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인연
제가 위빠사나를 만난 것은한 20년 정도 됐습니다. 아는 스님이 미얀마에 한 6개월 다녀와서 위빠사나 가르친다고 해서 토요일이면 인천까지 가서 한 달간 배웠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질문을 하니까 대답을 잘 못하시더라고요. ‘이건곤란하다.’ 차라리 백지로 놔두는 것이 낫지 황칠을 하면 고치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인연으로 미얀마에서 오신 스님을 한 분 만나게 되었습니다.사실 충격이었습니다. 마침 그 스님께서 미얀마로 들어가시면서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올해까지 만 15년을 미얀마로 수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1월 2일쯤 출국 해서 학기 시작 전에 인천에 도착합니다. 한 두 달 정도를 수행하다 옵니다.
우리는 불교라고 하면자기도 모르게 중국 불교를 인도 불교인줄 압니다. 대승불교도 중국 대승불교이지 인도 대승불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수행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부처님 하신 수행은 니까야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많은 부분이 사마타수행이지만 무게 중심은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반야심경에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密多時) 조견(照見) 오온개공(五蘊皆空) 하면서 조견과 오온을 연결시키지만 사실 산스크리트어번역본으로 보자면 위빠사나 수행이 반야를 얻는 수행이고 사마타 수행은 선정, 삼매를 얻는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의 방법
지구상에서 종교라고 하면 마루 종(宗)에 가르칠 교(敎) 자를 쓰기 때문에 최고의 가르침 수승한 가르침 이 정도가 될텐데 종교는 불교만 종교이지 다른 종교는 신앙체계이지 종교라고 하는 말을 쓸 수가 없습니다. Religion을 일본학자들이 번역할 때 종교라고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앙체계이든 아니면 불교처럼 수승한 가르침으로서 종교이든 추구하는 것은 하나 같이 ‘행복’입니다. 행복을 얻는 방법이라든지 행복의 내용이라든지 종류도 사람마다 중생들마다 분명히 다릅니다. 당연히 붓다께서 그것을 너무나 잘 정리해 놓으셨습니다. 부처님의 45년간 설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행복 얻는 방법입니다. 부처님은 행복을 크게 이렇게 나누신 거죠. 보시의 행복, 지계의 행복. 이건 대개 인간이나 욕계 천신으로 태어나는 행복입니다. 세 번째가 사마타 수행에 의한 행복 위빠사나 수행에 의한 행복, 위빠사나 수행에 의한 행복은 반야를 얻어서 열반을 증득하는 행복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반과 해탈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위빠사나의 대상은 자기의 몸과 마음입니다. 자기의 오온(五蘊)을 관찰하는 겁니다. 그것이 수행의주제 대상이 될 때는 신(身),수(受),심(心),법(法)이 됩니다. 오온에서 색(色)이 신념처(身念處)가되고 수온(受蘊)은 수념처(受念處)의대상이 되고 상(相)과 행(行)은 법념처(法念處)에 들어갑니다. 식온(識蘊)은 심념처(心念處)의대상이 되죠. 남의 오온이 아니라 자신의 오온, 자기의 몸과마음을 보지 않고서는 실재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현상으로서의 오온이 물질과 정신이 사라지는경험을 하게 됩니다. 백지상태가 오고 수행의 주제가 사라지죠. 오온이현상하지 않습니다. 오온이 현상하지 않는 곳, 물질과 정신이현상하지 않는 곳. 수다원이 될 때는 근기가 예리하지 않은 사람은 세 찰라 예리한 사람은 네 찰라를 경험합니다. 이것이니빠나(열반)입니다.
물질과 정신이 사라진 자리 사실 물질과 정신이 사라지기 때문에 사라진 상태를 계속 익혀가고 그 상태로 죽어야 그 만큼 해탈하게 되는 겁니다. 완전하게 되는 게 아라한이고 북방으로 말하자면 붓다죠.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온을 다시 받지 않는 것. 달리 표현하자면 다음 생을 맞이하지 않는 것. 오온이 형성되지 않도록 업력을 남기지 않는 거죠. 업력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탐.진.치 번뇌로서 반응하지 않는 거죠. 수다원으로서 니빠나를 본 사람이냐, 사다함으로서 니빠나를 본 사람이냐 아나함으로서 니빠나를 본 사람이냐 에 따라 번뇌와 업력이 끊어지는 정도가 다릅니다. 완전히 끊어진 자를아라한, 붓다라고 하죠.
