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조(僧肇)의 조론(肇論)>
---승조(僧肇) 법사 이야기---
승조 법사 상
승조의 임종게
<조론(肇論)>의 저자 승조(僧肇, 384~414) 법사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220~589) 후진(後秦)의 승려로서, 세속의 성은 장(張)씨였다.
그는 서역 구자국(龜玆國, 쿠차) 출신 역경승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년)의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구마라습을 따르는 문도가 3000여 명에 달했고, 그 가운데 80여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다는데, 그중에서도 특출한 4명의 제자 도생(道生), 승예(僧叡), 도융(道融), 승조(僧肇)를 구마라습 4철(四哲)이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승조는 특히 논의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승조는 구마라습을 따라 후진의 수도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으로 가서 승예 등과 함께 구마라습의 역경사업에 참여해 경론을 깊이 연구했다. 특히 그는 반야학(般若學)에 뛰어나 구마라습의 문하에서 ‘공(空)’의 이해에는 제일이라 해서,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수보리처럼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칭송받았다.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서역에서 중국에 건너오기 전 중국 불교는 불법의 경전이 희소해 불교의 대의를 바로 알지 못하고, 노장학(老莊學)에서 말하는 허무주의의 담론에 젖어 이를 불교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청담현학(淸談玄學)을 즐기던 당시의 도가적(道家的) 불교 지식인들이 도가의 개념을 빌어 공(空) 사상을 논의했는데, 이와 같이 중국 고유의 이념을 불교로 빌어 와서 ‘의미의 짝 맞추기’하는 식의 것을 격의불교(格義佛敎)라 한다.
이 때문에 당시의 고승이나 사상가들은 불교에서 설파한 공(空)과 실상(實相)의 언어적 개념이 실제로는 둘이 아닌 중도(中道)의 이치임을 모르고, 이를 기존의 노장학에서 말했던 허무사상으로 잘못 오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마침내는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한 저술까지 유행해 불교의 근본 대의인 중도사상을 크게 오도하고 있었는데, 진(晉)나라 도항(道恒)의 <무심론(無心論)>과 도림(道林)의 <즉색유현론(卽色遊玄論)>, 그리고 축법태(竺法汰)의 <본무론(本無論)> 등이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승조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서 그들의 잘못된 견해를 타파하고 불교의 진실한 대의를 밝히기 위해 중국불교사상에서 불후의 금자탑이라 할 <조론(肇論)>을 저술하게 됐다. 즉, <조론>이 출현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가 이들 범부들의 잘못된 미혹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헌데 <조론>에 사용된 단어는 모두 2만 단어에 미치질 못하고, 네 편에 지나지 않는 짧은 논문이지만 실로 위진(魏晉) 격의불교시대 최고의 정화(精華)로 추앙돼 마지않는다. 그리고 이 짧은 논문 속에 포함된 의미는 방대해, 부처님이 45년간 설파하신 경전의 골수를 남김없이 포괄했으며, 그 의미를 끝까지 추구하지 않음이 없었다.
승조 역시 노자(老子), 장자(莊子)를 좋아했는데, 불경 <유마힐경(維摩詰經)>을 읽은 뒤 감동을 받고, 불교가 사상의 귀의처라고 생각해 출가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구마라습을 계승해 불교를 중국화 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대에 앞서가는 그의 뛰어난 사상과 학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주위 사람들의 시기 질투 때문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비극적인 일생을 마쳐야만 했다. 이렇게 요절한 천재 승조가 그간에 지은 저술이 둘 있는데, 그것이 <조론(肇論)>과 <보장론(寶藏論)>이다. 그 중 <조론>은 그가 20대에 집필한 논문집이라니 그 위대한 천재성이 놀라울 뿐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따르면, 승조는 자기를 등용하고자 하는 황제의 권유를 거부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젊은 나이에 처형됐다고 한다. 권력자가 미숙하면 이런 만행이 저질러지는 것이다. 오늘날 북한에선 김씨 삼대에 의해 저질러진 악행으로 수많은 인재들이 처형됐다. 그들 속에는 희대의 천재들도 수두룩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 숨겨져 있지만 세월이 지난 훗날엔 승조처럼 요절해간 천재들의 이야기가 분명 역사의 전면에 나타날 날이 있을 것이다.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숨져간 억울한 주검들의 진면목이 되살아날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본다.
