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趙州錄)

조주록 강해 19(92~93)

수선님 2019. 11. 3. 11:48

조주록 강해


원문출처


92. '누구에게 묻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앞뒤(前後)를 돌아보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앞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그만두고 너는 누구에게 묻느냐?”

앞뒤(前後)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나는 키가 작고 몸도 너무 왜소한데 상대는 엄청난 거구로 힘도 세어 보인다고 생각하면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겠죠.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돌팔매 하나 들고 무조건 이기겠다고 다짐하며 들이받으니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道)를 닦는 데에도 스님들은 가족, 친척과 모든 인연을 버리고, 수행 도중 시시각각으로 번뇌 망상이 들이닥쳐도 오로지 깨달아 중생구제 한다는 믿음(信) 하나 가지고, 반드시 깨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굳건히 하며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 질문은 '물불 가리지 않고 수행해 나갈 때는 어떻습니까?' 하고 물은 셈입니다. 그러자 조주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 것은 그만두고 그대는 누구에게 묻는 것인가?' 라고 되물었는데, 말의 의미가 조금 복잡해 보입니다.

​오직 견성(見性)하겠다는 굳센 믿음으로 수행하는 것은 매우 좋은 마음가짐이지만 결국 큰 도는 이런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용맹스러운 맹수처럼 저돌적으로 도(道)에 달려들어야 하지만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무상(無相), 무아(無我), 공(空)의 이치와 바로 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조주의 이 말은 '물불 가리지 않고 도를 닦는 것은 좋은데, 도는 그런 게 아니다. 나를 보라! 물불 가리지 않고 날뛰는 모습으로 보이는가? 일상 생활하는 마음으로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차 한잔 하지 않는가?' 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조주의 이 대답에는 보다 깊이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원래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 분별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높고 낮은 것도 없고, 앞뒤를 재고 돌아볼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스님은 앞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 사람에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제 '누구에게 묻느냐?' 라고 되물은 의미를 알아채겠습니까? 스스로를 돌아 보십시오. 조주선사도 가르쳐 주는게 없습니다.

​ 아직도 모르​겠으면 곰곰이 오직 마음으로만 의심해 보십시오. 그 스님도 여러분도 우선 그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남에게 물어볼 계제가 아닌 것입니다.

93. '가죽도 골수도 없다'

조주선사가 시중(示衆)하여 설했다.

“가섭(迦葉)은 아난(阿難)에게 전했는데, 달마는 누구에게 전했는지 말해 보라.”

한 스님이 물었다.

“2조가 골수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찌 됩니까?”

선사가 “2조를 비방하지 말라.”고 하고는 다시 말했다.

“달마대사가 또한 말하기를, ‘밖에 있는 자는 가죽을 얻고, 안에 있는 자는 뼈를

얻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안에 있는 자는 무엇을 얻었겠는가 말해 보라.”

한 스님이 물었다.

“골수를 얻은 도리는 무엇입니까?”

“가죽이나 알아내도록 해라. 내게는 골수마저도 없다.”

“무엇이 골수입니까?”

“그렇다면 가죽도 만져보지 못했구나.”

이 법문은 선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달마대사의 가르침(法)과 초기 선종의 진면목을 깊이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말대로 따라가지 말고 뜻을 잘 음미해 보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이며, 석가를 30여년간 곁에서 보필한 아난존자(阿難尊者, Ananda)가 가섭존자에게 '세존께서 금란가사 외에 무엇을 전해 주셨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가섭은 '아난아, 문 앞의 찰간대(刹竿臺)를 꺽어버려라!' 라고 한 마디 했습니다.

세존(世尊)으로도 불렸던 석가는 돌아가시기 전에 가섭존자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자신이 입던 옷(袈裟, 가사)과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바른 법(正法)을 가섭에게 전했다고 하는데, 아난은 가섭에게 이 가사 외에 어떤 법(法)을 전해 받았는지 묻는 것입니다.