해탈은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수다원은 조금 벗어난 거죠. 사다함은 조금 더 벗어난 거고 아나함은 제법 많이 벗어납니다. 성욕이나명예욕이 사라지는 자리가 아나함입니다. 아나함 정도의 수행자라면 재가자든 출가자든 미스월드가 벌거벗고뛰어 다녀도 눈이 반짝거리지 않습니다. 소, 양, 동네 개 뛰어나는 것을 보듯이 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대단한 경지죠. 그러나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은 북방불교로 말하자면 오하분결(五下分結)을 끊는데 불과합니다. 오상분결(五上分結)은 아라한이라야 끊어집니다.
니빠나는 북방불교로 말하자면 무루의 지혜의 대상이고 그자가 수행의 경지, 깨달음의 경지가어디냐 어떤 성인의 반열에 있느냐 의식수준에 따라서 해탈 정도가 달라지는 거죠. 완전한 해탈에 이른분을 '아라한'이다. '붓다'다 라고 하는 거죠. 열반과 해탈은맞물려 있지만 내용적으로 분명히 다른 겁니다.
반야의 내용도 남방교학 테라와다 아비담마를 공부하기 전에는아무리 공부해도 반야가 무슨 말인지 지혜가 무슨 말인지 열반이 무엇인지 해탈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고 속이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보시와 지계의 공덕_욕계의 행복
보시의 공덕, 지계의 공덕 이 두 가지는 부귀한 인간, 욕계(欲界)의 천신이 되는 요건입니다.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천신이 되려면 사마타 수행을 통해서 본삼매를 얻어야 합니다. 굉장히깊은 삼매를 얻어야 합니다. 분명히 죽을 때 본삼매의 상태에서 죽어야 합니다. 살아 있을 때는 무색계 비상 비비상처 (非想 非非想處)까지들어갈 수 있었는데 막상 죽을 때 색계 제 이선 상태에서 죽었다면 죽는 순간에 색계 제이선천에 천신으로 태어납니다. 어떻게 죽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머지 선업이든 악업이든 사라지지는않지만 바로 다음 생을 결정하는 것은 죽을 때 마음상태, 남방에서는 재생연결식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에따라 그대로 태어나게 됩니다.
잘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 죽는 것은 잘 살아야 합니다. 억지로 되는 것은 절대로없습니다. 몰라서 그렇지 분명히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살다 간 사람이나 살고 있는 사람이나 살려고 오는 사람이나 행복에 대한 생각은 다른 게 아닙니다. 욕망충족입니다. 감각적 쾌락을 어느 정도 충족 시켰나? 우리가돈을 벌거나 높은 지위를 갖고자 하는 것도 실제로 뭡니까? 감각적 쾌락을 누리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어떻습니까? 감각적 쾌락 불교에서는 오욕을 두 가지로나누죠.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물론 안이비설신 밑에는 다 의(意)가 붙어 있습니다. 좋은 것만 보려고 하고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고좋은 냄새 맡으려고 하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그런 맛을 느끼려고 하고 몸에 좋은 감촉 느끼려고 하고 냉난방 잘 되는 좋은 집, 좋은 차, 그리고 성욕, 성생활도뭡니까? 다 이 안이비설신의 좋은 촉감을 느끼려고 하는 겁니다. 대부분의사람들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방법이 욕망 충족, 감각적 쾌락을 충족하겠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하고 높은 관직, 벼슬을 하려고 난리를 치는겁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렇죠.