당시 승조의 학식과 뛰어난 인품은 조정에까지 소문이 났다. 그러자 후진(後秦)의 황제 요흥(姚興)이 그에게 벼슬을 살아달라고 청했다. 그리하여 요흥이 말했다.
“스님은 환속해 재상이 됐으면 하오. 지금은 천하가 갈라져 쟁패를 거듭하고 있으니 스님 같은 분이 나오셔서 지혜를 보태면 요순의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요. 이것 또한 중생을 크게 이롭게 하는 것이니 스님은 청을 거절하지 말기 바라오.”
그러나 승조는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
“일국의 재상이란 다 꿈속의 일입니다. 저는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얻어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소원이니 제발 저를 오라 가라 하지 마십시오.”
요흥은 거듭 청했으나 승조는 그때마다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리 청해도 듣지 않자 화가 난 요흥은 승조를 옥에 가두고 '거듭 거절하면 목을 치겠다'고 했다. 그래도 승조는 막무가내로 거절했다. 요흥은 승조를 다른 나라에서 데려가면 큰 인재를 잃을 것이니, 그 게 두려워 정말로 죽이려 했다.
이에 승조는 '꼭 죽이려면 이레 동안 말미를 달라'고 했다. 그런 뒤 붓과 종이를 청해 글을 썼는데, 이것이 승조의 또 다른 저서인 <보장론(寶藏論)>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쓴 승조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임종게를 남기고 칼날 아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대는 원래 주인이 없고(四大元無主)
오온은 본래 공한 것일세(五蘊本來空)
칼로 목을 친다 할지라도(將頭臨白刃)
이는 봄바람을 자르는 것(恰似斬春風)
공(空)을 주제로 한 게송으로 시문이 비장하고 장엄하다.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은 육체와 정신이란 말이다. 내 몸뚱이가 주인이 없는 물건이라는 말이다. 마음이니 정신이니 하는 것도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이란 말이다. ‘칼날이 내 목을 내리쳐도 봄바람을 베는 것에 불과하리라’고 한 이 말에서 과연 승조는 공의 달인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승조의 사상은 공(空)에 있다. 그는 철저히 공을 체득해 남다른 경지를 체험한 인물이다. 위의 임종게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보장론>이 승조의 저술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8세기경에 누군가 승조의 이름을 빌려 쓴 위서(僞書)라는 것이다. 문체나 내용에 승조의 <조론>과 차이가 있어 후대에 위탁(僞托)한 것이라고 한다.
<조론(肇論)>은 승조가 저술한 대표작으로 반야부 경전에서 설한 공의 이치를 논한 책이다. 만유제법이 자성이 없어 모두가 공한 것이나, 그것은 상대적 공이 아니라 절대적인 묘공(妙空)이라고 주장해 공을 천명한 내용이다.
이렇게 공에 대해 철저한 이론을 내세운 승조의 주저 <조론(肇論)>은 물불천론(物不遷論), 부진공론(不眞空論),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등 4편의 논문에 종본의(宗本義) 1편을 더해 편찬한 것으로, 이후 중국 불교계는 물론 유학을 비롯한 중국 사상계를 지배한 명저가 됐다.
여기서 ‘종본(宗本)’이란 수립한 내용의 일관된 종지(宗旨)란 말이며, 종본의(宗本義)란 근본 종지(宗旨), 가르침의 근본 뜻이란 말이다. 네 논문을 한꺼번에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논문들이 완성되고 나서 종본의로써 네 논문을 하나의 일관된 이치로 통괄한 것이다.
그 네 논문을 관통하는 종본의(근간의 으뜸인 것), 즉 종본은 ‘한 마음’이다. 일심(一心)이 종본인 것이다. 이로써 객관의 현상인 만법과 인식의 주관인 범부의 미혹과 성인의 깨달음을 근원적으로 추궁했다.
이는 <대승기신론>에서 일심(一心)으로써 논문의 근본 주체를 삼은 경우와도 같다. 네 논문에는 일심의 법과 그 법에 대한 의미가 함께 있기 때문에 이를 종본의로 삼은 것이다.
승조 법사는 대승불교 공(空), 그리고 반야공관(般若空觀)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한 중국 최초의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중국 불교 최초의 논문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불교의 기본명제인 공(空), 반야(般若), 열반(涅槃) 등을 노장사상(老莊思想)과 비교하면서 서술했다.
