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박 규 리*1)
「차 례」 Ⅰ. 들어가는 말 Ⅱ. 싯다르타에서 드러나는 주요 불교사상 1. 실유불성(悉有佛性)으로서의 존재성 2.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진리성 Ⅲ. 소설 속 깨달음이 갖는 불교사상적 의의 1. 불이적(不二的) 세계관에 대한 통찰 2. 전존재적 동류의식의 발현 Ⅳ. 나가는 말
국문요약
소설 싯다르타는 카스트 제1계급에 속하는 바라문의 아들인 주인공 싯다르 타가 실제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난 이후 다양한 인생 경험을 거쳐 마침내 법[진리]을 얻게 된다는 내용으로 출간 직후부터 서구인들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헤르만 헤세는 이 소설에서 현실의 인간이 어떻게 세속적 쾌락과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192 선문화연구 제23집 아상, 그리고 마음의 오만을 초극하여 불교적 절대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에 관해 매우 구체적이며 심도 있게 그렸다.
본고는 헤르만 헤세의 대표적 불교 구도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싯다르타에 서 핵심적인 불교사상을 도출, 이를 바탕으로 소설이 지니는 불교사상적 가치와 의의를 고찰할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소설 싯다르타에서 발견되는 주요 사상 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째, 싯다르타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주요사상은 실유불성(悉有佛性)으로서의 존재성, 곧 불성사상(佛性思想)이 다.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는 처음에 지향하던 단순한 자기초월 내지 극복이라 는 수행의 목적을 세존을 만난 이후 누구나 구족하고 있는 불성의 체득으로 전환 함으로써 구도의 목적과 가치를 대승불교적으로 합일시키고 있다. 둘째, ‘불립문 자(不立文字)’ 개념이다. 불교에서는 진리자체를 말이나 글로써 과연 정확하게 전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의 해결방안 중 하나로 ‘불립문자(不立文字)’관이 제 시되었다. 이 불립문자의 개념이 소설 싯다르타에서도 구도에 이르기 위한 매 우 중요한 방편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셋째, ‘불이적(不二的) 세계관’이다. 소설 싯다르타에서 합일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헤세의 이른바 ‘총체적 단일의식’은 세상과 자아와의 연관성, 곧 일체 존재간의 관계를 불가분의 상입상즉의 관계로 보는 불교의 핵심진리 기제인 ‘불이적(不二的) 세계관’에서 비롯되어 전존재적 동류의식으로 발현되고 있다. 이렇게 싯다르타에서는 ‘불성사상’과 ‘불이사상’, ‘불립문자’ 개념 등 서양 문 학작품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불교사상적 정수를 담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에 싯다르타에서 발견되는 불교사상 철학을 토대로 이 소설이 가지는 불교문학적 가치와 의의에 주목하고자 한다. 주제어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Siddhartha), 불성, 이분법, 불립문자, 불이법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193
Ⅰ. 들어가는 말
1922년에 발표된 소설 싯다르타(Siddhartha)는 ‘인도의 시(詩)’라는 부 제가 붙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1)의 장편소설이다. 제 목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소설 싯다르타는 헤세의 초기 동양적, 몽환적 경향에서 벗어나 불교의 절대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현실의 인간이 어떻게 세속적 쾌락과 마음의 오만을 초극하여 완성자가 될 수 있는지 그 도(道)의 길을 불교사상철학을 기반으로 심도 있게 탐색한 작 품이다. 싯다르타는 1922년에 발간된 이후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서도 불교 적인 색체가 가장 농후한 소설로 꼽힌다. 특별히 헤세 자신의 직접적인 구 도체험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는 점에서 그 불교적 깊이와 진정성이 매우 1)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 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신학자였던 외조부 헤르만 군데르트는 인도 에서 다년간 포교했다. 그 덕분에 당시 집에 있던 인도학 관련의 장서는 이후 헤 세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1890년 헤세는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 다. 그러나 신학교의 속박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탈주한다. 이후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발표하면서 시인과 작가로서의 길을 가게 된다. 1904년에는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 표하면서 이름을 떨친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는 불교수행을 체험하면서 모태종교 였던 기독교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받은 인도사상을 떨치게 된다. 그리고 그 체 험을 바탕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불교적인 절대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구 도과정을 소설 싯다르타에서 최고의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이후 헤세는 자신에 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서적은 우파니샤드와 부처의 설법이었으며, 자신은 힌 두교가 아닌 불교에 깊이 심취하였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은 실제 자신의 신앙이자 유일한 위로로써 자신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하였다. 헤르만 헤세는 그만큼 불교에 깊이 심취한 근대서구 공전의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194 선문화연구 제23집 심오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헤세는 1919년부터 싯다르타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이해와 체험의 부족으로 원하는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집필을 멈추고 금욕수행을 떠난다. 그리고 일 년 반 동안 직접 수행을 한 뒤 그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 싯다르타의 나머지 부 분을 완성했다. 카스트 제1계급에 속하는 바라문의 아들인 주인공 싯다르타가 실제 불교 를 창시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난 이후 다양한 인생 경험을 거치면서 마 침내 부처님의 법[진리]을 얻게 된다는 책의 내용은 그런 점에서 일반 소설 류와는 달리 매우 진지한 자기 구도소설이자, 헤르만 헤세가 도달한 불교핵 심사상의 전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인 구도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은 책의 주제나 소재에 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 전 이름인 싯다르타란 이름을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차용한 것이라든가, 실제 석가 모니 부처님이 소설 속에 등장하여 중요한 글의 흐름을 주도한다든가, 무엇 보다 결론적으로 주인공 싯다르타의 깨달음이 불교에서 제시하는 주요 진 리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 등에서 싯다르타는 그 사상적 근 간을 철저히 불교적 진리에 두고 집필된 책임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서구유럽에 불교사상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은 20세기 초반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헤르만 헤세의 불교구도소설인 싯 다르타의 가치는 더욱 지대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설 싯다르 타가 지니는 본격적인 불교사상적 내용분석과 가치의 조명은 절실하다. 그러나 그간 싯다르타에 관한 연구가 대개 문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면 서 막상 본격적인 불교사상적 연구는 미진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2)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195 2) 우리나라에서 연구된 싯다르타에 관한 주요 저서 및 선행연구는 다음과 같다. 정경량은 「Hermann Hesse가 받은 신비주의 영향」에서 헤르만 헤세의 문학적 특 징을 신비주의라 정의하며 동양 신비주의 경향은 특히 중기 이후 강하게 드러난 다고 고찰하였다. 