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2

밀교에 대한 소고

수선님 2020. 10. 11. 11:34

밀교에 대한 소고

 



돈 각 / 졸업생



목  차   Ⅰ. 머리말   Ⅱ. 밀교 형성의 배경      1. 밀교란 무엇인가      2. 밀교의 기원   Ⅲ. 한국 밀교사의 개관   Ⅳ. 밀교의 관법 오상성신관   Ⅴ. 맺음말





Ⅰ. 머리말
  밀교의 초기 형태를 원시불교(원시불교) 또는 소승불교(소승불교)라 한다. 
  소승(소승)의 특징은 인간적인 욕망을 억제하는 것으로써 수행의 바탕을 삼는다.  이 인간 부정 위에서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났다. 
  대승불교 운동은 고도의 형이상학 위에서 인간적인 일체의 긍정이었다.  이 긍정을 딛고 선(선)이 나왔고 선을 통하여 불교는 다시 인간에게로 올 수 있었다.  이 선의 인간긍정을 요가를 통하여 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개발한 것이 밀교(밀교)이다. 
  긴 세월동안 밀교는 불교사 속에서 늘 이단시(이단시) 되어왔다.  한때 대승불교와 불타의 근본교설 사이의 사상적인 면이 문제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불교학의 진보는 이러한 양자 사이의 사상적인 격절(격절)을 점차로 연속화 시켜갔다.
  그러나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로의 가교(가교)가 나아가서 밀교에까지 미치는 데에는 그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요즈음 밀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본고에서는 밀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Ⅱ. 밀교 형성의 배경
1. 밀교란 무엇인가
  
  밀교는 흔히 주술체제로 알려져 있으며, 성력을 숭배하는 불교의 한 부류로서 힌두의 탄트라(tantra) 신앙과 결합된 말기의 좌도밀교를 가리킨다.
  좀더 구체적으로 밀교에 대해 살펴보면 타수용응화신(타수용응화신)이 중생의 근기를 따라 설한 교를 현교(현교)라 하는데 대해서 자수용법성신(자수용법성신)이 자내증(자내증)의 경지를 대로 설한 것을 밀교라 한다.  법신인 대일여래(대일여래)가 자권속(자권속)과 함께 자수용법약(자수용법약)으로 설한 삼밀(삼밀)의 법문을 말한 것이며 수타의설(수타의설)인 밀교는 비밀의 진실한 교라 한다.  인도, 유럽, 미국 등 해외의 학자들은 밀교를 비교적(비교적)인 불교라든가 불교속의 비교라 부른다.
  그러나 최근에는 금강승(금강승)이라든가 탄트라(tantra)불교라 부르는 것이 통례처럼 되어 있다.
  금강승이란 대승불교 중에서도 금강과 같은 불괴(불괴)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금강정경(금강정경)계 밀교의 산스크리트 원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탄트라(tantra)불교란 후기의 밀교 성전이 종래의 경전에서 탄트라(tantra)라 일컬어지게 된 데에서 기인하고 있다.
2. 밀교의 기원
  기원전 1500년경에서 1200년경 코카사스(caucasus)북방에 살던 아리야인의 일부가 힌두쿠시(Hindukush)산맥을 넘어서 인도에 침입해 왔다.  그들은 인더스강 상류의 펀잡지방에 정착해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인도 아리안(Indo-Aryan)이라 불리고 그 문화는 아리안 문화라 일컫는다.  그 후 인도에서 아리안 문화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아리안이 인도로 침입하기 이전에 인더스강 유역에서 몇몇 민족들이 살면서 각자의 문화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을 비아리안이라 부르며 그들의 문화를 비아리안 문화라 한다.  금세기 초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에 의해서 그들은 청동기를 사용했고 하랍파(harappa)와 모헨조다로(Mohenjodaro)에 일정한 계획을 가진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되었다.  그들의 문화는 아리안 문화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비아리안들 중 평원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농경생활을 했으며 때로는 목축에도 종사를 했다.  산림에 사는 사람들은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모계 중심의 가족제도를 가지고 부족을 구성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가졌던 인더스 문명의 유물 중에서 짐승이나 새, 나무, 여신, 생식기 등을 숭배하면서 요가를 행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들의 요가는 주술적 종교적 실천법이었다.  더구나 그들에게서 알 수 있는 것은 일상생활이나 생산 활동에 직접적으로 주술이 관련지어져서 주술에 매우 능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비아리안 문화가 후세의 밀교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종교적인 소재의 대부분은 비 아리안 문화에서 계승하고 있다.

