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철학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에 대하여

수선님 2019. 11. 17. 12:49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에 대하여 I*5) - ‘Tattva’의 두 의미

강성용(서울대)

【주제분류】인도철학 【주제어】인도철학, 냐야, 냐야쑤뜨라, ‘진리’, tattva 【요약문】인도철학 전통에서 사용되는 ‘진리’ 개념은 구체적인 지성사적 맥락이 거 세되어 그 의미가 파악되지 못한 채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인 도철학사에서 ‘진리’의 개념으로 다루어질 만한 여러 개념들의 맥락과 의미를 분석 하고, 철학사 안에서 다루어질 만한 개념들을 구분해 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인도 철학사에서의 가장 보편적인 ‘진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tattva’ 개념이 갖는 사 상사적 무게를 밝히고, 이 개념의 분석을 시작할 것이다. 이 작업은 형태론적인 분 석과 화용론적이고 개념사적 분석을 아우를 것인데, 결국 ‘tattva’의 두 가지 용례를 구분하고 명확하게 하고자 한다. ‘부사적 용례’에서는 이 용어가 어떻게 ‘그러함’으 로 이해되어야 하며,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응설의 입장에 상응하는 함축을 갖게 되는지를 밝힐 것이고 이를 토로 이 용어가 전통 중립적인 보편성을 갖게 되는 맥락을 설명할 것이다. ‘지시사적 용례’에서는 ‘그것임’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이 용 어가 왜 그리고 어떻게 다양한 외부세계의 상들을 넘어서는 통일적인 실체로서의 단일성을 가진 상을 가리키는 함축을 갖게 되었는지를 밝히게 될 것이다. 우빠니 샫(Upaniṣad) 전통에서 나타나는 우주와 소우주의 구조 동일성에 한 주장이 어 떻게 이 용어에 투되어 나중에 불교전통은 물론이고 바이쉐시까(Vaiśeṣka)의 존 재론 논의에서도 그 그림자를 드러내는지 밝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주로 ?냐야쑤뜨라?(Nyāyasūtra)와 ?냐야바샤?(Nyāyabhā ṣ ya)의 문헌자료 분석을 통해 이 루어질 것인데, 이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초기 냐야전통 안에 자리잡고 있음을 보 이면서 이 두 서로 다른 함의가 어떻게 구체적인 철학적 쟁점의 변화에 따라 다르 게 적용되고 있는지 밝힐 것이다. 이를 통해 아예 다른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할 다 른 ‘진리’ 개념들에 한 논의의 토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투고일: 10월 30일, 심사완료일: 11월 15일, 게재확정일: 11월 18일 * 이 논문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 아 수행된 연구임.(NRF-2007-361-AL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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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인도 고전에 한 번역이나 설명을 담은 책들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 는 표현이 ‘초월적’이라거나 ‘진정한’이라는 등의 수식어를 달고 나타나는 ‘진리’라는 말이다. 이렇게 ‘진리’ 개념 자체보다 더 모호한 개념을 섞는 일 은 종종 한국어로 옮기는 이들의 몰이해 때문이기도 하고, 자주 그 근거가 되는 불교 전래와 연관되는 한문번역(漢譯)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 ‘진리’라고 옮겨지는 인도 고전의 표현들은 원래 맥락 안에서는 구체 성과 구분 가능한 의미의 차이를 가진 개념들이어서 우리의 구체적인 이해 가 필요한 경우들이다. 인도철학 전통 안에서 나타나고 사용되는 ‘진리’ 개 념에 한 검토는 인도철학사에서 이루어진 많은 논의들의 구체적인 의미 와 함축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개념을 축으 로 삼아 이루어져 온 다른 많은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그리고 심지어 정 치적 활동을 이해하는 것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진리가 승리할지 니!”(satyam eva jayate.)라는 근 국가로서의 인도를 표하는 슬로건이라거 나 “satyāgraha”(진리를 견지함)라는 간디(M. K. Gandhi)의 정치 노선을 나타 내는 표제어는 도덕적 당위나 숭고함이 덧씌워지기 이전의 층위에서 이해 되어야 하는 아주 구체적인 문화적, 사상적, 종교적 의미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진리’ 개념들의 다양한 의미와 맥락 그리고 층위를 인도지성 사의 흐름 안에서 해명하는 작업이 요구되는 상황에 맞추어, 인도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인도 고철학을 중심으로 ‘진리’ 개념들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명하고자 한다.1)

1) 동북아시아 전통에서의 ‘眞’이나 ‘理’ 개념과 서구어 ‘Truth’나 ‘Wahrheit’의 번 역어로 채택된 ‘眞理’개념은 다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언급할 만한 목은 근 동아시아에서 철학 분야의 번역 용어로 채택된 용어들이 자주 불교의 한문 번역어와 연관되어 있는 데, ‘眞理’는 중국불교에서 사용하는 일 반적인 용어는 아니다. 사용되던 용어들로는, ‘諦’, ‘眞諦’, ‘眞(言)’, ‘法’, ‘正 法’, ‘實(相)’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용어들은 인도의 ‘진리’ 개념들이 중 국으로 수용되는 과정의 기록인 바 본 논문과 연관될 수 있지만, 주된 논의의 상은 아니다. 다만 본 논문과 후속 논문들의 논의를 통해 이 한문 번역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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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인으로서의 교육을 받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취하게 되는 ‘진리’에 한 이해는 철학사에서 ‘응설’(correspondence theory)이라고 불리는 ‘진리’ 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 요체는 ‘진리’가 우리의 인식 혹은 언명과 객관 적인 사실과의 응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인데, 이러한 입장의 안 에도 다양한 편차들이 있고 또 이론적으로 해명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어쨌거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표되는 서양 고철학의 큰 흐름 이래로 우리의 ‘과학적’이라고 하는 상식 안에 이 입장이 자리 잡게 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칸트(I. Kant)가 자신의 철학 체계를 “Transzendentalphilosophie”2)로 규정하면서 가능한 인식의 상이 아닌 것들 에 연관되는 ‘transzendent’라고 불러야 할 것에 한 담론들과 구분한 것이 가장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 인도철학에서의 진리에 한 담론인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3) 인도철학의 많은 ‘진리’에

의 의미도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를 필자는 기한다. 물론 이 외의 개념 들도 인도불교전통 그리고 이를 수용한 전통들에서 사용된다. 예로 ‘如 如’(tathatā) 등을 들 수 있을 것인데, 이것들은 불교전통 안에서만 한정되는 특정한 의미맥락을 가진 개념들인지라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2) 이 용어의 다양한 한국어 번역과 그에 연관된 문제들에 해서는 긴 논의가 있지만 인용하지 않겠다. 3) 인도의 지성사를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전통으로 치우치게 일반화시키거나 왜 곡하는 일은 단지 서구열강의 ‘못된’ 인도 비하 때문이라고 해석될 수만은 없 는, 다양한 층위를 지니는 문화현상이다. 인도 근화론자들의 민족국가로서 의 단일성을 가진 인도를 구축해 내는 시도와 맞물려 이루어진 ‘정신 문화의 우위를 자랑하는’ 인도라는 허구적인 집단 정체성 정립의 시도가 한 편에 있 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실질적인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문 화마케팅의 도구가 된다는 (이론화 이전에 이미 터득된) 경험이 맞물리면서 구축되어 온 허구적 정체성이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학계에서조차 이러한 중적인 오해의 수 준을 벗어나는 논의를 구현하고 있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만 지적하고자 한다. 철학사적 측면에서의 인도가 갖는 정체성의 문제와 서양철학과의 조우 에 해서는 W. Halbfass, India and Europe An Essay in Understanding, Albany, 1988을 보라. 특히 인도철학사가 일반 철학사에서 배제되어가는 과정과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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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표현들과 논의들은 개인의 사적 체험으로서의 종교체험에 한 문학 적이거나 은유적인 표현들 이상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경험을 우리는 너무 나 자주 하게 되기 때문이다.4) 하지만 칸트가 ‘transzendent’라고 불러야 마 땅한 것으로 구분했던 역에서의 ‘진리’에 한 이해와 논의도 그 문화사 적인 맥락 안에서 나름로의 구체성과 맥락을 지닌, 다시 말해서 내재적 합리성을 지닌 개념들이라는 사실은 굳이 막스 베버(Max Weber)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는 바이다. 필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인도의 ‘진리’ 개념을 다루는 논의에서 나타나는 ‘진리’ 개념들 은 우리가 합리적이고 논증가능한 범위 안에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인 맥락과 그에 따른 구체적이면서도 일정 정도 개념사적 추적이 가 능한 의미를 가진 개념들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도철학사 안에서 이루 어져 온 ‘진리’ 개념에 한 논의를 인도의 고전 텍스트들을 근거로 해서 분석하고 해명하고자 한다.

II. 쌍쓰끄리땀의 ‘진리’ 개념들

인도 전통에서 ‘진리’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어떠한 표현이 분석상이 될 수 있는지부터 밝힐 필요가 있다. 형태론적인 면에서 되도록이면 파생 개념이 아닌 일차적인 개념이면서도 화용론적인 측면에서 그 실제 사용이 인도철학사에서의 ‘진리’ 개념에 상응한다고 할 만큼의 역사적인 비중과 의 미를 가진 채 사용된 개념을 고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어-쌍쓰끄리땀 사전에서 ‘truth’항목에 나열된 개념들을 검토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모니어-윌리엄스(Monier-Williams)의 사전은 아래와 같은 개념 들을 나열하고 있다.5)

근 지성사에 해 145이하를 보라. 4) 법정스님은 자신의 ?법구경? 번역본에 “진리의 말씀”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 고, 간디는 자신의 자서전에 “내 진리 실험 이야기”(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5) M. Monier-Williams, A Dictionary English and Sanscrit, London, 1851, 183, s.v.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199 satyam, tathyam, ṛtam, samyak, avitatham, tattvam, tattvārthaḥ, yathārthavacanam, yāthārthyam, sattvam, sattā, paramārthaḥ, pūtam.

