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코끼리 탄 보살님…불법 실천의 상징
사바세계는 ‘말(言)과 글의 유희’가 판치는 세계다. 교묘한 말과 글, 속이는 언어와 문장, 그리고 비방하는 논(論)과 술(述)이 출렁거리는 세계다. 중생들은 ‘말’로만 모든 것을 재단(裁斷)하고, ‘말’로써 모든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말과 글을 뒷받침하는 ‘책임 있는 행동’은 하지 않은 채. 그래서 항상 다툼이 일어난다. ‘네가 옳으니, 네가 맞느니’하면서. 앞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시작된 다툼은 성냄.탐욕.어리석음에 의해 ‘크기’가 더욱 증대된다.
불교는 말과 글을 신뢰하지 않는데, 신라의 원효스님(617~686)은 말과 언어의 장단점을 함께 파악했다. 원효스님에 따르면 글과 말은 진리를 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진리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말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스님은 ‘문어비의(文語非義)’로는 진리를 왜곡할 수 있으나, ‘의어비문(義語非文)’으로는 진리를 부분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갈파했다. ‘문어비의’란 일상 언어의 속성에 집착해 낱말이나 문맥에 얽매이는 세속의 말이고, ‘의어비문’은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와 문맥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의 실체를 파악해 이를 왜곡 없이 드러내는 말을 말한다.
사실 현실적으로 말과 언어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행동이 뒷받침 안 된 말은 의미(意味)가 미끄러져 결국 ‘의미 없이’ 사라지고 만다. 때문에 서로를 속이다 결국에는 모두가 상처 입는, 참고 살아야 되는 감인(堪忍)세계가 지속된다. 말이 얼마나 사바세계를 힘들게 하는지는 “거짓 말(妄語), 교묘한 말(綺語), 현란한 말(兩舌), 비방하는 말(惡口)한 것을 참회 한다”는 내용이 있는 〈천수경〉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글 또한 마찬가지다.
불교는 이런 사바세계에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실천이 필요한 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보살을 제시한다.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과 짝을 이루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바로 그 분이다.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부처님의 원력(願力)을 실천적으로 대변하는 대행(大行) 보현보살의 본래 이름은 ‘사만타브드라-보디삿트바(Samanthabhadra-bodhisattva)’. ‘넓게 뛰어남’ ‘보편적인 수승(殊勝)’ 등을 의미하기에 ‘보현’이나 ‘변길(遍吉)’로 한역된다. 음역할 때는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로 표기되지만,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기에 ‘보현연명보살’ 또는 ‘연명(延命)보살’이라고도 한다.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을 협시하는 보현보살은 부처님의 오른쪽에서 이덕(理德. 이치).정덕(定德. 선정).행덕(行德. 실천)을 맡는다. 문수보살과 함께 일체보살의 으뜸이 되는, 불교적 실천행의 상징인 보현보살의 성격은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잘 나와있다. “옛날 무량(無量)의 부처님을 받들고, 모든 보살도의 구극(究極)에 달하였다. 보현은 삼매에 의해 자재력(自在力)을 얻었기에 모든 것을 알고, 부처님의 비밀 처(秘密處)에 통한다. 일체의 불어(佛語)에 관해 의문을 단절했으며, 모든 부처님의 호지를 받아 일체중생의 근기를 안다. 그렇기에 일체중생의 신해와 해탈의 길을 잘 열어 보일뿐 아니라, 모든 부처님의 가계(家系)를 진흥하는 지혜를 갖는다. 보현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설함에 있어서도 변설이 자재하고 기타 무량의 덕성을 갖추고 있다.” 모든 불보살은 보현보살의 행원(行願)-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겠다고 자신의 소원을 밝히는 것 - 을 통해 이 세상에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보현보살의 행원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화엄경〉 ‘입법계품’ 말미에 보이는 10대원(보현행원찬)이 정수(精髓)다. “언제나 모든 부처님을 존경하며(禮敬諸佛), 언제나 모든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며(稱讚如來), 언제나 모든 부처님께 봉사하고 최상의 공양을 하며(廣修供養), 언제나 무시이래의 악업을 참회하고 깨끗한 계를 간직하며(懺悔業障), 언제나 불보살과 육도중생의 모든 공덕을 기쁘게 따르며(隨喜功德), 언제나 모든 부처님께 가르침 주시기를 희구하며(請轉法輪), 열반에 들려는 불보살들에게 세상에 머물 것을 청하며(請佛住世), 언제나 부처님을 따라 모든 가르침을 배우며(常隨佛學), 모든 중생에게 공양과 자비를 베풀며(恒順衆生), 모든 공덕을 일제중생에게 돌리며 불과(佛果)의 증득을 원한다(普皆廻向)” 등의 열 가지가 보현보살이 세운 원력이다.
