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2

서산대사의 선사상

수선님 2020. 10. 11. 11:31

서산대사의 선사상

상범/ 졸업생

운문지 74호에 게재된 글

      Ⅰ. 서론     Ⅱ. 본론       1. 선교관(선교관)       2. 염불정토관       3. 삼교회통사상       4. 선가귀감     Ⅲ. 결론 



Ⅰ. 서론
 
 1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불교는 우리 민족과 더불어 고락성쇠를 함께 해 오면서 하나의 큰 주춧돌이 되어 우리 민족 문화의 전반에 흐르고 있다. 일찍이 이 땅에 불법의 혜명을 전해 온 모든 조사스님들은 각자의 역량대로 법을 펼쳐 총림을 이루곤 하였다. 시대에 따라 그 주역이 바뀌기도 하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산중 불교의 꺼져 가던 혜명의 불빛을 다시금 되살려 놓은 산승이 바로 ‘서산(서산)’이라는 거목이다.
 스님은 선교통합과 삼교회통(삼교회통)들이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제시하였고, 그 사상의 영향이 오늘에까지 미치고 있다. 특히 한국 불교사상사에 있어서 회통의 정신은 신라의 원효에서부터 고려의 의천, 태고보우 화상으로 내려오면서 최대의 중심과제로 취급되어 왔는데 이것이 서산스님에 이르러 완성된 것이다.
 스님은 또 임진왜란의 국가적 위기를 당하였을 때 불교를 주체적으로 세워 국가의 혼을 바로잡음으로써 승단의 결속을 이루었다. 이러한 사상은 전국의 승도에까지 미쳐 조선불교를 중흥시켰으며, 배불정책으로 침체되었던 조선불교에 하나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러한 점들로 볼 때 스님의 발자취는 한국불교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토대로 오랜 전통과 빛나는 문화를 자랑하는 한국불교가 오늘날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를 현재에 올바로 전승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서산대사의 사상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선교관(선교관 )
 서산대사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선교관은 서로가 아집에 빠져 부처님의 본분을 망각해 가던 시대에 선(선)과 교(교)가 하나의 뿌리임을 주장하는 사상이다.
 그의 선교관의 특징은 선가의 입장에서 교를 부정하거나 비방하여 선의 입지를 세운 것이 아니라 모두 긍정적이며 융화적으로 이끌면서 선과 교가 떨어질 수 없고 방편적으로 대립될 수 없는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선교관을 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의 저서 「선가귀감」에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고 한 것이다. 단연 직설적이고 간단명료한 정의라 하겠는데 이것은 석가세존이래 면면이 이어오는 전통적인 불교관에 근거를 두어 부처님의 삼처전심을 선지로 삼음을 뜻한다. 선지의 근원은 부처님께서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보이심이 셋째이니 가섭존자가 선의 등불을 따로 받은 것이다.
 즉, 부처님이 말없이 전한 것을 선이라 하여 부처의 마음으로 삼고, 이 선을 무언(무언)에서 시작하여 무언에 이르는 것으로써, 배워서도 생각으로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선의 근원은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말씀한 것이니 모든 경전을 말하며 아난존자가 모든 교의 바다를 널리 흐르게 하였다.
 ‘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다.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은 선이요, 말 있음으로써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은 교이다. 또한 마음은 선법이요, 말은 교법이다. 법은 비록 하나지만 뜻은 하늘과 땅같이 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교외별전의 선지는 선교가 둘 아님을 밝히면서도 먼저 깨달음을 주장하여 선을 우위에 두고 교가 미칠 수 없는 것임을 들고 있다. 그는 선문활구의 참선이 구경에 이르는 으뜸가는 길이라 주장하면서도 방편문으로 교의 필요성을 버리지 않는다. 선을 우위에 두는 논의로서 교문은 얕고 선문을 깊으므로 교를 떠나서 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견해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은 우열을 가린 차별이 아니라 궁극의 도달점에 가는 하나의 순서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선문과 교문에 대해 각각 경각과 재고를 요하는데 선문에게는 활구(활구)와 사구(사구)를 들어 ‘화두를 드는 것도 사색이 될 때에는 진성을 잃어버리는 사구가 되고 활구라는 것은 화두를 들기는 하나 일체의 사량을 용납하지 않는 상태이다.’라고 하여 아무리 선문이라도 올바르게 들어가지 못한다면 교문보다 더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경책하고 교가에게는 교문을 바로 닦음으로써 결국은 선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만대에 길이 의지하고 근거해야 할 스승이므로, 그 이치를 자세히 보이게 하기 위해 설하신 교문은 결국 ‘정도가 낮은데서 차츰 높은 곳으로 이끌어서 끝내는 말씀이 없는데(일심법, 일심법 )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인 교는 활처럼 굽게 빙 둘러서 들어가는 문이고 조사의 선은 곧바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선은 높고 교는 낮다는 차별적 우열이기 보다는 사람의 근기에 입각한 불가피한 길의 순서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불가설의 진성을 밝힌 뒤에 교의 불가피를 말하고 교는 말로 전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선지를 이해하는데 입문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함으로써 선․교의 불가분의 관계를 설명하여 선가나 교가가 한편에 치우쳐 편협해지는 오류를 경계하여 하나의 불교세계로 융합시킨다.
2. 염불정토관
 서산은 선과 교의 통합적 이해를 전개함과 동시에 염불에 대해서도 많은 장려와 수용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염불의 궁극은 역시 선적인 것에 주체를 둔다.