이 개념들 가운데 ‘상이나 사태에 상응하는 말’을 의미하는 ‘yathārthavacanam’은 ‘진리’가 아니라 ‘참인 언명’에 해당한다. ‘상에 상응 함’을 의미하는 추상명사 ‘yāthārthyam’은 중성 추상명사를 만드는 taddhita뒷토6) -(i)ya를 사용해서 만들어낸 추상명사이지만, 상응을 의미하는 부사 ‘yathā’와 ‘상’ 혹은 ‘사태’를 의미하는 단어 ‘artha’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복합어로 이차적인 개념이다. 이 개념의 분석은 다시 ‘artha’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의 문제로 환원되고 만다.7)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념도 아 니다. 이 목록에서 또 다른 부류의 개념들로 ‘응’을 의미하는 부사어에서 만들어진 추상명사들이 있다. ‘tathyam’, ‘avitatham’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후자는 ‘상응함(tathā)에서 벗어나(vi-)지 않음(a-)’을 의미하는 이중부정어이 다. 이 경우에는 각 용어들이 ‘진리’ 개념 자체를 나타내고 있다기 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면서 진리에 한 특정한 이해를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보인다. 이 개념들에 관해서는 무엇이 무엇과 상응하는 것을 뜻 하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인데, 부분의 경우 문맥에 의존하여 해석될 수밖 에 없는 용어들인데다 별개의 독립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예가 드문 것들 이다. 따라서 현재 논의에서는 분석상으로 적절하지는 않다. 그 외에 ‘paramārtha’8)라거나 혹은 ‘ṛta’9)처럼 특정한 시에만 사용되었거나 혹은 아

truth. 6) ‘taddhita-뒷토’란 ‘동사말뿌리’(verbal root)에서 이미 도출된 명사/형용사 말줄기 (stem)에 다시 첨가되어 파생명사를 만드는 뒷토를 말한다. 강성용, ?빠니니 읽기: 인도 문법전통의 이해?, 한길사, 2011, 274~278 참조. 7) ‘artha’ 개념의 의미를 따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우선 이 개념 자체가 가 진 다중적인 중요성 때문에 논의가 ‘진리’ 개념에 한정될 수가 없으니 맥락에 맞지 않아 이 개념을 다루는 일은 다른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8) ‘paramārtha’라는 말은 ‘최상의’(parama) ‘상/내용’(artha)을 의미하는 말로 일차 적으로는 ‘artha’라는 말의 의미와 연관된 ‘까르마다라야’(karmadhāraya)-복합어 이다. ‘paramārtha’ 개념은 불교전통, 특히 승불교 전통에서 진리를 두 층위 로 나누어 상정하고, ‘일상적 진리’(saṃvṛti-satya)에 조되는 의미에서의 ‘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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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구체적인 종교전통 안에 국한되어 사용되어서 지성사 전체를 볼 때에는 제한된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었던 용어들도 논의 상으로 삼기에 부적절 해 보인다. ‘pūta’ 혹은 ‘samyak’처럼 명사라기 보다는 형용사나 부사로 사 용되는 용어로 ‘분명하다’거나 ‘적절하다’는 의미의 단어는 철학사에서의 ‘진리’ 개념을 다루는 맥락에 적절하지 않다. 결국 인도의 철학 전통(darśana)에서 ‘진리’ 개념으로 사용되던 어휘로는 ‘satyam’, ‘tattvam’, ‘sattvam’, ‘sattā’ 정도가 남게 되는데, 이 개념들이 앞으 로 전개될 논의의 상이 될 것이다. 이 개념들 가운데 사용되는 빈도나 의 미의 보편성을 고려할 때 철학적인 논의에서의 ‘진리’ 개념으로 두드러진 것들은 단연 ‘tattva’와 ‘satya’를 꼽을 수 있겠다. ‘tattva’는 지시명사 ‘tat’ 에 taddhita-뒷토를 첨가해서 만들어진 개념인데, 지시명사의 추상명사형 인 셈이다. ‘satya’도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추상명사이지만, 일반적으로 어 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쌍쓰끄리땀의 √as-동사의 현재분사 ‘sat’에 추상명사 를 만드는 taddhita-뒷토를 첨가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간주된다.10) ‘sattva’와 ‘sattā’의 경우는 ‘sat’의 추상명사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실제 사용 되는 방식이 ‘진리’ 개념을 나타내기보다 ‘~이 있음’ 혹은 ‘~임’의 추상명사 로 사용되는 예가 많다.11) 따라서 현재의 맥락에서 다루어질 만한 개념들

적 진리’를 의미하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따라서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진리’ 를 의미하는 단어는 아니다. 또한 ‘paramārtha-dharma’라고 사용되는 경우에도 ‘최고의(parama) 상/사태(artha)에 한 붇다의 가르침(dharma)’을 가리키는 말 로 사용된다. 9) ‘ ṛta’는 베다(Veda) 시기 우주의 운행원리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되던 주요 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고전쌍쓰끄리땀의 시기에는 이미 쓰이지 않는 말이 되 었고 그 부정형인 ‘anṛta’ 개념만이 ‘거짓된’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로 주로 사용 되었다. 고전쌍쓰끄리땀의 시기에 쓰인 ‘dharma’ 개념의 뿌리가 되는 개념으 로 종종 간주되지만,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진리’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10) 어원상으로는 아니라는 분석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satya’에 한 자세한 논 의는 후속 논문으로 미루고자 한다. 11) ?냐야바샤?(Nyāyabhāṣya) 2.2.2 (ED, 99,10~12)에 나오는 목을 예로 들어 보 겠다: “sambhavo nāmāvinābhāvino 'rthasya sattāgrahaṇād anyasya sattāgrahaṇaṃ. yathā droṇasya sattāgrahaṇād āḍhakasya sattāgrahaṇaṃ āḍhakasya sattā grahaṇā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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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prasthāsyeti.”(‘함축’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없이는 [다른 것이] 없는 관계를 가진 (즉, 필연적 수반관계를 가진) 상이 있다(sattā)는 것이 인식되었으므로 다른 [상의] 있음이 파악되는 것이다. [곡식이 한] 드로나(droṇa)가 있음을 인식하으므로 [한] 아다까(āḍhaka, 1/4 droṇa에 해당)가 있다고 인식하는것, [곡식이 한] 아다까가 있음을 인식하으므로 [곡식이 한] 쁘라쓰타(prastha, 1/4 āḍhaka에 해당)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인도고전의 원문 번역은 필자 자신의 것이며 따로 표기하지 않는다. 또한 인도고전의 텍 스트에 해 복잡한 문헌학적인 문제와 연관된 내용들, 예로 말모양 차이 (varia lectio)와 문헌 전승의 문제 혹은 판본의 문제 등등은 구체적으로 언급하 지 않고 논의에 직접 연관되는 한에서만 필요한 최소한으로 표기하는 것에 그치겠다. 현재의 논의에 직접 연관되는 ?냐야쑤뜨라?와 ?냐야바샤?의 문헌비 평 상황에 해서는 Y. Muroya “Some Observations on the Manuscript Transmission of the Nyāyabhāṣya”, Journal of Indological Studies, Vol. 18, 2006, 23~62; S. Y. Kang “The New Critical Edition of the Nyāyabhāṣya and Its Meaning for the Research in Early Buddhist Debate Tradition ─ The Case of jāti and 相應”, Critical Review for Buddhist Studies, Vol. 3, 2008, 44~46을 보라. ?냐야쑤뜨라?와 ?냐야바샤?의 번호는 W. Ruben, Die Nyāyasūtra’s - Text, Übersetzung, Erläuterung und Glossar, Leipzig, 1928을 따른다. ‘sattva’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냐야쑤뜨라? 2.2.61과 그 앞뒤에 붙어 있는 ?냐야바샤?의 설 명을 살펴보자. 논의의 맥락은 문법적으로 곡용과 활용이 끝나 실제로 언어생 활에서 사용되는 말(pada, 다된말)이 가리키는 지시체가 무엇인지의 논쟁이다. 바차야나(Vātsyāyana)가 상정한 가상의 상방은 다된말이 지시하는 것이 개별 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개별상들이 공유하는 형상이라고 주장한다. 냐야 (Nyāya)전통은 말이 형상만을 가리킨다고 보지는 않는다.(ED 131,4~6): “yadi khalu gaur ity padasya na vyaktir arthaḥ, astu tarhi ākr̥tis tadapekṣatvāt sattvavyavasthānasiddheḥ [2-2-61] ākr̥tiḥ padārthaḥ. kasmāt? tadapekṣatvāt sattvavyavasthānasiddheḥ.”(만약 ‘소’라고 하는 다된말의 의미/상(artha)이 개별 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형상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에 의존해서 “~임”의 확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2-61] 형상이 다된말의 의미/상이다. 왜 그 러한가? 그것에 의존해서 “~임”의 확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된말’에 해서는 강성용, ?빠니니 읽기?, 234 이하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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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tattva’라는 말

‘진리’ 개념으로 사용되는 표적인 말로 본 논문에서는 ‘tattva’를 다루고 자 한다. 이 개념이 철학사의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진리’ 개념을 나 타내는 표적인 개념이자, 또한 인도철학사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중 성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진리’ 개념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12) 이 개념이 중성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특정한 종교전통이라거나 특정한 문화적 맥락으 로부터 자유롭게 사용된 측면이 강한 개념이라는 뜻이다. 후속 논문에서 다 루게 될 ‘satya’만 하더라도 많은 경우에 베다(Veda)의 맹세, 서원(vrata) 전 통의 맥락이 항상 남은 채로 사용되어온 것과 크게 조되는 목이다. 그 원인은 ‘tattva’가 가지고 있던 이중적인 의미에 있다고 보인다. 이 점이 필 자가 본 논문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인데, 바로 ‘tattva’는 두 가지 맥락과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는 ‘진리’ 개념이라는 것이다. 하나는