지혜상징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 협시
석굴암에 새겨진 아름다운 입상 세계적으로 유명
열 가지 대원은 보현보살의 본원(本源)이자 모든 구도자들이 이룩하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조항이기도하다. 원력을 실천해 보현보살이 정각(正覺)을 이루고 끝없는 중생들이 구제되는 바로 그 때, 입법계행(入法界行)이 완성되고 불도(佛道)가 성취된다. 이런 점에서 보현보살은 〈화엄경〉의 주존(主尊)인 비로자나부처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상징적 보살이다. 보현보살은 우리나라에서도 신봉됐다. 고려 균여대사(923~973)가 지은 ‘보현십원가’가 널리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현행원품의 어려운 내용을 향가를 빌려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지은 이 작품은 모두 11수로 구성됐다. 예경제불가, 칭찬여래가, 광수공양가, 참회업장가, 수희공덕가, 청전법륜가, 청불주세가, 상수불학가, 항순중생가, 보개회향가, 총결무진가 등이 그것. 보현십원가는 송나라 군신들에게까지 전파돼 호평 받았으며, 그들은 균여대사를 일컬어 “진실로 한 부처가 세상에 오신 것(眞一佛出世)”으로 칭송했다고 한다.
사실, 무수한 중생들이 보현행원을 통해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계에 들어감을 보여주는 보현행원품은 〈화엄경〉 전체 내용을 압축한 것이며, 따라서 ‘보현행원’은 〈화엄경〉의 목적이자 ‘불교의 목표’라 할 수 있다. 불교는 진리를 ‘신적인 초월’이나 ‘형이상학적 실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른 삶의 길(正道), 크나큰 진리의 수레(大乘), 해탈의 언덕으로 건네주는 행(波羅蜜行) 등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불교는 ‘길’과 ‘수레’처럼 역동적 개념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삶 속에서 진리를 찾는다. 보현행원이 불교적 삶의 과정을 올바르게 이끌어주는 가르침이며, 보현보살을 진리의 실천자로 파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교적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는 보현보살이기에, 당연히 불교미술의 훌륭한 소재가 됐다. 흰 코끼리 탄 모습과 연화대 위에 앉은 모습으로 보현보살은 주로 조각되고 그려졌는데, 특히 6개의 어금니가 있는 흰 코끼리를 탄 모양으로 많이 형상화됐다.
수많은 보현보살상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이 석굴암 보현보살상이다. 주실오른쪽에 있는 보현보살은 앙련좌 위에 서있으며, 머리에는 큼직한 원형 두광이 있다. 몸을 틀어 굴 안쪽으로 보고 있는데, 천의(天衣)는 유려하고 목에 늘어진 영락 등 장엄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작은 잔을 받들고 있는 오른손, 밑으로 내려 천의 자락을 잡고 있는 왼손 역시 섬세하다. 부드럽고 우아하기까지 해 석굴암 조각 가운데서도 제일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일본에 있는 고려불화 중에서도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을 그린 훌륭한 불화들이 적지 않다. 보현보살의 이름을 따 창건한 사찰도 많다. 묘향산 보현사, 강릉 보현사, 남원 보현사 등이 대표적 예다.
보현보살을 형상화한 상(像)이나 불화를 보면서 항상 되새겨야할 점이 있다. 누구나 마땅히 세워야 되는 열 가지 행원(行願)을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시금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불교는 단순히 믿는 종교가 아니고, 실천하고 끝없이 자신을 점검하는 가르침임을 보현보살을 통해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보현보살상이나 보현보살도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며, 나아가 불교미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이나 조각 자체로만 불교미술을 파악한다면 훌륭한 미술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실천적인 종교가는 되기 힘들다. 조각과 그림을 통해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길로 나아갈 때 불교미술은 더욱 생생하게 살아올 것이다.
조병활 기자 bhcho@ibulgyo.com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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