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각분의 중심내용 촬요
능안 / 졸업생
Ⅰ. 서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지켜야 할 믿음의 지표로서 혹, 자기주의, 자기한계, 나태함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할 때 『금강경』을 찾는다. 마치 우리 인생의 교과서처럼......
누구나 한두 번쯤은 불교 공부(수행생활)를 하는 도중에 혼란(장애)에 빠지게 되는데 경전공부, 참선, 기도, 염불 등 여러 가지를 놓고서 어느 한 가지라도 붙들어 보려고 애를 쓴다. 그 중 금강경 수지독송을 많이 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통해서 인생과 삼라만상의 실상을 밝히시고,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을 열어 보이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금강경은 오조 홍인(602 ~ 675)이래로 육조 혜능(638 ~ 713)에 이르기까지 선의 주요사상으로 자리 매김 하면서 수많은 경전 가운데 유독 이 경전만으로 중생의 마음을 인가하게 되었다. 또 내용은 32분으로 단락을 구분하여 각각 제목을 붙이고 있다.
따라서 금강경의 제목이 뜻하는 의미를 중심으로 32분 단락의 주요한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Ⅱ. 금강경에 대하여ãūñ
1. 금강경의 성립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금강경은 쓰여진 연대는 명료하지 않으나 대개 서기 150 ~ 200년 경 대승불교 초기에 성립되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금강경은 『금강반약파라밀경』(Vajra - prajnñã - pãramitã - sūtra) 한 권으로 후진시대의 구마라즙(348 ~ 413)이 번역하였으며 전부 5천여 자로 이루어져 있다.
600부 반야경 가운데 비교적 짧고 오래된 경전에 속하며 ‘금강반야’ 라는 네 글자로써 600부 반야경을 융통하고 도태하여 그 강목이 된다.
금강경은 산스크리트 원본 외에 티베트어 역과 여러 종류의 한역이 있으며, 코탄어, 소르드어 등 중앙 아시아어의 번역도 남아 있다.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막스 뮐러가 출판한 (Vajracchedika - prajñã - pã ramitã - sūtra, ed. M. Muller,1881)것이 가장 유명하며, 한역으로는 구마라즙의 번역이 가장 충실하고 널리 알려져 있다.
2. 오조 홍인에서 육조 혜능에 나타난 금강경
이조 혜가로부터 사조 도신에 이르기까지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삼은 것은 『능가경』이었다. 이유는 달마가 맨 처음 북녘에서 가르침을 펴기 시작할 무렵에 지론학파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인이 황매의 동산사에서 가르침을 펴면서 『금강반야경』을 사용하게 되었다. 홍인이 가르침을 편 지역은 호북의 황매였는데, 호북은 남북조시대 이래 삼론종이 번성했던 곳이다.
당의 역사와 사회는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을 고비로 급격히 변화하면서 불교에도 또한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전개된 북종선은 수․당 불교의 울타리 안에 있었으며, 당시 신회에 의해서 선의 주요사상으로서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가 『금강경』의 일행삼매로 바뀌게 되었다.
신회에 의해서 금강경은 북종선에 대항하기 위한 사상적 무기가 되면서 선의 주요사상으로 자리하게 된다.
또, 신회에 이르면서 남종의 주장과 더불어 새로운 혜능이 나왔으며, 육조 혜능스님은 “선이라는 분별심도 일으키지 않고 악이라는 분별심도 일으키지 않을 때 바로 그 자리가 중생의 본래면목이다.” 라고 선악이 본래 둘이 아닌 평등한 자성의 이치임을 깨우치도록 하였다.
이처럼 오조 홍인은 금강경을 견성성불의 비전으로 삼았으며, 육조 혜능은 금강경으로 인하여 출가하게 되었고, 금강경으로 인하여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송고승전』 권28 「혜능전」)
그리고 그 맥을 이어 대한불고 조계종은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다.
3. 금강경의 대지와 제목의 뜻
금강경의 대지는 ‘파이집 (아․법) 현삼공 (아․법․구)’ 이다.
아는 인간관, 법은 세계관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실체는 공한 것이다.
공이란 모든 세상이 시간적․공간적으로 모두 연기하고 있으면서 개체 스스로는 실체가 없다는 세상의 질서를 나타낸 말이라 볼 수 있다.