헤세는 초기 비기독교 신비주의 외에도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주 의, 그노시스와 독일 신비주의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것으로, 일생동안 독일 신비 주의보다 동양 신비주의에 더 많이 몰두하였지만 헤세가 동양의 신비주의사상을 추구한 원동력은 독일 신비주의에 있다고 보았다.[정경량, 「Hermann Hesse가 받 은 신비주의 영향」, 論文集 12(대전: 牧園大學, 1987)]. 신봉옥은 석사논문 헤 세의 싯다르타에 나타난 명랑성 연구에서 싯다르타를 힌두교와 불교사상을 근거로 부처의 해탈과정을 변화시켜 창작한 작품이라고 보았다. 정신과 삶, 영혼 과 물질사이의 투쟁에서 도는 불협화음을 초월한 평정의 상태를 명랑성이라 상정 하며 이러한 명랑성이 헤세 단일사상의 핵심이라 정의하였다.[申奉玉, 「헤세의 싯 다르타에 나타난 명랑성 연구」(전주: 전북대학교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7)]. 이인웅은 「헤르만 헤세의 불교」에서 헤르만 헤세의 종교적 작품에는 ‘신비적’이라 고 하는 불교적 내지 도교적 교훈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하나의 ‘신’ 을 인식하거나 믿는 일 없이 자신의 독자적인 힘으로 자신을 완성시키고 자아에 도달하여 우주만유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는 것인데, 이것이 동양 의 도교도들이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삶의 절대적인 척도가 되는 신적인 요소라 하였다.[이인웅, 「헤르만 헤세와 불교」, 외국문학연구 4(서울: 외 국어문학연구회, 1998)]. 인성기는 「헤세의 단일성 사상과 유식불교의 여래장- 소설 싯다르타를 중심으로」에서 헤세의 단일성 사상을 유식의 여래장 사상과 연관 하여 논하였다.[인성기, 「헤세의 단일성 사상과 유식불교의 여래장: 소설 싯다르 타를 중심으로」, 헤세연구 25(서울: 한국헤세학회, 2011)]. 황서광은 「헤르만 헤세 作 싯다르타 讀法의 一試論」에서 헤세는 개신교와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 등의 인도의 계시와 붓다의 설법, 그리고 중국의 공자와 노자의 영향 등 신 비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며, 전통적 신앙이나 고정된 학설에서 찾기를 거부하고 전적으로 자기 내면의 정신적 체험에서 단일성 찾기를 주장하였다고 고찰하였다. [황서광, 「헤르만 헤세 作 싯다르타 讀法의 一試論」, 한국불교학회 66(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 김성옥은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에 대한 불교적 해석」에서 싯다르타 속에 보이는 ‘자아’의 개념을 불교의 교리적 관점과 비교하면서 깨달 음 이후 보여주는 ‘단일성’의 세계는 사사무애의 화엄세계에 닿아있으며, 아트만 을 추구하던 주인공 싯다르타가 자아의 소멸을 위해 고행하며 자아를 부정하는 것에서 불교의 무아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며 불교 교리적 측면과 대승불교로의 전환에 주목하였다.[김성옥,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에 대한 불교적 해석」, 외 국문학연구 64(서울: 외국어문학연구회, 2016)]. 한편 국외논문 중 대표적인 것으 로 중국의 헤세 전문가인 흐지아(Adrian Hsia)의 헤르만 헤세와 중국, 캠프헨 196 선문화연구 제23집 이에 본고에서는 소설 싯다르타에서 발견되는 주요 불교사상을 다음의 세 가지로 도출하여 그 내용에 주목하였다. 첫째, 싯다르타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대표적 불교사상은 실유불성으 로서의 존재성, 즉 불성사상(佛性思想)이다.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는 처 음에 지향하던 단순한 자기초월 내지 극복이라는 초월적 수행의 목적을 세 존을 만난 이후 인간 내면에 누구나 구족하고 있는 불성의 체득으로 전환 함으로써 구도의 목적과 의의를 대승불교적으로 합일시키고 있다. 둘째, ‘불립문자(不立文字)’ 개념이다. 불립문자는 과연 말이나 글로써 온 전한 진리 그 자체를 정확하게 전할 수 있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불교에서 제시된 격외의 개념으로, 특히 선불교에서는 말로는 표현하거나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 경계를 지시하는 매우 중요한 방편으로 쓰여왔다. 그런데 바로 이 불립문자의 개념이 소설 싯다르타에서도 구도 에 이르기 위한 매우 중요한 개념과 방편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셋째, 소설 싯다르타의 궁극의 지향, 즉 세계를 합일적으로 바라보는 헤세의 ‘총체적 단일의식’은 세상과 자아와의 연관성 곧 일체 존재간의 관 계를 불가분의 상입상즉(相入相卽)의 관계로 보는 ‘불이적(不二的) 세계관’ 에서 비롯되어 전존재적 동류의식으로 발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 불이사상 을 핵심적인 구도의 결과로 수렴하여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싯다르타는 ‘불성사상’과 ‘불이사상’, ‘불립문자’ 개념 등 당시 서 구문학작품으로서는 매우 보기 드물게 불교사상적 정수를 구체적으로 드러 (Kämpchen)의 인도 브라만교와의 비교연구가 있다. 이 연구들은 싯다르타가 인도의 브라만교와 불교, 중국의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두루 지적하고 있 다.(김성옥, 위의 글, 54 - 55면 참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197 내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싯다르타에서 드러나는 주요 불 교사상을 ‘실유불성(悉有佛性)으로서의 존재성’과 ‘불립문자의 진리성’으로 도출하고, 여기에서 발현되는 ‘불이적 세계관에 대한 통찰’과 ‘전존재적 동 류의식’에 관해 논의하면서, 불교소설로서의 가치와 그 의의를 재조명하고 자 한다.Ⅱ. 싯다르타에서 드러나는 주요 불교사상 1. 실유불성(悉有佛性)으로서의 존재성 소설 싯다르타를 관통하는 핵심사상 중 하나는 불성론(佛性論)이다. 불성론은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불성을 갖춘 존재[一切衆生 悉有佛性]’ 라는 것으로, 일체중생은 모두 자신의 내면에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번뇌와 망상 등에 덮여 발현되지 못한다는 실유불성으로서의 존재성이 소설 싯다 르타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불교사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소설 싯다르타는 이 ‘참 자아[本性, 佛性]’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 싯다르 타의 대구도일기라 할 수 있다. 누구라도 불성을 드러내기만 하면 곧바로 부처를 이루고 불타와 같은 삶 을 살게 된다는 불성론은 불교의 대표적 인간무한 긍정사상 중 하나다. 불 성은 모든 중생이 차별없이 지닌 동일한 여래성(如來性), 각성(覺性)을 의 미한다. 곧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성불에의 가능성 또는 깨달음의 근거 198 선문화연구 제23집 가 불성인 것이다. 대방등여래장경에서는 “모든 중생들은 비록 다양한 거취에 있지만 번 뇌의 몸 가운데에도 여래장이 있으며 항상 오염됨이 없으며 덕상을 구족하 니 여래와 다름이 없다”3)고 하였으며, 불성론에서는 “불성이란 대열반”4) 이라 하여, 불성 자체에 이미 깨달음, 열반의 의미가 담보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나아가 수당시대에는 ‘불성은 진여(眞如)’라는 입장에서 불성론 은 인간뿐 아니라 유정과 무정을 막론하고 모든 존재에 내재된 것으로 보 았다. 특히 선종에서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을 기치로 성불의 근거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전통적인 교학의 불성관을 폭넓게 받 아들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듯 불성론은 불교사상사에서 매우 핵심 적 진리개념 중 하나로 전승되어 왔다. 그렇다면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불교의 매우 핵 심적 진리기제인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에 이르게 되는 가. 불교에서 지시하는 참다운 불성을 찾기 위해 주인공 싯다르타는 크게 다음의 세 자기 구도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소설 싯다르타의 전체 흐름을 주도하는 맥락이 된다. 구체적으로 주인공 싯다르타의 구도의 핵심은 신(神)적인 아트만에서 실유불성의 도(道)의 합일로 진행되고 있다. 소설 싯다르타의 시작은 주인공 자신의 존재본성에 관한 철학적 사유 로부터 출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싯다르타는 주인공 자신이 과연 단순한 피 조물인지 혹은 어떤 영원한 본성자인 것인지에 대해 고뇌한다. 그러면서 3) 佛陀跋陀羅 譯, 大方等如來藏經(大正藏 16, 457c), “一切衆生 雖在諸趣 煩 惱身中 有如來藏 常無染汚 德相備足 如來無異.” 4) 眞諦 譯, 佛性論(大正藏 31, 789c), “佛性者卽大涅槃.”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199 “자기 존재 내면에 삼라만상과 하나이자 불멸의 존재성”5)을 어렴풋이 감지 하게 된다. 세상을 창조한 것은 정말로 프라야파티일까? 세상을 창조한 것은 유일자이자 단독자인 아트만이 아닐까? 신들도 너와 나와 마찬가지로 창조된, 시간에 예속 되어 있는, 덧없는 피조물들은 아닐까? … 제사를 지내고 숭배하여야 할 존재가 유일자(唯一者)인 아트만 말고 또 있을까? 