 ‘염불은 입으로만 부를 때는 송(송)이라 하고 마음으로 할 때라야만 염(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송에 그치고 염을 잃어버리면 도에는 아무 유익이 없다. 나무아미타불, 이 여섯 자는 결정코 윤회를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경계를 연하여 억지 불망하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칭하여 분명하고 어지럽지 않으면 마음과 입이 부합되어 진정한 염불이 된다.’ 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본다면 서산은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선종적인 염불관에 주체를 두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설을 한갓 상징적인 의미로 돌리고 있지도 않다. 힘이 약할 때는 타력인 불력(불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서산 자신은 정토교학자도 염불종인(염불종인)도 아닌 오직 교외별전의 도리인 선지를 참구하는 선사로서의 입지를 밝히는데 ‘부처님은 상근기의 사람을 위하여서는 마음이 곧 불이요 마음이 곧 정토이며 자성이 곧 아미타불이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서방이 여기에서 멀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근기의 사람을 위하여서는 십만 팔천 리나 된다고 하셨으니 서방정토의 멀고 가까움은 사람에 있는 것이지 법에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여 근본을 역시 마음에 두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서 ‘비록 그러하더라도 망령된 행동과 외형[상]을 고치는 것이 단번에 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오랫동안 길들이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은 본래 이 마음이지만 부지런히 염하여야 하고 업은 본래 공한 것이지만 부지런히 닦아서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또한 결정적으로 자성 가운데에는 본래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어서 이 두 견해를 놓아버리면 사람마다 본래 갖추어진 근원된 한 마음[일심]이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마음 바깥에서 부처님을 찾으면 형상에 막혀 자연히 자성미타와 서방미타가 각각 따로 서있게 되므로 공부하는 이들로 하여금 이 같은 견해를 일으키지 말라고 역설한다.
 ‘참선이 곧 염불이며 염불이 곧 참선이다.’라고 하였듯이 그의 선사다운 풍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는 선사임에는 틀림없지만은 또한 그의 염불 세계는 그의 선의 세계와 유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3. 삼교회통사상(삼교회통사상)
 서산은 당시 시대적으로 유교의 성행과 더불어 떠오르는 타종교들간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선지에의 크고 넓게 포용하는 입장으로 유교, 도교, 불교 삼가의 진리체계를 서로 유통시켜 커다란 ‘하나’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그것은 무조건 삼교가 동일하다는 것이 아닌 비록 각각 다른 방편과 형태를 갖추고 있는 삼교이지만 궁극적인 진리의 본체에 있어서는 다 상통하는 진리세계로 통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가귀감」, 「도가귀감」, 「선가귀감」으로 구성되는 『삼가귀감』을 편찬하여 심법(심법)을 설하였다.
「유가귀감」에서는 공자 본래의 가르침은 구가의 덕목인 천(천 ), 극(극 ), 중(중), 인(인), 경(경), 성(성) 등이 언어적인 표현은 달리하고 있으나 그것은 하나의 이치에서 나온 의 작용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3교의 근본은 하나로 통하는 것임을 보이고자 하였다.
「도가귀감」에서는 도가사상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서 노장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도가사상을 채택하고 도가의 ‘도’와 ‘덕’보다는 선가의 ‘심’을 중심으로 도가의 도덕사상을 단계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리하여 도교의 이론적이고 사상적인 측면만을 취하고 수행적인 측면에서는 선의 실수행을 권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선감귀감」에서 서산은 선승의 입장에서 선의 본질을 바로 알리는 한편, 선교 양자의 불목을 해소하고 조화시키기 위해서 그의 선교관을 피력하였다.
 서산은 선가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 ‘한 물건[일물]’이라 전제하고 이 한 물건의 진상과 이치를 바탕으로 3교의 심법을 끌어내어 선가의 심(심)으로 회통하였다.
 이와 같이 서산은 3교의 대립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그러는 과정에서도 불교를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싸안는 관대하고 포용력 있는 선지의 입장에서 3교 중 우위에 올려놓는 것을 볼 수 있다.
4. 선가귀감
 「선가귀감」은 서산이 45세 때 저술한 것으로 서산이 십여 년간 주재하면서 50여 권의 경론, 어록 등을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는 제일 먼저 불가설의 진성을 밝힌 뒤에 교의 불가피를 말하고, 진실언교가 불가사량의 선지를 이해하는데 입문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하였다.
 「선가귀감」은 그 저술 동기부터가 시대적인 제약 밑에서 후진양성에 뜻을 두었던 것일 뿐만 아니라, 내용의 사상이 심오하고 글 솜씨가 탁월한 점 등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훌륭한 저서이다. 더구나 우리 승가에서 이루어진 이렇다 할 만한 지침서가 없는 황막한 조선시대의 불교계에 있어서 선가귀감은 단연 우뚝하게 뛰어난 저술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당시 불교계의 학풍을 바로잡고 승단의 중흥을 위하여 후학들의 지도에 뜻한 바가 있어서 50여종의 경론과 어록 등에서 가장 요긴하고 중요한 말씀들을 추려서 넓고도 아득한 대장경 바다의 번다한 가지를 하나하나 헤쳐가면서 가장 좋은 잎을 따는 노고를 면하게 하여 불타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는 지침으로 삼게 하고자 「선가귀감」을 저술하게 되었다는데 그 동기와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선가귀감」은 전문이 80여 송구로 되어 있고 거기에 각각 주해를 붙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편성 내용은 대략 5장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제1장 원리론(원리론)은, ‘유일물어차 종본이래 소소영영 불증생불증멸 명불득 상불득(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로부터 이름지을 수도 없고 형상 할 수도 없다)’ 이라는 일 구로 되어있다. 이 짧은 일구는 우주의 진리를 그대로 함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2장 불조론(불조론)은, 앞의 일물에 대하여 부처님과 조사가 어떻게 문제 삼았으며, 또한 그 차이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제3장 선교문(선교문)에서는, ‘교시불어 선시불심(교시불어 선시불심)’이라는 주관으로 선과 교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대충 선교대의(선교대의), 선교심(선교심), 선자(선자의 세계, 득의일념(득의일념), 선교의 방법과 차이, 사교입선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제4장 방법론(방법론)에서는, 공부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한편, 경책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제5장 종결론(종결론)에서는, 출가한 대장부는 부처를 보나 조사를 보나 조금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 다음, 다시 원리를 들어서 끝을 맺고 있다.
 이상에서 「선가귀감」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이 「선가귀감」은 서산대사가 당시 및 후래의 불자들로 하여금 교와 선을 올바르게 알고 공부하여 진실된 길을 스스로 찾고 증득하는데 길잡이가 되고, 안내자가 되도록 엮은 친철하고도 자상한 불자의 귀감인 것이다.