금강경의 본래 제목은 『능단금강반야파라밀다경』으로 전 1권으로 되어있다. 제목을 약칭해서 금강반야경 또는 금강경이라고 부른다. (『대정신수대장경』 권8)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제목을 하나씩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금강’ (vajra)이란 그 성질이 금강석처럼 빛이 나며 또한 견고하고 날카로와 그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깨달음에 의한 지혜, 즉 반야를 비유한 것으로서 견고하고 날카로운 지혜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잘라서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반야’ (praj)는 커다란 일륜처럼 일체의 어두움을 타파하며, 광명이 나는 거울처럼 일체의 모든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할 수 있는 깨달음의 지혜를 뜻한다. 지혜는 흔히 빛으로 표현된다. 즉, 반야는 부처님의 분명하고 정확한 마음을 가리킨다.
‘파라밀’ (pãremitã)은 괴로움의 세계인 생사번뇌의 이 세계를 떠나서 번뇌가 고요히 사라진 세계에 도달한다는 의미로서 ‘도피안’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 자성에 본래 갖춘 지혜의 경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제목의 뜻을 요약하면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며 날카롭고 빛나는 깨달음의 지혜로써 모든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 완전한 평화와 행복만이 있는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 인 것이다. 즉 지혜의 완성이다.
Ⅲ. 금강경 각 분의 중심내용
이 경의 경문은 제 1분 ‘여시아문’으로부터 제16분 ‘과보역불가사의’까지가 전반부에 속하고. 제17분 ‘이시수보제백불언’으로부터 끝까지가 후반부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승조법사는 “전반부는 중생공을 설하고, 후반부는 법공의 이치를 설했다.” 고 한 반면에, 지의스님과 길장스님은 “전반부는 법회의 상근기 대중을 위해 설하고, 후반부는 하근기 대중을 위해 설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금강경을 32분으로 나눈 것은 양나라 무제의 아들 소명태자(? - 531) 인데, 일설에는 원나라의 번역본에는 본래 없고, 무착․세친의 논서의 과절과는 같지 않으며, 경의 뜻도 깨뜨리어 부러뜨림으로 이것을 취하지 않는다(『대정신수대장경』권33, 228중) 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명태자의 32분을 채용하여 금강경을 보고 있다.
제1분은 서분으로 세존께서 이 금강경을 설법하시게 된 연유를 말하고 있다.
제2분은 수보리가 의심이 나서 알 수 없는 문제들을 일일이 들어 부처님께 가르침을 청하였다.
제3분은 대승의 법문이 가장 높고 참되며 바른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제4분은 보살의 묘행은 광대무변하고 청정하여 모든 법과 모든 상에 머무름이 없고 집착함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묘행이란 깊고 깊은 불법의 묘리, 즉 진여의 이치에 들어맞는 수행을 가리킨 말이다.
제5분은 진여와 실상은 같은 진리임을 혜안으로써 실답게 보신다는 것이다.
제6분은 금강경의 뜻이 광대 미묘하여 후세 사람이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여 그대로 신봉할 사람이 드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7분은 진여의 불성은 본래 공인 것이며,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므로 얻을 것도 없고 설명할 것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삼현십성의 수행경지라 해도 그들의 수행 경지에선 반야의 실체를 완전히 깨닫지 못했으므로 반야에서 의혹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무위법에서 차별심을 낸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제8분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이 다 이 금강반야바라밀경의 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9분은 보살심을 발한 보살은 수행을 하여도 수행을 한다는 상이 없으며, 그 좋은 성과를 얻었어도 만족하는 상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제10분은 마음을 청정하게 닦아 불토를 장엄하게 꾸미고 건설하라는 말씀이다. 즉, “색법으로부터 보리열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에 집착하여 안주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는 말이다.
제11분은 법보시는 광대 무변하고 절대적이요, 한정이 없는 것이나 재보시는 상대적이며 한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 보시를 하여 받는 복, 즉 무위의 복이 재 보시를 하여 바든 복, 즉 유위의 복보다 수승 하다고 말씀하셨다.
제12분은 이 금강경에서 밝히신 정교가 가장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13분은 이 법문의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지어 주시고, 이 이름이 가리키는 법대로 수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수지하는 가운데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도록 하셨다.
제14분은 일체의 상, 즉 모든 집착을 벗어나서 마음에 동요가 없이 안락한 경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밝히셨다.
적멸이라 함은 마음이 청정하여 남에게서 아무 영향이나 지배를 받지 않으며, 마음이 조금도 동요되는 일이 없음을 말한다. 즉 법상의 집착을 떠나 번뇌가 고요히 사라졌다고 말씀하셨다.
제15분은 금강경을 진심으로 수지독송하고 이를 널리 여러 사람들이 잘 알아듣도록 설명을 해 주면 무량 무변 불가사의한 공덕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16분은 금강경을 수지하고 독송하면 그 공덕으로 모든 업장을, 즉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하여 이생에서 받을 과보가 약해지거나 깨끗이 소멸된다는 말씀이다.