그렇다면 아트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으며 그것의 영원한 심장은 어디에서 고 동치고 있는가? 6) 그러나 이때는 주인공 싯다르타가 아직 불교적 자각에 이르지 못한 힌두 이즘적 진리개념에 의거한 상태로써, 불교를 만나기 전 힌두교를 믿는 바라 문의 아들로서 보이는 고뇌다. 아트만은 베다의 신화에 나오는 창조주 또는 최고의 신이다. 헤르만 헤 세가 소설 도입부에서 ‘아트만’이라 단어를 쓴 것은 소설의 시대배경이 아 직 불교가 종교라는 틀을 갖추지 않은 때에 주인공 싯다르타가 바라문 가 정에서 태어나 바라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 이다. 따라서 소설 속 어린 싯다르타의 사유방식은 당연히 우파니샤드와 베다 등에 기초한 힌두사상과 그에 관계된 용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존재에 대한 회의를 하는 장면에서도 당시 자신의 신앙체계 안에서의 어휘 즉 ‘아트만’과 같은 용어를 소설적 장치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유의 시작은 단순하였으나 알 수 없는 어떤 내면의 힘에 이끌려 주인 5) 헤르만 헤세 저, 박병덕 역, 싯다르타(서울: 민음사, 1997), 12면. 6) 헤르만 헤세, 위의 책, 15면. 200 선문화연구 제23집 공 싯다르타는 ‘유일자 아트만’이 아닌 ‘존재의 본질로써의 아트만[불성]’을 찾아 구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존재의 의문을 가지고 집을 떠나 싯 다르타가 맨 처음 만난 사람들은 당시 바라문의 권위와 제사, 공양 등의 형 식을 거부하며 새로운 진리개념을 추구하던 자유로운 수행자들이었다. 이 들은 주로 물질중심의 인간관과 감각적 유물론을 신봉하였다. 이 시기 주인 공 싯다르타의 수행의 목적은 다음과 같은 매우 단순한 신비적인 ‘초월’을 위한 금욕이었다. 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멸 각(滅却)시키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 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기를 초탈하는 사색을 하 는 가운데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놓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였다.7) 싯다르타가 맨 처음에 생각한 자신의 본성[아트만]을 찾는 길은 이른바 세속적 자아에서 벗어나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자기초탈’이었다. 그러면서 처음 수행을 시작한 싯다르타가 진리의 길이라 믿고 한 것은 혹독한 명상 과 고행수련이었다. 그러나 심장박동조차 거의 없을 만큼의 극심한 고행을 지속하여도, 아무리 수천 번씩이나 자아를 떠나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비아 (非我)의 경지에 머물러도, 그리하여 아무리 무(無)의 세계에 잠시 머물러 도 그러나 결국엔 현실의 자신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러한 사실을 반복적으 로 체험하면서 싯다르타는 이 같은 방법으로는 자신이 추구하는 아트만[불 7) 헤르만 헤세, 위의 책, 27 - 28면; 김성옥, 앞의 글, 62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01 성]에 오롯이 계합할 수 없으며, 완전한 해탈에 머물 수도 없음을 절감한다. 이러한 자각 끝에 싯다르타는 막연하게 불멸의 존재라 믿어온 힌두적 ‘아 트만’의 존재 자체에 대해 원천적인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기존의 사유 체계였던 유일자로서의 힌두교적 아트만이란 그 실체를 찾을 수 없으며, 더 욱이나 그런 아트만을 환상적으로 고집하면서 자신들만이 우월하고 성스러 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함께 수행하는 자들의 편협한 마음의 자세를 보면서 더욱 큰 실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실제 석가모니 부처님이 실제 보이신 구도행과 매우 유사하다. 부처님도 맨 처음 출가해서는 외도8)들의 수행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수행이 아님을 곧 깨닫고 그들과 결별한 뒤 홀로 참된 구도 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부분은 헤르만 헤세가 매우 의도적으로 부처님의 일 대기 중 일부를 싯다르타에서 차용한 것으로, 힌두교나 그 외 외도들의 수행과 불교수행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대비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도 실제의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외도와 결별을 선언하고 떠난다. 그러면서 비단 수행법의 문제점뿐 아니라 잘못된 수행을 하면서 가지게 되는 수행자의 비뚤어진 의식과 마음가짐에 대해 꼬 집는다. 그리고 그러한 외도의 수행을 하던 당시 자신도 얼마나 편협하고 비도적(非道的)이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고해한다. 그는 열닷새 동안 단식을 하였다. 그는 스무여드레 동안 단식을 하였다. 허 벅지와 볼의 살이 쑥 빠졌다. 퀭하여진 두 눈에서는 열정적인 꿈들이 가물가물 8) 여기에서 외도란 부처님 당시 풍미했던 대표적 6사상가, 육사외도를 말한다. 소설 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들 외도들의 진리관과 수행법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 고 있다. 202 선문화연구 제23집 타올랐으며, 앙상하게 뼈만 남은 손가락들 끝에서는 손톱들이 길게 자라났고, 턱에는 윤기를 잃은 털이 더부룩하게 자라났다. 여자들과 마주칠 때면 그의 눈 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으며, 도시를 지나다 아름답게 치장한 사람들을 볼 때면 그의 입은 멸시의 감정으로 일그러졌다,9) 인용에서 ‘여자들과 마주칠 때면 그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으며 도 시를 지나다 아름답게 치장한 사람들을 볼 때면 그의 입은 멸시의 감정으 로 일그러졌다’는 부분에서, 외도들의 비뚤어지고 잘못된 탐착의 마음이 구 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고행을 할수록 이 세상을 더욱 더 성스러움과 불 경스러움, 혹은 선과 악 등으로 구분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성(聖)은 받들 고 속(俗)은 비하하고, 선은 숭상하고 악은 단죄하는 등의 극단적인 이분법 적 분별의식에 사로잡혀가는 외도수행의 근본적인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 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외도들의 수행행태를 고발하면서 헤르만 헤세가 보이고자 하는 것은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인간의 편협한 사고방식과 분별심에서부 터 비롯된다는 것과, 진실한 도란 바로 이 일체의 이분법적 편견에서 벗어 난 중도(中道)에 있다는 불교의 위대한 가르침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참다운 본성 내지 보편적 진리로서의 아트만, 즉 ‘불성’을 구가하며 외도 들과 수행을 시작하였지만, 자아와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구분 짓는 외도의 수행은 진실한 법이 아님을 깨달은 주인공 싯다르타는 부처님을 직 접 친견하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이 부분은 헤르만 헤세가 심취하였던 추상적 동양사상 전반이 불교사상 9) 헤르만 헤세 저, 박병덕 역, 싯다르타(서울: 민음사, 1997), 26 - 27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03 으로 전향되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헤르만 헤세는 자 신이 가지고 있던 기독교적 사상 내지 인도적 초월사상을 떨치고 불교진리 로 전향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자신의 구체적 경험이 소설 속에 그대로 투영된 매우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싯다르타에서는 실제 부처님이 출가 직후 외도의 수행을 하 시다가 그 한계를 발견하곤 이들을 떠나 홀로 수행하여 무상정등정각(無上 正等正覺)의 대도(大道)를 얻게 되는 과정을 많은 부분 그대로 차용하고 있 는데, 이러한 기법을 통해 헤르만 헤세는 불교와 인도 힌두교 간의 사상 차 이를 극명하게 보임으로써 자연스레 불교의 위대성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 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렇게 외도들과 헤어진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는 부처님을 만나면서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대전환의 계기가 되는 전존재적인 내면의 변화를 맞 게 된다. 요컨대 구도의 목적과 의의가 무조건 자아를 없앰으로써가 아니라 아상(我相, ego)에서 벗어남으로써, 세상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적 분별의식 으로써가 아니라 일체제법 어디에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인과의 법칙을 바 르게 철견함으로써 진정한 법을 얻고자 하는 본질적인 변화를 맞게 된 것 이다. 