12)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인도철학사에서의 수많은 저술들이 제목에 ‘tattva’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필자의 판단을 객관화시키기 위 해 총 8560가지 인도철학사 관련 원전 저술들을 상으로 해서 파악해본 결 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Tattvasaṅgraha(?진리 강요?)라는 제목을 가진 저술만 해도 10개가 파악된다. Gaṅgeśa의 Tattvacintāmaṇi(?진리에 한 사유의 보물?), Vallabha의 Tattvadīpikā(?진리의 등불?), Vācaspatimiśra의 Sāṃkhyatattvakaumudī(?쌍캬의 진리에 한 달빛처럼 밝은 해명?) 등등 8560권 의 철학관련 저술 중에서 총 431권의 저술이 제목에 ‘tattva’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satya’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12권으로 파악되는 것과 큰 조를 이룬다. 저술 제목에 ‘sattva’를 사용하는 경우는 2건에 그치고, 18건은 ‘bodhisattva’라는 승불교의 특정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서 ‘sattva’개념이 갖 는 철학사에서의 비중이 미미함을 잘 보여준다. ‘tathya’를 철학 저술의 제목에 사용한 예는 없고 “오류”라는 의미의 ‘vaitathya’를 사용한 유일한 경우가 Siddhivaitathya이다. ‘sattā’를 직접 사용한 제목도 없다. 이상은 Bibliography of Indian Philosophies 웹사이트에서(http://faculty.washington.edu/kpotter/ckeyt/ttl.htm; 2015년 10월 15일 확인) 2013년 11월 15일 기준으로 파악하고 제시한 인도철 학사 연구 자료가 될 원전 저술들 총 8560권을 기준으로 해서 필자가 파악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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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사적 용례에서 드러나는 응설에 입각한 진리관에 해당하는 ‘진리’개 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지시사적 용례에서 드러나는 현상세계 배후의 통일 적인 실체를 의미하는 ‘진리’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형태분석의 면에서 ‘tattva’라는 용어가 중성 추상명사를 만드는 taddhita뒷토를 사용한 용어라는 것은 자명한데, 그 앞에 자리잡은 말이 바로 지시 명사 ‘tat’이라는 사실이 개념 분석을 어렵게 하는 첫 걸림돌이 된다. 우 선 빠니니가 ?아스타댜이?(Aṣṭādhyāyī) 4.1.1에서 정의한 바에 따라 ‘-tva’와 ‘-tā’를 사용하는 추상명사형의 의미를 ‘tasya bhāvaḥ’, 즉 ‘그것임’, ‘그것이 라는 상태’라고 이해하고 시작하자. 그렇다면 tat이 지시명사이므로 ‘tat-tva’는 어로 번역할 때 ‘it-ness’라거나 ‘that-ness’라는 말이 되어야 한 다. 이렇게 되면 한국어로 옮길 때 ‘그것임’에 해당하는 말이지 ‘그러함’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목에서 추상명사를 만드는 뒷토 -tva 를 형용사가 아닌 지시명사에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큰 문제는 아 니라고 본다.13) 중요한 사실은 ‘tattva’라는 표현이 실제로 만들어지고 광범 위하게 사용되었고, 이 개념을 매개로 수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온 언어적 현실이 우리 눈앞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 문제는 이 단어의 어형이 아니라 이 단어의 어형분석에 입각한 내용의 이해에 있다.

IV. 냐야(Nyāya)전통에서의 ‘tattva’에 대하여

인도 지성사 전통에서 인식론과 논리학에 해당하는 이론과 논의를 표 하는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냐야(Nyāya)전통에서 ‘진리’에 상응하는 개념

13) 실제 언어자료가 그러한 사용을 보여주는 한 “현실은 가능성에 한 최선의 증명이다.”(Die Wirklichkeit ist der beste Beweis der Möglichkeit)라고 했던 쉬미 타우젠(L. Schmithausen)의 말이 가장 적절한 답이 될 것이다. 또한 ‘-tva’ 혹 은 ‘-tā’가 사용되는 범위는 어의 ‘-ness’ 등의 뒷토와는 다른 양상을 잘 보 여준다. 이에 해서는 W. D. Whitney, Sanskrit Grammar, Boston, 1896, 476~477의 §1237~1239를 보라. 명사, 형용사는 물론이고 부사나 명사 등과 결합되어 사용되는 것은 확인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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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사용되는 ‘tattva’에 해 분석함으로써 이 개념의 의미에 접근해 보자. ?냐야쑤뜨라?(Nyāyasūtra)의 첫 쑤뜨라는 다루고자 하는 16개의 주요 주제를 제시하고 나서, 이 주제들의 tattva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최상의 것을 얻 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14) 그런데 냐야전통과 역사적으로 접하게 연관되 어 있는 인도 고의 논쟁전통에 연관되는 텍스트들에서는 유사한 맥락에 서 ‘tattva’ 개념이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예로 ?냐야쑤뜨라?와 발생사적으 로 긴한 연관관계를 갖는 인도 의학텍스트의 고전인 ?짜라까쌍히따? (Carakasaṃhitā)에서도 “논쟁의 전개에서의 주요 주제들”(Vādamārgapada)15)을 다루는 부분에서 ?냐야쑤뜨라?에서 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네 바른 인 식을 얻는 수단(pramāṇa)들에 해당되는 주제들이 오단논법(pañcāvayava)의 두 번째 단인 근거(hetu)의 종류들로 설명되어 있는데, 이 때 이를 통해 얻 어지는 것이 결국 tattva라고 서술된다.16) 이렇게 인식론의 맥락이거나 논쟁 술의 맥락이거나, 즉 인식의 수단이건 혹은 인식 내용의 정당화를 위한 수 단이건, 인식이 바르게 이루어질 때 도달하게 되는 것은 결국 tattva에 한 인식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또한 약간은 다른 맥락에서, 부정적인 수단까지 도 동원해 가면서 자기의 입장을 옹호하는 형태의 논쟁을 설명하는 맥락에 14) Nyāyasūtra 1.1.1: “pramāṇaprameyasaṃśayaprayojanadr̥ṣṭānta siddhāntāvayavatarkanirṇayavādavitaṇḍāhetvābhāsacchalajātinigrahasthānānāṃ tattvajñānān niḥśreyasādhigamaḥ”(바른 인식의 수단, 바른 인식의 상, 의심의 진상(tattva)을 아는 것으로부터 최상의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여기 언급된 구 체적인 항목 이름들에 한 한국어 번역은 현재의 맥락에서 중요하지 않아, 분량의 제한을 고려해서 생략한다. 15) 이 용어에 해서는 S. Y. Kang, Die Debatte im alten Indien - Untersuchungen zum Sambhā ṣ āvidhi und verwandten Themen in der Carakasa ṃ hitā Vimānasthāna 8.15-28, Reinbek, 2003, 5 이하를 참조. 16) Carakasaṃhitā Vi. 8.33: “atha hetuḥ - hetur nāmopalabdhikāraṇaṃ. tat pratyakṣam anumānam aitihyam aupamyam iti. ebhir hetubhir yad upalabhyate tat tattvam.”(근 거: “근거”라고 하는 것은 인식의 원인이다. 그것은 지각, 추론, 전승, 유비이 다. 이 원인들을 통해 인식되는 것은 진상/진실이다.) 이에 해 강성용, 「“Pramāṇa”와 “Pratyakṣa”에 하여」, ?인도철학?, 제16호, 인도철학회, 2004, 137을 참조.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205

서는,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형태의 논쟁 형식이 근본적으로 tattva의 옹호 를 위한 것인 한에서는 궁극적으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들이라는 서 술이 나타나는데, 동일한 서술이 ?냐야쑤뜨라?뿐 아니라17) 이와는 접하 게 연관된 불교 텍스트인 ?방편심론?(方便心論)에서도 보인다.18) 그리고 연 관된 논의의 맥락 안에서 불교 전통에 속하는 이론가인 바쑤반두 (Vasubandhu)의 저술에서도 비슷한 맥락에 등장하는 ‘tattva’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19) 이렇게 ‘tattva’가 사용된 학파 초월적인 맥락은 초기 논쟁전통의 17) 쟁론(jalpa)과 언쟁(vitaṇḍā)에 해 ?냐야쑤뜨라? 4.2.49에서 우리는 아래와 같 은 정당화를 위한 시도를 볼 수 있다: “tattvādhyavasāyasaṃrakṣaṇārthaṃ jalpavitaṇḍe bījaprarohasaṃrakṣaṇārthaṃ kaṇṭakaśākhāvaraṇavat.”(씨앗이 자라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가시가 있는 가지들로 덮는 것처럼 쟁론(jalpa)과 언쟁 (vitaṇḍā)은 진상/진리를 확정하는 일을 지키기 위한 [것들이다].) 18) ?方便心論?, 23b, 18~20: “如爲修治菴婆羅果. 而外廣植荊棘之林. 爲防果故. 今 我造論亦復如是. 欲護正法不求名聞故.”(마치 망고과일을 재배하기 위해서 밖으 로 널찍하게 가시나무들을 심는 것은 과일을 지키기 위해서인 것처럼, 내가 지금 이 (논쟁에 관한) 논서를 쓰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이 올바른 [불교의] 가 르침을 지키고자 해서이지 명성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구절에 서 한역어로 표기된 ‘正法’이 현재 우리가 다루는 ‘tattva’를 원어로 가진 경우 인지 의문이 제기될 것인데, 원문이 확보되지 않은 이상 확정적인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맥락과 번역어를 보건데 뚜찌, G. Tucci, Pre-Di ṅ nāga Buddhist Texts on Logic from Chinese Sources, Baroda, 1929, 4가 제시한 ‘쌍쓰끄리땀’으 로의 재구성에 나타나는 용어 선택 “saddharma”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19) 불교전통에 속하는 ‘바쑤반두’의 저술인 Vādavidhāna에서 논쟁의 종류를 구분 하는 것에 한 논란의 맥락에서 ‘바쑤반두’는 논쟁의 종류를 어떻게 나누던 간에 논쟁이란 어차피 그 목적이 ‘tattva’를 파악하는 것과 물질적인 보상을 얻 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에서도 다시 ‘tattva’라는 용어 가 등장하는데 Vādavidhāna의 단편들은 프라우발너, E. Frauwallner, “Zu den Fragmenten buddhistischer Logiker im Nyāyavārttikam”, Wiener Zeitschrift für die Kunde des Morgenlandes, Bd. 40, 1933이 다른 쌍쓰끄리땀 텍스트에 나타나는 인용문들을 근거로 유실된 원문의 단편들을 모은 것이다. Frauwallner, “Fragmenten buddhistischer Logiker”, 1933, 300의 Fragm. 2와 ?냐야바르띠까? (Nyāyavārttika), 354, 13~14에 상당히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이는 인용문에서,