Ⅲ. 한국 밀교사의 개관
  우리나라에 불교가 수용된 것은 4세기 후반으로서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립하고 있는 이른바 삼국정립의 시대였다.
  불교는 시기를 달리하여 3국에 각각 전해졌는데, 그로부터 100년쯤 지난 7세기 중엽에 부분적이나마 잡부 밀교가 전래해서 신인종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신인종의 원조는 명랑(명랑)으로 신라 선덕여왕 원년(632)에 입당해 밀법을 배우고 당태종의 정관 9년(635)에 신라로 돌아와 「불설관정복마봉인대신주경」등에 의한 신인의 밀법을 전했다.
  신인비법은 문두루 비법이라고도 부르는데 문두루 비법은 무드라아인계 즉 신인으로서의 일종의 방위신을 그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671년 경주 남산의 남쪽 신유림에 밀단을 세우고 5방의 신상을 봉안하여 유가승 12명을 거느리고 문두루의 비법을 닦음으로써 신라를 공격해 오던 당나라 배를 침몰시켰는데 이로서 신인종의 개조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이 문두루 비법 도량의 터에 사천왕사가 창건되었으며 또한 그 유명한 김유신 등이 건립한 경주의 원원사는 통일 신라시대에 문두루 비법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이 명랑과 동시대 사람으로 밀본이 있었는데 주술에 능했으며 선덕여왕을 비롯한 재상들의 병을 기도로써 고치고 그 외 여러 가지 기적을 나타내 널리 민중의 귀의를 모았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흔히 신라 5종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융성에 달한 신라 불교에서는 고승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대표적인 인물로 원효를 들 수 있는데 그의 종파를 법성종이라 한다.  그 외 보덕이 받아들인 열반종, 그리고 진표의 법상종이 있다.  이 종외에 역시 동시대에 성립한 총지종과 신인종 등의 종파가 있었다.  이들 종파의 세력은 그리 융성하지 않았던 것 같으나 고려 말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신인종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이고 총지종은 지념종이라고도 하였으며 신라 문무왕(661~681)때에 혜통이 개창한 종파이다.  그는 출가한 후 입당하여 선무외 삼장에게 법을 구했다.  신라에 돌아온 후 밀교적인 입장에서 양재치병의 비법을 실시하고 성공한 후에 당대에 중요시되었던 것 같다.
  혜통의 전기로서 볼만한 것은 역시 「삼국유사」인데 여기엔 선무외 삼장과의 관계가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선무외 삼장 래당 연대에 대해서는 다소 이설이 있지만 개원 4년설이 유력하다.
  이 설을 취한다면 혜통이 입당했을 때는 물론 귀국한 인덕 2년에 조차도 삼장은 아직 중국에 오지 않은 셈이 되며, 헤통이 신라에 돌아온 후 50년이 지나 선무외 삼장은 장안에 도착한 것이다.  그렇다면 혜통은 누구에게 밀교를 받았던 것일까?
  아무래도 체계화된 정순밀교가 선무외, 금강지의 양 삼장에 의해서 중국에 전래되기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에는 잡부밀교가 전래되어 완전한 형태의 밀교가 도래하기를 기대하는 기운이 양성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정순밀교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받아들인 사람은 신라 영묘사승 불가사의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사람으로서 당나라 개원 연중에 선무외 삼장에게 사사하여 「대일경」의 비오를 궁구하고 그 제 7권인 「공양차제법」에 대해서 친히 들은 구결을 기록하여 「대비로차나경공양차법소」2권을 찬술하였다.
  신라승 현초도 선무외 삼장에게 태장법을 배워서 이것을 대당 청룡사의 혜과 화상에게 전하고 있다.
  혜과의 제자로서 혜일과 오진을 들 수 있는데 혜일은 건중 2년(781)에 오진과 함께 입당하여 장안 총룡사 동탑원에서 비밀의 법당을 나부끼고 있던 혜과 화상의 문하에 들어가 선무외 계통의 정순밀교를 수학하였다.
  오진은 그 후 중천축에 가던 중 티베트에서 병으로 입멸했으나 혜일은 「대일경」「금강정경」「소실지경」등 3부의 비법과 제존유가 30본을 전수하여 신라에 돌아와 법을 폈다.  이상을 요약하면 우리나라의 밀교사는 신라에 명랑, 헤통, 혜일의 3대사가 밀교의 교상과 사상을 신라에 전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Ⅳ. 밀교의 관법 오상성신관
  오상성신관은 「금강정경」에서 설하는 종의를 증득하는 관법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금강정유가십팔회지귀」에서 비로자나불의 수용신은 오상써 등정각을 현성하시니 오상이란 이른바 통달본심, 수보제심, 성금강심, 증금강신, 금강견고신이니 이것으로 보면 오상은 오지 곧 법계체성지,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성소작지의 다섯 가지 지혜가 통달되어 그것이 인격체로서 구현된 오불 곧 대일여래, 아축여래, 보생여래, 아미타여래, 석가여래로서 현현되고 이들 제불은 금강삼마지로서 37지를 나타내서 37존으로써 금강계 만다라를 건설한다.
  오상에서 통달본심이란 본심에 통달한 것이다.  본심이란 보리심이며 수보제심이란 보리심을 닦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리심은 깨달음에 이르는 마음이니 번뇌에 물들지 않은 무염심이다.
  성금강심은 청정한 보리가 금강과 같이 견고하게 된 것이다.  증금강신은 심신일여의 청정을 증득한 몸이다.  그래서 증금강신이라고 한다.
  금강견고신은 성본존이니 심신원만하게 묘용을 구현하는 금강같이 절대 가치를 가진 견고신이다.
  여기에서 마음은 청정 보리심을 증득하여 견고한 절대 가치를 창조하는 묘용을 보이고 몸도 이와 같이 원만한 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관법이 오상성신관이다.
  오상 중에서 증금강신과 금강견고신은 몸에 속하고 통달본심과 수보제심, 성금강심은 마음에 속한다.
  그러므로 관법을 할 때에는 몸을 견고히 하는 관법과 마음을 견고히 하는 관법을 병행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몸을 견고히 하는 관법으로서는 「아사파나가법」의 처음에 요가 안나반나(yoga-ānāpāna)를 닦는 것이 있다.
  「약출경」제2에
  “다음에는 반드시 나가서 들어오는 숨을 관하여 그치고 유가안나반나에 의지하여 계념수습하여 몸이 부동하고 또한 지분이 부동하니 아사파나가법이 바로 몸을 견고히 하여 금강신을 증득하는 관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 관법으로써 금강신을 얻게 되는가?
  유가안나반나 곧 yoga-ānāpāna에 의하여 이것이 얻어진다.
  yoga는 상응이니 계념이다.  ān은 입식이요, āpāna는 출식이다.  곧 호흡의 조절이다.  호흡의 조절은 몸의 건강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을 함께 안정시킨다. 
  이것을 자세히 설한 문헌으로서 한문으로 된 「불설대안반수의경」이 있고 팔리어로 된 「ānāpāna-Sutta」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흡이나 마음의 안정만으로는 무상보리를 증득하여 성불할 수 없다고 「금강정경」에서는 밝히고 있다.
  그래서 -「아사반나가삼마지」에서 여래께서는 일체의 성취보살에게 오상성신관을 수습케 하셨다.
  그러면 마음을 닦는 관법은 어떤 것인가?
  오상성신관은 신심일여의 경지에서 청정 보리심이 원만하고 견고한 불신을 얻는 것이므로 마음을 닦는 관법으로서 「일일륜관」이 설해진다.
  여기에서는 오상성신은 생명을 가진 원만한 인격체로서 묘용을 보이는 것이요, 오상성신관은 이러한 인격체가 되는 관법으로써 범불계합의 신비적인 방편이 된다.
  한편 「십팔회지귀」에서 보이는 오상성신은 이와 조금 다르다.  앞에서 보인 바와 같이 “오상으로써 등정각을 현성하니 성불후에 금강삼마지로써 삼십칠지를 현발한다”고 한 것을 살펴보면 여기에서 불신원만위는 지의 원만이니 삼십칠지는 삼십칠존으로 나타내는 지혜다.  어디까지나 마음의 세계로서 부동의 금강심인 금강삼마지로써 나타내는 삼십칠지는 관의 세계다.
  이것은 지로부터 관으로 나가서 현발된 것이다.
  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관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를 떠난 관이 있을 수 없으므로 금강삼마지로서 삼십칠지의 지혜가 현발한다고 했다.
  오상성신관은 물심불이, 심신불이로서의 불신을 원만히 하는 관법이다.  그러므로 「금강정경」에서는 “오상성신관이란 오상으로써 등정각을 현성하는 관법이다.  이 관법이 이루어지면 삼십칠지가 발현되어 삼십칠존이 구현되는 금강계 만다라가 개설 된다”고 설하고 있다.