명(明) 대에 <조론약주(肇論略註)>를 남긴 감산 덕청(憨山德淸, 1546~1623)의 견해에 따르면, 물불천론(物不遷論)은 불교의 현상론에 해당하고, 부진공론(不眞空論)은 불교의 본질론에,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은 본질과 현상에 대한 인식론에,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은 수행의 결과론에 해당한다고 했다.
즉, 현상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를 논한 <물불천론>,
본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논한 <부진공론>,
현상과 본질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론인 <반야무지론>,
깨달음의 결과를 논한 <열반무명론> 등 총 4편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
※아래는 <조론(肇論)>에서의 <물불천론(物不遷論)>의 내용이다.
「物不遷論第一. 夫生死交謝. 寒暑迭遷. 有物流動. 人之常情. 余則謂之不然. 何者. 放光云. 法無去來. 無動轉者.
제1장 물불천론(物不遷論)이다. 대체로 [중생에게서] 생(生)과 사(死)가 교대로 바뀌고, [대지에서] 혹한과 폭서가 번갈아 변천하고, 사물에서 흐름과 운동이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적 정감이다. 나는 오히려(則) 그렇지 않다고 이른다. 어째서인가?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에서 이른다. ‘법들에는 떠나감과 다가옴이 없고, 운동과 전변이 없다.’」
여기서 사물의 동(動)과 정(靜)의 현상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람이란 청년일 때나 노인이 됐을 때나 그 몸은 같은 형질이긴 하나 늙음과 젊음이 같지 않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처럼 하얗게 변하듯 외형의 모습은 변한다. 이를 <조론>에서는 ‘천류(遷流)’라고 표현했다.
「‘천류(遷流)’라는 것은 변화하며 움직인다는 뜻이니 ‘예’로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이 바로 천류다. 그런데 왜 자동차가 달리지 않는다고 할까?
움직인다는 것은 비교대상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인데, 비교대상이 없으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테두리가 없는 끝없는 텅 빈 허공 가운데를 자동차가 달린다고 하면, 그리고 그것을 보는 자가 없고 또 비교대상이 없다면, 누가 그 자동차를 움직인다고 판단할 것인가.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말한다면 아직 이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결국 움직인다는 것도 보는 자가 있어야하고 비교대상이 있어야한다. 가령 아공(我空), 법공(法空)에 의해 내 몸과 마음이 사라지고 나면, 그러니까 하나의 책상을 볼 때에도, 책상이라는 나의 주관적 관점이 사라지고 없으면, 객관적인 그 책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책상은 모양이 사각형이고 높이는 한자며 길이는 석자다. 과연 이러한 분석은 올바른 것일까?
그리고 내 마음(과거의 정보)을 떠나서 이 세상에 사각형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즉, 삼각형이나 동그라미라는 비교대상을 떠나서 사각형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책상도 보는 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 사람이 보면 모가 난 책상으로 보이지만 개미가 보면 넓은 광장으로 보일 것이다. 사람보다 큰 사천왕 같은 천인(天人)이 보면, 책상은 너무 작아서 먼지처럼 보일 것이므로 세모인지 둥근지 구별할 수가 없으니 관심이 없을 것이고, 먼지 같이 미세한 진드기가 보면, 나무의 세포까지 다 보이니까 이리저리 얽혀있는 밀림의 숲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책상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것은 누구도 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자기의 업(축적된 과거의 정보)대로 보기 때문이다. 만약 사각형이라는 독립된 자성을 가진 물체가 있다면 우리는 그 물체를 알아볼 수 있는 길이 없을 것이다. 자기의 고유한 자성(自性)을 가진 것을 무슨 수로 알아볼 수 있겠는가.
자기만의 고유한 자성(自性)을 가졌다는 것은 연기(緣起)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홀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자신의 실체를 가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우주가 탄생하거나 깨어지거나 또는 깨어지지 않건 관계없이 그것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비교 없이도 홀로 존재하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판단하거나 분석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비교에 의한 과거에 저장된 정보대로만 판단할 뿐이므로, 이 정보 바깥에 그 무엇도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뒤집어 말해, 그것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조차 판단 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며 태풍이 몰아칠 때, 이것에 대해 나의 주관적 관점(상대적 비교를 통해서 인식하는 방법)이 빠지면 이 현상은 우리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그래도 움직임이 있을까? 아니다.
