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그런 나/아트만/영혼은 없다.
또한 설사 그런게 있더라도, 몸과 마음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몸은 병들어가고 늙어가며, 마음은 온갖 고통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그게 뭔 효용성이 있겠는가?
또한 그런게 있다고 한들 그것에 집착한다면 오히려 더 큰 고통만 초래할 뿐이다.
그러나 상주불변의 <나>는 없다.
다만 그런 <나>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와 같은 중생들이 실제로 <나>라고 여기는 것은 영혼이 아니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다.
그래서 몸에 조금만 해로움을 당하면 난리를 치고,
또 조금만 마음이 불쾌해도 역시나 난리를 친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을 나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몸과 마음 이외에 어떤 영원한 것이 있고 그걸 나로 여기는게 아님을 간파하자.
실제가 가장 중요하다.
똑바로, 있는 그대로를 파악해야 한다.
몸과 마음 이외에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그런 나/영혼/아트만은 없다.
또한 몸과 마음 안에도 그러한 것은 없다.
오온, 즉 색수상행식 그 자체에도 또한 <나>라는 것은 없다.
그럼 과연 우리는 무엇을 <나>라고 부르는가?
<나>라는 것은 뭔가?
몸과 마음 바깥에도 <나>는 없고
또한 몸과 마음 그 자체에도 <나>는 없다.
<나>라는 것은 명칭/호칭이다.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 쓰이는 명칭이자 호칭이다.
이런 몸을 가지고, 이러한 마음을 쓰는걸 <나>라고 부를 뿐이다.
마치 특정한 동그란 금속 쪼가리와 네모난 종이 쪼가리들을 <돈>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돈이란 명칭을 많이 쓰지만, 돈이란 명칭 딱 하나만을 본다면 그것은 가상의 것이다.
실제 우리가 돈하면 떠올리는 것은 동그란 금속과 네모난 종이 쪼가리들이다.
<나>라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에 <나>라는 명칭을 붙여놓고 그걸 <나>라고 부를 뿐이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은 이것을 모른다.
왜냐면 이러한 것을 자세히 따져보고 분석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가 고통당한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몸이 고통당하고, 마음이 고통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몸이 남에게 맞으면, 몸이 괴로운 것이고
남이 날 우습게 여기면, 마음이 괴로운 것일 뿐이다.
마음이 실제 자신으로 여기는 것은, 몸과 마음이다.
더 자세히 따져본다면 오온=색수상행식을 모두 다 자신으로 여긴다.
<나>는 하나인데 <오온>은 다섯개다.
하나가 다섯개가 될 수 없고, 다섯개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오온>에 <나>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나>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면 <나>라는 것은 가상의 추상명사이기 때문이다.
<나>가 있어서 그게 모든 걸 행해 왔던게 아니고,
<마음>이 모든 걸 해왔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아니던가?
그러므로 마음과 마음의 기능/작용에 대해서 배워야한다.
<나>의 정체....즉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는게 가장 중요하다.
이걸 모른다면
그 뭔짓을 해도 마음의 공허함은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면, 마음이 결코 쉬지 못한다.
끝없이 방황한다. 그 누굴믿던 안믿던 상관없이........
답은 자신에게 있다.
마음으로의 여행.........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5136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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