 

Ⅴ. 맺음말
  20세기가 저물어가는 현 시점에서 밀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것은 밀교가 가지는 신비적인 요소, 주술적인 요소, 상징적인 요소 등이 세인들의 매력을 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진각종, 총지종, 진언종 등의 밀교 종단이 있고 이들 종단에서는 각자의 교리 체계를 가지고 밀교를 전하는데 힘쓰고 있다.
  불교는 성불이 목표이므로 모든 경전에서는 누구나가 다 같이 성불하도록 하기 위해서 선교란 방편설이 설해지고 있다.
  소승에서 대승에 이르는 모든 교설은 우리로 하여금 성불을 조속히 성취하도록 하는 자비의 교설이다.
  우리들 범부는 각각 근기가 다르므로 세존께서는 수많은 불설로서 범부의 근기에 맞게 팔만대장경을 설하셨다.
  불교는 절대주의가 아니고 상대주의다.  독선주의가 아니고 공생주의다.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기를 의지하라고 한다.  따라서 공론을 중요시한다.
  이 세상에는 취할 것이나 버릴 것이 없다.
  밀교도 이러한 도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 참고문헌 >
1. 서윤길, 「한국밀교사상사연구」, 불광출판부, 1994.
2. 석지현, 「밀교」, 현암신서, 1977.
3. 마쓰나가 유케이, 「밀교역사」, 경서원, 1990.
4. 정태혁, 「밀교의 세계」, 고려원, 1996.
5. 요리토미 모토히로 외, 「밀교의 역사와 문화」, 민족사, 1989.
6. 운허 용하, 「불교사전」, 동국역경원, 1961.

 

 

 

 

 

 

[출처] 밀교에 대한 소고|작성자 노원앙마