당연히 움직이는 모습[遷流]이 사라질 것이며, 천지를 뒤집으며 몰아치는 그 모습도 그냥 그대로 조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라보는 나의 주관적 관점이 없으면 현상은 조용하고 움직임이 없다. 태풍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사라지면(즉 내가 없어서 두렵거나 경계해야 할 걱정이 없으면), 그 나타난 대상은 아무 의미가 없어 그냥 텅 비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설혹 처형장 망나니의 칼날일지라도 그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칼날에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즉, 죽을 내가 없으면 칼날은 허공과 같아 움직여도 움직임이 없는 것이다. 마치 태풍의 휘몰아침도 내가 없으면 조용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없듯이, 모든 것이 그렇게 편안하고 흔적이 없는 것이다.
결국 움직이지만 움직임이 없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아(無我)의 도리이며, 미움과 원망 속에서도 미움과 원망이 없는 것을 보는 것이 바로 자유며 해탈이다.」 - 정암 스님
우선 우리는 지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 수가 없다. 일부 안다고 하지만 극히 일부일 뿐 은하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들 인식의 한계는 극히 제한적이다. 또 은하계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일어났다고 하자, 그래도 그것은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지각할 수 있는 한계 밖의 일이니까 의미가 없다. 즉, 지구상의 일이든, 지구 밖의 일이든 나의 주관적 관점이 없으면, 인식의 한계 밖에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텅 빈 일일 수밖에 없다.
「젊음에서 늙으므로 변해가는, 그 천류하는 모습은 변함이 있는 듯하나, 실제로 젊은 시절의 얼굴은 스스로 과거 젊은 시절을 따라가 있지 현재의 늙음으로 오지 않았으며, 늙음은 스스로 현재에 머물러 있지 젊음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것이 ‘불천(不遷)’이며, 천류하지 않는다는 의미다.」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사는 몸도 처음 겪는 새로운 몸이다. 일어나고 스러지는 몸, 세계, 사물, 시간, 인과 모두 천류(遷流)하지 않는다. 모든 찰나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라고 했다.
젊음이 늙음으로 옮겨 간 것도 아닌데 실체가 없는 허상을 범부는 미망(迷妄)으로 실체로 여기고 살아간다는 의미다.
장미를 생각해 보자.
여름철 붉은 장미가 때가 지나면 시들어 퇴색한 검은 장미가 된다. 붉은 장미가 자성 곧 실체가 있다면 이는 검은 장미가 될 수 없다. 실체란 불변(不變) 부동(不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퇴색한 검은 장미 안에 붉은 장미가 있고, 붉은 장미 안에 검은 장미가 있다고 한다면 두 개의 장미가 모두 실체(자성)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과 얼음이 형태가 변해도 그 실체는 물이듯이 하나의 사물에 두 개의 자성(自性)이 있을 수는 없다. 하나의 붉은 장미가 시들어(움직여) 검은 장미가 된 것은 자성이 옮겨 간 것도 아니고, 퇴색한 검은 장미가 붉은 장미로 자성이 옮겨 가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붉은 장미가 현재의 검은 장미로 옮겨 온 것도 아니고, 현재의 검은 장미가 과거 붉은 장미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이는 단지 현상이 변한 것으로 보인 것일 뿐이지 자성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불천(不遷)인 것이다.
‘물(物)’이란 관찰할 객관인 현상의 만법을 지적한 말이고, ‘불천(不遷)’은 모든 만법의 자체는 성공(性空) 실상(實相)인데도 일상적인 범부의 허망한 마음으로 모든 만법을 보면 흡사 천류함이 있는 듯하다고 한 것이다.
※성공(性空)이란 모든 사물은 인연의 화합에 의한 것이어서 그 본성은 실재하지 않고 공허하다는 말. 모든 존재의 실상(實相)은 공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조론>에서 말하는 <반야경(般若經)>의 성공(性空)과 육조 혜능(慧能) 이후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성공(性空)에는 차이가 있다.
수ㆍ당 이전, 즉 <조론>에서 언급하는, - <반야경(般若經)>에서 말하는 성공(性空)은 전체를 부정한다. 차안(此岸: 삶과 죽음이 있는 세계)의 망(妄)이든 피안(彼岸)의 진(眞)이든 일체 모든 것이 공(空)이라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이란 의미이다.
