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십지
화엄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보살수행의 경지를 단계적으로 설명한 '십지품(十地品)'이다.
첫번째는 크고 큰 환희심을 내는 경지이다(환희지).
그것은 부처님과 보살들의 마음을 기억함으로써 생기는 종교적인 환희심이다. 크고 큰 환희심이 생기는 것은 '대자비를 우두머리로 삼기' 때문이다. '비심(悲心)은 지혜의 우두머리'라고 하듯이 대비심이 없으면 중생을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 항상 자비심을 가지고 불보살을 믿고 공경하며 스스로 부끄러운 줄을 알고 밤낮으로 좋은 공덕 쌓기를 서원하며 자신의 쾌락을 만족시키는 것을 전혀 구하지 않는 것이 환희지에 들어간 보살의 실천인 것이다.
두번째는 번뇌의 더러운 때를 버리고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경지이다(이구지).
여기에서는 삼취정계를 말하는데, 섭율의계(攝律儀戒), 섭선법계(攝善法戒),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섭율의계는 모든 악을 끊고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서 오계를 지키거나 10악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섭선법계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며, 섭중생계는 모든 중생을 보살펴 널리 이익을 주는 이타행이다. 특히 섭선법계에는 보시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말을 하며, 상대방을 이익되게 하고, 상대방과 같은 행동을 하는 사섭법(四攝法)이 포함되고 있다.
세번째는 빛을 발하는 경지이다(명지, 발광지).
여기에 들어가려면 10가지 깊은 마음이 필요하다. 깨끗한 마음, 씩씩하고 예리한 마음, 싫어하는 마음, 욕심을 떠난 마음, 물러나지 않는 마음, 견고한 마음, 매우 밝은 마음, 만족이 없는 마음, 훌륭한 마음, 큰 마음.
네번째는 지혜의 불이 번뇌를 태워버리는 경지이다(염혜지).
여기서는 사정근, 사여의족, 팔정도를 닦을 것을 요구한다.
보살이 이 제4지에 머물면 천억의 악마도 청정한 도를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투명한 구슬이 진흙 속에 빠지거나 비를 맞아도 결코 맑고 깨끗함을 잃지 않는 것과 같이, 제4지에 머물면 그 지혜도 청정해져서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청정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섯번째는 끊기 어려운 무명을 끊는 경지이다(난승지).
이 단계에 오르면 먼저 고집멸도의 사성제, 세제(世諦), 제일의제(第一義諦)등 갖가지 진리를 알게 된다. 이 경지에서 연마한 지혜와 선근은 모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이 난승지에 머무는 보살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에 뛰어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염자(念者), 지혜로써 모든 일들을 결정할 수 있으므로 지자(智者), 계율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굳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견심자(堅心者), 선정을 잘 닦기 때문에 신통을 얻은 자(득신통자)라고 불린다.
여섯번째는 반야의 지혜가 나타나는 경지이다(현전지).
이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0가지 평등을 얻어야만 한다. 일체법은 성품이 없고, 모양이 없고, 태어남이 없고, 멸함이 없고, 본래 청정하고, 쓸데없는 말이 없고, 취하거나 버리지도 않으며, 떠남이고, 꿈과 같고, 있고없음이 둘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이 제6지에 머무는 보살은 12연기를 관함과 동시에 "삼계가 허망하여 오직 이 마음이 지은 것이요, 12인연도 다 마음을 의지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유심게'를 관한다.
일곱번째는 성문, 연각의 이승의 경지를 멀리 떠날 수 있는 경지이다(원행지).
제6지에서 제7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10가지 묘한 행을 실천해야 한다.그리고 10바라밀을 갖추어야 한다.
여덟번째는, 수행이 완성되어 더이상 흔들림이 없이, 저절로 보살행을 행하는 경지이다(부동지). 심행(深行)의 보살이라 부르는데, 이 보살은 모든 세간의 모습이나 탐욕과 집착을 벗어났으며, 성문, 연각과 같은 수행자가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는 부동의 경지에 머물 수 있다. 이 부동을 지탱해주는 것은 견고한 선정의 힘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홉번째는, 지혜가 뛰어나서 어떠한 곳에서도 가르침을 설할 수 있는 경지이다(선혜지).
이 제9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0가지 지혜가 필요하다. 부처님이 설한 진리의 창고 즉 경장(經藏)에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장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제9지에 머무는 보살은 중생의 마음과 능력과 욕망과 각각 다른 청갈자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또한 여기에 머무는 보살은 네 가지 걸림없는 말솜씨를 지닌다. 가르침에 관해 막히지 않고, 가르침의 내용을 잘 알아 막히지 않고, 여러 가지 언어에 능통하여 자유자재하게 구사하고, 중생을 위해 자유롭게 설법하는 것이다.
열번째는 지혜의 구름이 널리 감로의 비를 내리는 경지이다(법운지).
초지에서 넓고 큰 서원을 발하고,
제2지에서 계율을 지키며, 제3지에서 선(禪)을 닦고,
제4지에서 도로지 도행(道行)을 닦는다.
제5지에서 방편의 지혜를 연마하고,
제6지에서 깊고 깊은 인연을 알며,
제7지에서 넓고 큰 마음을 닦고,
제8지에서 세간을 장엄하는 신통력을 발하며,
제9지에서 지혜의 빛으로 일체를 비추고,
제10지에서 모든 부처님의 큰 법의 비를 받는다고 한다...