다시 말해 싯다르타 구도의 궁극이 불교적 해탈을 이루고자 하는 것 으로 전환되면서, 부처님 출가수행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번뇌로부터의 해 탈’, ‘고의 소멸’로 바뀌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인공 싯다르타는 인과의 법칙, 생성과 사멸의 법칙, 전존재의 불이적(不二的) 단일성이라는 불교의 핵심진리를 깨우치며 구도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 헤세는 소설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해탈을 이룬 완벽한 득도자, 완성자’ 로 지시한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멀리서 부처님이 걸어오시는 모습만 보고 204 선문화연구 제23집 서도 그 분은 외도들과는 완전히 다른 완벽한 ‘부처’임을 단박에 알아차린 다. 그리고 이 같은 부처님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면서 최고의 존경과 찬탄 을 보낸다. 싯다르타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마치 어떤 한 신(神)이 가리켜 주기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그를 알아보았다. 싯다르타라는 그의 모습을, 탁발그릇을 손에 든 채 누런 법복을 걸치고 조용히 걸어가는 겸허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10) 싯다르타에게는 그 (세존의) 손에 붙어 있는 다섯 손가락 모두의 마디마디가 가르침 그 자체인 것만 같아 보였으며, 다섯 손가락 모두의 마디마디가 진리를 말해 주고, 진리를 호흡하고, 진리의 향기를 풍기고, 진리를 현란하게 빛내주는 것 같아 보였다. 이 분, 이 부처야말로 새끼손가락 놀리는 동작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진실된 분이었다. 이 분이야말로 성스러운 분이었다. 싯다르타는 지금까 지 어느 누구도 이 분만큼 존경한 것이 없었으며, 어느 누구도 이 분만큼 사랑 해 본 적이 없었다.11)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별 같은 존재로서, 고정불변의 궤도를 따라서 걸 으며, 어떤 바람도 그들에게 다다르지는 못하지. 그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그 들 나름의 법칙과 궤도를 지니고 있지. 모든 학자들과 사문들 가운데, 그들 중 많은 사람을 알았지, 한 사람이 그런 종류의 존재, 완성자였는데, 나는 그 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 그 분이 바로 세존 고타마, 그 가르침을 만 천하에 고지하 신 분이지.12) 마치 부처님 성도 후에 그 모습만 보고도 5비구들이 저절로 자복하였듯 10) 헤르만 헤세, 위의 책, 44면. 11) 헤르만 헤세, 위의 책, 47면. 12) 헤르만 헤세, 위의 책, 108면; 이인웅, 앞의 글, 289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05 이, 소설 싯다르타에서도 부처님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저절로 찬탄이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득도자, 완성자로 묘사되고 있다. 완벽한 부 처님을 친견하면서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는 이전에 자신이 무조건 자아 그 자체를 초월하려던 생각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이었는가를 자 각하면서 진정한 참회와 더불어 참된 도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한 때 “나의 자아를 산산조각 부수어버리고 따로따로 껍질을 벗겨내는 짓”13)을 하였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자신의 진실한 내면에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이후, “나도 그 분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그렇 게 거룩하게, 그렇게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그렇게 당당하게, 그렇게 순진무 구하고 신비스럽게, 바라보고, 미소 짓고, 앉아 있고, 걸을 수 있기를”14) 소 망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곳까지 뚫고 들어간 사람만이 (부처님과 같이) 그렇게 진실하게”15) 자신과 타인을 바라볼 수 있음을 깨닫 는다. 부처님과의 친견을 통해 미몽에서 깨어난 싯다르타는 자신도 본성[불성] 을 찾아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들어가리라 다짐한다. 나는 정말로 이제 더 이상 옛날의 내가 아니며, 나는 이제 더 이상 고행자가 아니며, 나는 이제 더 이상 승려가 아니며, 나는 이제 더 이상 바라문이 아니 다.”16) 13) 헤르만 헤세, 위의 책, 61면; 김성옥, 앞의 글, 63면 참조. 14) 헤르만 헤세, 위의 책, 57면. 15) 헤르만 헤세, 위의 책, 57면. 16) 헤르만 헤세, 위의 책, 64면; ‘모순된 절충주의’(황서광, 앞의 글, 424면). 206 선문화연구 제23집 이전에 ‘아상’으로 존재하던 모든 가상(假像)의 자신을 버림으로써 자신 이 그 자체 본래적 요소를 모두 구비한 ‘실유불성’의 존재임을 감지하게 된 것이다. 곧 ‘불성에의 자각’을 통해 싯다르타는 이전의 모든 이분법적 사고 방식인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에서 완전히 벗어나 완전한 진리에 계합하 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 싯다르타가 선택한 그 첫 번째 방법은 다시는 ‘범신론적 외도’를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다시는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을 아트만이나 세계고(世界苦) 따위로 시작하지 말아야지. … 이제 다시는 요가 베다의 가르침도, 아타르바 베다의 가르침도, 고 행자의 가르침도, 그 어떤 가르침도 받지 말아야지.17) 소설 싯다르타에서의 이 선언은 작가 헤르만 헤세 자신이 힌두적 인도 사상에서 불교사상으로 전환하였다는 매우 중요한 선언이다. 앞으로 다신 ‘요가 베다의 가르침도, 아타르바 베다의 가르침도, 고행자의 가르침도, 그 어떤 가르침도 받지’ 않겠다는 다짐과 선언이야말로 소설 싯다르타가 인 도의 힌두적 명상사상이나 도가의 초월적사상 등으로 혼재되어 쓰여진 책 이 아니며, 도리어 그런 사상들과는 변별되는 ‘불교적 진리’만을 전하고자 한 헤세의 의도가 매우 명확하고 분명하게 드러난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실유불성으로서의 존재성’을 자각한 주인공 싯다르타는 현상계 그대로가 바로 법의 현현임을 깨닫고,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존재와 제법의 17) 헤르만 헤세, 위의 책, 62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07 “본질은 사물들의 배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속에 삼라만상 속에 그대로 있었던 것”18)임을 바르게 자각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존재가 치를 깨달은 주인공 싯다르타는 이(理)와 사(事), 본각(本覺)과 시각(始覺) 으로써의 제법의 본질과 현상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곧 우리 모두는 ‘부 처가 될 가능성을 지닌 부처’인 실유불성의 존재임을 아래와 같이 천명하는 것이다. 나도 죄인이고 자네도 죄인이야. 그러나 이 죄인이 언젠가는 다시 브라흐마 가 될 것이고, 그 죄인이 언젠가는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고, 부처가 될 거야. 그런데 이걸 알아두게. 이 ‘언젠가’라는 것은 착각이고 다만 비유에 불과한 것임 을 말이야! 그 죄인은 불성(佛性)으로 나아가고 있는 도중에 있는 것이 아니야. … 죄인의 내면에는 지금 그리고 오늘 이미 미래의 부처가 깃들여 있다. 바로 그런 이야기야.19) 자네는 그 죄인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자네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아니 모 든 중생 개개인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바로 그 생성되고 있는 부처를, 바로 그 부처가 될 가능성을 지닌 부처를, 바로 그 숨어 있는 부처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네.20) 이렇게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의 첫 번째 각성은 바로 ‘실유불성으로서 의 일체중생의 존재성’으로, 그러한 진리성을 바탕으로 인간은 모든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유불성사상은 소설 가장 첫 부분에서 마지막까 18) 헤르만 헤세, 위의 책, 63면. 19) 헤르만 헤세, 위의 책, 207 - 208면. 20) 헤르만 헤세, 위의 책, 208면; 이인웅, 앞의 글, 293면. 208 선문화연구 제23집 지 관통하면서 이를 확철함으로써 미몽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인 참 인간 으로 거듭난다는 소설 싯다르타의 대 주제이자 그 사상적 토대가 되고 있다. 2.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진리성 ‘실유불성’과 더불어 소설 싯다르타를 관통하는 또 다른 주요 불교사상 중 하나는 ‘불립문자’ 개념이다. 불립문자는 깨달음이란 오직 자신의 자력적 체험으로써만이 온전히 성취될 수 있으며, 그 깨달음의 체험적 비의(秘意) 는 어떤 유위적(有爲的) 개념의 말이나 글로는 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불립문자는 단지 문자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유위적 (有爲的) 개념과 형식의 언어와 문자의 희론(戱論)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으 로 긍정과 부정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도를 드러내는 ‘격외(格外)’의 방법이 라는데 그 본질적 의미가 있다. 