반면 육조 혜능(慧能) 이후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성공(性空)은 부분 부정으로, 다만 ‘공(空)’만 허망(虛妄)하고, ‘공(空)’하지 않은 것은 진실(眞實)하다는 의미이다. 즉, 진여(眞如), 불성(佛性-선종에서 말하는 본성 또는 자성)은 ‘진짜 있는 것’이지 ‘공(空)’이 아니다. 참된 성(性)에는 망(妄)이 없으므로 그것을 성공(性空)이라 한다.
이와 같이 <조론>에서 말하는 것과 선종에서 말하는 성공(性空)에는 근본적인 구분이 있다. 따라서 <조론>에서 말하는 성공은 <반야경>에서 말하는 성공을 의미한다. 즉, <조론>에서 말하는 성공(性空)은, 모든 사물은 인연의 화합에 의한 것이어서 그 본성은 실재하지 않고 공허하다는 것이다. 일체개공(一切皆空)을 말한다.
승조 법사는 <물불천론>에서 범부들이 현상적인 존재를 바라보는 데 두 가지 견해가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는 그것들이 정지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가 동일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는 동일하지 않지만 현재의 존재는 과거의 존재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듯 범부들은 동(動)과 정(靜)의 이원론을 가지고 현상을 파악한다. 그러나 승조는 동(動)도 정(靜)도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존재는 움직이지 않는다, 천류하지 않는다고 했다.
논주인 승조 법사는 범부들의 이러한 어리석음을 타파하기 위해 <물불천론>에서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논파했다. 즉, 사물의 현상이란 연기즉공(緣起卽空)으로서의 천류이기 때문에, 천류하나 천류하는 자체는 성공(性空)의 무상(無相)이며, 성공의 무상이기 때문에 천류하는 사물의 자체는 불천의 상(常)이라고 했다.
젊다는 것도 늙었다는 것도 범부의 허망한 마음에 따른 것일 뿐 젊음도 늙음도 없다는 것이다. 젊음도, 늙음도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범부의 눈으로 보면(속제로 보면), 변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 천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체제법이 연기로 머물 뿐 달리 실체가 없는 공으로 보면, 즉 진제의 측면에서 보면, 그 둘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성공(性空)이 바로 가유(假有)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일대교설 가운데서 본질인 진제의 측면을 담론하면, 현상의 사물은 천류(遷流)하지 않는 진여성공(眞如性空)의 상(常)이라 말하고, 현상인 속제를 이야기하면 모든 사물은 찰나찰나에 유동천류(流動遷流)하는 생멸의 무상(無常)이라고 말했다. 이는 상(常)과 무상(無常)의 어느 한쪽에 집착한 범부들의 미혹을 타파해주려고 서로 상반된 언어를 구사했을 뿐이다. 이를 흔히 수처작주(隨處作主)이고, 응병여약(應病與藥)의 방편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러한 상과 무상에 대한 말을 듣고는 상과 무상이 동일하게 일심중도(一心中道)로 귀결시키는 이치를 말했다는 것을 모른다. 그 때문에 도리어 상과 무상으로 상반되게 표현된 언어의 차이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자동차를 생각해 보자. 정지된 자동차와 움직이는 자동차를 보자,
하나의 존재는 크든 작든 동일한 시간 속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한 물건이 동시에 두 공간에 머물 수는 없다. 법에서 움직인다, 변한다는 말은 다른 시공간에 머문다는 의미다. 하나의 물건이 다른 시공간에 머문다면 이는 다른 것이란 의미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 온 것도 아니고, 현재가 과거로 흘러간 것도 아닌 것이다.
움직임이 없는데 중생의 미혹된 마음이 그렇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조론>에서는 다시 이를 이렇게 말한다.
「모든 법의 실상은 당체가 여여(如如)해 본래 흘러가거나, 흘러오면서 움직이고 구르는 모습이 없다. 불안(佛眼)으로 이를 관찰하면 진공(眞空)인 제법은 고요하다. 그러나 범부는 무명(無明)에 미혹한 허망한 견해로 보기 때문에 사물이 천류함이 있는 듯한 것이다. 이것으로 물부천론(物不遷論)의 종지로 삼았다.」라고 했다.
불안(佛眼)으로 관찰한다는 말은 깨달음의 지혜로 본다는 의미다. 가유(假有)를 실유(實有)로 보지 말라는 의미이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움직이는 자동차이든 정지된 자동차이든 이는 허상이다. 실물의 이미지일 뿐 당체는 아니다. 공이다. 그러나 자동차는 실체가 없는 공(空)이지만 현상으로 드러난다. 실체가 없는 것이 현상으로 있기 때문에 이를 ‘묘유(妙有)’라 한다.