제17분은 수보리가 최초로 질문했던 것을 다시 정리하였고, 세존께서도 앞에서와 같이 여러 가지로 답변하셨다. 그리고 필경에 가서는 아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제18분은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마음은 모두 다 허망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리를 깨달아 참된 마음을 가지게 되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되고,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인 줄 안 즉, 중생과 부처가 한 몸이 되어 똑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제19분에서는 불법, 즉 진여의 세계는 무궁무진하여 널리 통하는 법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모든 중생은 교화를 받아 동화된다는 말씀이다.
제20분은 모든 색과 상을 떠나서 외형이나 무구에 사로잡히지 말고 근본을 찾으라는 말씀이다.
제21분은 무상의 설법임을 밝히셨다.
제22분에서는 일체의 법이 법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아니므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제23분은 모든 상을 떠나서 선법을 닦으라고 말씀하셨다.
제24분에서는 유형적으로 보시하여 얻은 복덕보다는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여 무형적으로 얻은 지혜가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하고 크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제25분에서는 반야를 받아 지니면 즉시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셨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참다운 불성에 있어서는 중생과 부처가 다름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려 하시어도 제도 받을 중생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제26분은 32상은 색신이므로 이것을 가지고 법신이신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히셨다. 즉 여래를 색신으로 보고 음성으로 구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제27분에서는 반야의 체성은 일체의 법상을 떠났으나, 떠났기 때문에 일체의 법상을 갖추었다고 말씀하셨다.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청정하여 유상도 아니요 무상도 아니라, 유상이 곧 무상이며 무상이 곧 유상인 것이다.
따라서 정체가 되어 끊어지는 일도 없고 죽어서 흔적이 없어지는 일도 없으며, 항상 흐르고 흐르는 가운데에 활동한다고 하신 말씀이다.
제28분은 선인,선과의 법칙에 의하여 착한 일을 하면 반드시 복덕을 받게 되는 것이나 보살은 무아의 경지에서 처음부터 복덕을 염두에 두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받으려는 생각도 없고 탐내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29분은 반야지혜 자체는 시방허공으로 더불어 담연하며 항상하고 고요하여, 그 때문에 모든 법상이 항상 고요한 자체에서 거래동정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음을 말씀하셨다.
제30분은 범부가 사리에 어두워 헤메며, 집착이 되는 것을 타파하려 하심이니 천지 만물이 언뜻 보면 가장 일정 불변하는 고정된 상을 하고 있는 것 같으나 한 때의 인연으로 화합된 거짓 상이며, 결코 진정한 상이 아님을 사와 리 두 방면으로 밝히셨다.
제31분은 세존께서 이제까지 설법하신 금강경의 최후의 결론을 내리신 것이니, 일체의 사물에 대하여 다만 있는 그대로 그러한 것으로 알고, 그러한 것으로 보고, 그러한 것인 줄 믿을 것이며 결코 헛된 소견을 가하여 법상을 내지 말라. 즉 아에 대한 집착을 끊어 버리라는 말씀이다.
제32분은 금강경의 마지막 분으로서,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시기 위하여 임기응변으로 그 기회를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써 설법을 하시는 그 응신이나, 그 사람을 따라 교화하시는 방법을 달리 하시는 그 화신이나, 이는 다 허망한 색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진여의 법신은 아니므로 이를 여래하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Ⅳ. 결론
이 경전에 펼쳐지고 있는 내용들은 한결같이 의심을 끊고 그 자리에서 신심을 내는 것으로 되어있다. 반야의 지혜는 사람 사람이 모두 지니고 있다. 성인은 반야의 지혜를 찾아내어 자신의 삶에 활용하는 것이고, 범부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여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미혹한 범부들을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이라는 경전을 방편으로써 일깨워 주신다.
우리들 자신이 본래로 지니고 있는 이 반야의 지혜를 알아 인간이 지닌 모든 능력을 한껏 펼칠 때 피안의 언덕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금강경이라는 높은 산을 향해 우리는 우리들 자신속에 있는 반야를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참고문헌
1. 경전연구모임편, 『금강경』, 불교시대사, 1991.
2. 무비스님, 『금강경강의』, 불광출판사, 1994.
3. 불광교학부, 『경전의 세계』, 불광출판부, 1990.
4. 불전간행회 편, 『금강경』, 불교시대사, 1993.
5. 송찬우 역, 『뜻으로 읽는 금강경』, 보현암, 1998.
6. 정성본, 『중국 선종의 성립사 연구』, 민족사, 1989.
8. 정호영, 『금강반야경의 사상에 관한 연구』, 석사논문.
9. 진오스님, 『금강경연구』, 출판시대,1999.
[출처] 『금강경』 각분의 중심내용 촬요|작성자 노원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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