다시말해 ‘문자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문자 를 떠나지도 않는 도의 활용’이라는데 그 비의(秘意)가 있는 것이다. 부처 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보이자 가섭이 미소 지었다는 염화미소는 불립문자의 대표적 표징으로, 언어문자에 집착되어 예속된 정신을 풀어주 기 위한 방편 내지 언어문자로 구조화된 역기능을 타파하는 핵심적인 수단 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중요한 불립문자개념이 소설 싯다르타에서도 깨달음 에 이르는 핵심적인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나는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하여 오랜 시간 노력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09 하였지만 아직도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21) 내가 깨달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걸세.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미 젊은 시절부터 나는 이따금씩 예감했으며, 이 때문에 내가 그 스승들 곁을 떠났던 거야.22) 젊은 시절부터 주인공 싯다르타는 말이나 글 내지 배움으로는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한다. 그러다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게 되지만, 그 부처님의 곁마저도 미련없이 떠나고 만다. 무조건 성인 의 곁에 있다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 그 진리를 그대로 다 고스란히 전 해 받을 수는 없다는, 이른바 불립문자의 진리성을 본능적으로 뼈저리게 자 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존께 이렇게 토로한다. 당신은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을 얻으셨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은, 당신 이 그것을 얻기 위하여 나아가던 도중에 당신 스스로의 구도행위로부터, 생각을 통하여, 침잠을 통하여, 인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통하여 얻어졌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저의 생각입니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당신이 깨달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무에게도 말이나 가르침으로 전달하여 주실 수도, 말하여 주실 수도 없습니다.23) 21) 헤르만 헤세, 위의 책, 35면. 22) 헤르만 헤세, 위의 책, 206면. 23) 헤르만 헤세, 위의 책, 55면. 210 선문화연구 제23집 인용의 핵심은 비록 세존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깨달은 바 그 위없는 법 의 실상과 요체를 말로 다 전할 수 없다는 것으로, 불교에서의 깨달음이란 철저히 개인적이며 자력적으로 획득되어지는 어떤 것이며, 실로 그 누구라 도 깨달음을 이룬 순간의 미세한 심적 변화과정 내지 체득된 깨달음의 온 전한 내용과 경계 등은 말이나 문자로 명확히 다 전할 수도 없고 전해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 존재가 목숨을 걸고 체득한 지고의 경계 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심법(心法)’으로만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도를 깨달은 부처님은 많은 가르침을 주시지만 한 가지 빠뜨리고 있는 사실은 있는데 그것은 “세존께서 몸소 겪으셨던 것 에 관한 비밀, 즉 수십만 명 가운데 혼자만 체험하셨던 그 비밀이 그 가르 침 속에서 들어있지 않다”24)는 것이다. 그러기에 스스로 나아가 스스로 체 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더 나은 가르침을 찾기 위해 떠나 는 것이 아니라”25) 말로는 전해줄 수 없는 불립문자의 진리를 스스로 깨닫 기 위해 간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헤르만 헤세가 불교의 불립문자 개념 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깨달음의 당체는 언어나 문자로는 전할 수 없다는 이 같은 진리기제는 특별히 중국선종에서 강조하는 선불교 핵심테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중 국선종은 대승불교가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의해 중국으로 전래된 이후 육 조(六祖慧能, 638~713)를 거쳐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대에 이르러 크게 부흥한다. 중국선종은 이전과는 매우 다른 혁신적인 선사상을 개진하 였는데, 이른바 불교사상을 중국화하면서 선의 대중화, 새로운 수행형태의 24) 헤르만 헤세, 위의 책, 55면. 25) 헤르만 헤세, 위의 책, 55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11 정비, 돈오돈수관 등의 실천적인 사상철학을 펼쳤다. 이로써 이전에 다소 관념적이며 인간내면으로 치우치던 인도선과는 확연히 다른 파격적이며 실 천적인 선사상을 확립하면서 이후 불교계의 주류로 성장하게 된다. 이때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 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을 기치로, 일체 언어와 논리의 길이 끊어진 언 어도단(言語道斷) 속에서 자신의 본성에 한 순간에 계합하는 이른바 살활 의 통찰과 완벽한 인식의 전환인 돈오(頓悟)를 중시하였다. 지극한 깨달음 의 경계는 세간의 문자로는 바르게 전할 수가 없기에, 불립문자개념을 통해 일체의 유위적(有爲的), 분별적 사고관을 떠나 단박에 본성에 계합할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선종의 선적(禪的) 기제가 소설 싯다르타에서도 매우 중요 한 구도법으로 차용되어, 문자 대신 자기 내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숙고, 그리고 체험을 통한 완벽한 인식전환이 올바른 구도법으로 제시되고 있음 을 살필 수 있다. 이렇게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에서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 고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실은 “이 가르침이라 는 것, 바로 그 무수한 말들”26) 때문이라 충고하면서, 불교에서 강조하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불립문자적 직관과 자력적 체험을 강조하였다. 이렇 게 불립문자의 진리성은 실유불성의 존재성과 더불어 소설 싯다르타의 핵심적 씨줄과 날줄이 되어 불법을 전하는 중요한 소설적 장치로 사용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26) 헤르만 헤세, 위의 책, 212면. 212 선문화연구 제23집 Ⅲ. 소설 속 깨달음이 갖는 불교사상적 의의 1. 불이적(不二的) 세계관에 대한 통찰 불이사상의 유래는 유마에게서 찾을 수 있다.27) 유마경에서는 “의식의 27) 유마는 출가하지 않은 재가신도로서 붓다의 십대 제자들보다 높은 경지의 수행 적 삶을 구현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유마경 「입불이법문품」에서는 명(明) 과 무명(無明)은 둘이지만 무명의 실성(實性)은 사실 명에 있으며, 이러한 가운 데에서 평등하여 둘이 아닌 것을 이름 하여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이라고 하였 다. 본래의 성품은 밝음이지만 밝음은 또한 어두움으로 드러나므로 결국 이 둘 은 둘이 아니라는 것으로, 유마는 늘 단견으로 치우치는 우리의 일반적 사고인 식의 경계를 지적하며 이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사례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생겨나는 것과 멸하는 것, 나와 나의 것, 깨끗함과 더러움, 움직임 과 골똘히 생각함, 보살의 마음과 성문의 마음. 취하는 것과 취하지 않는 것, 일 상(一相)과 무상(無相), 선과 악, 잘못 있음과 잘못 없음, 번뇌 있음과 번뇌 없 음, 행복과 불행, 세간과 출세간, 윤회와 열반, 다함과 다함없음, 아(我)와 무아 (無我), 앎과 어리석음, 색(色)과 공(空), 사계(四界)와 허공계(虛空界), 눈과 대 상, 보시와 일체지에 대한 회향, 공과 무상과 무원, 부처의 법과 승가, 몸과 몸의 소멸, 몸과 말과 생각, 공덕과 비공덕, 자아와 둘 사이의 대립, 인식행위에 의한 둘 사이의 대립, 밝음과 어두움, 열반을 좋아하고 윤회를 싫어하는 편견, 바른 도와 그릇된 도, 진실과 허위’ 등, 모든 분별적 대상을 상세하였다. 문수사리가 유마의 병문안을 갔을 때 어떻게 해야 병을 벗어날 수 있는지(어떻게 병을 인식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자 유마는 ‘내가 있다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터 벗어나는 일, 다시 말해 둘로 분별하는 일을 벗어나는 일이 병을 바르게 인 식하는 법이라 하였다. 또한 「부사의해탈품」에서는 “법은 유위(有爲)도 아니고 무위(無爲)도 아닌” 것이라 사리불에게 설하였다. 