묘유로 보이는 자동차의 실체는 공이다. 공(空)인 것이 일심의 연기로 나타나는 현상, 즉 실체가 공이라면 연기를 따라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함으로 ‘묘공(妙空)’이라 한다.
생사의 문제는 <반야심경>에서 아주 단적으로 「무노사(無老死) 역무노사진(亦無老死盡)」이라 했고, 「무지(無知) 역무득(亦無得)」이라 했다. 노사(老死)도 없고, 노사가 다함도 없다는 말이다. 앎도 없고 지혜로도 얻을 것도 없다는 의미다. 생(生)이란 연기로 인한 오온(五蘊)이니 그 실체가 공(空)하다. 공(空)은 생함이 없다. 그러므로 무생(無生)이다.
실체가 없는 생(生)에서 어찌 늙음(老)이나 죽음(死)이 있겠는가. 그러나 범부의 눈으로 보면 생(生)도 있고 노(老)도 있고 사(死)도 있다. 그래서 중생의 미망으로 본다면 생사는 두려움의 대상이고, 열반은 바람의 대상이라 할 수 있지만, 증오(證悟)하면 생사열반이 다른 것이 아니고 생사열반이 서로 상즉(相卽)하는 것이다. 「생사열반(生死涅槃) 상공화(常共和)」라는. <법성게>의 말처럼 생사열반이 늘 상즉 하는 것이다.
<조론>의 물불천(物不遷)의 요지는 「천류하는 사물에 나아가서 천류하지 않은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진여(眞如)의 세계를 볼 수 있다면 눈에 부딪히는 대로가 제법실상의 상주가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생사(生死) 문제는 중생들의 미망일 뿐, 생사의 주체인 오온(五蘊)이 연기(緣起) 성공(性空)임을 증득하게 되면 생사의 유위법에 머물면서도 그 동정(動靜)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벗어나게 된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조론(肇論)>의 일심중도(一心中道)를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이 범부 중생은 현상적인 존재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다.
그것들이 정지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가 동일하다고 바라보는 측면이고, 또 하나는 그것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는 동일하지 않지만 현재의 존재는 과거의 존재로부터 나왔다고 보는 측면이다.
이렇듯 범부 중생은 동(動)과 정(靜)의 이원론을 가지고 현상을 파악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動)도 정(靜)도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존재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제법에는 현재가 과거의 시간으로 흘러가거나 과거의 시간이 현재로 흘러옴도 없으며, 시간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면서 전변함도 없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사는 몸도 처음 겪는 새로운 몸이다. 일어나고 스러지는 몸, 세계, 사물, 시간, 인과, 모두 천류(遷流)하지 않는다. 모든 찰나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했다.
동진(東晋)시대에 당시 관직을 포기하고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수행 중이던 유유민(劉遺民. 본명은 유정지/劉程之, 354~410)은 승조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품고 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어떻게 반야이면서 무지(無知)인가, 어떻게 주관적으로 진실한 옳음이 있는데도 옳음이 아닐 수 있으며, ‘일치하니 일치함이 없고, 옳아도 옳음이 없다’고 하는가.”라고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승조는 생각과 언어에 붙들린 유유민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비유(非有)라고 말한 것은 실유(實有)가 아님을 말한 것이지 아예 있지 않았음을 말한 것은 아니다. 비무(非無)라는 말은 단절된 무가 아님을 말한 것이지, 무가 아닌 유를 말한 것은 아니다.”
유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실유(實有)가 아님을 말한 것이지 실재도 없음을 말한 것이 아니고, 무가 아니라는 말도 단절된 무가 아님을 말한 것인데, 무가 아니라고 하면 곧장 유를 생각하고, 유가 아니라고 하면 곧장 무에 떨어지는 이분법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사고의 메커니즘을 통해 ‘생각하는 나’는 점점 더 분별적인 사고가 뚜렷해지고 강화된다는 것이다.
