 보자. 장님들이 모여서 코끼리를 만져 보고서 제 각각 코끼리를 설명하고 있다. 코끼리의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는 장님은 없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코끼리를 설명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곧 원효는 여피맹인 각각설상수불득실 비불설상[如彼盲人 各各說象雖不得實 非不說象]이라고 했다. 또한 원효는 불성에 관한 제설을 여섯가지로 분류하여 소개한 다음, 그 제설은 모두 옳기도 할 뿐만 아니라 모두 그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음 설명이 그것이다.

 

 

諸師說 皆是皆非

所以然者 佛性非然非不然故

以非然故 諸說悉非

非不然故 諸義悉是

 

 

佛性之  正是一心

一心之性 遠離諸邊

遠離諸邊故 都無所當

無所當故 無所不當

是謂非然 非不然義 所以諸說 皆非皆是

 

 

언쟁에는 우선 말이 문제다. 말은 본래부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그러기에 손가락일랑은 보지 말고 달을 보면 그만이다. 원효는 아기언설 이시절언지법 여기수지 이시리지지월[我寄言說 以示絶言之法 如寄手指 以示離指之月]이라고 말했다. 말꼬리를 잡는 태도는 옳지 않다. 말이 내포한 뜻을 살려서 이해하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원효는여언이취 소설개비 득의이담 소설개시 [如言而取 所說皆非 得意而談 所說皆是]라고도 했다. 말꼬리를 잡고 보면 상대방의 어떤 견해도 허용하기 어렵다. 뜻을 살려서 듣는다면 허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

 

 

원효의 화쟁방법에는 전개와 통합이 자유롭고 긍정과 부정에 구애됨이 없었다.

 

 

원효의 저술에는 총이언지 별이론지'摠而言之', '別而論之' 등이 자주 보인다. 이처름 그는 통합과 전개의 방법을 잘 구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원효의 진리 탐구 방법은 개합의 논리로서 철두철미 일관되어 있다"고 지적한 이도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곧 연기다. 그래서 전체와 부분은 종합적인 고리를 이루면서 있다. 곧 화엄교학에서 말하는 총과 별은 더불어 있고, 하나와 전체도 같이 있게 된다. 따라서 어떤 일에도 '산을 보지 못한 채 골짜기에서 헤메거나 나무를 버리고 숲속으로 달려가는 격'이 되어서는 안된다. 전개한다고 번거로워지는 것도 아니요, 합친다고 좁아지는 것도 아니다. 곧 개이불번합이이불협'開而不繁合而不狹'이다. 또한 개불증일 합불감십'開不增一 合不減十' 즉, 전개한다고 하나를 더 보태는 것도 아니고, 합친다고 해서 열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통합과 전개의 묘술이다. 합론일관' 合論一觀'이요 개설십문'開說十門'이다. 통합해서 논하면 一觀이요 열어서 말한다면 열개의 문이다. 원효는 이처럼 통합과 전개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또한 수용과 비판, 즉 긍정과 부정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긍정과 부정에 아무 구애가 없기에 입파무애(立破無碍), 긍정한다고 얻을 것이 없고 논파한다고 잃을 것도 없다." 이 또한 원효의 가르침이다.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거나 설명하거나 주장할 때, 자신의 입장이나 위치, 방향 등에 얽매여 있기 일쑤다.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자신의 안경으로 보고, 자기가 가진 잣대로 재며, 자기 중심으로 인식하려 든다. 이로 인해 아집과 아상과 교만이 생겨난다. 원효는 말했다. "종래에 {起信論}을 해석한 이들이 많지만 진정으로 그 뜻을 밝힌 사람은 적다"고.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각기 익힌 것을 지켜 문구에 구애되고 능히 마음을 비워서 뜻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불능허회이심지(不能虛懷而尋旨) 이 때문에 논주의 뜻에 가까이 하지 못한다. 혹 근원을 바라보고서도 헤매며 떠돌고 혹망원이미류(或望源而迷流), 혹은 잎을 붙잡고 줄기를 잃어버리며 혹파엽이망간(或把葉而亡幹), 혹은 옷깃을 베어 소매를 깁고 혹할령이보매(或割領而補袖), 혹은 가지를 꺾어 뿌리에 댄다 혹절지대근(或折枝帶根).

 

 

대상의 세계를 아전인수격으로 곡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심과 무념의 상태가 필요하다. 곧 마음놓는 것이고 허심탄회해지는 것이다. "무념을 얻으면 상대방과 더불어 평등해진다". 이 또한 원효가 주목했던 {기신론}의 귀절이다. 잣대 밖의 더 큰 것을 재기위해서는 고정의 잣대를 버려야한다. 이변을 벗어나야 방외에 노닐 수 있다. '마음을 비웠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어도 실제로 그렇게 되기란 참으로 어렵다. 편협한 생각에 얽매여 일방적으로 한 면만을 고집하거나 한 가지 입장만을 절대화하고 독단화하면, 이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이런 사람들은 갈대 구명으로 하늘을 보는 격이라고 원효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彼自少聞 專其狹見 同其見者 乃爲是得 異其見者 咸謂脫失 猶如有人 葦管窺天 謂諸不窺其管內者皆是不見蒼天者矣 是謂恃小誹多遇也

- 편협한 사고는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못한다. 고정된 자기 견해에만 열광적으로 집착함으로 자기 견해와 다른 이견에 대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기견자 감시탈실異其見者 咸是脫失이라고 한것이 그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하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 다른 것도 아니다. 불일(不一)이기에 모든 방면에 통하고, 불이(不異)이기에 어떤 길도 서울로 통한다. 원효가 토로한

 

 

由非一故 能當諸門

由非異故 諸門一味

 

 

라는 교훈이 이 뜻이다. 인생의 길이 어찌 하나 뿐이랴 고속도로도 있고, 뱃길도 있으며, 오솔길도 있다. 어찌 어느 한 길만을 옳다고 하랴. 어느 길(諸門)도 행복의 동산에 이를 수 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도, 인생의 삶은 삶 그것이다.(非異). 어떤 인생의 길을 걸어도 그것은 한 맛이다(諸門一味).

 

 

佛道廣蕩 無碍無方 永無所처而無不當 故曰一切他義 咸是佛意 百家之說 無所不是 八萬法門 皆可入理

 

 

當知諸佛法門非一 隨其所說而無障碍而不錯亂

 

 

일체(一切)의 타의(他意)가 모두 불의(佛意)라고 눈 크게 뜰 때, 도교도 유교도 그에겐 이미 타의(他義)가 아니었을 것이다.

 

 

 

 

 

 

 

 

 

불종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01193704043/12410516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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