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나란 무엇인가 . 나라는 것은 추상명사, 즉 이름 붙여진 것이다.

수선님 2020. 3. 8. 12:54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그런 나/아트만/영혼은 없다.

 

 

또한 설사 그런게 있더라도, 몸과 마음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몸은 병들어가고 늙어가며, 마음은 온갖 고통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그게 뭔 효용성이 있겠는가?

또한 그런게 있다고 한들 그것에 집착한다면 오히려 더 큰 고통만 초래할 뿐이다.

 

 

그러나 상주불변의 <나>는 없다.

다만 그런 <나>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와 같은 중생들이 실제로 <나>라고 여기는 것은 영혼이 아니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다.

 

 

그래서 몸에 조금만 해로움을 당하면 난리를 치고,

또 조금만 마음이 불쾌해도 역시나 난리를 친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을 나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몸과 마음 이외에 어떤 영원한 것이 있고 그걸 나로 여기는게 아님을 간파하자.

 

 

실제가 가장 중요하다.

똑바로, 있는 그대로를 파악해야 한다.

 

 

몸과 마음 이외에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그런 나/영혼/아트만은 없다.

 

 

또한 몸과 마음 안에도 그러한 것은 없다.

오온, 즉 색수상행식 그 자체에도 또한 <나>라는 것은 없다.

 

 

그럼 과연 우리는 무엇을 <나>라고 부르는가?

<나>라는 것은 뭔가?

 

 

몸과 마음 바깥에도 <나>는 없고

또한 몸과 마음 그 자체에도 <나>는 없다.

 

 

<나>라는 것은 명칭/호칭이다.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 쓰이는 명칭이자 호칭이다.

 

 

이런 몸을 가지고, 이러한 마음을 쓰는걸 <나>라고 부를 뿐이다.

 

 

마치 특정한 동그란 금속 쪼가리와 네모난 종이 쪼가리들을 <돈>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돈이란 명칭을 많이 쓰지만, 돈이란 명칭 딱 하나만을 본다면 그것은 가상의 것이다.

실제 우리가 돈하면 떠올리는 것은 동그란 금속과 네모난 종이 쪼가리들이다.

 

 

<나>라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에 <나>라는 명칭을 붙여놓고 그걸 <나>라고 부를 뿐이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은 이것을 모른다.

왜냐면 이러한 것을 자세히 따져보고 분석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가 고통당한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몸이 고통당하고, 마음이 고통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몸이 남에게 맞으면, 몸이 괴로운 것이고

남이 날 우습게 여기면, 마음이 괴로운 것일 뿐이다.

 

 

마음이 실제 자신으로 여기는 것은, 몸과 마음이다.

더 자세히 따져본다면 오온=색수상행식을 모두 다 자신으로 여긴다.

 

 

<나>는 하나인데 <오온>은 다섯개다.

하나가 다섯개가 될 수 없고, 다섯개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오온>에 <나>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나>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면 <나>라는 것은 가상의 추상명사이기 때문이다.

 

 

<나>가 있어서 그게 모든 걸 행해 왔던게 아니고,

<마음>이 모든 걸 해왔었던 것이다.

 

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아니던가?

그러므로 마음과 마음의 기능/작용에 대해서 배워야한다.

 

 

<나>의 정체....즉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는게 가장 중요하다.

 

 

이걸 모른다면

그 뭔짓을 해도 마음의 공허함은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면, 마음이 결코 쉬지 못한다.

끝없이 방황한다. 그 누굴믿던 안믿던 상관없이........

 

 

답은 자신에게 있다.

 

 

마음으로의 여행.........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5136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