철학논집(제43집)206

맥락 안에서도 일정 정도 확인된다.20)

V. ‘tattva’의 부사적 용례

이 맥락에서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주어지는 정보는 바로 현존하는 가 장 오래된 ?냐야쑤뜨라?의 주석서에 나타난 바차야나(Vātsyāyana)의 설명이 다. ?냐야쑤뜨라?에서 다루게 될 16 개의 주제를 제시하는 첫 쑤뜨라 1.1. 121)에 앞서 제시되는 ?냐야바샤?(Nyāyabhāṣya)의 도입부에서 바차야나는 다 음과 같은 설명을 제공한다. kiṃ punas tattvam? sataś ca sadbhāvo ’sataścāsadbhāva iti. sat sad iti gṛhyamāṇaṃ yathābhūtam aviparītaṃ tattvaṃ bhavati. asac cāsad iti gṛhyamāṇaṃ yathābhūtam aviparītaṃ tattvaṃ bhavati.22)

그렇다면 다시 tattva란 무엇인가? 그러한 것의 그러함, 그렇지 않은 것의 그렇지 아니함이다. 그러한 것이 그러한 것이라고 파악되어 그와 같은 상

논쟁을 세 가지로 나누는 것에 반하는 바쑤반두의 입장이 분명히 밝혀져 있다. “traividhyānabhyupagamād eka evāyaṃ kathāmārgas, tasya prayojanaṃ tattvāvabodho lābhādayaś ca.”([논쟁을 vāda, jalpa, vitaṇḍā의] 세 가지로 나누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바로 다음과 같은 오직 하나의 ‘이야기하는 방식(kathāmārga)’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하는 방식의] 목적은 tattva 를 인식하는 것과 [재물을] 얻는 것 등등이다.” 20) 물론 이러한 판단의 배후에는 고 인도의 논쟁전통이 개별적인 종교나 전승 전통과 연관된 학파에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라 학파들이 상호 견제하고 교류 하면서 발전해 나간 양상을 보이던 어떤 공유되던 지식의 내용을 가지고 있 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와 연관된 쟁점들에 한 비판적인 검토는 S. Y. Kang, “Die Carakasaṃhitā in der Geschichte der indischen Philosophie I. Nyāya und Carakasaṃhitā”, Wiener Zeitschrift für die Kunde Südasiens, Bd. 50, 2006을 보라. 21) 앞서 각주 14에 인용되어 있다. 22) Nyāyabhā ṣ ya ED 1, 16~18.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207

태임이며 어긋나지 않음이 tattva이다. 또한 그러하지 않은 것이 그러하지 않은 것이라고 파악되어 그와 같은 상태이며 어긋나지 않음이 tattva이다.

‘tattva’를 설명하면서 동원되는 개념이 쌍쓰끄리땀의 be-동사에 해당하는 √as의 현재분사형 ‘sat’이어서, 우리는 이 목의 번역에서 ‘~이다’와 ‘있다’ 의 의미 모두를 포함하는 ‘being’에 해당하는 한국어 번역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하지만 ~인 것을 ~이라고 인식한다거나 있는 것이 있다고 파악되어서 그에 상응함(yathābhūta)이 ‘tattva’라고 하는 이 설명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이 ‘tattva’에 한 설명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tat-tva를 yathā(부사로 ‘그러함’)와 또 다른 be-동 사인 √bhū의 과거분사를 동원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taddhita-뒷 토인 -tva를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이 뒷토에 한 빠니니의 정의에도 상응 하는 것인데, 중요한 사실은 ‘yathā’(그러함)로 ‘tat’(그것)이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함’과 ‘그것’의 간극이 본 논문이 그려내고자 하는 ‘tattva’개 념의 두 서로 다른 의미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tat’이 설명되 는 일은 이 목에서만 나타나는 일회적인 설명이나 이해방식이 아니다. ?냐야바샤? 4.2.1에서 ?냐야쑤뜨라? 4.2.1이 시작되기에 앞서 바차야나는 분명하게 ‘tattvajñāna’(tattva의 앎)이라는 복합어를 ‘yathābhūta-avabodha’(그러 함의 인지)라고 설명하고 있다.23) ‘jñāna’가 ‘인지’(avabodha)로 설명되고 ‘tattva’는 ‘yathābhūta’로 설명되고 있어서 내용상 앞선 설명과 같은 방식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일치하는 또다른 설명의 예는 직접 ?냐야쑤뜨 라? 1.1.40에서도 볼 수 있다: avijñātatattve ’rthe kāraṇopapattitas tattvajñānārtham ūhas tarkaḥ. 23) Nyāyabhāṣya ED, 259, 1~3 그리고 Nyāyabhāṣya EC, 1037, 10~12: “evaṃ catasṛbhir vidhābhiḥ prameyaṃ vibhaktam āsevamānasyābhyasyato bhāvayataḥ samyag darśanaṃ yathābhūtāvabodhas tattvajñānam utpadyate.”(바른 인식의 상 을 이렇게 [앞서 말한 것처럼] 네 가지로 구분된 상태로 하면서 거기에 의 식을 집중하고 [그렇게] 간주하는 사람에게 올바른 지각, 즉 있는 그로의 상태에 한 인식, 다시 말해서 사실의 인식이 생긴다.)

철학논집(제43집)208

따져보기는 그 진상(tattva)이 알려지지 않은 상에 해 그 근거가 주어 진, 진상의 인식을 얻기 위한 숙고이다.

따져보기(tarka)란 확실한 인식을 얻기에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들을 동원하고 분석하여 가능한 판단들 중의 하나를 타당한 것이라고 확정해 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저것은 사람이다.’와 ‘저것은 나무 등걸이다.’의 두 판단이 가능한 상황에서 어느 것이 맞는지를 검토하는 것 을 말한다.24) 따라서 이 목에서 말하는 “그 진상이 알려지지 않은”이라는 구절의 뜻을 ‘그 상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맥락이 다.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사람’과 ‘나무등걸’만이 공유하는 속성들을 지닌 어떤 상이 인식된 것은 이미 주어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맥락에 서 궁극적으로 확정된 상은 인식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상 자체는 인식 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하지만 최소한 바차야나는 상에 한 확정이 부족할 뿐이라는 해석을 택 하고 있다. ?냐야바샤? 1.1.40의 끝부분에서 바차야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 고 있다.

‘avijñātatattve ’rthe’ iti yathā so ’rtho bhavati tasya yathābhāvas tattvam, aviparyayo yāthātathyaṃ.25) [쑤뜨라 1.1.40에서] ‘그 진상이 알려지지 않은 상에 해’라고 말하는 것 은, 그 상이 그러하게 있으니 그에 상응하게 그러함이 tattva라는 것이고, 이것은 어긋나지 않는 것이니 상응함이다 [라는 뜻이다.]

이 목에서 우리는 ‘tattva’가 ‘그러함’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24) 이러한 주제가 다루어지게 된 것은 아마도 ?냐야쑤뜨라?에서 다루어지는 많 은 주제들이 원래는 논쟁전통 안에서 다루어지던 것들이었다가 나중에 인식 론의 맥락 안으로 흡수되었다는 역사적인 맥락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 다. 따져보기(tarka)에 한 자세한 분석은 S. Y. Kang, “An Inquiry into the Definition of tarka in Nyāya Tradition and Its Connotation of Negative Speculation”, Journal of Indian Philosophy, Vol. 38, 2010, 1~23을 참조. 25) Nyāyabhā ṣ ya ED, 37, 8~9.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209

확인했다. 따라서 ‘tattva’를 ‘그러함’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바차야나의 설 명은 주석가로서 그가 만들어낸 억지스러운 설명의 틀이거나 해석이 아니 라 실제로 ?냐야쑤뜨라?에서부터 사용되어 온 ‘tattva’의 용례에 상응한다고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이 설명에서 드러나는 것은 ‘tattva’가 인식 론적인 맥락에서 인식의 타당성에 한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바차야나의 설명을 ?냐야쑤뜨라?1.1.40과 연관시켜 이해하면, 진리의 응설 에 가까운 입장을 반하는 설명이라는 점이 엿보인다.26)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한 나이야이까(Naiyāyika)들은 상세계에서 실제로 ‘그렇지 않은’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올바른 인식의 상이 되는지에 한 설 명의 짐을 덜게 된다. 즉 순수한 인식론적인 맥락 안에서, 없는 것이나 그 렇지 않은 것에 해서 ‘없다’라고 혹은 ‘그렇지 않다’라고 인식하는 한 그 인식은 타당한 인식이고 그 인식의 내용을 나타내는 말, 혹은 명제는 참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27)

이제 필자는 ‘tattva’를 ‘그러함’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tattva’의 ‘부사적

26) W. Slaje, “Über ‘Wahrheit’(skt. tat-tva)”, Berliner Indologische Studien, Bd. 11~12, 1998, 252가 이 측면을 언급하고 있다. 27)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에 해 언급하고 또 의미 있는 명제를 구성해 낼 수 있는지의 문제를 냐야전통이 알고 있지 못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또다른 복잡한 문제여서 여기서 언급할 것은 아니다. 이 문제가 과연 상의 존재론적인 지위의 문제와 연관되는지 여부도 따로 따져야 할 문제인데, 인도철학 전통 안에서도 별도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목이 있다고 보이는 것은 ?냐야쑤뜨라? 1.1.40에 쓰이 듯 ‘tattva’가 ?냐야쑤뜨라?에 쓰일 때에 부정적인 상(즉 존재하지 않는 상 이나 사태, asat)까지 포함하는 용어로 명시되어 설명되거나 받아들여지고 있 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W. Halbfass, on Being and What There Is — Classical Vaiśe ṣ ika and the History of Indian ontology, Albany, 1992, 158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In Classical Nyāya since Vātsyāyana, tattva has covered being and nonbeing (sat and asat; that is, positive and negative facts and coccurrences) insofar as they can be objects of true knowledge and speech. [···]”

