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因果)의 업(業)*
부처님께서는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저 미세 곤충까지 모든 것이
업(業)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 우주는 업(業)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즉, 인(因)은 과(果)를 낳고, 과(果)는 다시 인(因)을 마련하여 우주의 모든 현상세계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돌, 인간, 동물, 미세곤충 모든 것이 '업'에 의해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업'에 의해서 대자연계(大自然界)가 살아 움직이고 동물계(動物界)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나타나서 눈에 보이는 현상(現狀)만 알지, 그것들을 이루고 있는 '업'의 생명을 모르기 때문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돌이나 흙이나 물이나 공기 등, 우주 속의 모든 것에는 '業의 생명(生命)'이 들어 있으므로
살아 움직이고 그 '업'대로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人間의 業'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지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정신(精神)내부의 생각은 뜻을 결정하고, 결정한 후 몸으로 행동하게 되고,
입으로 선(善)과 악(惡)을 짓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제각기 업력(業力)에 의하여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각기 자신의 뜻을 결정하고, 이러한 결정은 동작과 말로 표현되어 업력(業力)이 되고,
그 업력(業力)은 없어지지 아니하여 반드시 결과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人間)이나 세계(世界)가 모두 이 '業의 결과(結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우주와 자연계와 인간 모두가 '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업(業)에 의해서 우주(宇宙)는 움직입니다.
우주만물 두두물물 어느 것 하나도 가만히 있는 것 없이 모두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금도 그침이 없이 일을 하고 주고받고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주만물이 변화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대자연계는 스스로 움직이고 있고 서로 관계를 맺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자연계는 '業의 생명(生命)'에 의해서 그대로 일을 하고 있으며,
만들고 있으며, 또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우주만물은 업(業)에 의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에 있는 모든 물건은 조금도 쉼 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성(成:이루어지고 있는 과정), 주(住:현상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과정),
괴(壞:무너지고 있는 과정), 공(空:없어지고 있는 과정)의 넷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지구(地球)를 보더라도 바다 밑바닥이 서서히 물위로 올라오는 곳이 있는가 하면
물이 점점 바다로 침잠(沈潛) 되는 지역도 있게 마련입니다.
일본열도는 조금씩 잠겨 가는 현상을 보이는가 하면,
한반도 지역은 올라오는 현상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 연유라 할 것입니다.
높은 산 속에서 물고기 화석이 발견되고 바다 밑에서 석탄이 나오는 것 역시
지금의 산들이 몇 천만년 전에는 바다였고, 지금의 바다 밑이 산이었음을 증명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 전체의 큰 변화(變化)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바로 우주의 성(成),
주(住), 괴(壞), 공(空)의 현상이라 할 것입니다.
셋째: 모든 것은 업(業)대로 만들어집니다.
우리 인간의 몸 구조를 보더라도 꼭 살아가게끔 만들어졌습니다.
눈동자는 눈꺼풀이 있어 보호하고, 콧구멍은 아래로 뚫려있고, 이빨이 있어서 단단한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있고,
목구멍으로 넘어간 음식은 다시 넘어오지 않고 위에서는 소화를 하여 피와 살을 만들고,
필요 없는 찌꺼기는 배설물로 내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동물이나 무슨 식물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그 환경(環境)에 적응(適應)하며 번식하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동물이나 식물이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은 업(業)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되어질 '업', 동물이 되어질 '업', 나무가 되어질 '업', 꽃이 되어질 '업'
모두 그렇게 되어질 '업'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넷째: 심은바 업(業)대로 받습니다.
죄(罪)나 복(福)을 지으면 반드시 그 결과가 돌아옵니다.
내가 罪와 福을 짓고도 잊어버리면 누가 그 罪와 福을 알아서 과보(果報)를 내려주겠는가. 그
러나 이것은 진리(眞理)속에 소소영영한 기운이 있어,
罪 짓고 福 지은 것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재앙(災殃)을 내려주기도 하고,
福을 내려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罪와 福을 지어 '업'을 만드는 것은 본인에게 있지마는 지은바 '업'에 의해서 재앙을 당하고
복을 받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 지극한 정성(精誠)에는 업(業)도 감응합니다.
지극한 정성이면 감천(感天), 즉 하늘도 업(業)도 변화시키는 이치입니다.
어느 물질이든 점점 극(極)에 도달하면 변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숨 쉴 수 있고 그 속을 자유로이 걸어다닐 수 있는 이 공기가 한없이 부드러운 기체(氣體)이지만
영하 270도로 냉각시키면 철판처럼 강한 고체(固體)로 변합니다.
그 성질 자체가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과(因果)의 업(業)도 지극한 정성이면 이루어지는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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