승조가 격파하고자 한 것은 결국 이것이다. 언어로 고정된 ‘그 무엇’이라는 실체를 부정함으로써 우리의 관습적 사유구조를 깨고 싶어 한 것이다. 분별적인 앎에 갇혀 세계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중생을 향해, 이 실상이 바로 공(空)이요, 공을 직관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임을 깨우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진공론(不眞空論)>에서는 자신의 공관(空觀)을 밝히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인연의 결합으로 생겨나며 인연조건이 사라지면 없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술(魔術)로 지어진 사람과 마찬가지로 비유(非有)다. 그러나 마술로 생겨난 사람은 비록 실재하지는 않으나 환인(幻人)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무(非無)다. 이런 원리를 모든 존재에까지 확대해 승조는 모든 것은 유도 아니며 무도 아니라는 중도(中道)에 도달한다. 이런 식의 논리는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에서도 반복된다.
<반야무지론>의 무지(無知)는 지(知)가 없는 무식한 상태가 아니라 지해(知解-알음알이)가 아니란 말이다. 즉, 지식의 본성인 언어적 사유분별을 넘어선 무분별적 지혜를 뜻한다. 이런 무분별적 지혜를 체득할 때라야 부처님과 같은 일체지자(一切智者)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일체지자의 경지가 열반이라는 것이다.
“유는 무에 상대적으로 관계해 있는 것이고, 무의 관념은 유 그것과 관계 하에 성립된다. 따라서 유는 무로부터 생기고 무는 유로부터 생긴다. 유를 떠나면 무는 성립될 수 없고 무를 떠날 경우 유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나아가서 말하면, 유무의 차별을 설정하는 짓은 삿된 견해이고, 차별이 없이 동일하게 보면 자기와 저것은 둘이 아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은 나와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고 만물은 나 자신과 한 몸이다.”
승조에게 무(無)는 유의 부정이 아니라 유무의 차별 자체를 부정하는 개념이자 모든 상대적 차별을 부정하는 개념이다. 이 부정의 극치는 곧 절대무차별의 경지로서, 여기 이르러 “저것과 이것의 구분은 무너지고 사물과 자기는 하나가 돼 고요히 형상의 흔적이 없어진다. 곧 열반에 이른다.” 이것이 승조의 공관(空觀)이다.
이러한 논리는 장자(莊子)의 ‘만물은 하나’라는 주장과 아주 흡사하다. 장자는 모든 대립과 차별은 인위적인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세계는 평등하며 만물은 하나라고 주장했다. 승조 이전의 불교학이 주로 현학(玄學)으로 불교를 해석하거나 노자를 매개로 공(空)에 접근한데 반해, 승조는 반야경전에 입각해 만물은 하나라는 장자의 사상을 이해했으니, 승조에 이르러서야 반야공과 함께 장자의 '만물일체'도 비로소 이해됐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언어로 내가 이해한 세상을 설명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승조 법사는 인도에서 들어온 중관철학(中觀哲學)을 깊이 있게 깨달아 당대(當代)의 현학적(玄學的) 사유를 돌파했다. '오랑캐의 종교’가 현학과 유학을 누르고 수ㆍ당시대에 활짝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승조에게 힘입은바 크다. 텍스트는 시대의 열망을 반영한다. 승조의 <조론>은 난세에 의탁할 곳을 찾던 지식인의 욕망에 부응하며 불교철학이 중국에 온전히 안착하게 만들었다.
현학(玄學)이란 소위 ‘삼현(三玄)’을 지식의 원천으로 삼아 형성된 위진시대(魏晉時代) 사상계의 지배적인 철학 사조를 일컫는 말이다. 삼현(三玄)이란 <노자>, <장자>, <주역>을 말한다.
위진 현학은 노장사상을 골격으로 삼아 유가의 ‘명교(名敎)’와 도가의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했으며, 사변적 방법으로써 우주 만물의 근원 곧 형이상학적 본체론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위진 현학의 담론의 초점은 ‘본체와 현상’의 문제로 집약된다. ‘본체와 현상’의 문제란 본말(本末), 체용(體用), 유무(有無), 동정(動靜), 일다(一多)와 같은 여러 범주 안에서 이원적으로 다뤄짐을 말한다.
※‘명교(名敎)’는 한나라 시대 동중서(董仲舒)가 가장 먼저 제창한 것으로 삼강오륜으로 사람들을 교화하는 윤리 도덕의 교설을 말한다. 즉, 유교적 인륜을 말한다. 유교(儒敎)는 중국 춘추시대(BC 770~403) 말기에 공자(孔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교(孔敎)라고도 하며, 지켜야 할 인륜의 명분(名分)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해서 명교(名敎)라고도 한다.