산속의 고요한 경계에만 집착 한다던가, 무욕의 깨끗함만을 탐착하여 유위의 혼탁을 피하려는 이러한 마음 모 두가 치우친 견해로 비롯되는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특히 유마경에서는 ‘범 부의 행도 아니고 성현의 행도 아닌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이라 정의함으로써 불이사상이란 일말의 분별도 용납하지 않는 무분별의 평등성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유마의 불이사상은 중생의 삶 속에서 깨달음을 실현하는 대승사 관의 기저원리로 작용하면서 실천적인 현실반영을 구가하였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13 본성은 공이므로 집착의 대상인 오온에 대해 이와 같이 아는 것이 불이에 들어간다는 뜻”28)이라 적시한다. 불이의 깨달음은 공(空)에 대한 바른 앎으 로부터 비롯된다. 무상한 삶과 그로 인한 고통의 원인은 일체제법을 ‘생과 멸·윤회와 열반·있음과 없음’ 등으로 변별하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에 있 다. 불이는 그릇된 이 두 견해를 모두 끊음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실로 모든 고통의 원인은 온갖 사물과 현상을 이원성으로 파악하는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일체제법에 대한 상대적 차별성을 떠나 중도의 정관(正 觀)을 갖출 때 고통은 사라진다. 대상과 주관, 주체와 객체가 모두 둘이 아 닌 불이의 대상임을 관할 때 고뇌는 곧 법계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소설 속에서 불이적 경계와 세계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소설 싯다르타에서는 바로 이 불이의 경지를 주인공 싯다르타가 도달한 최후의 경지로 상정하고 있다. 요컨대 주인공 싯다르타는 더 이상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지 않는 경계, 즉 ‘불이의 깨달음’을 성취하면서 대도(大道)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소설 도입부에서 주인공 싯다르타는 모든 현상을 성스러움과 불경함, 깨 끗함과 더러움 등으로 구분하면서 불경함과 더러움은 버리고 성스러움과 깨끗함만을 취하려한다. 그러다가 이 같은 취사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 고는 길을 떠난다. 그러나 이번엔 그 반대로 성스러움과 깨끗함은 버리고 불경함과 더러움으로 들어가는 반대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를테면 세속 으로 들어가 기생 카말라를 만나 쾌락을 배우고, 카와스와미에게 장사기술 을 배워 돈을 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쾌락과 권력과 여자와 놀음에 빠져들 28) 鳩摩羅什 譯, 維摩詰所說經 권中(大正藏 14, 551a), “色性自空 如是受想行 識 識空爲二識 是爲入不二法門.” 214 선문화연구 제23집 면서 장사꾼, 노름꾼, 술꾼, 탐욕꾼이 되어간다. 그렇게 세속적 환락에 물들 어 높은 목표도 없이, 갈증도 없이, 향상도 없이 자그마한 쾌락에 만족해하 는 자신을 보며 주인공 싯다르타는 큰 환멸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양 극단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하지만, 그러나 문제는 정작 이 양 극단을 떠나 갈 곳은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다. 성스러움에서 속됨 으로 왔기에, 다시 성스러움으로 갈 수도 없었으며, ‘승’도 버리고 온 ‘속’에 서도 안주하지 못했기에 이제 더 이상 갈 곳은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자신이 갈 수 있는 제3의 길을 마지막으로 선택한 다. 성스러운 세상과 더러운 세속도 모두 떠나는 구체적 방법으로 주인공은 이 세상을 버리기로 한다. 헤세의 표현에 의하자면 “위대한 구토행위”29)이 자, “자기가 증오하던 형식의 파괴”30)로써의 물리적 죽음, 즉 자살을 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생을 마감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주인공은 강을 찾아간다. 그런 데 요동치는 강 앞에 서서 싯다르타가 미련 없이 몸을 던지려는 찰나, 자신 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지난날들 이 그저 헛된 날들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성스러움과 더러움, 승과 속, 생과 사는 모두 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허상의 관념으로, 실은 이 둘은 둘이 아닌 불이적(不二的) 상관물이자 그 자체 그대로 실상임을 철견하게 된 것이다. 목숨을 버리려던 그 강가에서 싯다르타는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 던 깨달음을 성취하며, 일체의 분별망상을 떠난 절대 평등의 불교진리의 세 계인, ‘불이의 세계’에 들게 된다. 29) 헤르만 헤세, 박병덕 역, 싯다르타(서울: 민음사, 1997), 129면. 30) 헤르만 헤세, 위의 책, 129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15 헤르만 헤세는 소설 전반을 통해 싯다르타가 마지막으로 불이의 세계에 들기까지의 과정을 다음의 순서로 보이고 있다. 이 도정(道程)을 간단히 요 약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어린 시절에는 오로지 고행과 사색, 침잠에만 관심을 쏟으며 우주 의 최고 원리인 범(梵)만을 추구함. 둘째, 젊은 시절 집을 나와 외도들과 함께 고행하며 굶주리는 법과 육신 을 소멸하는 법을 배움. 셋째,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실유불성을 자각함. 넷째, 세속으로 들어가 기생 카말라와 장사꾼 카와스와미를 만나 물욕과 색정에 젖어가면서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깨쳤던 진리를 까마득 히 잊고 허송세월을 함. 다섯째, 세속으로부터 다시 나와 자살을 생각함. 그러나 강물에 몸을 던 지려던 바로 그 순간 이른바 ‘자아[에고]’가 떨어져나감으로써 불이 의 깨달음을 얻음. 여섯째, 뱃사공이 되어 무욕(無慾)의 삶을 영위함. 이 세상 모든 것은 나 와 둘이 아니라는 불이의 존재성을 자각하며 모든 현상과 사물과 존재를 진실로 내 몸 같이 사랑하게 됨. 이상의 내용에서 보면 싯다르타 마지막 깨침은 ‘자아[我相]의 죽음’을 통 해 획득되어진 ‘불이(不二)의 진리성’이라 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에서 주인공 싯다르타의 이 ‘자아’를 구체적으로 ‘사제의식’이라 설명한다. 자기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언제나 가장 현명한 자였고, 언제나 최 고의 열성파였으며, 언제나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한 걸음 앞 서 있었으며, 언 216 선문화연구 제23집 제나 학자이자 사상가였으며, 언제나 사제 아니면 현인이었다. 이런 사제 기질 속으로, 이런 교만한 마음속으로, 이런 정신적 성향 속으로 자기의 자아가 살며 시 파고 들어와서는 거기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고 앉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 는 동안, 자기는 단식과 참회로써 그 자아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31) 헤르만 헤세가 진심으로 놓고자 하였던 것은 사제의식, 즉 사문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상(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속에 깊이 또아리 틀고 있던 그 사문의식을 목숨 걸고 선 삶의 끝에서 비로소 완전히 떨치며 미망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소설 싯다르타의 일부 구성은 화엄경, 「입법계품」과도 매우 유사하 다. 전술한 요약 네 번째, 다섯 번째 부분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 동자의 구도행과 다르지 않다. 총명하고 지혜로워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기 를 좋아한 화엄경 속 선재동자는 몸으로나 입으로나 마음으로 일체의 죄 를 짓지 않고 깨끗한 보살의 도를 꾸준히 닦는다. 그러다가 문수보살의 말 씀을 듣고 무상정각을 이루기로 결심하고 선지식을 찾아 구법여행을 떠난 다. 이후 보살, 비구, 비구니, 바라문, 장자, 소년, 소녀, 의사, 창녀, 도적 등 각계각층의 직업과 신분을 가진 53지식을 찾아가 법을 구하다가 마지막에 보현보살을 만나 지혜바라밀을 구족하면서 보살과 여래의 광대한 경지에 들게 된다. 싯다르타 역시 여자와 장사꾼과 노름꾼, 술꾼 등을 만난 뒤에 이들 모두 실유불성의 존재임을 깨달으며 마지막으로 불이(不二)의 법을 얻는다. 선 재동자와 유사한 구도행으로 주인공 싯다르타도 일체존재는 모두 연기적 31) 헤르만 헤세, 위의 책, 145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17 존재라는 불이의 광대한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 자체, 우리 주위에 있으며 우리 내면에서 현전하는 것 그 자체는 결 코 일면적인 것이 아니네. 한 인간이나 한 행위가 전적인 윤회나 전적인 열반인 경우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한 인간이 온통 신성하거나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있는 경우란 결코 없네.32) 너와 나, 나와 세계, 세계와 세계는 모두가 서로 불가분의 총체적 상입상 즉(相入相卽)의 관계를 갖는다는,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가 이룩한 이 같 은 불이의 깨달음은 다음의 서술에서 극치를 이룬다. 