평생을 살면서 허둥대는데감각적 쾌락은 몸이 요구하는 겁니다. 몸 투정 들어주는데 전생을 일생을 바칩니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왜 높은 사람 되려고 하는지도 모르고 왜 돈을 모으려고 하고 부동산 투기하고 수단과 방법을가리지 않고 하려고 하는가 다른 게 아니고 그들의 사고방식은 욕망 충족 감각적 쾌락 충족이 행복해지는 방법인줄 아는 겁니다. 붓다께서 그것을 100% 부정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그것은 질이 낮은,수준이 낮은, 다음 생에 사악도로 갈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의 내용도 대부분 그런 것을 구걸하는 겁니다. 기복. 기복이 왜 문제일까? 기복은 문제가 다른 게 아닙니다. 이기, 배타주의. 쉽게 말하자면 이기주의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으로 말하자면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을 일으키는 작업입니다. 이것은 사악도로 가려고 환장하는 것이지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닙니다. 잘못 살고 있는 겁니다.
기원전 서양 철학자 에피큐로스, 쾌락주의자라고 기독교인들이 싫어하지만 사실 내용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료가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렇지. 그분의 행복공식을 보면 충족/욕망, 욕망을 얼마만큼 충족시키느냐, 많이 충족시키면 행복 적게 충족시키면 적은 행복, 충족 못 시키면 불행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부다.
물론 오욕락을 충족시키는것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세에 복을 많이 쌓은 사람들. 좋은집에 태어나서 눈을 딱 뜨자마자 눈앞에 몇 조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중생들의 생각은 행복해지는 방법이잘못 됐다.
욕구충족으로 가서는 안되고 붓다께서는 충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것은 밑에 있는욕망이 문제다. 욕망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없는 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거죠. 물론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복은 될 수 있겠지만, 행복은 가질 수있겠지만 어떤 면에서 그건 헛짓입니다.
명품을 쓰고 명품을 끼고 명품을 걸치고 명품을 입고 명품을 들고명품을 타고 해도 자신이 명품이 되지 않는 한 그렇게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애지중지하던 몸도 놔두고 가지 죽으면서 가져 가는 사람 봤습니까? .거짓말 하나 있습니다. 몸 그대로 어디 갔다왔다고 하는데 2~3천 미터 올라가면 얼어 죽고 5~6천 미터 올라가면 숨이 막혀죽습니다. 부귀한 사람으로 태어나든 그보다 더 수승한 행복, 거의가오욕락 충족시키는 거죠.
그건 욕계의 천신으로 태어나면 됩니다. 다른 것 아닙니다. 인연을 지어야 결과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귀가 그렇게 좋으면 보시공덕과 지계 공덕을 쌓아가야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남한테 베푸는겁니다. 돈 많은 사람은 재시 베풀면 됩니다. 공덕이 커지려면 보시할 때 절에 보시하던 남한테 주던 준다고 다 공덕이 되는 건 아닙니다. 지혜가 왜 필요하냐 하면 예를 들면 요즘 TV보면 무늬만 스님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제법 있잖아요. 좀 안 좋은 짓을 하는 사람, 예를 들면 강도질 하러 가는 사람한테 차비 보태주고 칼 사 주고 하면 이게 선업이 되겠습니까? 악업이 되겠습니까? 준다고 다 공덕되는 건 아닙니다
사마타 수행_색계, 무색계의 행복
사실 수행을 한다 해도 수행을 해야 하는데 수행이 자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육조단경에 보면 평생을 법화경 외우는 것이 수행이었던 법다리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심미법화전 (心迷法華轉) 마음이 미혹하면 법화가 너를 돌리고
심오전법화(心悟轉法華) 마음을깨닫게 되면 네가 법화를 돌린다.
미얀마에 수행처에 가면 한국사람도 많은 데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은 천 명 중에 한 명이나 있을까 말까 합니다. 전부 수행이 자기 하고 있지 자기가 수행하고 있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왜 수행에 갇혀 있거든 발전 없습니다. 7~8년을 해도 인터뷰하는 것 보면 나갈 때 어떻습디다. 들어갈 때 어떻습디다. 손 바꿀 때 어떻습디다. 아래 위로 스캔할 때 어떻습디다. 돌 때 어떻습디다. 눈 뜰 때 어떻습디다. 내 그런 것들입니다.