 

Ⅲ. 결론
 이상으로 간결하게 서산의 사상을 그의 선교관이나 염불정토관 그리고 나아가서 3교의 회통관을 통해 살펴 볼 수 있었는데, 어느 방면이나 막힘이 없는 그의 선지와 도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선과 교를 논할 때에도 그는 단지 선의 입장만을 내세워 교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교의 중요성을 충분히 살리고 그 위에 선을 올려놓는 지혜와 염불을 단지 설법과는 달리 타력적인 것이라고 하여 배타하지 않고 오히려 돌려서 하근기의 수행자들도 선의 입지에 들도록 친절하게 방법을 일러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또한 3교의 동일성을 설함에 있어 3교의 요지를 충분히 객관적이고 치우치지 않는 견해로 3교가 모두 그 근본의 요지에 중점을 다시 밝히도록 한 회통적인 사상 즉,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활용하여 모든 것을 근본의 입지로 돌릴 수 있는 포괄성으로 보아 그가 위대한 고승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외적으로는 제국주의들의 입김에 무너져 가는 조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내적으로는 교를 무시하는 선 일변도의 종풍에 선․교의 통일적 의미를 던진 서산대사의 사상을 되새기며 불교가 중생제도의 선봉이 되기를 발원한다.
참고문헌
1. 불교신문사편, 『한국불교인물사상사』, 민족사.
2. 김영태, 『서산대사의 생애와 사상』, 박영사.
3. 불교신문사편, 『서산대사』, 민족사.
4. 신법인,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연구』, 신기원사.
5. 고익진, 『한국의 불교사상』, 동국대학교.
6. 장휘옥, 『한글대장경』, 「해동고승전」, 동국역경원.

 

 

 

 

 

 

[출처] 서산대사의 선사상|작성자 노원앙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