그는 이 모든 형상들과 얼굴들이 각각 서로서로 도우면서, 서로서로 사랑하 면서, 서로서로 미워하면서, 서로서로 파멸시키면서, 서로서로 새로운 생명체를 잉태시키면서 서로 간에 수천 가지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형상들 과 얼굴들 하나하나가 모두 다 일종의 죽음에의 의지였으며, 덧없음에 대한 심 히 고통스러운 고백이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도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 모두는 단지 모습을 바꾸고 있었을 뿐이며,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났으며, 그때 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의 얼굴과 다 른 얼굴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가로놓여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모든 형 상들과 얼굴들은 멈추어 서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 고, 떠내려가기도 하다가 마침내 서로 뒤섞여 하나가 되어 도도히 흘러가고 있 었다.33) 싯다르타는 결국 인생의 모든 여정은 도를 깨치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었 32) 헤르만 헤세, 위의 책, 207면; 김성옥, 앞의 글, 64면. 33) 헤르만 헤세, 위의 책, 219면. 218 선문화연구 제23집 음을 깨닫는다. 무명의 세속행이 그대로 제법의 실상이며, 중생의 집착과 그로 인한 고통 또한 그대로 존재의 실상임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불이의 깨달음 속에서 마침내 “싯다르타의 미소는 부처 고타마의 미소, 그 러니까 그 한결같은, 잔잔한, 우아한, 측량할 길 없이 불가사의한, 어쩌면 자비로운 듯하기도 하고, 어쩌면 조소하는 듯하기도 한, 현명한, 그 속뜻을 가늠하기 힘든 신비한 미소와 완전히 똑같은 것34)이 된다. 이렇게 싯다르타의 마지막 지향은 불이와 공(空)의 진리성이었으며, 실유 불성을 바탕으로 한 불이적 세계관의 성취였음을 알 수 있다. 2. 전존재적 동류의식의 발현 자타불이의 자각은 타자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에 다름 아니다.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도 불이의 자각으로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을 따지지 않 는 대 자비심을 발현한다.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는 개울을 건너다가 개울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 마치 중국의 선사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와 같이 ‘강물소리’에서 무정설법을 들으며 그 깨달음을 완성하는 것이다.35) 그 모든 소리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움에 애타는 탄식 소리, 깨닫 34) 헤르만 헤세, 위의 책, 220면; 김성옥, 앞의 글, 59면. 35) 모든 존재에는 불성이 존재하므로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은 수․당 시대 화엄, 천 태, 밀종 등의 각 종파에서 제기되었다. 그 중에서도 동산양개는 인간만이 법을 설하는 게 아니라 산천초목도 다 설법을 하고 있다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펼 쳤다.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도 동산양개와 같이 ‘강물소리’에서 무정설법을 들으며 그 깨달음을 완성한다는 것에서 중국 선사상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19 는 자의 웃음소리, 분노의 외침 소리와 죽어가는 사람의 신음 소리, 이 모든 것 이 하나가 되어 있었으며, 이 모든 것이 수천 갈래로 얽혀서 서로 밀착하여 결 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합해져서, 그러니까 일체의 소리들, 일체의 목적들,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번뇌,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과 악, 이 모든 것 들이 함께 합해져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36) 싯다르타는 휘몰아치는 강물 소리에서 세상 사람들이 겪는 삶과 죽음의 환희와 비애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고귀한 자든 하천한 자든, 깨달은 자든 비참하게 죽어가는 자든, 모두 다 동일한 본성을 가진 존재임을 자각 한다. 그렇게 불이의 존재라는 대 자각이 있고부터 싯다르타는 그 전에는 “어린애 같던 인간들이 자기의 형제처럼 느껴”37)지고, “그들의 허영심, 탐욕 이나 우스꽝스런 일들을 이젠 웃음거리가 아니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일, 사랑스러운 일, 심지어는 존경할 만한 일로”38) 받아들여진다. 참된 불이의 동류의식으로 타자와 세상에 대한 무한 이해와 사랑이 확장되는 것이다. 실로 너와 나는 불이의 존재라는 바른 앎이 선행될 때 타자에 대한 진정 한 연민인 지고의 동체대비심은 싹튼다. 불교에서 자(慈)는 중생을 사랑스 럽게 생각하며 편안하고 즐거운 일을 구함으로써 널리 이롭게 하는 마음, 비(悲)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오도에 태어나 갖가지 몸의 고통 과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중생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 희(喜)는 중생 들이 즐거움으로부터 환희를 얻게 하려는 마음, 사(捨)는 위의 세 가지 마 음을 다 버리고 오직 중생을 생각하되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마음이 36) 헤르만 헤세, 앞의 책, 198면. 37) 헤르만 헤세, 앞의 책, 189면; 大乘義章(大正藏 44, 481b) 참조. 38) 헤르만 헤세, 앞의 책, 189면. 220 선문화연구 제23집 라 하였다.39)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무량심의 원천은 일체중생은 모두가 연기적 관계로 이루어진 불이의 존재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모든 괴로움을 야기하는 자타, 물심, 생사, 선악, 고락, 미추 등의 분별심도 실은 그 자체 무자성(無 自性)이라는 공성(空性)이 올바르게 체득될 때, 자타불이적(自他不二的) 대 자비심은 저절로 구족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에서 바로 이 대자대비의 마음을 전존재적 동 류의식인 ‘사랑’이라 명명하고 있다.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40) 나는 내가 고타마[세존]와 의견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 분이 어떻게 사 랑을 모르실 수 있겠는가. 무릇 인간 존재라는 것이 덧없고 허무하다는 것을 인 식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중생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온통 노고로 가득 찬 길고도 긴 한평생 동안 오로지 인간 중생을 도와주고 가르치는 데 온 힘을 다 쏟으셨던 그 분이 아닌가!41) 헤세가 말하는 ‘사랑’은 부처님의 대자비심의 다른 명명이다. 실로 자비 심은 “인간 생존의 가장 기초”42)로써, “자비심이 없다면 삶의 기초가 없는 39) 鳩摩羅什 譯, 大智度論 20(大正藏 25, 208c), “慈名愛念衆生 常求安隱樂事 以饒益之 悲名愍念衆生 受五道中 種種身苦心苦 喜名欲令衆生 從樂得歎喜 捨 名捨三種心 但念衆生 不憎不愛.” 40) 헤르만 헤세, 앞의 책, 214면. 41) 헤르만 헤세, 앞의 책, 215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21 것”43)과 다름없다. 분노와 미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타인 에 대한 인내심과 관대한 마음인 사랑을 갖는 길 뿐이기 때문이다. 자비심이란 다 갖춘 어느 한 쪽이 무언가 모자란 다른 한쪽에게 적선하듯 던져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이 가유(假有)의 세상에서 한시적 삶을 부 여받은 동류의 존재라는 인류공동의 본질적 고통에 대한 공동의 자각과 그 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평등성’과 ‘공통성’에 기반한 자각과 연민은 타인에 대한 참자비심인 무한사랑으로 확장된다. 나아가 마음을 구족한 완성자의 삶의 태도는 ‘무구(無求)‧무욕(無慾)‧무작 (無作)’으로 드러난다. 선가(禪家)에서는 오랜 전부터 구경의 경지에 이른 각자(覺者)의 모습을 ‘무위진인(無位眞人)’, ‘무사인(無事人)’ ‘본래인(本來 人)’ 등이라 하면서, ‘일체의 현상 속에서 마음의 집착과 머무름이 없이 행 하는 것을 깨달은 자의 전형적 모습으로 여겨왔다. 