수행은 앉아서 하는 수행, 걸으면서 하는 수행, 일상에서의 수행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수행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옆에 좋은 도반, 스승, 선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내가 수행해야 하는데 수행이 나를 하는 적이 많았습니다. 여러 번 수행을 포기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바늘귀 만큼 조금 열렸는데, 문 종이에 바늘구멍 만큼이라도 뚫리면 그 틈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조금 열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수행해야지 수행이 여러분 하면 절대 안됩니다. 어떤 수행이든 수행에 갇히면 안됩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마타 수행은 본삼매를 얻겠다는 수행이고 이 수행을 하면 차원이 다른 색계, 무색계 천신을 얻습니다.
불교를 뺀 대부분의 신앙에서 그들이 묘사하는 천국은 전부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천과 거의 같습니다. 욕계천이라 하면 사왕천, 도리, 야마, 도솔, 화락, 타화자재 여섯 단계입니다. 수준에 따라 공덕이 다릅니다. 천신의 수명이나 누리는 부귀의 행복이 다릅니다.
천신과 인간이 모두 부귀를 누린다고 해도 인간으로 태어나 행복의 부귀를 누리려면 반드시 수고로움이 따릅니다. 의(衣) 옷 입으려면 만들어야 하는데 목화솜에서실 빼고 재단하고 바느질하고 염색하고, 그리고 옷 입으면 때가 낍니다.그럼 세탁해야지 다려야지 합니다. 입다 보면 닳아서 떨어집니다. 이런 수고로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음 식(食)으로 가봅시다. 농사짓고 찧어야지 씻어야지 끓이고 반찬 없으면 반찬 만들어야지. 먹고 나서 물 마시고 이제 먹고 났으니 내 배에 들어갔으니 내 꺼다. 남 주면 안 돼. 하는데 배설을 못하면 어떻습니까? 죽습니다. 그러니 뭐든지 먹으면 일부는 내놔야 합니다.
주(住)는 머무는 것. 집만 이야기 하는 건 아닙니다. 차, 침대 이런 것 모두 주에 해당합니다. 편하게 사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의식주가 풍족하고 주위에 보이는것 들리는 것 이런 것도 좋아야 합니다. 사람몸 받았어도 전생에 공덕을 짓지 않았으면 보이는 것도 더러운 것만 보입니다. 인간도 그렇고 경치도 안좋고 일하는 것도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고 정신이 없고 시끄럽고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해야 합니다. 보시,지계의 공덕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신앙체계에 사마타나 위빠사나 같은 수행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천국은 아무리 머리를 잘 굴리고 생각을 해봐도 뭐 일수 밖에 없습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천국 입니다. 왜? 수행이 없기 때문에 색계 무색계 천에 대한 천국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수행을 하더라도 뭐부터 수행이냐 하면 끙끙 앓으면서 괴롭게 하는 수행은수행이 아닙니다. 극기 훈련이지 절대 수행이 아닙니다. 닦기지가 않는다는 거죠.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 즐거워야 합니다. 사마타 수행은 물론이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더라도 수행력이 생기기 위해서는 최하 근접 삼매는 생겨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근접 삼매는 벌써 본 삼매에서 있는 심소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자면 희수, 낙수, 경안,우뻬까 이런 것들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굉장히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하는 상태입니다.
희수낙수가 일어나는 것은 과학적입니다. 과학으로 증명 됐습니다. 행복하고 즐거움 기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울증의 주요 치료제인 세로토닌, 엔돌핀, 도파민, 옥시토신 이런 것이 나오는 겁니다. 이런 호르몬이 계속 나오면 암세포도 다 녹아 버립니다. 그래서 수행이 중요한 거고 또 제대로 된 수행을 해야지 폼만 잡고 앉아서 끙끙 앓고 있는 것은 극기 훈련이지 잘 해봐야 수행 예행연습이지 아직 수행이 아닙니다.
수행을 잘 점검해봐야 합니다. 내가 몇 년을 수행을 했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나? 하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발전되는 방향으로 앞서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중요한 수행에 관한 서적들을 보면서 자기 현 상태를 점검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고 어떤 내용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런 것을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_열반을 증득해 해탈로 가는 길
마지막으로 반야를 얻는 수행이 열반을 증득해서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불수후유 (不受後有), 세상에 오온을 받지 않는 것, 다음 생을 맞이 하지 않는 거죠.