통도사의 대웅전 지붕 위에는 지름이 약 70cm에 이르는, 청동으로 만든 큰 보물구슬(寶珠)이 있는데, 이 구슬의 윗부분에는 높이 50cm 가량의 길다란 쇠기둥(鐵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같은 쇠기둥을 찰간대(刹竿臺)라고 부르는데, 부처님이 천상에서 세상에 내려옴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가섭이 아난에게 ‘문 앞의 찰간대를 꺽어버려라!’ 라고 말한 것은 쓸데없이 바깥에서 구하는 마음을 없애고, 네 자신을 깊이 성찰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도 깊이 탐구해 보아야 합니다. 그 뒤에 아난은 계속 정진하여 마음의 눈을 뜨고 가섭존자의 법(法)을 이었으며, 인도에서 대대로 도(道)를 전해 받다가 제 28조(祖)인 달마대사는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 선종의 제 1조(祖)가 되었고, 2조 혜가에게 법을 전했다고 합니다.

달마대사가 제자들에게 법(道)를 전한 이야기는 '경덕전등록'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달마는 문인들을 모아놓고, 각자 얻은 바를 말하게 하였다.

​먼저 도부(道副)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버리지도 않음을 도(道)로 삼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너는 나의 가죽(皮)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總持)가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볼 때 한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음과 같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사대(四大)가 본래 공(空)하고 오온(五蘊)이 존재하지 않으니 한 법(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혜가(慧可)가 앞으로 나섰다. 혜가는 절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 섰다.

이에 달마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여기서 달마대사는 '혜가는 나의 골수(髓)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혜가는 그냥 달마에게 절 한번 하고 제자리로 가버렸는데 달마가 내 골수를 얻었다고 한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위 문답 속의 스님은 이것을 들어, '2조가 골수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조주선사는 왜 2조를 비방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또한 이 골수(骨髓)는 무엇을 뜻합니까? 골수(bone marrow)란 사람 뼈에서 적혈구 등 혈액 세포를 만드는 조직이라고 하는데, 사람 몸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禪)에서의 골수라면 바로 불성, 법신, 여래, 부처, 결국은 바른 깨달음을 마쳤다는 것을 상징한 말입니다. 이 깨달음의 성품(佛性)은 본래 모든 사람, 중생이 다 갖추고 있습니다. 별도로 바깥이나 안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재발견할 뿐입니다. 깨달을 자가 스스로 각성하여 깨달은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조주선사는 2조를 비방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달마대사는 도부에게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고 했고, 도육에게는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고 했는데, 조주선사는 '달마가 말하기를, 밖에 있는 자는 가죽을 얻고, 안에 있는 자는 뼈를 얻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에 있는 자는 무엇을 얻었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안팍이 어디 있고, 가죽과 뼈는 무엇입니까? 조주는 다시 자신의 가죽(껍데기)를 알아내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에게는 골수조차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제 제가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달마, 조주, 그 스님 모두 그냥 지옥에 쏜살같이 떨어졌다고 하겠습니다. 속고 속이는 모습이 그냥 가관입니다. 이를 알아채야 합니다.

​ 그 스님에게는 '가죽도 만져보지 못했구나'고 했는데 실제로 가죽이 있어서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도(道)에 있어서 무슨 가죽, 살, 뼈, 골수가 따로 따로 존재하겠습니까? 오직 마음이요, 부처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마음이고, 부처로 꽉 차서 너도 나도 부처이고, 앞으로도, 뒤로도, 위로도, 아래로도, 괴롭고, 힘들고, 슬프고, 기쁘고, 즐거운 것도 모두 마음임을 체득하여 부처대로 살아갑시다. 이것이 극락, 천당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바로 이 곳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법신(法身) 자리인 것입니다. 억!

'달마의 골수 혜가의 이마에 박혀 나풀대니

​조주는 눈먼 자라 앞에 두고 차 한잔 하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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