헤르만 헤세도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궁극의 도를 이룬 주인공 싯다르타 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구하는 흔적도, 무언가를 욕망하는 흔적도, 무언가를 모방하는 흔적도, 무언가를 위해 애쓰는 흔적도 전혀 엿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빛과 평화 만이 엿보였다.44) 일체의 시비와 애착 분별을 떠나 모든 물이 하나의 강물로 어우러지듯 42) 달라이라마·하워드 커틀러, 류시화 역,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파주: 김영사, 2001), 127면. 43) 헤르만 헤세, 앞의 책, 127면. 44) 헤르만 헤세, 앞의 책, 47면. 222 선문화연구 제23집 소설에서 주인공 싯다르타는 그 마지막에 제법에 임운자재(任運自在)한 무 위진인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마치 일체 고뇌와 시시비비를 떠난 무심의 경지에서 중생들과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기뻐하며 동고동락하는 사랑과 자비심만이 가득한 구경의 완성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주인공 싯다르 타도 그러한 최후의 완성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소설 싯다르타 는 그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철저히 불교적 깨달음과 그 진리자체를 매 우 구체적으로 그리며 불교의 핵심사상을 전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Ⅳ. 나가는 말 그 제목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싯다르타는 피폐한 현실의 인간이 어떻 게 불교적인 절대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헤르만 헤세 자신의 불교적 지식과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그린 서구 근대불 교사상 공전(空前)의 불교 구도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싯다르타를 관통하는 주요사상은 모든 인간은 자기존재 내면에 불성을 갖춘 실유불성적 존재라는 것, 너와 나,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에 게 상입상즉의 관계로 맺어진 불이적 존재라는 깨달음이다. 모든 생명의 성불 가능성의 선언인 실유불성사상과 진정한 자비와 평등 성의 근간인 불이사상은 불교의 대표적 무한인간 긍정사상으로, 불교에서 와 마찬가지로 소설 싯다르타에서도 그 마지막 지향점과 대주제는 ‘인간’ 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비’로 귀결되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23 특별히 싯다르타에서는 중국선종에서 강조되던 불립문자 개념을 소설 주제의 한 거대한 맥락으로 차용하고 있는데, 깨달음이란 결코 말이나 글로 는 전할 수 없으며 오직 인간의 심오한 통찰과 전존재적 체험으로만이 체 득될 수 있음을 주인공 싯다르타를 통해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구체적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불이적 세계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전존재적 동류의식의 발현은 소설 싯다르타의 중심테제로 구현되고 있 다. 이처럼 첨예한 불교사상을 불후의 문학성으로 구체적이며 심도 있게 구 현된 것이 소설 싯다르타로, 이 글이 발표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볼 때 그 가치는 더욱 지대하다. 224 선문화연구 제23집 참고문헌 佛陀跋陀羅 譯, 大方等如來藏經(大正藏 16). 鳩摩羅什 譯, 大智度論(大正藏 25). 鳩摩羅什 譯, 維摩詰所說經(大正藏 14). 鳩摩羅什 譯, 中論(大正藏 30). 眞諦 譯, 佛性論(大正藏 31). 慧遠 譯, 大乘義章(大正藏 44). 달라이라마·하워드 커틀러 저, 류시화 역,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파주: 김영사, 2001, 1 - 351면. 이인웅, 헤르만 헤세와 동양의 지혜, 서울: 두레, 2000. 헤르만 헤세 저, 朴鍾緖 譯, 유리알 遊戱, 世界文學全集 10. 서울: 乙酉 文化社. 1966, 1 - 457면.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헷세 全集 4. 서울: 藝文 館, 1969, , 金耀燮 譯, 데미안, 서울: 文藝出版社, 1972, 1 - 295면. , 宋永擇 譯, 크눌프: 삶의 세 가지 이야기 게르트루트, 서울: 宇石, 1987, 1 - 301면. , 박혜령 역, 수레바퀴 밑에서, 서울: 홍신문화사, 1994, 1 - 280면. , 박병덕 역, 싯다르타, 서울: 민음사, 1997, 1 - 240면. 申奉玉, 헤세의 싯다르타에 나타난 명랑성 연구,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25 석사학위논문, 전주: 全北大學校, 1997, 1 - 37면. 김성옥,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에 대한 불교적 해석」, 외국문학연구 64, 서울: 외국어문학연구회, 2016, 53 - 71면. 이인웅, 「헤르만 헤세의 불교」, 외국문학연구 4, 서울: 외국어문학연구회, 1998, 289 - 328면. 인성기, 「헤세의 단일성 사상과 유식불교의 여래장: 소설 싯다르타를 중 심으로」, 헤세연구 25, 서울: 한국헤세학회, 2011, 45 - 66면. 정경량, 「Hermann Hesse가 받은 신비주의 영향」, 論文集 12, 대전: 목원 대학, 1987, 23 - 39면. 황서광, 「헤르만 헤세 作 싯다르타 讀法의 一試論」, 한국불교학회 66, 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 413 - 439면. 논문투고일: 2017. 11 06. 심사완료일: 2017. 12. 15. 게재확정일: 2017. 12. 22. A Study of Hermann Hesse’s Siddhartha from the Perspective of Buddhist Studies of Humanity Park, Kyu - Ri Siddhartha is one of Hermann Hesse’s masterpiece novels. Hesse depicts in it in detail how a human being may overcome this-worldly pleasures, selfishness and self-centeredness so as to reach the ultimate state of Buddhist ideal. Siddhartha in the novel is a youth from a family of brahman class, the priestly and thus highest rank in ancient Indian caste system. He lives a comfortable and honorable life. However, the fervor for new experiences and wisdom grows stronger as he gets aged. He sets on the journey for enlightenment and comes across with Gautama Buddha. He thenceforth goes through various experiences of vicissitudes and at last attains the enlightenment to the Truth after much meandering of life. This novel attracted much attention in the West as soon as it was published. Numerous studies have been done on it. But there has been almost no serious study on the Buddhist ideas and philosophy in the novel. There have been some attempts, instead, to explain away its Buddhist ideas in terms of Indian or Taoist or even Christian philosophy.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불교사상적 담론 / 박규리 227 The most important key ideas underlying Siddhartha are: Firstly, everyone of us human beings has the Buddha - nature and thus the inherent identity as a Buddha; secondly, we are all dependent on one another, mutually inter - penetrating, and thus inseparable from one another - beings of non - duality (advaita); thirdly, the enlightenment to these truths is ineffable and thus cannot be taught in words, but might be only experienced through the deepest insight into human conditions. Siddhartha is a narrative of the whole process of vicissitudes toward the ultimate enlightenment to the Buddhist Dharma from the perspective of Mahayana Buddhist, especially Zen Buddhist, ideal. What it advocates in terms of the ideas of universal Buddha - nature and Non-duality are the same as the Buddhist doctrines’ focal points: The limitless potentiality and dignity of human dignity; and the compassion for all beings. Key words: Hermann Hesse, Siddhartha, Buddha-nature, Dualism, Ahayana Buddhism, Dharma of Nond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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