철학논집(제43집)210

용례’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때의 ‘tattva’는 ‘tat’이 부사적 용례로 사용된 의미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며, 외부의 사태가 주관적인 인식 혹은 그 내용을 담은 언명과 상응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지시명사 ‘tat’의 부사로서의 기능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 며,28) 부사의 추상명사형도 문제될 것은 없다. 필요한 것은 실제로 ‘tattva’ 가 그렇게 사용되었는지에 한 확인이었는데29) 이와 연관되어 ‘tattva’의 부사적 용례에 집중하는 논문을 발터 슬라예(Walter Slaje)가 1998년에 발표 하다. 슬라예는 ?냐야바샤?의 해석을 중심으로 해서 설득력 있게 ‘tattva’ 의 부사적 용례와 그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VI. ‘tattva’의 지시사적 용례

그런데 다른 맥락으로 1992년의 단행본에서 이미 할파스(W.ilhelm Halbfass)가 이와 연관되어 제시한 간략하지만 의미심장한 언급을 직접 인 용하고자 한다.30)

28) J. Wackernagel/A. Debrunner, Altindische Grammatik. Bd. 3: Nominalflexion, Zahlwort, Pronomen, Göttingen, 1930, 500의 §244, bγ와 542, §254, e를 참조하 라. 또한 §243, β에는 ‘tat’이 “da, dann”의 의미로 부사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tat’이 지시명사로 사용되는 것뿐 아니라 접속사로 사용되 는 용례도 자주 등장한다. 29) 인도 문법전통을 비롯한 언어분석 전통은 문법적인 형태에 따라 이루어지는 의미에 한 판단(yaugika)과 관행적으로 그 단어가 실제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에 한 판단(rūḍha)은 별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30) Nyāyabhāṣya 1.1.1을 언급하면서 시작되는 W. Halbfass, on Being and What There Is, 1992, 167~168, n. 115를 인용한다. S. Y. Kang, “An Inquiry into the Definition of tarka in Nyāya Tradition and Its Connotation of Negative Speculation”, Journal of Indian Philosophy, Vol. 38, 2010, 5~6은 ?냐야쑤뜨라? 1.1.40과 ?냐야바샤?의 해당 부분의 해석에도 할파스의 지적이 적용된다는 것 을 언급하면서 ‘avijñātatattve ’rthe’ 구절을 해석하고 있다.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211

See NBh I, 1, 1: ki ṃ punas tattvam? sataś ca sadbhāvo ’sataś ca-asadbhāvah. Tattva in this sense is the condition of the possibility of valid representation in thought and speech, and it indicates a fundamentally epistemological perspective on being. [···] In older Vaiśe ṣ ka, tattva (as “identity”, “essence”) does not have this kind of epistemological function, nor does it imply any reference to nonbeing. In VS II, 1, 28 (29); II, 2, 8; 14 (12); VII, 2, 31 (28), it is used with specific reference to the "unitary essences" of ether, time, space, and inherence.

할파스의 지적이 중요한 것은 바로 ‘tattva’의 부사적 용례가 냐야텍스트 에서 확인되지만, 이와 조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일이 바이쉐시까전통에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뿐 아니라, 그렇게 사용될 때 ‘tattva’가 갖는 함축을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쉐시까쑤뜨라?(Vaiśeṣkasūtra) 에 나타나는 것처럼 ‘tat’의 지시명사로서의 용법에 기초한 사용을 필자는 ‘tattva’의 ‘지시사적 용례’라고 부르고자 한다. 바이쉐시까전통은 존재론 문 제에 천착한 전통이어서, ‘tattva’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에도 존재론적 개입 (ontological commitment)이 강하게 함축된 방식의 지시사적 용례를 사용한다 는 것은 일견 어렵지 않게 납득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할파스는 여기에서 그 이상의 지적을 하고 있다. 바로 ‘tattva’가 실제로 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뿐 아니라 그 가리키는 것이 어떤 통일되고 단일한 실체 라는 함축을 가진다는 것이다. 슬라예도 또한 각 철학학파의 세계관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tat’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 는데31) 지시사적 용례의 사용은 바이쉐시까 이외의 많은 철학 전통들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핵심적인 질문은 지시사적 용례의 존재여부가 아니라, 지시사적 용례로 사용되는 ‘tattva’가 단지 지시 하는 의미 이상의 함축을 갖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단일한 실체”(unitary essence)를 가리키는 맥락에서 실제로 사용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사용이 보

31) W. Slaje, “Über ‘Wahrheit’(skt. tat-tva)”, 1998, 252~253, n. 64에는 쌍캬 전통과 짜르바까(Cārvāka)전통 및 불교 전통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254 쪽 n. 67에서 는 극단적인 존재론에서의 관념론자들은 ‘tat’을 완전히 다른 존재론적 맥락에 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철학논집(제43집)212

편적인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함축을 갖게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의 질문이다. 지시사적 용례의 의미 해명에 앞서, 우선 언급하고자 하는 사실은 ?냐야쑤뜨라?나 ?냐야바샤? 안에서도 ‘tattva’가 지시사적 용례로 사 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해 슬라예는 간접적으로 불교도들과의 이론 적 립이라는 맥락 안에서 제시되는 부분에서는 ?냐야쑤뜨라?도 지시사적 용례를 따르고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표현하기도 했다.32) 앞서 ?냐야쑤뜨 라? 1.1.40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상황, 하지만 다른 인식적인 판단이 내려 진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식적 문제가 4.2.37에 언급되고 있다. 즉 흐릿하게 보이는 상이 사람인지 나무등걸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경우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tattva’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이 쑤뜨라는 불교도들의 입장을 반박하는 ?냐야쑤뜨라? 의 일부분에 속해 있다. 실재론자인 냐야전통의 사람들은 실재하는 상에 근거해서 잘못된 인식을 수정하고 객관적으로 확증할 길이 있다고 주장하 는 맥락이다. tattvapradhānabhedāc ca mithyābuddher dvaividhyopapattiḥ. 진상(tattva)과 유력하게 드러나는 것의 구분 때문에 잘못된 인식의 이중성 이 드러난다. 32) W. Slaje, “Über ‘Wahrheit’(skt. tat-tva)”, 1998, n. 60. 이유는 ?냐야쑤뜨라?에서 반박하고자 하는 불교도들이 상세계를 비어있는(śūnya) 것으로 규정하거나, 혹은 주관적 관념이 투사된 것이어서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며 따라서 이것들 에 한 인식이나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거나 해탈을 향한 맥락에서는 해로운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냐야쑤뜨라?와 불교사상가 나가르주나 (Nāgārjuna)의 상호비판과 시적이고 사상적인 상호관계는 다중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주제인데, 두 흐름이 서로 비판적인 관계로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고 보인다. 불교의 흐름들 중에서 요가짜라(Yogācāra)와는 어떠 한 관계가 있었는지에 해서는 검토가 필요한데, 초기 냐야를 비판했던 불교 의 쁘라마나(Pramāṇa) 전통이 요가짜라(Yogācāra)의 흐름에 속하는 전통이었다 는 점을 고려하면, 구체적으로 연관관계를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판단된다. 이 연관관계를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근거에서 상정했던 20세기 초기까지의 막연했던 논의와는 다른 차원에서 말이다.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213

여기에서의 tattva는 지시사적 용례의 경우로 해석해야 할 것으로 보인 다.33) 다시 말해서 판단이 유보된 상태로, 지시된 객관적인 실제 상 자체, 즉 나무등걸이 ‘tattva’라고 말이다. 후의 주석가들이 보듯이, 이렇게 해석 하게 되면 여기에서 ‘tattva’는 주관적인 인식에 해 독립적인 것이 된다. ? 냐야쑤뜨라? 1.1.40과 견주어서 본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안 은 인식적 상황, 즉 나무등걸인지 사람인지 확정이 어려운 경우에 해 논 하는 맥락에서 ‘tattva’가 한 번은 부사적 용례로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지시 사적 용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 예는 ?냐야쑤뜨라? 안에 이미 이 두 가지 용례가 나란히 적용되고 있으며, 이 두 용례 사이의 교차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함축한다고 보인다.34)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판단은 이렇다. ?냐야쑤뜨라?안에도 이미 부사 적 용례와 지시사적 용례가 병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시사적 용례 가 반드시 불교도들과의 상세계의 실재성에 한 논쟁에 연관되는 맥락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지는 추후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하지 만 ?냐야쑤뜨라?1.1.40과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한 4.2.37의 ‘tattva’사용이 보여주듯, 그 구분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흐린 것일 수도 있다. 관념론적 존재론을 주장하는 입장에 선 불교전통을 상로 한 논쟁에서 ‘tattva’를 지시사적 용례로 사용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남은 질문은 이런 경우의 ‘tattva’가 상세계의 통일적 실체에 한 함축을 가진 채로 사용되었을까에 한 의문이다. 필자의 입장은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냐야쑤뜨라? 자체가 ‘tattva’를 초월적

33) 이 쑤뜨라에 한 설명에서 바차야나는 분명하게 ‘tattva’는 ‘나무등걸’을 가리 키고 ‘pradhāna’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설명하면서 쑤뜨라 1.1.40과 같은 인식 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Nyāyabhāṣya ED, 276, 11: tattvaṃ sthāṇur iti. pradhānaṃ puruṣa iti. 34) 여기에서 ?냐야쑤뜨라?의 발생사와 연관하여 여러 편집자들의 다른 의도가 개입된 역사적 상황은 고려하지 않겠다. 이 목에서 재미있는 것은 ‘tattva’와 ‘pradhāna’라는 용어가 이 두 용어를 아주 자주 사용하는 쌍캬전통에서의 용례와 는 뒤바뀐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목에 한 해 명은 추가 연구로 미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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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zendent)35) 실체의 존재를 함축하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함축을 피해가기 어려운 사정은 바로 ?냐야쑤뜨라?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맥락에 놓인 불교도들의 입 장이 바로 이러한 초월적 실체에 한 함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불교도와 냐야 사이의 논쟁의 서로 엇갈리는 방식으로 용어를 사용하 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로 가득찬 사이비 논쟁일 수는 있다. 하지만 수 백 년 이상 이어져 간 반박과 재반박과 뒤따르는 반론의 과정이 모두 그렇게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이 질문에 한 아주 구체적인 답은 아 니더라도 큰 맥락에서의 이해와 해명을 가능하게 해 주는 설명을 얻기 위 해 우리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서 우빠니샫(Upaniṣad) 텍스트와 불교텍스트 들을 조감해야 한다.