유가철학에서 말하는 품격 있는 사회는 인(仁-사랑)과 의(義-정의)가 바탕이 되고, 그것이 시의에 맞게 예(禮)와 지(智)로 아름답게 개화하는 사회이다. 인간사회에서 사랑과 정의가 서로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신뢰(信)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수밖에 없다. 신뢰의 덕목을 강조하는 이유는 신뢰가 없는 정의는 위선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도 정치의 요점을 묻는 제자에게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품격 있는 사회란 신뢰라는 도덕적 원칙이 바탕이 돼서 사랑과 정의가 꽃피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함을 기본으로 한 가르침이 명교이다.
현학(玄學)이라고 할 때 현(玄)은 검을 현 자이지만, 아득하다. 깊다. 심오하다는 뜻도 있다. 맑은 물도 아주 깊으면 검게 보인다. 파미르고원 해발 3900m에 위치한 카라쿨(Karakul) 호수는 워낙 수심이 깊어 물빛이 검어서 흑해(黑海)란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카라쿨이라 말 자체가 투르크어로 검다는 뜻이다.
중국의 한나라 때는 주로 유교의 경전을 외우거나 풀이하는 것에 열중했다. 이를 훈고학(訓詁學)이라 했다. 그러다보니 학문적으로는 깊지 못했다. 그러다가 후한이 끝나고(220년), 이어 삼국(위ㆍ촉ㆍ오)시대가 시작되고, 다시 삼국은 진(晉)에 의해 통일되는데, 이 시기를 위진시대(魏晉時代, 220~420)라고 한다.
이 시기가 되면 기존의 유교적 경향에 실증을 느끼고 철학적 깊이가 더해진 학문적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의 학문을 현학(玄學)이라고 한다. <노자>, <장자>, <주역>과 같은 책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우주의 기원이나 사물의 변화에 대한 이치, 사회질서의 이치 등에 관해 나름대로 자기주장을 펼치게 된다.
현학을 신도가(新道家)라고도 하지만 현학은 도가의 변신이라기보다 도가와 유가가 결합된 독창적 사상이라고 해야 한다. 한 예로, 승조의 <조론>에서 당시의 격의불교(格義佛敎)를 비판하는 그의 논조에는 노장뿐만 아니라 명교 또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그가 격의불교를 비판한다 하더라도 그 또한 중국적 사유에서 불교를 이해하려는 입장이었다. 그리하여 승조는 불교 반야학의 입장에서 현학을 통섭하려 했다.
그리고 논주 승조 법사가 논문으로 표현한 문장은 너무 난해하고 간략하며, 더욱이 그 당시만 해도 불교의 언어가 풍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 노장학에서 사용되고 있던 불교와 유사한 개념의 언어를 빌려 쓴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이 논서를 노장학의 허무사상을 불교적으로 표현한 이단적인 사상 논서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까지 했으며, 지금도 그것을 정설처럼 치부해버리는 학자들이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 가운데서 <조론>을 올바르게 이해했던 경우도 많았다.
당나라 때 <화엄경소>를 지었던 청량국사 징관(淸凉 澄觀, 738~839)은 그의 학설에 신빙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조론>을 인용해 증거를 댄 경우가 많았고, 그 외에 영명 연수(永明 延壽, 904-975)는 그의 역작인 <종경록(宗鏡錄)> 곳곳에서 <조론>을 인용한 경우가 많았다.
어찌 그뿐이랴, 불립문자를 주장했던 선종(禪宗)의 경우에도, 육조의 법맥을 계승하고 돈오돈수의 사상을 찬양했던 설봉 의존(雪峰義存, 822~908) 선사는 <조론>을 극히 존숭했다. 그 예는 <벽암록(碧巖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명나라시대의 고승 감산 덕청(憨山德清, 1546~1622) 선사는 <조론>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교정을 보다가 물불천론(物不遷論)에서 활연히 대오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천태학을 집대성할 수 있었던 것도 기실 <조론>에 힘 입은바가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미 삼국시대에 유입돼 당시 불교 일반에 많은 사상적 영향을 미쳤으리라 여겨진다. 그 단적인 예가 원효 대사가 남긴 저술 가운데 <조론>에 관한 내용이 여기저기 보이고 있다. 따라서 원효 사상을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하려면 <조론>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만 한다고 하겠다. 이처럼 <조론>은 불교 사상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논서인 것이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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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회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yc012175/15944984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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