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을 닦기 위한 일곱 가지 중에서 ‘어머니임을 알아차리기’가 가장 어렵다.
이것이 생기지 않으면 다음 순서인 ‘은혜를 기억하기’등으로 이어지기가 불가능하므로,
‘어머니임을 알아차리기’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고 열심히 닦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곱 가지 인과법으로 보리심을 닦기 중에서 첫 번째인 ‘어머니임을 알아차리기’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일체중생 중에서 가장 가까운 친척이 이번 생의 어머니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보리심이 일어날 수가 없다.
공성 등의 논리들은 다양한 견해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그것을 깨우치기가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보리심을 닦음은 논리적인 것보다는 신심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제 마음이 이어져온 결과이다.
그 전의 흐름을 살펴가다 보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자마자 부터임을 알 수 있고,
또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음의 시작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와 같이 시작 없는 마음에는 끝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게되면 우리가 태어났던 생도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번 생에 어머니가 있는 것처럼
전생에 태생, 난생 등으로 태어났을 때도 어머니가 한 분씩 있었으며,
만일 우리가 백 번 태어났으면 백 명의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고,
천 번 태어났으면 천명의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없이 많은 생을 태어나는 동안 우리의 어머니도 그 숫자만큼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우리의 어머니가 많이 있었겠지만, 한량없는 일체중생 모두가 과연 우리의 어머니였을까’하는 의심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수많은 생명체로 태어났어도 태어났던 하나하나를 기억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무릇 다양한 생명의 종류를 헤아릴 수 없듯이,
우리는 이미 각기 무량한 숫자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무든 중생의 숫자보다 더 많이 태어났을 것이다.
태어날 때마다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고,
모든 중생들이 한 번씩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해서 어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대지의 흙을 작은 알로 만들어서 하나씩 전생의 어머니 숫자를 세면 그 알이 모자랄 정도라고 한다.
그와 같이 일체중생이 자기 어머니였던 것을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데
본인이 이런 저런 생명으로 태어난 적이 없었다는 등의 말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아니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번씩 반복해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와 같이 일체 중생이 나의 어머니 아닌 분이 없으므로
모든 중생이 나의 어머니임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해야 한다.
만약 전생에 어머니였다면 알 수 있어야 하는데
단지 본인이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머니가 아니었던 중생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떠올려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이지 일체중생은 우리의 친어머니였다.
이번 생의 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개로 태어나도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다른 경우는 오죽하겠는가!
또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어머니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아무리 낡았다 해도
과거의 색깔도 곱고 냄새도 안 나던 그 새 옷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이번 생의 어머니와 전생의 어머니들도 이와 같이 전혀 차이가 없음을 사유해야 한다.
작년에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 대해서 올해도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처럼
꾸준한 사유를 통해서 모든 중생들이 어머니임을 알아차리게 되면,
아주 작은 개미를 보더라도 저 개미가 어느 과거 생에 나의 어머니였고,
나의 모든 행복이 그 개미에게 달려 있었던 적도 있었음을 자세하게 마음에 떠올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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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이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나 자신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사람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방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생들 하나하나가 똑같이 내게 친절하고 사랑을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내 어머니나 어머니처럼 나를 돌보아 준 사람에게 느끼는 애정을 내 마음에 불러일으키면서
그 애정을 모든 중생을 향해 확장시켜야 합니다.
시작도 알 수 없이 먼 옛날부터 무한한 생애들을 윤회하는 동안
모든 중생들이 서로 관련되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을 때,
모든 중생들이 전생의 언젠가는 우리의 부모였을 것이고,
지금의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그들도 나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었을 것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동물의 세계를 살펴보면 우리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새끼들이 홀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어미 새는 새끼들을 날개로 감싸 안아 보호하고 먹이를 구해다 줍니다.
인간이 말하는 자비심을 어미 새가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행동 자체는 분명히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입니다.
새끼들은 전적으로 어미 새에게 의존하고 있어서
어미 새만이 그들의 유일한 보호자이며 의지할 대상이며 후원자인 것처럼 대합니다.
게다가, 어미 새는 새끼들을 돌보는데 아주 헌신적이어서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기꺼이 희생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중생들을 향해서 그런 정신을 길러야 합니다.
수많은 전생들에 대해 숙고해 보면,
모든 중생들이 언젠가 한번쯤은 우리의 부모가 되어
능력껏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보살펴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나면,
다른 중생들에 대해 강한 공감과 감사한 마음을 기르게 되고,
그 다음에는 그들에게 진정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친밀감을 느끼면,
그들이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와 상관없이
그들이 전생에 우리에게 베풀었던 친절함을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중생에게 진정한 친밀감을 느낀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이 친밀감도 점차로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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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無始)의 생애들을 고려하면 모든 중생들은 어느 한 시점에서
우리들의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친구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다른 존재와 관련짓고 진정한 의미의 연대감을 일깨워 북돋우는 방법입니다.
후손들을 양육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머니는 자식의 안전과 성장을 보장하기 위하여 무엇이든 한다는 것 입니다.
모든 중생들을 자신의 어머니로 여기는 것은,
전생과 내생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삶의 개념에 따른 것 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의식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환생의 가능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의식이란 오직 바로 앞의 의식에 기인하여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모든 존재를 여러분의 자애로운 어머니로 인식할 때,
자연스럽게 여러분은 그들에 대한 친근감을 느낄 것 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다른 존재들에 대한 애정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또한 자비심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핵심은 모든 중생들을 진심으로 가깝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모든 중생들을 자애로운 어머니로 여기는 것>과
<우리 자신과 다른 존재들의 근본적인 평등과 같은 권리가 있음>을 인식한다면,
그때 여러분의 내면에 진정한 자비심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직 그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는 진정한 염원을 지니게 될 것 입니다.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314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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