VII. ‘tat tvam asi’와 ‘tattva(m)’

이 맥락에서 검토해 볼 만한 재미있는 제안을 린트너(Christian Lindtner) 가 한 적이 있다. 인도불교를 이해하는 틀을 근본적으로 개혁 브라만전통 (reformed Brahmanism)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근거지우는 맥락 안에서, 역사적인 붇다는 브라흐만 신(Brahman m.)으로 그리고 초월적인 존 재로서의 붇다는 원리로서의 브라흐만(Brahman n.)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바른 길이라고 린트너는 주장한다. 불교와

35) 슬라예는 칸트가 사용한 용어를 염두에 둔 듯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바차야나는 ‘tattva’의 사용에서 이러한 초월적 실체에 한 함축을 배제 하고 있다고 본다. W. Slaje, “Über ‘Wahrheit’(skt. tat-tva)”, 1998, 254: “Das in Frage stehende tat° also ist - wenngleich grundsätzlich ‘objektsneutral’, so doch - stets auf konkret bezeichnete - oder zumindest gemeinte - Gegenstände zu beziehen. Eine hinter den Erscheinungen verborgene absolute ‘Wahrheit’, eine ,transzendente ‘Wahrheit’ zumal, dürfte deshalb - auch seinen Kommentatoren Uddyotakara und Vācaspati zufolge - in Pakṣilasvāmins Gebrauch des Begriffes von tattvajñāna nie enthalten gewesen sein: [···]”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215

베다 전통과의 상관성과 긴장관계라는 큰 주제를 지금 다룰 수는 없지만, 우리의 맥락에 집중하여 린트너가 제시하고 있는 ‘tattva’개념의 의미와 연 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린트너는 ‘Nirvāṇa’(涅槃, 궁극적 해방, 소멸의 상 태), ‘saṃsāra’(輪廻, 삶과 죽음의 반복이 연속됨), ‘duḥkha’ (古, 불편함), ‘satya’(諦, 진리), ‘pratītyasamutpāda’(緣起, 의존하여 생겨남), ‘majjhimā paṭipadā’(中道, 가운데 길) 등등의 불교의 핵심적인 개념들을 분석해 나가면 서36)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모든 개별적인 개념들이 베다전통을 수용하여 차용한 것이며 내용적으로 그와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 서 논의는 ‘tattva’37)로 이어진다. 이 모든 개념들에 한 해석과 이해를 위한 논의는 한 축을 중심으로 이 루어지는데, 그 축이란 바로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가 실제로는 궁 극적으로 둘 중의 하나, 즉 보다 더 원리적이고 우월하지만, 인식되기 어려 운 근본적인 것으로 환원된다는 세계관이다. 표적인 것이 바로 우주가 운 행되는 원리로서의 브라흐만(brahman n.)이 곧바로 한 신이자 개인적인 한 계를 지닌 존재로서의 브라흐만(brahman m.)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크게는 우주(macrocosmos)와 소우주(microcosmos)의 일치를 받아들이는 세 계관의 한 국지적인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 린트너의 해석이다.38) 따라서 이 짝 맞추기는 곧바로 Brahman-Bhagavat(우주의 원리와 신격)의 짝에도 적

36)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Asian Philosophy, Vol. 9, No. 1, 1999, 12~17. 37)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20ff. 38) 이러한 우주와 소우주의 일치를 주장하는 세계관은 세계 문명사에서 너무 나 흔한 것일 뿐더러 우리의 일상 속에도 깊이 파고들어 있다. 국토가 인간의 신 체에 해당한다거나, 인간의 신체가 곧 우주라거나, 발이 신체 전체를 반한다거 나 하는 세계관들이 가진 근본적인 논리는 일치한다. 다만 이들의 다양한 양상들 과 구체적 세계관으로서의 함축의 차이에 해서는 세심한 관찰과 주의가 필요 하다. 현 학문에서 구조동일성(isomorphism)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인도의 종교전통 안에 자리잡은 해탈론이 인간에 한 이해를 담은 자연관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자연관들이 바로 특정한 형태의 구조동일성을 전제한 세계관을 가진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철학논집(제43집)216 용되고 nirvāṇa-saṃsāra(궁극적 해방과 생사의 반복된 흐름) 짝에도 적용된 다. 린트너에 따르자면 이 틀 안에서 제시되고 설명되어야 하는 개념이 ‘tattva’이다. 린트너가 ‘tattva’개념을 이렇게 자리잡게 하는데 그 근거로 제 시되는 구절의 한 예가 나가르주나(Nāgārjuna)의 Yuktiṣaṣṭikā(?60가지 논리?) 라는 저술의 운문 5, 6인데39)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saṃsāraṃ caiva nirvāṇaṃ manyante ’tattvadarśinaḥ ? na saṃsāraṃ na nirvāṇaṃ manyante tattvadarśinaḥ ?? nirvāṇaṃ ca bhavaś caiva dvayaṃ etan na vidyate ? parijñānaṃ bhavasyaiva nirvāṇam iti kathyate ?? 삶과 죽음의 연속과 궁극적 해방을 생각하는 자들은 tattva를 보지 못하는 자들이다. 삶과 죽음의 연속도 궁극적 해방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tattva를 보는 자 들이다. 궁극적 해방(소멸)과 (생사의) 존재라는 이중성, 이것은 없다. (생사의) 존재의 온전한 이해가 궁극적 해방(소멸)이라고 말해진다.

이 목에서 린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So, in the perspective of tattvadarśana/parijñāna the distinction between sa ṃ sāra (bhava) and nirvā ṇ a—the duality, dvaya—is not valid. In this there is nothing new. But what is new is the word tattvam, which in later literature is extremely common, especially in compounds such as tattvajnāna, tattvadarśana and the like.40)

그리고 린트너는 ‘tattva’라는 개념의 의미를 묻고 나서 부분의 사전들 에서 제시되는 번역, ‘that-ness’는 정확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 고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41) 우선 린트너는 ‘that-ness’라는 말이 의미를 가지자면 무엇에 한 ‘그것임’이어야 하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39)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20~21. 40)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21. 41) 이 맥락에서 부사적 용례는 고려되지 않는다, 지시사적 용례만이 논의되고 있 다.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217

그리고 또 린트너는 ‘tattva’가 베다에 나타나는 개념도 아니고 초기불교는 물론이고 초기 자이나 경전에도 나타나지 않는 개념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다.42) 그래서 결국 질문은 ‘tattva’가 어떤 맥락에서 언제 그리고 어떤 의미 로 불교 안으로 도입된 개념일지를 따져야 한다고 하는데, 이 개념의 의미 는 이 개념의 개념사를 통한 해명으로 돌려지는 셈이다. 린트너는 ‘tattva’개 념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후기 우빠이샫(Upaniṣad) 텍스트들이라고 말 한다. 구체적으로 ?문다까?(Muṇḍaka), ?까타?(Kaṭha), ?쉬베따쉬바따라? (Śvetāśvatara), ?마이뜨라야니?(Maitrāyaṇī) 등인데, 이 텍스트들에는 모두 이 용어 ‘tattva’의 의미에 한 공유가 전제되어 있으며, 따라서 ‘tattva’개념의 출처로 추적되어야 할 텍스트는 초기 우빠니샫인 찬도갸(Chāndogya)가 제시 된다. 해당되는 내용은 ?찬도갸우빠니샫? 안에서 여러 군데에 보이는 구절 인데 다음과 같다. “sa ya eṣo ’ṇimaitadātmyam idaṃ sarvaṃ tat satyaṃ, sa ātmā, tat tvam asi Śvetaketo iti; bhūya eva mā bhagavān vijñāpayatv iti.”43)

42) 린트너의 불교전통에 한 해석이 역사적인 붇다 자신의 세계관과 연관된다 기보다는 우리가 ‘승불교’라고 부르는 큰 흐름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중관 불교 전통에 연관된다는 사실도 함축하고 있다. 43) 이 구절은 논의의 전개를 위해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21에서 제시한 형태 그로 인용한 것이다. 린트너는 올리벨(Olivelle)의 번역 을 인용하여 제시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다: “The finest essence here—that constitutes the self of this whole world; that is the truth; that is the self (ātman). And that's how you are, Śvetaketu.—Sir, teach me more.” 이 구절은 원래 ?찬도 갸우빠니샫?의 6.8~6.16에서 후렴구처럼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구절이다. 문제 는 각 후렴구의 위치에 따라 이 텍스트 안에서도 구문상으로 올바른 해석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경우들이 있다는 점이다. J. P. Brereton, “‘Tat Tvam Asi’ in Context”, Zeitschrift der deutschen morgenländischen Gesellschaft, Bd. 136, 1986, 98~109. 이 이 문제를 집중해서 다루고 있는데, 결국 원래 이 구절의 출처는 6.12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다른 위치에서의 사용은 구문상 다 르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따라서 이 구절이 더 확장된 다양한 맥 락에서 사용될 때에는 적확한 이해를 위해 이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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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기의 극미한 저것, 이 모든 것(세상)의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 그것이 진리이고 그것이 자신이며 그것이 너이다, 쉬베따께뚜야! “더 가르 쳐 주십시오!” (라고 쉬베따께뚜가 말했다.)