-이상은 <화엄경이야기> 카마타 시게오 지음, 장휘옥 옮김.
십지품
{화엄경}의 <십지품>에서는 앞에서 제3회 4회 5회 등에서 살펴본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을 통틀어 포섭하는 십지보살행이 시설된다. 이 십지보살행은 화엄이 일승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십지법문은 타화자재천궁에서 이루어진다. 금강장보살이 보살대지혜광명삼매에 들었다가 십지를 설했으니 여기서 지(地)란 지혜의 지이다. 십지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환희지(歡喜地:기쁨에 넘치는 계위)
이구지(離垢地:번뇌의 때를 벗은 계위)
발광지(發光地:지혜의 광명이 나타나는 계위)
염혜지(焰慧地:지혜가 매우 치성한 계위)
난승지(難勝地:진제와 속제를 조화하여 매우 이기기 어려운 계위)
현전지(現前地:지혜로 진여를 나타내는 계위)
원행지(遠行地:광대한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계위)
부동지(不動地:다시 동요하지 않는 계위)
선혜지(善慧地:바른 지혜로 설법하는 계위)
법운지(法雲地:대법우를 비내리는 계위)
환희지는 큰 서원을 내어 점점 깊어지는 까닭이다(십대원).
이구지는 모든 파계한 송장을 받지 않는 까닭이다(십선업).
이구지에서는 보살이 성품 자체에 일체 나쁜 것이 없어서 나쁜 업은 일체 지을 생각조차 없으므로 십선업도를 닦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바다가 송장이나 나쁜 오물을 속에 담겨 두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는 공덕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 속에 일체 번뇌를 담고 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화가 날 때 속으로 화를 참고 있다면 이는 속에 번뇌를 담고 있는 것이 되겠다. 그렇다고 남에게 화풀이를 해서 화를 해소시키라는 것은 아니다. 화 자체에 자성이 없어서 아예 화낼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 이치가 터득이 안 돼서 그래도 화가 난다면 자비관을 닦아가도록 경에서 교설하고 있다.
발광지는 세간에서 붙인 이름을 여의는 까닭이다(삼법인). 세간의 유위법을 잘 관찰하면 그 유위법이 좋아할 것이 아닌 줄 알게 되므로 가치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염혜지는 부처님의 공덕과 맛이 같은 까닭이다(삼십칠조도법). 보리를 돕는 수행법은 어떤 것을 닦든지 다 부처님 세계에 도달되는 일승 수행법이 된다.
난승지는 한량없는 방편과 신통과 세간의 보배들을 내는 까닭이다(사성제). 이 난승지는 이기기 어려운 단계를 넘어서는 자리이다. 세간지와 출세간지가 하나 되어서 중생을 위해 갖가지 방편을 시설하고 있는 자리이다. 모든 고통을 여의고 열반세계로 인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현전지는 인연으로 생기는 깊은 이치를 관찰하는 까닭이다(12연기). 우리 존재는 모두 상의상관의 인연 속에 있다. 이 연기의 진리는 불교의 근본진리로서 그 순역관을 통해서 생사의 고통을 해결하고 지혜를 증득하게 된다. 이 또한 다 마음에 의해서 생겨나는 깊은 도리를 관찰하는 자리이므로 바다가 깊고 깊어서 바닥까지 다다를 수 없는 데 비유되고 있다.
원행지는 넓고 큰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잘 관찰하는 까닭이다(10바라밀). 모든 바라밀로 부처님의 광대한 세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부동지는 광대하게 장엄하는 일을 나타내는 까닭이다(무생법인).
선혜지는 깊은 해탈을 얻고 세간으로 다니면서 사실대로 알아서 기한을 어기지 않는 까닭이다(사무애변).
법운지는 모든 부처님 여래의 큰 법의 비를 받으면서 만족함이 없는 까닭이다(대법우).
그래서 끝없는 원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에서는 이상의 십지보살 행과로서 <십정품> 내지 <이세간품>의 11품에서 등각과 묘각의 경계를 설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보살도는 {화엄경}이 일승보살도를 펼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게 한다. 십지보살도는 회삼귀일에 바탕한 일승보살도로서 보살도의 정화로 간주되어 왔던 까닭이 보이기 때문이다.
제5지에서 닦는 사성제는 처음 대승불교가 일어났을 때는 대승에서 자리매김하기를, 성문승이 주로 닦아가는 수행법이고 이 사성제를 통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되는 수행법이다.
제6지의 십이연기를 관하는 것은 소승에서 연각이 닦아가는 수행법으로서 역시 아라한과까지 도달된다고 한 실천법이다.
다시 말해서 삼승(三乘)이라고 할 때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을 말하는데, 성문승·연각승은 소승이고 보살승은 대승이다. 처음 대승불교가 일어날 때는 보살은 성문·연각과는 다르다고 하고, 대승은 소승을 비판함으로써 일어났던 것이다. 성문·연각은 아라한 정도의 깨달음밖에 성취할 수 없고 보살은 6바라밀행을 닦아서 부처가 될 수 있는 자로 보았다. 그때 성문과 연각이 닦는 대표적인 수행법이 사성제와 십이연기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이 두 수행법이 제5지와 제6지 계위의 보살이 닦는 수행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보살의 바라밀행은 다음 제7지 보살이 닦는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10바라밀이 교설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화엄경} 십지보살도는 회삼귀일에 바탕한 일승보살도로서 보살도의 정화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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