대부분 욕망을 추구해서 살아가는 사람, 욕망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 행복해지기 위해 오욕락을 추구하며 살아온 사람은 열반을 얘기하고 해탈을 얘기하면 두려워합니다. 욕망의 충족을 행복으로 느끼던 사람들은 해탈의 행복을 얘기하면 오히려 두려워 합니다.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12연기 중에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오온(五蘊)촉(觸)수(受)애(愛)취(取)다음이 뭡니까? 유(有,바와) 이것을 동양 3국에 정확하게 번역한 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존재 있음으로 번역합니다. 유 다음이 생(生)입니다. 생이 존재로 되는 겁니다. 존재로 되는 게 생입니다. 그런데 이미 유를 존재로 하면.. .'있음'으로 번역하는 '바와' 는 바a 위에 장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 12연기를 말씀하실 때는 단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있고자 함’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해탈을 두려워합니다. 끝없이 버러지로라도 이 세상에 태어나고자 합니다. 세균들도 죽기 싫어합니다. 항생제 자꾸 사용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성이 생깁니다. 파리도 죽으면 우주 다 줄께 하면 파리도 목숨과 우주를 바꾸겠습니까? 안 바꿉니다. 없어지는 것, 죽는것을 두려워합니다. 유는 존재, ‘있음’으로 번역하면 안됩니다. ‘있고자 함’으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기 싫다고해서 안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업력이 있는 한은 오기 싫어도 와요. 손이야 발이야 빈 손으로 왔다가 빈 발로 가겠지만 업력은 아무리 놔두고 가고 싶어도 놔두고 갈 수 없습니다. 그 방법은 무루의 반야를 얻는 길, 깨달음을 얻는 길 외에는 이 우주에는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 위빠사나 수행이다.
책을 읽으면서 노후를 보내고 최대한 수행을 하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행복
이런 것들이 때가 되면 여러분에게 하나하나 드러나서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시간상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기 상도선원은 주지스님을 뵈도 좋은 분 같고 이런 좋은 환경에서 공부 안 하면 자기 손해입니다. 붓다께서 사람 몸 받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사람몸 받기 어려움을 조갑상토(爪甲上土) 산을 뒤에 두고 법문을 하신 것 같습니다손톱 위에 흙을 올려 놓고 “내 손톱 위의 흙이 많으냐? 저뒤에 있는 산에 흙이 많으냐?” 물으십니다. “스승이시여! 당연히 저 뒤에 있는 산에 흙이 많죠. “ 비유로 말하자면 사악도에 태어나는 것 보다 사람 몸 받아 태어나는 것은 손톱 위의 흙 만큼 어렵다. 우리 지구상에 인구가 70억, 바다에 사는 물고기, 하늘을나는 새 그 중생들 숫자가 얼마겠습니까? 70억, 80억, 100억 하는 것은 1조 분의 1도 안됩니다. 코끼리 죽어서 모기로 태어나면 천만 마리 이렇게 안 태어납니다. 모기로 태어날 때는 한 마리로 태어납니다.
사람몸 받았을 때 좋은 절에 와서 좋은 스님 만나서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수행하는 것 굉장히 좋은 겁니다.
사람몸 받는 데 중요한 것이 공덕, 선업도 지어야 하지만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게 좋은 경전을 의미를 알고 읽는 것 여러분 개 TV보는 개는 있어도 책 읽는 개는 없습니다. 좋은 책 읽는 것. 경전이죠. 개돼지 수행하는 것 봤습니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언어사회적동물 등등 여러 가지 표현이 있지만 제 생각에 ‘인간은 수행하는 동물’입니다. 수행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사람몸 받았을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 읽는 능력을 익히는 것, 그래야 노후가 행복합니다. 노인들 보면 죽기는 겁나고 살기는 힘들고 난리칩니다. 책을 읽을수 있는 능력이 몸에 베어서 책을 읽으면서 노후를 보내고 틈나는 대로 최대한 수행을 하면 이런 분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행복입니다. 오늘 제가 사람몸 받는 방법에 대해 힌트를 드렸습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절에와서 좋았고 여러 스님들 불자님들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시고 수행하시고금생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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