이 자주 등장하는 구절이 담고 있는 내용이 바로 우주와 소우주의 일 치를 가르치는 것이고, 따라서 궁극적으로 상(tat)이 바로 주관(tvam)과 같 다는 주장의 내용이라고 종종 해석된다.44) 우빠니샫 텍스트들이 성립된 이 후 이 맥락이 널리 일반화되고 반복되면서 전승되다 보니 ‘tat-tvam’(그것이 너)라는 말 자체가 ‘tat tvam asi’(그것이 너이다.)라는 문장에서 나온 것이며, 그 내용이 ‘tat’과 ‘tvam’이 같다는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이 전개 되었고, 그 결과 이 표현 자체가 관용화 되어 ‘tattvam’으로 전용되었다는 것이 린트너의 기발한 설명이다. 이렇게, 최소한 문법적인 형태로는, 오해에 의해 생겨난 ‘tattvam’이라는 표현이 우주와 소우주의 일치를 가르치는 내 용이라는 사실이 누구에게나 알려진 상황에서 ‘tattvam’이라는 간략한 표현 은 아주 많은 내용을 담은 표현으로 ‘진리’의 의미를 나타내는 지배적인 표 현이 되었다는 것이 린트너의 주장이다. 따라서 ‘tattvam’은 ‘ekatvam’(하나 임)과 ‘advayam’(둘이 아님)의 동의어가 되었으며45) 이 개념이 불교전통 안

수많은 용례는 결국 브레르튼의 표현로 ‘철학적’으로는 맞는 것들이지만 ‘구문상’으로는 잘못된 경우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구절이 이렇게 사용 될 때에는 구문상의 일치는 무시될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인도철학사 전 개의 양상이었다. 44) 차원이 다른 층위의 세계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거나 나아가 아예 일치한다 고 하는 주장에도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또 다르게, 이러한 동일성에 한 주장이 곧바로 인식이나 경험의 맥락에서 상과 주관이 동일하다는 논리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점에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린트너가 하고 있는 해석은 중 관불교 이후의 불교사상이 지향하는 방향을 전제로 한 해석이어서 현재의 맥락 안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한 문제가 없을 수 있다. 45)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21: “So tattvam is a synonym of ekatvam and advayam. It simply means identity, and it was introduced into Buddhism by brahmans who adopted it from their own tradition.”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22: “It is a new word for the old ekatvam, but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219

으로 수용되어 불교적인 맥락을 가지고 사용되게 된 결과가 바로 우리가 앞서 Yuktiṣaṣṭikā(?60가지 논리?)에서 보게 된 내용이라는 설명을 린트너는 덧붙인다. 결국 린트너의 입장은 베다와 베다전통이 전제하는 제사의식의 효용성 그리고 출생을 근거로 한 사제 계급의 우월성에 한 반를 견지하는 면 에서는 불교가 베다전통을 벗어나 있지만 그 외의 모든 면에서, 즉 세계관 의 구성과 이를 위해 동원된 개념 틀의 면에서, “신흥 브라흐만전통”46)이라 고 이해하고 있다. 이상의 논의에서 분명해진 것처럼 린트너의 ‘tattva’에 한 이해는 불교전통 전체의 사상사적 위치에 한 태도와 맞물려 있다. 베 다로 표되는 인도아리안의 세계관을 근본적인 문화적 맥락으로 삼아 불 교가 생겨나고 발전했던 사실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흔히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주로 한문 번역텍스트에 기반하여 구축 된 불교전통에서 인도 자체의 역사적 맥락과 괴리된 채로 자신들의 이해와 입장을 인도불교의 전통에 투사하는 것처럼 이러한 해석에 해 반응해서 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인도종교사의 맥락 안에서는 당연한 일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다. 길게 논의할 맥락은 아니지만, 린트너의 주장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적 현실과 역사의 변화라 는 연속적인 현상이 흑백논리의 틀 안에서 나중의 것이 이전의 것과 같은

the connotation is a bit different because ekatvam has a somewhat wider range of meaning. The word tattvam primarily belongs to an epistemological context, the word ekatvam to an ontological (metaphysical).” 46)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22: “Apart from that ancient Indian Buddhism should be seen as reformed Brahmanism.” 린트너가 이 문장에 붙여 제시한 각주,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33, n. 3에서 언급한 내용을 예로 제시하고자 한다. Varṇaśatam (백 가지 묘사)이라는 붇다 의 100가지 별칭에 한 찬양을 담은 텍스트에서 붇다는 agraprāpta, ṛṣisattama, gambhīira, traividya, dharmastha, brahmaprāpta로 서술되어 있다. 이 모든 개념들 의 내용을 서술하는 것은 지면의 제한으로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린트너가 말 하는 방식으로 “붇다야 말로 진정한 브라흐만(true Brahman)”이라고 하는 태도 가 불교도들에게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철학논집(제43집)220

지 아니면 다른지의 질문으로 다루어질 수 없다는 것도 당연하다. 불교의 발전 또한 마찬가지라고 보인다. 또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불교도들이 큰 틀에서 볼 때 브라흐만 전통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는 있지 만, 린트너가 주장하는 목은 종교의 아주 다양한 측면들 중의 아주 작은 한 부분, 즉 세계관에 한 철학적 담론을 근거로 한 분석이다. 다시 말해 서 린트너의 분석처럼 불교도들의 차별성이 거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철 학체계 구축의 측면에서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그 차별화의 실패가 곧바로 일상의 종교를 지배하고 구분짓는 구체적인 생활에서의 구분을 만드는 일 에서의 차별성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47) 또한 초기불교 이 래로 인도에도 이미 다양한 형태의 ‘불교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바, 린트너 가 다루고 있는 방식의 세계이해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전통이 아닌 전통 들에 해서는 린트너가 보여주는 분석이 갖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 다는 사정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들 중의 하 나는 린트너가 보여주는 승불교 단계에서의 세계관 구축에서 불교가 기 존 인도 종교전통들과의 차별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도에서 불교 가 소멸한 것과 강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48) 지금의 맥락에서 논의 할 내용은 아닌지라, 논의를 tattvam개념 자체에 집중하고자 한다. 실제로 ‘tat tvam asi’라는 문장은 우빠니샫 철학의 핵심인 것처럼 널리 알려져 있고, 과거에도 그만큼 회자되고 공유된 내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린트너가 말하듯 마치 고정된 단어로 사용되는 듯이 이 표현이 사용될 만 큼 관용화된 표현이기도 하다.49) 하지만 린트너는 ‘tat tvam asi’라는 문장에

47) 예로 아주 작은 이론적인 차이, 즉 채식을 하되 유제품을 먹는지 마는지, 혹 은 채식을 하되 뿌리 부분을 먹는지 마는지 등등의 결정은 이론상으로 큰 차이 를 만들지 않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생활의 측면에서 사회적인 집단을 구분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48) 물론 여기에는 종단 재산의 소유관계 규정 등의 다른 구체적인 물적 측면들 이 개입되는데 지금 논할 바는 아니다. 49) 특히나 일원론적 입장의 베단따(advaita-vedānta)전통에서는 베다 전승의 가르 침을 표하는 표어(mahāvākya)라고 간주되기도 한다. Avadhūtagītā(약 9~10세 기)라는 일원론적 베단따 전송에 속하는 텍스트에서(1.25) 이러한 예를 볼 수

인도철학에서의 ‘진리’ 개념 221

서 왜 동사 ‘asi’는 빠진 채 ‘tat-tvam’만이 일반적인 ‘진리’ 개념으로 사용되 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이렇게 ‘진리’개념 으로 사용되었을 때에, 왜 원래 인칭명사 2인칭 임자격(nominative)이던 ‘tvam’이 taddhita-뒷토로 인지되고 해석되어 왔는지는 설득력 있게 해석할 수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50) 결국 린트너의 내용적인 해석, 즉 후기 베다의 세계관에서 주장되던 우주와 소우주의 (구조적) 동일성은 굳이 ‘tat-tvam’이라는 문장이 아니더라도51) 지시명사 ‘tat’의 내용으로 해석되어 모두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점이 바로 그의 기발

있다. tattvamasyādivākyena svātmā hi pratipāditaḥ. neti neti śrutir brūyād anṛtaṁ pāñcabhautikam.(“그것이 너이다” 등등의 문장을 가지고 자신의 아뜨만이 제시 된다. “(이것이)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라고 (하는 전승은 따라서 자아로 서) 참된 것이 아닌 다섯 요소로 이루어진 (육체)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 목에서 ‘tattvamasi’라는 문장의 관용적인 용례가 굳어지다 보니 문장 자체 가 -ādi로 끝나는 bahuvrīhi-복합어의 앞자리말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잘 보 인다. 50) 명목상으로는 고전쌍쓰끄리땀의 문법을 규정하기 때문에 빠니니의 문법체계 를 고전쌍쓰끄리땀의 문법체계라고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빠니니가 다룬 언어자료는 많은 경우 베다말기의 언어현상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어 서 기계적으로 베다의 언어와 구분되는 고전쌍쓰끄리땀을 다룬다고 할 수는 없다. 린트너도 고전쌍쓰끄리땀을 근거로 만들어진 인도의 전통 문법 체계에 서는 부자연스러운 명사의 용례들이 우빠니샫 시기에 흔하게 있었음을 지 적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은 복합어 안에서의 예외적이 사용형태들에 제한된 지적이다.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21: “As we can see from other compounds such as ahamkāra, mamakāra, ahamahamikā, idaṃpratyayatā, etc., it was not at all uncommon in those days and in those circles to use pronouns for the formation of a substantive with a specific philosophical meaning.” 그리고 ‘tat’이 지시명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 용례 로 구체적인 철학적 맥락에서 ‘tat-tva’라는 추상명사를 만들어 내는 경우를 앞 서 부사적 용례들의 실례에서 살펴보았다. 51) ‘tat tvam.’도 동사가 생략된 명사구문(nominal sentence)으로 사용되는 데에 문 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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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tattva(m)’해석이 학계에 거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설득력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린트터가 제시한 ‘tattva(m)’ 개념 해명의 부족함 때문에 그가 지적한 모든 내용들이 무용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서 ‘tat tvam asi’의 해석에서 린트너가 ‘tat-tva(m)’에 담고 싶어하던 내용이 모두 ‘tat’에 담겨 있게 된다면 우리가 해석하고자 하는 추상명사 ‘tat-tva’의 ‘tat’이 가리키는 바는 바로 우주운행의 절적인 원리이자 우주의 궁극적인 일원성의 근거 가 되는 중성명사 brahman 혹은 ‘ṛta’ 혹은 ‘satya’가 되는 셈이어서, ‘tattva’ 의 의미로서 ‘그것임’에서의 ‘그것’은 임의의 상이 아니게 된다. ‘tat-tva’ 의 ‘그것임’은 바로 우주의 일원성을 이루는 근거가 되는 궁극적인 원리임 을 가리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필자가 받아들이고자 하는 ‘tattva’에 한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린트너는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는데, 이에 하여 린트너가 밝힌 이유가 있다. 그 요지는 바로 ‘그러함’은 ‘어떤 무엇의 그러함’인지가 밝혀 지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52) 이에 해 필자는 린트너가 묻는 “that-ness”의 “that”은 곧 brahman (n.)혹은 ṛta 혹은 satya이고 이 우주 전체이 자 인식하는 주체인 ‘나’이기도 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우주의 궁극 적인 일원성을 담보하는 근거로서의 ‘그것은’ 바로 ‘모든 것’ 자체여서 그 것이 포괄하지 못하는 그것 이외의 다른 것을 상정하여서 비교하거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임’은 다른 어떤 것을 전제하고 나서, 그 다른 것의 ‘그것임’이 아닌 어떤 ‘그것임’이라고 서술될 수 없다.53) 이 목에서 필자가 다시금 불교의 중관전통이나 중관전통의

52) Ch. Lindtner, “From Brahmanism to Buddhism”, 21: “First of all, if tat-tvam means “that-ness” we should ask: “that-ness” of what? The context requires a genitive to express the possessive relationship. It is not clear what “that” is, and what “that” is said to be. There is no such relationship when we speak of tattvajñāna, tattvadarśana, etc.” 53) 앞선 각주 49에 인용한 Avadhūtagītā 1.25에 보이는 “neti neti”를 이해하는 표 준 해석이 그렇고, 앞서 인용된 Yukti ṣ a ṣṭ ikā 5~6의 표준 해석 또한 그렇다. “tat tvam asi"의 tat을 brahman, ṛta, satya 중 어느 것으로 해석할지는 인도철학 전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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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강하게 받은 일원론적 베단따 전통의 논변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의도된 것이다. 왜냐하면 린 트너의 논의 자체가 중관전통에 제한되는 방식의 전거와 해석을 통해 불교 를 다루고 있는 측면이 분명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 이러한 방식의 논증을 이미 ?냐야쑤뜨라?에 나타나는 모든 것의 비어있음(śūnya)을 주장하는 불교도들이 하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 즉 초기불 교와는 맥이 다른, 이 논증의 맥락 안에 나타나고 있는 불교전통이 수용한 베다전통의 맥락을 보여주고 있어서,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tat’의 의미, 혹은 최소한 그 함축과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른 중요한 사실은 ?바이쉐시까쑤뜨라?의 예에서 보이듯, ‘tattva’가 사용될 때에는 그것 이 가리키는 상이 갖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통일성과 일체성을 함 축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가리키는 상이 굳이 초 월적이라고 불러야 할 브라흐만이 아니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바이쉐시까 쑤뜨라? 2.1.26~27을 보면54)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진 소리가 우리의 귀에 전달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감각지각으로 감지하기가 불가능하지만 그 존재를 인정해야만 하는 실체인 아까샤(ākāśa)가 다루어진다. 26: liṅgam ākāśasya [소리는] 아까샤가 갖는 특징적 속성이다 27: drvyatvanityatve vāyunā vyākhyāte [아까샤]가 갖는 실체임과 원성에 해서는 바람[에 한 논의]를 통해 설명되었다.

안에서도 다양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이 단어를 연결사로 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분량제한과 맥락상 후속 논문에서 다루고자 한다. 앞선 각주 43의 둘 째 단락을 보라. 54) 앞서 인용한 W. Halbfass, on Being and What There Is, 1992에서는 II, 1, 28~29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편의상 Jambuvijaya, Vaiśe ṣ ikasūtra of Ka ṇ āda with the Commentary of Candrānanda critically edited, Baroda, 1961의 번호매김과 말 모양을 따르기로 하겠다. ?바이쉐시까쑤뜨라?의 경우 문헌학적인 문제가 복잡 하고 심각한 경우여서 쑤뜨라 번호매김부터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고 쑤뜨라 의 말모양 차이는 심각하지만, 지면관계상 언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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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샤를 종종 어로는 ‘ether’라고 번역하고 한국말로는 ‘허공’(虛空)이 라고 번역하는데, 전자의 번역이 갖는 심각한 문제는 아까샤가 인도전통의 맥락에서는 빛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가공의 물질이 아니라 소리를 전달 하는 역할을 하는 이론상의 실체라는 사실에 있고, 또 그것이 직접 지각되 지는 않더라도 통일성을 가진 개체로서 다루어질 만한 어떤 실체여서 ‘공 간’과는 다른 면이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55) 그리고 바람(vāyu)은 우리의 촉각을 통해 느껴질 때에는 존재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그것의 존재 자 체를 확인할 다른 방법이 없는 상이다.56) 아까샤도 바람도 그 자체가 어 떤 통일된 단일한 상일 것 같은데 일상적인 인지작용의 상과는 다르고, 또 그 전모를 감각지각으로 확인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상 들을 가리키는 맥락에서 ‘tattva’ 개념이 사용된다면, 바로 필자가 이해하고 자 하는 초월적이고 단일체인 실체를 가리키는 함축을 갖는 개념이어서 반 드시 우주운행의 원리인 브라흐만을 가리키지 않더라도 ‘tattva’의 지시사적 용례에 정확하게 부합한다고 보인다. 마지막으로 짧게 또다른 주요 인도철학 전통이자 고 인도의 자연관을 표하는 전통인 쌍캬전통에서의 ‘tattva’를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이 우주 의 모든 것을 만들어낸 원초적인 물질을 샹캬(Sāṅkhya)전통에서는 ‘쁘라끄 리띠’(prakṛti, 원초 형태)라고 한다. 이에 반해 순수한 적인 원리라고 해야 할 뿌루사(puruṣa)는 우주의 생성과 전개과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 만 뿌루사에 의해 촉발된 쁘라끄리띠의 전개과정에서 파생된 것들이 있는 데 이것들은 buddhi(의식), ahaṅkāra(자의식),57) 5개의 tanmātra(물질적 상의 근본 요소들) 등등이다. 샹캬전통에서도 종종 ‘tattva’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55) 이에 해서는 바이쉐시까 전통 안에서도 논쟁이 많고, 불분명한 점도 많다. 자세한 것은 W. Halbfass, on Being and What There Is, 1992, 74 이하를 참조 하라. 56) ‘vāyu’는 ‘공기’가 아니다. 공기는 움직이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상이지만, 바 람은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그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 상이다. 57) 의식작용도 쁘라끄리띠의 전변이 낳은 결과이다. 뿌루사는 직접 우리의 인지 작용과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뿌루사를 ‘정신적’이라고 하는 데에는 큰 오해의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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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모두 근원물질 쁘라끄리띠의 직접적인 발현형태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 용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바로 모든 개별적인 상, 혹은 외 부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을 무작위로 ‘tattva’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는 사실이다.58) 이렇게 지칭되는 것들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상들이 아니라, 다양한 현실의 상이 드러나도록 원초 형태가 전변되는 과 정에서 존재했거나 그러한 전이과정의 배경에 존재하는 것들을 말한다. 여 기에서 지칭되는 ‘tat’의 상은 다양성 뒤에 자리잡은 통일성을 가진 세계 를 이루는 상들인 셈이다.

VIII.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tattva’는 인도철학사에서 지시사적 용례와 부사적 용례 모두의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을 가진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 두 용례는 초기 냐야텍스트들에 이미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두 용례의 결합이 바로 인도철학사에서 사용되는 ‘진리’ 개념으로 제시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역사와 용례를 가진 개념으로서 ‘tattva’를 자리잡게 한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인도철학사의 자료를 소화해야 하는 우 리는 이 두 용례가 갖는 간극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 용 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58) 이 맥락에서 사용되는 ‘tattva’와 ‘pradhāna’가 앞서 인용한 ?냐야쑤뜨라? 4.2.7 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지의 문제는 열린 질문으로 남기겠다. 인식상으로서 경험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상들을 개별적으로 가리키는 용 어들은 인도철학사 안에서도 다양하게 고안되고 사용되었다. 인식의 근저가 된다 는 의미에서의 ‘ālambana’, ‘āyatana’ 그리고 아주 구체적인 물질적인 상이라는 의미에서의 ‘piṇḍa’, 우리의 경험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의미에서의 ‘dhātu’, 특 정한 인식활동의 상역이라는 의미에서의 ‘viṣaya’ 등의 많은 용어들이 사용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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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Concept of ‘Truth’ in Classical Indian Philosophy I: ‘Tattva’

Kang Sung-Yong (Seoul National Univ.)

The usage of the term “truth” in Indian history of ideas frequently throws the general reader into confusion. An attempt is made, at first, to sort out major concepts in Sanskrit corresponding to “truth” in English. They are analyzed and contextualized to select some of them out deserving serious academic discussions in the context of research in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one of them, “tattva” is analyzed in its morphological (yaugika) and pragmatic (rū ḍ ha) aspects based mainly on the texts belonging to early Nyāya tradition. The major argument is that we can differentiate two usage of the term “tattva” in the sense of “truth”, one in adverbial usage in the sense of “such-ness”, and the other in pronominal usage in the sense of “that-ness”. Considering and modifying preceding researches, the opinion is stated that these two usages of the term “tattva” have their own cultural context and are ready integrated parallel into the text, the Nyāyasūtra and explained in the Nyāyabhā ṣ ya accordingly. The adverbial usage alludes to an epistemological stance of correspondence theory and seems to have built up the semantic basis for the widespread adoption of this term for “truth” in the diverse philosophical traditions on the basis of its rather neutral connotation. In case of pronominal usage of the term “tattva”, the referential connotation is in the kernel of the complex of the meanings and some sort of ontological commitment is alluded to. This usage stands out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the debates on ontological status of o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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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jective world between Nyāya and Buddhist traditions. The reason why the term has got such a strong connotation of ontological commitment is guessed to be found in the Upaniṣadic traditions in which the universal principle, brahman (n.) was referred to by the word “tat”. This procedure could be also traced in the Buddhist records attributed to Nāgārjuna in distinct way, as demonstrated by Ch. Lindter, though some parts of his evaluation, at the end, is hard to be agreed by the author. Dividing and clarifying different layers of meaning attributed to “tattva” could be of some use for further research in the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and will allow to step next to analyze some other concepts meaning “truth” in Indian traditions, for example “satya” in the sense that it should be placed in fully different context, distant from the correspondence theory in epistemology, of Indian history of ideas.

Key words: Indian Philosophy, Nyāya, Nyāyasūtra, Truth, Tatt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